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실리코
인공생명 : Steven Levy 지음, 김동광/과학세대 옮김, 사민서각, 1995 (원서 : Artificial Life : A Report from the Frontier Where Computers Meet Biology, Vintage, 1992), Page 17~32
만약 1 과 0 의 패턴이 인간의 삶과 죽음의 패턴과 '같다면', 그리고 개인에 관계된 모든 일이 1 과 0 이 기다란 숫자열로 된 컴퓨터 정보로 표현될 수 있다면, 삶과 죽음이라는 기다란 부호로 표현될 수 있는 생물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 토마스 핀천
그 생물들은 얼음을 지치는 스케이트처럼 우아하게 그들 세계의 표면을 스치듯 미끄러지며 조용하게 순항한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어떤 것은 동요의 변덕스러운 운율로, 그리고 어떤 것들은 확고한 목적을 가지기라도 한 듯 단호한 움직임을 보인다. 종이 비행기나 축제일에 뿌리는 색종이처럼 알록달록한 반점을 갖고 있는 그들의 몸체는 갖가지 요구를 드러내고 있다. 녹색은 배가 고프다. 푸른색은 제 짝을 찾는다. 붉은 것은 싸움을 원한다.
그들은 본다. 이른바 신경망이 그들에게 시각을 부여한 덕분에, 그들은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세계의 일부와 이웃의 색깔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내부 상태에 대해서도 무언가를 알고 있고, 피로를 느끼기도 한다. 그들은 배운다. 경험은 그들에게 무엇이 좀더 나은 상태인지, 그리고 긴급을 요하는 일이 무엇인지 가르친다.
그들은 재생산한다. 그들 중 둘은 짝짓기를 하고, 그들의 유전자가 하나로 합쳐져서 자손의 특성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한 세대를 경과하면서 자연 선택 (주석 : 자연 선택 - 어떤 생물에 생긴 유전적 변이 중에서 그 생물의 생존에 유리한 것이 살아남는 것. 이렇게 살아남은 개체는 그렇지 못한 개체에 비해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다. 따라서 유리한 유전자형은 종 전체로 확산된다. 이것은 다윈의 제안한 기본적인 역학 [메커니즘] 으로 진화를 일으키는 기본적인 원동력으로 생각된다. '자연 도태' 라고도 불리나 정확한 명칭은 '자연 선택 (natural selection)' 이다. 이 책의 주제인 인공 생명, 즉 인공적인 유기체에서도 자연 선택은 진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의 역학은 그 특성을 드러내고 적응력을 가진 생물들은 풍경 속을 배회한다.
그들은 죽는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의 몸이 사라지기 전에 동료들이 그 사체를 통째로 삼켜 버리기도 한다. 특정 영역, 특정한 시기에는 이러한 행동을 규범으로 삼는 식인 신앙이 발생하기도 한다. 사체는 많은 자양분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영역에서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찾아 낸 식량만큼 영양가가 높지는 않다.
이 생태계의 이름은 폴리월드 (PolyWorld) 이다. 그 생태계는 실리콘 그래픽스 이리스 워크스테이션 (Silicon Graphics Iris Workstation) 의 컴퓨터 칩과 디스크 드라이브에 위치하고 있다. 이 영토의 고독한 창조자는 래리 예거라는 이름의 연구자이다. 그는 애플 컴퓨터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생태계는 컴퓨터 안쪽의 세계이며, 그 세계의 거주자들은 수학의 산물이다. 그 생물들은 디지털 DNA 를 갖고 있다. 이 생물들 중 일부는 다른 것들보다 적합하기 때문에 재생산을 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폴리월드의 사소한 실수를 성공적으로 이용하는 여러 종류의 유기체로 이어지는 길을 개척하게 된다.
"종들은 자신의 독특한 행동과 집단 역학을 가집니다." 라고 예거는 말한다. 어떤 집단은 정신 이상 직전의 상태에 처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 그들은 강박 관념에라도 사로잡힌 듯 놀라울 만치 빠른 속도로 풍경 속을 내달리고 끊임없이 먹이와 섹스를 갈구하며 에너지를 소비해 대는 '열광주의자들' 이다. 그리고 '식인 신앙' 이 존재하는 집단도 있다. 그 집단의 구성원들은 짝을 짓고, 싸우고, 먹어 치울 그들 자신을 찾아 다닌다. 그들은 기괴한 군집을 형성하고,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굳이 군집 밖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
'에지 러너' 라는 종도 있다. 그 풍경의 특성 때문에 - 우리의 구형 행성과 달리, 폴리월드는 그 세계의 끝이 분명하게 존재하도록 프로그램될 수 있다 - 그것은 망각의 가장자리에 숨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일단 상당한 숫자의 동료 생물들의 이러한 행동 양식을 채택하게 되면, 낡은 시체가 음식으로 바뀔 뿐만 아니라 쌍을 이룰 수 있는 상대가 항상적으로 풍부하게 확보되는 셈이다.
