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기계

 

네번째 불연속 -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 : Bruce Mazlish 지음, 김희봉 옮김, 사이언스 북스, 2001 (원서 : The Fourth Discontinuity - The Co-evolution of Humans and Machines, Yale Univ. Press, 1993), Page 33~55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인간> 의 본성에 관한 질문과 씨름했다. 한편으로 인간은 다른 동물과의 관계에서 ——— 주로 두 번째 불연속을 만들면서, 때로는 부수면서 ——— 자신을 정의했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나은 속성을 가졌다고 생각하거나, 천사처럼 되어서 동물적 본성을 뛰어넘으려고 함으로써, 인간은 스스로가 특별한 종류의 피조물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또한 인간은 기계를 창조했고, 기계는 다시 몇 가지 의문을 일으켰다. 동물은 단지 기계의 일종일까? 기계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그의 창조자에게 반기를 들고, 심지어 인간을 <지배> 하거나 자기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할 수 있을까?

인간의 동물적 본성과 기계적 본성에 관한 이러한 질문은 17 세기 서구에서 함께 나타나서 동물 기계 논쟁으로 진행되었다. 동물은 단순히 기계에 불과한가? 그리고 인간도 마찬가지로, 인간 기계일 뿐인가?

이 논의의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우선 화가들과 도해자 (圖解者) 들의 통찰을 살펴보자. 과학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베이컨과 데카르트 덕분에 우리는 한 가지나 두 가지 (또는 그 혼합) 만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두 가지란, 경험론자의 귀납법과 합리론자의 연역법으로, 둘 다 논리적 추론의 형태를 강조한다. 따라서 마술과 기술에 뿌리를 둔 많은 과학은 대개 잊혀져 왔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을 멋지게 결합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를 보면, 우리는 약간 다른 관점을 얻을 수 있다. 다빈치의 시각은 매우 날카롭고 빨라서, 그의 눈은 거의 현미경이나 카메라와 같았다. 그는 말 그대로 운동을 <정지> 시킬 수 있었다. 그는 이런 능력으로 새의 비행을 분석해서, 날개를 치면서 나는 비행 기계를 고안했다.

그는 동물과 기계의 기능을 분석해서,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유사성을 보았다. 그는 인간과 동물의 뼈와 근육에도 기계에 적용되는 것과 똑같은 역학적 원리가 적용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빈치는 인간 · 동물· 기계를 모두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역학은 수리과학의 천국이다. 왜냐하면 역학을 통해서 수학의 열매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새는 수학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장치이므로 …… 인간의 능력으로도 재현할 수 있다>

이러한 통찰로부터 다 빈치는 동물의 기능과 형태를 여러 가지로 흉내내었다. 그래서 다 빈치는 군사용 탱크를 발명하고, <코끼리 역할을 한다> 고 썼다. 조개의 나선 모양에서 암시를 얻어 헬리콥터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비망록에  화폐 주조기, 바늘 가는 기계, 막대를 휘는 기계, 여러 가지 장치를 구동하는 기계, 기중기, 습도 · 거리· 기울기· 풍력을 재는 장치 등을 고안했다. 그 중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들 발명품의 그림과 <동물 기계> 의 그림이다. 숙련된 제도가인 레오나르도는 분해도 · 회전도·투명도 —— 이것은 입체적인 그림 이었다 ——— 등을 사용하여 기계 장치를 설계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현재 사용되는 과학 도해법의 많은 부분을 확립했다.

이러한 발견에서, 기하학 원리에 근거한 입체적인 투시 화법은 인간의 시각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사실 다 빈치 이전에도 시에나 사람 마리아노 디 쟈코포 Mariano di Jacopo (1381 ~ 1453 년경), 일명 타콜라 Taccola 가 기계 설계에 투시 화법을 사용한 적이 있다. 타콜라는 뛰어난 화가는 아니었고, 새뮤얼 에드거턴 2 세 Samuel Y. Edgerton Jr. 에 따르면 그의 목적은 <기계를 발명할 때 비싼 입체 모형을 만들지 않고 그림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었다. 사실 모형을 만든다고 해도, 예를 들어 흡입 펌프의 <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 그러나 타콜라는 입체적이면서도 투명한 펌프를 상상하고 그려서, 기계의 기능과 동작을 이해하고 보여주었다.

