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사이보그 그리고 안드로이드

 

시네마 사이언스 : 정재승 지음, 아카데미서적, 1998, Page 19~26

"생명현상은 하나도 신비롭지 않다." 분자 생물학 강의를 처음 듣던 날, '생명현상은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을 그대로 따른다' 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교수님은 이렇게 말문을 여셨다. 그리곤 한 시간 내내, DNA 구조가 밝혀진 후 행해진 생명현상에 관한 많은 연구들을 소개해 주셨다. 생명현상은 매우 흥미롭고 놀라운 현상일 뿐, 더 이상 '신비' 라는 이름 속에 묻혀 있지는 않다고 말씀하셨다. 과학의 위용이 전율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과학으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려는 인간들의 '열망의 역사' 는 성욕만큼 질기고 왕성했다. 고대부터 로봇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고, '과학' 이라는 이성의 역사가 시작된 후, 그러한 노력은 더욱 가속화되고 다양해졌다. 비록 지금은 로봇이 더 이상 신기한 물건은 못 되지만, 현실과 로봇은 아직 멀리 있기만 하다.

그런데 SF 에는 로봇뿐만 아니라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인조 인간, 복제 인간, 자동 인간 등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생명체들이 등장한다. 과연 그들은 누구이며 어디서 왔을까, 언젠가는 우리가 그들을 맞이할 날이 올 것인가.

SF 의 대표적 인공생명체인 로봇, 사이보그,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무엇이며,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그리고 영화나 소설에서 그들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하며 그들의 고민은 무엇일지 함께 생각해 보자. 그들이 한낱 단순한 공상의 산물로 끝날지 과학의 적자로 남을지는 우리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스타워즈의 감초 C3PO 와 R2D2

로봇은 상대성이론이나 아폴로 우주선만큼 많은 이들에게 과학의 경이로움을 보여주고 흥미를 심어 주었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로봇이 처음 등장한 희곡 '로섬의 유니버설 로봇' (Rossum's Universal Robots) 에는 로봇이 매우 비관적인 시각으로 그려져 있다. 1920 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카렐 차펙에 의해 쓰여진 이 희곡에는 '모든 정신적, 육체적 노동을 인간과 똑같이 할 수 있으나, 인간미를 갖고 있진 못한 인조 인간' 으로서 로봇이 등장한다. 로봇은 체코어로 '일한다' 혹은 '강제노동' 의 의미를 갖는 Robota 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로봇들이 노동을 통하여 지능과 반항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로봇을 제조하는 회사의 중역들을 죽이고, 그 회사를 시찰 나온 대통령의 딸을 죽이면서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로봇들은 사람의 손이 필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홀로 살아남은 인간 알키스트에게 자신들을 개량해 줄 것을 의뢰한다. 이 때 두 로봇 남녀가 서로 희생하려는 것을 보고 사랑을 알게 된 두 로봇을 아담과 이브로 만들어준다는 이 희곡은 기계 문명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도전적인 물음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렇게 처음 등장한 로봇은 '자동으로 작동하여 인간이 하는 일을 대신하는 기계' 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인조 인간' 혹은 '자동 인간' 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그 후 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로봇이 쏟아져 나왔는데, 특히 <금지된 행성> (Forbidden Planet, 1956) 에 등장하는 로비 (Robby) 와 <스타워즈> (Star Wars, 1977) 의 알투디투 (R2D2) 와 씨쓰리피오 (C3PO) 는 아마도 대중들에게 사랑받은 로봇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폭풍우' (The Tempest) 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금지된 행성> 에서 식민지 함선의 실종자들과 대저택에서 지내게 되는 로봇으로 등장하는 로비는 무딘 손발과 드럼통 같은 몸통의 둔한 모습이지만, 아주 귀여워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에게 로봇을 가장 친숙하게 느끼게 해 준 것은 '스타워즈' 의 감초, 떠벌이 씨쓰리피오와 로비만큼 둔한 알투디투일 것이다. 이 두 로봇은 스타워즈의 인기에 크게 한몫을 더했을 뿐 아니라 전형적인 로봇의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어주게 된다.

사람들이 로봇에게 성을 부여하여 여성 로봇을 만들기도 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특히 프리츠 랑 (Fritz Lang) 의 걸작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 1926) 에는 노동자들의 우상으로 '마리아' 라는 여성 로봇이 등장한다. 마리아는 비록 어리석은 과학자의 음모로 탄생되엇지만 흑백의 화면에 드리운 자태는 세련되고 현대적이기까지 하다. 여성 로봇의 등장은 비록 새로운 로봇을 잉태하지는 못하지만, 보다 자연적인 생물에 가까운 존재를 탄생시키고픈 노력의 산물일 것이다.