예거는 자신의 생각을 털어 놓는 데 신중한 편이었다. 그는 자신이 실제로 한 일과 짧은 시간내에 실현될 수 있는 일만을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폴리월드가 보여 준 사실은, 생물학적인 자극을 포함하는 조금 복잡한 환경 속에서 유기체가 스스로, 이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 전략을 발전시켰다는 사실입니다." 생물 자체에 대한 화제로 들어가자 예거는 조금 망설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들을 인공 생명으로 봅니다."
1987 년 9 월, 인공 생명이라는 새로운 과학의 문을 열기 위해 100 명이 넘는 과학자와 전문가들이 뉴멕시코 주에 있는 로스앨러모스 (Los Alamos) 에 모였다.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이 모임은 과학 기술이 도달한 분기점을 축하했다. 디지털 컴퓨터의 지수 함수처럼 확장되는 가공할 힘 덕택에 가능해진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대한 깊은 이해는, 인류를 자연의 걸작, 즉 살아 있는 계 (system) (주석 : 물리, 화학적으로 일정한 상호 작용과 관계를 가진 집합체. 따라서 모든 계는 나름대로의 질서와 복잡성, 그렇게 되기까지의 역사를 갖는다. 자연계의 생물체는 계의 가장 좋은 보기이며, 인공적인 생물체 역시 그러하다. 그 외에도 사회나 경제도 계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를 복제할 수 있는 문턱에까지 이끌어 놓았다. 이 개척자들 중에는 미래의 전망으로 한껏 감격해 있는 사람들과,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에 대한 과거의 경험으로 겸허한 입장을 취하는 두 부류가 있었다. 바로 그 회의 석상에서, 부화한 성과가 품고 있는 어두운 가능성과 『프랑켄슈타인』(주석 : 영국의 여류작가 메리 셸리의 1818 년의 소설. 물리학자 프랑켄슈타인은 사체를 초인적인 힘을 갖는 괴물로 만들지만, 괴물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결국 자신도 괴물에게 살해된다.) 을 저술한 메리 셰리와 그의 괴물이 남긴 유산은, 회의의 한 참석자가 표현했듯이, 마치 요괴처럼 계속 회의장을 맴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활발했고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로스앨러모스 인공 생명 회의에 참석한 많은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새로운 형태의 생물을 창조하기 위한 집단적인 노력을 꿈꿔 왔다. 그들은 개별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면서 바로 그 날을 고대해 왔다. 그리고 이제 기회가 온 것이다.
이 순간의 중요성은, 후일 이 새로운 과학이 함축하고 있는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를 공동 집필한 제임스 도인 파머라는 물리학자에 의해 정리되었다. 그의 보고서를 일부 발췌한 것만으로도, 원자 폭탄 개발 이후 그 연구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발생기의 첨단 과학 기술에 대한 묘사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의 보고서를 읽는 사람들은 우선 심호흡을 한번 하나는 충고를 받을 만하다 - 그리고 다시 숨을 가다듬기 전에 모든 불신의 의혹을 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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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년에서 100 년 이내에 전혀 새로운 종류의 유기체가 출현할 것으로 보인다. 이 유기체는 인간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의미에서 인공적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원래 형태와는 다른 형태로 진화해 가고 또한 재생산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합리적으로 정의한다면 그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든 '살아 있게' 될 것이다 ……인공 생명의 출현은 인류의 탄생 이래 가장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 |
인공 생명 (a-life) 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생명체 같은 유기체와 계를 연구하고 창조하는 데 기여한다. 이 생명의 재료는 비유기 물질이며 그 본질은 정보다. 그리고 컴퓨터는 이 새로운 유기체를 구워 내는 가마인 셈이다. 의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시험관 속에서 생명의 메커니즘을 주물러 왔듯이 생물학자들과 컴퓨터 과학자들은 '컴퓨터 속에서 (insilico)' 생명의 창조를 희구해 왔다.
