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ward A. Feigenbaum
컴퓨터를 만든 15 인의 과학자 : Dennis Shasha. Cathy Lazere 공저, 박영숙 옮김, 세종연구원, 1998 (원서 : Out of Their Minds : 1995), Page 309~328
지식을 토대로 한 시스템을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세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지식, 지식, 지식이다. 어떤 시스템의 경쟁력은 대체로 그 시스템이 얼마나 추론을 잘하는가에 대립되는 의미에서 그것이 무엇을 알고 있는가의 함수이다. - 에드워드 A. 파이겐바움
전문가 시스템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주식 포트폴리오를 수행하고, 자동차 설계를 돕고, 비행기 노선의 시간표를 짜고, 전쟁을 계획하기도 한다. 많은 연구자들과 실무자들이 전문가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하였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그 개발 과정에 틀을 제시해 온 한 사람의 과학자가 있다.
에드워드 파이겐바움은 1936 년 뉴저지 주 위호켄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폴란드 출생의 이민자였던 아버지는 그가 첫돌을 맞기 직전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재혼을 하였고, 그에게 과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것은 바로 작은 제과점의 회계사이자 지배인이었던 파이겐바움의 양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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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티의 헤이든 플라네타리움 (Hayden Planetarium) 천문관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전시물을 교체합니다. 나의 양아버지는 매번 새로운 것이 전시될 때마다 나를 데려가곤 했지요. 그 후엔 자연사 박물관의 한 작은 부분을 답사하곤 했습니다. 결국 몇 달이 지나자 우린 그 전체를 완전히 답파하게 되었지요. 그것이 나의 과학에 관련된 최초의 기억입니다. |
열렬한 독서광이었던 파이겐바움은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나타냈고, 특히 과학 과목에 아주 뛰어났다. 그는 그의 양부가 제과점에서 사용하던 거대한 전기 기계식 먼로 (Monroe) 계산기에 완전히 혼을 빼앗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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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는 수많은 휠이 들어 있고 모터와 커다란 키보드까지 달려 있는 20 파운드도 넘는 무게의 커다란 탁자형 모델들이 있었습니다. 숫자들을 두드린 다음 '더하기' 나 '곱하기' 표시가 된 커다란 버튼을 누릅니다. 그러면 휠들이 돌아가면서 찰깍 찰깍 찰깍 소리를 냈지요. 난 먼로가 내 대신 해 줄 수 있는 일들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 기계는 내가 손으로 푸느라 힘겹게 씨름하던 온갖 복잡한 계산들을 해 낼 수 있었지요. 난 친구들에게도 그 능력을 직접 보여 주기 위해 그걸 들고 고등학교 스쿨 버스에 탔습니다. 그 물건은 아주 무거워 운반하기가 상당히 힘들었지요. 그런데 친구들은 전혀 감명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난 그 물건을 그냥 집으로 가져 왔지요. |
과학자로서의 삶이 파이겐바움에겐 상당히 매력적이었지만, 부모님의 독촉으로 그 대신 전기공학을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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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엔 매일 매일의 생계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돈을 버는 일이 아주 큰 관심거리였습니다. 공학은 과학에 비해 보다 만족스러운 대안으로 보였습니다. 더 실용적이고 더 많은 돈을 번다는 의미였겠지요. 전기공학은 과학과 수학의 교차점에 해당하는 분야였습니다. 전기공학에서는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추상적이었습니다. 반면에, 기계공학이나 토목공학은 현실적인 분야였지요. 난 결코 '물질 (stuff)' 의 인간에 속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사색 (thoughts)' 의 인간에 가깝지요. |
