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단계

요술베틀 : Robert Jastrow 저, 최광복 역, 범양사 출판부, 1986 (원서 : THE ENCHANTED LOOM: Mind in the Universe, Simon & Schuster, 1981), Page 100 ~ 132.

몸의 기관 중에서 진화되었다고 생각하기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뇌다.  사람이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것은 뇌의 기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색의 물질로 복잡하게 엉겨 있는 뇌도 몸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환경의 변화에 따른 자연 도태와 적자 생존의 원리에 따라 진화되어 온 것이다.

인간의 뇌는 100억 개의 신경 세포 (뉴론) 로 되어 있고 또한 100조 개에 달하는 연결 회로로 구성되어 있다.  연결 회로의 70퍼센트가 대뇌 피질에 있는데 대뇌 피질은 동물의 뇌 구조에서 가장 나중에 생겨난 것이다.  대뇌 피질은 주름살이 많은 피질 층으로 싸여 있는데 이곳이야말로 추상, 추리, 기억, 언어 구사, 학습 능력 등 인간의 탁월한 사고 기능을 조정하는 조정 센타이다.  유인원 동물에서 인간에로의 진화는 바로 대뇌 피질의 진화라고 말할 수 있다.  유인원 동물의 두개골이 커진 것은 대뇌 피질이 급속히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대뇌 피질이 급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약 6천만 년 내지 7천만 년 전이다.  화석의 기록에 의하면 이 기간 중에 그때까지 숲속의 나무 밑에서만 살던 포유동물 중에서 일단의 호기심 많은 동물이 나무에 기어올라가 살았다.  삶의 장소가 땅에서 나무 위로 옮겨지게 된 것이 뇌가 진화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그 당시, 왜 일단의 포유동물이 걷기에 편하고 살기에도 편한 평지를 버리고 떨어질 위험이 많은 나무 위로 올라가 살 게 되었는지는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수많은 육지동물 중에서 왜 일단의 무리만이 나무 위로 옮겨 살게 되었는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는 3억 5천만 년 전에 수많은 물고기 중에 하필이면 일단의 무리 (크로솝테리지안 : crossopterygians) 만이 물을 떠나서 뭍으로 기어올라와 살 게 되었는지를 우리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는 단지 소수의 동물들만이 삶의 환경을 바꾸게 되었으며, 삶의 환경이 바뀌게 되자 몸의 구조와 기능도 자연히 변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동물의 진화는 이렇게 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습성이 괴퍅하거나 호기심이 많은 소수의 무리가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에 우연히 발을 내딛게 된 것이 진화의 발단이 되는 셈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처음으로 탐험을 시작한 소수의 무리가 진화의 선봉이 되었다. 미지의 탐험에서 새로운 환경이 우연히도 살기 좋은 곳이면 그곳에 정착을 하게 된다.  이 용감한 소수의 집단은 자연 도태와 적자 생존의 원칙에 의하여 새로운 삶의 환경에 적응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몸의 구조와 기능이 서서히 바뀌게 된다.  이것이 진화의 과정이다.

상상해 보건대, 지금으로부터 7천만 년 전에 한 마리의 동물이 숲속의 한 나무에 기어올라갔을 것이다.  이유는 나무 위가 더 밝아서였든지 또는 단순한 호기심에서였든지, 아니면 이 동물이 동료들에 비하여 나무타는 솜씨가 뛰어났다든지 하였을 것이다.  나무 위에는 새로운 종류의 벌레와 탐스러운 과일 등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맹수의 위협을 느끼지도 않는 안전한 장소임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무 밑에서 구경하던 동료들도 이 새로운 모험에 가담하였을 것이다.  이 일단의 무리 중에서도 나무타는 솜씨가 좋고 나무위에서 떨어지지 않는 기술 (펑형 감각) 이나 나뭇가지와 가지의 거리를 파악하는 능력 (거리 감각) 이 뛰어난 우등생들은 나무 위에 아주 거처를 정해 버렸을 것이다. 나무 위의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풍요한 먹이와 맹수들로부터의 보호는 생존 경쟁상의 이점이 되는 이들 수상 포유동물은 날로 번성하였다.  새끼들은 배불리 먹고 건강했으며 수상 생활에 알맞는 유전적 특질을 부모로 부터 물려받았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들 동물의 수는 급속히 증가하여 결국 나무 위의 생활에 완전히 적응한 새로운 형태의 동물군이 형성되었다.

