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장인

(Master of the Game)

 

카오스에서 인공생명으로 : M. Mitchell Waldrop 저, 김기식.박형규 역, 범양사, 1995.(원서 : Complexity : The Emerging Science at the Edge of Order and Chaos, SIMON & SCHUSTER, 1992), Page 200~276

 

끊임없는 새로움

광대한 가능성의 공간

기초 단위들

정신의 발현

고향과 같은 곳

 

 

일정에 의하면, 경제학 워크숍의 두 번째 발표는 첫날 점심 후에 시작하여 오후 남은 시간 동안 계속될 예정이었다. 이는 '적응 과정으로서의 세계 경제' 란 제목으로 미시간 대학교의 존 홀랜드 John H. Holland 가 발표했다.

이제 자신의 발표를 끝낸 브라이언 아서는 이 강연에 대하여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제목이 흥미롭게 들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해 가을 연구소 방문객의 한 사람이었던 존 홀랜드는 아서와 같은 집에 묵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서가 수도원에서 자신의 강연을 되풀이하여 준비하고 있던 반면에, 홀랜드는 전날 저녁 늦게까지도 산타페에 도착하지 않았다. 아서는 홀랜드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홀랜드에 대하여 아는 것이라곤 그가 컴퓨터 과학자이며, 연구소에 따르면 '아주 괜찮은 사람' 이라는 점이었다.

연구소가 그 점은 제대로 본 것 같았다. 사람들이 교회당을 메우고 접는 테이블 주위의 기다란 의자에 착석함에 따라, 홀랜드는 일어나서 시작할 준비를 했다. 그는 간편한 60 년대 서부인의 차림이었으며 넓적하고 불그스름한 얼굴에 끊임없이 웃음을 띠고 있었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마치 정열적인 대학원생을 연상케 했다. 아서는 즉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때 홀랜드의 강연이 시작됐다. 그리고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아서는 그저 강연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맑은 정신으로 주의 깊게 경청하게 되었다.

끊임없는 새로움

홀랜드는 워크숍의 주제인 '복잡한 적응계' 의 특별한 예로 경제를 지적함으로써 강연을 시작했다. 자연계에서는 뇌, 면역 체계, 생태계, 세포, 발달하는 배, 그리고 개미 군생 등이 여기에 포함되며, 인간 세계에서는 정당이나 과학 단체와 같은 문화계와 사회계가 포함되었다. 사실 그들을 인식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 이러한 계는 어디에나 무수히 널려 있었다. 그러나 홀랜드는 그것들이 어디에 있든 간에 그들로부터 공통적인 어떤 중요한 성질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첫째로, 각 계는 서로 병렬적으로 행동하는 많은 '인자' 들로 구성된 그물망이라고 그는 말했다. 뇌에서 인자는 신경 세포이고, 생태계에서는 종이며, 세포에서는 핵과 미토콘드리아와 같은 세포 기관이고, 배에서는 세포이며 등등이다. 경제에서 인자는 개인이나 가정일 수 있다. 경기 순환을 살펴보면, 인자는 회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국제 무역을 살펴보면, 인자는 전체 국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들을 정의하든 간에, 각 인자는 계 안의 다른 인자들과 상호 작용함으로써 만들어지는 환경 속에 놓이게 된다. 그것은 끊임없이 행동하고 다른 인자들의 행동에 반응한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그 환경 속에서는 아무 것도 정체되지 않는다.

더욱이 복잡한 적응계를 총괄하는 사령탑은 어느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홀랜드는 말했다. 예컨대 뇌에는 주인 신경이 없고, 발달하는 배에는 주인 세포가 없다. 계에 어떤 결 맞는 행동이 있다면, 그것은 인자들 사이의 경쟁과 협력으로 야기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경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대통령에게 고질적인 경기 후퇴를 타파하라고 요구하여 보라. 아무리 워싱턴에서 금리율과 세금 정책 그리고 통화량을 조절한다고 하더라도, 경제의 전체적 움직임은 여전히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루는 일상 경제 활동으로부터 나온 결과인 것이다.

두 번째로, 복잡한 적응계는 많은 조직 단계를 가지며 각 단계에서의 인자들은 더 높은 단계에서의 인자들을 구성하는 기초 단위가 된다고 홀랜드는 말했다. 한 무리의 단백질, 지방질 그리고 핵산은 세포를 형성할 것이고, 한 무리의 세포는 조직을 형성할 것이며, 조직이 모여 기관을 형성할 것이고, 기관의 조합으로 유기체가 형성될 것이며, 그러한 유기체들로 생태계가 형성될 것이다. 뇌에서 한 무리의 신경은 언어 중심을 형성하고, 다른 한 무리는 운동 피질을, 그리고 또 다른 무리는 시각 피질을 형성할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똑같은 방법으로, 한 무리의 개인 노동자들이 과를 형성하고, 과들이 모여 부를 형성할 것이며, 이와 같은 방법으로 회사, 경제 부문, 국가 경제 그리고 급기야는 세계 경제를 형성할 것이다.

더욱이 복잡한 적응계가 경험을 쌓아 가면서 자신을 이루는 기초 단위들을 끊임없이 교정하고 재배열한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고 홀랜드는 말했다. 유기체의 계승 세대들은 진화의 과정을 통하여 그들의 조직을 개조하고 재배열 할 것이다. 사람이 바깥 세상과의 접촉을 통하여 지식을 습득하면서, 뇌는 끊임없이 그 신경들 사이의 수많은 결합을 강하게 또는 약하게 조정할 것이다. 회사는 일 잘하는 사람을 진급시킬 것이고, 때로는 더 나은 효율을 위하여 회사의 조직 개편을 단행할 것이다. 국가는 새로운 무역 아그레망을 채택하거나 전체적으로 새로운 동맹 체제를 구축할 것이다.

좀 더 깊고 근본적인 수준에서 생각해 보면, 학습과 진화 그리고 적응의 모든 과정들은 동일한 것이라고 홀랜드는 말했다. 그리고 어떤 주어진 계에서의 적응의 기본 원리 중 하나는 기초 단위들의 교정과 재결합이다.

세 번째로, 모든 복잡한 적응계들은 미래를 예견하고 이에 대응한다고 그는 말했다. 이 사실은 경제학자들에게는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예컨대 확대되는 경기 후퇴가 계속되리라는 예측은 각 개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차의 구입이나 사치스러운 휴가를 뒤로 미루도록 유도할 것이며, 따라서 경기 후퇴가 실제로 계속되는 데 일조를 한다. 마찬가지로 석유가 부족하리라는 기대는 석유 시장을 통한 매매에 충격파를 보낼 수 있다. 부족이 실제로 올지 안 올지에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기대와 예측의 행위는 인간의 예지력이나 심지어 의식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홀랜드는 말했다. 박테리아 이상의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에는 암시적인 예견이 새겨져 있다 : "이러이러한 환경 속에서는 이런 유전자 청사진에 의하여 구축된 유기체가 잘 대처해 나간다." 마찬가지로 뇌를 가진 모든 생명체에게는 학습을 통해서 수많은 암시적인 예견들이 새겨지게 된다 : "ABC 라는 환경 속에서는 XYZ 같은 행동이 알맞다."

보다 일반적으로, 모든 복잡한 적응계는 세상에 대한 다양한 자체 내부 모형들을 바탕으로 바깥 사물에 대한 암시적이거나 구체적인 가정을 설정하여 끊임없이 예측을 한다고 홀랜드는 말했다. 더욱이 이러한 모형들은 수동적인 청사진보다 훨씬 더 능동적이다.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의 서브루틴 (subroutine) 처럼, 그것들은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활성화되고 '실행되어' 계의 행동을 지배한다. 사실 이러한 내부 모형들을 행위의 기초 단위들이라고 보아도 괜찮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어느 기초 단위들과 마찬가지로 계가 경험을 쌓아 가면서, 시험되고 다듬어지며 재배열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복잡한 적응계는 대부분 많은 생태적 지위 (niches) 를 갖는다고 홀랜드는 말했다. 각 생태적 지위는 거기에 맞추어 적응하는 인자에 의하여 개발될 수 있다. 그리하여 마치 열대 우림 (rain forest) 이 나무늘보와 나비들에게 자리를 제공하듯이, 경제 세계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배관공, 제철소, 애완 동물 가게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준다. 더욱이 하나의 생태적 지위를 메워 나가려는 바로 그 행위에 의해 더 많은 생태적 지위들이 생겨난다. 즉, 새로운 기생충, 새로운 먹이사슬 생물들 그리고 새로운 공생 파트너들이 생겨난다. 언제나 계에 의하여 새로운 기회가 창출되는 것이다. 그것은 평형 상태에 있는 복잡한 적응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의미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우쳐 준다. 왜냐하면 계는 결코 평형 상태에 다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제나 펼쳐져 있고 전이하는 것이다. 만일 계가 평형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냥 안정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계의 인자들이 자신들의 적합성이나 유용성 같은 것을 '극대화 (optimize)' 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홀랜드는 말했다. 가능성의 공간은 무한히 넓다. 그들은 극대화점을 찾아내기 위한 아무런 실제적인 방도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책은 다른 인자들이 행동하는 것과 관련 지어 자신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것뿐이다. 간단히 말하여 복잡한 적응계는 끊임없는 새로움으로 특징 지어질 수 있다.

다수의 인자, 기초 단위들, 내부 모형들, 끊임없는 새로움 - 이런 모든 것을 합쳐 볼 때, 복잡한 적응계를 기존 수학으로 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홀랜드는 말했다. 미적분학이나 선형 해석학 같은 대부분의 전통적인 테크닉은 정체된 환경 속에서 움직이는 불변의 입자들을 기술하는 데는 적합하다. 그러나 경제 또는 일반적으로 복잡한 적응계를 진실로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초 단위들의 발현과 수많은 인자들을 연결하는 풍부한 거미줄, 또 내부 모형들을 강조하는 수학과 컴퓨터 시늉내기 테크닉이 홀랜드의 강연이 이 시점에 도달했을 때, 아서는 맹렬하게 노트를 하고 있었다. 홀랜드는 이러한 생각들을 보다 구체적이고 유용하게 만들기 위하여 지난 30 년간 자신이 개발한 다양한 컴퓨터 테크닉을 설명하여 나갔고, 아서는 더욱 빠르게 써내려 갔다. "믿을 수 없었다" 라고 그는 말한다. "나는 오후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 곳에 앉아 있었다." 단순히 홀랜드가 이야기하는 끊임없는 새로움의 관점이 지난 8 년 동안 그가 효용체가 경제학으로 설명하고자 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한 홀랜드의 생태적 지위에 대한 관점이 그와 스튜어트 코프먼이 지난 2 주일 동안 자체촉매 집합의 개념을 통해 이해하고자 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사물을 바라보는 홀랜드의 전체적 시각이 너무나 통일되고 명백하며 정확했기 때문에, 이마를 찰싹 때리고는 "맞아! 왜 그런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을까?" 라고 말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홀랜드의 생각은 충격적인 깨우침을 불러일으켰고, 보다 많은 생각이 머리 속에서 쏟아져 나오게 만들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지나가면서, 홀랜드는 내가 수 년 동안 스스로에게 물었던 모든 종류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적응이란 무엇인가? 발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묻고 있다고 깨닫지조차 못한 보다 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라고 아서는 말한다. 그러나 아직 아서는 그것을 어떻게 경제에 적용시킬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는 방을 둘러보면서 여러 동료 경제학자들도 역시 어리둥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들은 매우 회의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 명은 오후의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홀랜드가 우리보다 아주 훨씬 더 정교한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어떻든 그는 홀랜드의 생각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다.

