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와 전자 뇌

 

요술베틀 : Robert Jastrow 저, 최광복 역, 범양사 출판부, 1986 (원서 : THE ENCHANTED LOOM: Mind in the Universe, Simon & Schuster, 1981), Page 144 ~ 155.

 

인간은 진화라는 나무의 정상에 서 있다.  인간은 다시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원인이 멸종하였듯이 인간도 멸종하게 될는지 모른다.  이 지구상에 생존하였던 생물의 90퍼센트 이상이 멸종하였기 때문이다.  아니면 살아 있는 화석인 바다의 굴처럼 전연 변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렇게 되는 것 같기도 한데, 사실 사람의 몸 구조는 지난 백만 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으며 뇌의 크기도 지난 십만 년 동안 변함이 없었다.  물론 그 동안 뇌의 기능이 개선되기는 하였겠지만, 일정한 크기의 두개골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정보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인간의 뇌는 처음 백만 년 동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인간의 진화는 이제 끝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지능의 진화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지구 생물의 지능의 진화에서 최종 단계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보다 뛰어난 지능의 전신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인 사고가 아니겠는가.  인간이 원인과 직립 인류의 지능을 뛰어넘었듯이, 인간의 뒤에 올 새로운 생명체는 인간의 지능을 훨씬 앞지를 것이다.  생물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고등 동물일수록 지능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생물의 특성 중에서 환경의 변화에 따라 창조적으로 적응하는 능력 즉 지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이러한 지능의 진화는 1억 년 전부터 끊임없이 진행되어 왔으므로 "인간" 이라고 하는 특정 단계에서 갑자기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인간은 보다 지능적인 후손을 가지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인간의 뇌의 진화.  인간의 최근 조상이 되는 동물들의 화석을 조사해 보면 원숭이나 유인원의 뇌 성장은 비교적 장기간 서서히 진행되었으나 백만 년 전부터 성장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음을 알 수 있다.  약 25만 년 전에 성장 곡선이 거의 평행성을 이루었으며 지난 5만 년 동안에는 뇌의 크기에 변함이 없었다.  인간의 몸 구조는 지난 백만 년 동안 거의 변화되지 않았다.  인간은 진화가 완료된 단계에 도달한 것 같다.

도날드 요한슨 및 티모시 화이트 연구팀의 발굴에 의하면, 아프리카의 대초원 지대에 살았던 아우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는 다른 종류의 원인뿐만 아니라 인류의 공동 조상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의 여러 종류의 원인들은 초기 인류 (초기 인류속) 와 동시대에 살다가 약 백만 년 전에 멸종되었다.  도표의 X 표는 원인류의 멸종 시기를 표시한 것이다.  원인의 뇌 크기는 초기 인간류의 반밖에 안 되었다.  초기 인간류와 같은 시대에 살았으나 인간류의 월등한 두뇌의 연장 제조 기술에 뒤밀려 생존 경쟁에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다음에 나타날 생명체는 어떻게 생겼을까.  생물의 역사로 미루어보면, 새로운 형태의 생물은 과거의 생물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큰 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추측하건대, 다음 세대에 지구에서 살 게 될 지능적인 생물은, 모습은 우리와 비슷하겠지만 뇌가 상당히 큰 대신에 근육이나 체구는 왜소할 것으로 짐작된다.

현대 과학 기술의 진전을 감안하건대, 지능의 진화가 전연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어 가는 것 같다.  새로운 진화의 방향은 유전에 의한 새로운 특질의 전수 (생물적 진화) 라기 보다, 인간의 뇌가 창조한 문화적인 산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새로운 형태의 지능이란 컴퓨터 과학자에 의하여 실험실에서 창조되는 인공 지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인공 지능은 신경 세포 (뉴론) 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규소라는 물질로 된 칩 (chip) 으로 만들어지지만, 생각하고 기억할 수 있으며 배운 것을 활용할 능력도 있다.  인공 지능의 사고력은 아직 단순하고 창조적이지 않지만 현재 놀라운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터무니 없는 공상이라고 일축해 버릴 수도 있다.  어떻게 풍요한 인간의 사고 능력을 컴퓨터의 기계적인 사고에 비길 수가 있겠는가.  사실 현재의 전자 뇌는 인간의 뇌에 비하면 매우 원시적인 것이다.  전자 뇌는 엄청난 기억력과 연산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상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신 컴퓨터는 질문과 답변을 할 수 있고 인간과의 대화도 가능하다.  아름다운 시도 짓고 음악도 작곡할 수가 있다.  최신의 컴퓨터는 제법 복잡한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자기가 기계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이다.

