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적 감정의 해부
감성지능 : Daniel Goleman 지음, 황태호 옮김, 비전코리아, 1996 (원서 : Emotional Intelligence : Why It Can Matter More Than IQ, Brockman, 1995), page 41 ~ 71.
사고하는 사람에게 인생은 코메디이고, 느끼는 사람에게 인생은 비극이다. ... 호레이스 월폴
1963 년 8 월의 매우 더운 어느 날 오후였다. 그날은 마틴 루터킹 목사가 시민권 획득을 위한 워싱턴 시가 행진에 부쳐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라는 연설을 행했던 날이다.
같은 날, 마약을 살 돈 때문에 백 차례가 넘는 도둑질로 교도소에서 3 년 형을 살았던 리처드 로블즈란 이름의 좀도둑 한명이 막 가석방으로 출옥했다. 그는 즉시 또 한차례의 범행을 모색하였다. 사건 후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했지만, 애인과 3 살짜리 딸을 위해 돈이 급하게 필요하여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그가 침입해 들어간 아파트에는 두 명의 아가씨가 살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뉴스 위크 지의 조사원으로 일하던 21 살의 재니스 와일리 양이었고, 또 한 사람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23 살의 에릴리 호퍼트 양이었다.
로블즈가 상류층 사람들이 사는 뉴욕 동북부 지역의 아파트를 선택한 것은 그 시간이면 집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아파트에는 와일리 양이 남아 있었다. 로블즈는 그녀를 칼로 위협한 뒤 온몸을 묶었다. 그가 아파트를 막 나가려고 할 때에 호퍼트 양이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안전한 탈출을 위해 호퍼트 양도 묶어 놓았다.
몇 년 뒤 로블즈가 밝힌 이야기에 따르면, 호퍼트 양을 묶고 있는 동안 와일리 양은 로볼즈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멀리 도망갈 수 없을 것이라고 계속해서 경고했다고 한다. 그녀는 "나는 당신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경찰이 당신을 잡을 수 있도록 협조할 거예요." 라고 말했던 것이다.
로블즈는 그것이 마지막 강도 짓이라고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잊어버리고 순간적으로 강렬한 공포심에 휩싸여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흥분 상태에서 그는 사이다 병으로 두 여자를 마구 내리쳐서 의식을 잃게 한 뒤, 다시 분노와 공포에 휩싸인 상태로 부엌칼로 두 여자를 몇 번씩 찔러 댔다.
25 년이 지난 후 로블즈는 그 때를 술회하면서 탄식했다. "난 그때 완전히 돌았어요. 머리가 터져버렸던 것 같아요." 오늘날까지 로블즈는 그 자제가 불가능했던 몇 분간의 흥분 상태를 후회하며 살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는 교도소에서 '직장 여성 살해 사건' 으로 알려졌던 그 범행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30 여년째 복역중이다.
이와 같은 감정의 폭발은 대개 '돌발적 감정' 에 기인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돌발적 감정이 발생하는 순간에 대뇌 변연계 중심부가 긴급 사태를 선언하고 두뇌 전체를 제압해 버리게 된다. 이때의 반응은 사고 두뇌인 신피질이 어떤 것이 좋은 생각인지는 말할 것도 없고, 전체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순간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시간 동안 우리의 신체 반응은 이 돌발 상태에 의해 조종된다. 그러한 돌발적 감정의 특징은 그것이 한번 발생하면, 여기에 휩싸인 사람들은 자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감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와 같은 돌발적 감정이 꼭 '직장 여성 살해 사건' 과 같은 잔인한 범죄를 초래하는 비일상적이고 끔찍한 사건들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훨씬 덜 파국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격렬성이 덜하지도 않은 형태로도 상당히 자주 발생한다.
최근에 당신이 '이성을 잃고' 배우자나 자녀를 또는 다른 차의 운전사에게 분통을 터뜨렸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던 경우를 상상해 보자. 여러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경우 역시 돌발적 감정이 일어난 것으로서 이는 대뇌 변연계의 중심부에 위치한 편도에서 발생하는 '신경 엄습' 의 일종인 것이다.
대뇌 변연계의 엄습이 모두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어떤 농담이 엄청나게 우습게 들렸을 때 우리는 거의 폭발적인 웃음을 터뜨리는데, 그것 역시 대뇌 변연계의 반응인 것이다.
또 격렬한 즐거움의 순간에도 대뇌 변연계는 작동한다.
댄 잰슨은 올림픽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의 금메달 획득 (자신의 죽은 누이에게 맹세했었다.) 에서 몇 번씩이고 쓰라린 실패를 거듭한 뒤, 1994 년 노르웨이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1,000 미터 경주에서 마침내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 순간에 그의 아내는 흥분과 행복감에 졸도하여서 링크 주위에 있던 응급 의사에게 급히 실려 나가야 했다.
두뇌의 편도 (Amygdala : 그리스어 'Almond' 에서 파생) 는 대뇌 변연계 고리의 아랫 부분과 뇌간 윗부분 사이에 자리잡은 상호 연결 구조체로서 아몬드 모양을 하고 있기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편도는 두 개가 있으며, 각각은 뇌의 좌우에 하나씩 있다. 인간의 편도는 진화 단계에서 제일 가까운 동물인 영장류 중에서 가장 크다.
초창기의 비뇌 (費腦) 를 이루던 두 부위는 해마 (海馬 : Hippocampus) 와 편도로서, 이들은 진화 과정을 겪으면서 피질과 신피질을 만들어 냈다. 오늘날에도 두뇌가 행하는 학습과 기억의 대부분은 이러한 변연계 구조가 담당하는데, 이때 감성적인 문제는 편도가 전문적으로 다룬다. 만일 편도가 뇌로부터 절단되어 버린다면, 그 결과는 감성적 바탕에 의한 사건의 비중을 판단하지 못하는 증세로 나타날 것이다. 이런 상태를 '감성 공백' 이라고 한다.