또한 광산에 관한 게오르기우스 아그리콜라 Georgius Agricola 의 고전적인 논문에 그림을 그린 알려지지 않은 도해자도, 에드턴에 따르면, <땅을 잘라내서 내부가 드러나게 하여, 다른 방법으로는 볼 수 없는 광산의 구조를 도해했다>.

한스 베히틀린 Hans Wechtlin (1480 경 ~ 1530) 은 1517 ~ 1518 년에 출판한 두 권의 외과 교과서에 실은 나무 모형 그림들로 똑같은 방법을 인체에 적용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생체' 를 보고 그린 최초의 인쇄된 해부도> 였다. 베히틀린은 투명도를 일종의 절단 모형으로 바꿔서, 머리가 분리된 사체와 <뇌와 신경을 차례차례 제거하면서 여러 단계> 의 해부도를 보여주었다.

인체의 동작에 관한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Andreas Vesalius 의 논문은 과학과 미술이 잘 조화된 걸작이다. 베살리우스와 플랑드로의 2 류 화가인 그의 도해자는 인체와 간단한 기계를 문자 그대로 나란히 그렸다. 에드커턴의 묘사처럼, <왼쪽 아래에는 목공의 접합부를 그려서 두개골의 접합과 비교했고, 오른쪽에는 철문의 경첩을 그려서 신체의 관절과 비교했다.>

프랑스의 위대한 물리학자 앙브루아즈 파레 Ambroise Pare´ (1510 ~ 1590) 는 이러한 방법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기계에 관한 여러 가지 논문으로 보아, 그는 현대의 보철 기구를 예견하여 <인간의 손을 동일한 원리로 동작하는 기어와 지렛대 등의 기계로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의 『10 권의 외과학 교재 Dux livres de cbirurgie』(파리, 1564) 에 나오는, 손의 내부에 근육과 신경에 해당하는 기계 장치가 들어 있는 그림은 이러한 통찰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교훈은 명확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 도면은 인간과 기계가 같은 방식으로 동작하며, 그것들이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인간과 기계의 연속성은 생각도 하기 전에 벌써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 단계는 여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장 체계적으로 준비한 사람은 데카르트였다. 다음 글을 보면 과학의 이론화 (理論化) 와 도해에는 부분적으로 같은 방법론이 적용된다는 나의 확신에 에드거턴도 동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살리우스의 여러 추종자와 라멜리 Ramelli 등과 같은 사람의 기계에 관한 논문 그림을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현대의 과학적 방법의 아버지인 데카르트가 보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는 1640 년에 (베살리우스와 라멜리의) 이 두 그림을 본 것으로 짐작되며,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썼다.>

갑자기 과학적 그림은 철학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고, 철학은 그림으로 설명되었다.

조지 보아스 George Boas 에 따르면, 데카르트가 주도했던 17 세기의 동물  기계 논쟁은 몽테뉴의 동물에 대한 사랑과 찬탄에서 시작된다. 미셀 몽테뉴 Michel Eyquem de Montaigne 의 저작은 고대의 플루타르크에 가 닿고, 다시 동물이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말한 중세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로 이어진다.

몽테뉴의 논의는 일련의 도발적인 역설을 제기했다. 동물은 인간 보다 더 자연스럽다. 따라서 동물은 인간보다 우월하다. 인간이 자랑하는 이성은 인간의 열등함을 보여주는 다른 측면일 뿐이다. 이성은 오도될 수 있어서, 인간이 천국에서 추방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몽테뉴는 주로 『레몽 세봉드를 위한 변명 Apology For Raimond Sebonde』과 때때로 그의『자서전 Autobiograpby』에서, 공공연하게 동물을 인간의 동료로서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인간을 정의로, 동물을 친절로 대해야 한다. 인간과 동물은 서로 교류하며, 상호간의 의무가 있다.>

