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설계

(Mind Design)

 

언어본능 : Steven Pinker 저, 김한영.문미선.신효식 옮김, 그린비, 1998 (원서 : The Language Instinct, 1994)

 

이 책의 첫부분에서 나는 왜 언어본능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지금까지 나는 언어본능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지금까지 나는 언어본능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왜 그 사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를 물을 때이다.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인간임을 의미하는 한 부분이므로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물헝 움직임만을 위해 손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인간임을 의미하는 헐씬 더 중요한 부분이지만, 아마 어느 누구도 책의 마지막 장까지 할애하면서 손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언어에 대해 더 많은 호기심을 보이며, 더구나 열정적이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언어는 정신의 일부로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부분이다. 사람들이 언어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에 대한 지식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통찰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련성이 언어학연구에 생기를 불어넣음으로써 비밀스럽게 진행되어 온 전문적 논쟁에 대한 입장 표명을 불러일으켰고, 연계성이 적은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들의 관심도 끌어들이게 되었다. 철학자이자 실험심리언어학자인 제리 포더 (Jerry Foder) 는 문장 분석이 단위화된 (encapsulated) 정신적 모듈인지, 아니면 지능전체의 혼합물인지를 연구하고 있는데, 이 문제에 관한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솔직하게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당신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은 왜 그 모듈이란 것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가? 당신은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다. 그만 손을 털고 보트여행이나 하러 가는 것이 어떻겠는가?" 이것은 아주 타당한 질문이며, 나 자신도 스스로에게 종종 묻곤 하는 것이다..... 대략적으로 말해서 인지가 지각을 좌우한다는 개념은 관찰이 이론에 의해 포괄적으로 결정된다는 과학철학의 개념과 맥락이 같고, 한 사람의 가치가 문화에 의해 포괄적으로 결정된다는 인류학의 개념과도 맥락이 같다(그리고 사실 역사적으로도 관련이 있다). 그리고 과학을 포함해서 한 사람의 지적인 지향성은 주로 그 사람이 소속된 계급에 의해 포괄적으로 결정된다는 사회학의 개념과도, 한 사람의 형이상학은 그 사람의 통사론에 의해 포괄적으로 결정된다(즉, 워프의 가설-SP) 는 언어학의 개념과도 맥락이 같다. 이 모든 개념에는 일종의 상대주의적 전체론이 내포되어 있다. 지각은 인지에 의해, 관찰은 이론에 의해, 가치는 문화에 의해, 과학은 계급에 의해, 형이상학은 언어에 읭해 결정되므로 과학적 이론과 종교적 가치, 형이상학적 세계관등에 대한 이성적 비판은 단지 대화 당사자들이ㅡ지리적 혹은 역사적, 사회적 이유에서ㅡ우연히 공유하고 있는 가설의 틀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 틀을 이성적으로 비판한다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책심은 이렇다. 나는 상대주의를 싫어한다. 나는 어쩌면 유리섬유 모터보트 다음으로 상대주의를 싫어한다.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나는 상대주의가 오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상대주의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간단하지만 거칠게 표현하자면, 인간 본성의 고정된 구조이다(이것은 물론 참신한 발견이 아니다. 역으로 인간 본성의 유연성은 상대주의자들이 변함없이 힘주어 강조하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존 듀이를 보라....). 인간 본성에 고정된 구조가 존재한다는 인지심리학의 주장은 전통적으로 인지 메커니즘들의 이질성을 강조하고, 그 메커니즘들이 인지구조에 의해 엄격하게 단위화된다는 주장의 형태를 취한다. 여러 능력과 그 능력을 담당하는 여러 모듈이 존재한다면, 모든 모듈이 다른 모든 모듈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즉, 모든 모듈이 서로에 대해 성형성 (plastic) 을 갖고 있지는 않다. 전체가 무엇이든 그것은 둘 이상의 합산이다.

포더에게는 화자의 메시지가 청자의 편견과 기대 떄문에 왜곡되지 않은 채로 곧장 전달되는 문장지각 모듈이 모든 장소, 모든 시대에 동일한 보편적 구조의 인간 정신을 상징한다. 이 정신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취미나 관습, 관심에 의하지 않고 객관적인 실재에 따라 무엇이 정당하고 참인지에 대해 합의할 수 있다. 이것은 약간의 과장이지만, 누구도 거기에 연결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현대의 지적인 삶은 보편적인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상대주의로 가득 차 있으며, 언어본능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그러한 부인에 대한 도전이다.

그 상대주의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학설이 표준 사회과학 모델 (SSSM) 이며, 이것은 1920년대부터 지적인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인류학적 개념과 심리학적 개념의 결합이다.

1. 동물은 그들의 생물학적 환경에 의해 엄격히 통제되는 반면, 인간의 행동은 기호화 가치의 자율적 체계인 문화에 의해 결정된다. 생물학적 제약을 제외한다면 문화는 임의적으로 그리고 무한히 다양할 수 있다.

2. 인간의 유아는 단지 몇 가지 반사능력과 학습능력만을 가지고 태어난다. 학습은 지식의 모든 영역에서 사용되는 만능의 과정이다. 아이들은 교화, 보상과 벌 그리고 역할 모델을 통해 문화를 학습한다.

지금까지 SSSM은 학계 내에서 인류에 대한 연구의 근거였을 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세속적 이념, 즉 버젓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취해야 할 인간 본성에 대한 태도로서 작용하고 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는 '생물학적 결정론' 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이 곧 사회 ˙ 정치 ˙ 경제적 계층구조의 고정된 틀 속에 사람들은 배정하고, 또 최근 수세기에 걸친 공포스러운 일들, 예를 들어 노예제도, 식민주의 , 인종적 ˙ 민족적 차별,경제적 ˙ 사회적 카스트 제도, 강제 불임, 성차별, 대량 학살 등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SSSM의 창시작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Margaret Mead) 와 심리학자 존 왓슨 (John Watson) 은 이러한 사회적 의미를 분명히 염두에 두고 있었다.

우리는 인간 본성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연하여 상반된 문화적 조건들에 정확하게 그리고 상반되게 대응한다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상이한 개인차에 따라 다소 편차를 보이기는 해도....(그 어떤 기질이든)비슷한 교육수준에 이를 수 있다....... 우리가 상반된 가치들이 풍부하게 존재하는, 좀더 풍요로운 문화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인간 잠재성의 전범위를 인식하여 보다 독단적이지 않은 사회적 직물을 짜야 한다. 다양한 인간적 재능들은 그 속에서 적합한 장소를 찾게 될 것이다(미드,1935).

나에게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건강한 10명의 아이들과 그들의 양육을 위해 나가 직접 규정한 세계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아이든 무작위로 한 명을 선택해서 그 아이를 재능, 기호,성향, 능력, 적성 그리고 조상의 인종에 상관없이 내가 무작위로 선택한 직종의 전문인ㅡ의사나 변호사, 예술가, 상인 그리고 심지어는 거지나 도둑ㅡ이 되도록 훈련시킬 수 있다고 확언한다(왓슨,1925).

최소한 학식 있는 사람들의 수사학에서 SSSM은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그들은 정중한 지적 대화나 고상한 저널리즘에서 볼 수 있는 인간 행동에 대한 어떤 일반화도, 중세의 왕들에게서 완고한 노동자들 (Archie Bunker) 에 이르는 모든 화작가 역사상 불쾌했던 유전론자들과는 무관하다는 의미에서 SSSM의 구호로 서문을 연다. 즉 그들은 다른 사회를 조사한 적이 없으면서도 '우리 사회는' 하고 논의를 시작하고, 아이들의 경험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회화한다' 라고 하며, 또한 한 연기자에게 임의로 할당된 극중인물 또는 역할을 의미하는 단어인 '배역 (role)' 의 비유적 적절성에 상관없이 '배역에 따라' 라고 결론짓는다.

최근에 시사잡지들은 "시계추가 돌아오고 있다" 고 말한다.그들은 평화주의자아자 페미니스트인 부모가 총에 미친 세 살바기아들과 바비인형에 빠진 네 살바기 딸에 대해 경악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유전적 요인이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사각형의 가로와 세로가 그 면적을 결정하는 데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듯이 모든 행동은 천성과 양육의 상호작용에 의해 나타나며, 이 두 요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임을 독자에게 상기시킨다.

우리가 알게 된 언어본능에 관한 지식들이 유전과 환경이라는(또는 천성과 양육, 생득설과 경험설,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생물학과 문화로도 알려져 있는 )무분별한 이분법으로 축소되어 버린다면, 혹은 복잡하게 뒤엉킨 상호작용에 대한 쓸모 없는 브로마이드나 과학적 유행에 따라 흔들리는 시계추의 냉소적인 이미지로 접혀버린다면 그것은 우울한 일일 것이다. 나는 언어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인간의 정신과 본성을 연구하는데 좀더 만족스러운 방법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우리는 그 논점들을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도식화하는 전(前)과학 ˙ 비과학 모델을 폐기할 수 있다.

