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한국심리학회 심포지움 마음을 움직이는 뇌, 뇌를 움직이는 마음 pp. 189~217

뇌 연구의 탐색 도구들: 마음의 신비를 푸는 열쇠

저자: 강은주 (Kang, Eunjoo)
소속: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핵의학교실 인지신경영상연구실 (Cognitive NeuroImaging Lab)
📌 목차 (Table of Contents)

1. 두뇌가 손상된 환자가 제시하는 귀한 단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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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한 단어 한 단어를 힘겹게 내뱉는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의사 폴 브로카(Paul Broca)는 말을 하지 못하고 오직 '탄(Tan)'이라는 외마디 소리만 낼 수 있었던 르보른(Leborgne)이라는 환자의 사후 뇌를 부검하여 좌측 전두엽 하단에 심각한 손상이 있었음을 발견하였다. 이 영역은 훗날 그의 이름을 따서 브로카 영역(Broca's area)으로 명명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의 신경학자 칼 베르니케(Carl Wernicke)는 말은 유창하게 술술 나오지만 의미가 전혀 통하지 않는 횡설수설을 하며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환자들을 관찰하였다. 그들의 뇌 손상은 좌측 측두엽 상부에 위치해 있었으며, 이 부위는 베르니케 영역(Wernicke's area)으로 불리게 되었다.

💡 뇌 손상 환자 연구의 핵심 의의: 특정 뇌 영역의 손상이 특정한 인지 기능(언어 산출, 언어 이해, 기억 형성 등)의 선택적 결손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두뇌의 기능 국재화(Functional Localization) 이론의 초석을 마련하였습니다.

러시아의 위대한 신경심리학자 알렉산드르 루리아(Alexander Luria)는 2차 세계대전 중 총상이나 파편으로 뇌를 다친 수많은 상이군인들을 체계적으로 관찰하고 신경심리 검사법을 개발하여 뇌의 복합적인 기능 체계를 규명하였다.

또한 20세기 신경과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환자인 H.M.(Henry Molaison)은 난치성 간질 치료를 위해 양측 해마(Hippocampus)를 절제당한 후, 과거의 기억은 유지하면서도 수술 이후의 새로운 경험을 전혀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지 못하는 중증 순행성 기억상실증을 겪게 되었다. H.M. 환자의 연구는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의 분리, 그리고 서술 기억(Declarative memory)에서 해마의 절대적 역할을 확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 실험실에서 동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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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연구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뇌 손상에 의존해야 하므로 손상 부위가 깔끔하게 특정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 한계가 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정밀하게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실험동물 모델을 활용해 왔다.

원숭이, 쥐, 고양이 등의 동물 모델을 통해 정밀한 뇌 특정 부위의 전기자극(Electrical Stimulation), 국소 파괴술(Lesion study), 미세전극 단일 신경세포 기록(Single-unit recording) 등이 수행되었다. 파블로프(Pavlov)의 조건반사, 스키너(Skinner)의 조작적 조건형성, 칸델(Eric Kandel)의 군소(Aplysia) 연구를 통한 시냅스 가소성 규명 등은 모두 동물 행동 및 신경생리학 연구의 기념비적 결실들이다.

⚠️ 동물 연구의 한계: 동물 연구는 세포 및 회로 수준의 기전을 밝히는 데 매우 강력하지만, 언어, 추상적 사고, 복합적 자아의식, 미묘한 정서 상태와 같은 인간 고유의 고차 인지 기능을 설명하는 데는 본질적인 제한이 있습니다.

3. 두뇌, 그 활동의 비밀을 이해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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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살아있는 인간의 뇌를 손상 없이 안전하게 관찰하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하는 실시간 두뇌 활동을 어떻게 포착할 수 있을까? 20세기 후반과 21세기에 걸쳐 발전한 최첨단 뇌기능 영상 및 신경생리학 탐색 도구들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A. ERP / MEG : 두뇌 속의 전기 합창을 듣는다

두뇌 속의 신경세포(뉴런)들은 전기 신호(활동전위 및 시냅스후 전위)를 통해 정보를 교환한다. 수천만 개의 뉴런이 동시에 활동할 때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적 신호는 두개골과 두피를 뚫고 밖으로 흘러나오며, 이를 두피에 부착한 전극으로 기록한 것이 뇌전도(EEG, Electroencephalography)이다.

