로봇과 창작

 

역사적으로 인간들이 인위적인 수단을 이용하여 인간을 재창조하거나,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인간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한 이야기들이 숱하게 많이 발견된다.

아시아에는 생명의 서사시 Epic Gesar of Living」라는 시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한 대장장이가 왕에게 많은 양의 금과 은, 청동, 구리를 달라고 했다. 왕으로부터 이것들을 받자 대장장이는 며칠동안 분주히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궁궐에서 그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금으로 보통 사람 크기의 라마승과 천 명의 작은 승려들을 만들었고, 은으로는 달콤하게 노래하는 백 명의 아름다운 소녀를 만들었다. 청동으로는 700명의 관료들과 한 명의 왕을 만들었다. 더군다나 구리로는 만 명의 군인들과 장군들을 만들었다. 그들은 모두 신비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는 듯했지만 정상적인 사람처럼 움직이고 행동했다. 불행히도 그 시에는 '인조 인간 만드는 법' 과 같은 자세한 내용은 씌여 있지 않다.

피그말리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원래 피그말리온은 사이프러스 (Cyprus) 섬의 왕이자 조각가였다. 그는 상아로 아주 정교한 여인상을 조각했다. 그리고 그 조각상을 가라티 (Garatea) 라고 불렀다. 그는 거친 시골 여자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고, 한편으로는 여신 아프로디테로부터 받은 벌로 인해…….' 그 후 피그말리온은 가라티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아프로디테에게 가라티만큼 아름다운 여자가 자기의 아내가 되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고, 아프로디테는 가라티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조지 버나드 쇼의 개작 <피그말리온의 음모 the Pygmalien plot> 은 신화나 전설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인생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한 인간의 존재성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감지되어지는 사람의 지능 수준과 인간과 기계들이 어떻게 주어진 문제들을 잘 해결해 나가는지를 다루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여기에서 보면 꽃처럼 아름다운 소녀 엘리자 듀리틀은 말을 더듬는 문제 때문에 히긴스 교수로부터 6개월 동안 공주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교육받는다. 그리고 그녀는 왕궁의 무도회에 참석하여 참석한 손님들을 속여서 그녀가 모든 면에 있어서 진짜 공주임을 믿게 한다.

인간을 닮은 로봇은 중세에 쓰여진 소설 「프라하의 두목 랍비 The Chief Rabbi of Prague」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소설에서 한 랍비는 유태인 대학살로부터 유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진흙으로 사람의 형태를 만든다. 진흙 사람 고렘은 자신의 이마에 박힌 보석 (혹은 돌) 에 의해서 조종되며, 보석이 이마에서 빠져 나가면 단지 사람 형태의 진흙에 불과하다. 그러나 보석이 랍비에 의해서 제자리로 놓여지게 되면, 고렘은 초인적인 힘을 갖는 것을 제외하고는 인간과 같이 행동하게 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한번은 고렘이 통제 불능이 되어 유대인들을 위협하게 되었을 때 그 랍비가 간신히 고렘의 이마에 박힌 보석을 빼내어 유대인들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대목이 있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면에서 흥미롭다. 첫째는 그것이 프라하라는 점이다. 현재 우리가 쓰는 '로봇' 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었던 카렐 카펙의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들 Rossum's Universal Robots> 역시 프라하가 고향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기계를 켜고 끄는 스위치 개념을 낳았다는 점, 즉 랍비는 조종 장치를 가지고 고렘을 조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 최근의 이야기는 말로우의 조용히 흐르는 템즈강 둑에서 쓰여진 매리 셜리의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이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 육체의 각 부분들이 정확하게 맞추어진 살아 있는 인간으로 창조되었다. 한 세트의 부품들이 살아난 것이다. 인간을 닮은 로봇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다른 대부분의 소설들에서는 다루지 않은 소위 창조물의 정체성, 자아 인식과 자각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그래서 사람들은 프랑켄슈타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또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좋아한다. 즉, 프랑켄슈타인도 사람이라는 사실에 공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상과학소설에서조차 인간들은 모든 주인공 기계들에게 인간으로서는 불완전한 특징들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렘도 완전한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그렇게 영리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모든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그저 소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인간인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즉 우리가 인간으로서 우리보다 더 지능적인 어떤 사물 또는 피조물을 알아내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이 살아났을 때, 피그말리온이 키스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은 가라티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녀가 그를 싫어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공상과학소설 속의 대부분의 피조물들은 굉장히 건장한 체격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낮은 수준의 지능을 지닌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그들이 인간만큼 지능적이지 못해서 결국 우리 인간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약간 지능이 모자란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어 종종 육체적으로 건장한 사람들이 평균 이하의 지능을 가졌다든지, 혹은 약간 정신이 이상하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로 연결되어 버렸다. 인간들은 지상에서 자신이 가장 강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물론 알고 있다.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 보면 인간은 그렇게 빠르지도, 힘이 세지도 않다. 어떤 기구의 도움 없이는 날지도 못하고, 움직이는 것도 상대적으로 느리다. 단 한 가지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월등한 것은 추상적인 생각들이나 창조력, 자각 등을 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들 속에서 우리 인간들은 여러 방면에서 지능적인 창조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이다. <2001년 우주여행 2001 : A Space Odyssey>을 한번보자. 여기서 할 (HAL) 은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분위기 파악도 할 줄 아는 말하는 두뇌에 불과하다. 할은 인간들이 자신을 원하므로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상당한 수준의 지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물리적인 상태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없다. 그는 지능은 있지만 물리적인 힘은 없는 말 그대로 네모난 두뇌 상자인 것이다. 또다른 형태의 창조물은 지능과 물리적인 상태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없다. 여러분이 듣기 좋게 말하자면, 그는 지능은 있지만 물리적인 힘은 없는 말 그대로 네모난 두뇌 상자인 것이다.

