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에서 이루어진 과학
인공생명 : Steven Levy 지음, 김동광/과학세대 옮김, 사민서각, 1995 (원서 : Artificial Life : A Report from the Frontier Where Computers Meet Biology, Vintage, 1992), Page 129~171
제임스 도인 파머는 세포 자동자의 요란한 움직임 뒤편에 숨어 있는 깊은 함축성을 느낄 수 있었다. 파머는 실리콘 칩과 방정식 속에서 뿐만 아니라 물이 똑똑 떨어지는 수도꼭지와 열대 우림 속에서도 수학과 논리를 찾아냈다. 장난감 우주는, 파머가 살고 있던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학적 문제로서 풀리지 않는 비밀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수수께끼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었다. 그 문제가 극소수에 불과한 사람들의 세계관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과거에는 불과 몇 안되는 사람들의 관심사에 불과했지만, 다가올 미래에는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 주제가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중 하나는 생물체와 같은 복잡계의 행동을 지시하는 자연의 힘에 대한 이해였다. 그것은 스티븐 울프람의 호기심을 북돋았던 것과 같은 문제였다. 파머는 그 문제를 복잡성의 성배 聖杯라고 불렀다. 그는 그 문제에 대한 탐구가 인공 생명연구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확신했다.
파머는 매처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호리호리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그의 연한 갈색 머리는 뒤로 땋아 드리워졌고, 티셔츠와 라틴 풍 셔츠를 즐겨 입었다. 1952년에 뉴멕시코 주의 황량한 도시인 실버 시에서 태어난 파머는,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한 후 산타크루즈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그 곳에서 파머를 비롯한 자유로운 사고의 물리학과 학생들은 동역학적 복잡계에 대한 이론인 카오스 이론의 선구적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후일 울프람의 연구실에서 수학적으로 눈송이를 만들었던 세포 자동자 연구자 노먼 패커드도 포함되어 있었다.
파머와 그의 동료들은 떨어지는 물방울과 불규칙한 심장 박동의 카오스적 불안정성 [perturbation] 을 규정하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당시의 시대적 흐름이었던 평등주의에 따라 그들은 집단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연구를 통해 밝혀지는 사실에 대한 공적도 함께 나누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야망은 기성 과학자들의 냉혹한 질서에 의해 압력을 받게 되었다. 특정 논문에는 특정 연구자의 사인이 필요했다. 구체적인 공적을 인정받아야만 특정 연구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결국 연구를 공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침내 연구팀은 감정적인 앙금을 남긴 채 해산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과학에 몰두했던 방식 속에는 죽지 않은 정신이 남아 있었다.
파머가 특히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는 예측이었다. 그는 일견 임의성에 의해 지배되는 것처럼 보이는 —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다 — 복잡계가 관찰자에게 다음 단계에 일어날 일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패커드와 그의 동료 연구자들은 룰렛 공의 종잡을 수 없는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고안했을 때, 그 개념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들은 라스베거스를 실험 무대로 결정했다. 컴퓨터가 신발 속에 장착된 장치를 실행시키고, 그 결과를 전파 신호로 보내 최종적으로 룰렛을 하는 사람에게 식별 신호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알고리듬은 제대로 작동했다. 결국 과학자들은 전문 도박꾼들에게 장비를 넘겨주었고, 도박꾼들은 자기 소득의 일정 부분을 장비 사용료로 과학자들에게 지불했다.
이 모든 일은 파머가 소년 시절부터 아이작 아시모프의 『마지막 문제 [The last question]』라는 짧은 소설을 읽고 가슴을 졸이던 일에 비교하면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 단편 소설에서 인류는 놀라운 지능을 가진 컴퓨터를 개발했다. 사람들은 그 컴퓨터를 가장 심오한 질문으로 시험한다. 그러나 컴퓨터는 열역학 제 2 법칙에 관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우주의 엔트로피 증가가 언젠가는 역전될 것인가?"
물론 그 질문은 현재라는 시점보다는 수십억 년 후에 훨씬 더 중요성을 띨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엔트로피는 되돌릴 수 없이 증가하고, 사용 가능한 에너지는 생명체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수준으로 감소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용한 에너지는 모래 시계와 같아서 한번 소진되면 아무 것도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이 파국을 벗어날 길이 있을까?
아시모프의 15쪽짜리 단편 소설 속에서 시간은 점차 흘러 이윽고 수천, 수백만, 수조 兆의 세기가 지난다. 그 소설 속에서 인류는 자신들이 만든 거대한 기계와 합체되는(NASA 의 자기 재생산 기계 연구팀들이 만들었던 환상적인 시나리오와 거의 흡사한)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꼬리를 물고 제기된다. 컴퓨터는 답변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 부족을 호소한다. 결국 우주의 모든 물질은 의식을 가진 단일한 실재 속으로 융합되어 들어간다. 모든 에너지가 흡수되고 모든 물질이 분해되자, 이윽고 그 실재는 궁극적인 의문에 대한 해답의 단계에 도달한다. 그 실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엔트로피를 역전시킨다. "빛이 있으라."
성인이 된 파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은 그 이야기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끝맺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한 결말은, 진화가 일반적인 생각보다는 훨씬 광범위한 과정이며, 그것이 우주의 엔트로피 증가에 대한 대위법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줄 것입니다." 파머는 현대의 다윈주의자인 허버트 스펜서의 저작에서 진화에 대한 다른 견해를 찾았고, 자기 조직이라는 개념을 발견하게 되었다. 스펜서는 진화를 열역학 제 2 법칙의 가장 큰 적으로 규정한 최초의 인물일 것이다.
엔트로피가 질서를 무질서로 바꾸지만, 진화는 자기 조직이라는 힘을 이끌어 내 질서의 증가라는 복잡한 역류逆流를 일으킨다. 이것은 마치 열역학 제 2 법칙에 의해 켜진 일방 통행 신호를 무시하는 격이다. 자기 조직이라는 동일한 현상은 나중에 오토마톤, 새들의 무리 짓기, 곤충들의 사회 행동 속에서 다시 발견되어 연구자들을 매료시키게 된다. 이들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파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자기 조직이 열역학 제 2 법칙과 같은 맥락에 있는 심오한 물리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광범위한 방식으로 물리학 속에 숨어 있는 움직일 수 없는 원리, 즉 매우 유용한 물리 법칙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원리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그 원리를 발견할 수 있을까?
파머는 금세기의 마지막 수십년 간이, 거대한 과학적 발전이 이루어졌고 오늘날 우리에게 열역학 또는 통계 역학(역주 : 분자, 원자 등의 소립자의 미시적인 움직임을 확률론적으로 다루어 거시적인 물질의 성질이나 법칙을 이끌어 내는 과학)이라고 알려진 법칙이 증명된 시기인 19세기에 필적할 만큼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기를 생각하면, 사람들은 애매한 개념으로 열과 운동을 둘러싼 재미있는 생각들을 검토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러한 생각들이 정립된 것은 온도와 같은 개념을 정량화할 수 있는 정확한 측정 장치가 개발된 후의 일이었습니다. 일례로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프레스톤) 줄은 실험을 통해 힘든 연구를 했습니다. 그는 물통 속에 프로펠러를 넣고 프로펠러를 돌리는 데 필요한 일의 양을 측정하는 한편 그로 인해 상승한 물의 온도를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온도와 열, 일 사이의 관계를 입증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용어가 정확히 정리되자, 이론 정립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열역학 법칙의 완성은 과학의 엄청난 진보였다. 그러나 날씨나 결제, 생물체 등과 같은 동역학적 복잡계의 복합적인 현상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있는 법칙을 제공해 주지는 못했다. 산타크루즈의 동역학적 계 연구팀은,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일상적인 현상도 궁극적으로는 카오스로 분류될 수 있는 복잡한 행동을 나타내며, 따라서 그러한 행동을 이해하려면 전혀 새로운 법칙을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모두는 그에 수반되는 어려움 때문에 물리학자들이 수세기 동안 기피해 왔던 연구 주제였다.
최근에서야 과학자들은 이 복잡성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 부분적인 이유는 컴퓨터의 발달로 그 현상을 제어된 환경 속에서 정지 상태로 연구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그 동안 과학 연구의 기준이 되어왔던 전문 영역이라는 높은 장벽을 넘어 여러 학문 분야들을 연결시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복잡성이라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과 수학뿐만 아니라 정보 이론, 컴퓨터 과학, 심리학, 화학, 집단 유전학, 그리고 게임 이론 등의 다양한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요했다. 복잡성 연구의 궤적을 추적해 가면, 우리는 옥수수 가격 변동의 경제적 분석에서 면역 체계의 항체 형성에 대한 연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범주들을 접하게 된다. 따라서 상이한 연구 분야 사이의 의사 소통이야말로 돌파구를 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파머가 자주 지적했듯이, 과학자들은 줄을 비롯한 열역학의 마술사들이 사용했던 실험적 방법에 상응하는 방법을 개발해 내야만 한다.
정확한 실험 방법이 발견되고, 그에 따라 적절한 이론들이 분류될 때까지 파머와 그의 동료들은 간접적인 정황 증거들을 쌓아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찾는 핵심적인 법칙들이란 생물체의 움직임을 포함한 복잡성을 설명할 수 있는 일련의 법칙을 가리킨다. "우리는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가 있고,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 실체가 무엇인지 밝혀 내기 위해 논의를 계속하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이 연구가 바로 지금 우리를 그토록 매료시키는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막 모습을 드러내려는 엄청난 발견이 그 연구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발견이란, 세계가 스스로를 조직하고 있는 방식을 기술하는 원리를 물리적인 법칙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 발견이 가져다 줄 이익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파머의 생각처럼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익은, 이러한 원리를 발견함으로써 생명의 비밀을 밝혀 내고 나아가 생명을 합성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파머는 인간이 생물의 활동을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의 소유자였다. 그는 이러한 기념비적인 업적이 복잡성에 대한 연구와 밀접하게 얽혀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그는 생명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물리학과 생물학을 융합시키면서, 카오스에 대한 연구를 이러한 새로운 도전을 위한 디딤돌로 간주했다.