1952 년 파이겐바움이 지금은 카네기 멜런 대학이 되어 있는 카네기 공과대학에 입학할 무렵까지도 전기공학은 전력 발전기, 라디오, 당시의 초기 텔레비전 등에 주로 관여하고 있었다. 평균적인 학부생들에겐 컴퓨터는 존재하지도 않는 시절이었다. 전기공학의 커리큘럼을 뛰어 넘으라고 격려하던 한 교수에게 힘을 얻은 파이겐바움은 당시 카네기에 신설된 산업 경영 대학원 (Graduate School of Industrial Administration) 의 과정들을 선택하기 시작하였다. 그 곳의 교수들 가운데 하나였던 제임스 마치 (James March) 는 파이겐바움에게 10 년전 헝가리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이 개발한 게임 이론의 발상을 처음으로 접할 기회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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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주 흥미진진했습니다. 날 완전히 사로잡았지요. 그 이론은 분석적이고 신중한 모형들을 사회 현상에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학부 수준의 엔지니어에겐 자신이 배우는 과학이 아주 틀에 박힌 것으로 여겨지게 마련입니다. 뉴턴의 법칙은 오랜 시간 동안 다루어져 왔습니다. 열역학의 법칙들도 오랜 시간 동안 논의되었지요. 그리고 백만에 달하는 다른 공학도들이 해 온 것과 똑같은 종류의 미분 방정식을 배웁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나는 모두 낯설고 훌륭한 폭넓은 아이디어들로 가득찬 폭발적인 지능을 가진 한 사람과 짝을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
또한, 파이겐바움은 카네기에서 허버트 사이먼을 만나게 된다. 사이먼은 이전에 마셜 플랜을 관리했던 인물로서 단련된 정치적 과학자였다. 사이먼은 그의 거대한 관료주의에 대한 연구에서, 개인은 합리적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암시적 혹은 명시적인 일련의 규칙들에 따라 일하는 것이란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는 또한 조직체 내의 부서들이 흔히 자체의 목표에 초점을 둔다는 사실도 관찰하였다. 예를 들면, 선적 부서에서는 설사 고객들이 불평을 하는 경우에라도 최대한의 배달량을 맡게 되기를 원한다. (사이먼은 훗날 조직이 지니는 합리성의 한계를 보여 줌으로써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다.)
1950 년대 초, 랜드사에서 방공 프로젝트 작업을 하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던 사이먼과 앨런 뉴웰은 컴퓨터를 사용하여 인간의 사고 작용을 시뮬레이트하는 실험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사이먼이 관찰한 모델, 즉 각각 하위 목표를 가지고 각각 규칙에 의해 추진되는 구성 요소들의 집합체에 가깝게 설계하기로 동의하였다.
파이겐바움이 사회 과학 분야의 수학적 모형들에 대한 사이먼의 상급반 과정을 수강하고 있었던 1955 년, 마침 뉴웰과 사이먼은 하나의 전략을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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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크리스마스 휴가에서 돌아 왔을 때, 사이먼은 자신과 알 뉴웰이 생각하는 기계를 발명하였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 기계는 바로 논리학 이론가엿지요. 그 수업 시간에 우리는 "무슨 말씀인가요, 생각하는 기계라니요?" 하고 물었습니다. 우리에겐 그것이 아주 기괴한 착상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사이먼은 자신이 기계라는 말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설명한 다음, IBM 701 의 매뉴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난 그 매뉴얼을 집으로 가져와 곧바로 그날 밤을 새워 읽어 버렸지요. 다음 날이 밝았을 때 난 다시 태어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컴퓨터 과학자같은 건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 과학자' 라는 표현을 쓸 수가 없지만, 난 내가 원하는 일을 깨달았습니다. 다음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하는 것이었지요. |
논리학 이론가 프로그램은 러셀 (Russell) 과 화이트헤드 (Whitehead) 의 대표적인 저서 『Principia Mathematica』의 명제 논리학에서 증명들을 발견하는 시도를 하였다. 그 이전에는 아무도 자체적으로 발견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한 사람이 없었다.
뉴웰과 사이먼은 경험적 학습의 발상을 공식화하는 것으로 출발하였다. '경험적 학습 (heuristic)' 이란 수학자 조지 폴리아 (George Polya) 에게서 빌어온 용어로서, 명시적으로 공표된 해법이다. 예를 들어, Y 를 증명하고자 할 때, 만일 X 가 Y 를 함축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대신 X 의 증명을 시도할 수 있는 거싱다. 이 특정한 경험적 방법은 고등학교 과정의 기하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친숙한 개념이다. 즉, 어떤 기하학 형태의 두 변이 같다는 것을 증명할 때에는 그 두 변을 포함하는 두 개의 삼각형이 합동인지 아닌지를 알아본다는 식의 방법은 잘 알려져 있다.