감성적 비중이 취약한 사람들은 여러 형태의 접촉에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간질 발작을 막기 위해 편도 제거 수술을 받은 어느 청년은 타인들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하루종일 사람들과의 접촉이 없는 곳에 홀로 있기를 즐긴다.
그는 대화 능력은 완벽하게 갖추고 있지만, 가까운 벗도, 친지도, 어머니도 인식하지 못하고, 심지어 그들이 보이는 안타까움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무런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편도가 없는 그로서는 감정에 대한 느낌은 물론, 감정에 대한 인식조차 잃어버렸던 것이다.
편도는 감성적 기억들의 보고 (寶庫) 와도 같은 곳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을 정도이다. 편도가 없는 삶이란 인간으로서의 의미가 박탈된 삶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편도는 애정에 결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격정과도 관계하고 있다. 편도를 잃거나 절제 당한 동물은 두려움과 분노를 알지 못하고, 경쟁과 협력에 대한 충동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사한 동물끼리의 사회적 질서 내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감각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감성은 무감각하거나 아예 존재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특이한 감성 표시인 눈물은 편도와 그 부근에 있는 구조물인 대뇌 섬유회선 (纖維回腺) 에 의해 조정되는 것으로서, 껴안거나, 토닥거리거나, 기타 위안을 해주면 이 부분이 진정되어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다. 편도가 없다면 슬픔이나 눈물이 없을 것이므로 위로도 필요 없게 된다.
뉴욕 주립대의 신경과학연구소 소장인 르두 박사는 감성두뇌에서 편도가 하는 역할을 처음으로 발견해 낸 사람이다. 르두 교수는 신경 과학의 신이론 주창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활동 중인 두뇌의 도식 (圖式) 화를 예전보다 훨씬 정확한 수준에까지 끌어올린 혁신적인 방법과 기법을 발견하였다.
이를 통해 초창기 시대의 과학자들에게는 도저히 진입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보였던 정신 활동의 신비도 다소나마 벗겨지게 되었다. 그가 두뇌 회로에서 발견해 낸 사실들은 대뇌 변연계에 대해 견지되어 오던 오랜 관념을 뒤엎기에 충분한 것으로서, 그것은 편도가 행동 중심에 위치하고, 기타 대뇌 변연계의 구조들은 서로가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르두 교수의 연구는 사고 두뇌인 신피질이 의사 결정을 이끄는 순간에까지 편도가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고 있음을 밝혀주고 잇다. 지금부터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거니와, 편도의 작용과 편도와 신피질의 방식이야말로 본서의 주제인 감성지능 EQ 의 핵심 부분을 이룬다.
정신 생활에서의 감성의 힘을 이해하고자 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 뒤 대개의 경우 후회를 불러오기 마련인 격정에 휩싸인 행동을 하는 순간에 대한 것이다. 도대체 왜 인간은 그렇게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일까?
한 보기로서, 남자 친구를 만나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보스톤 시까지 2 시간 동안 차로 달려갔던 어떤 아가씨의 예를 들어보자. 두 사람이 식사를 하는 동안, 남자 친구는 그녀가 몇 달 동안 갖고 싶어했던 스페인에서 사온 매우 귀한 판화 (版畵) 를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식사 뒤 그녀가 무척 보고 싶어했던 영화를 보러 가자는 제안을 하자 남자는 소프트볼 연습이 있어서 함께 하루를 보낼 수 없다는 말로 그녀를 실망시켰다.
자존심이 상한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문을 박차고 뛰쳐 나온 뒤 남자 친구에게서 받은 선물을 본능적으로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몇 달이 지난 뒤, 그 사건을 회상할 때 그녀가 후회하는 것은 자리를 박차고 떠났던 것이 아니라 선물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바로 이 순간처럼 충동적인 감정이 이성을 압도할 때, 새롭게 발견된 편도의 역할이 모든 움직임의 중심에 자리잡는다. 감각 기관을 통해 여러 신호들이 접수되면 편도는 모든 문제점에 대한 경험들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편도는 정신 작용의 가장 강력한 위치를 차지하고 심리적 파수꾼과 같은 역할을 행하며, 단 한 가지의 원론적인 질문만을 가지고 모든 상황과 인식에 대해 도전하는데, 그 질문은 이렇다.
"이것은 내가 싫어하는 것인가? 나에게 해로운 것인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대답이 "그렇다" 라면 편도는 신경의 경보망처럼 즉각적으로 두뇌전체에 위기상황을 보고한다.
두뇌라는 건축물에서 편도는 마치 안전 신호 체계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소방서, 경찰, 이웃 등에게 비상 신호를 보내는 오퍼레이터가 근무하는 경비 용역 회사와도 같다.
예컨대, 공포에 대한 비상 신호가 울렸을 경우, 편도는 두뇌의 모든 주요 각 부위에 긴급 메시지를 보내어 싸울 것인지 도피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호르몬의 분비량을 조절하면서 행동으로 옮길 준비를 하고, 심장 혈관계, 근육, 배짱 따위를 활성화시키거나 한다.
그런가 하면 편도에서 출발한 일부 회로들은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호르몬의 비상 분비를 지시하여서 두뇌의 주요 각 부위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고, 감각이 더욱 충실한 경계 태세에 있도록 함으로써 전체적인 두뇌의 활력을 유도한다. 그밖에 편도에서 발생하는 신호 가운데에는 뇌간에 지시를 해서 얼굴이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도록 하는 것이 있고, 현재 근육이 행하는 움직임 중 필요 없는 것을 중단시키는 것도 있고, 심장 박동과 혈압을 높이고 호흡을 완화시키는 것들도 있다.