 

행동의 근원이 유전인가 환경인가 또는 그 둘 사이의 어떤 상호작용인가에 대한 '논쟁' 은 모순적이다. 유기체는 사라졌다. 지각하는 사람 없이 환경이 존재하며, 행위자 없는 행위, 학습자 없는 학습이 존재한다. 체셔 고양이가 아주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본 앨리스는 고양이의 나머지 부분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고양이의 웃음이 한 동안 남아 있자 "어머나! 웃음 없는 고양이는 자주 봤지만, 고양이 없는 웃음이라니! 이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기이한 일이야!" 라고 생각했다.

다음의 모델 또한 단순하지만 훨씬 나은 출발점이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모든 지각, 학습, 행동의 직접적인 원인인 인간 두뇌의 복잡성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습은 선천성의 대안이 아니다. 학습을 수행할 수 있는 선천적인 메커니즘이 없다면, 학습은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어본능애 대해  얻은 지식이 이를 분명히 해준다.

초조한 사람들을 위해 먼저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유전과 환경이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본에서 성장한 아이는 결국 일본어로 말하게 된다. 그 아이가 미국에서 양육되었다면 영어로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이 어떤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어떤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애완동물인 햄스터와 떨어지지 않는 경우, 그 아이는 결국 어떤 언어를 말하게 되지만 동일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햄스터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전이 어떤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 사람들은 무한한 수의 새로운 문장들을 이해하고 말할 수 있으므로 그들의 '행동' 특성을 직접적으로 규명하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즉, 언어행동이 동일한 두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한 사람의 잠재적 행동은 열거할 수 조차 없다. 그러나 무한한 수의 문장들은 문법이라는 유한한 규칙체계에 의해 생성될 수 있으므로, 언어행동의 기초를 이루는 정신문법과 심리적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것은 타당하다.

•  언어는 우리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우유가 그저 트럭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도시 아이들처럼 언어에 대해 무덤덤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단어를 조립해서 정상적인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떤 일인가에 대해 면밀히 조사해 보면, 정신적인 언어 메커니즘들은 복잡한 설계를 가지고 있고, 많은 부분들이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 이 미세한 시각으로 볼대, 바벨탑의 언어들은 더 이상 인지적으로 그리고 무제한적으로 다양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때 우리는 세계 언어의 기저에 존재하는 공통의 설계인 보편문법을 보게 된다.

•  이 기본적 설계가 특정한 문법을 학습하는 메커니즘에 설치되어 있지 않다면 학습은 불가능할 것이다. 부모의 말에서부터 전체로서의 언어에 이르는 일반화의 가능한 방법들은 여러 가지가 존재하며, 아이들은 올바른 방법들을 재빨리 획득한다.

• 마지막으로 학습 메커니즘 가운데 일부는 일반적인 문화와 상징적 행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어 그 자체를 위해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고도의 문법을 가진 석기시대 사람들, 유능한 문법학자인 무기력한 걸음마 단계의 아이들 그리고 언어적인 천재 백치들을 보았다. 또 우리는 상식의 논리를 초월하는 문법의 논리, 예를 들어 John is running에서의 John과 It is raining에서의 it이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 mice를 먹는 mice-eaters그리고 rats를 먹는 rat-eaters의 차이 등을 보았다.

언어가 주는 교훈은 다른 정신분야에서도 유용했다. 다윈과 윌리엄 제임스에 뿌리를 두고 촘스키와 그의 작업을 이어가는 심리학자와 언어학자들의 언어 연구에서 영감을 얻은, 표준 사회과학 모델에 대한 대안이 출현했다. 컴퓨터 신경학자 데이비드 마르 (David Marr) 와 심리학자 로저 셰퍼드 (Roger Shepard) 는 그것을 시지각에 적용시켰고, 인류학자 댄 스퍼버 (Dan Sperber), 도널드 시먼스 (Donald Symons), 존 투비, 언어학자 레이 잭켄도프 (Ray Jackendoff), 신경학자 마이클 가자니가, 심리학자 레다 코스미데스, 랜디 갈리스텔 (Randy Gallistel), 프랭크 케일 (Frank Keil) 그리고 폴 로진 (Paul Rozin) 등은 그것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투비와 코스미데스는 최근에 발표한 「문화의 심리학적 토대 (The Psychological Foundations of Culture)」라는 뛰어난 논문에서 이 대안을 '통합적 인과모델 (The Integrated Causal Model)' 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진화가 어떻게 뇌의 발생을 야기했는가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뇌가 인지와 학습 같은 심리적 과정을 야기하고, 그 심리적 과정이 한 사람의 문화를 구성하는 가치와 지식의 습득을 야기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심리학과 인류학을 여탸의 자연과학 분야들, 특히 신경학과 진화생물학에 통합시킨다. 이 마지막 연관성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진화심리학 (Evolutionary Psychology) 이라 부르기도 한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언어가 주는 교훈 가운데 많은 것을 취하여 다른 정신적 분야에 적용한다.

•  언어가 복잡한 정신적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하는 믿기 어려운 성과인 것처럼, 지각과 추리, 행동 등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정신생활의 다른 업적들도 나름대로 훌륭한 기능을 갖춘 정신적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한다. 문법의 연산적 운용을 위한 보편적 설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인간 정신의 여타 분야를 위한 보편적 설계가 존재한다. 이 전제는 인류의 화합과 형제애를 향한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진화생물학과 유전학에서 충분한 동기를 얻어 발견해낸 인류에 대한 진정한 지식이다.

•  진화심리학은 학습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몰리에르의 희곡 「기분으로 앓는 사나이 (Le Malade Imaginaire)」에서 학식 있는 의사가 아편이 어떻게 사람을 잠재우는지 설명하라는 요구를 받자, 아편에는 '잠을 초래하는 힘' 이 있다고 말한다. 라이프니츠 (Leibniz) 도 이 의사와 같이 사고하는 사상가들을 이렇게 조소했다.

(그들은)특히 신비스러운 성질이나 능력이 있어서 그것이 작은 악마나 도깨비처럼 필요한 것을 홀연히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마치 톱니바퀴 없이 어떤 측시법의 능력으로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나 연자매와 비슷한 어떤 것도 필요 없이 단편적인 능력으로 곡물을 빻는 제분소처럼.

표준 사회과학 모델에서 '학습'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간주되었다. 반면에 진화심리학에서는 학습을 가능케 하는 어떤 선천적인 메커니즘이 없다면 학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인간 경험의 상이한 분야들ㅡ언어, 도덕, 음식, 사회적 관계, 물리적인 세계 등ㅡ을 위한 학습 메커니즘들은 종종 상반된 목적하에서 작용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한 영역에서 올바른 것을 학습하도록 설계된 메커니즘이라도 다른 영역에서는 완전히 틀린 것을 학습하고 만다. 이것은 학습이 단일한 만능장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기 다른 모듈에 의해 성취되며, 각각의 모듈은 해당 영역의 특유한 논리와 법칙에 맞추어져 있음을 시사한다. 사람들에게 융통성이 있는 이유는 환경이 그들의 정신을 두드리거나 조각해서 임의적인 형태로 만들어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에 각기 다른 다양한 모듈이 담겨 있으며, 각각의 모듈은 나름의 방식으로 학습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  복잡한 공학적 설계의 징후를 보이는 생물학적 시스템들이 사고나 우연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그들의 조직은 자연선택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틀림없고, 인간이 진화해 온 환경에서 생존과 재생산에 유용한 기능들을 습득해야 했을 것이다(그러나 이것이 정신의 모든 측면이 적응이라거나, 정신의 적응이 가령 20세기의 도시들처럼 진화상 새로운 환경에 반드시 유익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  마지막으로 문화도 나름의 역할을 다한다. 다만 이때의 문화가 어떤 형체 없는 유령 같은 과정이나 자연의 근본적인 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언어' 또는 '방언' 이 한 공동체 내의 상이한 화자들이 매우 유사한 정신문법을 습득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것처럼, '문화' 란 특정한 종류의 학습이 한 공돋체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 전염되듯이 퍼져서 사람들의 정신이 공유된 형태로 조정되어 가는 과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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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의 설계에 대한 이 새로운 견해를 논의하기에 좋은 출발점은 바로 우리가 언어본능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던 장소인 보편성이다. 내가 초기에 지적했듯이 언어는 인간사회에서 보편적이며, 우리가 아는 한 우리 종이 생겨나면서부터 계속 존재해 왔다. 비록 언어들은 상호간에 이해가 불가능하지만,이 피상적인 다양성 밑에는 명사와 동사, 구 구조와 단어 구조, 격과 조동사 등을  갖춘 보편 문법이라는 단일한 연산적 설계가 놓여 있다.

