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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현대과학의 대혁명 : James Gleick 저서, 박배식.성하운 옮김, 동문사 (736-3710), 1993 (원서 : Chaos : Making A New Science, Viking Penguin, 1987), Page 157~193
큰 소용돌이 속에는 작은 소용돌이가 생기는데, 그 것은 소용돌이의 속도를 줄인다. 또한 그 작은 소용돌이 속에는 더 작은 소용돌이가 생기고 이것은 유체의 점성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 루이스 F. 리처드슨
물리학에서 난류 (亂流, turbulence) 라고 하는 것은 유서 깊은 문제였다. 위대한 물리학자라면 누구나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순조로운 흐름이 갑자기 나선형 흐름과 소용돌이로 바뀐다. 이러한 거친 형태의 흐름은 유체와 고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또한 에너지는 급격하게 대규모 운동에서 빠져나와 소규모 운동으로 흩어진다. 이러한 일은 왜 일어나는가 ? 이에 대한 훌륭한 생각은 오히려 수학자들이 해냈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에게 난류 문제는 너무 위험 부담이 커서 거기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그것은 거의 알 수 없는 문제처럼 보였다. 양자역학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임종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그는 두 가지 문제, 다시 말해 상대성과 난류가 생기는 이유를 하느님께 물어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생각할 때 하느님은 첫 번째 문제에는 해답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
이론물리학은 난류현상에 대하여 일종의 냉담함을 보여왔다. 실제로 과학은 땅 위에 선을 하나 그어놓고 이 선 너머로는 갈 수 없다고 선언한 셈이었다. 선의 이쪽, 즉 유체가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영역에는 연구할 문제가 많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순조롭게 흐르는 유체는 각각 독립운동을 하는, 거의 무한한 수의 독립분자들 (indepent molecules) 을 가진 것처럼 움직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가까이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유체의 부분들은 마구에 매인 말처럼 가까이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조용히 움직이는 흐름인 경우, 기술자들은 그것을 계산할 수 있는 실용적인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19 세기부터 형성된 지식을 활용한다. 그 당시에는 액체와 기체의 운동을 이해하는 것은 물리학에서 첨단의 문제였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그것은 더 이상 첨단의 문제가 아니였다. 훌륭한 이론물리학자들에게 유체역학 (fluid dynamics) 은 죽어서 천당에 가더라도 도저히 접근할 수 없을 한 가지 문제를 제외하고는 이제 아무런 문제도 남아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의 실용적인 면은 충분히 밝혀져서 기술자들에게나 맡기면 되는 것이었다. 나아가 물리학자들은, 유체역학 공학이 더 이상 물리학의 분야가 아니라고까지 말하곤 했다. 그것은 단순한 공학이었다. 젊고 유능한 물리학자들에게는 그것보다 더 좋은 분야가 많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유체역학자들은 공대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난류 문제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실용적인 면이 앞서 있었다. 그 실용적인 관심도 일면적이었다. 즉 어떻게 하면 난류를 없앨 것인가 하는 점에 한정되어 있었다. 몇 가지 응용분야에서는 오히려 난류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효율적인 연소를 위해 급격한 혼합이 필요한 제트엔진의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난류는 재난을 의미할 뿐이다. 즉 비행기 날개 위의 난류는 이륙을 방해하고, 오일파이프 속의 난류는 오일의 흐름을 마비시키는 항력 (drag) 이 된다. 정부와 기업은 유체 속을 움직이는 비행기, 터빈엔진, 프로펠러, 잠수정 기타 여러 가지 형태의 것을 설계하는 데 굉장한 돈을 투자하고 있다. 또한 폭발의 형태와 발생과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소용돌이와 불꽃 충격파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한다. 제 2 차세계대전 시의 원자탄계획은 이론적으로 보면 핵물리학에 속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계획이 실시되기 전에 이미 핵물리학 분야는 거의 다 해명되어 있었으며, 로스앨라모스에 모였던 과학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유체역학의 문제였다.
그러면 난류란 무엇인가 ? 그것은 모든 축척에서의 무질서 상태이며, 큰 소용돌이 속의 작은 소용돌이다. 그것은 불안정하다. 그것은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항력을 생성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분산적이다. 그것은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운동이다. 그런데 '어떻게' 순조로운 흐름이 난류로 바뀌게 되는가 ? 완전히 매끄러운 (역학에서는 마찰력이 작용하지 않는 경우를 말함 : 옮긴이) 관에 완벽하게 균일한 물이 진동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흐른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이러한 흐름이 '임의적인' 흐름으로 바뀔 수 있단 말인가 ?
모든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순조로운 흐름이거나 층류 (層流) 인 경우, 작은 교란이 생기더라도 곧 사라진다. 하지만 일단 난류가 시작되면 교란은 폭발적으로 커진다. 이러한 시작, 즉 이러한 전이는 과학에서 중대한 미스터리로 여겨졌다. 개천의 바위 바로 뒤에서는 물의 흐름이 소용돌이가 되어 커졌다가 쪼개지고 빙빙 돌면서 하류로 흘러간다. 재떨이에 놓인 담배에서 나오는 연기는 처음에는 순조롭게 피어오르면서 가속되다가 임계속도를 지나면 여러 갈래로 쪼개져 가친 소용돌이가 된다. 난류의 발생은 실험실에서 관찰되고 측정될 수 있다. 그것은 풍동의 실험작업에서 어떤 새로운 날개나 프로펠러를 통해 시험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의 속성은 여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뭔가 알 게 된다 하더라도 그 지식은 늘 특수한 분야에 한정된 것이지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보잉 707 날개에 대한 시행착오적 연구결과는 F16 전투기 날개의 시행착오적 연구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슈퍼 컴퓨터 조차 불규칙적인 유체운동에는 거의 도움이 안 된다.
무언가로 유체를 흔들어 보자. 그러면 유체는 점성을 갖고 있으므로, 즉 끈적끈적하므로 에너지가 유체에서 빠져나온다. 흔드는 것을 멈추면, 유체는 자연히 정지상태로 돌아온다. 유체를 흔든다고 하는 것은 낮은 주파수, 즉 긴 파장으로 에너지를 부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첫 번째 주목할 것은 긴 파장이 짧은 파장으로 분해된다는 점이다. 유체에는 소용돌이가 생기고 그 속에 더 작은 소용돌이가 생기게 되며, 그 각각은 유체 에너지를 소멸시키면서 독특한 리듬을 만든다. 1930 년대에 콜모고로프는 이러한 소용돌이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 데 다소 도움이 되는 수학적 설명을 했다. 그는 극한까지 더욱더 작은 규모로 계속 줄어드는, 에너지의 총체적인 분리 경로를 상정했다. 극한에 이르면 소용돌이는 아주 작아져서 상대적으로 점성이 더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설명을 명백히 하기 위해 콜모고로프는 이러한 소용돌이가 유체 전체를 채우고 있는 것으로, 즉 유체는 균질한 것으로 상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 즉 균질성의 가정은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이미 40 년 전에 푸앵카레도 소용돌이가 늘 순조로운 흐름과 섞여 있는 강물의 거친 표면을 관찰하면서 깨닫고 있었던 사실이다. 소용돌이는 국부적이다. 에너지는 실제로 공간의 일정 부분에서만 소멸된다. 각 규모의 난류적 소용돌이를 좀더 자세히 관찰해 보면, 새로이 조용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균질성의 가정은 폐기하고 간헐성이라는 가정을 하게 된다. 이상화시켜 본다면, 간헐적 상태는, 큰 규모와 작은 규모의 난류 지역과 조용한 지역이 뒤섞여 있는 프랙탈 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묘사 역시 현실에는 다소 못 미치는 것이다.
난류가 시작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문제는 위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명백히 다른 문제이다. 유체는 매끄러운 흐름에서 난류로 변하는 경계선을 어떻게 넘어가는가 ? 완전한 난류가 되기 전에 어떤 중간 단계가 존재하는가 ?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좀더 유력한 이론이 있었다. 이 정통적인 패러다임은 레흐 란다우가 생각해냈다. 유체역학에 대한 이 위대한 러시아 과학자의 책은 아직도 표준 교과서로 쓰이고 있다. 란다우 모형은 서로 경합하는 리듬들이 집적된 것이다. 그의 추측에 의하면, 어떤 계에 에너지가 부가되면 그때마다 새로운 진동수가 하나씩 생기는데, 이 새로운 진동수는 이전의 진동수와 조화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바이올린을 켤 때 활에 힘을 증가시켜 가면 제 2, 제 3, 제 4 의 불협화음이 생겨 마침내 알 수 없고 듣기 싫은 소리가 나는 것과 같다.
어떤 액체나 기체도 개별적인 부분들의 집합체이다. 그 부분은 너무 많아 무한 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런데 각각의 부분이 전부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면 그 유체는 무한히 많은 가능성, 즉 전문용어로는 무한히 많은 '자유도' (degree freedom) 를 갖게 될 것이다. 또한 그 운동을 나타내는 방정식은 무한히 많은 변수를 가져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입자는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즉 각 입자의 운동은 이웃하는 입자의 운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매끄러운 흐름에서라면 자유도가 거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요컨대 잠재적으로는 복잡한 운동이 아직은 상호 연관된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웃하고 있는 입자들은 계속 이웃에 머무르거나 혹은 매끄럽게 선형적으로 떨어져나가서 풍동실험 그림에서의 매끈한 선을 그려낸다. 담배연기 속의 입자들은 처음 얼마 동안은 마치 하나인 것처럼 피어오른다.