또 다른 종류로서는 공포를 일으키는 원인에 주의를 집중하여 신체의 근육들이 적절한 대응을 취하도록 만드는 것들도 있다. 이때 거의 동시적으로 피질 내의 기억 체계들이 검색되어 현행 위기 상황에 알맞은 정보를 찾아내는데, 이 모두는 사고의 흐름에 선행하여 이루어진다.
이상 예를 든 사항들은 편도가 두뇌 곳곳을 점유하며 조정해가는 일련의 주의 깊은 변화 활동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감정의 비상사태가 발발할 때, 편도는 광대한 신경과의 연결망을 통해 이성적 정신을 포함한 두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이끌어 가는 것이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부록 C 를 참고할 것.]
나의 한 친구가 영국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었다. 그는 운하가 보이는 카페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한 뒤, 운하 쪽으로 이어진 돌계단을 따라 산책을 하던 중, 우연히 새파랗게 질린 채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한 여자를 목격했다고 한다. 친구는 이유를 알아보기도 전에 양복에 넥타이 차림 그대로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물 속에 뛰어든 다음에야 그녀가 망연자실해서 호수를 바라보고 있던 까닭이 어린아이가 물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도 그는 아이를 구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그를 물 속에 뛰어들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해답은 말할 것도 없이 편도인 것이다.
과거 10 여년 간의 감성에 관한 가장 두드러진 발견 사실들 중, 르두 박사의 연구는 뇌의 구조가 어떤 식으로 편도에게 감성의 파수꾼이라는 특수한 지위를 부여하고 때로는 돌발적 감정을 이끄는지를 밝혀 주고 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눈이나 귀로 들어온 감각 신호들은 우선 두뇌 내부를 여행하여 시상 (視床) 을 거친 후, 하나의 신경 세포를 통해 편도에 도달하게 된다.
이때 시상에서는 두번째 신호가 생성되어 사고 두뇌인 신피질로 수송된다. 이러한 분지화 (分枝化) 를 통해 편도는, 여러 층에 걸친 두뇌 회로들을 통해서 정보들을 검사해야만 완전한 인식과 정교하게 맞추어진 대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신피질보다 먼저 대응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르두 교수의 연구는 신피질을 통과하지 않은 감정에 대한 신경 경로들을 처음으로 산정해 내었다는 면에서 감성 생활의 이해 측면에서 볼 때 가히 혁신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편도를 직접 통과하는 감정들에는 우리의 가장 원시적이고도 강력한 감정들이 대부분 포함된다. 이 회로는 지성을 압도하는 감성의 힘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
신경 과학에서의 전통적인 관점은 눈, 귀, 기타 감각 기관들이 신호들을 접수하면 이를 시상으로 운송하여 그곳에서 신피질의 감각 처리 영역으로 보낸 뒤 각 신호들이 인지 가능한 객체들로 조합된다는 견해를 견지해 왔다. 이때 이 신호들은 각각의 의미에 따라 분류되어서 두뇌로 하여금 각각의 실체는 무엇이고 그것의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인식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옛 이론에 의하면, 신피질로부터 파생된 신호들은 대뇌 변연계에 보내져서 그곳으로부터 적절한 대응들이 두뇌와 몸 전체에 수송된다고 했다. 이것이 대부분의 시간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르두 박사는 신피질로 향하는 대형의 신경 경로를 따르는 것 외에도 시상에서 직접 편도로 향하는 소형의 신경 무리들도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 작지만 짧은 경로는 신경의 뒷길과도 같은 것이어서, 신피질에 의한 접수가 시작되기 전에 편도로 하여금 감각으로부터 직접적인 정보들을 받으면서 대응을 시작하게 한다.
이러한 발견은 편도가 전적으로 신피질로부터의 신호를 받아 감성의 대응을 형식화한다는 이론을 뒤집는 것이다. 편도와 신피질 사이에 정규적인 반사 회로가 작동을 개시하고 있는 순간에도 편도는 이러한 비상 경로를 거쳐 감정 대응을 조절한다. 약간 느리지만 완벽한 정보를 갖춘 신피질이 보다 정교한 행동 계획을 진행시키는 데에 반해, 편도는 우리에게 즉시라도 행동에 뛰어들도록 한다.
르두 박사는 특정 동물이 보이는 공포를 연구하여 감정의 전달 회로에 관해 그간 폭넓은 지지를 받아 오던 종전의 통설을 뒤엎었다. 그중 한 결정적인 실험에서 그는 쥐의 청각 신피질을 없애고 특정한 소리를 들려주면서 전기 쇼크를 주었다 쥐들은 그 소리가 자신의 신피질에 의해 접수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만 들리면 무서워했다고 한다.
이때의 소리는 모든 상위 조직의 경로를 뛰어넘어 귀에서 시상으로, 다시 편도로 직접 도달한 것이다. 이를 간단히 표현하면, 쥐들은 어떤 상층의 대뇌피질이 관계하지 않더라도 감정적 대응을 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편도는 자신의 공포심을 독자적으로 인지하고, 기억하고, 공포를 환기한 것이다.
'해부학적인 면에서 감성 체계는 신피질과는 별개로 독자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 '몇몇 감정적 반응이나 기억은 어떠한 의식이나 인지가 관계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형성될 수 있다.' 라고 르두 교수는 강조한다.
공격 · 도피 반응 : 심장 박동 수가 증가하고, 혈압이 상승한다. 대근육질은 신속한 행동을 준비하나.