이어서 그들은 먼저 어떤 명제의 전역 리스트에서 하나의 명제를 제거한 다음, 모든 가능한 경험적 방법을 적용하는 것으로 구성된 하나의 검색 전략 (search strategy) 을 지정하였다. 각각의 경험적 방법은 증명할 새로운 명제를 도입할 것이며, 그 명제는 리스트에 추가되거나 리스트상의 명제를 대체할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은 죽는다' 는 공리가 주어진다면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라는 명제를 증명할 때,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대신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로 그 증명할 명제를 대체하는 경험적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적 방법과 검색의 조합은 10 년 후 파이겐바움이 전문가 시스템의 발상을 공식화하는 데에서 직접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파이겐바움은 산업 경영 대학원의 사이먼 아래서 박사 학위 연구를 하기 위해 카네기에 계속 머물렀다. 그는 프로그래밍도 배워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1956 년 여름, 파이겐바움은 뉴욕 시티에 있는 IBM 으로 공부를 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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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젊은 사람들은 IBM 본사 건물에서 바로 모퉁이만 돌아가면 되는 적갈색 석조 건물 1 층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책상을 비롯해 모든 것을 제공해 주었고, 우리는 부지런히 공부를 해 나갔습니다. 이따금씩 IBM 에서 누군가가 나와 강의를 하곤 했지요. 그 여름의 어느 날, 한 사람이 그 건물 4 층에서 내려와 학생들에게 당시 진행 중인 어떤 굉장한 새로운 개발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학생 여러분들이 어떻게 그 곳에 앉아 'clear and add (제거 후 추가)' 나 'store (저장)' 등의 코드를 쓰고 있는 것인지 아십니가? 여러분은 더 이상 그것을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우린 여러분이 공식을 쓸 수 있게 해 줄 어떤 것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포뮬러 트랜슬레이터, 혹은 줄여서 포트란이라 부르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그 해 가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때 그 사람은 바로 존 배커스였지요. |
이제 파이겐바움은 자신이 행할 연구는 컴퓨터에 대한 것이 될 것이라고 결심하였다. 방법에 대해선 아직 완전한 확신을 갖지 못했지만, 어떤 꿈들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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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년대 당시, 난 실용적인 응용의 문제들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난 그저 고도의 지능을 갖춘, 아마도 초지능적인 (superintelligent) 것이 될 인공물에 대한 상상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지요. 바로 그 때문에 난 때때로 스스로를 골렘 (golem) 의 제작자라고 규정합니다. (역주. 골렘이란 유대의 전설에 나오는 생명이 주어진 인조 인간을 말한다.) 골렘을 제조하려 한 것은 프라하의 랍비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난 아마도 내가 프라하 랍비의 후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하지만 파이겐바움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는 심리학이었다. 뉴웰과 사이먼은 그들의 논리학 이론가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을 모델로 삼았다. 즉, 그들은 컴퓨터가 인간의 문제 해법에 관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문제를 풀도록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파이겐바움은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해, 어느 정도 동일한 목표들을 가진 한정된 암기의 모형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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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화된 상황에서 판에 박힌 재료의 집합체들을 학습하는 것. 즉, 심리학 연구실에서 오랜 시간 동안 연구되어 온 틀에 박힌 순차적 학습 (serial learning) 과 틀에 박힌 쌍연합 학습 (paired associate learning). 인간의 정보 처리를 아주 주의 깊고 훌륭하게 모형화하여, 그와 같은 프로그램을 어떤 실험실 환경에 두었을 때 마찬가지 환경에서 사람들이 만들어 낼 결과들을 산출하도록 시도하는 것. |
파이겐바움은 자신의 프로그램에 초보적 인식자와 암기자 (Elementary Perceiver and Memorizer, EPAM) 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도 카네기 멜런에서는 여전히 그것을 사용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자극-반응 환경에서 XUM-JUR 이나 FAX-VUM 처럼 아무 뜻도 없는 단어들의 쌍을 기억하는 데 성공하는 방법을 어떤 모형으로 구체화한 것이었다. 그와 같은 환경에서 실험자는 우선 일련의 자극-반응의 쌍들을 만들어 그것을 암기하려고 시도하는 대상에게 제시한다. 그것을 '훈련 부분 (training portion)' 이라 부른다. 나중에 실험자가 어떤 쌍의 첫 번째 요소를 보여 주면, 그 대상은 그 쌍의 다른 한 요소를 기억해 내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학습 과정은 심리학자들에게 단기 메모리의 작용과 성능,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기억 오류의 유형들에 대한 식견을 갖게 해 주었다. 예를 들어, 대상들은 어떤 자극이 다른 자극과 유사할 경우 그 자극에 대해 틀린 반응을 하기가 더 쉬우며, 학습 활동이 간섭을 받고 나면 일련의 쌍들을 기억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파이겐바움의 목표는 대상의 정확한 행동 뿐 아니라 잘못된 행동까지도 설명해 주는 메모리 구성을 가진 컴퓨터의 모형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메모리 모형을 '판별망 (discrimination net)' 이라 불렀다. 그 망은 훈련이 선행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받아들인 자극들을 구별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정보만을 보유하려고 하였다.