그런데 거기에 혼란이, 즉 불가사의한 자유운동이 갖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운동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진동, 삐뚤어진 정맥류 (skewed varicose), 엇갈려 구름 (cross–roll), 마디 (knot), 지그재그 등, 란다우의 견해에 의하면 이 새로운 불안정한 운동은 단지 하나의 리듬에 또 다른 것이 쌓여서 중첩된 속도와 크기를 갖는 리듬을 생성시키는 것이다. 개념적으로 난류에 관한 이러한 정통 의견은 사실과 부합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이론이 수학적으로 쓸모가 없다 할지라도 ㅡ 실제로 그렇다 ㅡ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란다우 패러다임은 체면을 유지하면서 난류 문제에서 손을 떼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물이 조그맣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면서 파이프 속이나 실린더를 흐른다고 해보자. 그리고 압력을 높인다고 상상해 보자. 그러면 진동하는 리듬이 생긴다. 이것은 마치 파동처럼 파이프 벽을 천천히 두드린다. 다시 압력을 높여 보라. 그러면 어디선가 첫 번째 것과는 공명되지 않는 두 번째 진동이 생긴다. 두 리듬은 서로 중첩되거나 경쟁하거나 길항한다. 이것들은 곧바로 서로 간섭하면서 아주 복잡한 운동인, 사방의 벽에 세게 부딪치는 파동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것을 거의 추적할 수가 없다. 이제 또다시 압력을 높여 보자. 세 번째 진동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네 번째, 여섯 번째 진동이 생기고 그것은 모두 공명되지 않는다. (즉 진동수에 상호 정수배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 옮긴이) 이렇게 되어 흐름은 매우 복잡해진다. 이것이 아마 난류일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설명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에너지가 증가될 때 언제 새로운 진동이 생기는지, 그리고 그것이 도대체 어떤 진동인지 예측하는 방법은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했다. 사실, 난류 발생에 관한 란다우 이론을 아무도 시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사의하게 발생하는 이 진동을 실험을 통해 관찰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론물리학자들은 머리로 실험을 한다. 반면에 실험물리학자들은 손도 사용해야만 한다. 이론물리학자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실험물리학자는 장인이다. 이론물리학자에게는 협력자가 필요 없다. 하지만 실험물리학자는 대학원생도 모아야 하고, 기술자고 구워삶아야 하며, 실험실 조수의 기분도 맞춰줘야 한다. 이론물리학자는 소음이나 진동이나 먼지가 없는 깨끗한 곳에서 작업을 한다. 실험물리학자는 조각가가 진흙으로 가지고 이것저것을 만들면서 진흙과 친해지듯이 물질과 친숙해져야 한다. 이론물리학자는 순진한 로미오가 이상적인 모습의 줄리엣을 상상하듯이 마음대로 자신의 반려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실험물리학자의 애인들은 땀도 흘리고 불평도 늘어놓고 때로는 콧방귀도 뀐다.
이론물리학자와 실험물리학자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과학자라면 모두 이론과 실험을 병행했던 고대 이후로 이론물리학자와 실험물리학자는 불공평한 관계를 맺어왔다. 가장 훌륭한 실험물리학자들은 여전히 이론물리학자로서의 자질을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그 반대는 그렇지 못하다.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이론물리학자들 에게만 명성이 주어지는 듯하다. 특히 고에너지 물리학에서 실험물리학자들은 값비싸고 복잡한 설비를 다루는 고도로 전문화된 기술자가 된 반면에 영광은 이론물리학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물리학은 곧 소립자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되었던 2 차대전 이후 수십 년 간에 걸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실험은 입자가속기로 수행된 것들이었다. 스핀, 대칭성, 컬러, 플레이버 등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추상척 개념이었다. 과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사람 대부분과 적지 않은 과학자들에게는 소립자 연구가 곧 물리학이었다. 하지만 더 짧은 시간 축척에서 더 작은 입자를 연구한다는 것은 더 높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좋은 실험에 필요한 설비가 해마다 발전되었다. 그리고 소립자 물리학에서는 실험의 성격 자체가 변했다. 이 분야에는 사람들이 들끊었으며 거대한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팀을 짜는 것이 유리했다. 소립자물리학 논문은 피지컬 리뷰레터스에서도 특히 눈에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저자들의 이름만으로도 논문의 거의 4 분의 1 을 채울 수 있었다.
그렇지만 몇몇 실험물리학자들은 혼자 혹은 둘이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쉽게 입수할 수 있는 물질들을 가지고 연구했다. 유체역학같은 분야는 지위를 잃어간 반면, 고체 물리학은 점점 지위를 구축해 마침내는 좀더 포괄적인 명칭인 '응축물 물리학' (condensed matter physics), 즉 물질의 물리학이라는 명칭이 필요한 정도로까지 되었다. 응축물 물리학에서는 설비가 더 간단했다. 따라서 이론물리학자와 실험물리학자 사이의 간격은 더 좁혀졌다. 이론물리학자는 건방진 태도를, 실험물리학자는 방어적 태도를 조금씩은 바꾸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각은 서로 달랐다. 이론물리학자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해서 실험물리학자의 강의를 훼방놓는 일은 전적으로 이론물리학자다운 짓이었다. 좀더 많은 데이터가 있으면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는가 ? 그 도표는 좀 장황하지 않은가 ? 저 숫자들의 크기를 좀더 크게 하거나 작게 할 수 없는 것이가 ?
그리고 해리 스위니가 대략 165 센티미터쯤 되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루이지애나의 선척적인 매력과 뉴욕의 후천적인 성급함이 혼합된 말투로 "그것은 맞다" 라고 되받는 것 또한 전적으로 그다운 일이다. "소음이 없는 데이터를 무한히 갖게 된다면 그것은 맞다. " 그러고 나서 칠판쪽으로 조용히 조용히 돌아서서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물론 실제로는 제한 된 양의, 소음이 있는 데이터를 얻을 뿐이다. "
스위니는 실제 물질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전환점은 그가 존스흡킨스대학 대학원생일 때 있었다. 소립자물리학이 가져다 주는 흥분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언젠가 머레이 겔만이 와서 감동적인 학술강연을 했는데, 스위니는 그것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하지만 다른 대학원생들을 살펴보니 그들은 전부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하거나 방전실을 고치고 있었다. 그가 원로 물리학자와 대화를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 물리학자는 위상전이 (phase transition), 즉 고체에서 액체로, 비 자성물질에서 자성물질로, 전도체에서 초 전도체로 변화하는 현상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스위니는 빈방을 하나 차지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그 자신만의 공간이었다. 그는 이산화탄소 냉각설비, 그리고 몇 개의 측정기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는 이산화탄소가 증기에서 액체로 바뀌는 임계점 주변에서 열을 얼마나 잘 전달하는가를 측정하는 기구를 설계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 전도율이 조금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위니는 그것이 1000 배나 변화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제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던 사실을 조그만 방에서 혼자 발견했다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었다. 또한 그는 임계점 가까이에 있는 증기 (모든 증기) 에서 나오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빛을 관찰했다. 그 빛은 산란시키면 단백석과 같은 백색광을 내기 때문에 '단백광' (opalescence) 이라고 불린다.
대부분의 카오스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위상전이도 미시적인 세부사항을 관찰해 가지고는 예측하기 어려운 일종의 거시적 형태를 포함하고 있다. 고체를 가열시키면, 부가된 에너지로 고체의 분자들이 진동한다. 그것들은 상호간의 결합력에 대항하여 바깥쪽으로 밀고 나감으로써 물질을 팽창시킨다. 열을 더 가하면 더 많이 팽창한다. 그런데, 어떤 온도와 압력에서는 그 변화가 급격하고 불연속적인 것이 된다. 로프가 잡아늘여지다가 어느 순간에 끊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정체의 형태는 해체되고 분자들은 서로 자유로워진다. 그것들은 고체의 어떤 측면으로부터도 추론될 수 없는 유체 법칙을 따르게 된다. 평균 원자에너지는 거의 그대로 이지만 물질 ㅡ 이제는 액체이거나 자성물질 혹은 초전도체인 ㅡ 은 이제 새로운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뉴저지 주에 있는 AT & T사 (미국 전보전화회사) 의 벨 연구소에서 일하는 귄터 알러스는 이른 바 액화헬륨이 초유체 (super fluid) 로 전이하는 현상을 조사했다. 그 전이에서는 온도가 떨어짐에 따라 점성 혹은 마찰력이 거의 없을 정도의 이상한 유체가 되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초전도성에 대해 연구했다. 스위니는 물질이 액체에서 기체로 또는 그 반대로 변화되는 임계점에 대해 연구했다. 스위니, 알러스, 피에르 버제, 제리 골룹, 마르찌오 지글리오를 비롯하여 위상전이를 탐구하는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다른 실험물리학자들은 1970 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문제를 찾고 있었다. 우체부가 자기 지역의 뒷골목과 현관 입구 계단을 샅샅이 익히듯이, 그들은 물질의 기본상태가 변화될 때의 독특한 표지를 연구했다. 또한 그들은 물질이 평형상태에 달한 순간을 탐구했다.
위상전이에 대한 연구는 유추적 방법에 의해 발전했다. 즉 비자성 - 자성 위상전이는 액체 - 기체 위상전이와 '유사' 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유체 - 초유체 위상전이는 전도체 - 초전도체 위상전이와 '유사' 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1970 년대에 이 문제는 거의 해결되었다. 의문점은 이 이론이 어느정도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자세히 조사해 보면 도대체 또 어떤 변화가 위상전이로 밝혀질 것인가 ?