몽테뉴의 목적은 인간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데 있었다. 그는 여러 쪽에 걸쳐 동물이 감정을 가진 예와 <때때로 의심스럽지만> 지성을 가진 예를 들었다. 그 다음에는, 다윈과 헉슬리를 예견한 듯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보다 인간과 인간의 차이가 더 크다> 고 주장했다. 보아스는 이 프랑스 작가의 글을 문명 이전을 찬양하는 원시 주의로 보았다. 원시주의자의 메시지는 인간이 동물처럼 되기를 열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몽테뉴의 이러한 주장은 두 가지 다른 반응을 낳았다. 하나는 자유주의자들의 반응으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인간의 동물적 본성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인간을 동물 수준으로 <낮추는> 이러한 사고는 도나티엥 사드 Donatien AIphonse Francois de Sade 후작에게서 결정을 이루었다.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으로, 몽테뉴를 공격한 여러 사상가들이 제기한, 동물은 기계일 뿐이고 감정이 없기 때문에 인간보다 열등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편 혁명적인 사상가가 데카르트였다. 물론 그는 자신이 초기에 연구했던 — 나는 이미 화가와 과학 도해자를 인용했다 — 스콜라 철학자들의 후계자이다. 아퀴나스는 우리로 들어가기 보다는 사슴을 쫓는 개를 논하면서, <동물은 창조자 신의 지혜에 따라 동작하는 기계와 같다. 따라서 신은 동물의 이성이다> 라고 주장했다. 아퀴나스는 다른 글에서 동물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고, 동물의 작동을 시계의 작동에 비유했다. 데카르트는 이 문구들의 영향을 받았을까? 우리는 데카르트가 라플레슈 La Fleche 의 제수이트 대학에서 『신학 대전 Summa Tbeologica』을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데카르트가 아퀴나스에 드리워진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의 위치를 완전히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 가지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식물적 영혼, 감각적 또는 동물적 영혼, 이성적 영혼으로, 이성적 영혼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다. 데카르트 이전의 <동물 기계> 논쟁은 <동물의 영혼> 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동물이 동물적 영혼 또는 <감각적 영혼> 만을 가지고 있어서, 감각의 인지와 기억에 제한되는 정도의 지식만을 갖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동물이 추론할 수 있는 이성적 영혼을 가져서 인간과 정도의 차이만 있다면, 많은 난점이 따른다. 그렇다면 동물도 인간처럼 불멸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가? 그러나 원죄를 지지 않은 동물이 어떻게 불멸로 인도하는 위대한 크리스트의 드라마에 참여할 수 있는가? 그들이 아무 결점도 없다면 어떻게 그들이 고통을 받는가?

데카르트는 이 문제에 정면으로 대처했다. 레오노라 코헨 로젠필드 Leonora Cohen Rosenfield 가 제시한 바와 같이, 데카르트는 이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았다. <우선 그는 동물의 영혼에 관한 문제를 동물의 지능에 관한 문제로 바꿨다.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의 저자인 데카르트에게 영혼은 '이성' 을 뜻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새로운 과학적 시각으로 이 논쟁을 보았다.> 로젠필드가 지적했듯이 <현대 과학의 발전으로 (동물의 영혼에 관한) 오래 된 수수께끼를 밝힐 새로운 방법이 생긴다>. 물론 데카르트는 <현대 과학의 발전> 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이제 우리는 동물 기계 문제에 대한 데카르트의 기여를 음미해야 한다.

 데카르트의 혁명적인 전환은 동물의 영혼보다 추론 능력을 논쟁의 최전방에 둔 것이었다. 그는 몽테뉴주의자들이 지적한 동물의 완전성 ——— 근면, 재주, 속도의 우수성 ——— 은 기계적인 본성과 지능의 결핍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논박했다. 여러 과학 사가들이 지적했듯이 (캉귈렘은 부정했지만), 데카르트는 러시아 과학자 파블로프 (6 장참조) 가 동물을 기계적 반사 운동 체계라고 파악하기 오래 전에 반사 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우월성은 매우 역설적인 형태로 구제되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동물과 달리 인간은 이성 (또는 영혼)을 가진 기계여서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랑스 과학자는 『방법 서설 Discourse on Metbod』에서처럼 인간에게 이성의 확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성의 규칙 확립에 평생을 바쳤다. 이것은 마치, 인간의 동물 기계적 완전성을 부정하고 더 높은 수준의 <비인간적 조건>을 인간에게 부여하려 한 것과 같다.

