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media lab
원문 : 조선일보 2002. 11. 28
실험실 한쪽에는 레고 장난감 조각이 널려있고, 건너편 구석에는 위성전화와 노트북 컴퓨터, 웹카메라가 연결된 무인 소형 자동차가 맞았다. 보스턴과 마주보고 있는 대학도시 케임브리지의 에임스 스트리트 20번지. 5층짜리 흰색 건물을 독차지한 MIT 미디어랩 1층 실험실은 천정이 높은 창고형 할인점 같았다. 아이들이 손쉽게 조립할 수있는 장난감 개발부터 전쟁 취재에 활용할 수있는 저가(低價) 무인 카메라 ‘아프간 익스플로러’ 프로젝트까지, 각각 다른 연구에 매달린 연구원들이 하루 24시간 동안 함께 머리를 맞대는 학제적 연구(interdisciplinary Study)의 현장이다.
틈날 때마다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수있도록 실험실 한가운데 소파가 자리잡고 있다. 내년 6월 박사학위 통과를 앞둔 이스라엘 출신 연구원 길 와인버그씨는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서로 다른 전공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가운데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미디어랩 후원사인 장난감업체 레고 사(社)이름을 딴 이 실험실에는 연구팀 4개가 입주해있다. 미디어랩에는 이렇게 여러 연구 그룹이 함께 쓰는 실험실이 수십 곳이 넘는다.
지난 85년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와 제롬 비스너 MIT 총장이 설립한 미디어랩은 디지털 세계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산실(産室)이다. 요즘 쉽게 볼 수있는 3차원 홀로그래피나 관객들이 영화 줄거리를 선택할 수있는 ‘인터랙티브 시네마’는 물론 ‘입을 수있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 ‘노래하는 신발(Expressive Foots)’ 처럼 황당해보이는 개발품들이 수두룩하다. 컴퓨터처럼 기록하고, 지울 수있으면서 종이처럼 찢을 수도 있는 e페이퍼, 나노(극미세) 기술을 활용한 반도체 개발….미디어랩의 연구리스트에는 불가능해보이는 프로젝트들로 가득하다.
미디어랩의 경쟁력을 높이는 비결은 철저한 산·학(産·學) 연계에 있다. 2001년 예산 3600만 달러(약432억원)중 브리티시 텔레콤, 휴렛 패커드, 인텔, 마스터카드, 모토롤라, 스와치 등 대기업들을 비롯, 150개 후원사가 내놓은 돈이 95%를 넘어선다. 후원사는 언제든지 연구소를 방문, 진행 사항을 확인할 수있다. 실험실 한켠에 방 하나씩 빌려, 연구원을 상주시키는 기업도 수두룩하다. 홍보담당 알렉산드라 칸 씨는 “기업들은 호기심 많은 500 여명의 전문 인력들로부터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글로리아나 데이본포트 교수는 “기업들과 진행중인 연구를 놓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학생들도 생각을 가다듬고, 연구 방향을 정하는 계기가 된다”고 했다.
미디어랩 연구를 주도하는 것은 180여명의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들이다. 30여명의 교수진 지도 아래 각자 최소한 1가지 이상의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학부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학생들이 절반도 안되고, 음악, 영화, 철학 등 인문·예술 전공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 미디어랩에서 학위를 받은 윤송이 박사는 “가상 캐릭터를 연구하는 우리 팀에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감독 출신도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디지털 라이프, 디지털 네이션, 생각하는 사물(Things That Think) 등 5개 연구 컨소시엄 아래 300여개의 소그룹 연구 프로젝트에 분산돼있다.
토드 마초버 교수가 이끄는 ‘장난감 교향곡’(Toy Symphony)팀은 악기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지않은 어린 아이들이 손쉽게 작곡과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3년짜리 프로젝트. 박사과정 연구원 2명과 함께 컴퓨터와 연결된 지름 10㎝정도의 타원형 플라스틱 용기를 툭툭 치자, 퍼커션 연주가 흘러나왔다. 컴퓨터에 입력된 이 연주를 소프트웨어를 활용, 멜로디와 화음을 만들어내고 악기 배치를 마치자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향이 쏟아져나왔다. 토이 심포니는 지난 2월과 4월 베를린과 더블린에서 각각 현지 교향악단과 협연을 가질 정도로 성과를 인정받았다.