로봇은 크게 산업용 로봇, 휴먼 로봇, 마이크로 로봇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인간이 하기에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나 특정한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산업용 로봇은 공장에서의 단순한 일 뿐 아니라 화재를 진압하는 일, 우주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 혹은 낭님의 눈이 되어 주는 맹도견 역할까지도 수행하게 된다. 반면 매우 작은 크기로 만들어져서 수술시에 인체에 주입되어 탐사를 하거나 수술을 수행하는 마이크로 로봇도 연구 중이다. 학습과 적응 능력을 가지고 있어 인간처럼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행동을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지적인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로보캅> (Robocop, 1987) 은 큰 인기로 인해 3 편까지 제작된 '로봇 영화' 의 대표작이다. 비록 로보캅은 사이보그지만, 그가 싸우는 로봇제작사 OCP 회사 소속 악당 로봇들은 속편으로 갈수록 막강해져서 3 편에는 휴먼로봇인 사무라이 로봇이 등장한다. 로보캅 시리즈에는 로봇연구의 발달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다양한 로봇들이 등장하므로, 이런 것들을 특히 눈여겨보면 영화가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예전에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던 <이겨라 승리호> 라는 만화영화가 있었다. 이 만화는 주인공 승리호가 악당들에게 항상 괴롭힘을 당하다가, 뼈다귀를 먹으면 입에서 무수히 작은 마이크로 로봇들이 나와서 악당들을 온통 갉아먹어 무찌른다는 줄거리다. 귀엽고 악동같은 마이크로 로봇이 주인공인 셈이다. SF 영화 속에 로봇들이 자주 등장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힘든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들의 바람을 형상화하거나, 노예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죄의식 없이 실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SF 를 보며 로봇들에게 받들어지는 왕이 되길 꿈꾼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특히 휴먼로봇이 SF 에서처럼 대중화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특화된 기능을 가진 로봇이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진공 청소기나 자동응답기를 사는 대신, 막대한 돈을 들여 똑똑한 휴먼 로봇에게 청소를 시키거나 전화를 받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아지를 키우는 대신 왜 강아지 로봇을 키우겠는가.

SF 에서 로봇이 중요한 것은 인간의 여러 가지 문제를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문학적, 영화적인 장치라는 데 있다. SF 는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통해 인간과 신의 관계, 사람과 기계의 혹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이제는 로봇만큼 유명해진 사이보그 (Cyborg) 는 cybernetics (인공두뇌학) 와 organism (유기체) 의 합성어인데, 기계나 인공 장기 등으로 이식된 개조된 인간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사이보그는 로봇과는 달리 인간인 것이다. 태권 V 는 로봇이지만 유백만불의 사나이나 소머즈는 사이보그이며, 아톰은 로봇이지만 로보캅은 사이보그다.

사이보그는 인간의 육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기계의 도움으로 극복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혹자는 인공 신장을 이식 받은 사람이나 실리콘 유방 수술을 한 여자, 심지어 콘택트 렌즈를 착용한 사람조차도 넓은 의미에서 사이보그로 분류하기도 한다.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영화도 많을 뿐 아니라, '사이보그' 라는 제목의 영화도 여러 편 제작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영화라면 <로보캅> (Robocop, 1987) 을 들 수 있다. 디트로이트 시 경찰인 머피는 동료 경관의 살해범들을 소탕하기 위해 그들의 소굴로 들어가지만, 그들에게 잔혹한 총격을 받고 죽게 된다. 이때 로봇을 제작하는 회사 OCP 에 의해 머피는 강력한 기계 장기와 손발로 무장되어 로보캅으로 탄생된다. 그의 머리의 기억은 모두 지워지고 경찰 업무 수행과 OCP 에 대한 복종에 필요한 프로그램들이 입력된다. 영화는 이렇게 탄생된 로보캅이 인간 '머피' 로서의 희미한 기억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며 인간의 자의식을 회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악당을 처단하고 음모를 밝히는 것은 덤이다.