시각 신호는 망막을 통해서 시상에 도달한 다음, 그곳에서 두뇌 언어로 해석된다. 해석된 부분의 메시지는 시각 신피질로 보내져서 각각의 의미와 그에 따른 적절한 반응이 분석되고 평가되어진다. 이대 그 반응이 감성적인 경우, 신호는 편도로 진행하여 감성 중심부를 움직이게 한다. 그러나 시상에 도달한 신호의 일부는 시상에서 편도로 직접 보내져 대뇌 만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뇌보다 빠른 반응을 한다. 따라서 편도는 대뇌의 중심계가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기 전이라도 언제든지 감성 반응을 조절할 수가 있다.
신피질을 통과하지 않고 시상에서 편도에 직접 이르는 단축 통로로 인해서 우리가 이유도 모르고 반응할 때 보이는 모든 기억과 반응의 내용들은 이미 모두 편도에 입력되어 있던 것들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편도는 우리가 완전히 깨어 있을 때에는 알지 못하는 감성적 인상과 기억들을 위한 저장소가 되어 준다. 르두 박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눈 앞에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져 확실한 인식이 불가능한 기하학적 모양의 물체에 대해서도 일종의 편향성을 갖게 되는 현상을 설명해 주는 것도 기억내에 존재하는 편도의 잠재적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인간이 어떤 것을 인지하게 되는 처음 수천 분의 몇 초 사이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무의식적으로 파악할 뿐만 아니라, 좋은지 싫은지 판단까지도 내린다고 했다. 이러한 '인지적 무의식' 을 통해 우리는 본 것에 대한 정체성의 인식만이 아닌, 그에 대한 의견까지도 나타내게 된다. 우리의 감성은 독자적인 정신을 가지고 지성적 정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의 관점들을 견지하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무의식적 의견들을 감성 기억이라고 한다면, 이들의 저장소는 편도로 볼 수 있다.
르두 교수를 비롯한 일부 신경 과학자들은 그간 진행해 온 연구를 통해 오랫동안 대뇌 변연계의 중핵 구조로 여겨져 왔던 해마 (海馬) 는 감성적 반응보다는 지각 패턴의 등록과 인식에 더욱 많은 관련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해마의 중요한 역할은 감성적인 의미 부여에 없어서는 안될 정확한 환경의 기억을 제공해 주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로서, 동물원에 있는 곰과 내 집 마당에 있는 곰이 갖는 서로 다른 의미를 인식하는 것은 해마가 하는 일이다.
해마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을 기억하는데 대해서 편도는 이 사실에 부수하는 감성적 특징들을 기억한다. 만약 당신이 두개의 차선 밖에 없는 고속도로에서 앞선 차를 추월하려다가 맞은 편에서 오는 차량과 정면충돌할 뻔 했다면, 해마는 그때 달리고 있었던 도로 상태, 함께 있었던 사람, 상대의 차종과 같은 사건의 세부 사항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 후 비슷한 상황에서 앞차를 추월하게 될 때마다 불안해지는 것은 편도의 작용이다.
르두 교수는 이를 가리켜, 해마는 눈앞의 사람을 알아보고 그가 당신 사촌의 얼굴임을 인식하는 데에 대단히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사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감정을 부가하는 것은 편도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두뇌는 간단하면서도 정교한 방법을 사용하여 감성 기억에 특수한 능력을 부여한다. 즉, 공격 · 도피 반응의 이분법으로 치명적인 위급 상황에 대처하는 신경 화학적 경계 시스템이 그 순간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 속에 각인시켜 놓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나 불안 때로는 즐거움으로 인한 격렬한 흥분 상태일 때에 두뇌에서 출발하여 신장 윗부분에 위치한 부신 호르몬 분비선에 도달하는 신경이 에피네프린과 비 (非) 에피테프린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는데, 이 호르몬들은 몸 곳곳을 흐르면서 신체로 하여금 언제든지 위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이 호르몬들은 미주신경 (迷走神經 : 내장 대부분에 포함되어 있는 부교감신경의 일종으로서, 운동과 지각의 섬유를 포함한다 : 역주) 의 수용체들을 활성화시키는데, 이때 미주신경들은 두뇌로부터의 메시지를 전달받아서 마음을 조절한 다음에 다시 에피네프린과 비에피네프린을 통해 두뇌에 여러 가지 신호를 다시 보내는 일을 한다.
이 신호들이 되돌아가는 두뇌의 주요 정거장이 바로 편도이다. 편도 내에서 각 신호들은 신경들을 활성화하여 두뇌의 다른 영역들로 하여금 현재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기억을 강화할 것을 지시한다.
이러한 편도의 자극 상태는 감성이 자극을 받을 때마다 더욱 강화된 상태로 기억 속에 각인된다. 그 때문에 우리들은 첫번째 데이트 때에 어디를 갔었는지, 우주선 챌린저호가 폭발했을 때 우리가 어떤 행동을 보였는지를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편도의 자극이 심화되면 될수록, 각인되는 내용도 더욱 강력해진다. 즉, 우리 삶에서 가장 무섭거나 오싹했던 경험일수록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두뇌는 두 가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보통 사실에 대한 기억 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감성에 의해 각인된 기억 체계이다. 물론 이때의 감성 기억을 위한 특별한 기억 시스템은 진화를 반복하는 동안 훌륭한 감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동물들도 자신을 위협했거나 기쁘게 했던 것에 대해서는 생생한 기억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성 기억들은 아직까지는 불완전한 안내자일 뿐이다.
이러한 신경 경보에서의 결점은 편도가 보내는 위급한 메시지가 낡은 것일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점이다. 오늘날과 같이 유동성이 심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감성 기억들의 저장소로서의 편도는 경험들을 점검하는 가운데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을 과거에 발생했던 것과 비교한다.