사실 이렇게 함으로써 데카르트는 단순한 반사가 아니라 이성적 자유 의지를 가진 동물 기계의 완전성을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데카르트의 첫 번째 언급이 바로 이 점을 지적한다. 그는 <동물의 완전성 때문에 우리는 동물의 자유 의지를 의심하게 된다> 고 비망록  (Cogitones Privatae) 에 1619 - 1621 년 사이의 어느 때에 기록하고 있다. 짧게 말하면, 인간은 원래 완전하지 않으며 (또는 에덴 동산에서 잘못을 저지를 때 완전성을 잃었으며), 자유 의지를 가지고 이성을 통해 완전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데카르트의 기본 가정은 인간의 의지가 이성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위대한 수학자에게 프로이트식의 정신적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독단적으로 말했듯이, <우리의 의지는 이성이 좋거나 나쁘다 판단한 것만을 따르거나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판단은 좋은 행동을 보장하기에 충분하다.> 이 진술 다음에, 최소한 사고 실험 안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는 유명한 테카르트의 단순화가 나온다. <나는 나 자신의 전적인 본질 또는 본성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인간이 생각하는 방법은 의심하는 것이다. Cogito ergo sum 은 실제로 Dubito ergo sum (나는 의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다. 의심은 이성이 진리를 드러내는 수단이라는 지적은 중요한 언급이다. 따라서 의심은 우리를 이성 이전의 개념과 그릇된 감각 인지로부터 해방시킨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종류의 편견에서 벗어나게 하고, 우리의 정신을 감각에 무관하게 길들이는 쉬운 방법을 가능케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성은 의심을 버릴 수 있다. 이것이 이성의 과업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역설에 빠진다. 의심에 의해 작용하는 이성이, 의심을 버리고 우리를 완전히 이끈다. 데카르트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내가 의심한다는 사실을 숙고했고, 그 결과로 나의 영혼은 불완전하다. 명백히 의심하는 것보다 아는 것이 휠씬 완전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지식은 신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데카르트의 신의 존재 증명은 설득력 없는 스콜라주의의 단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데카르트적 인간은 <더 큰 완전성> 에 도달하기 위해 신과 같은 상태를 열망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물질적인 세계와 동물적 본성의 찌꺼기에서 자신을 해방하여 순수하고 이성적인 영혼이 될 수 있을 때, 이성은 종교가 된다.

일찍이 인간은 실수하기 때문에 동물 기계가 아니라고 말한 데카르트가, 이번에는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초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성에 따라 —— 그리고 데카르트의 유명한 추론 방법에 따라 —— 인간은 <실수하지 않는 습관을 얻는다 …… 이것이 인간의 완전성에서 가장 큰 부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보다 더 기계적인 존재가 됨으로써 동물 기계의 완전성을 얻지만, 이렇게 되면 자유 의지를 빼앗겨서 신과 같은 성질인 이성을 가지지 못한다. 이것은 또 하나의 역설이 아닌가? 게다가 신초가 데카르트의 사고 <방법> 에 따라 존재하고 <생각> 해야 한다.

이제는 유명한 일화가 되었지만, 1619 년 11 월 10 일 밤에 데카르트는 우주의 진정한 본성을 드러내는 일련의 비범한 꿈을 꾸었다. 그는 말 그대로 눈이 멀 듯한 섬광 (꿈에서 번개로 나타난) 속에서 우주는 이성적이며, 이성의 가장 강력한 도구인 수학으로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여기에서 또 하나의 데카르트의 역설을 본다. 데카르트는 그의 <이성적> 통찰을 <비이성적> 인 꿈에서 얻은 것이다.