위상전이의 기법을 유체의 흐름에 적용하려는 것은 독창적인 생각도 아니었고 명료하지도 않았다. 왜 독창적이 아닌가 하면, 유체역학의 위대한 개척자들인 레이놀즈와 롤리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이 이미 20 세 기초에 주의깊게 통제된 유체실험은 운동성질의 변화 ㅡ 수학용어로는 바이퍼케이션 ㅡ 를 가져온다는 것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체가 들어 있는 매우 작은 입방체의 밑바닥을 가열하면 유체는 갑작스럽게 운동하기 시작한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바이퍼케이션의 물리적 성격이 결국 위상전이에 해당하는 물질의 변화와 유사하다고 생각하고 싶어했다.
또 왜 명료한 실험이 아니었는가 하면, 실제의 위상전이와는 달리 이러한 유체 바이퍼케이션에는 물질 자체의 변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새로운 요소 즉 운동이라는 요소가 첨가되었을 뿐이다. 정지된 액체가 흐르는 유체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의 수학이 왜 증기의 액화를 나타내는 수학과 같은 것인가 ?
1973 년 스위니는 뉴욕시립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었다. 진지하고 앳되어 보이는 하버드 출신의 제리 골룹은 헤이버포드에서 강의하고 있었다. 헤어버포드대학은 필라델피아 근처에 있는 온화하고 전원적인 문리과대학으로서, 물리학자가 지내기에 이상적인 곳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거기엔 실험작업을 돕고 또 한편으로는 사제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아래 절반인 제자의 역할을 맡아줄 대학원생들이 없었다. 그러나 골룹은 학부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좋아했으며, 이 대학의 물리학과를 질 높은 실험으로 널리 알려진 연구센터로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해에 골룹은 안식년을 맞아 스위니와의 공동연구를 위해 뉴욕에 갔다.
두 사람은 위상전이와 유체의 불안정성 사이의 유사성을 염두에 두고, 수직으로 세워진 두 실린더 사이에 든 액체의 운동에 대한 고전적인 실험을 해 보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한 실린더의 안쪽에 위치한 다른 실린더가 회전하면서 주위 액체를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는 실험으로서, 액체의 흐름이 두 실린더 사이에서만 일어나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밖에 노출된 상태의 물의 운동, 예컨대 분출이나 배가 지나간 다음의 물자국 같은 운동의 가능성은 배제한다. 이제 그 회전하는 실린더는 꾸에뜨 - 테일러 흐름 (Couette Taylor flow) 이라 알려진 운동을 일으킨다. 편의상 바깥쪽 실린더는 고정시키고 안쪽 실린더를 회전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회전이 시작되고 속도가 증가함에 따라 첫 번째 불안정이 시작된다. 액체는 자동차 정비공장에 쌓아 놓은 튜브와 비슷한 우아한 모양을 만든다. 도넛 모양의 고리가 하나 위에 또 하나를 쌓아가면서 실린더 주위에 나타난다. 유체의 작은 반점이 동에서 서로 돌 뿐 아니라 도넛 모양 주위에 아래위 안팎으로 빙글빙글 돈다. 이현상은 이미 알려져 있었으니, 테일러는 1923 년에 그것을 보았고 또 측정했던 것이다.
'꾸에뜨 흐름' 을 연구하기 위해 스위니와 골룹은 탁상용 장치를 고안했다. 즉 바깥 실린더는 1 피트 높이에 직경 2 인치 되는, 정구공 담는 통같은 얇은 두께의 유리로 만들고, 강철로 된 안쪽 실린더를 유리실린더안으로 부드럽게 집어넣은 다음, 두 실린더 사이는 8 분의 1 인치만큼 간격을 두어 물을 담는다. 수개월 후, 예기치 않은 저명한 방문객 중의 한 사람인 프리먼 다이슨은 그것을 '봉랍과 노끈의 작업' 이라 칭했다. 계속 해서 그는 "이 두 신사분은 비좁은 실험에서 사실상 돈 한푼 안 들이고 너무나 멋진 실험을 했다. 그 실험은 난류에 대한 훌륭한 양적 연구의 시작이었다" 고 말했다.
회전하는 실린더 사이의 유체의 흐름. 두 실린더 사이에 있는 물의 흐름에서 스위니와 골룹은 난류의 시작을 관찰할 수 있었다. 회전율이 증가할수록 그 흐름의 구조는 복잡해 진다. 처음에 물은 도넛이 차곡차곡 쌓인 형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도넛들에 잔주름이 지기 시작한다. 두 물리학자는 각각의 새로운 불안정 상태가 나타날 때마다 물의 속도변화를 측정하기 위해 레이저를 사용했다.
두 사람은 표준적인 과학 연구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업적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고는 잊혀져 버릴 그런 일이었다. 다시말해 스위니와 골룹은 난류의 시작에 대한 란다우의 생각을 확인하려 했던 것이다. 그들에겐 그것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유체역학자들이 란다우의 모형을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 역시 물리학자로서 그것을 좋아했다. 그것이 위상전이의 일반모형과 들어맞았고, 또 란다우 자신이, 위상전이라고 하는 현상은 개별물질들 사이의 차이를 압도할 정도의 규칙성을 가지고 일반 법칙에 따를 것이라는 그의 통찰에 기초하여, 위상전이를 연구하는 데 가장 유용한 초기 틀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스위니가 이산화탄소에서 액체 - 증기의 임계점을 연구했을 때, 그는 자신의 발견이 크세논에서 액체 - 증기의 임계점에도 들어맞을 것이라는 란다우류의 확신을 가지고 연구했던 것으로, 사실 그렇게 됐다. 그러니 왜 난류가 운동하는 유체 내에서 상충하는 리듬이 계속 축적된 것임을 증명할 수 없겠는가 ?
스위니와 골룹은 운동하는 유체의 혼잡성을, 그들이 수년 동안 위상전이를 연구하면서 닦은 능숙한 실험기술에 의거해서 해결하려 했다. 그들의 실험 스타일과 측정장치는 여느 유체역학자라면 생각도 안했을 그런 것이었다. 그들은 회전하는 흐름을 관찰하기 위해 레이저광을 사용했다. 물속을 통과하는 레이저 빔은 편향이나 분산을 만드는데, 그것은 레이저 도플러 간섭계 사용법이라 불리는 기술로 측정할 수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오는 데이터는, 1975 년 당시에 탁상용 실험장치로는 아주 드물었던 컴퓨터에 의해 저장되고 처리됐다.
란다우는 유체의 흐름이 빨라짐에 따라 새로운 진동이 한 번에 하나씩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우리는 그렇게 읽었고, 그럼 좋다, 우리는 그 전이점을 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찰했고, 확실히 매우 분명한 전이점이 있었다. 우리는 실린더의 회전속도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그 전이점의 앞뒤를 살펴봤다. 그것은 정말 분명했다."
스위니와 골룹이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과학에서의 사회적 경계, 즉 물리학의 영역과 유체역학의 영역이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그 경계에는 확실한 특징이 있었다. 특히 그것은 국립과학재단 내의 어느 부서가 그들의 연구비를 대줄 것인가라는 문제를 결정했다. 1980 년대엔 꾸에뜨 - 테일러의 실험이 다시 물리학이 됐지만, 1973 년엔 그것은 평범한 유체역학에 속했다. 게다가 유체역학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겐 작은 시립대학 실험실에서 처음으로 얻은 숫자들이 너무나 분명해서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유체역학자들은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위상전이의 물리학에서 행해지고 있는 정확한 실험에 익숙해 있지 못했다. 더욱이 유체역학의 견지에서는 그런 실험의 목적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다음번에도 스위니와 골룹은 국립과학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받으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몇몇 심의위원들은 그들의 연구 결과를 믿지 않았고, 또 혹자는 거기에 새로운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실험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스위니는 "매우 분명한 전이가 있었다. 그것은 대단했다. 우리는 그 다음 것을 찾기 위해 실험을 계속 했다고 했다" 고 말했다.
거기서 란다우의 예상이 붕괴되었다. 시험은 이론을 확인하는 데 실패 했다. 그 다음 전이에서 흐름을 어떤 구별가능한 사이클도 없는 혼돈된 상태로 갑작스레 바뀌었다. 새로운 진동을 볼 수 없었고, 점진적으로 복잡하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카오스였다. 몇 개월후 후리후리하고 매력적인 벨기에 사람이 실험실의 문을 두드렸다.
다비드 루엘은 두 부류의 물리학자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라디오를 분해하면서 자란 사람들 ㅡ 지금과 같은 라디오가 나오기 전에 시기에 전선이나 오렌지색의 빛을 발하는 진공관을 보고 전자의 흐름을 생각했던 부류 ㅡ 과 화학실험기구에 빠진 사람들. 루엘은 후자에 속했다. 하긴 근래의 미국사람들 기준으로는 화학실험기구도 아니었다. 루엘은 고향인 북벨기에의 마을 약제사들로부터 폭발성이 있거나 유독한 화학물질을 쉽게 구해서 그것을 혼합하거나, 흔들거나, 가열하거나, 결저화하거나, 폭발시켜 봤던 것이다. 루엘은 1935 년 체육 선생과 언어학 교수의 아들로 겐트에서 태어났다. 비록 루엘은 추상적인 과학 세계에 종사했지만, 항상 버섯류라든가 초석, 유황, 목탄들 속에 경이로움을 감추고 있는 자연의 위험스러운 측면을 좋아했다.