뇌의 크기와 지능. 네안데르탈인의 뇌는 체중에 대비하여도 인간의 뇌와 크기가 같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은 3만 5천 년 전에 멸종하였고 인간은 살아 남았다.  뇌의 크기가 같았다면 지능도 같았을 터인데 어떻게 네안데르탈인만 멸종하였을까.

그 대답은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전두엽이 현대인에 비하여 작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네안데르탈인은 지능이 높았으나 뇌의 구조상으로 보아 현대인에 비하여 창조적 사고가 뒤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대뇌 전엽은 고도의 창조적 사고가 진행되는 부분으로서 현대인에게는 음악, 예술, 과학 등과 같은 일이겠으나 초기 인류에게는 역경을 헤쳐나가는 창조적 능력이었을 것이다.  평균적으로 뇌가 크면 지능이 높다고 말할 수 있지만 지능의 정도는 뇌의 내부 구조에 따라서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컴퓨터가 이렇게 친절한 말상대가 될 수 있다니 참 놀라운 일이다.  사실 컴퓨터는 원숭이처럼 사람이 하는 짓을 그대로 모방한다.  성능이 좋은 컴퓨터가 나오게 되면 모방의 기술도 점점 좋아질 것이다.  결국 나중에는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모방인지 알 수 없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컴퓨터 기술이 현재와 같은 속도로 급속히 진행된다면, 1995 년경에는 인간과 경쟁 상대가 될 수 있는 컴퓨터가 나올 것이라 기대되기도 한다.  이것은 새로운 지능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상을 단순한 공상으로 돌리기 전에 최근의 컴퓨터 기술의 발전상을 알아 보기로 하자.  현재 인간의 뇌가 컴퓨터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  인간의 평균 뇌 중량은 1,350그램으로서 25와트의 전기 에너지를 소모하며 부피가 2.8리터 정도가 된다. 이 작은 용적에 100억 개에서 1,000억 개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최초의 현대적 컴퓨터는 1960 년에 나온 IBM 360으로 대표되는데 기억 용량은 겨우 수백만 개의 정보에 불과하여 인간에 뇌에 비할 수 없는데도 소모 전기량은 10만 와트에 달하며 크기도 대형 장롱만하다.  IBM 360기종이 뇌와 같은 기억 용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가동 전기량이 10억 와트가 되어야 하며 크기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만큼 커야 한다.  이러 대형 컴퓨터를 만드는 데는 약 1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다.  이런 기계는 인간의 뇌에 비하면 형편없는 모조품일 뿐이다.

뇌가 컴퓨터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은 단지 크기가 작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질적인 차이에 있다.  뇌의 신경 세포는 그 하나 하나가 다른 신경 세포와 연결되어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한 개의 세포가 가지고 있는 연결 회로가 십만 개나 된다.  우리가 아주 오래된 일을 의식적으로 기억해 내려고 할 경우에, 이 잊어 버린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뇌신경 세포는 무의식 수준에서 수천 수만 개의 다른 세포와 정보 교환을 하게 되는데, 그 결과 우리는 이 정보만을 기억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관련돼 여러 가지 기억들을 연상해 낸다.  이러한 무의식 수준의 뇌 활동을 직관 또는 창조적 영감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뇌 세포의 수많은 연결 회로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컴퓨터의 기억 구조는 일면의 벽에 가로 세로로 나란히 칸이 쳐져 있는 비둘기집처럼 되어 있어서 집과 집 사이에는 상호 연결이 없는 평면적 구조로 되어 있다.  한 개의 정보가 한 개의 비둘기 집에 저장되어 있다가 필요할 때 빼내어 사용할 뿐으로 상호 연결도 없고 자체적인 사고 능력도 없다.  IBM 360기종은 뇌의 축소형이기는 하지만, 2.8리터의 회색 물질로 되어 있는 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능을 가진 기계인 컴퓨터가 아직은 유아기에 머물고 있지만 빠른 속도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0년 간의 컴퓨터 기술의 발전을 볼 것 같으면, 컴퓨터의 기능은 7~8년을 한 번의 주기로 하여 매번 10배의 승수로 발전되어 왔다.  컴퓨터 전문 용어로는 이 한 주기를 한 세대라고 한다.  이런 속도로 발전한다고 가정하면 미래의 컴퓨터 기술이 얼마나 발전될 것인가를 예상할 수 있다.  컴퓨터의 제 1세대는 진공관으로 만들어진 원시적인 것으로서 1950 년에 이 세상에 처음으로 나왔다.  1958 년경에 나온 제 2세대의 기종은 트랜지스터로 만든 것으로 1세대보다 연산 속도가 10배나 빠르다.  IBM 360으로 대표되는 제 3세대 컴퓨터는 연산 속도가 2세대의 기종보다 10배나 더 빠를 뿐만 아니라, 반도체 칩의 도입으로 보다 복잡한 사고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의 구성 물질은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를 거쳐 반도체 칩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전자 뇌의 정보 처리 능력.  지난 수십년 동안 컴퓨터의 기능은 놀란 정도로 발전하여 왔다. 1950 년 이래 컴퓨터의 정보 처리 능력 (기억 용량) 은 백만 배나 증가되었다.  이같은 발전 속도가 계속된다면 1995 년경에는 인간의 뇌와 거의 맞먹는 정보 처리 기능을 가진 컴퓨터 - 손가방만한 크기에 수십억 개의 정보를 기억할 수 있는 컴퓨터-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보다 정교한 반도체 칩으로 만들어진 제 4세대 컴퓨터는 1970 년대에 나왔다. 4세대 기종이 인간의 뇌와 같은 기억 용량을 가지게 되려면 큰 사무실만큼 커야 하고, 전기 사용량은 1만 와트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만큼 덩치가 크고 전기 소모가 많다면 아직 실효성은 없겠지만 한번 만들어서 사용해 볼만도 하다고 하겠다.