데카르트 이전의 다 빈치가 수학을 기술적인 측면으로 이해했듯이, 데카르트는 수학이 세계의 기계론적인 본성과 연결되어 있으며, 세계의 깊은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는 것을 즉시 알았다. 수학은 이성의 도구이므로 이성을 제외한 우주의 모든 것이 새로운 수학 - 역학적 용어로 설명될 수 있다. 데카르트의 말처럼, <역학의 규칙은 …… 자연의 규칙이다.>

수학 - 역학의 가능성을 인지한 데카르트는 곧바로 자석으로 움직이는 인간 기계를 생각했고, 날아다니는 비둘기와 개에게 잡힌 꿩을 흉내내는 기계를 계획했다고 한다. 또 하나 덧붙일 것은, 데카르트는 스스로 해부를 하기 전에 (1630 연대였을 것이다) 이미 앞에서 말한 도해자들의 그림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배경으로 그는 『방법 서설』에서 확신에 차서, 인간은 모든 면에서 기계이기는 하지만 인간만이 이성을 가진 동물, 그리고 기계이기 때문에 신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우월한 존재라고 말했다. 그가 썼듯이, 동물이 인간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은 단지 <동물에게 이성이 없으며, 그들의 본성이 그들의 몸의 욕구에 따라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이것은 마치 톱니바퀴와 용수철로 된 시계가 우리의 모든 지능을 동원해서 재는 것보다 시간을 더 정확하게 재는 것과 같다>. (데카르트의 비판자 중 한 사람은 동물과 시계의 비교를 공격하여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시계를 귀여워하는가?>)

핵심적인 주제는 이성의 본질이며, 이성의 신의 본질이다. 이번에는 데카르트의 사색과 명상을 넘어서 현대의 <사고 기계> 에까지 논의를 넓혀보자. 예를 들어 데카르트는 『방법 서설』에서 공간상의 위치와 크기를 갖지 않는 신과 영혼을 한쪽에 두고, 물질적이고 기계적인 세계 전체를 반대쪽에 두었다. 인간의 정신 또는 영혼이 이성 —— 신의 이성을 의미한다 (다행히도 이성은 모든 인간에게 있다) —— 에 참여할 때만 인간은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알 수 있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순전히 기계적인 인간을 분석하면서, 자기가 입증한 것을 자랑했다. <깨어 있음과 잠과 꿈이 있기 위해서 뇌에 일어나야 하는 변화, 빛 · 소리· 냄새· 맛 등 외부 물체의 모든 성질이 감관을 통해 여러 가지 생각을 일으키게 하는 방법에 대해 …… 이런 관념을 받아들이는 동물이 감각, 이것을 유지하는 기억, 이것을 여러 가지로 변화시켜서 새로운 것으로 만드는 상상력에 의해 무엇이 이해되어야 하는지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인간은 실제의 인간과 어떻게 다른가? 고대의 자동인형 (3 장에서 다룰) 이나 근대의 튜링 시험 (기계의 반응이 인간과 비슷한 정보를 따져서, 인간과 구별 불가능한지를 시험하는 것 —— 9 장 참조) 에서처럼, 데카르트는 자신이 창조한 <인간> 에 정면으로 대처했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과 기계를 구별하는 데카르트의 두 가지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기계는 피드백 메커니즘이 없다 (<기계는 말을 바꾸지 못한다>). (2) 기계는 일반화하는 이성이 없다 (<이성은 모든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도구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더 이상 이러한 이분법을 자신 있게 지지할 수 없다. 노버트 위너 Nobert Wiener 와 그의 후예들은 사이버네틱스로 기계의 피드백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두뇌가 개념을 형성하는 방식에 관한 연구는 개념을 다루는 컴퓨터를 구현하는 시도의 기본이며, 이 두 가지는 함께 발전하고 있다. 9 장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인간과 사고 기계의 격차는 최근의 연구로 크게 좁혀졌다.