특정 자극(시각, 청각 등)이나 인지 과제와 시간적으로 동기화된 전위 변화를 수십 회 이상 평균하여 신호 대 잡음비를 극대화한 것을 **사건관련전위(ERP, Event-Related Potential)**라고 한다. ERP는 1,000분의 1초(밀리초, ms) 단위로 일어나는 인지 과정의 시간적 역동성을 추적하는 데 최적의 시간 해상도를 자랑한다.

전기 활동이 일어날 때 수직 방향으로 미세한 자기장이 발생하는데, 초전도 양자 간섭 소자(SQUID) 센서를 이용해 이 미세 자기장을 기록하는 기술이 **뇌자도(MEG, Magnetoencephalography)**이다. MEG는 두개골이나 두피 조직에 의해 왜곡되지 않아 ERP보다 훨씬 우수한 공간 국재화 능력을 제공한다.

B. 두뇌의 활동을 영상 지도화 한다

H₂¹⁵O PET (Water PET) 국소 혈류
반감기가 짧은 15O 동위원소 표지 물을 주사하여 활성화된 뇌 영역으로 몰려드는 국소 뇌혈류(rCBF)를 정량화합니다.
FDG-PET 포도당 대사
포도당 유사물질인 18F-FDG를 투여하여 뇌의 에너지 소비 현황 및 신경세포 대사 저하/항진 부위를 지도화합니다.
fMRI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BOLD 신호
산소화 헤모글로빈과 탈산소화 헤모글로빈의 자기적 특성 차이(BOLD)를 포착하여 밀리미터 단위 해상도로 뇌 활동을 연속 촬영합니다.
Receptor PET 신경전달물질
특정 수용체에 결합하는 방사성 추적자를 이용해 도파민, 세로토닌 등 신경화학물질 수용체의 분포와 밀도를 시각화합니다.

i. 혈류에 꼬리표를 붙인다 (water PET, H₂¹⁵O PET)

두뇌의 특정 영역이 바빠지면 그곳의 대사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즉각적으로 혈류가 증가한다. 방사성 동위원소 15O을 붙인 물(H₂¹⁵O)을 정맥에 주사하면, 혈류를 타고 뇌로 들어간 추적자가 활동이 왕성한 영역에 상대적으로 많이 도달하게 된다. 15O에서 방출된 양전자가 주변 전자와 결합하여 소멸할 때 반대 방향으로 방출되는 감마선 에너지를 PET 검출기가 포착함으로써 뇌혈류 지도를 그린다.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의 혈류 분포와 휴지 상태(통제 조건)의 혈류 분포를 통계적으로 감산 비교(Subtractive method)함으로써 기억, 언어, 시각, 정서 처리에 관여하는 특정 뇌 부위를 규명할 수 있다.

ii. 두뇌는 당분 공급, 소비자 현황을 파악한다 (FDG-PET)

뇌는 인체 무게의 2%에 불과하지만 전체 포도당 에너지의 20% 이상을 소비하는 대표적인 대사 장기이다. 18F-FDG(Fluoro-deoxyglucose)는 세포 내로 들어가 대사 첫 단계에서 인산화된 채 세포 안에 갇히게 되므로, 약 30~45분 동안 뇌의 각 부위가 소비한 포도당 대사량을 안정적으로 반영한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에서 측두-두정엽 부위의 특징적인 포도당 대사 저하를 조기에 포착하거나, 뇌전증(간질)의 발작 초점을 탐지하고, 정상 노화와 치매의 뇌 대사 변화를 감별하는 데 매우 탁월한 임상적·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iii. 산소의 과잉공급을 추적하라 (fMRI)

