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힘

요술베틀 : Robert Jastrow 저, 최광복 역, 범양사 출판부, 1986 (원서 : THE ENCHANTED LOOM: Mind in the Universe, Simon & Schuster, 1981), Page 100 ~ 109.

생물계의 진화는 속도가 매우 느리다.  포유동물의 시각 기능과 뇌 기능이 점차적으로 발달되어 온 것은, 본 것을 빨리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날수록 생존 경쟁에 유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백 수천만 년의 기간을 놓고 볼 때에는 진화의 흔적이 뚜렷하게 보이지만 몇 세대의 짧은 기간 동안에는 변화하는 과정을 거의 알아차릴 수가 없다.  어느날 갑자기 시각 기능이나 뇌 기능이 월등히 뛰어난 동물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포유동물에 있어서 눈과 뇌의 진화는 극히 미미한 작은 변화가 쌓이고 쌓여서 오랜 기간 동안 그 기능과 형태가 서서히 변화하여 온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우연히 일어나게 되는데, 예를 들면 X 선이나 우주선과 같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 세포의 조직에 변화가 생기는 수도 있고, 또는 출생시 유전자의 합성 과정에 잘못 (잡음) 이 생겨 세포 조직에 변이가 생기는 수도 있다.  이와 같이 하여 생긴 세포 조직상의 변화는 대부분 몸에 해로운 것이므로 다시 세대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서서히 없어지고 만다.  그러나 세포 조직상의 변화가 모두가 다 생명 보전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 어떤 것은 정말 우연히도 생존 경쟁에 유리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있어서 이런 변화는 그 정도가 미미한 것이라 할지라도 세대 교체의 과정에서 후대에게 물려지게 되는 것이다.

엉성한 눈과 엉성한 뇌를 가진 파충류가 어느날 갑자기 예리한 시각과 탁월한 뇌 기능을 가진 고등 포유동물로 변화한다고 상상해 보자.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위에서 설명한 새포 조직상의 작은 변화가 단시간 내에 연속적으로 수천번이나 일어나고, 또 그 수천 번의 변화가 모두 몸에 해로운 것이 아니라 이로운 것이 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주사위를 수천번이나 던졌을 때 모두 같은 숫자가 나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의하면, 눈이나 뇌의 세포 조직상의 변화가 생존 경쟁에 유리한 것이면 후대에 물려지게 되는데, 이러한 작은 변화가 수백만 년 동안 수십만 번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수없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나중에는 종류가 다른 새로운 생물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논리는 매우 간단하고 명백하다.  코끼리의 코와 기린의 목이 왜 길어졌는가를 이 논리는 잘 설명해 준다.  다른 기린보다 목이 좀 더 긴 기린은 좀 더 높은 나뭇가지의 잎도 따먹을 수 있었으므로 생존 경쟁에서 더 유리하였고 그 결과 더 튼튼한 새끼들을 출산할 수 있었다. 다른 기린보다 목이 긴 기린은 목이 긴 기린 새끼를 낳았다.  길어진 목의 길이는 한 세대에서 그 다음 세대 사이에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차이이지만 수천, 수만 번의 세대 교체를 거쳐 오면서 기린의 목은 현재와 같이 아주 길어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몸의 어떤 부분이 길어졌다든가 짧아진 것은 다윈의 자연도태설로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눈이나 뇌와 같이 매우 복잡하고 특수한 조직의 변화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눈의 정교한 기능을 보면 다윈의 자연적 진화설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다윈 자신도 이를 시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이는 다윈의 학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위안이 아닐 수가 없었다.  눈은 참으로 신기하게 만들어져 있다.  렌즈의 역할을 하는 눈동자가 있고, 초점을 맞추는 자동 조절 장치가 있으며,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조리개까지 있는 것이 꼭 고성능 망원경의 구조와 흡사하다.  이러한 눈은 누군가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천재적인 발명가라 하더라도 눈보다 더 훌륭한 망원경을 만들 수는 없을 것같다.  어떻게 이와같이 정교하 눈이 조직 세포의 우연한 변화가 쌓이고 쌓여서 저절로 생겨난 것일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다윈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신학자 윌리엄 팔레이 (William paley) 가 한, "옷이 있으면 반드시 옷을 디자인한 디자이너가 있어야 한다" 라는 말에 동조하였던 것이다.

다윈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와 같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을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진 눈이 자연도태의 원칙에 의하여 저절로 생성되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윈은 나중에『종의 기원』 (후판) 에서 자기의 소견을 번복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눈의 고안설과 자연생성설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고민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눈의 진화에 대한 다윈의 최종 판단은 다음의 글에서 나타는 바와 같이 매우 훌륭한 답변으로 평가된다.

이상에 인용한 것은 다윈의 진화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간과 우연한 변이, 그리고 "변화의 방향에 항상 영향을 미치는 어떤 힘" 이다.