스콧 마닐라스 교수는 갓 서른인 소장 학자. 최근 네그로폰테 소장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반도체 생물학’(Silicon Biology)팀을 이끌고 있다. 극미세 반도체를 통해 인체 정보를 인식, 컴퓨터에 전달해줌으로서 암과 당뇨병 등 각종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획기적 도움을 줄 수있는 프로젝트이다. 나노 기술을 활용한 그의 연구는 21세기 인류의 삶을 바꿔놓을 만큼 활용범위가 광범위하다. “그게 가능하냐구요? 쉽게 이뤄질 연구라면 우리가 할 필요가 없죠.” 패기만만한 답이 돌아왔다.
“5~10년 이후에 상품화될수있는 연구는 우리말고 다른 곳에서도 할 수있다. 우리는 최소한 15년 이후의 미래를 내다보고 연구 해야한다.” 네그로폰테 소장이 연구원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미디어랩의 연구 성과는 사실 공상과학영화에서 먼저 만날 수있다. 50년후의 미래를 다룬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미디어랩의 인터페이스 실험실 연구원 출신 존 언더코플라 박사가 참여, 인간과 로봇과의 인터페이스의 일종인 홍채인식시스템을 선보였다.
연구원들의 프로젝트는 상품화로 직결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크라이슬러는 특정 장소에만 소리가 전달되는 ‘오디오 스폿라이트’ 시스템을 신차(新車) 모델에 실험중이다. 미디어랩에서 작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졸업 직후 벤처회사를 차린 조셉 폼페이씨의 작품이다. 일정 부분에만 빛을 비추는 조명처럼 소리를 원하는 곳에만 들리게 하는 이 시스템을 적용하면, 각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헤드폰 없이 옆자리 소음을 신경쓰지 않고 각자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있다. 하지만 미디어랩은 기업에 종속된 ‘신제품개발실’이 아니라, 철저한 연구기관을 표방한다. 글로리안나 데이븐포트 교수는 “미디어랩은 아이디어를 입증하는 곳이지, 제품을 만들어내는 곳이 아니다”고 했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fonte·58) 소장은 MIT 미디어랩과 동의어로 통한다. 1985년 창립부터 강력한 지도력으로 미디어랩을 이끌어온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그의 별명은 ‘미디어랩 외무장관’. 1년에 절반 이상 외부 강연을 다니며, 디지털 문명을 전파하는 전도사 역을 자처하고 있다. 95년 출간한 ‘디지털이다’(Being Digital)는 한국어를 비롯, 40여개 언어로 번역,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네그로폰테 소장은 최근 유럽과 아시아에도 디지털 문명 전파의 거점을 확보했다. 2000년 5월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 미디어랩 유럽 연구소를 만들었고, 2002년1월에는 인도 정부와 함께 뭄바이에 미디어랩 아시아 연구소를 설립했다.
MIT 건축학과를 나온 그는 60년대부터 정보화 문명의 실천가로 활동하면서 명성을 쌓아왔다. ‘와이어드’(Wired)란 IT 전문지를 통해 활발하게 기고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저개발국 어린이들의 컴퓨터 교육을 위한 2B1재단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현재 모토롤라 이사이면서, 20여개 벤처회사에 투자하는 투자자이기도 하다. 96년1월 방한, 대중 강연을 통해 디지털 문명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 미디어랩 현황
▲창립: 1985년 ▲소장: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연구인력: 교수및 선임연구원 40명, 대학원생 180명, 연구보조 학부생 200명. ▲예산: 3600만 달러(2001년) ▲연구분야: 뉴미디어와 IT기술이 융합된 디지털 문명 ▲인터넷 홈페이지: http://www.media.mit.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