이와같이 처음으로 나무 위에 삶의 자리를 아주 정한 포유동물을 영장류라고 하는데 영장류는 원숭이와 유인원의 조상이 된다.  [주석 : 원숭이와 비슷하나 원숭이보다 먼저 나무 위에서 살았던 전 원숭이 (prosimian) 에는 마다가스카르 (Madagascar) 섬의 여우원숭이 (lemur), 보르네오의 안경원숭이 (tarsier) 등이 있는데 이것들도 영장류에 속한다.  영장류는 초기 수상 동물로서 영장류가 진화하여 원숭이가 되었다.]

나무 위에서 사는 동물이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건너뛰기 위해서는 정확한 거리 측정을 해야만 한다.  실수하여 떨어지면 뼈가 부러지거나 목숨까지 잃게 되는 수도 있다.  실수하여 떨어지면 뼈가 부러지거나 목숨까지 잃게 되는 수도 있다.  나무 위에서 사는 긴팔원숭이 (gibbon) 는 영장류 중에서 나무타는 솜씨가 뛰어난 종류인데도 한 조사 연구에 의하면 일생 동안 긴팔원숭이의 약 3분의 1이 나무에서 떨어져 크게 부상한다고 한다.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두 눈이 얼굴의 양 측면에 붙어 있어서는 안되고 얼굴의 전면에 위치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 겹치는 장면의 멀고 가까움을 분간할 수가 있다.  영장류 이전의 포유동물은 평지에서 살았기 때문에 눈이 머리의 앞쪽에 붙었다기 보다는 다소 옆에 붙어 있었다.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맹수를 빨리 알아내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주위를 평면적으로 넓게 보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눈이 양쪽 측면에 붙어 있는 것이 유리하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양쪽의 시야가 한번에 다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쪽 눈은 한쪽 면만을 보기 때문에 시각이 파악하는 것은 입체가 아니라 평면에 불과하다.  시야의 깊이, 즉 멀고 가까움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한 물체를 두 개의 눈으로 동시에 바라보아야만 하는데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두 눈은 얼굴의 전면에 나란히 붙어 있어야만 한다.  평면적 시각으로는 거리의 측정이 어렵다는 결점이 있다.  그래서 두 눈이 얼굴의 양쪽 측면에 하나씩 붙어 있는 동물에게는 주위의 시야가 2차원의 평면으로만 보이고 어느 것이 앞에 있고 어느 것이 뒤에 있는지의 거리 측정을 할 수가 없다.

나무 위에서 사는 영장류에게는 물체를 3차원의 입체적으로 보는 시각이 절대로 필요하다. 그런데 본래 측면에 붙어 있던 눈이 어떻게 얼굴의 전면으로 이동하게 되었을까.  같은 종의 동물이라도 몸의 구조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를 들어 사람에 따라 두 눈이 가까이 붙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 눈의 거리가 보통 사람에 비해 다소 떨어져 있는 사람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초기 영장류 중에서도 다른 영장류에 비해 눈이 다소 얼굴의 앞쪽에 붙어 있는 영장류가 있었다.  이런 재수 좋은 영장류는 입체적 시각에 의한 거리 측정이 가능하였으므로 나무 위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드물었으며 따라서 생존 경쟁의 승리자가 되었다.  이들이 낳은 후손들 역시 부모의 유전을 물려받아 눈이 얼굴의 전면에 위치한 특질을 가지게 되었다.  (주석 : 나무 위에서 사는 동물이면서도 영장류와 같은 적응 변화를 하지 않은 동물도 있다.  예를 들어, 다람쥐는 입체적 시각도 가지지 않았고 원숭이처럼 나뭇가지를 쉽게 잡을 수 있는 손도 가지지 않았지만 나무 위에서의 생활에 적응하였다.  영장류는 눈과 손이 모두 수상 생활에 알맞게 변화하였으며 결국에는 이들 특질을 인류에게 남겨 주었다.)