그런데 루엘이 카오스의 탐구에 지속적인 공헌을 하게 된 것은 수리물리에서였다. 1970 년에 그는,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소를 본떠 만든, 파리교외에 있는 고등자연과학연구소 (IHES) 에 합류했다. 그에겐 평생의 습관이 된 습성이 그때 벌써 있었으니, 주기적으로 가족과 연구소를 떠나서, 등짐 하나만 지고, 광활한 아이슬랜드의 황야나 멕시코의 시골을 수주일이나 혼자서 어행하는 것이었다. 여행을 할 때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 경우도 자주있었다. 그가 사람을 만나 그들이 환대를 받을 때 ㅡ 아마 기름이나 육류, 채소도 없이 옥수수떡 요리만 대접받았을 것이다 ㅡ 그는 2000 년 전에 존재한 세계를 보고 있다고 느꼈다. 그가 연구소로 돌아와서 연구를 다시 시작할 때, 그의 얼굴은 더 수척해지고 피부는 둥근이마와 날카로운 뺨 위에 더 팽팽히 당겨져 있었다. 루엘은 편자형 사상 (寫像) 과 동력학 계에 카오스가 생길 가능성에 관한 스티븐 스메일의 강연을 들었다. 또한 유체의 난류와 고전적 란다우 모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이 두 견해가 서로 관련된다고, 아니 모순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루엘은 유체의 흐름에 대해 연구한 적이 없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한 수많은 선배들처럼 그도 이 문제에 도전했다. "항상 비전문가가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난류에 관해서는 아직 깊이 있고 타당한 이론이 없다. 난류에 대해 품을 수 있는 의문은 모두 일반적인 성격의 것들이어서 비전문가들도 접근 가능하다" 고 그는 말했다. 난류가 왜 분석되지 않는 가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유체운동 방정식은 비선형 편미분방정식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루엘은 스메일의 말에 따라 공간을,말굽처럼 팽창 · 수축되고 또 접을 수도 있는 유연성 있는 물질로 간주하여, 란다우 모형의 추상적 대안을 연구했다. 그는 연구소에서, 당시 거기에 객원 연구원으로 와 있던 네덜란드 수학자 플로리스 타켄스와 공동으로 논문을 집필하여 1971 년에 발표했다. 형식은 분명히 수학적이었다. 즉 단락마다 정의, 명제, 증명 이라는 표제로 시작하여 필연적인 주장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면
"명제 [5.2]. Xμ 가 한 힐버트 (Hilbert) 공간 H 위의 Ck 벡터장의 한 매개변수 족 (族) 이라 하자 ‥‥‥" 고 하는 식이다.
그러나 논문 제목은 실재 세계와의 연관성을 시사한다. 즉, '난류의 본질에 관하여' 란 그의 논문 제목은 란다우의 유명한 '난류의 문제에 r관하여' 라는 제목을 염두에 둔 것이다. 루엘과 타겐스의 논지 (論旨) 는 수학이상의 것이다. 즉 난류의 시작에 대한 전통적 견해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진동을 계속 쌓아가는 대신, 즉 독립된 운동이 무한히 겹쳐지는 것으로 끌고 나가는 대신에, 단지 세 개의 독립된 운동이 난류의 복잡성을 완벽하게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수학적으로 보면 그들 논리 중 어떤 부분은 모호하거나 틀렸거나 차용됐거나 혹은 그 세가지 모두라고 판명했다 ㅡ 견해는 15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다양했다.
그러나 통찰력, 논평, 주석, 그리고 논문 속에 들어 있는 물리학적 개념에 의해 그 논문은 오래도록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매혹적인 것은 필자들이 '스트레인즈 어트랙터' (strange attractor) 라고 이름 붙인 현상이었다. 나중에 루엘이 깨닫게 되지만, 이 단어는 심리분석적으로 말해서 '암시적' 이었다. 카오스의 학문에서 그 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커서 루엘과 타겐스는 그 단어를 선택했다는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 비록 정중하긴 했지만, 승강이를 했다. 실은 두 사람 다 경위가 어땠는지 잘 기억하지 못했다. 키가 크고 혈색이 좋으며 성미가 급한 노리만디 사람인 타겐스는 "신에게 이 빌어먹을 우주를 정말로 창조 했느냐고 물어본 사람이 있는가 ?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만들어 놓고도 기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고 말했을 것이며, 한편 그 논문의 주된 필자인 루엘은 부드럽게 "타켄스는 고등과학연구소에 우연히 와 있었다. 사람마다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다. 그 중에는 명성을 독점하기 위해 혼자서 논문을 쓰는 사람도 있다" 고 말했을 것이다.
그 '스트레인즈 어트랙터' 는 현대 과학의 가장 강력한 창작물 중 하나인 위상공간에 존재한다. 위상공간은 기계적이건 유동적이건 간에 움직이는 물체의 계로부터 본질적인 모든 정보를 추상화하여 숫자를 그림으로 바꾼다. 그리하여 그 계의 모든 가능성에 이르는 유연한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이미 두 개의 간단한 어트랙터 (고정된 상태에 이르는 운동과 끊임없이 자신을 되풀이하는 운동을 나타내는 고정점 [fixed point] 과 한계 사이클 [limit cycle]) 를 다루어 왔다.
어느 한 순간의 동력학 계에 대한 모든 정보는 위상공간의 한 점으로 나타난다. 그 점이 그 순간의 동력학 계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에 그 계가 살짝 변하여 그 점도 움직이게 된다. 따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여 가는 계의 역사는 위상공간 내에서 궤도를 그리며 움직이는 점으로 나타낼 수 있다.
어떻게 복잡한 계에 관한 모든 정보를 한 점으로 나타낼 수 있는가? 만일 계가 두 개의 변수만 가졌다면 그 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고등학교때 배운 데카르트식 기하학대로 수평선 위에 한 변수 그리고 수직선 위에 한 변수를 설정하면 된다. 만일 그 계가 마찰없이 흔들리는 추라면, 하나의 변수는 위치를 나타내고, 다른 변수는 속도를 나타낸다. 그것을 표시하는 점은 끊임없이 변하며 영원히 일정한 궤도의 루프를 반복해서 그릴 것이다. 더 큰 에너지 수준을 가진 동일한 계는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흔들리면서, 위상공간에 처음과 비슷한, 그러나 더 큰 원을 그릴 것이다.
그런데 좀더 사실적으로 생각하여 마찰을 고려하면 그림이 달라진다. 마찰력이 작용하는 추의 운명을 알기 위해서는 운동방정식 같은 것은 필요 없다. 모든 궤도는 결국 동일한 장소, 즉 위치 제로, 속력 제로인 위상공간의 원점에서 끝나게 마련이다. 이 중심의 고정점이 궤도를 유인한다. 영원히 루프를 그리는 대신에 궤도는 안쪽을 향해 나선형으로 감겨 든다. 마찰 때문에 계의 에너지가 분산되는데, 위상공간에서 그 분산은 고에너지인 바깥에서 저에너지인 안쪽으로, 즉 중심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으로 표시된다. 가장 간단한 종류의 어트랙터는 고무판에 박혀 있는 아주 작은 자석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좀더 사실적으로 생각하여 마찰을 고려하면 그림이 달라진다. 마찰력이 작용하는 추의 운명을 알기 위해서는 운동방정식 같은 것은 필요 없다. 모든 궤도는 결국 동일한 장소, 즉 위치 제로, 속력 제로인 위상공간의 원점에서 끝나게 마련이다. 이 중심의 고정점이 궤도를 유인한다. 영원히 루프를 그리는 대신에 궤도는 안쪽을 향해 나선형으로 감겨 든다. 마찰 때문에 계의 에너지가 분산되는데, 위상공간에서 그 분산은 고에너지인 바깥에서 저에너지인 안쪽으로, 즉 중심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으로 표시된다. 가장 간단한 종류의 어트랙터는 고무판에 박혀 있는 아주 작은 자석과 같은 것이다.
상태를 공간에서의 점으로 간주할 때 한 가지 이점은 그 변화를 관찰하기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변수가 연속적으로 변하는 계는 움직이는 점이 되는데, 그것은 마치 방안을 날아다니는 파리와 비슷하다. 만일 변수간에 어떤 조합이 생기지 않는다면, 과학자들은 방의 한 쪽이 파리가 갈 수 없는 부분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만일 계가 동일한 상태를 반복하는 주기운동을 한다면, 파리가 위상공간의 동일한 점을 되풀이해서 지나치며, 루프상을 날아다니는 것과 같다. 물리 계의 위상공간 그림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관찰할 수 없었을 운동의 형태들을 보여준다. 마치 적외선 사진이 지각의 영역 너머에 존재하는 형태나 세부 구조들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과학자가 위상공간의 그림을 볼 경우, 그는 상상력을 이용해 그것을 원래의 계로 환원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루프는 계의 주기성과 대응하며 꼬임은 그 변화와 대응하고 또 빈 공간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2 차원에서 조차도 위상공간은 놀라운 것을 많이 함축하고 있으며, 그것중의 일부는 방정식을 다양한 색깔의 움직이는 궤도로 변환시킴으로써 탁상용 컴퓨터로도 쉽게 나타내 보일 수 있다. 몇몇 물리학자들은 동료에게 보이기 위해 영화와 비디오테이프를 만들기 시작했고, 캘리포니아의 수학자 몇 명은 녹색, 청색, 붉은색의 만화식 그림을 삽입한 책들을 출간하였다. 그들 동료 중 어떤 이들은 '카오스 만화' 라고 조금은 악의 섞인 농담을 하였다. 그렇지만 2 차원으로는 물리학자들이 연구해야 하는 종류의 계를 망라하지 못했다. 그들은 2 개보다 더 많은 변수를 보여야만 했는데, 그것은 더 높은 차원을 의미한다.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동력학 계의 모든 요소는 또 하나의 변수, 또 하나의 자유도를 의미한다. 위상공간의 한 점이 계의 상태를 표시하는 데 충분한 정보를 갖기 위해서는 하나씩의 차원을 필요로 한다. 로버트 메이가 연구한 간단한 방정식은 1 차원이었다. 즉 온도나 개체수를 나타내는 수 하나로 충분했고, 그 수는 1 차원의 선상에서 점의 위치를 결정했다. 로렌츠의 간략화된 유체대류의 계는 3차원이었는데, 유체가 3 차원 운동을 해서가 아니라, 어느 순간에도 유체의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선 독립된 3 개의 숫자가 필요해서였다.