우연한 변이가 오랜 기간 동안 수없이 계속된다면 기적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다윈의 주장이다.  그러나 다윈의 시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다윈의 이런 주장에 의혹을 품어 왔다.  그 이유로는 첫째, 자연적 진화에 의하여 기적이 일어났다는 증거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윈의 이론에 의하면 물고기가 변하여 결국 인간으로까지 진화하였다는 것인데 아무도 이 기적과 같은 변화의 광경을 목격한 사람이 없다.  현재 남아 있는 화석을 조사해 보면, 공룡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던 시기에 몸집이 아주 작은 포유동물이 고래나 코끼리와 같은 거대한 동물로 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쥐새끼만한 작은 동물이 고래나 코끼리 같이 큰 동물로 둔갑하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  단지 이 기적과 같은 진화의 증거는 간접적이긴 하지만 화석의 기록에 남아 있을 뿐이다.

둘째, 다윈의 진화론에서 말하는 창조적인 힘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다윈에 의하면 그 창조적 힘은 자연 속에 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자연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사실, 다윈의 진화론은 실제 실험을 통하여 확인된 사실을 근거로 하여 세운 가설이다.  즉, 여러 종류의 비둘기 (또는 개) 를 인위적으로 선택하여 교접시키면 새로운 종류의 비둘기 (또는 개) 가 나온다.  이와 같은 실험을 근거로 하여 다윈은 그의 진화론을 구축하였는데, 그렇다면 그의 진화론은 인위적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닌가.  다윈의 실험에서는 사람이 진화의 방향을 선택 (인위적 교접) 하였는데 그렇다면 자연의 진화에서는 과연 누가 진화의 방향을 선택한다는 말인가.

셋째, 다윈이 말하는 "우연한" 변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윈의 말대로 사람은 지난 40억 년 동안 계속된 우연한 변이의 결과로 우연히 생겨난 존재란 말인가.  과연 그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엄청난 지능과 정신을 가진 인간이 단지 우연에 의해서 먼지로부터 생겨났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인간의 눈이 현재와 같이 복잡하고 정교한 기관으로 진화한 것이 우연에 의한 산물이라고 믿기는 참으로 여럽다.  더욱이 인간의 탁월한 지능이 뇌 세포의 우연한 변이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다윈 자신도 이 문제에 대하여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다윈은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다.  "이 문제는 참으로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나는 우주의 변화를 우연의 결과로 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변화의 양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작용한다는 증거를 나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다윈과 같이 의심을 품거나 망설이지 않는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다윈의 진화론이 그 자체로서 충분한 이론이기 때문에 초월자의 인도하는 손 (진화의 방향을 인도하는 섭리의 손) 이 있어야만 진화론이 성립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진화론자인 심프슨 (George Gaylord Simpson) 박사는 "진화는 목적지를 정해 주는 자 없이도 목적지를 향하여 전진하며, 계획하는 자 없이도 거대한 계획을 스스로 수행한다" 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현대 과학자 거의 대부분의 의견을 대변한 것이라 하겠다.

이 문제에 대하여 나의 사견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실, 나의 의견은 다윈의 의견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진화론 자체를 놓고 본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서 완전한 이론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과학적 사실이외의 다른 초월적 힘이 진화를 이끌어 나간다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수억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에 걸쳐 진행되어 온 생물계의 진화를 돌이켜보면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에로 변화한다는 사실과 원시적 상태에서 보다 차원이 높은 지능적인 존재에로 진화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진화에는 일정한 방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원시적인 생물에서 인간에게까지 이르는 이 일목 요연한 진화의 역사가 그냥 우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과학자들은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고 장담하지만 과학적 지식으로 진화의 과정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화의 과정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하려는 노력은 타당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진화의 사실을 증명하는 화석의 발견이 이제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도달하였다.  다윈의 시대에 비하면 화석에 의한 근거 자료가 엄청나게 많아진 것이다.  특히 인간의 직계 조상이 되는 동물의 화석이 상당히 많이 발견되었는데 다윈 시대에는 이런 화석이 전연 없었다.  최근 고고인류학자들의 화석 발굴은 괄목할 만한 것이어서 인간의 기원에 대한 수수께끼가 많이 풀리었다.  물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몇 가지 남아 있긴 하지만 매년 새로운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얼마 안 가서 인간의 기원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가셔질 때가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현재까지 발굴된 화석 자료만 보더라도 인간은 수억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에 원시적이고 지능이 낮은 동물에서부터 점진적으로 진화하여 온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뼈는 그 하나 하나가 3억 5천만 년 전에 물속을 벗어나 육지 생활을 시작한 첫 물고기의 뼈 중 어느 부분이 변화하여 된 것인지를 뜯어맞출 수가 있다.  척추동물이 변화한 과정은 매우 뚜렷하여 물고기, 양서류, 파충류, 포유동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순서로 되어 있다.

머나먼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증명하는 일은 현재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명약 관화한 일도 아니고 수학 공식처럼 명쾌한 증명을 할 수도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동물에서 진화하였다는 것은 명약 관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증거 자료가 너무나 많고 너무나 확실시되어 인간의 진화를 도저히 부인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실로 진화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연 인간에까지 이르는 이 기나긴 진화의 과정이 우주적 초월자의 섭리에 의한 것인지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신비이며 또한 이 문제는 과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가 없다.  과학은 우주의 창조 이후부터 인간의 출현에 이르기까지의 사건에 대하여는 재미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우주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어디로 끝나게 되는지에 대한 목적론적인 질문에 대하여는 과학은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