1990년대 등장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은 방사성 동위원소 주사 없이도 완전 비침습적으로 뇌 기능을 지도화하는 혁명을 일으켰다. 신경 활동이 증가하면 국소 산소 소비량보다 훨씬 많은 양의 산소화 혈류가 과잉 공급된다. 이때 반자성체인 산소화 헤모글로빈(Oxy-Hb)과 상자성체인 탈산소화 헤모글로빈(Deoxy-Hb)의 비율이 변하면서 국소 자기장 균일도와 MRI 신호 강도에 변화가 생기는데, 이를 **BOLD(Blood Oxygenation Level Dependent) 신호**라고 한다.

fMRI는 1~3초 간격으로 뇌 전체를 실시간 볼륨 단위로 연속 촬영할 수 있으며, 1~2mm 수준의 우수한 공간 해상도로 인지심리학, 뇌과학, 신경정신의학 연구의 핵심 표준 도구로 자리 잡았다.

iv. 화학물질의 지도를 형성하라 (Receptor PET)

뇌의 신비는 단순한 혈류나 산소 공급만으로 전부 설명될 수 없다. 신경세포 간의 정밀한 소통은 도파민, 세로토닌, 아세틸콜린, GABA, 글루타메이트 등 다양한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s)**과 수용체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수용체 PET(Receptor PET)은 특정 수용체에 결합하는 방사성 리간드를 개발하여 뇌 내 수용체의 밀도, 점유율 및 신경전달물질의 유리를 직접 정량화한다. 파킨슨병의 도파민 신경세포 소실, 우울증의 세로토닌 수용체 이상, 조현병, 약물 중독,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등의 분자 수준 신경병리를 밝히고 신약 치료 효과를 모니터링하는 데 필수적이다.

v. 연결망을 찾아라 (Connectivity 분석) & 경두개 자기자극술 (rTMS)

현대 뇌과학은 개별 뇌 영역의 고립된 기능(Localization)을 넘어, 영역 간의 동적인 네트워크 상호작용(**기능적/구조적 연결성, Connectivity**)을 분석하는 방향으로 진화하였다. 상호 상관 분석, 독립성분분석(ICA), 그래프 이론(Graph theory) 등을 통해 두뇌 연결망의 총체적 배선도를 탐구한다.

나아가 관찰된 뇌 영역이 특정 인지 기능에 필수적인지(인과관계)를 검증하기 위해 **경두개 자기자극술(TMS / rTMS)**이 사용된다. 두피 위에서 급격히 변화하는 자기장 펄스를 주어 하부 대뇌피질의 신경 활동을 일시적으로 흥분시키거나 억제(가상 병변 형성, Virtual lesion)함으로써 인과적 역할을 규명하고, 우울증 등의 신경정신 질환 치료에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4. 아는 것이 힘이다: 인간 이해와 실천적 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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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두뇌를 이해하는 것이 인간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Mind)을 탐구해 왔으며, 행동주의를 거쳐 객관적인 행동 과학으로 발전해 왔다. 이제 우리는 행동과 마음 사이의 블랙박스였던 '두뇌(Brain)'를 정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강력한 도구들을 갖추게 되었다.

두뇌-마음-행동의 3자 관계를 규명함으로써 인지, 정서, 의식, 의사결정의 심오한 작동 원리가 밝혀지고 있으며, 이는 심리학과 신경과학이 만나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확장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있다.

B. 두뇌가 아픈 사람, 도와줄 수 있는가?

두뇌 기능의 이상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치매, 뇌졸중, 우울증, 발달장애 등)에게 뇌 영상 도구들은 정확한 진단과 조기 발견의 길을 열어주었다. 약물 치료의 기전을 수용체 수준에서 확인하고,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에 기반한 재활 훈련과 맞춤형 교육적 개입을 설계할 수 있게 되었다.

🌱 지성·감성·이성의 터전, 나의 두뇌 돌보기

인간의 뇌는 평생에 걸쳐 경험과 학습에 의해 재조직되는 가소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지적 자극, 풍요로운 정서적 교류, 규칙적인 신체 운동과 건강한 생활 습관은 우리의 두뇌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마음의 안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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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올리버 색스 (살림터)
📖 《실전응용을 중심으로 한 기능 자기공명영상 실험》 - 유승식 (도서출판 의학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