산타크루즈를 떠난 다음 파머는,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의 비선형 연구 센터 [CNLS] 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연구 센터에서는 비선형 복잡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의 임무는 국가 방위, 특히 핵병기에 대한 연구와 직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외의 기초 과학 연구에도 자금이 지원되었다. 독립적인 기관으로 운영되는 비선형 연구 센터는 바로 그런 지원을 받는 연구 분야였다. 이 곳의 연구는 국가 기밀에 속하지 않았다. 그 곳 과학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들이 연구하는 납잡한 1층 건물은 '울타리 너머에' 위치했다. 주차장은 브래드버리 과학 박물관과 함께 사용했다. 그 박물관은 실제 원자 폭탄과 똑같은 복제물을 전시해 많은 여행자와 학생들의 발길이 매일 끊이지 않았다.
파머가 그 곳에 도착했을 때 비선형 연구 센터에서 복잡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던 유일한 인물은 미첼 파이겐 바움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무명으로 지내 온 그는, 이후 카오스에 대한 독창적인 연구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파머가 도착하자마자 파이겐 바움은 그 곳을 떠났고, 그 덕분에 파머는 그의 뒤를 이어 책임자의 위치에서 박사 학위 취득 이후의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소장이 그에게 연구소가 이 곳을 방문하는 과학자들을 위해 35,000달러의 예산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과학자들의 명단을 작성해 줄 수 있겠소?"라고 물었을 때 , 퍼머는 절호의 기회가 왔음을 간파했다. 후일 가장 짧은 기간 동안 핵심적인 인공 생명 연구자가 된 과학자들을 끌어 모을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1985년 5월, 파머는 그의 가자 오랜 친구인 패커드와 함께 '진화, 게임, 그리고 학습'이라는 제목으로 로스앨러모스에서 열린 과학 회의의 공동 의장직을 맡았다. 그 회의는 서로 성격이 상이한 주제들의 기이한 혼합이었다. 그러나 파머와 패커드가 개회사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회의의 목적은…… 서로 다르게 진행되고 있는 연구들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서로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알아내서, 자연계와 인공적인 계에서 나타나는 적응적 과정에 대한 연구를 결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자연적인 현상을 인공적인 계와 결합시킨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러나 파머와 패커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꺼려하는 땅으로 과감히 발을 디뎠다. 그들은 물리학자들의 전통적인 접근 방식, 즉 환원주의적인 접근 방식(생명 현상을 물리, 화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으로는 이 주제를 다룰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들에게 제기된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환원이 아닌 종합 [synthesis] 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1. 생물체의 진화의 바탕이 되는 기본적인 원칙은 무엇인가?
2. 뇌 기능의 토대가 되는 기본 원리는 무엇인가?
3. 미리 프로그램되지 않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기계를 학습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보다 일반적인 의문으로, 우리는어떻게 기계가 사고력을 가지도록 만들 수 있는가?
이러한 실험에 고성능 컴퓨터가 필요하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폰 노이만을 비롯한 몇몇 연구자들은 이미 과학의 연구 방법을 혁신 시키는 과정에서 컴퓨터가 맡게 될 중심적인 역할을 예견하고 있었다(작고한 물리학자 하인츠 파겔스는 컴퓨터의 중요성을 '과학 연구를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간결하게 표현했다). 파머는 또 다른 관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컴퓨터의 성능이 고도화되는 반면 가격은 떨어지게 돼서, 거의 모든 연구자들이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했을 고도화된 연구 방법들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복잡성에 관심을 가진 젊은 물리학자는 20년 전의 선배 과학자에 비해 놀랄 만큼 유리한 입지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어디서나 흔하게 사용할 수 있는 워크스테이션급 컴퓨터에서 세계 수준의 과학 연구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천체 물리학자들이 저마다 개인용 전파 망원경을 가지거나, 입자 물리학자들이 한 명에 한 대 꼴로 입자 가속기를 갖는 격이었다.
파머와 패커드는 이렇게 썼다. "이러한 상황은 전자 제품 가격이 하락해서 취미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전기 기타를 사거나 자기집 차고에 전용 록밴드를 설치할 수 있게 된 60년대의 음악 풍경을 연상시킵니다." 그들은 폭발의 초기 단계에 — 그들은 그 단계를 '과학의 새로운 물결'이라 불렀다 — 통찰력과 우연한 행운이 한데 결합해서 실험이 이론을 앞서 나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곧 돌파구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파머와 패커드는 그들이 그 새로운 물결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파머는 공군으로부터 약간의 연구 보조금을 받고 있었다. 그는 그 돈은 산타크루즈의 이전 동료들을 데려오는 데 사용했다. 그러나 로스앨러모스에는 그들을 받아 줄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로스앨러모스와 산타페 사이에 위치한 엘란초에 커다한 벽돌집을 한 채 빌렸다. 전에는 무허가 술집으로 사용되어 천장이 4미터도 넘는 그 집에는 부엌과 탁구대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그들은 집 전체를 거미줄처럼 케이블로 휘감아 모든 컴퓨터를 연결시키고 연구에 착수했다. 그들의 연구 주제는 세포 자동자, 동역학적 계, 그리고 진화 모의 실험이었다. 파머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마치 차고에 설치한 록 밴드와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1980년대 초에 또 한 명의 젊은 과학자가 차고 과학 밴드의 음악에 이끌려 가세했다. 그는 박사 학위를 받기 전부터 스테인드 글래스 상점에 계약 고용되어 연구비를 받았다. 그 덕분에 이 초기의 인공 생명 연구자는 인공적 계의 생물학에 대한 전세계의 지식을 발전시키기 위해 1,500달러의 애플Ⅱ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훗일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물리학 잡지 중 하나에 발표될 연구를 수행했다.
그는 크리스토퍼 게일 랭턴이었다. 파머는 로스앨러모스 회의가 열리기 몇 달 전에 케임브리지에서 열린 작은 회의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파머는 랭턴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정작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함께 점심을 먹는 상대가 누구인지 모른 채 랭턴이라는 인물이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저…… 실은 저도 그걸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 가장 좋은 표현이라면…… 인공 생명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 있겠지요." 랭턴이 더듬대며 자신의 연구에 대해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파머는 아시모프의 단편을 읽은 이래 자신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간 꿈을 실현시키는 데 조력해 줄 동료를 얻게 되었다. 존 폰 노이만이 인공 생명 분야의 아버지라면, 크리스 랭턴은 그 산파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랭턴은 늦게서야 자신의 연구를 시작했다. 그를 가르쳤던 한 교사는 랭턴이 똑똑한 선생들보다는 '빈둥거리는' 선생들 속에서 인격 형성기를 보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외관은 전혀 닮지 않았지만 — 랭턴의 모습은 솜씨가 거친 조각가의 손에 의해 대충대충 다듬어진 격이었지만, 파머의 얼굴을 그보다 훨씬 세심한 손길로 매만져졌다 — 랭턴과 파머는 스타일에서 같은 남서부의 아들로 형제지간 같았다. 비록 랭턴은 양자였지만.
랭턴의 아버지는 메사추세츠에 있는 베어드 아토믹이라는 회사에 고용된 물리학자였다. 그 회사는 질량 분석계를 비롯해서 그와 유사한 정교한 과학 기구를 제작하는 곳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천문학을 전공했지만, 이후 아동 서적과 추리 소설 작가로 활동했다. 제인 랭턴의 저서들은 뉴잉글랜드 지방 고유의 선험론 先驗論적 경향에 깊이 물들어 있다.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으로는 「에밀리 디킨슨은 죽었다」일 것이다.
1948년에 MIT 대학에 있는 메사추세츠의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퍼 랭턴은 부모의 영향으로 과학에 대한 천성적인 호감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 시대의 젊은이들이 한 차례씩 겪게 되는 일종의 반항심 때문에 그는 그 유혹을 뿌리쳤다. 그렇지만 대학에 진학했을 때 그는 막연하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처음 컴퓨터를 갖고 놀 때 받았던 엄청난 충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고등학교의 진학 상담 교사가 그에게 일리노이 주의 작은 대학인 록포드 대학이 곧 값비싼 컴퓨터를 구입할 것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자, 랭턴은 그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그렇지만 잘못된 선택 때문에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그가 회상하듯이 그는 "딱히 아무런 전공도 갖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긴 머리와 반전 사상으로 주위 친구들로부터 괴짜 취급을 받았고, 결국 (그의 주장에 따르면) 대학 당국이 퇴학 명령을 내리기 직전에 스스로 록포드 대학을 자퇴했다.
그 후에는 병역 문제가 있었다. 랭턴은 군에 지원했고,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군 복무 대신 보스톤의 메사추세츠군 종합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시체 보관실에서 근무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그가 검시실檢屍室로 옮기던 시체가 벌떡 일어나 앉는 사건이 일어났다. 혼비백산한 그는 병원 당국에 다른 임무로 교체해 줄 것을 요구했고, 결국 정신병 치료에 대한 연구를 하던 스탠리 코브 연구소의 컴퓨터실에 배정받았다.
처음에는 단지 해야 될 일을 하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당시 그의 관심은 자신이 기타 연주를 맡는 블루스 록 밴드를 조직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점차 그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가 했던 일은 EEG 와 그 밖의 다른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컴퓨터를 프로그래밍하는 작업이었다. 그는 병원에서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지척지간에 살면서 밤 늦게까지 일에 몰두했다. 랭턴을 비롯해서 거대한 DEC 컴퓨터에 밤 늦게까지 매달려 프로그래밍에 열중했던 컴포터광들은 마치 거대한 보일러에 불을 때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그 기계에 비트를 공급하느라 우리 자신의 비트를 비우고 있었습니다. 그건 마치 기관차의 화부 노릇을 하는 기분이었으니까요." 그는 그 곳에서 컴퓨터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본격적인 컴퓨터 입문은 코브 연구소에서 시작되었다. 랭턴은 그 연구소에서 자신을 도취시키는 지적 향기를 처음 맡았다.