후기의 수상동물 (안경원숭이, 중간 그림) 은 눈의 이동이 완료되어 얼굴의 전면에 나와 있어서 입체적 시각에 의한 거리 측정이 가능하였다.  코도 상당히 작아졌는데 이는 수상 생활에서는 냄새의 중요성이 훨씬 작아졌기 때문이다.  안경원숭이의 앞발은 이제 길고 날카로운 발톱이 아니라 짧은 손톱으로 변하였고 손가락도 완전히 발달되어서 제대로 손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  안경 원숭이는 이제 더 이상 고양이처럼 손톱에 의지하여 나무에 오르지 않는다. 나뭇가지를 꼭 휘어잡을 수 있는 손이 있기 때문이다.  손가락 끝에 달려 있는 혹 같은 것은 나뭇가지를 잡은 손이 미끄러지거나 빠지지 않도록 한다.

동물의 화석을 조사해 보면, 눈의 위치 이동이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초기 영장류의 두개골의 화석을 조사해 보면 눈의 위치가 수백만 년의 기간에 걸쳐서 조금씩 조금씩 얼굴의 앞쪽으로 이동한 것을 알 수 있다.  원숭이와 유인원에 와서는 눈의 위치가 완전히 전면으로 오게 되는데 이렇게 눈의 위치 이동이 완전히 끝나게 될 때까지는 통틀어 2천만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소요되었다.

눈의 위치가 변동됨에 따라 뇌의 기능에도 변화가 왔다.  눈이 전면으로 이동하였다고 해서 저절로 입체적 시각 기능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여러 물체가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의 차이를 지각하는 뇌의 연결 회로가 있어야 한다.  최근 원숭이을 실험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원숭의 뇌에 이와 같은 거리 측정 연결 회로가 짜여져 있다는 것을 알아 내었다.  이 실험은 뇌의 시각 기능이 물체의 형태를 파악할 때 선과 각도의 형태로 파악한다는 것을 알아 내기 위하여 사용한 방법과 같은 실험 방법이다.  마취시킨 원숭이의 뇌의 시각 피질 부분에 전극을 꽂아 놓고 이 부분의 뇌 세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그라프의 파장으로 알아 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오른쪽 눈을 감고 왼쪽 눈만 뜨고 있을 때 전극 장치에 반응이 오면 이런 반응을 보낸 뇌 세포 부분은 왼쪽 눈에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실험에서 알아 낸 것은 뇌의 시각 피질에는 한쪽 눈에만 연결되어 있는 신경 세포가 있는가 하면, 양쪽 눈에 다 연결되어 있는 신경 세포도 있다는 것이다.

양쪽 눈에 연결되어 있는 신경 세포가 거리 측정을 하는 뇌 세포인 것이다.  이 신경 세포는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이 동시에 물체를 바라볼 때에만 작동을 한다.  이 경우 두 눈동자에 붙어 있는 근육이 움직여서 한 물체에 두 눈이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물체가 눈에서 떨어져 있는 거리에 따라 눈동자의 위치와 시각 근육의 이완 내지 수축의 정도가 달라진다.  눈동자의 위치가 어디에 있으며 근육의 수축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정보가 자에 눈금을 매기듯이 계량화된 형태로 뇌에 전달되면 뇌는 이 정보를 근거로 하여 물체가 눈에서 얼마만큼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눈의 근육이 얼마나 움직이는가를 파악하는 연결 회로는 뇌의 시각 피질에 있는데, 이 연결 회로는 본래 눈이 얼굴의 측면에 있었을 때에는 없었으나 눈이 얼굴의 전면으로 이동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생겨나게 된 것이다.  화석의 기록에 의하면, 눈의 위치 이동이 진행되고 있었던 초기 영장류의 시대에 뇌 중에서 시각피질이 차지하는 부분이 갑자기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숭이와 유인원의 뇌가 커진 것은 대부분 시각 피질이 커진 때문이다.