산타페 연구소도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다. 홀랜드의 생각이 아서나 다른 참석자들에게는 새로운 것이었지만, 그는 이미 오래 전에 산타페 사람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었고 또한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연구소와 처음 접촉을 갖게 된 것은 1985 년 '진화, 게임 그리고 학습' 이라는 컨퍼런스를 통해서였다. 그 컨퍼런스는 도인 파머와 노먼 패카드의 주도하에 로스앨러모스에서 개최되었다 (파머, 패카드, 코프먼이 자체촉매 집합에 대한 그들의 시늉내기 결과를 처음으로 발표했던 바로 그 컨퍼런스였다). 그 곳에서 홀랜드는 '발현' 이라는 주제에 대해 발표했다. 강연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청중 중 하얀 머리칼에 검은테 안경을 쓰고 찌르는 듯이 강하고 약간 냉소적인 얼굴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날카로운 질문 세례를 받았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좀 경솔하게 답변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아마도 겁에 질려 벌벌 떨었을 것이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러나 답변이 경솔했건 아니건 간에, 겔만은 홀랜드가 말한 내용을 매우 좋아했다. 그 후 겔만은 얼마 안 되어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막 형성되려던 산타페 연구소 자문위원회를 위해 일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홀랜드는 응낙했다. "나는 연구소를 처음 본 순간, 그 곳을 정말로 좋아하게 되었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들이 토의하고 있는 것들, 그들이 일을 수행하는 방법을 보고 나서 나의 즉각적인 반응은 '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되어야 할 텐데, 이 곳은 바로 나 같은 사람을 위한 곳이야!' 였다."

그런 감정은 상호적이었다. 겔만이 홀랜드에 대하여 언급할 때면 '뛰어난' 과 비슷한 단어를 사용했으며, 이는 결코 그가 일상적으로 내뱉는 단어가 아니었다. 겔만이 그렇게 몹시 놀라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다. 초창기에 겔만, 카우언 그리고 대부분의 다른 연구소 설립자들은 새로운 복잡성의 과학을 그들이 이미 익숙해 있는 발현, 집단 행동, 자발적 조직화 등의 물리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이러한 개념들은 이미 매우 다양한 연구 분야를 약속하는 듯했으며, 단순한 비유를 통해서 경제학과 생물학 등의 영역에서 발현, 집단 행동, 자발적 조직화 등과 같은 현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홀랜드는 적응에 대한 분석을 제시했으며, 효과적인 컴퓨터 모형을 이미 만들어 내었다. 겔만과 다른 사람들은 갑자기 자신들의 연구 과제에 빈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발현하는 구조들은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는가? 그들은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고 적응하는가?

몇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들은 연구소의 프로그램이 단순히 복잡한 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적응계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게 되엇다. 그리고 발현과 적응의 접목 과정을 이해하려고 하는 홀랜드의 개인적인 연구 과제가 전체 연구소의 과제가 되었다. 따라서 그는 연구소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큰 규모의 컨퍼런스 중 하나였던, 1986 년 잭 카우언과 스탠퍼드 생물학자인 마크 펠드먼이 조직한 복잡한 적응계 워크숍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스튜어트 코프먼이 산타페에 소개된 것이 바로 이 워크숍이었다). 데이비드 파인즈도 복잡한 적응계 워크숍과 하루 동안 겹쳐졌던 랜초 엔칸타도 회합에 홀랜드를 초청하여 존 리드 및 그의 동료들과 만나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앤더슨은 홀랜드가 1987 년 9 월 바로 이 경제학 컨퍼런스에 참석할 수 있게 해주었다.

홀랜드는 기꺼이 이 모든 회합에 참석했다. 그는 지난 25 년 동안 어둠속에서 적응에 대해 생각해 왔다. 그리고 이제서야 57 세의 나이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머레이 겔만이나 필 앤더슨 같은 인물들과 동등하게 대접받으며 일 대 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만일 그의 부인이 앤아버를 떠날 수만 있었다면 - 모리타 홀랜드는 아홉 개 과학 도서관들로 이루어진 대학 도서관의 책임자였다 - 그는 보다 많은 시간을 뉴멕시코에서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홀랜드는 거의 언제나 명랑했다. 그는 자기가 정말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고 사는, 진실로 행복한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솔직하고 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자신의 행운에 아직 놀라워하고 있었다. 본질적으로 존 홀랜드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서도 홀랜드에 매료되고 말았다. 첫날 오후 홀랜드의 강연이 끝난 후 아서는 스스로 자신을 소개했고, 그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홀랜드도 아서를 좋아했다. "남이 한 말을 듣고 적응에 대한 개념을 재빨리 포착해서, 그렇게 빨리 또 그렇게 완벽하게 종합하여 자신의 견해에 연결시키는 사람은 흔치 않다" 라고 그는 말한다. "브라이언은 적응의 모든 부분에 강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매우 재빠르게 탐사해 들어갔다."

한편 아서는 홀랜드를 자신이 산타페에서 만난 가장 복잡하고 멋진 지성인이라고 단언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사실 홀랜드 덕분에 아서는 경제학 워크숍의 남은 기간 동안 졸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와 홀랜드는 밤 늦게까지 부엌 식탁에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온갖 것들에 대해 토의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그렇게 나눈 대화 중에서 특별히 하나를 기억한다. 홀랜드는 경제학에서 가장 중대한 이슈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 회의에 참석했다 ("학제간 분야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분야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적어도 그들의 질문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은 그 질문들을 체계화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 날 밤 그 둘이 부엌 식탁에 앉아 있을 때, 홀랜드는 아서에게 직선적으로 물었다 : "브라이언, 경제학에서 진정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장기 (Chess) !" 하고 아서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장기? 홀랜드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글쎄, 아서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는 자기 자신도 확실히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경제학자들은 언제나 간단하고 닫혀진 계에 대해서만 논의해 왔다. 그런 계들은 몇 가지의 행동 양식들로 매우 빠르게 정착하며 그 이후로는 별로 크게 변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경제 인자들이 매우 영리하여 어떠한 주어진 상황 속에서도 무엇이 최선인지 인지할 수 있다고 암암리에 가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기의 경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라. 수학적 게임 이론에 의하면, 장기와 같이 두 사람이 하는 유한한 제로섬 게임 (zero-sum game) (한 사람이 얻는 만큼 다른 사람이 잃는 게임 = 역주) 에서는 언제나 최선의 해 (optimal solutions) 가 존재한다는 정리가 있다. 즉, 검은 편이건 흰 편이건 간에 각 선수에게 다른 선택들보다 더 나은 결과를 주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아무도 그 해가 무엇이며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경제 인자는 즉시 그것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두 명의 인자들은 게임이 시작되어 장기판을 대하면 모든 가능한 수들을 마음 속으로 생각해 보고, 외통수로 장군을 부를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부터 역으로 수순을 정한다. 이렇게 역에서 다시 역으로 수순을 정하여 급기야는 모든 가능한 수순을 생각하여, 가장 적합한 초기 수를 찾아낸다. 예컨대 가운데 졸을 두 칸 앞으로 (pawn to king 4) 둔다. 그리고 그 순간에 사실 게임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론적으로 우세한 측이 - 예컨대 백이 - 곧 승리를 선언할 것이고, 그가 이기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상대방은 곧 패배를 인정하고, 그도 이미 질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존, 누가 그런 장기를 둘 수 있겠어요?" 라고 아서가 말했다.

홀랜드는 그저 웃었다. 그는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컴퓨터가 아직 생소했던 1940 년대에 장기를 둘 수 있는 '지적' 인 프로그램을 고안하고자 처음으로 시도하고 있었다. 그 당시 벨 연구소에 있던 현대 정보 이론의 아버지 클로드 셰년 (Claude Shannon) 은 장기에서 가능한 수 들이 모두 얼마나 되는지 계산했다. 그가 얻어낸 답은 10120 이었는데 이 숫자는 너무 방대하여 어떤 것에도 비유할 수 없었다. 우주 대폭발로부터 흘러간 시간을 마이크로 초로 세어도 이 숫자보다는 훨씬 적다. 관측될 수 있는 우주 안에는 그만큼 많은 수의 소립자들이 없다. 그러한 모든 장기 수들을 검색할 컴퓨터는 없다. 그리고 물론 그러한 일을 해낼 인간도 없다. 우리 인간들은 대충 생각해서 경기를 하며,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전략이 최선인가를 알려주는 어렵게 찾아낸 정석으로 경기를 한다. 가장 훌륭한 장기 선수권자들조차도 마치 조그마한 등불을 갖고 깊고 깊은 동굴로 내려가듯이 항상 장기에서의 길을 탐구하여 나간다. 물론 그들은 발전한다. 그 자신이 장기 선수인 홀랜드는 1920 년대의 장기 선수권자가 현대의 장기 선수권자인 개리 카스파로프 (Gary Kasparov) 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알려지지 않은 광대한 곳으로 겨우 몇 야드 정도 나아간 것에 불과하다. 그것이 홀랜드가 장기를 근본적으로 열려진 계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무한한 것이다.

옳다고 아서는 말했다. "사람들이 실제로 파악할 수 있는 패턴들의 종류는 '최선' 을 찾기에는 너무 제한되어 있다. 최선을 기대한다면, 인자는 보통의 경제학자들보다 훨씬 영리하여야 함을 가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는 또 말했다. "그것이 우리들이 경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일본과의 무역은 적어도 장기만큼 복잡하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합리적인 게임을 가정하자' 로부터 출발한다."

그게 바로 경제학의 문제라고 그는 홀랜드에게 말했다. 근본적으로 무한히 넓은 가능성의 공간 (space of possibilities) 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야 하는, 영리하지만 불완전한 인자들에 대한 과학을 어떻게 탐구할 수 있는가?

"아하!" 하고, 홀랜드는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을 때 늘 하던 버릇처럼 감탄사를 내뱉었다. 장기! 그는 이제야 이 은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광대한 가능성의 공간

존 홀랜드는 게임을 사랑했다. 모든 종류의 게임을 사랑했다. 그는 거의 30 년 동안 앤아버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포커 게임에 정규적으로 참가하고 있었다. 그는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 댁에서 어른들이 피너클 (pinochle) 게임을 하는 것을 보며 자신도 빨리 커서 테이블에 같이 앉아하고 싶었다. 그는 1 학년 때, 브리지의 명수였던 어머니로부터 장기의 일종인 체커 (checkers) 를 배웠다. 가족 모두가 정열적으로 배를 좋아하였고 홀랜드와 어머니는 종종 요트 경주에 참가했다. 그의 아버지는 뛰어난 체조 선수였으며 - 홀랜드 자신도 중학교 시절 여러 해 동안 체조에 빠져 있었다 - 야외 활동을 아주 즐기는 사람이었다. 홀랜드의 가족은 언제나 무엇인가 게임을 하고 있었다. 브리지, 골프, 크로켓, 체커, 장기, 바둑 등 온갖 종류의 게임이었다.