그 인공물이 실제 생물과 흡사하면 할수록 이 '실험적인' 생물은 더욱 다양해진다. 많은 실험자들은 그들의 실험실 속에서 이루어진 창조가 생명의 제반 양상에 대한 모의 실험 (simulation) 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거리낌없이 인정한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의 '약한 (weak)' 인공 생명에 대한 목적은 이 세상에 - 어쩌면 다른 곳에도 - 존재하는 생명을 보다 분명히 이해하고 그 본질을 밝히는 것이다.
천문학자인 A. S. 에딩턴은 이렇게 말했다. "실제보다 폭넓은 영역의 자연 과학에 대한 고찰이야말로 현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생명과는 다른 종류의 생명을 모의 실험함으로써, 인공 생명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아직껏 우리 우주에서 획득된 적이 없던 새로운 생명 형태를 탐구하고, 생명 자체의 개념과 한계를 보다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때로 과학자들은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행동이 모의 실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획득되기를 기대하면서, 생명계의 특성에 해당하는 과정 (process) 들을 직접 모델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생물학자들은 이 인공 계를 궁극적인 실험용 동물로 간주하고 있다. 그것의 특성은 이미 알려진 유기체의 특징을 해명해 준다. 그 구성이 투명하기 때문에 쥐나 식물이나 대장균보다 쉽게 분석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물리학자는 생명의 합성이 그와 연고나된 탐구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는 희망으로 인공 생명을 탐구한다. 그들의 탐구 과제는 보편적인 힘에 지배받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모든 복잡한 비선형 계 (주석 : 비선형이란 선형 (비례 관계) 이 아닌 현상을 말한다. 비선형 계는 이러한 현상을 나타내는 계를 뜻한다. 따라서 결과가 반드시 원인에 비례하지 않거나, 출력이 입력에 비례하지 않는다. 가령 쥐의 번식률이 매년 2 배라 해도 '내년의 개체수 = 번식률 × 금년의 개체수' 라는 방정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다른 동물에 잡아 먹히거나 병에 걸리지 않는다 해도). 거기에는 먹이와 같은 다른 요소가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생물이나 사회의 진화 발전, 신체 기관의 기능 등은 모두 비선형 계에 해당한다. 따라서 비선형 계에서는 선형 계와는 달리 복잡한 행동이 나타나게 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카오스 이론 역시 비선형 과학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에 대한 이해이다. 인공 생명에서의 자기 조직과 같은 현상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곧 이러한 신비가 풀릴 가능성도 있다.
이 분야를 연구하는 가장 대담한 과학자들은 '강한 (strong)' 인공 생명에 관여하고 있다. 그들은 정보를 본질로 하는 실질적인 생물 유기체가 장기적으로 개발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생물들은 신체를 가진 형태로 - 그러니까 인공 생명 로봇처럼 - 구현되거나, 또는 컴퓨터 내부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파머가 주장했듯이, 이러한 창조물은 박테리아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 '살아있다' 라는 말의 어떤 정의에도 부합되도록" 계획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만으로도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펄쩍 뛸지 모른다. 어떻게 컴퓨터 안쪽에 존재하는 무엇이 살아 있는 생명으로 간주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인간에 의해 합성된 모든 인공물을 생명체로 분류할 수 있단 말인가? '생명' 이라는 말은 자연의 고유한 영역으로 엄격히 제한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생명에 대한 '합당한 정의' 를 내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란 매우 어렵다. 약 2,000 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을 가진다' 는 의미를 '번성하고 쇠락하는 무엇' 이라고 고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자기 재생산 능력이 생명의 불가결한 요소라는 사실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것 외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여러 가지로 갈라졌고 아직까지도 계속 그런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생명의 특징을 열거하는 길다른 목록을 고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항상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혹은 과도한 특징을 내세우는 오류를 범하곤 했다. 가령 폴리월드의 생물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실제 생물과 흡사하다 - 그들은 성장하고, 재생산하고, 적응하고, 그리고 진화한다. 그러나 그들의 창조자는 그들이 정말로 살아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일부 과학자들은, 생명에 대한 정의를 둘러싼 물음이 정작 중요한 핵심을 피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시도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생명을 연속체 (continuum) (주석 : 생명의 연속체 개념 - 이것은 생명과 무생명, 생물과 무생물로 칼로 가르듯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생명이란, 마치 빛의 스펙트럼처럼 무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연속적인 흐름의 어느 한 위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삼라만상은 그 스펙트럼 속에서 상대적인 위치를 가질 뿐이다. 