얼핏 보면  문화인류학적 기록은 두드러진 대비를 제공하는 것 같다. 현세기의 인류학은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박람회장으로 우리를 인도해 왔다. 그러나 금기, 친족제도, 샤먼 숭배 같은 모든 카니발은 영어의 dog와 독일어 hundt의 차이처럼 단지 표면적인 것으로서 그 속에 보편적인 인간 본성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인류학자들 자신의 문화를 볼 때, 무엇이든 괜찮다는 그들의 일관된 사상은 우리를 걱정스럽게 만든다. 미국의 가장 저명한 인류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클리포드 기르츠 (Clifford Geertz) 는 동료들에세 '파격적인 것들을 소리치며 팔고, 기이한 것들을 소매하는 깜짝 상인' 이 되라고 권고하면서 "만일 우리가 지극히 국내적인 진실만을 원했다면 우리는 국내에 머물러 있어야 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학자들이 인간의 행동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방식에 담긴 어떤 보편적인 형태도 간과하도록 만드는 태도이다. 실제로 이 태도는 '에스키모 어휘에 대한 극심한 왜곡' 에서 처럼 평범한 것들이 파격적인 것으로 은폐되는 명백한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 어떤 젊은 인류학자가 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왔다.

에스키모 어휘에 관한 이야기가 내 연구계획의 한 부분을 차지 할 것입니다. 「100년 동안의 인류학적 과오 (One Hundred Years of Anthropological Malpractice)」라는 제목으로 작업중인 책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고약한 전문적 무능력의 사례를 수집해 왔습니다.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됐지만, 해당 분야의 상투적 지식으로서 알게 모르게 각종 교과서에 수록된 인류학의 진부한 이야기들 말입니다. 사모아에는 프리섹스의 관습이 있어서 범죄와 스트레스가 없다는 이야기, '점잖은' 아라페쉬 (Arapesh) 족과 같이 성이 반전된 문화(남자들은 사람 사냥꾼임), '석기시대의 생활에 머물러 있는'  원시적인 타사다이족 (Tasaday, 부패한 필리핀 문화부장관이 모계사회 '원주민' 이라고 조작한 부락민들), 문명의 여명기에 존재했던 모계사회, 근본적으로 상이한 호피족의 시간개념, 모든 것이 이곳과는 반대라고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문화, 기타 등등...... 이것들을 통합시키는 하나의 맥락이 있습니다. 철저한 문화상대주의에 물든 인류학자들은 오직 상식만을 갖춘 보통 사람들보다 훨신 쉽게 터무니없는 것들에 현혹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마치 카스테녜다의 돈주안 이야기와 흡사한 것들ㅡ내가 정말로 재미있게 읽었던 이야기들ㅡ이 수많은 교과서에 엄연한 사실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 다시 말하자면, 그들의 직업적 '전문성' 이 그들을 완전하고도 철저한 얼간이로 만들어왔던 것입니다. 근본주의가 기적에 대한 설명을 수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과 똑같이 훈련된 인류학적 신념을 가진다는 것은 다른 지역의 그 어떤 이국적인 설명들도 믿게끔 해줍니다. 실제로 이러한 많은 넌센스가 모든 학식 있는 사회과학자들이 표준적인 지적 장치의 일부가 되어 다양한 정신적 ˙ 사회적 현상에 대한 균형 있는 추리에 영구적인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 이것은 나를 영구적인 고용불능자로 만들 것 이라 생각하므로 나는 이것을 조만간에 끝낼 계획이 없습니다.

사모아인들의 프리섹스에 대한 언급은 1983년 데릭 프리먼 (Derek Freeman) 의 폭탄선언과 연관된 것으로서, 그는 마거릿 미드가 자신의 고전적 저서인 「사모아의 성년식 (Coming of Age in Samoa)」에서 사실을 얼마나 왜곡시켰는지를 보여주었다(무엇보다도 지루해진 10대의 정보제공자가 장난으로 그녀를 속였던 것이다). 모범적인 문화인류학적 전통 속에서 훈련받은 또 다른 인류학자인 도널드 브라운 (Donald E. Brown) 은 최근에 쓴 「인간의 보편성 (Human Universals)」 이란 논문에서 그밖의 문제점들을 자세히 기록했다. 브라운은 타민족들의 이상한 행동에 대한 언어학적 설명의 이면에는 계급, 정중함, 유머 같은 인간 경험의 분명한 그러나 추상적인 보편 특성들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인류학자들이 다른 인간집단들과의 공통 전제를 풍부하게 공유하지 못한다면, 그들을 이해하거나 그 집단 내에서 생활할 수 없을 것이다. 댄 스퍼버는 그것을 메타문화라고 부른다. 투비와 코스메데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물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물고기처럼 인류학자들은 보편적인 인간의 메타문화를 이용해 이 문화 저 문화를 헤엄쳐 다닌다. 메타문화는 그들이 모든 사고를 채워주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인류학자들이 다른 문화에서 이형을 경험할때, 그들은 이전에 자신의 문화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새롭게 인식한다. 마찬가지로 생물학자와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문화인류학자가 가본 그 어느 장소보다도 훨씬 더 이상한 정신이 존재하는 곳을 여행하는 인류학자들이다.

촘스키의 보편문법 (UG, Univeral Grammer) 에서 영감을 얻는 브라운은 보편민족 (UP, Universal People) 의 특징을 규명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는 문화인류학자들의 보고서에 의해 잘못 전해진 이국적인 것들에 대한 주장과 부족한 증거에 근거한 보편적 특성들에 대한 주장 모두에 회의적인 시각을 유지하면서, 문서화된 모든 인간의 문화적 행동의 기저를 이루는 보편적 유형을 찾기 위해 문화인류학의 서고를 꼼꼼히 탐구했다. 결과는 아연실색할 만한 것이었다. 임의적인 이형을 발견하기는 커녕, 보편민족의 특성을 풍부하고도 상세하게 규명할 수 있었다. 그의 발견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사항들이 담겨 있으므로 이제 여기에서 그 내용을 재생하고자 한다. 브라운에 따르면, 보편민족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소유한다.

•  명료함에 대한 가치 부여, 잡담, 거짓말,오해의 유도, 언어적 유머, 유머러스한 모욕, 시적이고 수사적인 구어의 형식, 이야기 하기, 비유, 언어적 요소가 반복되는 시와 휴지부에 의해 분리되는 3초 단위의 행, 날짜 •  달 •  계절 •  연도 •  과거 •  현재 •  미래 •  신체부위 •  내적 상태(감정, 정서, 생각) •  행동경향 •  식물군 •  동물군 •  날씨 •  도구 •  공간 •  동작 •  속도 •  위치 •  공간적 차원 •  물리적 특성 •  수여 •  임대 •  사람과 일에 대한 영향 •  수(최소한 '하나', '둘', '둘 이상') •  고유명사 •  소유에 대한 단어들, 어머니와 아버지의 구별, 어머니 • 아버지 •  아들 ˙ 딸 그리고 나이 순서로 정의되는 혈족관계의 범주, 남과 여 •  흑과 백 •  자연과 문화 •  선과 악 등의 2분법, 특정단위, '아님' •  '그리고' •  '동일한' •  '동등한' •  '반대' •  보편과 특수 •  부분과 전체 등의 논리적 관계, 추측에 의한 추리(감지 가능한 자취를 통해 부재중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의 존재 추론하기).

•  울음소리와 비명소리 같은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행동에 근거한 의도의 해석, 행복 • 슬픔 •  분노• 공포 •  놀람 •  불쾌함 •  경멸 등을 표현한다고 인정되는 얼굴표정, 친근한 인사로서의 미소, 울음, 눈짓으로 표현되는 은근한 유혹, 은폐 • 정정 • 흉내를 표현하는 얼굴표정, 애정의 표시.

• 자신 대 타인에 대한 의식, 책임감 •  자발적 행동 대 비자발적인 행동 •  의도 •  사적인 내면생활 •  정상적인 정신상태 및 비정상적인 정신상태 등에 대한 의식, 감정이입, 성적 매력, 강력한 성적 질투심, 아동기의 두려움 특히 커다란 소음에 대한 두려운과 첫돌이 긑날 무렵의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 뱀에 대한 두려움, 올이디푸스 콤플렉스 (어머니에 대한 소유감, 그녀의 배우자에 대한 냉정함), 얼굴 인식, 신체장식과 머리치장, 부분적으로는 건강한 외모 그리고 여성의 경우에는 젊은 외모에 근거한 성적 매력, 위생, 우용, 음악, 싸우는 놀이를 포함한 놀이.

•  절단기 •  절구 •  용기 •  줄 •  지렛대 •  창을 포함한 여러 가지 도구의 제작 및 그에 대한 의존(이중 많은 것들이 영구적이며, 문화적으로 전달되는 모티브에 따라 만들어짐), 요리를 비롯한 다양한 목적을 위한 불의 사용, 의료적 ˙ 오락적 마약, 주거, 인공물의 장식.