추를 보는 또 다른 방법. 위상공간 내의 한 점 (오른쪽 그림) 은 어느 순간의 동력학 계 (왼쪽 그림) 에 관한 모든 정보를 함축하고 있다. 단진자에서, 속도와 위치를 표시하는 두 개의 숫자는 우리가 알아야 할 전부다.
4 차, 5 차, 또는 그 이상의 차원들은 아주 명석한 위상수학자라 할지라도 시각적인 상상을 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복잡한 계는 많은 독립 변수를 갖는다. 무한 대의 자유도를 가진 계들 ㅡ 소용돌이치는 폭포나 예측 불가능한 두뇌에서 그 모습을 나타내는 자유로운 자연 ㅡ 을 표시하기 위해서는 무한 대 차원의 위상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수학자들은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누가 그런 것을 다룰 수 있단 말인가 ? 그것은 위험하고 통제할 수 없는 히드라와도 같다. 란다우가 생각한 난류의 이미지는 바로 이것이었다. 즉 무한한 양태, 무한한 자유도, 무한한 차원을 갖는 것 말이다.
어트랙터는 위상공간에서 한 점일 수도 있다. 마찰에 의해 계속해서 에너지를 잃는 추의 경우 모든 궤도는 안정된 상태, 즉 전혀 운동을 않는 고정된 점을 향해 안쪽으로 감겨 들어간다.
물리학자들이 자연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모델을 싫어하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유체운동의 비선형 방정식을 이용할 경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로도, 1 입방 센티미터 내의 난류의 흐름을 단 몇 초 간도 정확하게 추적할 수 없다. 그것은 란다우의 잘못이 아니라, 분명히 자연의 본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란다우의 모형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런 지식도 없는 물리학자라면, 어떤 원리가 발견을 피해가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위대한 양자물리학자인 파인만은 다음과 같이 소감을 피력했다. "우리가 오늘날 이해하고 있는 법칙에 따른다면, 아무리 작은 공간과,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거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컴퓨터가 무한한 논리 연산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는 골치가 아플 지경이다. 그런 작은 공간에서 그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날까? 아주 작은 시공의 영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기 위하여 무한 대의 논리계산이 필요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
카오스를 연구하기 시작한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듯, 다비드 루엘은 난류의 흐름 중에 있는 눈에 보이는 유형들, 즉 뒤엉킨 유선 (stream lines), 나선형의 소용돌이, 눈에 보였다가 사라지곤 하는 소용돌이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법칙에 의해 설명되는 유형을 반영할 것이라는 축측을 했다. 난류의 흐름에서 에너지의 분산은 위상공간의 수축, 즉 어트랙터를 향한 견인을 낳는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 어트랙터는 고정점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흐름이 멈추지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에너지는 빠져나가기도 하지만 계 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그것은 다른 어떤 종류의 어트랙터일까 ? 통설에 따르면, 어트랙터는 오직 하나가 더 존재하는데, 그것은 주기 어트랙터 혹은 한계사이클이라 불리는, 주위의 다른 모든 궤도를 유인하는 궤도이다. 추가 마찰로 에너지를 잃는 반면 또 스프링 장치에서 에너지를 얻는다면, 즉 괘종시계처럼 한편으로는 감속이 되고 한편으로는 가속이 된다면 그때의 안정된 궤도는 위상공간에서의 닫힌 루프가 될 것이다. 그 추가 어디에서 운동을 시작하든, 결국은 그 닫힌 루프의 궤도로 정착할 것이다. 아니 꼭 그렇지는 않고, 어떤 초기 조건하에서는, 예컨대 가장 낮은 에너지를 초기조건으로 가질 경우 추가 결국 멈추게 될 것이므로, 계는 실제로 두 개의 어트랙터를 갖고 있는 데, 하나는 닫힌 루프이고, 다른 하나는 고정점이다. 두 개의 인접한 강이 각각 물이 흘러 들어오는 유역 (流域) 을 갖듯이, 각 어트랙터는 각자의 '유역' (basin, 주어진 어트랙터로 유인되는 초기조건들의 닫힌 집합 : 옮긴이)을 갖는다.
짧은 시간 동안에는 위상공간 내의 어떤 점도 동력학 계의 가능한 행태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에 가능한 형태는 어트랙터 자체뿐이다. 다른 종류의 운동은 순간적이다. 정의에 의해, 어트랙터들은 안정성이라고 하는 중요한 물리적 성질을 갖는다. 운동하는 부분이 현실세계의 소음에 떠밀리고 부딪히는 실제 계에서는, 운동은 어트랙터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한 번의 충돌로 인해 궤도가 일시적으로 밀려 나기도 하지만, 그 결과 생긴 순간 운동은 결국 사라진다. 비록 고양이가 시계추를 쳤다고 해도, 추시계가 62 초가 1 분인 시계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는 전혀 달리 유체의 난류는, 다른 리듬을 대체할 어떤 단일 리듬도 만들지 않는다. 난류의 잘 알려진 특징은 가능한 사이클의 모든 영역이 한꺼번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난류는 백색 소음 (모든 진동수가 다 포함되어 있는 소음 : 옮긴이) 또는 공전 (空電) 소음과 같다. 그런 것이 간단한 결정론적 방정식 계에서 생길 수 있단 말인가 ?
루엘과 타켄스는, 일련의 적절한 속성을 갖는 뭔가 다른 종류의 어트랙터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첫째로 소음투성이의 세계에서, 동력학 계의 최종상태를 의미하는 안정성이 있어야 하며, 둘째로 저 차원 ㅡ 단지 몇 개의 자유도를 갖는 사각형 (자유도 2) 이나 입방체 (자유도 3) 같은 위상공간에서의 궤도 ㅡ 이어야 하고, 셋째로 비주기적 ㅡ 그 자체를 되풀이하지도 않고 결코 괘종시계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되지도 않는 ㅡ 이어야 한다. 기하학적으로 그 문제는 수수께끼였다. 도대체 어떤 종류의 궤도가 그 자체를 반복하지 않고, 또 결코 교차하지도 않으면서 ㅡ 계가 한번 과거의 어떤 상태로 되돌아가면, 즉 궤도가 교차하면, 그 이후에는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하는 주기 운동이 되기 때문에 ㅡ 한 저장된 공간 내에 그려질 수가 있는가 ? 모든 리듬을 만들기 위해선, 궤도는 한정된 구역 내에서 무한히 긴 선이어야 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ㅡ 이 말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ㅡ 그것은 프랙탈이어야 한다.
수학적 추론에 의해, 루엘과 타켄스는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그런 것을 본 적도 그린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한 것만으로 충분했다. 후에 바르샤바에서 열린 '국제수학자대회' 에서 본회의 연설을 할 때 루엘은 느긋하게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우리의 견해에 대해 과학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특히 많은 물리학자들은 연속스펙 트럼이 단지 몇 개의 자유도와 연관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이단시했다. " 그런데 1971 년에 발표된 논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논문이 의미하는 바를 연구하기 시작한 사람도 역시 몇몇 물리학자였다.
사실 1971 년에는 이미 과학 문헌에, 선 하나로 그려진 기상천외한 괴물, 즉 루엘과 타켄스가 생명을 불어넣으려 했던 바로 그 괴물의 그림이 실려 있었다. 로렌츠는 1963 년에 발표한 결정론적 카오스에 관한 그의 논문에 그 그림을 실었다. 그 그림의 오른쪽엔 하나의 커브 속에 또 하나의 커브가 있고, 왼쪽에는 그런 꼴의 커브가 다섯 개 있다. 겨우 이 일곱 개의 루프를 그리기 위해 컴퓨터로 500 회의 되먹임 계산이 필요했다. 위상공간에서 이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한 점은, 로렌츠가 대류를 설명하기 위해 3 개의 방정식으로 모델링한 유체의 느리고 카오스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계가 3 개의 독립된 변수를 갖기에 이 어트랙터는 3 차원의 위상공간에 나타난다. 비록 로렌츠는 그것의 한 부분만을 그렸지만 그는 자기가 그린 것 이상을 볼 수 있었으니, 그것은 무한히 교묘하게 짜인 나비 날개 한 쌍과도 같은, 일종의 이중나선이었다. 계의 온도가 상승하여 주위의 유체를 한쪽 방향으로 밀고가면, 궤도는 오른쪽에 머무른다. 돌던 운동이 멈추고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궤도는 반대쪽 날개로 가로질러간다.
어트랙터는 안정된 상태에 있고, 저차원이며, 비주기적이다. 그것은 스스로를 교차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즉 이미 지났던 점을 다시 지나간다면 그때부터 그 운동은 주기적으로 자신을 되풀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어트랙터의 뛰어난 점이기도 하다. 그 루프와 나선들은 무한히 깊었고, 만나지도 교차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상자에 갇힌 채 유한한 공간 내에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 어떻게 무한히 많은 길이 유한한 공간 속에 있을 수 있을까 ?