하여튼 그에게는 처음부터 이러한 게임이 단순한 흥미 이상의 것이었다. 어떤 게임은 이상하게도 매력적이고 승부의 문제를 넘어선 마술 같은 면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컨대 고등하고 1 학년 때 - 1942 년이나 43 년경, 그의 가족이 오하이오의 밴 워트 (Van Wert) 에 살고 있었을 때 - 그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월리 퍼모트의 집 지하에서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일간지 제목에서 힌트를 얻은 그들의 작품은 지하실 바닥을 다 차지하는 전쟁 게임 (war game) 이었다. 탱크와 대포에다가 발사대와 조준대를 갖추고 있었다. 연막을 시늉내어 발사대나 조준대를 가릴 수 있는 방법들까지도 준비하였다. "그것은 꽤 복잡했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나는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등사 기계를 사용하여 많은 장비들을 인쇄했다" (홀랜드의 아버지는 오하이오주 콩 재배 지역에 일련의 콩 가공 공장들을 설립하여 불경기를 극복하고 번창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우리 세 사람 모두 장기에 흥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장기는 단지 몇 가지 규칙들만 갖고 하는 게임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결코 똑같은 게임이 두 번 다시 치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능성의 공간은 무한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특성을 갖는 새 게임을 발명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 이후 그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게임을 만들어 왔다고 말하며 웃는다. "나는 그저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지 보고 싶었을 뿐이고, 결국 '하느님! 이 상황이 정말로 이러한 가정들로부터 나온 것입니까?' 라고 묻게된다. 왜냐하면 내가 실수한 곳이 없고 또 게임이 진행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규칙이 나와 상관없이 상황을 제대로 제어하고 있다면, 결국 나는 놀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놀라지 않게 된다면 나는 별로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처음부터 짜맞추어 넣은 것 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거니까."

물론 요즈음은 이런 종류의 것을 '발현'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홀랜드는 이런 단어를 듣기 이미 오래 전에, 이에 대한 탐구심으로 과학과 수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는 이 두 분야에 대한 지식을 만족할 만큼 충분히 얻을 수 없었다. 학창 시절 내내 "도서관에 가서 과학과 기술에 대한 어떤 것이건 구할 수 있는 모든 책을 탐독하였던 것을 기억한다. 고등학교 이 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물리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라고 말한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과학이 우주의 모든 것을 몇 가지 간단한 법칙들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정반대였다. 즉, 과학이 어떻게 몇 가지 간단한 법칙들로부터 세상의 엄청나게 다양한 현상을 만들어 내는가였다. "그것은 정말로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라고 그는 말한다. "과학과 수학은 어떤 측면에서는 극단적인 환원이다. 그러나 방향을 돌려 합성적인 측면을 바라보면 놀라움은 끝이 없다. 한편으로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 주는 방법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는 1946 년 가을 MIT 에 신입생으로 입학했고, 오래 되지 않아 컴퓨터에서 똑같은 경이로움을 발견했다. "아직도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처음부터 언제나 '사고 과정' 에 흥미를 가졌다. 그리고 단지 몇 비트의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적분과 같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 - 그것이 나에게는 단순히 이상하리만큼 적은 입력으로 이상하리만큼 많은 출력을 얻는 듯이 보였다."

홀랜드는 처음에는 불행하게도 전기공학 수업에서 얻은 중고 조각들 이외에 컴퓨터에 대해 배운 것이 없었다. 당시 전기공학적 컴퓨터는 아직 매우 새로운 것이었으며 대외비였다. 당연히 MIT 에서 조차 전산학 강의가 열리지 않았다. 어느 날 MIT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을 읽고 있던 - 그는 자주 도서관에서 책을 찾으며 소일했다 - 홀랜드는 우연히 간단한 표지로 묶여 있는 한 질의 강의 노트를 발견했다. 노트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그는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전기공학과 무어 스쿨에서 열린 1946 년 컨퍼런스의 자세한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대포의 조준표를 계산하고자 하던 전시의 노력이 미국 최초의 디지털 컴퓨터인 에니악 (ENIAC) 의 개발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그 노트는 지금 매우 유명하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전산에 대해 최초로 기록된 정말로 자세한 강의록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컴퓨터 구조학이라고 부르는 것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그와 함께 그 강의록은 정보와 정보처리 같은 매우 새로운 개념들을 다루고 있었으며, 전혀 새로운 수학 기술인 프로그래밍을 정의했다. 홀랜드는 즉시 그 강의 노트의 사본을 샀으며 - 사실 그는 아직도 그것을 간직하고 있다 - 첫 장부터 끝 장까지 통독하였다. 그것도 여러 번에 걸쳐서.

1949 년 가을, MIT 에서 4 학년이 되어 학사논문의 주제를 물색하던 그는 월윈드 (Whirlwind)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 비행 교통을 정리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로 작동할 수 있는 실시간 컴퓨터를 만들려던 MIT 의 노력이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인 1 년에 100 만 달러씩을 해군이 투자하는 월윈드 프로젝트는 약 70 여 명의 공학자와 기술자가 동원된 당시 가장 큰 규모의 컴퓨터 프로젝트였으며, 가장 혁신적인 것 중의 하나였다. 월윈드는 자기 내부 기억장치와 대화식 화면을 가진 첫번째 컴퓨터였다. 이로부터 컴퓨터 그물망과 (동시에 한 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다중 처리가 생겨났다. 월윈드는 최초의 실시간 컴퓨터로서 공중 교통 (air-traffic) 제어, 산업 과정 제어, 예매 체제 그리고 은행 업무에 컴퓨터를 도입하는 데 길을 터 주었다.

그러나 홀랜드가 처음 들었을 때, 월윈드는 아직 상당 부분 실험적인 단계였다. "나는 월윈드라는 것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라고 그는 말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건조중이었지만, 이용할 수는 있었다." 그는 어떻게든 이 계획에 참여해야 했다. 그는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는 수치해석학 강의를 맡았던 체코 출신의 천문학자이며 전기공학과 교수인 제드넥 코팔 (Zednek Kopal) 을 찾았다. "그에게 나의 학위논문 심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설득했다. 나는 전기공학과의 누군가가 위원장을 맡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물리학과 설득했다. 그러고 나서 월윈드 사람들에게 내가 그들의 설명서를 공부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설득했다 - 그 설명서들은 대외비였다!"

"아마도 그 해는 내가 MIT 에서 보낸 가장 행복한 때였다" 라고 그는 말한다. 코팔은 학위논문의 주제로서 월윈드를 사용하여 라플라스 (Laplace) 방정식을 푸는 프로그램을 짤 것을 추천했다. 라플라스 방정식은 전하를 띤 물체 주위의 전기장의 분포로부터 팽팽하게 늘려진 북 가죽의 진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리적 현상을 기술할 수 있는 방정식이다. 홀랜드는 곧 작업에 착수했다.

그것은 결코 MIT 에서도 다루기 쉬운 졸업반 논문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아무도 파스칼이나 C 또는 포트란과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실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개념은 1950 년대 중반까지도 정립되지 않았다. 홀랜드는 프로그램을 소위 기계 언어라는 것으로 짜야만 했다. 컴퓨터에 내리는 명령을 숫자로 기호화했으며, 그 숫자들은 보통의 10 진법 숫자가 아니고 16 을 기본으로 하는 16 진법의 숫자였다. 그 프로젝트는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렸으며, 결국 그는 MIT 에서 보통 졸업반 논문에 할당하는 시간의 두 배를 할당해 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그 작업을 좋아했다. "나는 그 과정의 논리적 측면을 좋아했다" 라고 회상한다. "프로그래밍은 수학과 비슷하다. 한 단계를 밟으면 이제 그것이 다음 단계를 밟도록 하고, 이런 과정이 계속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프로그램을 짜면서 컴퓨터가 환상적으로 빠른 연산 기계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는 난해한 일련의 16 진법 숫자들로부터 떨리는 북 가죽을 그려낼 수 있었으며, 소용돌이 모양의 전기장 또는 그 이외의 그가 원하는 다른 어떤 것도 그려 볼 수 있었다. 그는 순환하는 비트들의 세계에서 가상의 우주를 창조할 수 있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단지 적절한 법칙들을 기호화하는 것이었고, 그러면 다른 것들은 저절로 펼쳐졌다.

홀랜드는 월윈드에 그의 프로그램을 실제로 실행시키지는 못했다. 그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종이 위에서의 연습으로 의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졸업반 논문은 다른 방법으로 무언가 아는, 나라 안에서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 결과 1950 년 졸업하자마자 IBM 에 스카웃되었다.

타이밍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거대한 사무용기 제조업체인 IBM 은 뉴욕에 있는 포킵시 (Poughkeepsie) 공장에서 첫번째 상업용 컴퓨터를 고안하고 있었다. 그것은 방위를 목적으로 하는 계산기로 나중에 IBM 701 로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 그 기계는 회사에서 벌인 가장 크로 모험적인 도박이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대부분의 중역들은 컴퓨터 제조가 돈의 낭비이며 차라리 더 좋은 펀치카드 기계 개발에 투자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사실 제품 계획부는 전국적으로 18 대 이상의 컴퓨터를 팔 수 없을 것이라고 1950 년 1 년 내내 주장했다. IBM 방위 계산기에 방향을 맞춘 큰 이유는 회사의 연로한 사장인 토머스 웟슨 (Thomas B. Watson, Sr.) 의 아들이자 장래의 분명한 상속자인 톰 주니어라는 젊은이가 각별히 창안한 계획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1 세의 홀랜드는 그것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었다. 아는 것은 자신이 오즈의 나라 (동화 속에 나오는 신비의 나라 = 역주) 로 보내졌다는 사실뿐이었다. "젊은 나이에 나는 정말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에 서게 되었다. 나는 701 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몇 안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IBM 의 팀장들은 홀랜드를 일곱 명으로 구성된 논리 계획 그룹에 배치하였고 그 그룹은 새로운 기계에 대한 명령어들과 전체적인 구조를 고안하는 일을 맡았다. 이것 또한 행운이었다. 왜냐하면 이곳이야말로 그의 프로그래밍 기술을 유감 없이 발휘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기 단계를 거쳐 시작품을 만든 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테스트를 해야 했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기술자들은 하루 종일 거기에 매달려 일했고 그것을 해체했다가 저녁에는 최선의 형태로 재조립했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기술자들은 하루 종일 거기에 매달려 일했고 그것을 해체했다가 저녁에는 최선의 형태로 재조립했다. 그리고 우리 중 몇몇은 밤 11 시에 들어가서 우리 일을 밤새도록 시행시켜 보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아보았다."

사실 제대로 작동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701 은 이제 막 석기 시대를 벗어난 것에 불과했다. 다이얼과 스위치로 가득 찬 거대한 제어판에 비디오 모니터도 갖추지 못한 기계였다. 입력과 출력은 IBM 의 표준 펀치카드로 수행되었다. 701 전체 4 킬로바이트의 기억 용량을 자랑했다 (오늘날의 개인용 컴퓨터는 대부분 그보다 1000 배만큼의 기억 용량을 갖고 있다). 또 두 숫자를 곱하는 데 30 마이크로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현대의 손 계산기도 그보다 빨리 계산할 수 있다). "그 기계는 매우 불안정했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기껏해야 평균 약 30 분이 채 못되어 가동이 중단되고,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을 두 번씩 수행했다." 더구나 701 은 특수한 음극선 관의 표면에 밝은 점들을 발생시킴으로써 데이터를 저장했다. 그래서 홀랜드와 그의 동료 프로그래머들은 기억장치의 동일한 지점에 데이터를 너무 자주 반복하여 쓰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알고리듬을 짤 짜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관의 표면에 전하가 축적되어 근처의 비트들을 변형시킬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작동하는 기계를 가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라고 말하며 그는 웃는다. 그러나 사실 그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에게 그것은 거인과 같았다. 우리의 일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빠른 기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한 거라고 생각했다."