따라서 생명과 무생명 사이에 구태여 인위적인 선을 그으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다음에 나오는 복잡성의 개념과 일맥상통하며, 기존의 생명관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로 평가해야 하며, 양자 택일식의 결정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생명의 연속체에서 바위는 분명 낮은 위치에 머물 것이고 개와 나무, 그리고 인간은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 이들보다 애매한 계들은 반생물이라는 중간 영역 -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생물이라고 인정하는 박테리아보다는 아래쪽이고 바위보다는 위쪽인 어느 영역 - 에 속하게 될 것이다. 일부 생물학자들은 생물체로 간주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인정하지 않는 바이러스들은 이 중간 영역이 가장 위쪽에 위치할 것이다. 그 야래쪽에는, 아무도 생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생명을 가진 유기체와 일치하는 행동을 보이는 복잡계 (complex system) (주석 : 복잡성이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상호 작용하는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복잡계란 비교적 단순한 구성 요소들이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 계라 할 수 있다. 수많은 분자로 구성되어 있는 세포, 그리고 무수한 세포로 이루어져 있는 사람의 신체, 무수한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회와 국가 모두가 복잡계이다. 인공물의 경우에도 수많은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는 자동차와 같은 경우가 좋은 보기이다. 더 시야를 넓히면 무수한 항성과 행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은하계, 그리고 우주 전체가 하나의 복잡계인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생명의 연속체 개념과 마찬가지로 복잡성 이론은 무질서 (혼돈) 와 질서를 무리하게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 생물체처럼 고도의 질서를 갖고 있는 복잡계도 무질서의 한 형태로 볼 수 있고, 역으로 혼돈 (카오스) 역시 질서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복잡계는 단순성을 기초로 하며 제각기 완전한 혼돈 (그런 것이 있다면) 과 완전한 질서 (역시 그런 것이 있다면) 사이의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복잡계에 대한 연구는 생명 현상을 비롯한 현대 과학의 수수께끼를 해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며, 복잡계의 단기적인 예측을 통해 실제적인 응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최근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 가령 자동차나 경제와 같은 - 가 위치한다. 폴리월드에 거주하는 유기체들은 시보레 자동차와 유행성 감기를 일으키는 세균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다.
이런 식으로 생명을 분류하고 다루는 방법은 상당한 이점을 갖는다. 생물학자들은 아무도 진정한 생명체로 분류하지 않을 계들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들은 그런 방법을 통해 생명만이 갖는 고유한 특성들을 분리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만족스럽지 못하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분명한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마저도, 살아 있다는 현상에는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어려움 중에는, 과학이라는 분야에 고귀한 생명의 영역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문화적 경향이 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설령 신성에 대한 부끄러운 굴복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생명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려야 할 때면 우리 주변에서는 항상 초자연적인 요소가 어슬렁거리곤 했다. 성상 파괴주의자와 몽상가들이 생명을 인식하는 데 경험적인 수단을 사용하려는 시도를 벌이긴 했지만, 대부분의 역사 기간 동안 사람들은 초자연인 요소가 죽어 있는 물질에 생명이라는 특징을 부여해 주었다고 생각해 왔다.
과학자들이 낡은 신념을 폐기하자, 생명에 대한 개념은 새로운 발견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갔다. 세포의 발견 이후, 과학자들은 물질이 어떻게 스스로를 살아 있는 구조로 조직해 가는지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다윈의 공적이 생물 과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자, 진화는 생명의 정의에서 가장 중심적인 항목으로 대두했다. 일부 학자들에게 진화는 계속 핵심적인 주제로 남았다. 진화 생물학자인 존 메이너드 스미스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생명은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를 보증받을 필요가 있는 여러 가지 특징들에 의해 정의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복제, 변이, 그리고 유전이라는 특징을 가진 실체는 살아 있는 것이며, 그러한 특징 중에서 하나 혹은 그 이상을 결여하고 있는 실체는 살아 있지 않는 것이다."
생물의 가장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구성 요소로서 최근에 발견된 DNA 는 생물을 규정하는 또 하나의 묘안으로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 다시 말해서 생물은 자신의 기능과 재생산만을 위해 청사진 (설계도) 을 갖는 것이 아니며, 이 독특한 분자 집합은 생명의 역사 속에 들어 있는 모든 구성 요소를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른스트메이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유전적 프로그램의 소유 여부야말로 생물과 생명이 없는 물질 사이의 절대적인 차이인 것이다. 인간이 만든 컴퓨터를 제외하면, 생명이 없는 무생물계에는 이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인정된 예외 조항에 주목하라!).