이 전략은 어떤 새로운 분야나 외국어의 전문 용어를 배울 때 사용할 수 있다. 여러분은 '롬 (ROM)' 이라는 용어를 흔히 듣게 되겠지만, 그것을 단지 여러분의 개인용 컴퓨터에 들어 있는 한 종류의 메모리와 관련된 것으로만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여러분의 PC 에 들어 있는 또 한 종류의 메모리에 관련된 '램 (RAM)' 이라는 용어를 듣게 되면, 램과 롬이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를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두 가지 모두에 관해 듣고 나서야 그 차이를 배우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판별망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작용을 한다. 실제로 그 망들은 사람이 저지르는 오류를 정확하게 예측하였다.
파이겐바움은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버클리로 가기 전까지 6 년 동안 줄곧 사이먼과 함께 EPAM 의 확장 및 관련 프로젝트들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들은 널리 심리학 저널들을 통해 발표되었다. 하지만 파이겐바움에겐 여전히 초지능적 기계의 제작에 대한 꿈이 사라지지 않고 따라다녔다.
버클리에서 파이겐바움은 경영학 스쿨의 교수단에 속해 있었다. 그 곳엔 컴퓨터 과학과가 없었으며, 대학 당국의 방침은 당분간 기존의 방향을 고수한다는 것이었다.
만을 사이에 두고 (역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만안지방) 버클리와 이웃해 있었던 스탠퍼드는 당시 아주 협조적인 행정에 힘입어 컴퓨터 과학의 중심지로 꾳피우기 시작하였다. 컴퓨터 과학과의 설치를 서둘러 진행하기 위해 조지 포사이드 (George Forsythe) 가 고용되었고, 그는 다시 인공 지능 연구소의 책임자로 존 매커시를 채용하였다. 1965 년 매커시는 파이겐바움에게 스탠퍼드로 와서 자신과 합류하도록 설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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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심리학자가 되어 컴퓨터를 사용해서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난 컴퓨터 인공물을 제작하고 싶었습니다. 이 새로운 분야에 참여하기 위해 결국 버클리에서 스탠퍼드로 옮겨 갔습니다. |
1962 년 파이겐바움은 줄리안 펠드먼과 함께 『컴퓨터와 사고 Computers and Thought』라는 제목으로 AI 의 상태에 대한 논문집을 공동으로 편집하였다. 이것은 그 분야의 초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책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그 서문에서 파이겐바움은 귀납의 과정을 조사하는 데 컴퓨터를 사용할 것을 주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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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지능은 연역적인 것들에 관여했었습니다. 정리의 증명이나 체스에서 말 옮기기 같은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지요. 그렇다면 폭넓은 다양한 자료들로부터 시작해, 그 자료들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일반적 개념 혹은 가설로 나아가는 경험적 귀납의 과정은 어떨까요? |
1878 년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 (Charles Sanders Peirce) 는 간단한 콩주머니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연역과 귀납의 차이를 설명하였다. 어떤 콩주머니에 모두 흰 콩만 들어 있다는 것을 아는 상태로 그 주머니에서 콩을 집어 내기 시작한다면, 다음 번에 나오는 콩이 흰색이라는 걸 '연역 (deduce)' 할 수 있다. 한편, 그 주머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 주머니에서 콩을 꺼내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모두 흰색이라면, 주머니에 들어 있는 콩들이 모두 흰색이라는 규칙을 '귀납 (induce)' 할 수 있다.