시험해 볼 대상은 끊임없었다. 컴퓨터가 등장한 초창기는 그 10 년 전만 해도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던 정보, 인공두뇌, 오토마타 (automata) 에 관한 새로운 생각들로 들끓던 시대였다. 누구인들 그 한계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겠는가? 시돟 보는 거의 모든 것들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철학적으로 정신 무장된 홀랜드와 같은 선구자들에게는 도선과 진공관의 커다랗고 어설픈 집합체가 사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지 전혀 새로운 방법들을 열어 주었다 컴퓨터는 일간지 일요 증보판에 소개되는 으시시한 '거대한 두뇌' 가 아닐지 모른다 그 구조와 작동을 자세하게 관찰해 보면 사실 컴퓨터는 뇌와 같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컴퓨터와 두뇌가 보다 깊고 보다 중요한 면에서는 비슷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드 정보처리 장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고 자체를 정보처리 과정의 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당시에는 아무도 이러한 종류의 일을 '인공지능' 또는 '인식 과학' 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컴퓨터를 프로그래밍하는 바로 그 행동으로 인해 - 그 자체가 전혀 새로운 종류의 시도이다 -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하여 이전 어느 때보다도 신중히 생각하게 되었다. 컴퓨터는 궁극적으로 화성인 (Martian) 이었다 : 즉, 컴퓨터에게 모든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말해 주어야 했다. 데이터가 무엇인가? 어떻게 그것들이 변환되는가? 여기서 저기로 가는 데 거치는 단계들은 무엇인가? 어떻게 그것들이 변환되는가? 여기서 저기로 가는 데 거치는 단계들은 무엇인가? 그러한 질문들은 수세기 동안 철학자들을 괴롭히던 문제들로 곧바로 연결되었다. 지식이란 무엇인가? 지식은 어떻게 감각을 통하여 얻어지는가? 지식은 어떤 형태로 정신에 나타나는가? 지식은 어떻게 경험에 의하여 수정되는가? 지식은 어떻게 추리에 사용되는가? 어떻게 결심이 행위로 변환되는가?

그 당시 이에 대한 대답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사실 그것들은 지금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질문들은 전에 없던 명확성과 구체성을 갖고 제기되고 있었다. 포킵시에 있는 IBM 의 개발팀은 갑자기 나라 안에서 컴퓨터 기술의 선두 주자로 부상하여 최전선에 나섰다. 홀랜드는 '정례적이면서도 비정규적인' 그룹인 2 주일마다 저녁에 만나서 포커나 바둑의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즐겁게 기억하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여름 수련인으로 참석한 존 매카시 (John McCarthy) 였다. 그는 젊은 칼텍 대학원생으로서 후에 인공지능 설립자 중 하나가 되었다 (사실 매카시는 그 주제에 대하여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열린 컨퍼런스를 홍보하기 위해 1956 년에 인공지능이라는 문구를 창안한 사람이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아서 새뮤얼 (Arthur Samuel) 이라는 부드러운 말씨의 40 대 전기공학자로, 믿을 만한 진공관을 만드는데 도움을 얻기 위하여 일리노이 대학교로부터 IBM 으로 스카웃되었으며 홀랜드가 밤을 새워 장시간 프로그래밍을 해 나가는 동안 가장 자주 말벗이 되어 준 사람이었다 (근처의 숙녀 교육학교에 그의 딸이 다니고 있었으며 홀랜드는 그녀와 여러 번 데이트를 했다). 새뮤얼은 솔직히 진공관에 대하여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난 5 년 동안 그는 체커를 둘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고자 시도해 왔다. 게임을 할 뿐만 아니라 경험을 쌓아 가면서 더 잘하는 방법을 배워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되돌아 보면 새뮤얼의 체커 프로그램은 인공지능 연구의 이정표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1967 년 마지막으로 수정과 보완을 끝냈을 때, 그가 만든 프로그램은 세계 챔피언의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 701 의 시대에서조차 그 프로그램은 놀라우리만큼 잘 작동했다. 홀랜드는 그것에 매우 감명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으며, 특히 상대방 선수가 행동하는 방식에 따라 전술을 적응시켜 나가는 능력에 감명받았다. 결과적으로, 그 프로그램은 '적' 에 대한 간단한 모형을 만들고 그 모형을 사용하여 최선의 방법을 예측하도록 짜여졌다. 어떻든 간에 당시에는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했지만, 홀랜드는 체커 프로그램의 이러한 측면이 학습과 적응에 대한 근본적이고 올바른 무언가를 담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마음 속에 그러한 생각들을 정리해 두었다. 당분간 그는 자신의 프로젝트인 뇌 자체의 내부 작동을 시늉내는 일로 매우 바빴다. 1952 년 봄이라고 그는 기억하고 있다. 그는 리클라이더 (J. C. R. Licklider) 의 강연을 듣고 있었다. 리클라이더는 MIT 의 심리학자로서, 포킵시 실험실을 방문하여 그 곳의 연구진에게 당시 그 분야의 가장 뜨거운 쟁점에 대하여 강연을 해주었다. 몬트리올에 있는 맥길 대학교의 신경생리학자인 도널드 헤브 (Donald O. Hebb) 에 대하여 제창된, 학습과 기억에 대한 새로운 이론에 대한 것이었다.

리클라이더는 문제가 이것이라고 설명했다 : 현미경을 통하여 보면 뇌의 대부분은 혼란스러운 서재 같아 보인다. 각 신경 세포는 수천의 무작위적인 가는 실들을 내보내고 그 실들에 의하여 수천의 다른 신경세포들과 싫든 좋든 연결된다. 그러나 이렇게 조밀하게 연결된 그물망은 당연히 무작위적이지 않다. 건강한 뇌는 매우 일관성 있게 지각, 사고 그리고 행위를 창출해 낸다. 더구나 분명한 것은 뇌가 정적 상태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경험을 통하여 그 행동을 개량하고 적응한다. 뇌는 배운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인가이다.

3 년 전인 1949 년, 헤브는 그의 해답을 <행위의 체제 (The Organization of Behavior)> 라는 책에 발표했다. 그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뇌가 신경 자극이 한 세포에서 다음 세포로 전해지는 접합점인 '시냅시스 (synapses) (뉴런 연접)' 에 끊임없이 미묘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가정이었다. 이는 헤브에게는 매우 대담한 가정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그러한 가정을 입증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가정을 세우고서, 이러한 시냅시스의 변화가 사실 모든 학습과 기억의 기반이 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눈을 통하여 들어온 감각적 자극은 그 경로에 놓여 있는 모든 시냅시스를 강화시킴으로써 신경그물망에 흔적을 남길 것이다. 귀 또는 뇌 자체의 다른 곳에서 정신적 활동을 통하여 들어온 자극에 대하여도 거의 동일한 양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무작위적으로 시작된 그물망은 신속하게 스스로를 조직화한다고 헤브는 말했다. 경험은 일종의 양의 되먹임을 통하여 축적될 것이다. 강하고 자주 사용되었던 시냅시스는 더 강하게 자랄 것이고, 약하고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시냅시스는 퇴화할 것이다. 자주 사용된 시냅시스는 결국 너무 강해져서 기억이 그 속에 고착화될 것이다. 이러한 기억들은 이제 전체 뇌에 넓게 분산되려는 경향을 보이고, 각 기억은 수천 개 또는 수백만 개의 신경 세포들에 관련된 시냅시스들의 복잡한 패턴에 해당될 것이다 (헤브는 이렇게 분산된 기억을 '연결자 (connectionist)' 로 기술한 첫번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리클라이더는 강연에서 계속하여 헤브의 두 번째 가정에 대하여 설명해 나갔다. 시냅시스에 대한 선택적인 증강은 뇌가 스스로 '세포 집단 (cell assembly)' 들로 조직되도록 작용한다는 것이다. 세포 집단이란 수천 개의 신경 집합으로서, 그 안에서 순환하는 신경 자극은 스스로를 보강하고 순환을 계속해 나간다. 헤브는 이러한 세포 집단을 정보를 담고 있는 뇌의 가장 기본적인 기초 단위라고 생각했다. 각 기초 단위는 음성, 섬광 또는 한 줄기 생각에 상응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집단들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그들은 중첩되어 있으며, 어떤 하나의 집단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집단을 활성화시키게 되고, 따라서 이러한 기본적인 기초 단위들은 신속하게 자신들을 더 커다란 개념과 더 복잡한 행동으로 조직화하여 나간다. 간단히 말하여 세포 집단은 사고의 기본적인 양자인 것이다.

청중 속에 앉아 있던 홀랜드는 이 모든 것을 들으며 몸을 꼼짝달싹할 수도 없었다. 이것은 당시 하버드 대학교의 스키너 (B. F. Skinner) 와 같은 행동주의자들에 의하여 제창된 자극과 반응이라는 심리학의 무미 건조한 관점이 아니었다. 헤브는 정신의 내면에서 무엇이 진행되는지 말하고 있었다. 그의 연결자 이론은 홀랜드가 그렇게도 강렬하게 반응을 보일 만한 풍부함과 끊임없는 놀라움을 갖고 있었다. 그 이론은 옳다고 느껴졌다. 홀랜드는 그것을 이용하여 무언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헤브의 이론은 사고의 근본으로 통하는 창문이었고 그는 그것을 알아보고 싶었다. 그는 세포 집단들이 무작위적인 혼돈에서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성장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는 그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을 알아보고 싶었다. 그는 세포 집단들이 무작위적인 혼돈에서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성장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는 그들이 서로 상호 작용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는 그것들이 경험을 수용하고 진화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는 그것들이 경험을 수용하고 진화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는 정신 자체가 발현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것이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것을 보고 싶었다.

리클라이더가 헤브에 대한 그의 강연을 끝내기 무섭게 홀랜드는 701 팀의 리더인 나다니엘 로체스터 (Nathaniel Rochester) 에게로 고개를 돌려 "이제 우리 시작품을 가지고 신경그물망 시늉내기 프로그램을 짭시다" 라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한 일이었다. "그가 한 프로그램을 짰고 내가 약간 형태가 다른 또 다른 프로그램을 짰다. 우리는 그것을 '개념자 (conceptor)' 라고 명명했다. 그렇게 이름을 붙인 데 특별한 뜻은 없었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사실 IBM 의 개념자는 40 년 후에도 뜻 깊은 업적으로 평가되었고, 그후 신경그물망 시늉내기는 인공지능 연구의 대표적인 도구가 되었다. 기본 아이디어는 아직도 매우 친숙하게 들린다. 홀랜드와 로체스터는 그들의 프로그램에서 인공신경을 '마디 (node)' 로 모형화했다. 마디는 실질적으로는 매우 작은 컴퓨터로서, 자신의 내적 상태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모형화되었다. 그들은 인공 시냅시스를 다양한 마디들 사이의 추상적인 연결로 모형화했으며, 각 연결은 시냅시스의 강도에 상응하는 어떤 가중치를 갖는다. 그들은 그물망이 경험을 얻음에 따라 그 강도를 조절하게 함으로써 헤브의 학습 규칙을 모형화했다. 그러나 홀랜드, 로체스터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신경그물망 시늉내기에서보다 훨씬 더 자세하게 기초 신경생리학을 고려했다. 예컨대 시늉낸 각 신경이 얼마나 빨리 발사를 하며, 너무 자주 발사한 신경이 얼마나 지치게 되는지에 관한 요소를 첨가했다.