그는 연구소의 PDP-7 컴퓨터에서 — 다른 컴퓨터 내부에 가상의 컴퓨터를 구축할 수 있는 컴퓨터 — 다른 컴퓨터에 작동시킬 프로그램을 작성하다가 그 향기를 맡는 행운을 얻었다. 비로소 그는 컴퓨터가 갖는 변화무쌍한 능력을 깨닫게 되었다. 앨런 튜링의 연구성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지만, 랭턴은 그것이 바로 범용 컴퓨터임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 그를 도취시켰던 향기는, 몇몇 연구원들이 콘웨이의 라이프 게임을 실행시키는 MIT 프로그램을 갖고 그 연구소에 들어오면서 더욱 강해졌다. 라이프 게임은 랭턴을 강하게 매료시켰고, 그는 완벽한 균형을 이룬 별 모양의 구조인 '주기 2 깜박이 [period 2 blinker]' 의 중앙에 위치한 형상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그 형상은 세대가 진행됨에 따라 번갈아 깜박거렸다. 그런 다음 방랑자 글라이더 [stray glider] 가 그 구조와 충돌하면서, 평형이 깨지고 별은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 모습은 죽음이라는 운명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랭턴은 혼자 연구실에 앉아 있던 어느 날 일어난 우연한 사건으로, 그 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강렬한 감동을 받았다. 컴퓨터는 길다란 라이프 배열을 실행시키고 있었고, 랭턴은 컴퓨터 모니터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방 안에 있는 어떤 강력한 존재를 느꼈다. 방 안에 무언가가 존재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러자 컴퓨터 모니터가 이전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흥미로운 형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바로 그 때 나는 문턱을 넘었습니다. 그것은 하드웨어와 그 하드웨어가 만들어 내는 행동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려 주는 최초의 암시였습니다…… 당신이 그 광경을 보았다면 이 작은 인공 우주 속 깊은 어딘가에, 그리고 그 진화 과정 속에 실제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연구실에서) 우리는 프로그램이 무한할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많은 토론을 벌였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 속에서 생명이 진화할 수 있는 우주를 가질 수 있을까요?"
라이프 게임을 통한 실험에서 랭턴은 그 한계와 잠재적 가능성을 파고들었고, 자신이 물리학자로서 가상의 입자를 이용해 여러 가지 충돌을 시험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렇게 된다면, 여러 다른 각도에서 글라이더들을 충돌시켜 그 결과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형상들을 만들어 내는 효과를 관찰하기 위해 규칙을 변경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콘웨이의 규칙들이 라이프 게임이라는 사적 私的 우주 속으로 스며들어간 미묘한 균형의 의미를 높게 평가하게 되었다.
랭턴은 컴퓨터가 생명 그 자체를 모의 실험(시뮬레이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직 이런 생각은 막연한 수준이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저는 그 생각을 전체적인 상像 속에 위치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최초의 향기였습니다."
코브 연구소에 근무하던 정신과 의사들이 1972년에 메사추세츠 종합 병원을 떠나자, 연구소는 마치 라이프 형상이 방랑자 글라이더 [stray glider] 에 의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듯이 순식간에 해체되고 말았다. 그 후 랭턴은 랜드로버 자동차를 텍사스에 배달하는 등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다가, 결국 푸에르토리코의 '카리비안 영장류 靈長類 연구센터'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수락하게 되었다. 그 연구소는 원숭이의 행태를 연구하는 곳이었다. 데이터베이스를 완성한 후, 그는 몇 년간 그 곳에 더 머물면서 영장류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그 기간은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의 문화에서 행동 양식의 발전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것은 그가 느꼈던 향기와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랭턴은 자신에게 공식적인 과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뉴잉글랜드로 돌아가 보스턴 대학에서 미적분학과 우주론을 수강했다. 그리고 투손에 있는 아리조나 대학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1975년 여름, 그는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서부를 향해 길을 떠났다. 그들은 함께 여행을 하고 행글라이딩을 하면서 마음껏 즐기려는 계획이었다. 그 여행은 정말 훌륭했다.
여행은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블루리지 산맥의 최고봉 그랜드 파더 산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랭턴의 파티는 그 곳에서 두달이나 계속 되었다. 행글라이더는 시속 40마일의 바람을 타고 산 위로 1,000피트나 솟구쳐 여행자들에게는 볼 만한 구경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아리조나를 향해 떠나기 전날, 랭턴은 마지막 행글라이딩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윈드시어(역주 : 바람의 진행 방향에 대해 수직, 또는 수평 방향으로 일어나는 갑작스런 풍속 변화. 항공기 요동의 원인임.)를 만나 글라이더는 나무 높이 정도로 고도를 잃고 말았다. 그는 곧바로 뛰어내렸다.
랭턴은 이렇게 회상했다. "결국 두 팔과 두 다리가 모두 부러졌습니다. 게다가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무릎이 얼굴을 강타하면서 얼굴뼈도 모조리 부러졌고, 폐까지 다쳤습니다……"
그 후 몇 달간, 친구들은 병상에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랭턴을 보살펴 주었다.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동안 랭턴은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었다. 그는 입원하고 있는 동안 천문학과 철학, 진화론, 유전학 등 여러 분야에 관한 서적들을 탐독했다. 자신의 뇌가 바싹 마른 스폰지처럼 게걸스럽게 지식을 빨아들이는 것을 느꼈다. 그의 정신은 마치 강력한 타격을 당한 컴퓨터와 같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부팅을 해서 새로운 데이터를 공급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랭턴에게 더 매력적인 것은 재구성을 시도하는 그의 정신 속의 시냅스들이 자기 조직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개미의 개체들이 군집 속에 편입되어 특정한 임무를 부여받는 것과 같았다.
그로부터 1년 후 아리조나의 투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이 무엇을 연구하고 싶은지 알고 있었다. 그건은 바로 인공 생물학의 토대에 관한 것이었다. 문제는 그가 마음먹고 있던 이수 과정이 아직 아무도 거치지 않은 새로운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수학과 인류학, 물리학, 컴퓨터 과학, 분자 진화학, 철학, 생태학, 집단 유전학 등의 전문적인 연구를 요구하는 학부 학생을 받아 줄 수 있는 단일한 학과는 없었다. 랭턴은 한 학기(6개월)에 20개 과목을 수강신청할 계획 이었다. 마치 개들을 풀어놓고 '어디가 가장 향기가 강한 곳인지'알아내게 하는 셈이었다.
그 무렵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했다. 랭텅은 현대의 기적에 해당하는 그 기계를 사용해서 자신의 이론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 생물과 비슷한 행동을 나타내는 무언가를 실제로 창조함으로써 — 생각을 했다. 랭턴은 스테인드 글래스 상점을 경영하는 한 여자에게 돈을 빌려 애플Ⅱ 컴퓨터를 구입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 상점에서 모래 분사기로 유리를 가는 작업을 해주고 빚을 갚을 생각이었다.
그의 목표는 처음에 진화에 대한 컴퓨터 모델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19세기에 영국에서 흰나방떼들에게 나타났던 현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산업 혁명으로 공장에서 뿜어 나온 검댕들이 자작나무들을 시꺼멓게 오염시키자, 흰나방들은 더 이상 나무의 색깔과 조화를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시꺼멓게 오염된 나무껍질에 앉은 흰나방은 금방 눈에 띄어 쉽게 새들에게 잡아 먹혔다. 몇 년이 지나자 흰나방들은 체색 體色을 검게 바꾸기 시작했다. 체색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킨 개체들이 더 많은 후손을 남기게 된 결과였다. 랭턴은 이 효과를 애플에서 똑같이 반복 시키고 싶었다.
그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자신의 실험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가 사용했던 메커니즘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모의 실험을 통해 인공적으로 부과했던 적응이라는 범위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적인 것이 아니었고, 실제 진화처럼 무제한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는 외부의 프로그래머가 아닌 환경이 적응 여부를 결정한다.
몹시 실망한 그는 도서관의 문헌 더미를 뒤지면서, 자신이 찾고 있는 종합을 그보다 먼저 시도했던 사람이 없는지 찾아 보았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다. 더구나 그는 엄청난 거장이었다. 그는 바로 폰 노이만이었다. 랭턴이 폰 노이만의 자기 재생산 오토마톤에 대해 기술해 놓은 책을 발견했을 때, 그는 노이만과 자신이 같은 목표를 추구했음을 즉시 알아차렸다. 그러나 노이만이 실제 유기체와 동일한 방식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인공 유기체를 설계했을 때, 그 설계를 컴퓨터 상에서 구축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폰 노이만의 논문을 편집했던 버크스를 만났다. 버크스는 어떤 컴퓨터 모의 실험도 노이만의 원래 설계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확인해 주었다. 미시건 대학의 박사 과정 학생이었던 E. F. 코드가 폰 노이만의 고도로 복잡한 청사진을 단순화시킨 적은 있었지만(각 셀의 가능한 상태를 29가지에서 8가지로 축소시켰다), 노이만의 원래 설계는 아니었다. 버크스는 코드의 저서를 출발점으로 삼아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1979년 늦은 여름 이후 몇 달 동안, 랭턴은 버크스의 권고에 따라 연구를 계속했다. 낮에는 돈을 벌었다. 그는 스테인드 글래스 상점이나 그 밖의 다른 일거리를 찾아다녔고, 아리조나의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배수로를 파는 고된 일을 하기도 했다. 저녁시간을 새로 결혼한 아내와 함께 보내고, 밤이 되면 애플과 씨름을 벌여 매일 새벽 1시가 되어야 잠자리에 들었다(신혼의 아내로서는 큰 불만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여러 권의 노트 속에서 창조했던 인공 우주를 탐험하면서 여행 지도를 작성했다. 랭턴은 자신이 직면했던 어려움과 그 난관을 극복하는 데 사용했던 전략들을 빠짐없이 노트에 적어 놓았다.
코드의 세포 자동자가 살았던 배양기와 마찬가지로, 랭턴이 창조한 우주에서도 하나의 셀이 8가지의 상태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랭턴은 코드의 유기체를 애플 컴퓨터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그 짐승이 자신의 목적에는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복잡성은 자기 재생산 구조가 동시에 범용 컴퓨터여야 한다는 코드의 요구(폰 노이만의 요구이기도 하다)에서 생겨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 요구는 이론적으로 그 밖의 모든 컴퓨터와 기계의 동작을 에뮬레이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랭턴은 범용 컴퓨터의 제작보다는 컴퓨터에 생명의 특성을 갖춘 창조라는 능력을 부여하는 쪽에 관심이 있었다. 후일 그는 이렇게 썼다. "그것은 모든 유기체가 그로부터 유래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최초의 자기 복제 분자들이 범용적인 제작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우리는 진정한 자기 재생산 능력을 가진 형상들 속에서 그러한 (원시적인) 구조를 배제하지 않을 것입니다."