SF 영화에서 사이보그는 항상 인간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내가 인간인 이유는 나의 무엇 때문인가? 무엇이 나를 인간이게 하는가? '로보캅' 은 모든 신체가 기계로 대체되었다 하더라도,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사이보그가 아직 인간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후, 로보캅은 프로그램된 기계가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로 행동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당신은 누구냐는 질문에 항상 "로보캅" 이라고 답하던 그가 당당히 "머피" 라고 대답하는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로보캅> 의 첫 장면 또한 인상적이다. 첫 장면으로 일본 기업의 성능 좋은 인공 심장에 대한 텔레비젼 뉴스가 광고가 등장한다. 바야흐로 사이보그 시대가 온 것이다. 실제로 현재의 의학기술로는 혈액 속의 요소를 제거하는 '신장' 을 혈액 투석기 등을 이용하여 인공적으로 대체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 인공 신장뿐 아니라 인공 심장등 여러 신체 장기와 인공 혈관, 인공 피부조직 등 각 신체 기관을 인공적으로 제작하려는 노력이,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지만, 의과학기술 분야에서 진행 중이라고 하니 <로보캅> 이 먼 미래의 얘기는 아닌 모양이다.

안드로이드 (Android) 는 '인간을 닮은 것' 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기원한다. 가을 초저녁 동쪽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안드로메다자리 (Andromeda) 도 그 형상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케페우스 왕의 딸처럼 아름다운 사람의 자태를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안드로이드도 그 이름이 내포하듯, 인간과 같이 세포 등의 원형질로 되어 있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과 전혀 구별할 수 없는 가공의 생물을 의미한다. '복제 인간' 이라고도 불리는 그들에겐 수명도 있다.

안드로이드는 분자 생물학의 발달로 탄생된 SF 의 주인공이다. 데이빗 로비크 (David M. Rorvik) 는 1978 년 그의 저서 '복제 인간' (The cloning of a man) 에서 처음으로 복제 인간의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실험적으로도 성공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당시 화제가 되었던 '시험관 아기' 에 비하면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정자와 난자의 결합이 아닌, 단일 개체의 체세포에서 무성적으로 새로운 개체를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1975 년 미국의 보건 후생성의 규정에 의해 생명의 실험에 관한 연구는 지원이 금지되었고, 현재는 보다 복잡한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시행할 수 없지만, 복제 양 돌리의 탄생으로 '복제인간' 의 탄생도 조심스럽게 예견해 볼 수 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에는 안드로이드와 공생하는 인간의 미래가 끔찍하게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식민지에서 살고 있는 리플리컨트라는 안드로이드들이 인간적인 감정이 생겨나 자신의 한정된 못숨을 연장하기 위해 지구로 잠입한다. '블레이드 러너' 는 탈출한 안드로이드들을 추적해 '폐기' 하는 형사들이다. 영화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와 칼처럼 차가운 인간의 모습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면서 과연 '인간적' 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몇 년전 다시 개봉된 감독판 (예전 개봉시 제작자에 의해 편집된 장면을 감독이 새로 편집하여 만들어진 판) 에는 안드로이드를 폐기하는 '블레이드 러너' 인 데커드 형사 (해리슨 포드) 마저 안드로이드라는 암시의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자신이 안드로이드임을 알고 있는 안드로이드와 인간이라고 믿고 있는 안드로이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독판은 제작자판보다 더 충격적이고 중층적이라 할 수 있다. SF 는 영원한 화두. 과연 '인간적' 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로봇과 사이보그, 안드로이드에 대해 알아보았다. 즉 로봇은 금속이나 플라스틱으로 구성된 기계이고, 안드로이드는 원형질로 이루어진 구성물로서 인공적으로 배양된 것을 말하며, 사이보그는 기계와 원형질의 결합 혹은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터미네이터 2> 에 등장하는 터미네이터와 섬뜩한 액체 합금인간 T1000 은 과연 로봇일까, 사이보그일까, 아니면 안드로이드일까. 터미네이터는 완벽한 휴먼 로봇의 기계 위에 살아 있는 세포를 덮은 것으로, 기계와 원형질의 결합이라는 의미에서 사이보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라기보다는 안드로이드와 기계의 중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액체 합금으로 만들어진 T1000 은 최첨단의 휴먼 로봇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액체 합금이 유기적인 원형질보다 유연하고 인간으로 변하면 구별할 수 없지만, 가장 발달된 형태로서의 휴먼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T1000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을까.

영화에는 이렇게 막강한 가공의 인간들이 등장하지만, 각기 그들의 탄생에는 엄청난 과학의 산고가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무엇이 로봇이고, 무엇이 사이보그인지, 심지어 인간은 무엇인지조차 구분이 모호해지고 무의미해져 버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누구건 간에 앞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가 만들어낸 동반자라는 사실이다.

<스타트렉> (Star Trek, 1979) 의 마지막 장면은 침입자에 의해 기계로 변해 버린 아일리아와 그의 옛 애인 데커가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되는 것을 강력히 암시한다. <스타트렉> 의 철학적 주제 중의 하나는 바로 인간과 기계의 새로운 형태의 무수한 생명체와도 공생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그것은 헛된 바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