이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기까지 많은 시행 착오를 거듭했으리라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프로그램은 최초의 신경그물망 시늉내기일 뿐만 아니라 (숫자를 계산하거나 데이터를 분류하는 것이 아닌), 컴퓨터를 사용한 최초의 시늉내기였다. 홀랜드는 참을성 있게 기다려 준 IBM 회사에 많은 공을 돌렸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그물망에 무수한 컴퓨터 시간을 소비했으며 헤브를 직접 만나 자문을 구하기 위해 회사 비용으로 몬트리올까지 여행하기도 했다.

결국 실제로 시늉내기가 작동했다. "무수히 많은 것들이 발현했다" 라고 홀랜드는 지금도 흥분된 어조로 말한다. "균일하게 배열된 신경세포들로부터 시작하여 세포 집단들이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홀랜드, 로체스터 그리고 그들의 동표들은 상당량의 연구가 수행된 몇 년 뒤인 1956 년에 그들의 결과를 발표하였고 이것이 그의 첫번째 논문이었다.

기초 단위들

돌이켜 보건대 아마도 헤브의 이론과 그 이론에 대한 자신의 그물망 시늉내기는 그 후 30 년 동안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의 생각을 더욱 구체화시켜 주었다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러나 바로 그때 그는 IBM 을 떠나야 했다.

문제는 컴퓨터 시늉내기의 한계였으며 특히 701 에 있어서 그러했다. 실제 신경계에서 한 세포 집단은 뇌의 큰 부분에 분포되어 있는 1 만 개 정도의 신경 세포들을 갖고 있으며, 각 신경 세포는 1 만 개 정도의 시냅시스들을 갖고 있다. 홀랜드와 그의 동료들이 701 에서 돌렸던 가장 큰 시늉내기 그물망은 고작 1000 개의 신경 세포와 신경 세포당 16 개의 연결을 가질 뿐이었다. 그것도 그들이 컴퓨터의 속도를 올리기 위하여 짜낼 수 있었던 모든 프로그래밍 기교를 사용하여 가까스로 얻은 것이었다. "내가 신경그물망에 대하여 많이 연구하면 할수록 점점 더 우리가 시험할 수 있는 것과 내가 보고자 하는 것 사이의 거리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또 다른 방법은 그물망을 수학적으로 분석하고자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정말로 어려웠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가 시도해 보았던 어떤 방법도 벽에 부닥쳤다. 그가 대부분의 물리 전공자들보다 훨씬 많은 수학 강의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헤브의 그물망은 MIT 에서 배운 수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물망에 대하여 좀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한 열쇠가 수학에 있다고 생각했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1952 년 가을 IBM 의 축복 속에 조그마한 퇴직 선물을 가지고 - 한 달에 100 시간씩 빅 블루 (Big Blue (IBM 의 별명 = 역주) 를 위해 자문을 계속한다는 계약 - 그는 앤아버에 있는 미시간 대학교 수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다시 그는 행운을 붙잡았다. 물론 미시간은 어떤 조건을 따지더라도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당시 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수학과 중의 하나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홀랜드의 결정에 중요하게 작용했던 미식 축구팀이 있었다. "빅텐 (Big Ten) (미국 중부 10 개 대학이 결성한 스포츠 리그 = 역주) 의 미식 경기가 있는 주말에는 10 만 명의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왔고 나는 아직 그 분위기를 즐겁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미시간에서의 진짜 행운은 홀랜드가 아서 벅스 (Arthur Burks) 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는 결코 보통의 철학자가 아니었다. 벅스는 찰스 피어스 (Charles Pierce) 의 실용주의 철학에 대한 전문가로서, 1941 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당시 그의 분야에서 교수 직업을 찾을 일말의 희망도 없었다. 그래서 이듬해 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무어 스쿨에서 10 주일간 수업을 들었고, 이것을 계기로 그는 전쟁중에 필요한 공학도로 변신하게 되었다. 그에게 그것은 잘된 선택이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1943 년에 그는 무어 스쿨의 일급 비밀이자 최초의 전기공학적 컴퓨터인 ENIAC 에 참여하게 되었다. 거기서 그는 전설적인 헝가리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을 만나게 되었으며, 노이만은 프린스턴의 고등 연구소로부터 자주 그 곳을 방문하여 프로젝트에 대한 자문을 해주었다. 폰 노이만의 지도 아래 벅스는 ENIAC 의 계승자인 EDVAC 을 고안했다. EDVAC 은 명령어들을 프로그램의 형태로 전자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최초의 컴퓨터였다. 사실 폰 노이만, 벅스 그리고 수학자 허먼 골드스타인 (Herman Goldstine) 이 공저한 1946 년의 논문 <전자 전산 기구의 논리적 설계에 대한 초고> 는 현재 현대 전산학의 주춧돌로 인정받고 있다. 그 곳에서 세 사람은 정확한 논리적 형태로 프로그램의 개념을 정의했고, 일반 목적의 컴퓨터가 컴퓨터의 기억장치로부터 각 명령을 불러오고 그것을 중앙처리 장치 (CPU) 에서 수행하며 그리고 결과를 다시 기억장치에 저장하는 계속적인 순환 과정을 통해 어떻게 그런 프로그램을 수행하는지 보여 주었다. 이런 '폰 노이만 구조' 는 아직도 오늘날 거의 대부분 컴퓨터의 기반이 되고 있다.

홀랜드가 1950 년대 중반 미시간 대학교에서 만났을 무렵의 벅스는 날씬하고 다소 기품 있는 사람으로, 한때 벅스의 꿈이었던 장관의 모습과 외관상 매우 흡사했다 (오늘날까지도 벅스는 격식을 차리지 않는 것으로 이름 높은 미시간 캠퍼스에 양복과 넥타이를 하지 않고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벅스는 따뜻한 친구이자 훌륭한 지도자였다. 그는 곧 홀랜드를 자신의 컴퓨터 논리 모임에 데려갔다. 그 모임은 컴퓨터 언어를 공부하는 동아리였으며, 스위치를 가진 그물망들에 대한 정리들을 증명하고 일반적으로 이 새로운 기구들을 철저하고 근본적인 단계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벅스는 홀랜드를 그 자신이 조직하고 있는 새로운 박사학위 프로그램에 초대했으며, 그 프로그램은 가능한 한 넓은 영역에서 컴퓨터와 정보처리학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을 밝혀내려는 목적을 가진 프로그램이었다. 곧 통신 과학으로 알려지게 된 이 프로그램은 결국 1967 년에 컴퓨터 및 통신 과학이라고 알려진 완전한 전산학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벅스는 자신이 단순히 1954 년 암으로 사망한 폰 노이만의 유산을 계승하여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폰 노이만은 컴퓨터의 사용에 대하여 두 가지를 생각했다" 라고 그는 말한다. 한 가지는 일반적인 목적의 계산 장치이고, 이것이 그들이 컴퓨터를 발명한 목적이었다. "다른 한 가지는 자연적이건 인공적이건 간에 오토마타 (automata) 에 대한 일반적 이론의 기초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벅스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정규적인 절차를 따라가기를 거부하는 정신의 학생들, 특히 홀랜드와 같이 뛰어난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바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홀랜드는 벅스의 이런 생각을 좋아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정보 이론과 같은 기존 과목들은 물론 생물학, 언어학, 심리학 등과 같은 분야에서 매우 어려운 과목들을 개발하려는 것이었다" 라고 그는 말한다. "각 주제에 맞는 교수들이 과목을 가르치고 그래서 학생들은 이러한 과목들과 컴퓨터 모형 간의 연계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과목들을 수강한 학생들은 그 분야의 근본적인 것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인 것들이란 그 분야의 문제들과 해결되지 않은 것들, 또 그러한 것들이 왜 어려운가와 컴퓨터가 무엇을 도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들이다. 단순히 피상적인 이해만을 얻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홀랜드는 완전히 수학에 환멸을 느껴 가고 있었기 때문에 한층 더 그 개념을 좋아했다. 제 2 차 세계 대전 이후 대부분의 수학 그룹과 같이 미시간의 수학과는 거의 비인간적인 순수와 추상의 연구를 부르짖는 프랑스 부르바키 (Bourbaki) 스쿨이 좇는 이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부르바키의 기준에 의하면, 공리나 정리 뒤에 숨겨져 있는 개념을 그림 그리는 것과 같이 현실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서투른 짓이라고까지 생각되었다. "그 생각은 수학이 어떠한 해석으로부터도 유리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생각은 수학이 어떠한 해석으로부터도 유리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수학을 택한 이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수학을 사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벅스가 통신 과학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는게 어떠냐고 제안했을 때 홀랜드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거의 완성된 수학 논문을 팽개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훨씬 더 가까운 영역에서 논문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라고 그는 말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마지막으로 결정한 논문 주제인 '논리적 그물의 순환' 은 켜고 끄는 스위치들의 그물망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분석이었다. 그 속에서 그는 젊은 의학도인 스튜어트 코프먼이 4 년 후에 버클리에서 독자적으로 증명한 것과 동일한 다수의 정리들을 증명했다). 결국 홀랜드는 1959 년 통신 과학 분야에서 처음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무 것도 홀랜드를 처음 미시간으로 불러들였던 폭 넓은 문제들로부터 그의 관심을 돌려 놓지는 못했다. 아니 그 정반대였다. 벅스의 통신과학 프로그램은 이러한 질문들이 더욱 무성해지는 주위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발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사고란 무엇인가? 어떻게 그것이 작동하는가? 그것의 법칙들은 무엇인가? 계가 적응한다는 것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홀랜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간단히 적어 놓고는 'Glasperlenspiel 1', 'Glasperlenspiel 2' 등의 표식을 붙인 서류철들 속에 체계적으로 정리해 두었다.

Glas …… 무어라고? "Das Glasperlenspiel" 하고 그는 웃는다. 그것은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헤르만 헤세 (Herman Hesse) 가 1943 년 출간한 마지막 소설의 제목이었다. 홀랜드는 어느 날 룸메이트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더미 속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독일어로 쓰여진 제목은 문자 그대로 '유리알 유희' 였지만 영어로 번역되면서 그 책은 보통 '게임의 장인' 또는 그에 해당하는 라틴어로 'Magister Ludi' 로 알려져 있다. 먼 미래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원래 음악가들이 즐기던 게임을 기술한다. 그 아이디어는 일종의 주판에 유리알들로 주제 음악을 설정하고는, 유리알들을 앞뒤로 움직이며 주제 음악에 대한 모든 종류의 대위선율과 변주곡들을 짜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게임은 간단한 초기 상태로부터 신부같은 일단의 힘 있는 지식인들에 의해 제어되는 심오하게 복잡한 도구 (악기) 로 진화했다. "굉장한 것은 어떠한 주제들의 복합도 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 "점성술로부터 조금, 중국 역사로부터 조금 또 수학으로부터 조금을 복합하여 한 음악의 주제처럼 그들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헤세는 어떻게 이것이 이루어지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홀랜드는 개의치 않았다. 그가 알고 있던 그 무엇보다도 유리알 게임은 장기에 대하여, 과학에 대하여, 컴퓨터에 대하여 그리고 뇌에 대하여 그가 느끼는 매력의 핵심을 갖고 있었다. 어떤 비유적인 측면에서 그 게임은 그가 일생을 찾아 헤매던 것이었다. "나는 도처에서 주제를 택하고 싶었으며 그것들을 한데 모았을 때 무엇이 발현하는지 보고 싶었다" 라고 그는 말한다.