•  특정 시기에 특정 패턴으로 이루어지는 이유식, 영토소유 의식과 종족의식을 가진 집단형태의 생활, 한 어머니와 자녀들 •  일반적으로 생물학적인 어머니와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남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가족들, 아이 낳기에 적합한 여성에 대한 성적 접근이 허락되는 공인된 권리라는 의미에서의 제도화된 결혼, 나이 많은 친족에 의한 아이들의 사회화(용변교육 포함), 아이들의 연장자 모방, 가까운 친척과 먼 친척의 구분 및 가까운 친척 선호,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근친상간 기피, 성이라는 주제에 대한 지대한 관심.

•  (혈통, 나이, 성에 의해)할당되고 성취되는 신분  및 명성, 어느 정도의 경제적 불평등, 성과 나이에 의한 노동의 분리, 여성에 의한 자녀양육의 높은 비중, 남성에 의한 공격과 폭력의 높은 비중, 남성과 여성의 본질적 차이 인정, 공적정치분야에서의 남성지배, 노동 • 재화 •  서비스의 교환, 보복을 포함하는 호혜주의 원리, 선물, 사회적 설득, 연대, 공적인 일에 대한 집단적 결정을 수렴한다는 의미에서의 정치, 대부분의 경우 비독재적이며 형편에 따라서는 일시적인 지도자들, 폭력 •  강간 •  살인에 대한 법률을 포함한 법과 권리와 의무, 처벌,개탄의 대상인 갈등, 강간, 잘못에 대한 교정 추구, 중재, 집단 내외의 충돌, 소유권, 재산의 상속, 옳고 그름에 대한 개념, 선망.

•  예의범절. 환대, 축제, 주행성(晝行性), 성적인 정숙함에 대한 표준, 일반적으로 사적인 성, 단 음식의 선호, 금기식품, 신체 소모적인 것들의 제거에 대한 사리분별, 초자연적 신앙, 삶을 유지 또는 확대시키거나 이성을 사로잡기 위한 마술, 행운과 불운의 이론, 병과 죽음에 대한 설명, 의료행위, 통과의례를 비롯한 의식, 고인에 대한 애도, 꿈과 꿈의 해석.

분명 이것은 본능이나 선천적인 심리적 성향의 목록이 아니다. 이것은 보편적인 인간 본성과 이 지구상에서 인간의 몸으로 살기 위한 조건들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목록이다. 서둘러 덧붙이건대, 그것은 또한 불가피한 것에 대한 특징화도, 가능한 것에 대한 경계 설정도, 바람직한 것에 대한 규정도 아니다. 1세기 전에 인간의 보편특성을 목록화했더라면 아이스크림, 경구피임약, 영화, 로큰롤, 여성의 참정권, 언어본능에 관한 책 등은 포함되지 않았겠지만, 그것이 또한 이러한 혁신을 가로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버터 바른 토스트를 커피에 담가 먹는, 따로 양육된 일란성 쌍둥이처럼 브라운의 보편민족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기존 관념을 뒤흔들어 놓는다. 쌍둥이의 특성을 발견하는데 버터 바른 토스트를 커피에 담그는 유전자가 필요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편특성을 발견하는 데도 보편적인 용변교육 본능이 포함되지 않는다.

X-바 이론(핵계층이론)이 단어 순서의 보편적 특성들과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보편적 정신에 대한 이론도 분명 보편민족과 추상적으로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관련된 어떤 이론도 임의적인 역할 모델을 학습하거나 모방하는 일반화된 경향 이상의 많은 것을 인간의 머릿속에 가정해야 함은 분명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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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히 가변적인 인간의 특성이라는 그릇된 인류학적 가정과 함께, 심리학에서 비롯된 무한히 습득할 수 잇는 학습능력이라는 가정을 살펴보자. 우리는 일반적인 만능의 학습장치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명시적 교육ㅡ들음으로써 학습하기ㅡ은 일종의 만능학습이지만, 대부분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아무도 보편문법의 작동방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으나, 아이들은 어쨌든 그것을 준수한다. 그러므로 분명 그것은 선천적이다" 와 같은 주장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대부분의 학습이 수업 이외의 시간에 실례들을 일반화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데 동의한다. 아이들은 역할 모델로부터 또는 보상을 받거나 받지 못하는 자신의 행동으로부터 일반화한다.  그 힘은 유사성에 의거한 일반화로부터 나온다. 부모의 문장들을 곧이곧대로 되풀이하는 아이는 능력 있는 학습자가 아니라 자폐적인 아이라고 불릴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문장과 유사한 문장들을 일반화해 내는 것이지, 부모의 문장을 그대로 일반화해 내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짖는 독일산 셰퍼드가 무는 것을 관찰한 아이는 짖는 도버맨핀처나 그밖의 유사한 개들도 그럴 것이라고 일반화할 것이다.

그러므로 유사성은 일반적인 만능의 학습장치라고 가정할 수 있는 것의 주된 요소이며, 바로 그것이 문제이다. 논리학자 넬슨 굿맨 (Nelson Goodman) 의 말을 빌자면, 유사성은 '흉내쟁이고, 사기꾼이며, 돌팔이' 이다. 문제는 그 유사성이 객관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설명하고자 하는 바이다. 굿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항 탑승수속실에 있는 짐을 생각해 보자. 검사관은 그 짐의 형태, 크기, 색, 재료, 심지어는 구조까지 인식할 것이다. 조종사는 짐의 무게에, 승객들은 목적지와 소유권에 더 큰 관심을 가진다. 그 짐이 어떤 짐과 유사하고 어떤 짐과 다른가는 그 짐들이 공유하는 속성뿐 아니라 누가 언제 그러한 비교를 행하는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 앞에 세 개의 물컵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첫번째 두 컵에는 무색의 용액이 들어 잇고, 세번째 컵에는 붉은색 용액이  들어 있다. 나는 첫번째 두 컵이 세번째 것보다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첫번째 컵은 물이 담겨 있고, 세번째 컵은 야채즙 한 방울로 색깔이 번진 물이며, 두번재 컵은 염산이 들어 있다. 그런데 나는 목이 마르다.

여기에 함축된 의미는 '유사성' 에 대한 감각이 분명 선천적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논쟁의 여지가 별로 없다. 단순한 논리이다.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비둘기가 붉은색 원 안에 있는 열쇠를 쪼면 보상을 받는 경우, 그 비둘기는 파란색 사각형보다는 붉은색 타원형이나 분홍색 원을 더 많이 쫀다. 이러한 '자극 일반화' 는 별도의 훈련 없이 반사적으로 발생하며, 이는 선천적인 '유사성 공간' 을 수반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동물은 모든 것을 일반화하거나 아무것도 일반화하지 못할 것이다. 자극의 이러한 주관적 공간화는 단지 학습에 필요한 것들이므로 그것들 자체가 모두 학습될 리는 없다. 그러므로 논리학자 콰인이 지적한 바대로(그의 동료 스키너는 반대하지 않았다), 행동주의자도 선천적인 유사성 결정 메커니즘의 분야에 "흔쾌히 목을 매달고 있다."

언어습득의 경우, 아이들이 부모의 말에 들어 있는 문장들로부터 영어의 나머지를 규정하는 '유사한' 문장들을 일반화해 낼 수 있게 해주는 선천적 유사성 공간은 무엇인가? "붉은색은 파란색보다 분홍색과 유사하다" 또는 "원은 삼각형보다는 타원과 유사하다" 라는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 일종의(문법과 관련된)연산적 운용으로써 John likes fish를 Mary eats apples 와 유사하게 만드는 동시에, John night fish와는 유사하게 만들지 않는 어떤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는 John might apples 라고 말할 것이다. 또 그것은 The dog seems sleepy를 The men seem happy과는 유사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틀림없고, 그래서 아이는 잘못된 도약을 피하게 된다. 즉, 아이들의 일반화를 유도하는 그 '유사성' 은 학습 메커니즘들을 구성하는 보편문법에 의해 운용됨으로써 말을 명사와 동사와 구로 분석하는 일종의 언어분석이어야 한다. 어떤 문장이 어떤 문장과 유사한지 규정하는 그러한 선천적인 운용이 없다면, 아이가 어떤 것을 정확하게 일반화할 수 있는 방도는 전혀 없게 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어떤 문장도, 그야말로 스스로 반복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문장과도 유사하지 않을 것이다. 또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단어들의 어떤 임의적 배열과도 유사할 것이며, 다른 모든 종류의 부적절한 단어열과도 유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학습된 행동의 융통성은 정신에 대한 선천적인 제약들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는 것이 전혀 역설적이지 않은 이유이다. 언어습득에 관한 장(102~103쪽 참조)에는 좋은 예가 제시되어 있다. 무한한 수의 잠재적 문장들을 일반화해 낼 수 있는 아이의 능력은 정해진 일련의 정신적 범주들을 이용하여 부모의 말을 분석하는 것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실례를 통해 문법을 학습한다는 것은(규범문법이 규정하는)특별한 유사성 공간을 필요로 한다. 실례를 통해 단어의 의미를 학습하는 것도 그렇다. 우리는 콰인의 gavagai문제에서 그것을 보았다. 단어를 학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gavagai가 '토끼'를 의미하는지, '깡총깡총 뛰는 토끼' 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분리되지 않은 상태의 토끼의 부분들' 을 의미하는지 알아내는데 어떤 논리적 근거도 없다면, 다른 모든 것들을 학습하는 경우는 어떠한가? 콰인은 자신이 '귀납의 스캔들' 이라 명명한 것을 다음과 같이 발표함으로써 그러한 불씨를 제거 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다른 귀납법들에 대해 더욱 궁금해지는데, 이 경우에 탐구되고 있는 것이 우리 이웃의 언어적 행동에 대한 일반화가 아니라 거친 비인격적 세계에 대한 일반화는 아닌가? 우리는 같은 깃털을 가진 존재이므로 우리의 (정신적) 특질공간 이 우리 이웃들의 것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므로 단어학습.....에 대한 귀납법의 일반적 신뢰성은 조작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귀납법을 자연의 진리에 대한 접근방법으로서 신뢰하는 것은 우리의 특질공간이 우주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가정에 좀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다.....(그러나)우리의 선천적인 주관적 특질공간들이, 우리의 귀납법이 직접적으로 생성될 만큼 기능적으로 자연과 관련된 범주들과 그토록 잘 일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주관적으로 공간화된 우리의 특질들은 특히 자연에 발판을 마련하고 미래에 대한 선점권을 가져야 하는가? 다윈주의에서는 이것을 어느 정도 장려한다. 만일 사람들의 선천적인 특질공간이 유전자와 연결된 특성이라면, 가장 성공적인 귀납을 위해 수행된 공간화는 자연선택을 통해 우세해졌을 것이다. 귀납법에서 고질적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생물체들은 자신의 종족을 재생산하기 전에 죽게 되는 애처로우나 바람직한 경향을 가진다.