최근에 들어오면서 생물의 필수 조건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의 원인은 생물학의 핵심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복잡계이다. 복잡계란 그 구성 부분이 충분한 복잡성과 상호 연관되고 있어서 표준적인 선형 (역주 : LINEAR. 비선형 계를 참조하라) 방정식으로는 예견이 불가능한 계를 말한다. 그 계속에서는 무수히 많은 변수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의 움직임은 그 속에 무수한 움직임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의 움직임은 그 속에 무수한 움직임이 내재되어 있는, 전체론적인 (holistic) 총합에 의한 창발적 (emergent) (주석 :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더 크게 나타나는 현상, 단순한 규칙의 적용으로 그보다 복잡한 규칙이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등을 말한다. 생명을 갖지 않은 물질에서 생명체가 탄생하고, 단순한 생물이 복잡한 생물로 진화하는 과정 등이 그에 해당한다. 컴퓨터의 경우에는 어떤 프로그램이 극히 간단한 규칙을 토대로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나타낸다. 인공 생명은 이러한 창발성을 가장 중요한 토대로 삼는다. 가령 초보적인 몇 가지 규칙만으로 프로그램된 인공 유기체가 자기 복제, 성장과 같은 고도한 행동을 창발하는 것이다.)인 결과로서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환원주의 (주석 : 관찰이 불가능한 이론적 대상은 직접 관찰이 가능한 부분으로 환원되지 않는 한 제기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 창발적인 행동은 이런 접근 방식으로는 결코 해명될 수 없다.) 는 복잡계에 적용될 수 없다.
그리고 이제 생명 연구에 환원주의적인 접근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 다시 말해서 살아 있는 계에서 전체는 그 부분의 총합보다 크다.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이것은 생명에 활기를 불어넣는 신비스러운 액체 때문이 아니라, 특정한 움직임과 특성이 창발적으로 나타나게 해주는 복잡성의 결과이다. 이 복잡성이라는 기구는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진화라는 엔진은 어느 정도 수준의 복잡성이 나타나기 전에는 가동될 수 없다. 생물계는 그 자체가 복잡성의 전형이다. 오늘날 일부 과학자들이 복잡성을 생명을 정의하는 특징으로 생각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복잡성의 발견은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라는 세탁물 더미에 또 하나의 세탁감을 올려 놓았을 뿐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과학적 지식에도 불구하고, 칼 세이건은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의 생명에 대한 항목에서 "생명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정의는 없다." 라고 단호하게 결론짓고 있다.
철학자인 마크 베다우는 이렇게 말했다. "(그 의문은) 철학의 기본적인 개념의 하나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전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 왔습니다. 그 점에서는 생물학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항상 그렇듯이 두 손을 들고 항복할 뿐입니다. 그건 물과 같은 자연적인 특성이 아닙니다. - 당신은 물을 마시고 소화시킬 수 있지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기 H2O 가 있다. 그것이 물의 본질이다.' 하지만 생명은 물질이 아닙니다. 생명이란 파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무엇입니다."
철학자들 역시 이 딜레마에 대해 항복 선언을 할지 모른다. "정말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순수한 철학적 답변이 가능한지 매우 의심스럽다." 고 엘리오트 소버는 쓰고 있다. 위스콘신 대학의 이 철학자는 궁극적으로 그 질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계가 주위 환경에서 에너지를 추출하고, 성장하고, 자신의 몸체에 받은 손상을 수리하고, 그리고 스스로 재생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정말' 살아 있는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기계는 문제를 제기할 뿐 풀지는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인공 유기체를, 앞에서 기술했듯이, 문자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인 양 간주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에 있는 생물학적 유기체와 동일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지 않는 한 그 무엇도 생명으로 간주하지 않을 것이다.