컴퓨터 기술은 날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에 1980 년대 말에는 지금보다 훨씬 우수한 기종이 나올 것이다.  반도체 칩의 소형화가 진행되어 0.6제곱센티미터에 불과한 작은 면적에 수천 개의 회로가 들어가는 고성능 반도체가 개발되었으며, 1990 년까지에는 백만 개의 회로가 들어가는 칩이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회로의 수가 백만 개라면 인간의 뇌와 같은 컴퓨터를 만든다고 해도 크기가 큰 가방만 할 것이고 전기 소모량도 1천 와트로 줄어들 것이다.

1995 년경에는 인간의 뇌와 거의 맞먹는 초고성능 컴퓨터의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크기는 손가방만할 것이고 전기 소모량은 20와트에 불과할 것이다.

 

 컴퓨터의 진화. 제 1세대 컴퓨터는 1950 년대에 진공관으로 만들었다.  진공관은 두 개의 수를 더하는 데 천 분의 일 초도 안 걸린다.

7년 후에 나온 제 2세대 컴퓨터는 트랜지스터로 만들었으며 크기가 트럼프 카드보다 더 작아졌고 계산 속도는 100만 분의 1초로 빨라졌다.  아래쪽에 있는 네 개의 원형 디스크가 트랜지스터인데 진공관보다 1천분의 1의 크기이다.

이보다 또 7년 후인 1960 년대 중반에 제 3세대의 컴퓨터가 나왔는데 크기가 더욱 축소되었다.  계산 속도는 100만 분의 1초로 제 2세대와 같으나 전자 부품의 크기는 우표보다 작아졌고 실리콘 판에 붙어 있는 트랜지스터는 0.5제곱밀리미터로서 거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아졌다.

이로부터 2, 3년 후에 처음으로 회로를 담은 칩이 나왔는데 초대형 회로가 콩알 만한 크기의 면적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제 3, 5세대의 컴퓨터라고 한다.

현재는 제 5세대의 컴퓨터가 개발 도중에 있는데 약 25만 개의 진공관에 해당하는 전자 부품이 0.3제곱밀리미터 정도의 칩에 담겨진다. 앞으로 10년 안에는 뇌의 신경 세포만큼 정교한 컴퓨터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는데 그렇게 되면 뇌의 정보 처리 능력에 비길 만큼 기억 용량이 큰 초미니 컴퓨터를 가방 안에 넣고 다닐 수가 있게 될 것이다.

 

실리콘 신경 세포.  실리콘 칩에는 0.3제곱센티미터의 면적에 수만 개의 전자 부품이 들어갈 수 있다.  사진의 전자 회로 칩은 천 배로 확대 한 것인데 수많은 회로와 트랜지스터가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연결 회로를 가진 칩은 기억하고 또 생각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것은 인간의 뇌와 비슷한 전자 뇌의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