대단히 옳은 말이다. 하지만 우주는 이질적이고, 그러므로 우리의 일반화가 우주와 조화를 이루도록 해주는 유사성들의 계산 또한 이질적이어야 한다. 문법의 학습이라는 측면에서 두 개의 발화가 동등해질 수 있는 특질들ㅡ가령 명사와 동사들이 동일한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ㅡ은, 큰소리를 내면 동물을 겁주어 쫓아 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소리치는 두 개의 발화가 동등해질 수 있는 특질들과는 다르다. 어떤 식물의 경우 질병을 야기하거나 치료한다는 점에서 동등하다고 볼 수 있는 상이한 두 부위의 특질과 먹기 위해서는  달야야 하고, 땔감으로 쓰기 위해서는 마른 상태여야 하며, 주거지에 비가 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두꺼워야 하고, 선물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점에서 동등하다고 볼 수 있는 특질과는 다르다. 가령 애정을 표현하는 행위처럼 사람들을 잠재적인 동맹자로 분류하는 특질과 잠재적인 짝으로 분류하여 다산능력의 신호를 보여주거나 근친이 아님을 보여주는 특질은 다르다. 이처럼 각기 다른 본능 또는 모듈에 의해 규정되는 많은 유사성 공간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 공간들의 작용으로 그 모듈들은 물리적 세계, 생물학적 세계 또는 사회적 시계와 같은 영역들을 지적으로 일반화할 수 있다.

선천적인 유사성 공간들은 학습의 논리에 고유한 것이므로, 인공지능에서 인간이 만드는 학습 시스템들이 언제나 특정한 지식영역의 제약들을 활용하도록 설계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야구규칙을 학습하도록 설계되는 컴퓨터 프로그램에는 서로 경쟁하는 운동경기의 기본 전제들이 미리 프로그램화되고, 그래서 그 프로그램은 경기자들의 동작을 안무된 춤이나 종교의식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영어 동사의 과거시제를학습하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에는 단지 그 동사의 소리만이 입력물로서 제공된다. 한편 동상의 사전기재항을 학습하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에는 그 의미만이 제공된다. 이 필요조건은 설계자들이 수행하는 일에서는 분명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에서는 종종 불분명해진다. 표준 사회과학 모델의 전제하에서 작업하는 컴퓨터 과학자들은 종종 자신들의 프로그램이 바로 강력한 만능학습 시스템의 시험작이라고 과장하곤 한다. 그러나 완전한 인간 정신의 모형화를 시도할 정도로 무모한 사람은 없을 것이므로, 연구자들이 이 현실적인 한계를 활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유롭게 자신들의 견본 프로그램을 당면한 해결과제에 맞출 수 있고,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입력물을 그 프로그램에 제공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비판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학습 시스템이 작용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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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간 정신의 모듈이란 무엇인가? 촘스키에 대한 학계의 일반적인 패러디에서 그는 대개 자전거 타기, 셔츠와 넥타이 맞추기, 카뷰레터 수리 등을 위한 선천적인 모듈을 제안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언어에서 카뷰레터 수리로 넘어가는 경사는 그렇게 미끄럽지 않다. 그리고 몇 개의 확고한 발판을 디디기만 하면 미끄러짐을 피할 수 있다. 우리는 공학적인 분석을 이용하여 하나의 시스템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절한 일반화를 행하려면 원칙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를 조사해 볼 수 있다(예를 들어 인간이 어떻게 형태를 지각하는가를 연구할 때, 우리는 각기 다른 가구를 인식할 수 있는 한 시스템이 또한 각기 다른 얼굴을 인식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 시스템은 얼굴에 대한 특별한 형태 분석을 필요로 하는가의 여부를 물을 수 있다). 또 우리는 생물학적 인류학을 이용하여 특정한 문제가 우리 조상들이 진화환경 속에서 해결해야 했던 문제라는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언어와 얼굴인식은 최소한 선천적 모듈의 후보일 수 있지만, 읽기와 운전은 그렇지 않다. 심리학과 문화인류학의 자료를 이용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예측을 실험해 볼 수 있다. 아이들이 그들의 정신적 모듈과 관계가 있는 문제를 해결할 때, 그 아이들은 배우지 않은 것들을 알고 있는 천재처럼 보일 것이다. 반면에 그들이 그들의 정신에 해결장비가 갖추어지지 않은 문제를 해결할 때는 멀고도 험난한 길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약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한 모듈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신경과학은 그 문제를 계산하는 뇌의 세포조직에 회로 또는 하부시스템을 구성하는 등의 심리학적 정합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한다.

나 스스로 약간 무모한 일을 시도하여 언어와 지각은 잠시 제쳐두고, 어떤 종류의 모듈 또는 어떤 계보에 속한 본능이 결국이 실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 추측해 보고자 한다(정당화를 위해 '적응된 정신' 이라고 부르는 최근의 일람표를 싣는다).

1. 직관기계학: 물체가 경험하는 동작, 힘, 변형에 대한 지식

2. 직관생물학: 식물과 동물의 작용방법에 대한 이해.

3. 수.

4. 커다란 영토에 대한 정신적 지도.

5. 주거지 선택: 안전하고 정보가 풍부하며, 생산적인 환경. 일반적으로 사바나 같은 환경의 추구.

6. 높이 · 감금 · 위험한 사회적 충돌 · 유해동물과 육식동물 같은 자극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의 감정을 포함하는 위험공포증, 그리고 각각의 자극이 어떤 환경에서 무해한지를 학습하는 동기.

7. 음식: 어떤 것이 먹기에 적합한가.

8. 본래 역겹게 여겨지는 어떤 것들에 대한 역겨움의 감정을 포함하는 오염반응 그리고 감염 및 질병에 대한 직관.

9. 행복과 슬픔의 감정 그리고 만족과 불안정의 기분을 포함하는, 현재의 안녕에 대한 점검.

10. 직관심리학; 다른 사람의 신앙과 욕망에 근거하여 그의 행동을 예측.

11. 정신적 기록보관소 (Rolodex): 친척관계, 신분이나 계급, 호의를 나누었던 기록, 타고난 기술과 능력 등을 저장할 수 있는 빈 공간과 각 특성을 평가하는 기준들을 갖춘 개개인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12. 자아상: 타인에 대한 자신의 가치와 관련된 정보의 수집 및 정리 그리고 그러한 정보를 다른 정보들과 묶기.

13. 정의: 분노와 복수의 감정을 포함하여 권리, 의무, 인과응보에 대한 의식.

14. 족벌주의 및 양육에 대한 부담을 포함하는 친족관계.

15. 성적 매력, 사람의 감정과 정절 및 처자유기(妻子遺棄)의 의도를 포함하는 짝짓기.