이때의 비교는 현 상황의 주요 요소가 과거와 유사할 때 이 둘을 '짝 (Match)' 으로 규정하는 연상 (聯想) 방식을 사용한다. 그로 인해 이 회로는 엉성할 수 밖에 없으며, 때로는 완전한 확인을 거치기도 전에 행동을 지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현 상황과는 아주 일부 밖에 유사성이 없는 사건도 오래 전에 각인 되었던 사고나 감정, 또는 반응을 기초로 하여 편도에 경보를 울려서 현 상황에 반응할 것을 다급히 명령하게 된다.
전쟁터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계속해서 밀려드는 심각한 부상자들로 인해 마음의 충격을 받았던 종군 간호사 출신의 부인은 수년 뒤 우연히 벽장문을 열다가 그녀의 어린애가 더럽혀진 기저귀를 그곳에 처넣어 놓은 것을 발견하는 순간, 그 악취 때문에 다시 한번 옛날 전장의 기억이 가져다 준 공포와 혐오와 당혹스러움의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상황에 관련된 약간의 요인들만 있어도, 편도는 위급 상황을 선포해 버린다.
문제는 이 위기에 대한 반응을 촉진시키는 영향력을 가진 감성 기억은 과거 위기 상황에 반응했던 방식과 똑같은 반응을 일으키게 한다는 점이다.
생후 2 ~ 3 년까지의 유아 시절에 우리를 돌보아 주던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형성되는 관계와 같이, 상당수의 강렬한 감성 기억들은 이러한 감성 반응의 부정확함을 더욱 증폭시키는 원인이 된다. 구타나 노골적인 양육 소홀과 같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는 경험을 할 때는 특히 이러한 경향이 강해진다.
태어난지 얼마 안되었을 때에는 여러 다양한 두뇌 구조, 특히 언어적으로 문맥을 기억하는 해마나 지성적 사고의 근원지인 신피질은 아직 완전히 개발되어 있지 않다.
기억 작용을 위해 편도와 해마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지만 각각은 독자적으로 자기만의 정보를 저장하기도 하고 검색하기도 한다. 해마가 정보를 검색하는 동안에 편도는 그 정보에 감성적 가치가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파악한다.
유아기에 매우 빠른 성장을 보이는 편도는 대부분이 탄생시기부터 거의 완전한 형상을 갖추고 있다.
르두 박사는 오랫동안 심리 분석적 사고의 기본 원리로 여겨져 왔던 이러한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유년기의 편도의 역할에 눈을 돌린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생애 초기 몇 년 간은 유아와 그를 돌보는 양육자와의 관계에 어떠한 조율과 혼란이 있는가에 따라서 일련의 감성적 교훈이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감성적 교훈은 한편으로는 강력하면서도 성인이 된 후의 삶을 기준으로 볼 때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는데, 그것은 그 교훈들이 감성 생활에 관련된 거칠고도 비언어적인 설계도로서 편도 내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아들은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는 말을 배우기 전부터 이미 일련의 감성 기억들이 형성되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 감성 기억들이 자극을 받는 경우에 자신을 압도하는 반응에 대한 명확한 사고의 짝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감정 폭발로 인해 커다란 곤란을 겪게 되는 한 가지 이유는, 모든 것들이 당혹스러운데도 그것들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들을 갖고 있지 못했던 어린 시절로 종종 회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따금씩 난처한 감정을 느끼지만, 그것을 형성화했던 기억에 관한 언어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새벽 3 시 경, 자고 있던 침실 한쪽 구석에서 무엇인가 커다란 물체가 갑자기 천장을 뚫고 떨어지면서 다락에 두었던 물건들이 함께 바닥으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순간 나는 천장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반사적으로 침대를 박차고 방을 뛰쳐나갔다.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조심스럽게 침실 쪽으로 되돌아와서 그 소동을 일으킨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천장이 무너지는 것으로 믿었던 소리는 사실은 전날 아내가 장롱을 정리하면서 구석에 쌓아 두었던 커다란 상자더미들이 넘어지면서 난 소리였다. 다락에서 떨어진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 집에는 다락이 없다. 천장은 멀쩡했고, 나도 멀쩡했다.
잠결에 침대를 뛰쳐나온 행동은 (진짜로 천장이 무너졌다면 이 반응 덕분에 부상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위급 상황, 즉 신피질이 현 상황을 완전히 입력하기 전의 치명적인 순간에 행동을 재촉하는 편도의 힘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눈이나 귀에서 시상과 편도로 이어지는 비상 경로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러한 비상 경로는 즉각적 대응이 요구되는 위기 상황에서 시간을 절약시켜 준다. 그러나 시상에서 편도로 향하는 이 회로로 전달되는 지각 (知覺) 메시지는 소량일 뿐이고, 대부분은 주경로를 통해 신피질로 향한다.
따라서 이 급행 경로를 통해 편도에 등록되는 것은 기껏해야 경고 발송에나 쓰이는 엉성한 신호일 뿐이다. 르두 교수는 이를 가리켜, "어떤 것이 위험한 지 여부를 알기 위해서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필요까지는 없는 것" 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두뇌 시간으로 볼 때 이 직접적 경로는 수천 분의 일 초 밖에 안 걸리기 때문에 엄청난 장점이 있다. 쥐의 경우 편도가 어떤 지각 대상에 대한 반응에 보이는 시간은 12 밀리 초 (천 분의 12 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시상에서 신피질을 거쳐 편도에 이르는 경로는 이의 두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인간의 두뇌에도 이와 유사한 측정이 시도되고 있으나 아직 정확한 비율은 나와 있지 않다.