만델브로트의 프랙탈 그림이 과학시장에 범람하기 전엔 그런 형태를 구성하는 세세한 면은 상상하기 어려웠고, 로렌츠도 그의 잠정적인 설명에서 '일견 모순' 이라고 인정했다. "각각의 나선형 궤도를 포함하고 있는 두 면을 궤도의 교차 없이 합쳐서 조화시키기란 어렵다" 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로렌츠는 그의 컴퓨터 계산 능력 한계 안에서 나타내 보이기에는 너무나 미묘한 해답을 찾아냈다. 그는 나선형이 마주쳐 보이는 곳에서, 두 면은 매우 엷은 분리된 층을 형성하면서 나누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각 면은 사실상 한 쌍의 면이다. 따라서 그것들이 합쳐져 보이는 곳에는 사실상 네 개의 면이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을 한 번 더하면 그때는 실제로 8 개의 면이 있음을 보게 된다. 마침내 우리는 합쳐지는 두 면의 어느 한 면과 지극히 근접한, 무한히 복잡한 면의 집합체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1963 년에 기상학자들이 그런 식의 추론을 경원했다는 것과, 또 10 년 후 루엘이 마침내 로렌츠의 연구를 알아냈을 때 흥분과 경이를 느꼈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몇 년 뒤에 로렌츠를 방문했는데, 거기서 약간의 실망감을 안고 떠났다. 왜냐하면 서로 공통된 과학의 영역에 대해 좀더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의 성격 차이로 로렌츠는 그 만남을 사교적 모임으로 여겨 그들은 부부 동반으로 미술관 구경을 했다.
첫 번째 스트레인즈 어트랙터. 1963 년에 에드워드 로렌츠는 그의 간단한 방정식 계에 나타나는 어트랙터에서 처음 몇 개의 선밖에 계산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두 나선형 날개가 교차하는 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규모의 특이한 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루엘과 타켄스에 의해 암시적으로 제기된 문제를 추적하려는 노력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스트레인즈 어트랙터를 시각화하려는 부단한 이론적 노력이었다. 로렌츠의 어트랙터가 전형적인 것이었나 ? 다른 어떤 종류의 모양이 가능할까 ? 다른 하나는, 스트레인즈 어트랙터를 자연에서의 카오스에 적용할 수 있다고 하는 극히 비수학적인 신념의 비약을 입증하거나 반박하기 위한 일련의 실험이었다.
일본에서, 기계적 스프링의 운동과 비슷한, 그러나 훨씬 진동이 빠른 전기회로의 연구를 통해 우에다 요시스케 (上) 는 지극히 아름다운 스트레인즈 어트랙터들을 발견했다. (그에 대한 일본 과학계의 반응은 루엘이 경험했던 냉담함의 동양판이었다. 즉 "당신이 발견한 것은 거의 주기적인 진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가지고 특이한 정상상태라는 등 멋대로 해석하지 마라" 는 식이었다.) 독일에서, 화학과 이론생물학을 통해 카오스의 세계로 들어오게 된 기초 의학자 오토 뢰슬러는, 독특한 능력으로 우선 스트레인즈 어트랙터를 철학적인 대상으로 파악하고 수학은 그 뒤를 따르도록 하면서 연구를 시작했다. 뢰슬러의 이름은, 주름이 있는 리본 모양의 특히 간단한 어트랙터에 붙어 다니게 됐다. 그것은 그리기 쉽기 때문에 많이 연구되었지만, 그는 또한 더 높은 차원에서 어트랙터를 가시화 했다. 그는 말하곤 했다. "소세지 속에 소세지, 그 소세지 속에 소세지, 그 소세지 속에 소세지, 그것을 꺼내 접어서 쥐어짜고 다시 되돌려 놔라." 사실 공간을 접고 쥐어짜는 것이 스트레인즈 어트랙터들을 만드는 열쇠이며, 실세계 동력학 문제의 열쇠이기도 하다. 자연에는 스스로를 조직하여가는 성질이 있는데, 뢰슬러는 이런 형상들이 그러한 자기 구성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가 상상했던 것은 비행장에 있는 풍향계용 바람개비 같은 것이었다. 그는 "한쪽 끝에 구멍이 있고 속이빈 호스가 있다면 바람이 갇힐 것이고, 에너지는 중세기의 악마처럼 의지에 반해서 무엇인가 생산적 활동을 하게 된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자연은 자기 의지에 반하는 어떤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 뒤엄킴을 통해 미를 낳는다는 것" 이라고 말했다.
어트랙터 구조의 예시. 상단의 스트레인즈 어트랙터 ㅡ 맨 앞의 것은 궤도가 하나, 그 다음은 10, 그 다음은 100 개의 궤도를 나타낸다 ㅡ 는 일정한 간격으로 에너지를 받으면서 완전한 원을 회전하는 진자, 즉 회전자의 카오스적 행태를 보여준다. 100 번째 궤도 (중간 그림) 가 그려졌을 때, 어트랙터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게 뒤엉킨 다발이 됐다. 그 구조를 보기 위해 컴퓨터가 어트랙터를 가로지르는 단면, 즉 푸앵카레 단면을 취할 수 있다. 그 기법은 3 차원의 그림을 2 차원으로 축소시킨다. 궤적이 평면을 통과할 때마다 그것은 점으로 표시된다. 그러면 점차 정밀한 형태가 나타난다. 위 그림에는 8000 개 이상의 점이 있으며, 각 점은 어트랙터 주위의 완전한 궤도를 의미한다. 사실 그 계는 일정한 주기로 표본화된 것이다. 이리하여 정보의 한 종류는 잃었지만, 다른 하나는 분명하게 드러났다.
스트레인즈 어트랙터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궤도는 3 차원이나 그보다 높은 차원의 공간을 무한히 복잡한 경로를 통해 감아들어가면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내적인 구조를 갖는 난해하고 어지러운 궤적을 그린다. 이런 실타래 같은 3 차원의 궤적을 평면 그림으로 나타내기 위해 과학자들은 처음에, 어트랙터가 면 위에 던지고 있는 그림자를 나타내는 정사영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스트레인즈 어트랙터의 정사영은 세부적인 것을 알아볼 수 없는 덩어리로 나타난다. 좀더 알아보기 쉬운 것이 '되돌이 사상' (return map) 즉 '푸앵카레 사상' (poincarè map) 이다. 그것은 마치 병리학자가 현미경의 슬라이드를 만들기 위해 조직 일부분을 엷게 잘라내는 것처럼, 뒤얽혀 있는 어트랙터의 중십부에서 한 단면을 떼어내 2 차원으로 바꿔 놓는 것이다.
푸앵카레 사상은 어트랙터에서 한 차원을 없애 버리고 연속적인 선을 점의 집합으로 나타낸다. 과학자들은 어트랙터를 푸앵카레 사상으로 한차원 줄이더라도 그 본질적인 운동은 대부분 보존할 수 있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궤도가 컴퓨터 화면을 통해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스트레인즈 어트랙터를 상상할 수 있다. 궤도가 화면을 지날 때마다 그 교차점에 밝은 점을 남긴다. 그 점들은 무정형한 얼룩이 되든지 아니면 어떤 형태를 만든다.
그 과정은 계의 상태를 연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간격으로 표본을 뽑아 조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언제 표본을 뽑을 것인가 ? 다시 말해 스트레인즈 어트랙터의 어느 부분에서 그 단면을 취할 것이가 하는 문제는 어느 정도 연구자의 재량에 달려 있다. 그러나 가장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간 간격은 동력학 계의 물리적 특징과 상응하여 결정될 것이다. 예를 들면 추가 가장 낮은 점을 지날 때마다 그 추의 속력에 대한 표본을 뽑을 수가 있을 것이다. 혹은 일정한 간격으로 터지는 가상의 플래시에 따라 순간순간의 상태를 포착하는 규칙적인 시간 간격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방법이든지 그런 그림들을 로렌츠가 상상할 프랙탁 구조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가장 간단하기 때문에 가장 빛나는 스트레인즈 어트랙터는 난류나 유체역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에 의해 발견됐다. 그는 프랑스 남부 해안에 있는 니스관측소의 천문학자 미셸 에농이었다. 물론 어떤 면에서 동력학계는 천문학에서 출발되었으며, 혹성의 시계와 같은 주기운동은 뉴턴에게 위대한 업적을, 라플라스에게는 영감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천체역학은 중요한 점에서 거의 모든 지상의 계와 차이가 있다. 마찰에 의해 에너지를 잃은 계는 분산적이지만 천체 계는 그렇지 않고 보존적이다. 즉 해밀턴 계 (Hamiltonian system, 해밀턴은 영국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1805~65 ] : 옮긴이) 이다. 실은 극히 미세한 차원에서 생각하면, 천체 계조차도 별은 빛으로 에너지를 발산하고 궤도 운동을 하는 천체는 조류의 마찰로 인해 운동량을 잃는 등 모종의 항력 (抗力) 을 받는다. 그러나 사실상 천문학자의 계산에서는 분산을 무시할 수 있다. 그리고 분산이 없으면 위상공간은 무한한 프랙탈 층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접힘이나 수축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스트레인즈 어트랙터가 결코 생길 수 없다. 그럼 카오스는 가능할까 ?
천문학자 중에는 동력학 계 같은 것은 전혀 연구하지 않고도 오랫동안 행복한 연구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에농의 경우는 달랐다. 에농은 1931 년에 파리에서 태어났다. 로렌츠보다는 몇 살 어렸지만 그에 못지 않게, 수학에서 어떤 충족되지 않는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에농은 물리학적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작고 구체적인 문제들을 좋아했다. "요새 사람들이 하는 그런 종류의 수학이 아니고 말이야" 라고 그는 말하고 했다. 컴퓨터가 애호가들이 소유하기에 적당한 크기로 발전하자, 에농 역시 하나 (Heathkit 이란 퍼스널 컴퓨터) 를 사서, 집에서 그 키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전에 그는 동력학에서 특별히 골치를 아프게 하는 문제에 손을 대고 있었다. 그것은 구형 성단에 관한 문제였다. 그것은 밤하늘에서 가장 오래 되고 아마도 가장 숨막히게 하는 물체로서, 때로는 한 장소에 100 만 개 이상의 별들이 몰려 있다. 구형 성단에는 놀라 우리만치 많은 별이 있다. 어떻게 그것들이 함께 모여 있는지, 어떻게 진화해 가는지 하는 문제가 20 세기 내내 천문학자들을 괴롭혀 왔다.