표준적인 심리학이 이 개념과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 알아보려면,교과서의 목차만 펴보면 된다. 수록된 장들은 생리학, 학습, 기억, 주의, 사고, 판단, 지능, 동기 부여, 감정, 사회성, 발달, 성격, 비정상 등이다. 심리학 교과과목에는 지각과 언어를 제외하면 정신이라는 응축된 덩어리에 해당하는 장은 하나도 없다. 아마도 이것이 학생들이 심리학개론의 강의 요강에 대해 충격을 느끼는 이유일 것이다. 이것은 마치 자동차의 작동원리를 설명할 때, 전기 시스템, 전송, 연료 시스템 등으로 구분해 설명하는 대신 먼저 강철부품을, 두번째로 알루미늄 부품을, 그 다음 적색 부품들을 논의해 나가는 것과 같다(흥미롭게도 오히려 두뇌에 관한 전공서들이 내가 진정한 모듈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정신적 지도, 두려움, 분노, 섭식, 어머니의 행동, 언어, 성 등이 신경학 교과서에 나오는 일반적인 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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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독자들에게는 위의 목록이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훌륭한 증거가 될 것이다. 생물학을 수행하기 위한 선천적 모듈이라니? 생물학은 최근에 발명된 학문분야이다. 학생들은 그 속을 헤치고 나아간다. 거리의 사람들과 전세계의 부족들은 미신과 잘못된 정보의 보고이다. 이런 생각들은 선천적인 카뷰레터 수리 본능보다 온전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증거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선천적인 '민속생물학 (folk biology)' 은 사람들에게 인공물과 같은 사물에 대한 직관과는 다른 동식물에 대한 특별한 직관을 제공한다. 민속생물학에 대한 연구는 언어에 대한 연구와 비교할 때 아직 초기단계이므로 이 개념은 틀릴 수도 있다(어쩌면 우리는 식물에 하나 그리고 동물에 하나, 이렇게 두 개의 모듈을 사용하여 생물에 대해 추리하는지도 모른다. 혹은 바위와 산 같은 다른 자연적인 종류들을 포괄하는 하나의 큰 모듈을 이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민속심리학 같은 부적합한 모듈을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증거는 충분히 시사적이다. 따라서 나는 가능한 인지 모듈로 언어 이외에도 민속생물학을 제시함으로써 본능의 거주지인 정신이 포함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여러 종류의 사물에 대한 개념을 제시할 수 있다.

우선 슈퍼마켓에 질릴 대로 질린 도시 거주자들에게는 믿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석기시대' 수렵채집인들은 박학한 식물학자이자 동물학자였다. 그들은 전형적으로 수백 가지의 야생 동식물의 종명과 그 종들의 생활주기, 생태 및 행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미묘하고도 정교한 추리를 행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한 동물의 흔적의 형태, 신선도, 방향, 날짜와 연도 그리고 국부적인 지형의 세부사항들을 관찰하여 그 동물이 어떤 종류인지, 어디로 갔는지, 얼마나 늙고 굶주리고 지치고 또 무서워하고 있는지를 간파했다.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들을 여름 내내 기억했다가 가을에 그 뿌리를 캐기 위해 그곳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었다. 의약품의 사용이 보편민족의 생활양식의 일부였음을 기억해 보자.

어떤 종류의 심리학이 이런 재능 밑에 숨어 있을까? 우리 정신의 유사성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우주의 이 지역과 조화를 이룰까? 식물과 동물은 특별한 종류의 사물이다. 정신이 그것들에 대해 올바로 추리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바위, 섬, 구름, 기계, 돈 같은 것들과 달리 취급해야 한다. 다음은 네 가지 기본적인 차이점이다. 첫째, 유기체들은(최소한 성을 지닌 유기체들은)생태학적 적소에 적응한 이종교배의 개체군에 속한다. 이로써 그들은 상대적으로 통일된 구조와 행동을 가진 종으로 구분된다. 예를 들어 모든 개똥지빠귀들은 어느 정도 서로 유사하지만 제비와는 다르다. 둘째, 동류의 종들은 동일한 계통에서 분리된, 동일한 조상의 후손들이다. 같은 계층구조에 포함되지만 서로 중복되지 않는 강(鋼)이 된다. 이로써 그들은 계급에 속하게 된다. 예를 들어 개똥지빠귀와 제비는 조류라는 면에서 서로 유사하고, 조류와 포유동물은 척추동물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며, 척추동물과 곤충은 동물이라는 점에서 서로 유사하다. 셋째, 유기체는 복잡하고 자기보존적인 체계이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도 합법칙성을 유지하는 운동생체학적 과정에 의해 통제된다. 예를 들어 한 유기체의 생화학적 구조는 그 유기체를 성장하고 움직일 수 있게 하며, 유기체가 죽을 때에는 소멸한다. 넷째, 유기체들은 각각 다른 유전자형과 표현형(눈에 보이는 생물의 체질-역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성장하고 형태를 변화시키고 재생산하는 동안 숨겨진 '본질' 을 보존한다. 예를 들어 쐐기벌레, 번데기, 나비는 엄격한 의미에서 동일한 동물이다.

놀랍게도 생물에 대한 사람들의 타고난 직관은(글을 읽지 못할 뿐 아니라 생물학 실험에는 완전히 문외한인 어린아이들의 직관까지도)이러한 핵심적인 생물학적 사실들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류학자인 브렌트 벌린 (Brent Berlin) 과 스콧 아트란 (Scott Atran) 은 식물군과 동물군에 대한 민간분류법을 연구해 왔다. 그들은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식물과 동물을 전문 생물학의 린네식 분류법(종-속-과-목-강-문-계)에서 속에 해당하는 종류로 분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지역에는 모든 속의 단일한 종이 살고 있으므로, 이러한 민속범주들은 일반적으로 종과 일치한다. 사람들은 또한 종류들 (kinds) 을 나무, 풀, 이끼 사지동물, 새, 물고기, 곤충 같은 더 높은 차원의 생명형태로 분류한다. 동물들을 분류한 대부분의 생물체 범주들은 생물학자의 분류법으로 강 (class) 과 일치한다. 민간분류법은 전문 생물학자의 분류법처럼 엄격하게 계층적이다. 즉, 모든 동식물이 유일한 하나의 속에 속하고, 모든 속들은 유일한 하나의 생명형태에 속하며, 모든 생명형태는 식물이나 동물 중 하나이고,식물과 동물은 생물이며, 모든 사물은 생물이거나 무생물이다. 이 모든 것들이 사람들의 직관적인 생물학적 개념들에 인공물과 같은 개념들을 구성할 때와는 다른 논리적 구조를 제공한다. 그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한 동물은 물고기인 동시에 새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반면, 휠체어는 가구와 운반수단 모두가 될 수 있고, 또 피아노는 악기와 가구 모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나름대로 만족해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것 때문에 자연적인 것들에 대한 추리가 인공물에 대한 추리와 다르게 된다. 사람들은 송어가 일종의 물고기이고, 물고기가 일종의 동물이라면,송어는 일종의 동물이다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동차 의자가 일종의 의자이고, 의자가 일종의 가구라면, 자동차 의자는 가구이다라고 추리하지 않는다.

생물에 대한 특별한 직관은 삶의 초기에 시작된다. 아기는 결코 엄마 품에 안겨 울고 토하기만 하는 반사작용 덩어리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 보자. 움직이거나 잘 볼 수 있기 훨씬 전인 생후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의 아기들은 물체와 그것들의 가능한 움직임들, 그들이 인과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 압축성과 같은 그들의 성질들, 그들의 수 및 그 수가 덧셈이나 뺄셈으로 변화하는 방법 등에 대해 안다. 또 그들은 이미 초기에, 아마도 첫돌 이전에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를 감지한다. 이러한 구분은 당구공과 같이 물리적 법칙에 따라 이동하는 생명 없는 사물들과 자체 추진력을 가진 사람과 동물 같은 대상들 사이에서 최초로 다른 형태를 띤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스펠케 (Elizabeth Spelke) 의 한 실험에서는 아이에게 화면 뒤에서 굴러가는 공 하나와 반대편에서 나오는 공 하나를 지루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만일 화면이 제거되어 아이가 예상하던 숨겨진 사건, 즉 공 하나가 다른 공을 쳐서 그것을 자신의 진행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아이의 관심은 순간적으로 다시 활기를 딘다. 가정컨대 그 아이는 이것을 계속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화면이 제거되었을 때, 처음의 공이 두번째 공에 도달하지 않고 중도에서 죽은 듯 멈추었는데도 두번째 공이 신기하게도 저절로 움직이는 마술 같은 상황을 보게 되면,그 아이는 훨씬 더 오랫동안 그것을 응시한다. 결정적으로 아이들은 생명이 없는 공과 생명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법칙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또 다른 각본에서는 공이 아니라 사람들이 화면 뒤로 사라지고 나타나는 것을 반복했다. 화면이 제거된 후 아이는 한 사람이 갑자기 멈추고 다른 사람이 일어나 움직이는 것을 보고 거의 놀라움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충돌에 더 많이 놀라워 했다.

아이들이 보육원이나 유치원에 갈 연령이 되면, 생물들이 숨겨진 본질을 가진 여러 종륭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미묘하게 이해한다. 심리학자인 프랭크 케일은 다음과 같은 유별난 질문으로 아이들에게 답변을 요구했다.