'Glasperlenspiel' 서류철에 담겨진 아이디어들에 특별한 영향을 미친 또 하나는 홀랜드가 우연히 수학과 도서관의 장서에서 이것 저것 고르다가 발견한 한 권의 책이었다. 피셔 (R. A. Fisher) 가 1929 년 유전학에 대해서 쓴 획기적인 저서 《자연선택의 유전학적 이론 (The Genetical Theory of Natural Selection)》 이었다.

홀랜드는 곧 매료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유전학과 진화론에 대한 독서를 늘 즐겼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부모로부터의 유전자가 새로운 세대에서 섞여 얼마나 자주 붉은 눈이나 검은 머리칼과 같은 특징들이 후손들에게 나타나는지 계산해 보곤 했다. "나는 '야, 이것은 정말로 멋지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피셔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이 분야에서 단순한 대수이상의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 사실 피셔는 확률 이론과 더불어 미적분학보다 더 복잡한 아이디어들을 사용했다. 그의 책은 생물학자들에게 인구의 유전자 분포가 어떻게 자연선택의 결과로 바뀌는가에 대한 조심스러운 수학적 분석을 처음으로 제공했다. 그리고 진화적 변화에 대한 현대의 '신 다윈' 이론의 바탕을 제공했다. 그것은 사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진화 동역학 이론 분야에선 아직도 거의 최첨단 이론으로 남아 있다.

홀랜드는 그 책을 탐독했다. "유전학에서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서 미적분과 미분 방정식 그리고 내가 수학 강의에서 배운 모든 지식들을 총동원해 본다는 사실은 정말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놀라운 것이었다. 일단 그것을 알아낸 이상 나는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것을 갖고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 속 깊이 여러 생각들을 하면서 노트에 적어 놓는 일을 계속했다."

그러나 홀랜드가 피셔의 수학에 감탄하는 만큼이나 피셔가 수학을 사용한 방법에는 그를 괴롭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에 대해 점점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은 그를 매우 괴롭히기 시작했다.

한 예로, 자연선택에 대한 피셔의 분석은 전반적으로 한 주어진 시간에 단지 한 개의 유전자 진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마치 유기체를 생존시키기 위해 각 유전자들이 다른 모든 유전자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다루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피셔는 유전자의 행동이 완전히 선형적이라고 가정했다. "나는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초록색 눈을 발현시키는 유전자 하나하나는 눈 자체의 구조를 결정하는 수십 또는 수백 개의 유전자들이 없다면 별로 가치가 없다. 각 유전자는 어떤 팀의 일원으로서 작동하여야 함을 홀랜드는 깨달았다. 그러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이론은 줄거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빠뜨린 이론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헤브가 정신분야에서 말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브의 세포집단들은 그것이 사고의 기본 단위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유전자들과 엇비슷했다. 그러나 세포 집단들은 따로따로 떨어져 있으면 거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음성, 섬광, 근육 경련 - 그들이 의미를 갖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 연결되어 더 큰 개념들과 더 복잡한 행동들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또 다른 예로, 진화를 통해 안정한 평형으로 도달하게 된다는 피셔의 계속된 주장이 홀랜드를 괴롭혔다. 안정한 평형이란 주어진 종이 최적의 크기, 최적의 날카로운 이빨, 생존과 번식의 최적 상태를 얻은 경우를 의미한다. 피셔의 논리는 근본적으로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적 평형을 정의하는 데 사용한 것과 동일했다. 일단 한 종이 최적의 상태에 도달하면 어떤 돌연변이도 더 나은 상태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자연선택은 더 이상의 변화를 야기시키지 못한다고 그는 말했다. "피셔의 논리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 "글쎄 계는 이런 이런 과정 때문에 하디 - 와인버그 평형으로 흘러 들어간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는 진화로 들리지 않았다."

그는 돌아가서 다윈과 헤브를 다시 읽었다. 아니다, 피셔의 평형에 대한 개념은 전혀 진화처럼 들리지 않았다. 피셔는 원초적인 영원한 완벽함을 얻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러나 다윈에게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든 것들이 점점 더 폭이 넓어지고 보다 더 다양해진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피셔의 수학은 그러한 점을 다루지 못했다." 그리고 진화 대신에 학습을 이야기한 헤브에게서도 동일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신은 세상과의 경험을 얻음에 따라 점점 풍부해지고 더욱 기묘해지며 놀라워진다.

홀랜드에게 진화와 학습은 마치 게임과 비슷하게 보였다. 양쪽 다 주어진 환경에 대항하여 활동하며 계속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충분하게 얻어 내려는 인자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진화를 통해 얻는 것은 문자 그대로 생존이며, 인자가 그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물려 줄 기회를 얻는 것이다. 학습을 통해 얻는 것은 음식이나 기쁨 또는 성취감과 같은 종류의 보상이다. 그러나 어느 방법을 통해서나 인자들이 그들의 솜씨를 개선하는데 필요한 되먹임을 제공한다. 만일 그들이 결국 '적응' 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어떻게든 잘 보상해 주는 전략들을 계속 추구해야 할 것이며 다른 전략들은 소멸시켜야 할 것이다.

홀랜드는 아트 새뮤얼의 체커 프로그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되먹임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경험을 쌓고 상대방에 대하여 더 배움에 따라 전술을 끊임없이 개발해 나갔다. 홀랜드는 새뮤얼의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이 얼마나 식견이 있었는지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 게임과 바라보는 관점이 얼마나 식견이 있었는지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 게임과 이런 식의 비유를 하는 것은 어떤 적응계에 대해서도 가능할 것 같았다. 경제에서는 그 보상이 돈으로 주어지고, 정치에서는 선거에서의 득표로 주어지며 등등이다. 어떤 단계에서는 모든 적응계들이 근본적으로 동등하며, 이는 모든 적응계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광대한 가능성의 공간을 갖고 있는 체커나 장기와 근본적으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인자는 게임을 더 잘 해내는 것을 배울 수 있으며, 바로 그것이 적응이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 최적의 안정된 평형점을 찾을 확률은 우리가 장기를 완벽하게 풀어 낼 확률만큼이나 극미하다.

그에게 '평형' 이 진화로 들리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것은 14 세 먹은 세 소년이 월리 퍼모트의 지하실 바닥에서 벌였던 전쟁 게임같이 들리지도 않았다. 평형은 종착역을 의미한다. 그러나 홀랜드에게는 진화의 본질은 과정에 있는 것이었고 끝없이 펼쳐지는 경이로움에 있었다. "내가 이해하고자 했던 것들, 내가 호기심을 갖고 있던 것들, 이해하고 나면 내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점점 더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평형은 그들 중 어느 것에도 중요한 부분이 되지 못했다."

홀랜드는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할 때까지 이러한 것들을 모두 뒤로 미뤄 놓아야만 했다. 그러나 1959 년 졸업을 한 후 - 벅스는 그를 박사 후 연구원으로서 컴퓨터 논리 모임에 남아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 그는 완벽하고 엄밀한 적응 이론을 목표로 설정했다. "만일 유전자의 적응을 장기적인 적응으로 또한 신경계를 단기적인 것으로 바라본다면, 일반적인 이론틀은 동일한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처음에 갖고 있던 아이디어들을 정돈해 놓기 위해 그 주제에 대한 일종의 선언문 같은 것을 쓰기조차 하였다. 그것은 그가 1961 년 7 월에 돌린 '논리적 적응계 이론에 대한 약식 서술' 이라는 제목이 붙은 48 쪽 분량의 기술 보고서였다.

그는 또한 컴퓨터 논리 모임의 많은 동료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것을 눈치 채게 되었다. 그것은 정확하게 말해서 적대감의 표현은 아니었다. 그저 몇몇 사람들에게는 이 일반적 적응 이론이 기묘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홀랜드가 무언가 좀 더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쏟을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미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었다" 라고 홀랜드는 말하면서, 그도 동료들의 입장이라면 회의적이었을 것이라고 기꺼이 인정한다. "내가 하고 있던 일은 잘 알려진 어떤 명백한 범주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확하게 하드웨어의 문제도 아니었으며 정확하게 소프트웨어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인공지능의 문제도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어떤 기존의 기준을 사용할 수도 없었고, 따라서 어떤 판정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벅스에게는 많은 물증이 필요치 않았다. "나는 존을 지지했다" 라고 그는 말한다. "존이 하는 일은 컴퓨터 논리 모임이 추구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단의 논리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매우 보수적인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것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말했으며, 그들의 일만큼이나 연구비를 따는 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프로그램의 창시자이며 지도자로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결국 벅스가 승리했으며, 회의론자들은 점차로 프로그램에서 떨어져 나갔다. 1964 년, 벅스의 열렬한 후원으로 홀랜드는 종신 재직권을 받았다. "여러 해 동안 벅스는 나의 방패가 되어 주었으며 나는 그에게 많은 빚을 졌다" 라고 그는 말한다.

사실 홀랜드는 벅스의 후원 아래 자신의 적응 이론을 최대한도로 밀고 나가는 데 필요한 안전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1962 년까지 모든 다른 연구 계획을 제쳐 두고 그것에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그는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여러 개의 유전자들에 근거를 둔 자연선택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이것은 단지 피셔의 독립적 유전자 가정이 그 책 속에 있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를 더 괴롭혔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수의 유전자 문제로 옮겨 가는 것이 또한 평형이라는 망령에서 벗어나는 열쇠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사심 없이 피셔의 관점을 피력한다면, 독립적인 유전자에 대해서는 평형이 실제로 이치에 닿는 것이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예컨대 대략 1000 개의 유전자를 갖는 해초만큼 복잡한 종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간단하게 각 유전자는 두 가지 형태 - 초록색과 갈색, 구겨진 잎과 매끄러운 잎, 기타 등등 - 로 나타난다고 생각하자. 얼마나 많은 시도 끝에 자연선택에 의하여 해초가 최적의 상태를 이룰 수 있는 유전자군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만일 모든 유전자가 정말로 독립적이라면, 각 유전자에 대하여 어떤 형태가 더 나은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두 번의 시도면 족할 것이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러면 1000 개의 유전자 각각에 대하여 두 번의 시도를 행하여야 한다. 그래서 전부 2000 번의 시도가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사실 이 숫자는 상대적으로 작은 수이기 때문에 이 해초가 최적의 상태를 매우 빨리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으며, 종은 정말로 진화적인 평형에 다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제 각 유전자가 서로 독립적이 아니라고 가정하면, 1000 개의 유전자를 갖는 해초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이 경우 최적 상태를 발견하기 위해서 자연선택은 유전자들의 가능한 모든 결합들을 조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각 결합은 서로 다른 상태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가능한 결합들의 수를 계산해 보면, 그 수는 2 곱하기 1000 이 아니라 2 를 1000 번 곱한 수이다. 그것은 21000 또는 대략 10300 이고, 이 수는 너무나 커서 장기에서 가능한 수들의 총수도 이 수에 비해 극미하게 보인다. "진화는 그렇게 많은 일을 시도하고자 엄두를 낼 수조차 없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컴퓨터가 생기더라도 그것을 해낼 수 없다." 사실 관측될 수 있는 우주의 각 소립자들이 우주 대폭발 이후 계속 복잡하고 긴 계산을 수행해 온 슈퍼컴퓨터들이라고 할지라도, 전혀 가능성이 없다. 그것이 단순히 해초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인간과 다른 포유 동물들은 대략 그보다 100 배 많은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이런 유전자들은 두 가지 형태 이상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니 단 하나밖에 없는 최적의 장소를 발견할 희망이 전혀 없이, 광대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탐험의 길을 걷는 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진화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개선을 모색하는 것이지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그가 1962 년에 해답을 얻고자 했던 바로 그 문제, 어떻게였다. 진화를 다수의 유전자들로 이해한다는 것은 피셔의 일변수 방정식을 다변수 방정식으로 간단하게 대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홀랜드가 알아내고자 했던 것은 어떻게 진화가 이렇게 광대한 가능성의 공간에서 모든 구석구석을 탐사하지도 않고 유용한 유전자의 결합을 찾아내는가 하는 것이었다.