진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직접 경로는 위험에 대한 반응에서 단 천 분의 몇 초 밖에 걸리지 않는 신속한 반응을 가능하게 하므로, 그것이 생존에 부여하는 가치는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몇 밀리 초의 시간차 덕분에 포유류의 조상들은 상당수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그 결과 이러한 형태의 반응이 당신과 나를 포함한 모든 포유류의 두뇌 속에 하나의 특징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 감정 회로는 인간의 정신 활동에 관계할 때는 긴급한 감성 반응과 같은 비교적 제한적인 역할만을 수행하지만, 새나 물고기, 파충류들은 그들의 생존이 오로지 침략자나 먹이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정신 활동의 상당수가 감정 회로를 중심으로 진화되어 가고 있다.
르두 박사는 이를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포유류에게는 원시적이고 부차적인 두뇌 시스템이 포유류 이외의 것들에게는 주요 두뇌 시스템으로 작용합니다. 이 시스템은 신속하게 감성을 작동시키지만 그 과정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즉, 세포 활동은 바르지만 정확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부정확성은 예를 들어, 다람쥐의 경우라면, 어렴풋이 다가오는 적을 나타내는 어떤 신호를 간파하자마자 도망치거나 무엇인가 먹이가 있다는 암시에 급히 그쪽으로 뛰어드는 정도의 안전성의 측면에 대한 실수가 전부이기 때문에 그런대로 괜찮다. 하지만 인간의 감성 생활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부정확성은 인간관계에 심각한 파탄을 가져올 위험성이 있다.
말하자면 엉뚱한 것이나 엉뚱한 사람을 놓고 도망가거나 달려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식당 여종업원이 뚱뚱하고 붉은 머리에 파마를 한 여자를 보자마자 전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떠났을 때 함께 도망친 여자로 착각하고 여섯 사람 몫이 담겨 있던 음식받침 접시를 떨어뜨린다고 가정해 보자.
이와 같은 미숙한 감성적 실수들은 사고보다 먼저 선행하는 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르두 교수는 이를 가리켜 인식 가능한 대상으로 완전히 분류되고 통합되지 않은 신경학적 지각 정보에 기초를 둔 반응이란 의미에서 '전 (前) 인지적 감성' 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전혀 가공되지 않은 형태의 지각 정보로서, 몇몇 음표들을 보고 멜로디를 신속하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몇 군데의 가설적 부분들을 바탕으로 하여 전체적인 판단이 이루어지는 조성 (調聲) 과도 같은 것이다. 편도는 일단 지각 가능한 의미 패턴의 도출을 감지하기만 하면 바로 결론으로 뛰어들어, 확실한 증거 확인이나 심지어는 확인 자체도 없이 신체의 반응들을 촉발한다.
사람들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감성의 우울한 면에 대해서, 더욱이 그것들이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직 미미한 통찰력 밖에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사고와는 별개로, 또는 그것에 선행해서 가공되지 않은 감성이 자극을 받고 있기 때문에, 편도는 신피질이 현황을 파악하기에 앞서 광란적인 흥분이나 공포의 상태에서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 여자 친구인 캐롤의 6 살짜리 딸 제시카가 처음으로 단짝 친구네 집에서 자던 날은 캐롤과 제시카 중 누가 더 걱정하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캐롤은 제시카에게 자신이 몹시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날 밤 잠들 무렵에 전화벨 소리를 듣고 그녀의 긴장감은 거의 폭발직전에 이르고 말았다.
캐롤은 물고 있던 칫솔을 떨어뜨리고 전화기로 달려갔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무서워서 떨고 있는 딸의 모습이 문득 뇌리를 스쳐 갔다.
캐롤은 수화기를 움켜쥐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제시카니?"
그러나 수화기 저편에서 어떤 여자의 음성이 들려 왔다 "어머, 제가 번호를 잘못 누른 것 같군요…"
순간 캐롤은 냉정을 되찾고 부드럽고도 절제된 목소리로 되물었다.
"몇 번에다 거셨나요?"
편도가 불안하고 충동적인 반응을 촉발시키고 있는 동안에 감성적 두뇌의 또 다른 쪽에서는 보다 적절하고도 올바른 대응이 준비되고 있다. 편도의 돌출을 제어하는 이 두뇌 장치는 신피질로 통하는 주 감정 회로의 맨 마지막 부분, 즉 이마 바로 속 부분에 있는 전두엽에 들어 있다. 전두엽 피질은 사람이 무서움이나 공포를 느끼면서도 현 상황을 보다 효과적으로 컨트롤하려고 할 때 작용한다. 예를 들어 제시카의 어머니인 캐롤처럼 딸이 걱정된 나머지 전화에 뛰어들었지만 상황을 재조명하고 반응을 바꾼 경우처럼 완전히 다른 대응을 위한 재평가가 필요할 때에 주로 나타나서 감정을 억압하기도 하고 통제하기도 한다.
신피질의 일부인 이 두뇌 영역은 인간의 감성 충동에 대해 보다 분석적이고도 적절한 대응력을 부여하며, 편도와 기타 대뇌 변연계 영역의 활동을 조절한다.
정상적일 경우, 이 전두엽 영역은 우리의 감성 반응을 처음부터 통제한다. 앞서도 밝힌바 있지만 우리의 시상에 도달한 감각적 정보의 대부분은 편도가 아닌 신피질이나 기타 여러 중심부들로 투사되어 그 중 인지된 내용들이 흡수되거나 파악된다.
이때의 정보나 이에 대해 우리가 보이는 대응은, 감성적 목표를 포함한 일체의 목표 달성 계획과 조직화의 본거지인 전두엽에 의한 조절화 과정을 밟게 된다.