동력학적으로 말하면, 구형 성단은 거대한 다물체에 관한 문제다. 두 물체에 관한 문제 (이제 문제) 는 간단하다. 뉴턴이 그것을 완전히 해결했다. 각 물체, 예를 들어 지구와 달은 중력의 공통 중심점 주위를 완변한 타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그런데 중력을 가진 단 한 개의 물체만 더 집어넣어도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세 물체에 관한 문제는 어렵다. 그것도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어렵다. 푸앵카레가 밝혔듯, 그것은 해결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 궤도들은 얼마 동안은 산술적으로 계산될 것이고, 또 성능이 좋은 컴퓨터라면, 불확실성이 화면을 덮어 버리기 전까지는 상당 시간 궤도를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방정식들을 해석적 방법으로는 풀 수가 없는데, 그 말은 세 물체 계에 대한 장기적인 문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양계는 안정되어 있는가 ? 짧은 시간대에선 분명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에조차도, 어떤 혹성의 궤도가 점점 중심을 이탈하여 마침내는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나 버리고 일이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구형 성단과 같은 계는 직접 다물체 문제로 접근하기에는 너무나 복잡 하지만, 그것의 동력학은 몇 가지 타협적 조건하에서 연구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개개의 별이 어떤 특정한 중심 (重心) 을 갖는 평균 중력장을 가로질러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간혹 두 개의 별이 아주 가깝게 접근했을 경우 그 둘의 상호작용은 평균 중력장과는 분리하여 다루어야 한다. 또 천문학자들은, 구형 성단은 일반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고 견고한 궤도를 이루는 별의 쌍, 즉 이중성 (二重星) 이 다발 안에서 형성되고, 또 다른 별이 이중성에 접근하게 되면 세 별 중 하나는 튕겨나간다. 간혹 별은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서 충분한 에너지를 얻어 탈출속도에 이르면 성단을 영원히 떠나 버린다. 그러고 나면 성단은 근소하게나마 수축된다. 에농이 1960 년 파리에서 박사학위 논문으로 이 문제를 다루었을 때, 그는 좀더 임의적인 가정을 해봤다. 즉 성단의 규모가 변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자체유사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계산을 수행하던 중 그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성단의 핵은 운동에너지가 증가함에 따라 밀도가 무한 대로 되면서 붕괴하리란 것이다. 이런 현상은 상상하기 어려웠고, 더욱이 지금까지 수행된 어떤 관찰도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그러나 에농의 이론은 차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 이론은 후에 '중력열에 의한 붕괴' (gravothermal collaose) 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힘을 얻은 에농은, 오래 된 문제에 수학적인 방법으로 도전하고 설령 그 결과가 뜻밖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끝까지 추적해 보려고 마음먹었다. 이제 그는 훨씬 쉬운 천제 역학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962 년에 프린스턴대학을 방문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컴퓨터를, MIT 의 로렌츠가 기상학에서 이용했던 수준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에농은 은하수의 중심 주위를 도는 별들의 궤도를 모델링하기 시작했다. 은하계의 중심은 한 점이 아니라 3 차원의 두터운 원반이란 한 가지 사실만 제외하면, 은하계의 궤도는 태양 주위를 운행하는 혹성의 궤도처럼 취급할 수 있다.
그는 미분방정식에 한 가지 절충안을 만들었다. 그가 말했듯 "좀더 많은 실험의 자유를 얻으려면 우린 잠정적으로 문제의 천문학적 기원을 잊어야 한다." 이때 '실험의 자유' 란 비록 그 당시엔 직접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부분적으로는 원시적 컴퓨터에서 그 문제를 다룰 자유란 뜻이다. 그의 컴퓨터는 25 년이 지난 오늘날의 퍼스널 컴퓨터에 쓰이는 칩 한 개의 1000 분의 1 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억용량을 가졌고, 속도 역시 느렸다. 그러나 카오스 현상을 다루는 후세 실험가들처럼 에농은, 지극히 간략화한 것이 오히려 잘된 일임을 알았다. 계에서 본질적인 것들만 추출함으로써, 그는 다른 계뿐 아니라 훨씬 더 중요한 계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발견을 했다. 수년 후가 되자 은하궤도 자체에 대한 문제는여전히 이론적인 유희에 불과했지만, 그러한 계의 동력함은, 고에너지 가속기 속에서의 소립자 궤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핵융합을 달성하기 위해 자기 (磁器) 플라즈마를 일정한 공간에 가두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많은 연구비를 지원받으면서 집중적으로 연구되었다.
은하계중심 주위도 궤도. 은하계 별들의 궤적을 이해하기 위해서 미셸 에농은 궤도가 평면과 교차되는 점들을 계산했다. 그 결과 패턴은, 그 계의 전체 에너지에 좌우됐다. 안정된 궤도로부터의 점은 계속해서 연결된 곡선을 만들었다. (왼쪽 그림 두 개) 그러나 다른 에너지 수준에서는 안정된 상태와 흩어진 점들로 표현되는 카오스가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아래쪽 그림 두 개)
약 2 억 년이라는 시간 규모에서 보면, 은하계 별들의 궤도는 완전한 타원을 만드는 대신 3 차원의 성격을 띤다. 3 차원 궤도는, 위상공간에서의 상상적인 구조물인 때만큼이나 실제 궤도일 때도 시각화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에농은 푸앵카레 사상과 비견될 만한 기법을 사용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상상했다. 은하의 한쪽에 평평한 종이를 똑바로 세워서, 마치 경주마들이 결승선을 가로지르듯이, 모든 궤도가 그것을 스쳐 지나가게 한다. 궤도가 평면을 지나치는 곳은 점으로 표시하고, 궤도에서 궤도로 그 점의 이동을 추적한다.
에농은 이 점들을 손수 그려야 했지만, 뒤에 이 기법을 쓴 많은 과학자들은, 황혼녘에 멀리서 가로등이 하나하나 점등되듯, 컴퓨터 화면에서 그것들이 나타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 전형적인 궤도는 그 종이 왼쪽 하단부의 점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한 번 돈 후엔 점이 오른쪽으로 몇 센티 떨어진 곳에 나타난다. 그 다음번엔 더 오른쪽 약간 위쪽에 나타나는 식으로 계속된다. 처음엔 어떤 패턴도 보이지 않지만, 10 개 내지 20 개의 점을 찍은 후엔 계란 모양의 곡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뒤에 계속되는 점들은 그 곡선 위에 나타난다. 그러나 점들이 똑같은 장소에 되돌아오지는 않기 때문에 몇 백 내지 몇 천 개의 점을 찍고 나서 보면, 그 곡선은 빈틈없는 윤곽을 드러낸다.
그런 궤도는 결코 정확히 반복되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규칙적인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예측가능하며 카오스와는 거리가 멀다. 점은 곡선의 안이나 밖에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완전한 3 차원으로 그것을 되돌려 보면 그 궤도는 도넛, 즉 원환체의 모양을 띠고 있다. 에농의 사상 (寫像) 은 그 원환체의 절단면인 것이다. 여기까지 에농은 단지 그의 선배들이 당연시했던 것을 그림으로 표시했을 뿐이다. 즉 궤도는 주기적이라는 것 말이다. 1910 년에서 1930 년까지 코펜하겐의 관측소에서는 일군의 천문학자들이 그런 궤도를 수백 개나 관측하고 계산해냈다. 하지만 그들은 주기적이라고 증명된 궤도에만 관심을 가졌다. 에농은 말했다. "나 역시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처럼, 궤도는 모두 이처럼 규칙적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프린스턴대학의 대학원생이던 카알 하일레스와 함께 그는, 그들의 추상적 계에서 에너지 수준을 꾸준히 증가시키면서 다른 궤도들을 계속 계산했다. 곧 그들은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보았다.
처음 계란형의 곡선은 더 복잡하게 꼬여서 숫자 8 처럼 되더니 서로 다른 루프로 떨어져 나갔다. 아직 각 궤도는 루프의 어딘가를 지났다. 그런데 더 높은 에너지 수준에서 갑자기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에농과 하일레스는 이렇게 썼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몇 궤도는 너무나 불안정해서 점들이 종이 위에 아무렇게나 흩어졌다. 어떤 부분에선 여전히 곡선이 그려졌지만, 다른 곳에선 어떤 곡선도 점들과 맞지 않는다. 그림은 점점 극적으로 되었다. 완전한 무질서의 증거들이, 남아 있는 분명한 질서와 함께 뒤섞이면서 이 두 천문학자가 '섬' 과 '열도' (烈島) 같다고 생각한 모양을 만들었다. 그들은 다른 두 대의 컴퓨터와 두 가지 다른 적분법을 이용하여 계산해 보았지만 결과는 동일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그들은 탐구하고 사유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오직 수치실험에 기초하여 그림의 심층 구조를 생각해 봤다. 그림을 확대하면 할수록 더 많은 섬이 나타나는데, 그 규모는 점점 작아질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제 수학적 증명이 필요했다. "그러나 문제에 대한 수학적인 접근은 쉬워 보이지 않았다. "
에농은 다른 문제에 착수했다. 그러나 14 년 후 마침내 그가 다비드 루엘과 에드워드 로렌츠의 스트레인즈 어트랙터에 관한 얘기를 접했을 때 그는 그것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1976 년에 그는 그랑드 꼬니쉐의 지중해 높이 자리잡은 니스관측소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거기를 방문중이던 한 물리학자에게서 로렌츠의 어트랙터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그 물리학자는 로렌츠 어트랙터의 섬세한 미시구조를 밝히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써보았지만,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분산 계가 에농의 영역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천문학자들은 난삽한 분산 계를 두려워한다.) 자기에게 좋은 생각이 있다고 느꼈다.