영장류의 뇌가 커진 또하나의 이유로는 아마도 색깔을 구분하는 뇌 기능의 발달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원숭이, 유인원, 인간은 모두 색상의 식별 능력이 발달되어 있다.  (주석 : 영장류를 제외하고는 색상 식별 능력을 가진 현생 포유동물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현생의 파충류와 조류는 색상 식별 능력이 있다.  포유동물의 조상이 되는 과거의 파충류도 이 식별 능력을 잃어 버렸는데 이는 아마도 공룡의 백주의 횡포에 쫓기어 야행성 동물이 되면서 시각 기능이 퇴행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색깔을 볼 수 있게 되면 물체를 훨씬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볼 수 있다.  나뭇가지가 무성한 녹색의 잎으로 가려져 있더라도 가지 끝에 달려 있는 빨간 열매를 찾아 내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특히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동물에게는 색깔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생존에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색상 식별 능력이 발달함에 따라 색깔을 지각하는 뇌의 연결 회로가 그 만큼 새로 생겨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체의 색깔이 뇌에게 주는 정보와 물체의 형태가 주는 정보는 각각 다르다.  그러나 물체는 형태와 색깔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색깔과 형태를 종합하는 또다른 연결 회로가 필요하다.  뇌의 기억 세포도 색깔을 기억하는 부분을 추가로 필요로 하기 때문에 뇌의 크기는 더욱 커져야 한다.  이렇게 해서 색상 식별 능력을 가지게 된 영장류의 뇌는 급속한 성장을 하게 된 것이다.

입체적 시각과 색상 식별 능력 이외에도 뇌의 성장을 촉진시킨 것은 네발 짐승의 앞발이 영장류에 와서는 동작이 자유로운 손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고양이같이 발톱을 가진 네발 짐승도 나무에 오를 수는 있으나 나무 위의 생활에는 부적합하다.  네발 달린 동물은 우선 나뭇가지 위에서 균형을 잡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나뭇가지 끝에 달려 있는 맛있는 열매를 따기는 더욱 어렵다.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건너뛰거나 이쪽 나무에서 저쪽 나무로 건너뛰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나무 위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뭇가지를 휘어잡을 수 있게 손가락이 발달되어 있어야 하고, 사지의 동작 (회전 동작)을 원활하게 해주는 어깨와 허리가 있어야 하며 손은 180도로 회전시킬 수 있는 손목이 있어야 한다.  개나 고양이는 손목을 회전시키지도 못하고 앞발을 머리 위로 올리지도 못한다.  유인원 (고릴라, 오랑우탄, 침판지 등으로서 일명 꼬리없는 원숭이) 과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원숭이의 경우는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이것이 가능하다.  화석이 남긴 기록을 보면, 영장류의 앞발이 손으로 바뀌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 변화의 과정이 완료되는 데에는 3천만 년의 긴 세월이 걸렸다.

이렇게 새로운 몸 구조를 가지게 된 동물은 나무 밑에서 생활하는 네발 달린 짐승과는 전연 모습이 다른 동물이 되어 버렸다.  이 새로운 동물이 바로 원숭이와 그 사촌이 되는 유인원이다.