또다른 형태의 창조물은 지능과 물리적인 힘까지도 갖추었지만, 아킬레스의 발꿈치와 같은 인간에게는 없는 어떤 약한 부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러한 H. G. 웰의 <세계의 전쟁 The War of the Worlds> 에서처럼, 외계 침입자들이 결국 지구상의 미생물들에 감염되어 죽어가는 것을 통해 볼 수 있다. 소설이나 신화, 전설 속에서 보면, 인간들은 괴물들과 싸우는 것을 즐기고 있다. 왜냐하면, 결국 인간들은 지능을 이용하여 괴물들을 무찌를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주 지능이 높은 생명체에게 인간이 위협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생명체는 반드시 하나의 약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간이 그 약점을 찾아내기만 하면 모든 일은 끝이 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어떤 것보다도 인간이 더 월등하고 우위에 있다는 인간의 사고방식은 심지어 오늘날의 과학적인 사고에도 따라다닌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아담과 이브는 창조주가 유전인자로 프로그래밍한 로봇이라는 의견이 제시된 적이 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유전인자 프로그램이 이들이 갖고 있는 생물학적 토대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밝힌 리처드 도킨스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런 의미가 영혼이나 정신적인 측면과는 사뭇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생각은 "자아 실현의 가장 우선적인 것은 자신의 육체로부터 분리된 자아를 깨닫는 것이다" 라고 말한 크리슈나의 가르침과 육체와 자아는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도킨스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들은 본질적으로 유전자를 운반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돌보고, 다른 인간의 유전자와 결합함으로써 이를 후손에게 전해 준다. 인간이 전해주는 유전자는 후손에게는 그들이 가지고 태어난 설치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보면, 인간사의 모든 것은 신이 아담과 이브에게 유전자 프로그램을 설치했을 때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이어져 오는 인간의 세대들은 아담과 이브의 것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유전자들의 조합으로 구성된 자신들만의 독특한 유전자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약 70년이 지나면 각 인간들은 사라지지만, 수백 년간 그들의 유전자는 이어져 오고 있고, 또한 그들이 자식을 낳기만 한다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개개인은 일시적인 유전자 운반체인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 직접적으로는 우리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 설치 프로그램을 가지고 인생을 시작한다는 의견이다. 이것은 우리의 외모와 육체적인 특징들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본질적으로 우리의 초기의 정신 또는 뇌의 형성에 있어서도 또한 초기 시작 프로그램이 있다. 물론 호흡과 같은 프로그램은 가장 기본적인 행동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도, 태어남과 동시에 경험들로부터 이를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