랭턴은 오늘날 우리가 생물이라고 간주하는 것과 동일한 수단을 이용해서 스스로를 재생산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형상을 찾고 있었다. 폰 노이만과 코드는 오토마톤의 청사진을 두 가지 방식으로 이용해서 그러한 요구 조건을 충족시켰다. 첫째, 그들은 정보를 해석되어야 하는 명령으로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다루었다. 둘째, 그들은 정보를 복제되어 컴퓨터 내부의 레지스터(역주 : 중앙 기억 장치내의 임시 기억장소. 기억장치에서 읽은 값이나 쓸 값, 또는 중간 계산 결과를 임시로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에 저장되는 데이터베이스 속의 숫자들처럼 해석하지 않는 데이터로 다루었다. 컴퓨터 프로그램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문장이 적혀 있는 한 장의 종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처리와 해석의 첫 번째 방법은 단어를 읽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인 전사 轉寫는 복사기 위에 종이를 올려 놓고 사본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두 가지 방법의 생물학적 대응물은 생물학적 세포 속에서 발견된다— 매일의 동작속에서 특정한 유전적 데이터가 해석되어 특정 반응을 촉진시키기 위한 단백질이 형성된다. 그리고 다른 때에는, 특히 재생산 과정에서, 유전 데이터는 해석되지 않고 단지 복제될 뿐이다.
이러한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랭턴은 자신이 '루프 loop' 라고 부른 일련의 것들을 설계했다. 제로 상태, 또는 무활동의 세포들로 가득찬 바다속에 들어 있는 단일한 랭턴 루프는, 끝 부분에 짧은 꼬리를 가진 사각형을 닮아서 마치 알파벳 문자 Q 를 연상 시키는 모양이었다. 이 사각형 모양은 94개의 셀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가졌기 때문에 매우 중요했다. 따라서 루프의 한쪽 면의 구성을 지시하는 정보를 재사용함으로써 경제성을 높였다.
코드의 구성을 토대로 랭턴의 루프들은 세 가지 층을 가졌다. 그것은 마치 납작하게 찌그러뜨린 전선과 같았다. 가장 바깥 층인 절연 피복에는 상태-2 의 셀들이 열을 이뤄 배치되어 있었다. 이것들은 '표층 셀'들이었다. 이들은 '핵심 셀'(전선의 가운데에 들어 있는 구리선 같은)을 격리시키는 역할을 했다. 가운데 층에 들어 있는 핵심 셀들은 재생산에 필요한 데이터를 지시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셀들은 매세대마다 이웃하는 셀들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고, 실질적으로 핵심에서 이루어지는 유전적 흐름 안쪽으로 신호들을 전달한다.
랭턴은 다음 세대에서의 셀들의 행동을 지시하는 규칙표에 따라, 꼬리가 구성을 위한 부속 기관이 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상태를 배열하고자 했다. 꼬리는 만족할 만한 길이에 도달할 때까지 늘어난 다음 꺾어진다. 그 과정은 사각형이 될 때까지 반복된다. 새롭게 형성된 루프의 외형이 부모 루프를 닮게 되면, 핵심 층 속의 흐름이 — 이제 그 흐름은 마치 파이프 속을 지나는 액체처럼 표층 사이를 흐르게 된다 — 계속된다. 이 "액체"는 해석되지 않은 데이터를 갖고 있는 셀 상태일 것이다. 복제된 자식의 루프 속으로 정보가 완전히 전달되면, 두 개의 루프는 분리된다. 얼마 후, 그 신호들은 새롭게 생긴 셀의 핵심 층의 구성을 바꾸어 원래 루프("아담'루프)의 최초의 구성을 정확히 닮게 된다. 이제 두 개의 루프는 완전히 동일해진다.
이 과정이 다시 반복되기 시작하면, 마침내 판독되지 않은 데이터 — 실질적으로 후손을 재생산하기 위한 제조법 — 가 해석된다.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일어날 수 있는 우주를 창조하는 일은 쉬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모든 일들이 정확히 시간을 맞춰서 일어날 수 있도록 — 데이터가 흐르고, 코너에서 회전을 하고, 정확한 시간에 복원된 최초의 구성이 순서를 밟아 (a) 딸 루프가 그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신호들을 받고 (b) 분리되도록 해주는 — 여러 가지 상태의 셀들이 핵심 층에 적절하게 배열되어 있어야 한다. 비교적 간단한 이러한 구조 속에서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의아심을 품는 것은 당연하다.
크리스 랭턴의 자기-재생산 루프는 정지 상태의 바다 속에 위치한 Q 자 모양의 구성에서 시작한다. 세포 자동자 세계의 규칙들을(그 우주의 물리 법칙) 실행시키면, Q 의 꼬리는 확장되어 딸 루프를 형성하게 된다. 루프의 숫자는 8가지의 가능한 상태 중 하나를 나타낸다(비어 있는 공간은 정지 상태인 '상태 8'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상태 2' 가 표층의 상태이며, 마치 구리 전선을 감싼 절연 피복처럼 그 속으로 다양한 상태들이 지나가게 해준다는 점을 주목하라.
랭턴의 노트는 그러한 어려움을 잔뜩 수록해 놓고 있었다. 1979년 8월 후반에는 그는 코드의 오토마톤의 일부 모양새를 복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루프를 실행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성장은 하지만 스스로를 복제하지 못하고 재생산 과정의 종료 신호를 보내지 않는 루프를 만들 수 있었다. 마침내 그는 코드의 변이 기능들을 다시 작성해서 그 규칙과 우주를 변화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10월이 되자 코너를 회전시켰고, 새로운 탄생으로 이어지는 힘겨운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가장 힘든 고비는 모 母 루프와 딸 루프의 분리, 그리고 딸 루프에서 모 루프로 신호가 피드백되어 재생산 메커니즘을 다시 가동시키는 일이었다.
몇 개월 동안의 악전고투 끝에 10월 26일, 랭턴은 마침내 이렇게 썼다. "드디어 해냈다! 이제 루프는 스스로를 복제한다." 그런 다음 곧바로 제기된 문제는 딸 루프와 부모의 모습을 닮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을 위한 유전적 암호까지도 갖고 있는지였다. 폰 노이만도 진작에 깨달았듯이, 이 문제야 말로 자기 재생산의 핵심이었다. 독자적인 유기체의 발전을 보여주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인공 우주의 결정론적 법칙들을 운용하면서 랭턴은 이런 메모를 남겼다.
나는 지금 그것을 보고 있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것 같다. 작업(구성) 팔이 충분한 길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딸 루프는 완벽하게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작업 팔 문제는 해결되었다! 꼭 맞는 길이다! 딸 루프도 복제를 한다!! 드디어 해낸 것이다!
그렇다면 랭턴이 실제로 창조한 것은 무엇일까? 그가 만든 유기체는 우리에게 익숙한 생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것은 다양한 색깔의 내용물들이 정보의 상태를 나타내는 복잡한 루프일 뿐이다. 아무리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생물학자라도 물질이 아닌 정보로 구성된 유기체가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분명한 판단을 망설일 것이다. 그 유기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어느 구석에도 존재하지 않고, 극히 초보적인 물리학을 토대로 새롭게 탄생한 우주 속에 존재할 뿐이다. 비록 그 근원은 의심스럽지만, 랭턴은 자신이 만든 유기체의 재생산 활동이 실제 생물과 거의 유사하다고 확신했다.
루프의 재생산 과정에는 유전자형, 다시 말해서 유전 암호가 있고, 다음 세대로 복제되는 일련의 핵심 셀들이 간여한다. 그리고 새로운 유기체를 생성하는 일련의 부호화된 명령인 표현형表現型도 존재한다. 이러한 특성은 진화를 가능하게 하며, 유전자형내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가 보다 향상된 적응성을 갖는 표현형으로 나타날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유전자를 확산시킬 수 있는 능력은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 과정은 문자 그대로 실제 생물체와 동일하다. 그리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진화는 모의 실험이 아닌 실제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이 구체화된 것은 이후의 실험을 통해서였다. 당장의 과제는 루프들이 재생산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밝혀야 하는 것이었다. 랭턴은 재생산 과정에서 나타난 질서 속에서 매우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창발적인 구조였다.
루프의 생명주기가 작동을 시작할 때면, 발생기의 루프와 그 모母 루프는 군집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을 형성했다. 그 군집은 산호와 같은 해양 생물과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간다. 최초의 루프가 생명을 획득하면, 모 루프와 딸 루프는 모두 재생산을 개시한다. 모 루프는 북쪽을 향해 자식을 형성해 나가고, 딸 루프는 동쪽으로 제3의 세대를 형성해 나간다. 그러나 새로운 루프들이 창조되면, 그 중에서 오래된 일부 루프들은 후손들에 의해 둘러싸여 더 이상 자신의 꼬리를 바깥쪽으로 뻗어 다시 재생산을 계속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랭턴의 규칙은 문제의 루프의 핵심 셀들을 따라 전달되는 신호가 소거되면서 루프가 비어 있게 했다. 이셀들은 실용적인 목적은 없으며, 여러 가지 상태의 핵심 셀들을 갖고 있는 살아 있는 루프들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재생산 과정이 계속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숫자의 죽은 루프들이 중심에 남아 있게 된다. 반면 살아 있는 집단은 바깥 쪽 층에서 새로운 세대를 끊임없이 탄생시킨다. 따라서 실제 산호초와 거의 비슷한 모습이다.
그것은 세포 자동자의 모의 실험 법칙들로부터 요구 받지 않은 창발적으로 나타난 생물체의 행동이었다.
랭턴에게 이 실험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입증해 주는 것이었다. '생물계의 힘을 기계속에서 재생산할 수 있다. 문화 현상을 인간의 경험 바깥으로 적용시킨다. 언어처럼 규칙에 토대를 둔 구조들은 자기 재생산이 가능한 존재와 우주 전체에 대해 핵심적인 중요성을 가질 수 있다.' 그가 이러한 사실을 설명하려 했을 때, 사람들은 마치 미치광이나 괴짜를 보는 듯 그를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이후, 랭턴은 잘못된 것은 그들이고 앞으로는 더 이상 자신을 의심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차렸다.