현생 인류의 모습은 이미 원숭이에서 거의 마무리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입체적인 시각과 굴절이 잘 되는 손가락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물체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련된 손으로 물체의 질감, 형태, 무게, 온도 등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전연 새로운 시각과 촉각의 세계가 전개되었는데, 이는 봄으로써 물체의 깊이를 헤아리고 만짐으로써 물체의 질을 느끼는 풍요한 감각의 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각과 촉각은 원숭이의 뇌에서 종합되고 분석되고 기억되어야 하기 때문에 뇌의 연결 세포조직이 그만큼 더 있어야만 하였다.  뇌의 진화가 급속히 진전된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인간으로의 진화는 이 이후 급속히 진전되었다.  불행히도 원숭이는 3천만 년 전에 출현한 이래로 별로 변하지도 않고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원숭이의 진화는 완료된 것이다.  그러나 유인원의 진화는 계속되었다.  유인원은 몸집이 점점 커지자 나무 위에서 내려와 평지에 살 게 되었다.  수천만 년 전에 조상 동물들이 본래 살았던 고향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유인원이 땅으로 내려와 살 게 된지 수백만 년이 경과된 후, 일단의 유인원 무리 (침판지와 고릴라의 조상) 가 아프리카 동쪽에 있는 숲속에서 정착하여 살았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천 5백만 년 전에 지구의 기후가 갑자기 변함에 따라 진화의 방향이 바뀌었다.  기후의 급격한 변화로 진화의 방향이 바뀌어진 것은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3억 5천만 년 전에 가뭄이 오래 계속되자 일단의 물고기들이 수중 생활을 버리고 육지 생활을 선택함으로써 육지 생물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8천만 년 전에는 기온의 급강하로 공룡이 멸종하게 되었고 포유동물이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1천 5백만 년 전에는 무덥고 습기 찬 기후가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로 변하였으며, 이에 따라 동 아프리카의 밀림은 광활한 초원으로 바뀌었다. 건조한 기후가 계속됨에 따라 이 지역은 현재의 아프리카 대륙의 특징이 되는 나무 없는 대초원 (savanna) 으로 변모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수백만 년의 기간 동안 화석 기록으로 발견된 것이 없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숲에서 살았던 유인원은 이때까지 있었던 어떤 동물보다도 뇌가 크고 호기심이 많았던 동물이었다.  아마도 그 중에서 가장 용감하고 탐험심이 강한 유인원 무리가 안전한 숲속을 떠나서 광활한 초원지대로 삶의 자리를 옮겼던 것 같다.  이들 유인원 중에서 일단의 무리가 대초원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 성공하였던 것이 확실하다.  이때부터 초원 지대에서 유인원의 화석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반나 (초원 지대) 에 정착하여 살게 된 유인원은 이제 더 이상 유인원이 아니었다.  이들은 처음으로 두 발로 걷게 된 전연 새로운 동물이었다.  이 새로운 동물은 체중에 비하여 뇌의 크기가 상당히 커서 뇌 중량이 유인원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되었다.

화석 기록에 의하면, 두 발로 서서 직립으로 걷고 지능이 뛰어난 이 새로운 동물은 지금으로부터 4백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살았다.  이 동물의 이름을 학술적인 용어로는 아우스탈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Australopithecus afarensis, 아파르 원인) 라고 부른다.  [주석 :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원인 (ape-man, 유인원과 인간의 중간 형태의 동물) 을 학명으로는 아우스탈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Australopithecus '남쪽 원인' 이라는 뜻) 라 통칭하는데 최초의 원인으로 생각되는 동물의 화석이 20세기 초에 아프리카 남단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발굴에 의하면, 아프리카 남단에서 발견된 아우스탈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Australopithecus africanus) 가 최초의 원인이 아니고 아프리카 동쪽의 아파르 지역에서 발견된 것이 더 고대의 원인 (4 백만 년전) 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요한슨 박사가 발굴한 원인 (일명 : 루시) 은 아우스탈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Australopithecus afarensis, 아파르 원인) 에 속한다. ]  이 두 발로 걷는 원인은 뛰어난 사냥 솜씨를 가졌는데 작은 동물을 사냥하는 데 있어서 사자나 하이에나와 같은 사나운 육식 동물과 라이벌이 되었다.  그러나 아파르 원인은 몸집이 작아서 키가 1미터 20센티 정도밖에 안 되었고 날카로운 발톱도 날카로운 이빨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  원인은 사나운 맹수에 비하면 거의 무방비 상태의 연약한 동물이었으나 맹수들과의 생존 경쟁에서 이겼다.  그의 무기는 바로 그의 뇌였기 때문이다.