물론 데카르트는 이러한 발전을 예측하지 못했고, 이것을 알았어도 달갑게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과 기계의 이분법 또는 불연속을 제거하는 것은 우주에서 신을 추방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데카르트는, 이성적인 영혼은 <물질의 힘에서 나올 수 없으며 …… 특별히 창조될 수밖에 없다> 고 주장했다. 그토록 특별한 창조는 신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따라서 신의 존재가 증명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인간이 <특별히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다윈의 가르침은 신과 자아에 대한 인간의 생각을 위협하는 거대한 지진이며, 인간은 자존심이 받는 성처는 미미한 여진에 불과하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같다는 다윈의 충격뿐 아니라, 인간과 기계 사이의 네 번째 불연속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장애물은 명백히 인간의 자존심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역설적이게도, 데카르트의 논의는 그가 찬양한 인간 긍지의 토대를 침식한다. 데카르트는, 생물은 무생물을 지배하는 역학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생기론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는 생리학이 일반적인 물리과학의 일부이며, 물리과학을 지배하는 수학적 · 역학적 법칙을 따른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인간 기계에 관한 자신의 논의를 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영역에 한정했지만, 이것은 이 문제를 단순한 생리학적 심리학의 문제로 보려는 사람들이 쉽게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장식물일 뿐이었다. 동물과 기계에 대해 인간의 유일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데카르트에 대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가 적으로부터 우군을 엄호하는 동안, 우군의 무의식적인 공격에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데카르트의 시대에는, 그에게 두  방향의 적이 있었다. 전통주의자들은, 동물이 영혼이 없는 기계라는 주장에 반대하고 동물이 인간과 더 가깝다고 보았다. 진보적인 사상가들은, 동물이 기계라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이것을 인간에게도 적용했다. 여기에서는 논쟁의 본질을 시사하기에 충분할 정도로만 몇 가지 사례를 들겠다.

데카르트와 그의 지지자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에 따르면 생체 해부를 하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데카르트가 나중에 인정했지만, 그는 동물이 오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극적인 일화가 있다. 데카르트의 지지자인 말브랑슈 Malebranche 는 온화한 인물이었지만, 임신한 개를 발로 찼다. 친구인 퐁트네유 Fontenelle 가 나무라자,<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모릅니까?> 라고 차갑게 대꾸했다. 나중에 살펴볼 파블로프조차 이렇게 신랄하지는 못했으리라.

 데카르트의 반대자들은 이 점을 공격했다. 드 세비뉴 de Sévingé 부인은 1672 년에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기계, 어떤 사람과 친한 기계, 질투하는 기계, 두려워하는 기계를 생각해 보라! 이것은 웃음 거리일 뿐이다. 데카르트가 우리에게 이런 것을 믿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퐁트네유는 이렇게 말했다. <동물이 시계와 마찬가지로 기계라고 말하는가? 미스터 기계 개와 미스 기계 개를 함께 두어보라. 둘 사이에서 작은 기계 강아지가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시계 둘은 평생을 함께 두어온 다른 시계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동물은 고통을 느끼고, 질투하며, 번식한다고 데카르트의 반대가들은 주장한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틀렸다. 그렇다면 이것이 동물도 이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유명한 우화 작가 라 퐁텐 La Fontaine 은 그렇다고 말한다. 그의 불멸의 우화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교활하고 지능적이다. 그래서 라 퐁텐은 부엉이가 현명한 새라고 썼다. <부엉이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가센디 Gassendi 와 같은 철학자들은 더 체계적으로 이것을 논했다. 그는 데카르트의 『성찰 Meditations』에 대한 다섯 번째 『반론 Objectiones』에서, 동물이 인간처럼 추론하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 들이면서도, 이것은 정도의 문제일 뿐이지 본질의 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런 면에서, 정도의 차이를 제외하면 그들 '동물' 과 우리는 거의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인간의 말은 개가 짖을 때의 정신 활동이 발전한 것에 불과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우리는 명확히 또 다른 연속으로 향하는 길 위에 있다.

데카르트 저작의 함의를 가장 날카롭게 분석하여, 인간도 기계이며 동물 기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 사람은 라 메트리였다. 그는 데카르트의 합리론에 로크에 경험론과 감각론을 더해서 대담하게 자신의 <충격적인> 주장을 펼쳤고, 원숭이가 말을 배운다면 원시인과 다를 게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라 메트리는 의사였다. 원래 성직자가 되려고 했던 그는 자연철학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나중에 의학 (특히 해부학) 을 공부해서 1725 년에 학위를 받았다. 그 후의 삶은 평범했다 (마지막 순간은 제외하고, 그는 고기 파이 pâté 를 너무 많이 먹고 죽었다).