후일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재생산하는 루프들은 내게 모든 것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드디어 퍼즐 조각들이 모두 제자리에 맞추어진 것입니다."
랭턴은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규정했다. 그 임무는 자신의 발견을 널리 전파하는 일이었다. 그에 수반되는 어려움은, 자기 재생산 루프의 중요성을 그의 지도 교수와 아리조나에 있는 동료들에게 설명하려는 노력속에서 금방 현실로 나타났다. 그는 애써 설명하려 했지만 반응은 철저한 무관심이었다. 그는 이런 식으로 그들에게 말하곤 했다. "이봐, 내가 우주를 만들어 냈어!" 그리고 그속에서 자기 재생산 능력을 가진 무언가를 만들었어!" 그러나 아무도 그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고, 그가 맡았던 향기를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이건 그냥 컴퓨터 게임이잖아. 맞지?"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랭턴은 아리조나에서 자신의 대학원 연구(이 때 그는 학부 과정을 마친 후였다)를 후원해 줄 사람을 찾았지만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 랭턴이 발견한 유일한 후원자는 문화인류학 교수였다. 그러나 그도 랭턴이 컴퓨터 과학과의 지원을 얻어내지 못하면 도움을 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랭턴은 자신을 바라보는 공허한 시선이외에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다. 생물학 교수의 관심을 끌려는 시도는 훨씬 냉담한 반응을 불러일으켰을 뿐이었다.
실제로 랭턴이 마음먹고 있던 교과 과정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은 미국 전체에 한 곳뿐이었다. 그곳은 버크스가 이끄는 미시건 대학의 컴퓨터 논리 그룹 [Logic of Computer Group] 이었다. 그러나 미시건의 프로그램조차도 유동적이었다. 몇 년간 외로운 투쟁을 계속했지만, 이 그룹은 미시건의 엔지니어링 학회에 흡수되어 가는 과정에 있었다. 그 학회는 데이터 구조나 컴파일러 이론과 같은 보다 실용적인 컴퓨터 작업에 주안점을 두었다. 컴퓨터 논리 그룹의 일부 설비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룹의 고유한 연구 과정은 '실용적인' 컴퓨터 과학을 가르치라는 압력 하에 사라져 가고 있었다. 랭턴은 자연계의 프로그램 작업에 받아들여진 마지막 학생중 한 명이었다. 그는 1982년에 미시건에 도착했다. 33살의 나이로 대학원 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다시 그는 연구 그룹의 마지막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로부터 9년 후, 랭턴은 인공 생명이라는 새로운 과학 분야를 부화시켰다.
날로 쇠퇴해 가는 컴퓨터 논리 그룹이 끊임없이 자극제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랭턴은 공학과의 쿠데타를 역으로 이용해 자신의 이익으로 삼았다. 또 다른 이점은 그 그룹이 최근에 포기한 도서실을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곳에는 자기 조직과 컴퓨터를 이용한 유전학을 주제로 한 다양한 문헌들이 들어 있었다. 동시에 그는 아직 남아 있는 교수들과 핵심 대학원생들로부터 조언과 함께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고, 그 역의 과정도 성립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랭턴은 버크스의 조교였다. 그리고 존 홀랜드와도 함께 일했다. 그리고 존 홀랜드와도 함께 일했다. 그의 열정은 아직도 세포 자동자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그가 버크스가 지도하는 학부 학생들에게 세포 자동자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려 하자 그들이 가로막고 나섰다. 그렇게 해서 얻을 것이 무엇인가?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세포 자동자가 직장을 구해 주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렇지만 랭턴은 계속 밀고 나갔다. 그는 자기 재생산 루프에 대한 논문을 출간했다. 거기에는 로스앨러모스에서 열렸던 세포 자동자를 주제로 한 워크숍의 회의록도 수록되어 있었다. 그 주제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집성인 셈이었다. 그는 아폴로 워크스테이션 컴퓨터에 예술적인 수준의 세포 자동자 프로그램을 구축했다.
그가 만든 창조물 중에는 '밴트 vant', 즉 '가상 개미 [virtual ant]' 라는 이름의 모의 실험이 있다. 가상 개미의 규칙은 매우 간단하다. 가상 개미 자체는 꼭지점 방향으로 움직이는 V자 형의 구성을 갖는다. 선두의 셀이 가상 격자 상의 비어 있는 칸으로 이동하면, 가상 개미는 그 방향으로 계속 이동한다. 칸이 청색이면, 가상 개미는 오른쪽으로 돌고 셀의 색깔은 노란색으로 바뀐다. 칸이 노란색이면 가상 개미는 왼쪽으로 돌고, 칸의 색깔을 청색으로 바꾼다. 따라서 가상 개미는 이동하면서 뒤쪽으로 흔적을 남기게 된다.
격자 위에 한 마리 이상의 개미가 있을 경우, 그 결과는 사회성을 갖는 곤충들의 행동과 놀라울 만큼 흡사하다. 자연계에서 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예는, 특정한 개미들이 먹이 수집을 위해 페로몬으로 이루어진 냄새 자국을 만드는 것이다. 컬러 모니터네서 가상 개미들이 처음의 산만한 방황을 거쳐 서로를 찾아가고, 이윽고 나선의 궤적을 그려 나가는 모습을 지켜 보면 저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이다.
물론 랭턴은 밴트 모의 실험의 단순한 법칙들이 이처럼 눈에 띄는 행동 형태를 나타내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길을 따라가는 개미들의 행동이 동종 同種이라는 근거에서 유래한 것일까?(랭턴은 프리고진의 자기 조직 이론을 사회성 동물 군집의 세포 자동자 프로그램에 적용하고 그 행동을 실제 동물의 행동과 비교했던 브뤼셀 그룹의 실험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다.) 개미들이 배회하는 패턴을 미리 예측하기 위해 실제의 개미들을 관찰하고 곤충학 서적을 읽었을 때, 랭턴은 실제로 개미가 일종의 세포 자동자와 비슷한 프로그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특히 그는 허버트 시몬의 「인공의 과학[The Sciences of the Artificial]」이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하나의 행동계로 관찰했을 때, 개미는 무척이나 단순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드러지게 증가하는 행동의 복잡성은 대부분 개미 주변 환경의 복잡성의 반영에 불과하다.
랭턴이 개미 벌에게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을 때, 그는 이말이 협동하는 개미 군집에 적용하는 극히 억제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 낸 가상 개미에게서도 같은 특성을 발견했다. 물론 훨씬 단순했지만, 가상 개미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협동 행동을 보여 주었다. 그는 실제 개미의 행동이 자신의 가상 개미와 동일한 규칙에 따르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위대한 곤충학자인 E.O. 윌슨의 흰개미의 행동에 대한 글을 읽고 크게 고무되었다. 하버드 대학 교수인 윌슨은 이렇게 썼다. "(흰개미는) 컴퓨터 과학자들이 동역학적 프로그래밍이라 부르는 방법으로 놀랄 만큼 훌륭한 묘기를 부린다. 작업의 매단계가 완성될 때마다 그 결과가 평가된다. 그리고 다음 단계의(몇 가지 선택 가능한 단계들 중에서) 정확한 프로그램이 선택되고 실행에 옮겨진다. 따라서 어떤 개미도 손에 청사진을 들고 감독자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
랭턴은 이 구절을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면서 "따라서 어떤 개미도 손에 청사진을 들고 감독자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는 부분을 강조했다. 그것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세포 자동자와 자연 사이의 연결을 암시한 강력한 주장이었다. 랭턴은 '모든' 종류의 유기체 행동의 핵심을 발견하고, 궁극적으로 그 행동을 창조해 내기 위해서는 하나의 모델로서 세포 자동자라는 접근 방식을 이용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의 본질은 '밑에서 위로'였다. 그 말은 인공 생명에 관한 랭턴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 개념은 파문을 일으키는 작은 행동들이 다른 작은 행동들과 함께 작용해 집단적인 힘을 일으키고, 그 결과 반복적으로 작용이 반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식 가능한 전체적인 행동이 나타나게 된다. 윌슨이 관찰했듯이, 거기에는 청사진을 들고 교통 정리를 하는 중심적인 지능따위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랭턴에게 이것은, 여러 가지 변수들이 결합되어 복잡계를 형성했을 때 나타나는 복잡한 현상을 이용하는, 자연의 탁월한 방식으로 인식되었다.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 과정이라는 시행 착오를 통해 유용한 무엇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들 의식을 갖지 않는 작은 물질들은 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도가 아니었다. 랭턴은 그들이 문자 그대로 서로 협력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것은 가장 근본적인 물리 법칙들 중의 하나일 자연의 교묘한 기술입니다. 즉, 자연이 움직이는 방식 그 자체입니다. 원자와 분자를 형성하는 방식이지요. 시간과 장소 속에 구체화된 자기 지점을 가진 협력적인 구조, 협력적인 구조의 형성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협력적 구조가 탄생하지만, 이윽고 그 구조들이 상호 연과성을 가지면서 협력의-협력의-협력적 구조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생물계에서 '밑에서 위로'라는 방식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유기 분자의 형성에서 박테리아의 형성, 다세포 유기체의 탄생, 연체 동물, 양치류 식물, 개구리, 나무, 비버, 장미, 꼬리 없는 원숭이(유인원), 파리지옥풀, 그리고 인간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생명이 진화해 온 방식이었다. 이들 복잡한 생물들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 역시 '밑에서 위로'라는 상향식 방법에 의해 이루어진다.
한 유기체 속에서 개별 세포들은, 일련의 법칙들에 의해 미리 결정된 패턴에 따라 화학 물질들을 방출시키는 사적 私的 의식을 수행한다. 만약 유기체를 둘러싼 환경이 조건 A 라면, 그에 대응해 반응 B가 이루어진다. 그 점에서 볼 때, 세포란 세포 자동자와 유사한 우주속에서 움직이는 유한 상태 기계 이상 그 무엇도 아니다. 이런 작은 행동을 통해 큰 상 像이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기관 器官, 중앙 신경계, 유기체 전체, 그리고 사회이다.