따라서, 귀납은 지식을 가진 추리의 유형으로,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변경되어야 한다. (귀납은 매커시가 그 특성을 규정한 바와 같이 비단조 추론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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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난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뉴웰과 사이먼은 내게 이처럼 어렵고 모호한 문제들을 진전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특정한 과업들을 선택하여 그것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체스 게임이나 명제 계산의 정리 증명 등에서 자신들의 과업에 적용했던 방법이었지요. 난 상당히 많은 시간을 들여 어떻게 하는 것이 경험적 귀납을 조사하는 적절한 과업이 될 것인가에 관해 생각하였습니다. 그 과업을 확실하게 정하지 못한 채로 이삼 년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
파이겐바움은 많은 가능성들을 고려하였다. 심지어 컴퓨터를 야구 경기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접하게 만들면 컴퓨터가 야구의 규칙들을 귀납할 수 있게 될 것인가하는 생각까지 해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발상들 가운데 어떤 것도 그다지 적절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1964 년 파이겐바움은 스탠퍼드에서 개최된 행동 과학의 진보적 연구 센터의 회의에서 조슈아 레더버그 (Joshua Lederberg) 를 알 게 되었다. 유전학과의 학과주임이었던 그는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었다. 레더버그는 자신이 우주물리학 분야에서 연구 중이던 문제를 끄집어 냈다. 그것은 다른 행성의 생명체를 탐색하는 것이었다. 레더버그는 그 붉은 행성의 표면에 착륙하여 생명체나 선구물질 (precursor) 분자를 탐사할 화성 탐사기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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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성 탐사기의 핵심적인 장비는 질량 분석계가 될 것이었습니다. 레더버그의 실험실에서는 생명이 있는 선구물질 분자들, 특별히 아미노산을 질량 분석계로 측정하는 중이었습니다. 그가 내게 그 문제를 언급하였을 때, 난 그것이 농축된 경험적 귀납의 문제라고, 즉 그것이야 말로 과학자들이 수행하도록 기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돈된 자료들이 있으면 그들은 어떤 장비를 완성하고, 자신들의 모든 분석 도구를 동원해 그것에 관해 열심히 생각하며, 무엇이 그 이질적인 모든 자료들을 설명할 최선의 후보인가에 관한 가설을 제출합니다. |
하지만 파이겐바움과 그의 팀은 몇 달간 레더버그와 공동 연구를 진행한 후, 자신들이 화학에 관한 필수적인 지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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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용하고 있었던 인공 지능 프로세스들은 이미 개발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더 이상 우리가 그것을 발전시킬 필요는 없었지요. 그것은 이미 상당히 잘 알려져 있는 검색 프로세스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프로세스들이 정확한 답을 산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화학 지식이었습니다. |
레더버그는 세계적 수준의 유전학자였지만 화학자는 아니었다. 파이겐바움과 레더버그는 또 다른 스탠퍼드 동료 칼 디예라시 (Card Djerassi) 에게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합류할 것을 설득하였다. 질량 분석 분야의 연구로 유명할 뿐 아니라, 피임약을 개발한 사람 중 하나로도 잘 알려져 있는 디예라시는 덴드럴이 알려지게 됨에 따라 그 프로젝트에 요구되었던 기초 지식을 제공하였다.
1965 년까지 그 성공적인 덴드럴 프로젝트는 세계 최초의 진정한 전문가 시스템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박스 덴드럴과 그 후예들 참조).
덴드럴은 아직까지 그것을 화성에 적용하지는 못했지만, 때론 디예라시의 제자들보다 더 훌륭하게 분자의 화학 구조를 판별해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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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드럴과 그 후예들 덴드럴은 일련의 후속 프로젝트들로 발전되었다. 그 기원은 레더버그가 처음 제시한 1964 년의 알고리즘이다. 그 알고리즘은 구성 원자들의 집합이 주어지기만 하면 가능한 모든 비환형 (unringed) 구조들을 생성하였다. (비환형 구조란 루프를 하나도 포함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단순성을 기하기 위해 비환형 구조를 가지고 시작하였다.) 경험적 덴드럴 (Heuristic Dendral) 이라 불리는 1965 년의 파이겐바움-레더버그 공동 연구는 이 거대한 구조들의 집합을 제한하기 위해 질량 분석계 자료와 전문 화학자의 규칙들을 적용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였다. 전형적인 규칙은 어떤 구조, 말하자면 케톤기 (ketone group) 의 존재를 추정하기 위해, 분자 구조의 질량을 그것의 분광 사진 정점들에 연결시키는 것이다. 지식과 경험적 학습법의 적용은 가능한 구조의 수를 엄청나게 흔히 200 배까지 줄여 준다. 그 프로그램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계획 (plan)' 단계에는 최종적인 구조를 이루어야 하는 분자의 조각들과 최종적 구조에는 최종적인 구조를 이루어야 하는 분자의 조각들과 최종적 구조에 들어갈 수 없는 조각들을 지정하였다. '생성 (generate)' 단계에서는 계획의 제한 조건들에 부합하는 가능한 구조들의 리스트를 작성하였다. '시험 (test)' 단계에서는 그 구조에 대한 질량 분석계의 계기 표시를 시뮬레이트함으로써 가능한 구조들의 결과 리스트에 등급을 매겼다. 메타-덴드럴 다음 번의 커다란 발전은 1970 년 메타-덴드럴 (Meta-Dendral) 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실현되었다. 그것의 목표는 후속적으로 덴드럴에 포함시킬 새로운 질량 분석의 규칙들을 추정하는 것이었다. 메타-덴드럴은 알려진 원자들의 알려진 구조를 그들의 질량 스펙트럼에 연결시킨 쌍이 주어지기만 하면 그 질량 분석계의 자료로부터 구조를 추정할 수 있는 규칙들을 제시하였다. 이들 규칙 가운데 일부는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증명되었으며, 원형 덴드럴의 성능을 향상시켰다. |
덴드럴은 그것의 몇몇 화신들을 통해, 특정한 문제에 대한 해법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전문가 시스템의 틀까지 제시하였다. 각각의 전문가 시스템은 일련의 자료 (덴드럴의 경우 원자적 요소들과 분광 측정계의 측정치들) 와 일련의 가설 (가능한 구조들), 그리고 그 가설들 사이에서 선택을 실행하는 일련의 규칙 (스펙트럼을 구조의 제한 조건들에 연결시키는 것) 을 가진다.