원인의 뇌는 겨우 4백 그램 정도이어서 현생 인류의 뇌 중량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몸집이 그만큼 작았기 때문에 결코 뇌 비중이 작은 동물이 아니었다.  사실 몸집이 작았기 때문에 몸의 근육을 움직이는 데 사용되는 뇌 세포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기억, 추리, 추상적 사고에 사용되는 회색의 대뇌 피질은 다른 동물에 비하여 월등이 컸다.

원인이 이와같이 상대적으로 큰 뇌를 가지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백만 년 내지 3백만 년 전의 일인데, 이때는 벌써 그의 조상이 되는 숲속의 유인원이 대초원으로 나와 살 게 된 지가 수백만 년이나 되었던 때이다.  이 원인은 그 후 백만 년 동안 살면서 처음에는 아우스탈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Australopithecus africanus, 아프리카의 원인), 그 다음에는 아우스탈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 (Australopithecus robustus, 뼈대가 튼튼한 원인) 로 진화되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백만년 전쯤에 이 원인류는 모두 멸종하고 말았다.

그러나 원인은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원인이 멸종되기 약 백만 년 전에 원인을 조상으로 하여 새로운 종으로 출현한 지능이 높은 동물이 있는데 이를 우리는 호모에렉투스 (Homo erectus, 직립 인류) 라고 부른다.  호모 에렉투스는 원인과 마찬가지로 직립하여 걸었지만 훨씬 고상한 풍모를 가졌다.  몸과 얼굴 모양이 유인원보다는 현생 인류에 가깝고 뇌도 컸다.

원인과 직립 인류의 뇌는 처음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원인의 지능은 발달되지 않고 본래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데에 반하여, 직립 인류의 뇌는 계속 성장을 거듭하였다.  이것은 뇌의 진화에 있어서 최종 단계의 성장이었다.

이제 이야기의 무대는 지금으로부터 1백만 년 전으로 옮아 가는데 원인이 사반나에서 거의 사라졌을 때이며 한편 직립 인류는 사냥꾼으로서 자신의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였던 때이다. 아무리 큰 짐승이라도 직립 인류의 지능의 힘에도 당할 수가 없었다.  이때에 벌써 직립 인류는 돌 연장을 만들어 썼다.  그런데 갑자기 직립 인류의 뇌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짐작컨대, 연장의 사용이 뇌를 급성장시키는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원시적 인류에 속하는 직립 인류가 연장을 만들어 사용하게 된 것은 두 발로 직립하여 서게 되어 두 팔이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6천만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동물의 앞발을 정교한 손으로 탈바꿈된 것이다.  직립 인류의 손은 유연하면서 동시에 강한 힘을 발휘하였다.  현대인의 손과 마찬가지로 망치나 몽둥이를 쥘 때처럼 무엇을 힘껏 거머쥘 수가 있었고, 또한 콩알을 집거나 바느질을 할 때처럼 엄지와 검지로 작은 물건을 집을 수 있는 섬세함이 있었다.직립 인류는 입체적 시각 기능을 가졌으며 또한 시각과 촉각을 종합할 수 있는 고도로 정교한 뇌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창과 도끼를 만들 수가 있었다.  연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울퉁불퉁한 나뭇가지 중에서도 곧은 몽둥이감이 될 것을 찾아 내거나 둥근 돌 주에서 돌도끼가 될 재목을 찾아 내는 고도의 추리 능력이 필요하다.  연장을 만드는 동물은 상상할 수 있는 뇌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아무리 단단한 돌이라도 다른 단단한 돌에 맞부딪치면 날이 선 돌도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추리, 죽은 동물의 털가죽은 몸을 따뜻하게 해줄 것이라는 추리, 그리고 어두운 동굴을 밝게 하려면 불을 사용하면 된다는 추리 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초기 원시 인류 중에서 이러한 추리와 상상을 할  수 있었던 부류는 소수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원시인들의 추리 능력과 상상 능력에도 개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남보다 뛰어난 추리 능력을 가진 자가 발명가가 되고 이론가가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원시시대에도 상상으로 생각한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는 데 성공하는 천재적 발명가가 있었다.  이들 발명가들은 짐승의 눈을 속이는 교묘한 사냥 방법과 맹수를 때려 눕히는 효과적인 무기를 발명하였다.  이런 뛰어난 원시인들은 성공적인 사냥꾼이 되어 그 후손이 번창하고 그들의 뛰어난 지능은 후손에게 유전됨으로써 지능의 고도화가 진전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초기 영웅들의 위대한 업적은 후손에게 물려지고 세월이 흐를수록 보다 고도의 기술로 발달되었다.  이것을 할 수 있었던 초기 원시인들은 빠른 직관력과 뛰어난 기억력을 소유하였음에 틀림이 없다.