'밑에서 위로'가 자연 속에서 가장 지배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랭턴이 이 접근 방식이야말로 컴퓨터를 이용해서 생명과 유사한 과정들을 일으킬 수 있는 정확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은 분명하다. 후일 그는 컴퓨터에 기반을 둔 인공 생명 모델의 본질적인 특성들을 규정하려는 자신의 시도에서, 이러한 접근 방식의 각 요소들을 구체화시켰다. 그러한 모델들은 단순한 프로그램이나 설계 규격의 집합으로 이루어진다. 다른 프로그램들을 총괄 지휘하는 단일한 프로그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개별 프로그램들이 국부적인 상황에 대해 반응을 일으키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지시할 뿐이다. 전체적인 행동을 지시하는 법칙도 없다. 따라서 개별 프로그램보다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동은 창발적 [emergent] 이다.
창발적인 행동은 밑에서 위로의 접근 방식에 수반되는 일종의 보상인 셈이다. 랭턴에게 있어서는, 인공 생명 실험의 성공 여부는 창발성이라는 특성을 드러낼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었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미리 프로그램되지 않은 어떤 행동이 일어나야만 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역설이 숨어 있었다. 랭턴은 자신의 철학에서 모든 형태의 생기론 生起論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그는 창발성이라는 개념을 일종의 '생의 약동', 또는 그 자체로 간주했다. 환원주의는 아니었다. 전체는 그 부분의 합 이상의 무엇이었다. 가령 누군가가 밑에서 위로의 상향식 방법론에 따라 생물체를 창조하거나 생물학적 과정을 모델화하는 경우, 비유기적인 부분들이 함께 작용해 생명의 혼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무엇, 또는 실제 살아 있는 생명체를 형성하게 된다.
크리스토퍼 랭턴이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로 세포 자동자와 인공 생명을 선택하고 싶어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주제에 대해 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 그 무렵에는 컴퓨터 과학과의 주된 관심이 바뀌어서, 생물학에서 착상을 얻은 컴퓨터 논리 그룹의 연구와는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랭턴은 자신의 관심과 미시건 대학의 전통적인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절충점을 찾아야 했다. 곧 밝혀지게 되었지만, 그가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주제는 인공 생명 연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미시건에서 보낸 첫해에, 랭턴은 4가지 세포 자동자의 범주에 대한 분류 체계를 고안한 울프람의 논문을 읽었다. 랭턴은 그 논문을 읽고 무척 놀랐다. 그것은 울프람이 사용한 방법론이나 결론 때문이 아니라 지금까지 아무도 그처럼 명백한 프로젝트를 시도한 적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업 일지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의 스티븐 울프람의 논문을 읽은 후 — 1년 이상 이 선형 배열을 갖고 허송세월하면서, 논문으로 출간할 만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에 놀랐다. 나는 이 연구가 이미 30년 전부터 진행되어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아니다!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의 울프람은 1차원 2-상태 배열을 주제로 학문적인 논문을 발간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은 도대체 무얼 한 것인가?
랭턴은 수많은 세포 자동자 우주에 대한 실험에 — 모호한 수학적 실험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의 기질에 대한 날카로운 해석에 — 폭넓은 관심이 형성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관심을 끈 것은 특정 규칙들의 집합에 의해 야기되는 행동의 범위였다. 어떤 행동이 흥미 없는 우주를 — 단일한 체제 속에 얼어 붙어 있고 고정된 패턴으로 영원히 반복되는 동일한 셀들의 평면을 — 낳을 것인가? 어떤 행동이 흥미로운 결과를 — 스튜를 휘젓듯이 복잡한 행동, 변화하는 패턴, 글라이더의 방출 등을 — 낳을 것인가? 그리고 무엇이 범용 컴퓨팅, 그리고 함축적인 의미에서 생명을 뒷받침할 수 있는가?
수천 가지나 되는 세포 자동자에 대한 고찰을 통해, 랭턴은 울프람의 분류 체계를 넘어 곧바로 과거에는 그 골격조차 가늠할 수 없었던 새로운 문제로 직행했다. 그 문제는 '어떤 종류의 우주가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가'였다. 자연계에서의 생명의 다양성이 그보다 훨씬 방대한 생명의 향기들 중의 한 가능성에 불과하다는 믿음 덕분에, 랭턴은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만약 다른 종류의 생물이 존재한다면, 이전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생명 자체의 특성을 밝혀 내기 위해 다른 생물들을 조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태로는,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집합에 대한 탐구가 가능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의 구체적인 특성과 있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생명의 보편적 특성을 구분하는 일은 — 설령 무익하지는 않더라도 — 매우 힘들다.
랭턴은 모든 생물의 보편적인 특성을 분리시키려고 시도했다. 그는 세포 자동자의 우주에 초점을 맞추어, 오토마톤들이 정보를 전파시킬 수 있는 한도를 측정하기 위해 수천 가지 실험을 계속했다. 정보를 다음 세대에 전파시키는 능력이 중요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랭턴의 관점에서 정보의 전달과 유지는 생물체가 갖는 가장 본질적인 특성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생물들이 정보 처리라는 실체의 물리적인 구현임은 분명하다. 생물체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물질 대사나 에너지 대사가 아닌 정보 처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생물체는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먹이를 찾고, 내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정보를 사용한다…… 구조 자체가 정보인 것이다. 생물체 내부에서는 실제로 정보 처리를 통해 제어가 이루어지고 에너지 조작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정보 영역까지를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우주는 에너지의 움직임을 지시하는 법칙들에 의해 지배된다 — 특히 열역학 제2법칙과 같은. 생물은 그 법칙에 대해 과감한 저항을 한다는 면에서 두드러진 특성을 가진다 — 다시 말하자면, 질서도가 증가하는 영역을 유지시키는 능력이 있으며, 비록 제한적인 공간이지만 최소한 그 영역에서는 열역학 제 2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랭탄은 이처럼 뚜렷한 모순이 존재할 수 있는 정량화 定量化될 수 있는 체제가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이에 따라 그는 자신이 '마디 [knob]' 라고 부른 것을 창안했다. 그것은 그 계의 역학을 조절할 수 있는 수학적 조절 기구인 셈이었다. 또한 그러한 행동의 역학을 이해하고 관찰할 수 있는 보다 나은 수단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마디에 '람다 [λ] 변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랭턴은 세포 자동자 우주의 규칙표를 시험하려 할 때, 이 마디를 정보가 자유롭게 움직이고 유지될 수 있는 정도를 변화시키는 데 사용했다. 주어진 계의 'λ' 수치는 — 그 범위는 0 에서 1 까지이다 — 그 정도에 상응해 결정된다.
λ 의 값이 낮아 0 에 가까울 경우는 정보가 움직이지 않는 체제를 의미한다. 그러한 체제는 전 시간대에 걸쳐 쉽게 유지될 수 있지만, 움직이지는 못한다. 이러한 상태를 그림으로 묘사한다면 얼음 덩어리와 같은 고체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얼음 분자는 시간이 경과해도 그 상태와 위치를 유지한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가 등장할 수는 없다. 그런 환경 하에서는 생명이 번성할 수 없다. λ 의 값이 매우 높아 1 에 근접하는 경우에는, 정보의 움직임이 매우 빠르고 카오스적이어서 유지하기가 어렵다. 이 상황의 정보는 기체나 액체 상태의 분자로 상상할 수 없다. 이러한 환경하에서도 생명이 유지될 수 없다.
반면 정보가 변하기는 하지만 그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지는 않아서, 이전에 가졌던 관계 모두를 상실하지는 않는 특정 영역도 존재한다. 이 경우는 액체 상태와 유사하다. 랭턴은 가장 매력적인 사건들, 즉 생물의 특징인 일종의 복잡성을 발생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액체 상태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가 구동시킨 세포 자동자에서 그 규칙 집합들이 낮은 λ 값을 갖는 세포 자동자들은, 일반적으로 울프람이 부류 1 과 2 라고 부른 것에 속했다. 이러한 형상들은 이내 지루하고 고정적인 패턴으로 해체된다. 반면 높은 수치를 갖는 세포 자동자들은 울프람의 부류3 에 해당한다. 그것은 카오스적인 상태로 빠지고 만다. 울프람이 부류4 로 분휴한 가장 흥미로운 세포 자동자들은 중간 λ 값의 범위에서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글라이더 건과 같은 다산성 多産性 행동을 낳는다. 이것들은 라이프 게임가 같은 범용 컴퓨팅을 지원하며, λ 의 값은 0.273 이었다. 생물에서처럼 복잡성이 최고에 이르고 엔트로피가 최적화되는 체제는 바로 이 경우이다.
랭턴은 범용 컴퓨팅이 가능하게 되는 지점이, 그의 도표 상에서 특별히 관심 있는 위체에 놓이게 되는 때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λ 의 값이 임계치에 도달하면 상 전이 相轉移가 일어난다. 즉,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갑작스러운 전환이 일어난다는 뜻이다(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상 전이의 예로는 고체가 액체로, 또는 액체가 기체로 바뀌는 현상을 들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위치가 생물을 포함하는 복잡계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폰 노이만이 복잡성과 생물에 대한 언급한 말을 상기했다. "거기에는 복잡성이라는 결정적인 특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이하가 되면 합성 [synthesis] 과정이 퇴행하고, 그 이상이 되어도 과도한 합성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임계치가 존재한다……"
(a) 세포 자동자와 같은 동적 복잡계 속에서 나타나는 정보의 움직임에 대한 랭턴의 견해. 왼쪽은 정보가 고정되어 있는 체제이다. 그 곳에서는 아무것도 살 수 없다. 왼쪽에서 두 번째는 결정 結晶의 성장처럼 비교적 유연한 체제이다. 그러나 정보의 제한된 움직임 때문에 여기에서도 생물이 탄생할 수 없다. 맨 오른쪽은 정보가 지나치게 자유롭게 움직이기 때문에, 그 구조가 유지될 수 없다. 이 체제는 카오스적이어서 역시 생명이 탄생하기에 부적절하다. 가운데에 있는 '노른자 부위'에서만 정보가 메시지 구조를 유지하고 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곳에서 생명이 탄생할 수 있다.
(b) 랭턴의 '노른자 부위'는 도표로 표시할 수 있다. 수직축은 복잡성의 정도를 나타내며, 수평축은 λ 의 값을 표시한다. λ 는 정보의 운동과 유지 정도를 0 에서 1 까지의 값으로 나타낸다. 이 전형적인 동역학적 계에서 λ 의 값은 그 계가 복잡성에 도달하는 위치에서 급격하게 증가한다. 이것은 상 전이를 나타낸다. 생명은 이 전이의 경계에서 탄생할 수 있다.