이러한 틀이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까지 시험 대상으로 남아 있다. 파이겐바움은 자신이 적당한 전문가들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1970 년대초 의사들의 전염병 진단과 처방을 돕기 위해 고안된 전문가 시스템 마이신 (Mycin) 이 스탠리 코헨 (Stanley Cohen), 브루스 뷰캐넌 (Bruce Buchanan), 에드워드 쇼트리페 (Edward Shortliffe) 세 사람의 공동 연구로 탄생되었다. 코헨은 나중에 재조합 DNA 의 토대를 이루는 기술을 개발한다. 쇼트리페와 뷰캐넌은 마이신은 실행한ㄴ 핵심 인물들이었다.
마이신의 중대한 혁신은 특정한 결론들의 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해 확률의 척도를 포함시킨 것이었다. 대표적인 규칙은 감염이 세균성이며, 배양 장소가 무균 상태이고, 진입구가 장이라는 사실들을 연결시킬 것이다. 그리고는 70 퍼센트의 신뢰도 수준에서 그 유기체가 '박테리오데즈 (Bacteriodes)' 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신뢰도의 인수들 덕택에, 의사들은 계속해서 복수의 가설들을 추적하면서 가능성이 가장 큰 것부터 가장 적은 것까지 등급을 매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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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과 관련된 매력은, 그것이 들어 가서 놀기에 아주 좋은, 다름 아닌 경험적 학습으로 가득찬 모래 상자라는 점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의학입니다. 틀에 박힌 지식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흑백의 사고도 좀처럼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의료 기술, 훌륭한 추론의 규칙, 경험적 지식, 훌륭한 판단 규칙들, 그 모든 것이 추론 과정, 그리고 말할 필요도 없이 실제 자료들과 혼합되어 있습니다. 환자들에 대해 측정을 수행하고, 테스트를 수행한 다음, 그 테스트들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 내려는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인공 지능의 방법들은 문제의 형식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영역에서 선택의 방법으로 사용됩니다. 평범한 변형들을 가지는 많은 계산상의 문제들은 이미 그것을 위한 알고리즘이 존재하는, 형식이 갖추어진 문제들이지요. 더 이상 그 문제를 풀기 위해 탐색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
세계는 제대로 형식을 갖추지 못한 문제들로 가득 차 있지만, 파이겐바움은 그 가운데 일부는 나머지보다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결론을 내리게 한 핵심적인 요소는 합의된 지식의 본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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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자신의 선택 기준, 즉 판단의 기준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영역들이 바로 우리가 초기 단계의 연구를 하는 데 적합한 부문입니다. 따라서, 말하자면 의학이나 공학 부문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 경제학을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전자의 부문들에서 우리는 문제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을 상당히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였습니다. 반면에, 경제학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경제 예측에 사용할 만큼 제대로 정의된 지식의 본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난 수년에 걸쳐 기법들이 발전되고 사람들이 보다 숙련되어 그것을 적용할 자신감을 갖게 된 결과로, 그 기법들이 가령 경제 예측이나 외환 거래 등을 포함해, 내가 70 년대에는 공략할 꿈도 꾸지 않았던 문제들에 적용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여러분이 '정식으로 인정된 (authored)' 것이라 칭할 수 있는 모형들에 대해 기꺼이 연구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전문가들에 의해 폭넓게 합의된 본체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해도 특정한 개인이 아주 명확히 밝힌 지식의 본체를 가진다면, 그 지식을 발표하고 이것이 조 존스 (Joe Jones) 의 지식을 표현하는 전문가 시스템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
이 설명에서처럼, 항공사들은 기상 조건이 나쁘거나 기계에 문제가 있거나 공항이 혼잡할 때, 전문가 시스템을 사용하여 다양한 공항에 비행기들을 배치하는 방법을 결정한다. 아메리카 항공의 경우, 보유하고 있는 550 대의 비행기들이 각각 평균적으로 한 번에 3 일씩만 어떤 단일 노선상에 머무른다. 또 다른 전문가 시스템들은 비행기의 충돌을 막도록 도와 준다.