신피질 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회로들은 그 정보를 입력하고, 분석하고, 이해한 뒤, 전두엽을 통하여 적절한 반응을 만들어 간다. 만일 그 과정에서 감성적 반응이 요구되는 경우, 전두엽은 편도나 기타 감성두뇌의 여러 회로들과 협력 체계를 갖추며 그것을 지시한다.
감성 대응에 분별성을 제공해 주는 이와 같은 과정이야말로 감성적 위기와 같은 특수한 예외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장 표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돈 상태이다. 그러나 감성이 고조되는 경우에는 전두엽이 짧은 순간에 이해 득실의 밸런스를 계산하여 수많은 대응들 중 어떤 것이 제일 적합한가를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동물의 경우에는 공격해야 할 시기, 달아나야 할 시기 등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경우에는 공격과 달아나는 시기는 물론이고, 달래고, 설득하고, 동정을 구하고, 경멸하고, 고집을 피우고, 잘못을 일깨우고, 넋두리하고, 허세 부리고, 경멸을 보이는 등 모든 행위의 시기를 총체적인 감성 계획의 레퍼토리에서 해결하게 된다.
신피질의 반응은 보다 많은 회로의 활동들을 요구하기 때문에 돌발적 감정에 관련된 메커니즘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이들은 또한 보다 많은 사고들이 감정에 선행하므로 판단적이고 고찰 중심적이다. 우리가 상실감을 느끼고 슬퍼지거나, 승리를 겪은 뒤에 행복해지거나, 누구인가가 이야기한 내용을 곰곰 생각한 뒤에 상처받거나 분노하는 것들은 모두 신피질이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편도와 마찬가지로 전두엽이 활동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감성적 생활은 엉망이 된다.
감성적 대응을 할 가치가 있는지의 여부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 학자들은 1940 년대 초반부터 감성에서 전두엽이 차지하는 역할에 계속 의심을 품어 온 결과 절망적인, 그리고 결과적으로 잘못된 정신병의 외과적 치료 방법을 도입하게 되었다. 그것은 '전두엽 절제술' 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전두엽의 일부를 제거하거나 전두엽 피질과 두뇌의 하부 구조 사이의 연결 부분을 잘라 내는 처치인 것이다. 정신병을 위한 효과적인 치료법이 발견되지 않고 있었던 당시, 이러한 절제술은 위중한 감성적 고통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으로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의사들은 전두엽과 두뇌의 다른 부분 사이의 연결을 끊어 버리면 환자의 고통이 경감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불행하게도 환자의 감성 생활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감성을 전달하는 주요 회로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돌발적인 감정에는 두 가지 현상이 작용하고 있다. 그 한 가지는 편도의 촉발이고, 다른 하나는 신피질 작용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균형 잡힌 감성 반응 및 감성적 위기에 대응한 신피질 영역의 보충적 활동이 어려워지는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지성은 감성에 휩쓸려 버린다.
전두엽 피질이 감성의 관리자로서 올바른 역할 즉 행동하기에 앞서 반응을 평가하는 것을 행하도록 하는 한 가지 방법은 편도와 대뇌 변연계에 의해 발송되는 행동 개시의 신호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아무 것이나 마구 손에 쥐는 아이들의 충동적인 행동을 막고, 대신 원하는 것을 적절한 방법으로 요구하도록 또는 기다리도록 하는 부모의 행위와 유사하다.
비통한 감정을 억제하는 장치는 좌측 전두엽에 있다. 전두엽 일부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의 감정을 연구한 신경 정신 학자들에 따르면, 좌측 전두엽의 역할 가운데에는 신경학적 온도 조절기와도 같이 감정을 제어하는 기능이 있다.
좌측 전두엽이 적절한 억제를 통해 미숙한 감정의 활성화를 막는 반면, 우측 전두엽은 공포와 공격성과 같은 부정적 감정의 진원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뇌졸증 환자들을 조사해 보니 좌측 전액질에 손상이 있는 환자들은 파국적인 걱정과 공포를 느끼는 경향이 강했고, 우측에 손상이 있는 환자들은 이상하리 만치 즐거워하는 경향이 있어서, 신경분석 조사를 행하는 동안에도 계속 농담을 하거나, 벌렁 눕거나 해서 제대로 검사받는 것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여기서 한 행복한 남자의 경우를 소개하면, 그는 두뇌의 기형을 치료하기 위해 우측 전두엽 일부를 제거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부인이 밝힌 바로는 남편이 수술을 받은 다음에 극적인 성격의 변화를 보여서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도 않고 아주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이상을 요약하면, 좌측 전두엽은 강력한 부정적인 감정의 분출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감정을 방해하거나 억제하는 신경회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비상 사태를 맞아 편도가 촉발되는 경우에 좌측 전두엽은 불안한 감정을 '꺼 버리는' 두뇌의 제동기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전두엽과 대뇌 변연계의 연계는 감정의 단순한 조절을 뛰어넘어 정신 생활 전체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연계는 우리 인생에서 중요시되는 모든 의사 결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편도 및 이에 관련된 대뇌 변연계 구조와 신피질 사이의 연결회로는 머리와 마음, 또는 사고와 감정 사이에 일어나는 분쟁이나 조화로운 협정의 축을 이룬다. 이 회로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현명한 의사 결정을 위해서든 단순하고 명확한 사고를 위해서든 효과적인 사고를 위해서는 감성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감성의 힘이 사고 자체를 혼란시키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것이 모델 하우스에서 예상 고객들을 탐측하면서 이상적인 손님을 찾아내는 것이든, 시험 과정에서 추론적인 문제점들을 구성하는 요소를 파악하는 것이든 간에 주어진 과업이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에는 필수적인 사항들을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있는 집중 능력이 필요한데, 이를 가리켜 신경 과학자들은 '활동 기억' 이라는 용어로써 묘사하고 있다. 전두엽 피질은 이 활동 기억을 책임지는 두뇌 영역이다.