또한 비교를 위해 울프람의 세포 자동자의 네 가지 유형의 해당 위치를 표시해 놓았다. 유형1 은 안정된 형태를 유지하고, 유형2 는 주기적이며, 유형3 은 카오스적이다. 그러나 유형4는 풍부한 복잡성을 갖고 있다. 이 유형에서는 보편적인 컴퓨팅이 가능하고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 엔트로피의 법칙을 거역할 수 있는 정도의 적당한 복잡성 —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상태인 것이다. 절벽의 왼쪽은 충분한 정보가 이동할 수 없는 불모의 상태이고, 오른쪽은 정보가 제어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여 결국 카오스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혼란스러운 상태가 펼쳐져 있다.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곧장 빠져들어 가면 생명은 정보 처리 능력이라는 점에서는 유리해지지만, 필요한 정보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정지 상태로부터 지나치게 멀어져서도 안된다. 정보 해석이 가능하려면 어느 정도의 질서가 수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랭턴은 이러한 현상을 정량화할 수 있었다. 그는 생물이 '카오스의 가장자리'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인공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사막과 폭풍 사이에 위치하는 상 전이의 가장자리에서 적절한 복잡성의 정도를 유지해야 한다.
랭턴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굳게 믿었다.
1985년, 케임브리지에서 크리스토퍼 랭턴을 만난 도인 파머가 자신이 모든 연구 경력을 쏟아 부었던 영역에 '인공 생명'이라는 개념이 적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는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로스앨러모스에 있는 CNLS 의 상사에게 대학원 과정 학생을 고용해 달라고 종용했다. 논문 심사에 별로 자신이 없던 랭턴에게는 무척 다행스럽게도, CNLS 에는 아직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과학자들을 받아들이는 전통이 있었다. 그 방식이 효력을 발휘한 가장 최근의 예가 파이겐 바움이었다. 원래 그의 성적은 그다지 신통치 못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카오스의 모차르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필경 최근의 성과를 떠올렸을 CNLS 의 책임자 데이비드 캠벨은, 박사 학위 취득 후 연구를 막 시작한 후보자들의 성적표는 한 쪽으로 밀어 두고 파머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떤 친구가 가장 괜찮은 것 같아?"
결국 랭턴이 선택되었다. 당시 랭턴은 자신의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났지만 아직 박사 학위 논문을 끝내지도 못한 상태였다(그 후 랭턴은 4년이 지나서도 논문을 끝내지도 못해 새로운 고용주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랭턴은 처음으로 인공 생명을 창조한다는 자신의 생각이 용인되는 수준이 아니라 적극 지지받는 분위기를 찾게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인공 생명에 대한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판단되는 다른 사람들을 조직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랭턴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이미 출간된 논문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피지카 D [Physica D]」, 「이론 생물학 저널 [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 「복잡계 저널 [Complex Systems Journal]」 등과 같은 믿을 만한 잡지에 실린 논문은 없었다. 랭턴은 한 잡지에 쓴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류의 사람들 중 80 퍼센트는 해당 분야에서 이루어진 연구 성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랭턴은 이렇게 회상했다. "그들은 이제 막 연구를 시작한 단계였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연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같은 경향의 사고를 갖는 사람들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알지 못하는 상태였지요. 그렇지만 어쨌든 그 분야는 분명 존재했습니다."
랭턴은 그런 사정을 분명히 파악했다. 그는 그들을 모아 경험을 공유하고, 실험을 공동으로 조직하고, 이론을 함께 설명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그 분야의 경계를 규정지을 생각을 했다. 그 계획은 '생물체의 모의 실험과 합성에 관한 협동 워크숍 [Interdisciplinary Workshop on the Synthesis and Simulation of Living Systems]', 즉 인공 생명을 주제로 한 최초의 회의를 조직하는 것이었다. 랭턴의 의도는 그물을 가능한 한 멀리 던져서, 정보와 생물학의 결합을 추구하고 있는, 아직 모호하지만 생각이 깊은 과학자들을 건져 올리는 것이었다. 랭턴은 이 흥미진진한 합성을 주제로 논문을 집필한 사람들의 이름을 추가할 계획이었다. 그 중에는 저명한 과학자들도 들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계획을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랭턴이 '인공 생명'을 SF 식으로 연구하려는 경향이 있고 초점이 결여되어 있으며, 그와 연관된 사람들의 이름을 조롱거리로 만들 위험성이 있다고 비난했다(그 회의에 참석한 한 과학자가 노벨상 수상자인 자신의 동료에게 회의 참석 여부를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자네라면 그 회의에 참석할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그곳에 갔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게"). 실제로 랭턴은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아무도 공식적인 회의 조직자로 자신의 이름을 올리려 들지 않았습니다. 내 이름은 그 회의의 성공 여부에 따라 수렁에 빠질 수도 있고 멋지게 헤엄칠 수도 있었지요."
회의는 1987년 9월에 로스앨러모스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 대한 소식은 대학 게시판, 컴퓨터 네트워크,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의 컴퓨터 레크리에이션 칼럼 난에 실린 짤막한 광고, 그리고 공식적인 회의 개최 발표 등을 통해서 전파되었다. 개최 선언은 랭턴의 신념이 들어 있는 과감한 선언이었다. 표현은 차분했지만, 그 속에 담긴 주장은 대담하고도 강력한 것이었다.
인공 생명은 자연계의 생물의 특징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인공적인 계를 다루는 연구이다. 그것은 지구 상에서 진화해 온 생물이라는 특정한 예에 한정되지 않고, 가능한 모든 형태의 생물을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여기에는 생물학적 화학적 실험, 컴퓨터 모의 실험, 그리고 순수한 이론적인 노력까지 포함된다. 분자적, 사회적, 진화적 규모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이 모두 연구 주제에 해당한다. 이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생물 유기체의 논리적 형태를 추출하는 것이다.
극소(마이크로) 전자 공학 기술과 유전공학은 곧 우리가 시험관내에서 뿐만 아니라 컴퓨터내에서도 새로운 생물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줄 것이다. 이 능력은 인류가 지금껏 받아 온 도전 중에서 가장 원대한 기술적, 이론적, 그리고 윤리적 도전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이제 생물체의 여러 가지 측면들을 모의 실험하고 합성하려는 시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모든 과학들을 한 자리에 모아야 할 때이다.
로스앨러모스의 9월은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가시고 상쾌하고 서늘한 산 바람이 불어오는 좋은 계절이었다. 1987년 9월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160명에 달하는 컴퓨터 과학자, 문화 인류학자, 이론 생물학자, 집단 유전학자, 생화학자, 동물 행동학자, 그리고 어디에도 분류할 수 없는 소수의 과학자들이 로스앨러모스 캠퍼스의 오펜하이머 연구 센터의 2층 강당에 모여, 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연구의 출범에 참여하게 된 것은 단지 계절 때문은 아니었다.
랭턴의 제안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5일간으로 예정된 회의 첫날인 1987년 9월 21일 월요일, 참가자들이 모두 모이자 회의장은 기대감으로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이 연구소의 부소장이 몇 마디의 간단한 환영사를 하자, 크리스토퍼 랭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은 꿈으로 가득 차 있는 듯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영웅들이었던 기라성 같은 과학자들도 포함되어 있는 청중들에게 신경이 쓰이는 듯, 조금 초조한 기색으로 인사말을 꺼냈다. 회의 참석자들 중에는 리처드 도킨스, 아리스티드 린덴마이어, 존 홀랜드, 그리고 리처드 레잉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금 무척 행복합니다." 첫 번째 스텐슬이 머리위의 투사기를 통해 비쳐지자 그의 목소리는 울먹이듯 떨렸다.
최초의 인공 생명 워크숍('A-Life 1'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은 매우 훌륭한 행사였다. 30회의 강연과 20회의 실연이 인공 생명에 대한 사고의 축이 어떤 것인지 구체화시켜 주었다. 그 중에는 세포 자동자가 낳은 유기체, 신[neo] 다윈주의적 진화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공적응 共適應 컴퓨터 생태계, 논리에 기초한 생명의 기원의 재현, 컴퓨터 바이러스와 유사한 유기체 사이의 경쟁, 실리콘이라는 온실속에서 성장하는 식물, 그리고 심지어는 창발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로봇 등 무수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랭턴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실연과 발표가 있을 때마다, 강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래! 바로 그거야!' 하는 본능적인 느낌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공식 행사 이외의 휴식시간, 점심과 저녁 식사, 그리고 한밤중에 달빛을 받으며 산책하면서 이루어지는 즉석 토론이 강연과 실연에서 받는 흥분을 휠씬 능가했다.
회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단체 정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마치 회의 참가자 전원이 공유할 아무런 근거도 없이 똑같은 꿈을 갖고 과학적 유배지에 흘러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랭턴은 이렇게 말했다.