파리의 게르 드 리옹 (Gare de Lyon) 과 같이 번잡한 유럽의 철도 정거장들은 트랙의 교차를 최소화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다양한 플랫폼에 이르는 열차들의 노선을 정하는 데 전문가 시스템을 사용한다.
컴퓨터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은 전문가 시스템을 사용하여, 어떤 고객을 위해 프로세서, 메모리, 디스크, 네트워크, 프린터, 모니터 등을 어떻게 조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가를 결정한다. 이는 휴렛패커드사를 예로 들면, 2 만 가지가 넘는 각기 다른 대안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병원에서는 전문가 시스템을 사용해서 각 환자에게 1 부터 100 까지의 등급을 매겨 집중 치료 중인 환자의 생존 확률을 결정한다. 다음으로는 어떤 환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병원 자원을 동원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신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의사들만이 아니다.
전문가 시스템들은 또한 군사령관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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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예가 있습니다. ARPA [첨단 연구 프로젝트국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 국방부의 연구비 지원 담당 부대] 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일부 계약자들을 향해, 아주 부지런히 작업에 착수하여 ARPA 가 후원하는 생산 스케줄링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를 병참 업무 스케줄링 프로그램으로 변환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병참 업무 담당 장교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사우디 아라비아로 인력과 물자를 이동시키는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지요. 그들은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해 냈습니다. |
그 곳의 최고 책임자는 이 응용 프로그램 하나가 ARPA 에서 처음부터 그 때까지 인공 지능 분야에 들여 왔던 총 투자액을 보상해 주었다고 말했다.
파이겐바움에게서는 학계와 업계의 전문 지식들이 독특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인텔리제네틱스 (IntelliGenetics) 의 설립자이자 테크널리지 앤 인텔리코프 (Teknowledge and IntelliCorp) 사의 이사인 그는 생체유전학과 공학을 비롯해 일반적인 상업적 용도에서 전문가 시스템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그가 스탠퍼드 대학에 세운 연구 센터, 스탠퍼드 경험적 학습 프로그래밍 프로젝트 (Stanford Heuristic Programming Project) 는 지구 곳곳에서 그 시스템들에 대한 경험을 가진 많은 대학원생들을 훈련시켰다. 그들은 파이겐바움의 전문가 시스템 개념이 널리 사용되도록 주창하는 지지자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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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술이 실제 세계의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그 자체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개인이나 조직에서 그 기술을 옹호하는 활동에 힘입어 실현될 수 있는 것이지요. 기술은 자신을 팔지 않습니다. |
그의 학생들이 의심없이 받아들여 온 한 가지는 전문가 시스템이 충분한 양의 정확한 지식을 갖추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파이겐바움의 믿음이다. 그는 이것을 '지식 원칙 (knowledge principle)' 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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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조지타운에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조지타운에는 훌륭한 의과 대학이 있지요. 아주 탁월한 수학과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앉아 있던 우리 중 한 사람이 심장마비나 다른 어떤 아픈 증세를 보이게 됩니다. 우리는 서둘러 그 사람을 훈련된 의료진이 있는 병원으로 데려갑니다. 결코 그 사람을 데리고 탁월한 추론가들이 있는 수학과로 달려가지는 않지요. 맞습니까? 추론은 아무것도 달라지게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추론에 대해서가 아니라 의학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
파이겐바움은 미 공군의 수석 과학자가 될 때까지 스탠퍼드 대학 지식 체계 연구소 (Knowledge Systems Laboratory) 의 공동 관리자로 있었다. 그는 그 자리를 전문가 시스템이 보다 광범위하게 사용되도록 주창하고, 때로는 동료들에게 충고를 하기 위한 공직의 권위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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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술이 그처럼 유리한 입지를 가지고 널리 확산되어 가는 걸 보면서 오싹하는 전율을 느낍니다. 어째서 이처럼 강력한 하나의 기술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지 실망스럽습니다. |