뛰어난 기억, 민첩한 직관, 고도의 추리와 천재적 발명은 모두 지능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 지능은 모두 뇌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지능의 고도와는 뇌의 성장을 의미한다.  직립의 자세는 연장의 사용을 가능하게 하였고 그 결과 초기 원시인의 뇌는 급성장하였던 것이다.

고고학 박물관을 가보면 원시인들의 연장 제조 기술이 어떻게 발달하여 왔는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연장의 발달은 뇌의 발달과 함께 이루어졌다.  연장을 만드는 기술의 축적은 뇌의 성장을 촉진시켰고 또한 뇌의 성장은 기술의 발달을 가속화시켰다.  이러한 이중적 상승 작용을 통하여 초기 인류의 뇌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뇌의 성장을 촉진시킨 것은 연장의 제조뿐만 아니라 언어의 사용도 큰 역할을 하였다.  인간의 진화에서 정교한 발음을 할 수 있게 하는 후두와 같은 발성 기관이 완성되면서 언어의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언어는 원시인들이 동물 사냥을 할 때 의사 소통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협동적인 사냥을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혼자로서는 도저히 생각도 못 하는 큰 짐승 (코끼리나 물소 따위) 도 여럿이서 작전 계획을 세워서 손쉽게 잡을 수가 있었다.  또한 언어의 발달은 그룹 동료들간의 친화를 도모하였으며,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경험을 손쉽게 전달받을 수 있는 학습의 효과가 컸다.  혀와 후두 등 발성 기관이 발달 되면서 언어를 더욱 많이 사용하게 되었으며, 언어를 많이 사용할수록 사고의 내용을 단어로 표현하는 뇌의 작용이 추가로 필요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연장과 언어의 사용은 뇌의 사용을 촉진시킴으로써 뇌의 급속한 성장을 가져왔다.

원시 인류의 뇌는 1백만 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약 4백 그램이나 더 불어났는데 이는 주로 연장과 언어의 사용 때문이다.  이 추가적인 뇌의 확대는 주로 대뇌 피질의 앞부분 (대뇌 전엽) 에 집중되었는데 이 부분은 가장 창조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를 하는 뇌 부분이다.  이와 같이 대뇌 전엽이 확대됨에 따라 원시 인류의 이마가 앞으로 튀어나오게 되었다.  즉 이마가 들어가고 턱 부분이 툭 튀어나온 동물의 얼굴 모습이 없어지고 현생 인류와 같은 지능적인 얼굴로 변한 것이다.  이 지구상에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 '지혜의 인류'라는 뜻) 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