유사한 가능성들의 탐사는 이미 주된 인공지능 연구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었다. 예컨대 피츠버그에 있는 카네기 텍 (지금은 카네기 멜론 대학교) 에서 알렌 뉴얼 (Allen Newell) 과 허버트 사이먼 (Herbert Simon) 은 1950 년대 중반 이래로 인간의 문제 해결 (problem solving) 에 대한 이정표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실험 대상인들은 장기를 포함한 다양한 퍼즐 및 게임을 고심하며 풀어 나가면서 그들의 생각을 말로써 표현했고, 뉴얼과 사이먼은 이를 분석하여 문제 해결은 언제나 방대한 '문제 공간' 을 통해 단계적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찾아 나가는 정신적인 탐험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고 결론 지었다. 그리고 각 걸음의 방향은 경험에 의해 "이런 상황 속에서는 이런 방향이 괜찮다" 는 식으로 대충 정해진다. 그들의 이론을 일반적 문제 해결사 (General Problem Solver) 라는 프로그램으로 구축함으로써 그 프로그램을 그런 퍼즐과 게임에 적용함으로써, 뉴얼과 사이먼은 문제 공간 방법으로 인간 스타일의 추리를 매우 잘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사실 경험적 탐험법이라는 개념은 이미 인공지능 분야에서 지배적인 통념으로 그 위치를 굳혀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일반적 문제 해결사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 새로운 분야의 역사 속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홀랜드는 의심스러웠다. 뉴얼과 사이먼의 문제 공간이나 경험적 탐험법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실 박사학위를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그 두 사람을 인공지능의 주요한 세미나에 모셔 왔다. 그 후 그와 뉴얼은 친구가 되었으며 지적인 동반자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뉴얼 - 사이먼 방법이 그가 생물학적 진화를 연구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진화에서 중요한 점은 경험적 법칙이라는 것이 전혀 없으며 어떤 종류의 길잡이도 없다는 것이다. 차기 세대는 돌연변이를 통해서 또 이성간에 유전자들이 무작위적으로 뒤섞여짐을 통해서 가능성의 공간을 탐험한다. 간단히 말하여 시행 착오에 의하여 탐험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렇게 계승되는 세대는 탐험을 단계적으로 수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능성의 공간을 병렬적으로 탐험한다. 즉, 그들 각각은 조금씩 다른 유전자군을 가지고 있으며 조금씩 다른 공간 영역을 탐험한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비록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리지만 진화는 정신 활동 못지 않게 창조적이고 놀라운 것들을 만들어 낸다. 홀랜드의 관점에서 보면 이 사실은 적응에 대한 실제로 통일된 원리가 좀 더 깊은 수준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과연 어디에서?

처음에 그가 가진 직관적인 아이디어는 유전자들의 어떤 집합은 함께 일을 잘 해내며 결 맞고 자체강화적인 전체를 이루어 낸다는 것뿐이었다. 그 예로 포도당 분자들로부터 에너지를 추출하는 방법을 세포에게 가르쳐 주는 유전자 덩어리 (cluster) 나 세포 분열을 제어하는 유전자 덩어리, 또 어떤 조직을 형성하기 위해 어떤 어떤 세포들이 결합해야 하는지를 관장하는 유전자 덩어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홀랜드는 또한 뇌에 대한 헤브의 이론에서 그 유사성을 볼 수 있었다. 뇌에서 공명하는 세포 집단들의 어떤 집합은 '자동차' 와 같은 결 맞는 개념이나 팔을 드는 행동과 같은 조정된 운동을 이루어 낸다.

그러나 홀랜드가 결 맞고 자체강화적인 덩어리들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미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거의 모든 곳에서 유사한 예를 찾을 수 있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의 서브루틴들. 관료 정치의 행정 조직들. 장기에서 더 큰 전략적 차원에서 졸 같은 것을 희생시키는 첫 수들. 더군다나 유기체의 모든 단계에서 예를 찾을 수 있었다. 만일 한 덩어리가 충분하게 결 맞고 안정적이면, 그것은 좀 더 큰 덩어리에 대한 기초 단위가 될 수 있다. 세포들은 조직을 만들고 조직들은 기관을 만들며 기관들은 유기체를 만들고 유기체들은 생태계를 만들며 기타 등등이다. 홀랜드는 그것이 실제로 '발현' 이라는 것이 뜻하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단계에서의 기초 단위들이 모여서 좀 더 높은 단계의 새로운 기초 단위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만물의 근본적인 조직 원리처럼 보였다.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어떤 복잡한 적응계도 확실히 그런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왜? 사물의 이런 계층적인 기초 단위 구조는 마치 공기처럼 흔해 빠진 것이다. 그것은 너무도 보편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에 대하여 정말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너무나도 설명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 이 세상은 이런 식의 구조를 갖고 있는가?

글쎄. 실제로는 무수한 이유가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은 전체를 서브루틴들로 잘게 부수도록 배운다. 왜냐하면 작고 간단한 문제들이 크고 복잡한 문제들보다 풀기 쉽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할 후 정복 (divide and conquer) 이라는 간단한 고래의 원리이다. 고래나 레드우드 (red wood) 나무와 같은 커다란 생물들은 수조 개의 작은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세포들이 먼저 생겨났기 때문이다. 큰 식물들이나 동물들이 대략 5 억 7000 만 년 전 지구에 나타났을 당시에는 자연선택에 의해서 이미 존재했던 단세포 생물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 백지 상태에서 크고 새로운 원형질 덩어리를 만드는 것보다 분명히 쉬웠을 것이다. 제너럴 모터스는 무수한 부와 과로 조직되어 있으며, 이는 50 만 명의 직원들이 각자 직접 보고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직접 보고를 받으려면 하루에 24 시간도 모자랄 것이다. 사실 허버트 사이먼은 1940 년대와 50 년대에 사업 조직화에 대한 자신의 연구에서, 잘 설계된 (정말로 잘 설계된) 계급 조직은 아무도 회의나 메모 때문에 질리지 않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만드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홀랜드는 생각하면 할수록 가장 중요한 이유가 더욱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고 확신했다. 그것은 계층적인 기초 단위 구조가 계의 학습력과 진화 능력 또한 적응력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빨간색, 자동차, 도로와 같은 개념들을 포함하는 인식력 있는 기초단위들을 생각해 보자. 일단 이러한 기초 단위 집합이 잡혀지고 개량되며 경험을 통하여 완벽하게 결함이 시정되면, 그 집합은 일반적으로 많은 새로운 개념들을 - 예컨대 '도로 한편에 서 있는 빨간색 사브 (Saab) 자동차' - 형성하기 위해 적응하고 재결합한다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것은 백지 상태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데 있어 확실히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 사실은 일반적으로 적응에 대한 전체적이고 새로운 작동 원리를 제공한다. 적응계는 거대한 가능성의 공간을 단계적으로 움직여 가는 대신에 그 기초 단위들을 뒤섞을 수 있으며 그로 인해 큰 도약을 할 수 있다.

홀랜드는 이에 대해 경찰 화가가 근무 시간에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방식을 예로 들어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목격자의 진술에 부합하는 용의자의 얼굴을 그려 내야 한다. 먼저 얼굴을 머리결, 이마, 눈, 코 등등에서 턱까지 예컨대 열 개의 기초 단위로 나눈다. 그리고 화가는 열개의 다른 코, 열 개의 다른 머리결 등등의 각각에 대하여 다양한 선택을 가지는 여러 장의 견본들을 갖고 있다. 이리하여 총 100 개의 견본들을 가진다고 홀랜드는 말한다. 화가는 이러한 견본들을 가지고 목격자와 이야기를 하며 적합한 부분들을 모아 용의자의 모습을 매우 빨리 스케치할 수 있다. 물론 그 화가가 그런 방법으로 모든 가능한 얼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매우 근접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 100 개의 견본들을 섞음으로써 미술가는 총 100 억 개의 다른 얼굴들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이는 가능성의 공간에서 광범위하게 표본들을 뽑아 내는 것이 된다. "그래서 만일 내가 기초 단위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과정을 알아낸다면, 조합론은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비교적 적은 수의 기초 단위들을 가지고 엄청나게 많은 복잡한 것들을 기술할 수 있게 된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는 바로 이것이 다수의 유전자 문제를 푸는 열쇠임을 깨달았다. "진화에서 일어나는 시행 착오는 단순히 하나의 우량한 동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량한 기초 단위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조합하여 많은 우량한 동물들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자세하고 엄밀하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는 그 첫번째 단계로서 그 과정을 설명해 줄 뿐 아니라 그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문제점들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될 컴퓨터 모형, '유전자 알고리듬' 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미시간 대학교 전산학 관계 사람들은 홀랜드가 컴퓨터 출력지 묶음을 한 손 가득히 가지고 나타나는 것을 누구나 한 번씩은 본 적이 있었다.

"이걸 봐요!" 그는 알아볼 수도 없는 16 진법의 숫자들로 가득 채워진 종이의 가운데를 열심히 가리키면서 말하곤 했다.

"오, CCB1095E. 그것 멋있네요, 존."

"아니, 아니! 당신은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아세요!?"

실제로 1960 년대 초에는 그게 무엇인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회의적인 그의 동료들은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는 옳았다. 즉, 홀랜드가 마침내 완성한 유전자 알고리듬은 기묘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제외하고는, 사실 그것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라 할 수 없었다. 내부 작동에 있어서 그것은 오히려 시늉낸 생태계와 비슷했다. 전체 모든 프로그램들이 서로 경쟁하고 성을 가지며 세대를 거쳐 재생산되며, 프로그래머가 설정하여 주는 문제가 어떤 것이건 그 해를 향하여 진화해 간다.