이 영역에서 진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무척 많습니다. 그러나 그 연구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부업처럼 시간을 쪼개, 마치 취미활동이라도 하듯 연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보다 광범위하게 연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흩어져서 동일한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독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우리의 경험이 그토록 유사하고 우리의 절망감까지도 너무도 흡사했다는 사실은 그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로스앨러모스라는 활기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인공 생명이라는 분야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고조되었다. 인공 생명 워크숍은, 1956년에 오늘날 인공 지능 [AI] 이라고 알려진 비슷한 연구 계획을 컴퓨터 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이 최초로 부화시킨 전설적인 타트머스 회의에 비교되기도 했다. 그러한 비교가 가능한 이유는 인공 지능이 지능이듯, 인공 생명 역시 생명이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난 다음, 랭턴을 비룻한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그들의 연구가 가져올 수 있는 성과에 대해 의식적으로 무척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다. 그들은 인공 지능 분야의 선구자들이, 앞으로 10년 이내에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컴퓨터가 탄생할 것이라는 식의 섣부른 예언으로 곤욕을 치뤘던 일을 잘 알고 있었다. 그후 수십년이 지났지만 컴퓨터는 아직 1살짜리의 인식 수준도 흉내내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고 있다. 돌이켜 보면 많은 연구 업적들이 이루어지기는 했다(일례로 체스를 두는 컴퓨터는 얕잡아 볼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과장된 기대에 부응하기는 역부족 이었고, 결국 인공지능이라는 연구 계획 전체가 큰 명예 훼손을 당했다. 이 일을 알고 있는 랭턴과 인공 지능 연구 분야의 핵심 인물들은, 위험스러운 시간 약속으로 제 발목을 잡는 식의 잘못을 저지르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과학자들이 1세기 동안 진정한 생물을 창조하지 못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그렇지만 개중에는 소수 조심성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례로 한스 모라벡이라는 로봇 공학자는, 앞으로 50년 이내에 인조 인간과 흡사한 인공 생물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회의에 소개한 필름에서 정작 그가 만든 창조물은 방을 가로지르는데 무려 다섯시간이 걸렸다(좌충우돌을 서슴지 않는 모라벡은 후일 그의 예상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었다고 인정하면서도, 흔히 과학의 진보는 아주 멋진 예측을 헛소리라고 평가 절하하는 습성이 있다고 스스로를 변호했다. 한술 더 떠서 그는 '그렇다면 예측이란 재미있는 게임을 즐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워크숍에서 유일하게 긴장된 순간은 '인공 4-H 콘테스트'의 수상식뿐이었다. 이 상은 랭턴의 제안으로 시작되었고, 심사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수학 게임 난을 마틴 가드너에게서 인계받은 A. K (Kee) 듀드니가 맡았다. 100달러 상금은 아리스티드 린덴마이어와 프르제미슬라브 프루신키빅츠의 작품인 식물 컴퓨터 그래픽이 차지했다. 그 밖에 다른 모의 실험 작품들에도 상이 주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랭턴의 회상에 의하면, "자신들의 작품이 상을 받지 못한데 대해 심한 낭패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들이 살아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항변하기까지 했습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모든 시대에 걸쳐 끊이지 않았다. 워크숍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물음의 여러 가지 변형들이 계속 제기되었다. 인공 생명은 '살아 있음'의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무엇을 합성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전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 목표를 달성하는 도상에 놓여 있는 무수한 장애물들 중에서, 생명에 대한 정의만큼 힘든 일은 없을 것이다. 생명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생명을 창조할 수 있단 말인가? 설령 합성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생명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지능'이라는 문제에 대해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던 인공 지능 분야는 튜링 테스트라 불리는 임시 방편의 해결책을 마련했다. 앨런튜링에 의해 제안된 이 실험은, 커튼 뒤편에 앉아 있는 사람과 컴퓨터로 이루어진다. 커튼의 다른 쪽에 있는 식별력을 가진 면담자가 사람과 컴퓨터를 대상으로 직접 대화를 나눈다. 이 때 응답하는 컴퓨터와 사람을 면담자가 분간할 수 없으면 그 컴퓨터는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다. 그렇지만 인공 생명에도 튜링 테스트에 상응하는 것이 가능할까?
우연의 일치로 회의에 참석한 일부 과학자들은 드 바캉손의 오리 테스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만약 인공 생물체가 오리와 비슷하게 생겼고 오리와 똑같이 꽥꽥거리며 운다면, 오리로 분류되는 종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 바캉손 테스트는 일견 그럴듯해보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튜링 테스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분자 생물학자들은 농담 삼아 그 변형판을 제안했다. 우선 인공 생물체의 하나를 생물학자와 함께 방에 집어 넣는다. 그런데 생물학자가 방에서 나오면서 자신이 진짜 생물과 함께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합격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리고 당신이 만든 인공 유기체도 방에서 걸어나오면서 '그 생물학자는 분명 살아 있어.'라고 말한다면, 당신의 판단이 옳은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로스앨러모스에서 시작된 노력이, 궁극적으로는 창조자 자신의 생명에 대한 기준을 만족시키는 유기체로 귀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그 기준을 인정하느냐 안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인공 생명 연구자들을 보수적인 다른 동료들과 ― 그리고 일반 대중과 ― 구분시키는 가장 큰 특징은 그들이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을 기계로 간주한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 기계는 인간이 만든 기계보다는 횔씬 복잡하지만 말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기는 쉽지만, 자신의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상당한 신념의 비약이 요구된다. 자신의 가슴 밑바닥에 생기론적 찌꺼기나 그 밖의 신비주의의 낡은 인습이 여전히 잠복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비약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진 동물들이, 살아 있는 유기체를 기계의 부분 집합으로 간주할 수 있는 개념적인 유연성을 북돋울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전제로 육체라는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비약은 기계를 논리의 조직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논리가 단지 원료나 재료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여기에서 중요합니다. 만약 당신이 다른 매체 속에서 그 논리적 조직체를 획득할 수 있다면, 당신은 똑같은 기계를 얻는 셈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계를 구성하는 조직이지 그 기계가 무엇을 재료로 삼아 만들어졌느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반드시 거쳐야 할 비약은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그 비약은 작은 비약에 불과합니다." 그런 다음 랭턴은 장난스럽게 그 비약을 세계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사고 전환에 비유했다. 즉,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촉발된, 우주가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회전한다는 우주론적 사고 전환이 그것이다.
랭턴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떼어 놓는 첫발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단지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관점이 조금 변하는 정도이지요. 그렇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것입니다."
워크숍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랭턴의 견해에 동의했다. 생명의 재료는 실제의 구체적인 재료가 아니다. 생명이란 동역학적인 물리적 과정이며, 만약 당신이 그 과정을 복제할 수 있다면 이미 생명을 창조한 것이다. 따라서 생명의 창조는 그 재료와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컴퓨터 속에서 실현되었다.
회의가 끝난 후 몇 개월 동안, 랭턴은 회의의 의사록에 포함시키기 위해 제출된 논문을 검토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랭턴은 그 글들이 워크숍에서 연마된 연대와 결속을 단단히 굳히고 인공 생명이라는 연구 분야가 확고히 자리잡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 논문을 읽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던 무수한 대화들을 되새기면서, 설령 공식적인 선언이나 발표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 본회의에 그러한 계획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 참석자들 전체가 향후 무엇을 인공 생명이라 불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핵심에 도달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의사록의 서문을 작성하면서 랭턴은 그 사실을 분명히 밝히려고 애썼다.
가장 먼저 그는 생명이 "조직된 물질의 특성으로서가 아니라 물질의 조직이라는 특성 자체"로 정의된다고 말했다. 탄소에 토대를 둔 화학 이외의 다른 형태의 창조물을 배제시키고 생명을 규정한다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생명에 고유한 행동으로 진행되는 어떤 과정(자기 재생산, 신진 대사, 성장, 그리고 적응적 반응 등)이 충실히 실현될 수만 있다면 물리적인 육체도 필요치 않다. 랭턴과 그의 동료들은 궁극적인 관점의 전환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인공 생명의 성공이, 관습을 벗어난 신념을 입증시키기 위해 과학계를 으스대며 돌아다니는 실리콘 프랑켄슈타인이나 인조 동물의 제작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으로 긴 시간 척도 상의 어느 날 제작되어서 실제 생물로 인정될 그러한 기계들은, 인공 생명이라는 연구 분야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인공 생명 분야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생명과 유사한 행동의 파편들을 복제하는 일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 목적은 생물들의 보편적인 특성, 또는 구체적인 생물종 種의 특성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의 핵심은 단지 생물체의 기능을 모의 실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복제하는 것이었다.
랭턴이 가장 즐겨 거론했던 예는 컴퓨터 새, 즉 보이드를 만들기 위해 크레이그 레이놀즈가 사용했던 세포 자동자의 방법이었다. 보이드는 실제 새에 비하면 조악하고 불완전한 모형에 불과했지만, 이들이 무리 짓는 행동은 실제 새들의 행동을 모의 실험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 하나의 행동이 실제 새들의 행동처럼 유효하게 각각의 비트들에 의해 창발적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거위나 찌르레기의 무리 짓기와 마찬가지로 새들이 무리를 형성하는 보편적인 이유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경험적 데이터로 간주되어야 할 것입니다."
랭턴이 의사록에서 제기한 두 번째 주제는, 이 분야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그 주제는 랭턴이 가장 좋아하는 다음과 같은 구절 속에 잘 요약 되어있다. 즉 '밑에서-위로'이다. 로스앨러모스의 인공 생명 회의에 참석했던 과학자들은 인공 생명이 세포 자동자와 같은 형식으로 추구되어야 하며, 국부적인 상호작용의 결합을 통해 복잡한 전체적인 행동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데 동의했다.이들 상호작용은 병렬적으로 일어나며, 그 창발적인 패턴이 일관되고 인식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상호 작용의 세부적인 특성을 기계적으로 해석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신념 체계를 지탱하는 두 개의 축, 즉 '과정 [process] 으로서의 생명'과 '밑에서 위로'라는 방법론은 실험적 접근을 통한 결과 이상의 무엇이었다. 그것은 복잡계 이론, 생물학적 인습타파주의, 신다윈주의 진화론, 그리고 세계를 보다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 등을 토대로 구축된 하나의 세계관인 것이다. 또한 그것은 극히 간단히 규칙 구조에 따르는, 수십억 가지나 되는 상태를 갖는 기계들의 집합적인 결과를 통해 탄생한 무엇이기도 하다.
인공 생명이라는 혁명에 가담한 병사들은, 카오스 이론에서 유전학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에 달하는 독립적인 학문 분야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을 뿐 아니라, 자연의 본성 그 자체에 대해 독특한 관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그 독특한 특성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특성들이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논리적 기반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다시 말해서 그런 특성들은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상황 하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그 특성을 명확히 수립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전혀 알려지지 않는 한 명의 과학자가 이처럼 획기적인 연구를 시작할 가능성은, 어떤 사람의 채마밭에 검은색 난초가 피어날 확률보다 훨씬 높다. 크리스 랭턴은 자신이 거역할 수 없는 향기를 맡은 순간 이래, 그 가능성을 개인적 승리로서가 아니라 아직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궁극적으로 해독이 가능한 과정의 연장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그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이 나를 갖게 된지도 모릅니다. 인공 생명과 같은 다른 종류의 생명 형태가 존재합니다. 그들이 구체적인 존재로 태어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물들이 나를 재생산과 자기 성취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