그러나 대뇌 변연계에서 전두엽에 이르는 회로에 대해 강력한 감정 - 불안, 분노, 기타 이와 유사한 것들 - 신호들이 신경학적 방해 현상을 일으킬 때는 전두엽이 갖는 활동 기억의 유지 능력에 심각한 장애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우리가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울 때는 제대로 생각할 수 없게 되는 것이고, 정서가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면 지적 능력에 결함이 생겨서 학습 능력이 저하되는 것이다.
이러한 장애가 보다 미묘한 경우에는 IQ 측정 따위의 검사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린이들의 지속적인 불안정이나 충동성에 대한 연구들이 보여주듯이 보다 정교한 신경 심리학적 측정을 거치면 쉽게 드러난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균 이상의 IQ 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업 곤란증을 겪는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이러한 신경 심리학적 테스트를 치렀더니, 상당수가 전두엽 피질의 기능에 손상이 있음이 밝혀졌다.
그 외에도 이 어린이들은 대개 충동적이고, 쉽게 불안해 하고, 분열 증세를 보이거나 각종 장애를 겪고 있었는데, 이 모두가 대뇌 변연계적 충동을 전두엽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적 가능성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이러한 문제점이 있을 때 어린이들은 학업 부진이나 알콜 중독, 범죄 등의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이것은 그들의 지력 (知力) 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감정을 컨트롤하는 능력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EQ 는 IQ 검사로 파악되는 신피질 영역과는 달리, 분노와 동정심을 함께 통제한다. 이러한 감성 회로들의 상당수가 유아기의 경험을 통하여 형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 매우 중요한 경험들을 단순히 운에 맡겨 버리는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가장 이성적인 의사 결정 과정에서의 감성의 역할을 고찰해 보도록 하자. 아이오와 의과 대학 신경학과 다마지오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정신 생활의 이해에 이르기까지 목표를 두고 추진하는 연구에서 전두엽과 편도의 회로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이 어떤 결함을 보이는지를 조사했다.
이 환자들은 IQ 나 인지 능력은 결코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의사 결정 과정에서는 형편없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지능상 아무런 결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업과 개인적인 생활에서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리기 일쑤였고, 때로는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만남을 위한 약속 시간을 정하는 정도의 선택을 놓고서도 한없이 고민하고는 했다.
다마시오 박사는 그들이 의사 결정을 그렇게 제대로 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감성 학습으로 이르는 접근로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사고와 감정이 만나는 지점인 전두엽과 편도의 회로는 우리가 평생을 통해 획득하는 호 (好) / 불호 (不好) 의 창고에 이르기 위한 핵심적인 통로가 된다.
편도가 감성 기억으로부터 분리된다면 신피질이 고찰하는 무엇이라도 과거에 연결되어 있는 감성적 반응 - 회색 빛의 중립성을 띠고 있는 모든 것들 - 을 촉발시키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좋아하던 애완 동물을 봐도 귀엽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싫어하던 이웃을 만나도 혐오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이는 그 환자들이 편도에 저장된 기억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습한 감성을 모두 잊어버린 탓이다.
이상의 사례를 근거로 다마시오 박사는 대체로
이성적 결정과 감정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일종의 역설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감정은 냉철한 논리가 최상의 선택이 될 수 있는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세상은 종종 우리들에게 벅찬 선택 예컨대, 퇴직금을 어디에다 투자할 것인가?
누구랑 결혼할 것인가? 등의 신중한 판단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때 인생을 통해 획득한
관련된 감성 학습 예컨대, 실패로 끝난 투자, 고통스러운 이혼의 기억 등이 있으면
처음부터 몇몇 선택 범위를 제거하고 기타 선택들을 강조함으로써 의사 결정을 보다
유연하게 할 수 있는 신호들을 획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마시오 박사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감성두뇌는 사고 두뇌 못지 않게 우리의 추론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감성도 합리성을 위해 중요하다. 감성과 지성의 곡예 속에서 감성 능력은 우리의 순간적인 의사 결정, 합리적인 정신과의 협조, 사고력 그 자체의 가능성 또는 불가능성이라는 문제들을 인도해 간다. 마찬가지로 감정이 통제를 벗어나 과다 분출되거나 감성두뇌가 자기 멋대로 움직일 때를 제외한다면, 사고 두뇌도 우리의 감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두 개의 두뇌, 또는 두 개의 정신 곧, 지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 두 개의 서로 다른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인생에서 어떤 성과를 거두는가는 양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즉, IQ 뿐만이 아니라 EQ 역시 깊이 관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IQ 는 EQ 의 도움이 없이는 결코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경우 대뇌 변연계 시스템과 신피질, 또는 편도와 전두엽이 상호 보완성을 갖고 있음은 정신 생활에서 서로가 완벽한 동반자 관계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동반자 관계가 올바로 지속될 때, EQ 는 강화되고 IQ 역시 제 기능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지성과 감성을 대립하는 정신 활동으로 이해했던 종래의 이론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중세 철학자 에라스무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최대한 감성을 제거하고 지성을 강화하자는 뜻은 아니다. 단지 둘 사이의 균형을 취하자는 것이다. 옛 경구들을 보면, 모든 감성에서 완전히 해방된 이상적인 지성에 대해서 주로 논의하고 있다. 이제 새로운 경구들은 우리로 하여금 머리와 가슴의 조화를 이룰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를 훌륭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감성을 올바르게 개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