그의 저작은 많지 않고, 한 가지만 제외하면 주목할 만한 것도 없다. 그는 처음에 네덜란드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의학 스승이었던 해르만 브르하페 Herman Boerhaave 의 논문 「아프로디지아크스 Apbrodisiacus」를 번역했는데, 부르하페는 데카르트에게도 영향을 준 사람이다. 라 메트리는 스승의 책을 번역하면서 성병에 관한 자신의 논문을 끼워 넣었다. 그 후 라 메트리는 군 복무 중 (데카르트가 유명한 꿈을 꾼 것도 비슷한 시기에 군 복무 중 일어났다) 심한 열병을 앓다가, 지적 계시와 함께 사고는 신체 기계의 산물임을 이해했다. 그는 여기서 영감을 얻어서 『영혼의 자연사 (自然使) Histoire naturelle de I' âme』(1947) 을 썼다.그가 마지막으로 쓴 이 책은 익명으로 출판되었지만, 그는 프리드리히 대제 Frederick the Great 의 좀더 <계몽된> 궁정의 보호를 받기 위해 달아나야 했다.

여기에서 라 메트리는 1751 년에 마흔세 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프러시아 왕립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던 그의 장례식에서는 왕이 짮은 추도사를 하는 영예를 베풀었다. 그러나 그의 적들은 (그의 사신을 근거로) 그를 타락한 감각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마지막으로 쓴 책에서 그는, 인간이 기계라는 주장을 고집스럽고 도전적으로 펼쳤다. 그의 관점은 때때로 일관성을 잃어서, <동물이 순수한 기계라는 데카르트의 말도 안 되는 체계> 를 비난하는 듯하다가도, 매우 도발적인 언사를 사용하면서 이것을 받아들이기호 했다.

라 메트리에게는 방탕함 면이 있었다. 성병에 대한 그의 관심은 『기계 인간』의 외설적인 주석으로 나타난다. 가장 구하기 쉬운 영역 본에는 라 메트리가 책 여기저기에 써둔, 남성의 통제할 수 없는 발기와 여성의 음부에 관한 잦은 언급이 빠져 있다. 이러한 언급은 독자를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인간 기계 논의에서 암시적이든 명시적이든 성이 항상 개입됨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풍트네유가 개의 생식을 암시한 것을 보았다).

라 메트리 주장의 핵심은 인간이 기계라는 것이고, 다른 주장은 모두 여기에서 파생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계몽된 기계> 라고 불렀다. 그는 그 시대의 뉴턴적인 용어로 <신체는 시계일 뿐> 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학적 경험에 호소하고 관찰을 지침으로 삼아, 경험적인 자료를 <철학자인 의사의 기록에서 찾아야 하며 의사가 아닌 철학자의 기록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고 주장했다. <철학자인 의사만이 인간의 미궁을 여행하고 밝혀보았으며, 그들만이 수많은 경이를 감춘 외피를 들추고 「생명의」스프링을 보여줄 수 있다.> 그는 선험적인 철학이 아니라 후험적인 해부학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리는 다음 글에서 라 메트리의 군 복무 시절 경험을 짐작할 수 있다. <병에 걸렸을 때 영혼은 때로 감춰져서 생명의 조짐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격렬히 타올라서 갑절로 불어나기도 한다. 때로는 우둔함이 사라져서 바보가 요양 기간에 현명한 사람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천재가 우둔해져서 자아 감각을 상실하기도 한다. 이 때는 그렇게 비싼 대가로 얻은 모든 지식을 잃고 엄청난 곤란에 빠진다! 여기에 자기 다리가 침대 안에 있는지 묻는 마비 환자가 있고, 저기에 잘린 팔이 아직 붙어 있다고 여기는 부상병이 있다.> 라 메트리는 이렇게 계속한다. <인간의 신체는 스스로 스프링을 감는 기계이다. 이것은 영구적인 운동의 살아 있는 이미지이다. 영양 공급은 열이 일으키는 운동을 유지한다. 음식이 없으면 영혼은 수척해지고 미쳐서 고갈된 채 죽는다.>