의사 선생님들이 너구리 한 마리를 잡아서(너구리를 보여준다)털을 약간 깎아냈어요. 그리고 남아 있는 부분을 온통 검은색으로 염색했어요. 그렇지만 등 한가운데는 하얀 줄을 길게 남겨두었어요. 그러고는 수수을 해서 그 몸 속에 아주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커다란 주머니를 집어넣었어요. 다 하고 나니 그 동물은 이런 모양이 되었어여. (스컹크의 사진을 보여준다)이것은 스컹크일까요, 너구리일까요?

의사 선생님들이 이렇게 생긴 커피포트를 가져왔어요. (커피포트의 사진을 보여준다) 그리고 손잡이를 떼어내고 위를 막고, 또 꼭대기 손잡이를 떼어내고 위를 막고, 또 꼭대기 손잡이를 떼어내고 주둥이를 막았어요. 그리고 밑을 떼어내고 평평한 금속조각을 붙였어요. 그런 다음 작은 막대를 하나 달고, 그 속에 창문을 만든 다음, 그 금속용기에 새모이를 채웠어요. 다 하고 나니까, 이런 모양이 되었어요. (새모이통의 사진을 보여준다) 이것은 커피포트일까요 새모이통일까요?

의사 선생님들이 이 장난감을 가져왔어요. (태엽 감는 새의 사진을 보여준다) 여러분이 이것을 열쇠로 감으면, 입이 열리고 속에 있는 작은 기계가 음악을 연주해요. 선생님들이 이것을 수술했어요. 훌륭하고 부드러워 보이도록 진짜 털을 입히고 훨씬 좋은 부리를 달았어요. 그런 다음 태엽 감는 열쇠를 떼어버리고, 그것이 날개를 퍼덕이며 날고 울 수 있도록 새로운 기계를 넣었어요. (새의 그림을 보여준다)그것은 진짜 새일까요, 장난감 새일까요?

새모이통으로 변해버린 커피포트와 같은 인공물의 경우(또는 화장실 휴지로 변해버린 한 벌의 카드), 아이들은 액면 그대로 변화를 수용했다. 새모이통은 새에게 모이를 주게끔 되어 있는 그 어떤 것이므로 그것은 새모이통이다. 그러나 스컹크로 변해버린 너구리(또는 오렌지로 변해버린 포도)와 같은 자연세계에 있는 종의 경우, 그들은 보다 완강했다. 스컹크의 옷 속에 어떤 보이지 않는 너구리적 성질이 남아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생물체를 스컹크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 변해버린 장난감(또는 머리빗으로 변해버린 바늘두더쥐)같은 자연물과 인공물 사이의 경계 위반의 경우에도 그들은 단호했다. 새는 새이고 장난감은 장난감이다. 아이들은 또한 말이 소를 낳으면 젖소 부모, 젖소 아기가 된다는 생각에는 불편함을 드러낸 반면, 동전을 녹여 열쇠를 만들고 다시열쇠를 녹여 동전을 만든다는 생각에는 아무런 문제를 드러내지 않았다.

물론 다른 문화 출신의 성인들에게도 동일한 종류의 직관이 있다. 문맹의 시골 사람인 나이지리아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어떤 학생들이 파파야를 가지고 (파파야 사진을 보여준다) 그 꼭대기에 녹색의 뾰족한 잎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표면에 작은 가시투성의 천을 덮었습니다. 이제 그것은 이런 모양입니다. (파인애플 사진을 보여준다) 이것이 파파야일까요, 파인애플일까요?

그들의 전형적인 대답은 "그건 파파야예요. 왜냐하면 파파야는 하늘이 내린 자신의 구조를 가지고 있고, 파인애플도 나름대로의 기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어떤 것이 다른 것으로 바뀔 수는 없어요" 였다.

어린아이들 역시 동물들이 더 큰 범주에 소속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들의 일반화는 단순한 외형의 유사성이 아니라 범주자격에 의해 정의되는 유사성을 따른다. 수잔 겔만 (Susan Gelman) 과 엘런 마크먼 (Ellen Markman) 은 세 살바기 아이들에게 플라밍고의 사진과 박쥐의 사진, 또 플라밍고보다는 박쥐를 더 많이 닮은 찌르레기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플라밍고는 새끼들에게 으깬 먹이를 주지만 박쥐는 새끼들에게 젖을 먹인다고 말한 다음, 찌르레기는 새끼들에게 어떤 먹이를 줄까 물어보았다. 더 이상의 정보가 없는 경우 아이들은 외형으로 판단해 젖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플라밍고와 찌르레기가 새라는 언급이 주어지자. 아이들은 그것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서 으깬 먹이라고 대답했다.

만일 우리가 식물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로 의심스럽다면, 가장 기이한 인간의 취미 가운데 하나인 꽃구경을 생각해 보자. 사람들이 주거지와 정원을 장식할 수 있도록 꽃을 파종하고 재배하는 일은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전문화되어 있다. 한 연구에서는 입원 환자에게 꽃을 가져가는 것이 정감 있는 행위 이상이며, 실제로 환자의 기분전환을 유도하여 회복률을 높인다는 것을 밝혀냈다. 사람들이 꽃을 먹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꽃에 자원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대단히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직관적인 생물학자로 진화했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이치에 닿는다. 꽃은 식물 정보의 축소판이다. 꽃이 피지 않았을 때, 식물들은 서로 뒤섞여 녹색의 바다를 이룬다. 꽃은 종종 전문 분류학자에게도 식물의 종을 식별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꽃은 또한 자연의 혜택이 예상되는 계절과 지형 그리고 미래의 열매와 씨앗의 정확한 위치를 가리켜준다. 꽃에 주의를 기울이고, 또 꽃이 있는 곳에 있으려는 성향은 1년 내내 영업을 하는 샐러드 바가 없는 환경에서는 분명히 유용했을 것이다.

물론 직관생물학은 생물학 교수들이 그들의 연구실에서 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그러나 전문 생물학의 밑바탕에 직관생물학이 있을 수도 있다. 민간분류법은 분명 린네식 분류법보다 먼저 출현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전문 분류학자들이 어느 한 지역의 종을 분류할 때 토착부족민들의 견해를 부정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생물에게는 숨겨진 본질이 있고, 또 숨겨진 과정의 지배를 받는다는 직관적 확신은, 최초의 전문 생물학자들로 하여금 식물과 동물을 연구실로 가져와서 그 조각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식물과 동물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이다. 의자의 본질을 밝히겠다고 선언한 다음, 의자를 몇 개 연구실로 가져와서 현비경을 관찰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그는 연구비를 받는 대신 미친 사람으로 간주되어 해고될 것이다. 사실 모든 과학과 수학이 수, 기계학, 정신적 지도, 심지어 법과 같은 선천적인 모듈로부터 생겨나는 직관에 의해 촉진된다고 할 수 있다. 물리학적 유추 (열은 유동체이고, 전자는 입자이다), 시각적 비유(선형 함수, 직사각형 행렬)그리고 사회적 · 법적 용어(매력, 법의 준수)가 과학 전방에 걸쳐 사용된다. 그리고 정말로 그것만으로도 책 한 권의 가치를 지닌 언급을 간단히 하도록 여러분이 허락한다면, 위에서 언급한 것들 외에도 인간의 '문화적' 관습들(스포츠, 설화문학, 조경 디자인, 발레 등)대부분이 외견상 복권추첨의 임의적 결과처럼 보일지라도, 특정한 적응기능을 위해 설계된 정신적 모듈을 자극하고 훈련시킬 목적으로 인간이 발명한 영리한 기술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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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언어본능이 시사하는 바는 백지, 왁스덩어리 또는 표준 사회과학 모델의 만능 컴퓨터라기보다는 연산 모듈들이 적응한 정신이다. 그러나 표준 사회과학 모델이 우리에게 제공해 왔던 평등과 기회라는 세속적 이념에 대해 이 견해는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우리가 표준 사회과학 모델을 포기한다면, '생물학적 결정론' 같은 역겨운 강령을 강요당하게 되는가?

분명한 요점부터 시작해 보자. 첫째,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든 그것은 그렇게 작동한다. 그것이 어떤 윤리적 원리를 정당화하는 지름길로 작동하기를 바라는 것은 과학과 윤리학 모두를 좀먹는 것이다(과학적 사실들이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발혀지면 그 원리는 어떻게 되겠는가?). 둘째, 심리학에는 모든 사람이 윤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동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그래서 그들에게 양도할 수 없는 어떤 권리가 부여된다는, 그리고 이 권리에는 생존과 자유 및 행복의 추구가 포함된다는 자명한 진리와 관계된 그 어떤 예견 가능한 발견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급진적 경험주의가 반드시 진보적이고 인도주의적인 강령은 아니다. 백지는 독재자의 꿈이다. 어떤 심리학 전공서에는 스파르타와 사무라이의 어머니들이 자기 아들이 전쟁에 참가했다는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는 '사실' 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어머니들이 아니라 장군들이 쓴 것이므로 우리는 이 믿을 수 없는 주장을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목적에 봉사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정도를 벗어난 이러한 사항들을 동원하여 인지본능이 유전과 인류에 대해 함축하는 의미들을 지적하려고 한다. 이것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바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장이 종종 혼동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선천적이다.