파이겐바움은 많은 전문가 시스템들의 마케팅이나 소개 과정에 어떤 잘못이 있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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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야에서는 지식이 없는 (knowledge-free) 소프트웨어 셸 (추론하는 소프트웨어) 들을 팔고 다녔습니다. 그들이 지식은 팔지 않았던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우리가 지식 획득의 병목을 타파할 수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지식의 획득은 너무도 어렵습니다. 전문가들과 함께 연구를 하고, 그들에게서 지식을 얻고, 그들이 그 영역에 대한 자신들의 모형을 명확히 하도록 만드는 일, 그것은 우리가 이 분야에서 그것을 위해 아무런 도구도 제공하지 않았던, 어렵고도 시간이 요구되는 문제입니다. 지식 원칙이란 그 성능이 논리가 아니라, 바로 지식의 토대에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 지식이 만일 시간이 지나 버린 진부한 것이거나 혹은 일상적으로 그 지식을 갱신하지 않는다면, 그 시스템의 성능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쇠퇴하고 말 것입니다. |
파이겐바움은 전문가 시스템을 도처에 존재하는 데이터 베이스 시스템 (레코드 형식으로 자료를 저장하지만 그에 대한 추론은 시도하지 않는) 과 비교하면서, 다시 한 번 지식이야말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차이가 나는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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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응용 부문들에서 지식 베이스 (knowledge-based) 시스템의 1 세대를 완전히 거치는 동안, 아무도 지식 베이스를 다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철강 산업의 문제에 관한 지식의 한 단편을 취해 그것을 다른 문제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부재했던 것이지요.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항상 모든 새로운 문제에 대해 새로운 지식 베이스를 구축하였습니다. 데이터 베이스 시스템은 그와 다릅니다. 하나의 데이터 베이스를 결합시키면 다른 사람들이 다른 목적에 그것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더그 레넛의 사이크 (Cyc) 프로젝트 (레넛에 대한 다음 장 참조) 는 파이겐바움의 지식 원칙을 논리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사이크는 20 세기 후반 한 명의 북아메리카 성인이 가지는 모든 지식 (그런 것이 있다고 가정하면서) 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부호화하는 시도를 한다. 그 주된 동기 가운데 하나는 재사용이 가능한 상식의 하부 구조를 만들어, 그것으로부터 전문가 시스템들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지식은 어떤 시스템이 명백하게 불합리한, 가령 3000 마일의 비행에 2 밀리초가 걸린다는 식의 자료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막아 주고, 마찬가지로 불합리한 결론을 도출해 내지 않도록 지켜 줄 것이다.
파이겐바움은 지식 원칙의 대변자로 활동하기 위해 널리 여행을 한다. 출장 중간 중간엔 열대 섬들, 특히 발리나 뉴기니의 섬들에 대한 사랑에 빠진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스탠퍼드 대학 합창단에서 바리톤 가수로 노래를 한다. 그는 또 컴퓨터 과학자인 아내 니 (H.P. Nii) 를 포함해 몇몇 저자들과 함께 전문가 시스템 및 사업에 관한 몇 권의 책을 공동으로 집필해 왔다.
파이겐바움은 전문가 시스템이 사람들과 협력하여 세계에서 가장 도전적인 문제들을 풀 수 있는 하나의 지능적 행위체로서 정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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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가장 우수한 문제 해결사이자, 가장 우수한 학습자이며, 감각과 이동과 문제 해결의 기능들을 하나의 통합된 단위로 일원화하는 데 있어서도 가장 우수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컴퓨터 프로그램들은 진화가 우리에게 경이로운 창조물로 증명해 주지 않았던 지능의 틈새들에 해당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하나의 지능적 행위체가 있고, 저기 또 다른 지능적 행위체가 있으며, 그들이 상호 보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린 그 두 행위체 모두가 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함께 작용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시스템들을 설계해야 합니다. 수확기를 발명한 후 그것을 실제로 농업에 사용하기까지는 25 년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전화를 발명하고 나서 전화 요금을 지불하게 되기까지도 25 년의 시간이 걸렸지요. 그 역시 긴 시간이 요구되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