물리학자인 제럴드 파인베르그와 생물학자인 로버트 샤피로는 "모든 생명이 반드시 수성 (물) 매체 속에서 기능해야 하고, 탄소 화합물의 화학에 기초를 두지 않으면 안된다는 식의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한 가지 용어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카바퀴스트 (carbaquists) (역주 : 탄소 수성체라는 뜻의 조어)' 라는 용어다. 그러나 아직 다른 형태로는 생명이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을 설득력을 있게 편 사람은 없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 있다고 간주하는 것들은 유기체라는 보다 큰 분류 등급의 부분 집합에 불과하다. 아주 우연히 역사 속의 불행한 우연적인 사건에 의해, 우리들은 가능한 생명 형태의 이 제한된 스펙트럼만을 부여받고 다른 것들은 받지 못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도전해야 할 문제를 요약하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의 어떠한 특성들이 그 부분 집합에 고유한 것인가, 그리고 어떠한 특성들이 모든 생명에 보편적인 것인가, 또는 우리가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거나 또는 앞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 창조할 수 있는 '가능한 생명 형태 (주석 : 이 표현은 현재 지구상에 나타난 생명 (탄소에 기초한 생물체의 특수한 한 유형) 이 무수히 많은 생명 형태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것은 양자 역학과 결합한 최근의 우주론에서 이야기하는 '다른 우주' 와도 같은 개념이다. 호킹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우리 우주가 무수히 많은 우주 중에서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인공 생명에 대한 연구는 하나뿐인 우주, 하나뿐인 생명 형태라는 식의 고정 관념과 '인간 중심주의' 를 거부한다. 현재 우리 눈에 보이는 생명 형태는 그처럼 많은 가능성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이외의 무수히 많은 가능한 생명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인공 생명 역시 그 중 하나이다. 따라서 생명의 범위가 확장되며, 현재의 탄소에 기초한 생명 형태 '이후' 의 생명 형태에 대한 고찰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life-as-it-could-be. 이 말은 최초의 인공 생명을 만든 크리스토퍼 랭턴이 만들었다) -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 생명 형태는 어떤한 것인가이다.
랭턴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생명에 관한 폭넓은 이론을 개발하려 한다면, 비유기체 역시 살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혁신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생물학자들은 대개 이러한 사고의 전환을 꺼린다. 이런 과정을 받아들여서, 생물학자들이 이러한 것들이 사람이 살아 있듯이 살아 있음을 확신하게 되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결국 그 생각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탐구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전세계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과 함께, 생명의 과정 그 자체를 창조하기 위해 쏟아 붇고 있는 노력에 대한 탐구이다. 만약 랭턴과 그의 동료들이 그들의 목표를 달성한다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아전 인수격으로 스스로 정의 내린 진화라는 사다리의 정점에 서 있지 못하게 될 것이며, 그 외의 무수한 대안들 중에서 한 가지 생명 집합에 대한 매우 복잡한 대표자라는 지위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고유함은 우리 자신의 후계자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에 있을 것이다.
인공 생명은, 그 출발점에서부터 수생 생물로부터 진화해 온 유전 공학과는 전혀 다른 무엇이다. 인공 생명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실질적인 생물계가 창조, 진화, 관찰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그들의 노력은 진화의 과정을 창출해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그리고 그 너머에 이르기까지 생물계의 영역을 확장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엄청난 실험을 통해 생명 자체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 그 메커니즘을 우리 자신의 연구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생물학적 계 뿐만 아니라 모든 의미에서의 복잡한 비선형 자기 조직 (self-organizing) (주석 : 복잡성 이론의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이 바로 이 '자기 조직' 이다. 복잡계는 그 속에 포함된 단순한 구성 요소 상호간의 부단한 상호 작용과 경쟁을 통해 스스로를 조직하고 복잡성의 정도를 높여 나간다. 생물이란 이러한 자기 조직 과정에서 질서도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높아진 복잡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생명이라는 현상도 복잡도, 또는 질서도의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기 조직은 사회, 국가, 경제 체제 등에서도 폭넓게 발견된다. 따라서 자기 조직의 적용 범위는 생물체에 한정되지 않고 매우 폭넓은 것이다.) 상호 작용까지 지배하는 강력한 자연의 법칙에 대한 발견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을 인공 생명에 대한 탐구에 몰두하게 만드는 힘은, 자연이 우리 앞에 펼쳐 놓은 모호한 현상들의 얽힘을 해독하고자 하는 열망이며, 특히 모든 의문들 중에서 가장 심오한 의문, 즉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궁극적인 수수께끼를 해명하려는 강한 욕구이다.
저마다 다른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는 이를 연구자들은 그 의문에 답하기 위한 방법은 단지 그것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창조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첫 번째 단계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일이며, 실제로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 다음 단계는 그 작업을 실제로 수행하는 것이다. 그 작업에는 우리들 개인의 수명이라는 관점에서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모르지만, 진화적 시간이라는 보다 긴 범주에서 본다면 거의 순간에 불과한 짧은 기간 동안 완성될 수 있다. 어쨌든 이 가공할 연구는 이미 진행 중에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당신에게 바로 그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저명한 인물들을 소개해 줄 것이다.
그들의 노력의 성과로, 우리들은 살아 있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생명의 창조라는 방법을 통해 궁극적으로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