에농은 또다시 그 계의 물리적 기원에 관한 모든 참고사항들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탐구하고자 하는 기하학적인 본질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로렌츠와 다른 사람들이 미분방정식 ㅡ 시 · 공간하에서 연속적으로 변하는 흐름 ㅡ 에 집착해 있을 때 그는 시간에 관해 이산 (離散)적인 차이방정식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열쇠는, 가루반죽 과자를 만드는 사람이 밀까르 반죽을 글렸다, 접었다, 굴렸다 하면서 마침내는 얇은 층이 켜켜이 쌓인 구조를 만드는 것과 같이, 위상공간을 계속해서 접었다, 늘렸다 하는 것이었다. 에농은 종이 위에 평평한 타원형을 그렸다. 그것을 잡아늘이기 위해 그는 타원형 위의 모든 점을, 중앙이 위쪽으로 잡아당겨진, 궁형 위의 새로운 점으로 옮기는 간단한 수함수를 선택했다. 그것은 타원형 전체가 한 점씩 궁형 위에 사상 (寫像)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두 번째 사상을 선택했다. 이번엔 궁형을 안으로 오므라들 게 하여 더좁게 만드는 수축작업이었다. 세 번째 사상은 그 좁아진 궁형을 옆으로 돌려 처음의 타원과 깨끗하게 정돈되도록 한다. 이 세 개의 사상은 계산의 편의를 위해 한 함수로 합칠 수 있다.
정신적으로 에농은 스메일이 했던 편자 변형의 아이디어를 따르고 있었던 셈이다. 전체 과정은 수학적으로 너무나 간단해서 계산기로 쉽게 추적할 수 있었다. 모든 점은 수평선과 수직선상에서 위치를 갖기 위해 x 자표와 y 좌표를 갖는다. 새로운 x 를 찾기 위한 규칙은 이전 y 를 취해서 1 을 더하고 이전 x 의 제곱한 값에 1.4 배를 곱해서 빼는 것이다. 새로운 y 값을 구하기 위해서는 이전 x 에다 0.3 배 해준다. 따라서 그 식은 xnew = y + 1 - 1.4 x², ynew = 0.3 x 이다. 에농은 다소 임의적으로 시작점을 취해서 계산을 하여 수천 개가 될 때까지 새로운 점 하나하나를 손으로 찍었다. 그리고 IBM 7040 인 고성능 컴퓨터를 사용해서 재빨리 500 만 개를 그렸다. 그것은 퍼스널 컴퓨터와 그래픽 화면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해볼 수 있다.
처음에 점들은 화면 위를 제멋대로 뛰어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화면을 가로질러 불규칙하게 누비며 다니는, 3 차원 어트랙터의 푸앵카레 단면을 그대로 닮았다. 그러나 금방 바나나 같은 윤곽의 커브를 가진 한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이 계속될수록 더 상세한 세부구조가 드러났다. 어떤 부분들은 두께를 지닌 듯했지만, 그 순간 그 두터운 부분은 2 개의 분리된 선으로 바뀌었고, 그 2 개가 다시 4 개로, 한 쌍은 떨어져서 나타났다. 좀더 확대하자, 4 개의 선은 각각 또다시 2 개의 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무한히 계속되었다. 로렌츠의 어트랙터처럼 에농의 어트랙터는 마치 하나 속에 또 하나가 들어 있는 러시아 인형의 끝없는 연속과도 같은, 무한 소급을 보여줬다.
선 속에 또 선이 들어 있는 내포적 구조는, 점차적으로 확대되는 일련의 그림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스트레인즈 어트랙터의 섬뜩한 효과는, 그 모양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점한점 윤곽을 나타낼 때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안개 속에서 유령이 출몰하는 것처럼 나타난다. 새로운 점들이 화면에 너무나 임의적으로 흩어져 나타나기 때문에, 도대체 거기에 어떤 구조가 있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물며 그처럼 교묘하고 미세한 구조는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연속하여 화면에 나타나는 두 점은, 마치 난류를 보이는 유체 속에서 원래는 가까이 있던 두 점처럼,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다. 어떤 점의 위치를 안다 하더라도 그 다음 번 점이 어디에 나타날지는 추측할 수 없다. 물론 그 점이 어트랙터 위의 어딘가에 나타나리라는 것은 제외하고 말이다.
에농의 어트랙터. 늘이고 접음의 간단한 결합에 의해 계산은 쉽지만 수학자들이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어트랙터가 생긴다. 수천, 수백만의 점이 나타남에 따라 더욱더 상세한 세부가 드러난다. 하나로 보이던 직선이 확대해 보면 쌍이라는 것이, 또 쌍의 쌍이 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두 점이 가까이 있을지 혹은 멀리 떨어져 나타날지는 예측할 수 없다.
점들이 너무나 제멋대로 흩어져 나타나고 패턴은 또 너무나 절묘해서, 그 형상이 어트랙터란 걸 기억하는 것초자 어렵다. 그것은 동력학 제외 단지 어떤 궤도가 아니라, 다른 궤도들이 모두 그것을 향해 수렴하는 그런 궤도다. 초기출발 조건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출발점이 어트랙터 주변 어딘가에 있는 한, 그 다음 점들은 재빨리 어트랙터로 수렴할 것이다.
몇 년 전 (1974 년) 다비드 루엘이 골룹과 스위니의 뉴욕시립대학 연구실에 찾아왔을 때, 세 물리학자는 이론과 실험 사이에 있는 가느다란 연결고리를 발견했다. 그것은 수학의 한 부분으로서, 철학적으론 대담하지만 기술적으로는 불확실했다. 난류의 흐름을 보이는 실린더는 분명히 옛날 이론과 조화되지 않았다. 그들은 오후 내내 대화했다. 그리고 스위니와 골룹은 부부동반으로 아디론닥 산맥에 있는 골룹의 산장으로 휴가를 떠났다. 그들은 스트레인즈 어트랙터를 못 봤고, 난류가 시작될 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올바로 평가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란다우가 틀렸고 루엘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컴퓨터 탐험에 의해 드러난 이 세계의 한 요소, 즉 스트레인즈 어트랙터는 처음에 단순한 가능성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20 세기의 많은 위대한 상상력이 가보지 못한 영역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곧 스트레인즈 어트랙터를 실제로 보게 되었을 때, 그들은 난류의 음악이나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등 도처에서 이미 그것을 봐온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은 제한을 받고 있으며, 무질서는 어떤 공통적인 내면적 테마를 갖는 패턴과 통하는 것같이 보였다.
후에 스트레인즈 어트랙터에 대한 인식은, 수치적 탐구를 하는 이들에게 실행할 수 있는 명확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카으소 혁명에 기름을 부었다. 그들은 자연이 임의적으로 행동해 보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스트레인즈 어트랙터를 찾아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의 날씨는 스트레인즈 어트랙터 형태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다른 사람들은 수백만 편의 주식시장 자료를 집적해서,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는 컴퓨터 렌즈를 통해 임의성 속에서 스트레인즈 어트랙터를 찾기 시작했다.
1970 년대 중반에만 해도 이런 발견은 미래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상 아무도 실험을 통해 스트레인즈 어트랙터를 볼 수 없었고, 또 어떻게 그것을 찾아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이론상으로 스트레인즈 어트랙터는 카오스의 근본적인 새로운 속성에 수학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카옷의 속성은 초기조건에의 민감한 의존성이 그 하나요, 예를 들어 연료와 산소의 효율적인 혼합에 관심을 갖는 제트엔진 디자이너에게 의미가 있는 혼합이 다른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속성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어떻게 그것들을 수치적으로 표시할 것인가 하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스트레인즈 어트랙터는 그것들의 정확한 차원이 소수임을 의미하는,프랙탈 같아 보인다. 그러나 어떻게 그 차원을 측정할지 또는 그런 측정을 어떻게 공학문제에 적용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난점은, 스트레인즈 어트랙터가 비선형 계의 심오한 문제에 관해 무엇을 시사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다. 쉽게 계산되고 분류되는 선형 계와는 달리 비선형 계는 여전히, 그 본질상, 분류가 불가능해 보였다. 각자는 다른 모든 것들과 달랐다. 과학자들은 그것들이 어떤 공통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측정을 하고 계산을 할 수 있는 단계가 되자 각 비선형 계는 자기 내부로만 향한 세계임이 드러났다. 하나를 이해하는 것은 그 다음 것을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로렌츠 어트랙터와 같은 어트랙터가 그것이 아니었으면 임의적으로 보였을 계의 안전성과 숨은 구조들을 보여줬지만, 어떻게 이 특이한 이중나선이 그와 관련되지 않은 다른 계들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아무도 몰랐다.
당시에는 흥분과 열정이 순수과학을 압도했다. 스트레인즈 어트랙터의 형상을 본 과학자들은 잠시나마 과학적 대화의 규칙을 잊고 말았다. 한 예로, 루엘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스트레인즈 어트랙터의 미과학적 매력에 관해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 곡선의 계, 이 점들의 구름은 때론 불꽃놀이나 은하수를, 또 때론 기이하게 번식하는 식물을 상기시킨다. 탐구해야 할 영역과 발견해야 할 조화의 영역이 바로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