라 메트리가 파블로프를 예견했다면, 또는 그 전의 헉슬리를 예견 했다면, 순서를 기계에서 동물로 바꿔서 상당히 다른 논의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동물의 마음과 감정을 들여다볼 수 없으므로 동물은 의식이 없고 반사 행동만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는 파블로프의 결론과 달리, 라 메트리는 반대의 결론을 끌어냈다. 그의 글을 조금 길게 인용해 보자.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라 메트리가 18 세기 프랑스의 주도적인 분위기였던 진화적 관점의 가장자리를 배회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18 세기 말의 장 밥티스트 라마르크 Jean Baptiste Lamarck 에 의해 기본적인 형태를 갖추었지만, 1 세기 후의 다윈처럼 주도면밀하게 증거를 수집하지도 못했고, 자연 선택 가설이라는 돌파구를 갖지도 못했다. 그래서 라 메트리는 그의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철학자라면 동물에서 인간으로의 전이가 그리 격심한 것이 아니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말을 하기 전의 인간은 어떤 존재였을까? 다른 동물보다 휠씬 재주가 없는 그저그런 동물일 뿐이었다. 이시대의 인간은 자기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원숭이와도 스스로를 구별하지 않았고, 원숭이가 여느 동물과 다른 점 —— 얼굴이 조금 지적으로 생겼다는 점 —— 이상으로 여느 동물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라 메트리는 그가 쓴 책의 말미에 동물, 식물, 인간, 기계의 연관성을 다음과 같이 시사하고 있다. <이런 것이, 우리가 겨우 깨닫기 시작한 자연의 균일성, 즉 동물과 식물의 유사성, 인간과 식물의 유사성이다. 어쩌면 식물로 생장하면서도 폴립처럼 싸우거나, 다른 동물적 기능을 가진 동물 - 식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과 기계의 외적 연관성이 다음과 같은 예언적인 글에 나타난다. <'따라서' 우주에는 한 종류의 유기체만이 존재하며, 그 중 인간이 가장 완전한 표본이다. 인간과 원숭이 또는 가장 지적인 동물 사이의 관계는 크리스티안 호이겐스 Christiaan Huygens 의 행성 사자와 줄리앙 르로이 Julien Leroy 의 시계의 관계와 같다. 행성의 운동을 표시하려면, 시간을 표시하거나 괘종을 울리는 것보다 더 많은 스프링과 톱니바퀴가 필요하다. 오리를 만들 때보다 플루트 주자를 만들 때 더 많은 재주를 부려야 했던 자크 드 보캉송 Jacques de Vaucanson 은, 말하는 인간을 만들려면 —— 이것은 결코 불가능하다고 여겨서는 안 되며, 특히 또 다른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의 손으로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 더욱 재주를 부려야 할 것이다.>

라 메트리는 대담하고 음란하고 논쟁적이고 풍자적이며 (그는 자신의 적에 대해 <물고기는 커다란 머리를 가지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머리처럼 거기에는 지각이 들어 있지 않다> 고 말했다) 호감이 가지 않는 문체로 쓰기는 했지만, 인간이 단순히 기계일 뿐이라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전달하고 있다. 그는 지금은 구식이 된 용어로 이 일을 해냈다. 그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을 생각하지 않았고 —— 그는 계산기를 발명한 선배 동조자 블레즈 파스칼 Blasse Pascal 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 —— 다 빈치, 타콜라 등의 장인들이 그린 동물 기계에 관한 과학적인 도해만 생각했다. 인간은 컴퓨터가 아니라 레버와 기어로 이루어진 시스템인 시계이다. 라 메트리는 이런 원시적 용어로 그의 기계적 관점을 표현했고, <인간 기계> 개념은 이런 용어를 통해 동시대와 그 후의 몇 세대의 걸쳐 받아들여지거나 거부 되면서 일반적인 문화 속에 번져갔다.

이것은 (다른) 동물과 기계에 대해 인간의 우월성을 자랑하려는 많은 사상가들을 따라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