모든 사람들 사이의 공통점은 선천적이다.

이 두 주장은 완전히 다르다. 다리의 수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다리의 수가 더 적은 이유는 100% 환경에 기인한 것이다. 부상당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8개 또는 6개의 다리를 갖거나, 아예 없다기보다는)정확히 두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100% 유전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인 인간 본성이 선천적이라는 주장은 종종 개인, 성, 인종 사이의 차이가 선천적이라는 주장과 혼용된다. 우리는 그것들을 혼용하는 잘못된 동기를 볼 수 있다. 만일 정신 속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선천적이지 않다면, 정신의 차이는 선천적일 수 없다. 그러므로 만약 마음에 어떠한 구조도 없다면, 관대한 평등주의자들은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의 역, 즉 모든 사람들은 풍부한 구조를 가진 동일한 정신을 가지고 태어날 수 있으며, 그들 사이의 모든 차이는 생활경험의 이력을 통해 누적되어 온 후천적 지식이나 하찮은 혼란 때문일 수 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내 견해로는 과학과 윤리학을 융합시키고자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조차도 진실이 어떤 것으로 밝혀지든 선천적인 정신구조에 대한 연구에 경계심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다.

선천적인 공통점과 선천적인 차이점이 그렇게 쉽게 혼동되는 한 가지 이유는 행동유전학자들(유전적 결손, 일란성 쌍둥이와 이란성 쌍둘이, 입양된 아이와 생물학적인 아이 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상속 가능한 (heritable)' 이라는 단어를 한 종 내부의 어떤 특성에서 나타나는 유전적 차이와 관련된 변이의 비율을 지칭하는 기술적인 용어로 횡령했기 때문이다. 이것의 의미는 일상용어인 '유전적 (inherited)' 이라는 말과는 다른데, 이 유전적이라는 말은 그 고유의 구조나 구성이 유전자들 내부의 정보로부터 발생하는 특성을 지칭한다. 출생시 다리의 수나 정신의 기본구조와 같은 어떤 것들은 보통 유전적이지만 0%의 상속 가능성을 보일 수 있다. 반대로 어떤 것들은 유전적이지는 않지만 100%의 상속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붉은 머리를 가진 사람만 성직자가 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해 보자. 성직자는 매우 '상속적' 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유전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지능이 70% 상속 가능하다" 와 같은 주장 때문에, 특히 뉴스 잡지들이ㅡ유감스럽게도 불가피하게 벌어지고 있듯이ㅡ정신의 기본작용에 대한 인지과학의 연구와 함께 그것을 기사화할 때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언어본능과 그밖의 정신적인 모듈에 대한 모든 주장은 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공통점에 대한 것이다. 그것들은 사실상 사람들 사이에 가능한 유전적 차이와는 아무런 관려이 없다. 그 한 가지 이유는 복잡한 생물학적 체계의 작동방법에 관심이 있는 과학자에게 개인들 간의 차이는 너무나도 지루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연구자들이 사람들이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어떻게 단어를 묶어 배열하는가를 알아내고자 애쓰기보다는 언어지수 측정표를 만들어 수천 가지에 달하는 사람들의 상대적인 언어기술을 측정하기에 바쁘다면, 언어에 대한 학문이 얼마나 황량할 것인지 상상해 보라. 이것은 폐의 작동방법을 물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좋은 폐를 가지고 있다는 대답을 듣거나, 콤팩트 디스크가 어떻게 음을 재생하는지를 물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좋은 폐를 가지고 있다는 대답을 듣거나, 콤팩트 디스크가 어떻게 음을 재생하는지를 물었을 때 디지털 샘플링과 레이저에 대한 설명 대신 디스크의 등급을 매긴 고객잡지를 받는 경우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공통점을 강조하는 것은 단지 과학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 어떤 생물학적 적응체계의 설계ㅡ그 작동방법의 원인ㅡ도 유성생식하는 한 종의 개체들 사이에서는 균일한 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질적으로 다른 설계를 위한 청사진들이라면 성적 재조합 속에서 치명적으로 뒤섞여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개인들간에는 상당한 유전적 다양성이 존재한다. 각 개인은 생화학적으로 고유하다. 그러나 자연선택은 그 다양함에 의존하는 과정이므로(기능적으로 동등한 이종의 분자들은 제외하고)자연선택이 적응설계를 창조하는 것은 그 변이체들을 소모함으로써이다. 더 열악하게 설계된 기관을 지정하는 변이체 유전자들은 그 소유자가 굶주리거나 먹히거나 짝을 구하지 못하고 죽을 때 사라진다. 정신 모듈이 자연 선택의 복잡한 산물인 경우에 한해서 유전적 변이는 기본적인 설계상의 차이가 아니라 양적인 변이에 국한될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그것들이 우리에게 사람, 전기 (biography), 인사 (personnel), 한담 (gossip), 정치 등에서 아무리 매력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정신에 지성을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때에는 별로 흥미롭지 않은 것들이다.

마찬가지로 정신의 설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면 성 (sex, 심리언어학자로서 나는 이것을 'gender' 로 부르기를 거부한다.)과 인종들 사이에 가능한 선천적 차이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Y염색체상의 남성결정 유전자를 제외하고, 남성의 몸 속에 있는 모든 기능유전자들은 또한 여성의 몸 속에서도 발견되며, 그 역도 성립한다. 남성유전자는 발달상의 스위치로써 어떤 유전자들을 활성화시키는 동시에다른 유전자들을 비활성화시킬 수도 있지만, 동일한 청사진이 남성과 여성의 신체 모두에 존재하며, 그 기본값 조건 (default condition) 은 설계의 동일성이다. 재생산 그리고 직간접적으로 재생산과 관련된 적응문제들에 대해 연구하는 심리학의 경우에 성은 이 초기값에서 출발한다는 증거가 있으며,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을 재생산 하는 체계만큼이나 상이한 주변장치들이 동일한 소프트웨어에 수반된다는 것은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성은 언어를 포함한 인지의 나머지 재부분에 대해여 본질적으로 유사한 요구조건들에 직면하므로, 만일 그들 사이에 설계상의 차이가 존재한다면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종과 민족은 모든 차이점들 가운데 가장 사소한 것이다. 인간유전학자인 월터 보드머와 루이지 카발리-스포르차는 인종에 관한 하나의 역설을 지적했다. 비전문가들에게 인종은 비참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지만, 생물학자들에게는 사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인간의 유전적 변잉의 85%는 동일한 민족집단, 부족 또는 국가에 속하는 한 사람과 다른 사람 사이의 차이점들로 구성된다. 또 다른 8%는 민족집단들 간에 그리고 단지 7%만이 '인종' 들 간의 차이이다. 다시 말하자면, 무작위적으로 추출한 두 명의 스웨덴 사람들 사이의 유전적 차이가 평균적인 스웨덴 사람과 평균적인 아파치족이나 왈피리족의 유전적 차이보다 약 12배가 크다는 것이다. 보드머와 카발리-스포르차는 그러한 환산이 불행한 우연의 결과라고 말한다. 인종들 간에 존재하는 체계상의 많은 차이들은 기후에 적응한 결과이다. 멜라닌 색소는 열대의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며, 눈꺼풀은 건조한 추위와 눈 (snow) 으로부터 눈을 격리시킨다. 그러나 신체의 일부인 피부가 날씨에 노출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노출된다는 것을 뜻한다. 인종은 말 그대로 가죽 한꺼풀의 차이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외적인 차이로부터 내적인 차이를 일반화하는 한, 자연은 그들을 속여서 인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분자유전학자의 X선 시각으로 보면 우리 종의 통일성이 드러난다.

그리고 인지과학자의 X선 시각도 마찬가지이다. '동일한 언어를 말하지 않는 것' 은 공통분모가 없다는 말과 실제적인 동의어이지만,심리언어학자에게는 피상적인 차이에 불과하다. 개인과 문화에 존재하는 복잡한 언어의 편재성 그리고 그들 모두의 기저에 깔려 있는 단일한 정신의 설계에 대해서 안다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라도 외국어처럼 들리지 않을 것이다. 외부세계와 처음 접촉하는 원주민들의 기록 필름에 나오는 뉴기니아 고지대인들 간의 장난, 수화통역자의 동작들, 도쿄 유원지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소녀들의 수다를 들으면, 나는 언어 리듬을 통해 그 밑에 놓여 있는 구조를 보는 듯하며, 우리 모두가 동일한 정신을 가지고 있음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