이것은 그 당시 일반적 방법으로 짜여진 프로그램들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홀랜드는 동료들에게 그것이 왜 의미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가 하는 일을 매우 실용적인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들에게 "우리는 보통 컴퓨터 프로그램이란 포트란이나 리스프 (LISP) 와 같은 특별한 프로그래밍 언어로 쓰여진 일련의 명령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라고 말했다. 사실 프로그래밍 기술의 전부는 정확히 올바른 명령어들을 정확히 올바른 순서로 확실하게 쓰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컴퓨터가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그 방법은 분명히 프로그래밍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컴퓨터가 해야 할 일을 잘 모른다고 가정해 보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복잡한 수학적 함수의 최대값을 구하려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 함수는 이익금, 공장 생산량, 투표수 또는 다른 어떤 것도 의미할 수 있다. 세상은 최대화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정말로 프로그래머들은 최대화를 만들어 주는 수많은 정교한 컴퓨터 알고리듬을 고안해왔다. 그러나 그 중 최고의 알고리듬도 모든 상황하에서 늘 올바른 최대 값을 준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어떤 단계에서는 그들도 항상 구식의 시행 착오, 즉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면, 만일 어떻든 시행 착오에 의존할 것이라면, 아마도 시행 착오에 대한 자연의 방법인 자연선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일 거라고 홀랜드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신이 잘 모르는 문제를 수행하는 프로그램을 '써 내려고' 하지 말고 프로그램들을 그냥 전개되게 놔둬 보라.

유전자 알고리듬은 그것을 수행하는 한 방법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기 위해 포트란 코드에 대해서는 잊어 버리고 컴퓨터의 내부로 들어가 보자고 홀랜드는 말했다. 컴퓨터 내부에서 프로그램은 1 과 0 의 2 진법 숫자들의 나열로 표현된다. 11010011110001100100010100111011…… 등등. 이러한 형태에서는 프로그램이 염색체와 매우 유사하게 보인다고 그는 말했다. 각 2 진법 숫자는 단일 '유전자' 에 해당된다. 일단 2 진법 숫자 코드를 생물학적 용어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똑같은 방식의 생물학적 비유를 통하여 그것을 진화시킬 수 있다.

첫째, 컴퓨터로 디지털 염색체들을 100 개 정도 만들고 나서, 각각에 많은 무작위적인 변환을 부여한다고 홀랜드는 말했다. 각 염색체는 말하자면 한 떼의 얼룩말 무리 중 개개의 얼룩말에 해당한다 (간단하게 할 목적으로, 또 홀랜드가 원한 것은 진화의 절대적 본질이었기 때문에, 유전자 알고리듬은 발굽이나 위 또는 뇌 같은 지엽적인 것들은 염두에 두지 않았으며, 개개를 한 조각의 DNA 자체로 모형화한다. 더욱이 홀랜드는 실제적인 측면에서 각 디지털 염색체를 수십 개의 자릿수를 갖는 2 진법 숫자보다 더 길게 만들 수는 없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실제로 완전한 규모의 프로그램이라기보다 프로그램 조각들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그의 초기 연구에서는 한 염색체가 단지 한 가지 변수만을 나타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알고리듬의 기본적인 원리를 바꾸지는 않았다).

둘째로, 각 염색체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서 실행시키고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 점수를 매김으로써, 어떤 주어진 문제에 대해 염색체들을 테스트할 수 있다고 홀랜드는 말했다. 생물학적 용어로 말하면, 이 점수는 각각의 '적합성 (fitness)' 을 - 즉, 재생산이 성공할 확률을 - 결정할 것이다. 적합성이 높을수록 그 염색체가 유전자 알고리듬에 의하여 선택되어 자신의 유전자들을 다음 세대로 전해 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셋째로, 재생산하기에 충분히 적합하다고 판단된 개체들을 가지고 성적 재생산을 통하여 다음 세대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홀랜드는 말했다. 나머지는 도태되도록 내 버려 둔다. 물론 실제로는 유전자 알고리듬은 성별 차이, 구혼 의식, 전희, 정자와 난자의 결합 그리고 실제 성적 재생산에 관계된 모든 골치 아픈 것들을 다 제쳐 놓고 유전물질의 골자만을 교환함으로써 새로운 세대를 창출한다. 개략적으로 말하면, 먼저 ABCDEFG 라는 염색체와 abcdefg 라는 염색체로 표현된 한쌍의 개체들을 선택한다. 그러고 나서 각 염색체를 무작위적으로 자르고 잘린 부분들을 서로 교환하여 한 쌍의 다음 세대 염색체인 ABCDefg 와 abcdEFG 를 형성한다 (홀랜드는 이러한 종류의 교환 또는 '교차' 가 실제 염색체들에서 상당히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로부터 이 아이디어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유전자의 성적 교환에 의하여 생성된 후손들은 새로운 세대에서 서로간에 또 그들의 부모들과 경쟁하게 된다고 홀랜드는 말했다. 이것이 유전자 알고리듬이나 다윈의 자연선택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단계이다. 성적 교환이 없다면 후손들은 그 부모들과 동일할 것이고, 그 집단은 정체 상태로 치닫게 될 것이다. 열등한 개체들은 점차로 도태되겠지만 우수한 개체들도 결코 어떤 개선을 보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성적 교환이 있다면 후손들은 그 부모와 비슷하지만 또한 다르며, 때로는 더 우수하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개선된 점들은 집단 전체에 퍼지고 품종을 현저하게 개량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홀랜드는 말했다. 자연선택은 상향 톱니 장치 같은 역할을 한다.

물론 실제 유기체에서는 돌연변이와 유전자 코드의 인쇄 오류에 의해 상당한 변화가 생겨날 수 있다. 사실 유전자 알고리듬에서도 고의로 1 을 0 으로 또는 그 반대로 바꾸어 주는 우연한 돌연변이를 허락한다고 홀랜드는 말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는 유전자 알고리듬의 심장부는 성적 교환이었다. 성을 통해 유전자의 교환은 집단의 변화를 야기시킬 뿐만 아니라 함께 일을 잘 해내고 평균 이상의 적합성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 덩어리들을 - 간단히 말해 기초 단위들을 - 찾아내기 위한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복잡한 함수의 최대값을 찾는 방법을 모색하는 최적화 문제들 중 하나에다 유전자 알고리듬을 적용시켜 보자고 존 홀랜드는 말하였다. 그리고 알고리듬 내부 집단 속에 있는 디지털 염색체들이 11####11#10###10 또는 ##1001###11101## 등과 같이 2 진법 유전자들의 어떤 특수한 패턴들을 가질 때 높은 점수를 얻는다고 가정해 보자 (홀랜드는 0 도 1 도 될 수 있는 유전자를 # 로 표시했다). 이러한 패턴들이 기초 단위의 역할을 한다고 그는 말했다. 아마도 그것들은 함수가 실제로 평균 이상의 높은 값을 갖는 변수들의 영역을 나타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슨 이유이든 간에 이러한 기초 단위들을 포함하는 염색체들은 번창하고 집단 전체에 퍼질 것이며, 이런 기초 단위들을 갖고 있지 않은 염색체들을 대체해 나갈 것이다.

더욱이 디지털 염색체들의 유전 물질이 성적 재생산을 통해 매 세대마다 섞여지기 때문에, 그 집단은 새로운 기초 단위들과 기존 기초 단위들의 새로운 결합들을 항상 맞이하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유전자 알고리듬은 우수한 기초 단위들을 가진 두 배, 세 배로 축복받은 개체들을 매우 신속하게 창출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러한 기초 단위들이 함께 행동할 때 가외로 유리한 점들을 줄 수 있다면, 그들을 갖고 있는 개체들은 전보다 더 신속하게 집단 전체에 퍼질 것이라는 점을 홀랜드는 보일 수 있었다. 결론은 유전자 알고리듬을 통함으로써 주어진 문제의 해에 매우 빨리 접근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해가 무엇인지 미리 전혀 모르고서도 말이다.

홀랜드는 1960 년대 초 이것을 처음 깨달았을 때 느꼈던 짜릿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관객들을 결코 매우 흥분시키지는 못한 것 같았다. 당시 아직 성숙되지 않은 전산학 분야에서 대부분의 그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은 통상적인 프로그래밍의 기초를 다지는 데 만도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느끼고 있었다. 아주 실제적으로 말하면, 프로그램을 진화시킨다는 생각은 다소 무모한 듯하였다. 그러나 홀랜드는 개의치 않았다. 그가 피셔의 '독립적 유전자' 가정을 일반화시키기 위해 일을 시작한 이래, 이것이 바로 그가 계속 찾아 오던 것이었다. 재생산과 교차는 유전자들로 이루어진 기초 단위들이 발현하고 함께 진화하기 위한 원리를 제공하였으며, 개체 집단이 가능성의 공간을 매우 효율적으로 탐험하기 위한 원리도 제공하였다. 1960 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홀랜드는 그가 소위 도해정리/schema theorem 라고 부르는 것을 증명했다. 이 정리는 유전자 알고리듬에 관한 근본적인 정리로서, 재생산, 교차, 돌연변이가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평균 이상의 적합성을 만들어 내는 촘촘한 유전자 덩어리의 수는 지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도해' 는 유전자들의 패턴들을 일반적으로 일컫는 홀랜드의 용어이다).

"결국 도해정리를 만족할 만한 형태로 얻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라고 그는 말한다.

정신의 발현

홀랜드는 '그 책' - 도해정리의 편집, 유전자 알고리듬 그리고 적응에 대한 그의 일반적인 견해 - 을 1, 2 년 내에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사실 10 년이 걸렸다. 어떻든 그는 집필과 연구를 평행되게 계속하면서, 탐구해 볼 새로운 아이디어와 분석해 보고 싶은 이론의 새로운 측면을 항상 발견해 왔다. 그는 몇몇 대학원생에게 유전자 알고리듬이 실제로 최적화 문제들을 해결하는 유용하고도 효율적인 방법임을 보여줄 수 있는 컴퓨터 실험들을 수행하도록 시켰다. 홀랜드는 자신이 적응에 대한 이론과 실습을 전개하고 있다고 느꼈으며, 그것이 세세한 면도 올바르게 설명하고 또 정확도와 엄밀함도 동시에 지니게 되기를 바랐다.

그는 물론 이 일을 해냈다. 1975 년에 발표된 《자연계와 인공계에서의 적응 (Adaptation in Natural and Artificial Systems)》이란 책은 방정식들과 분석결과들로 꽉 차 있었다. 그 책은 학습, 진화 그리고 창조력 사이의 깊은 상호 관계에 대한 20 년간에 걸친 홀랜드의 생각을 요약하고 있었으며, 유전자 알고리듬이 더없이 자세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에 대한 미시간 밖의 보다 넓은 전산학 사회의 반응은 철저한 침묵이었다. 우아하고 구체적이며 입증될 수 있는 알고리듬을 원하는 사람들의 사회에서, 이 유전자 알고리듬은 아직도 너무 이상하게 보였다. 인공지능 사회에서는 약간 긍정적이었다. 그 책은 1 년에 100 ~ 200 부씩 팔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책에 어떤 서평도 대부분 "존은 정말로 뛰어난 사람이지만 …… " 이라는 식의 이야기였다.

물론 홀랜드가 자신의 이론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뛰지 않았음은 인정해야 한다. 홀랜드는 비록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였지만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초대하면 세미나를 해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주요 컨퍼런스에서 유전자 알고리듬에 대해 강력하게 외치지 않았다. 그는 모험 자본가들이 충분히 관심을 보일 만한, 의료 진단과 같은 눈에 띄는 문제들에 그의 유전자 알고리듬을 응용하지 않았다. 그는 유전자 알고리듬을 위한 '연구소' 를 설립하기 위해 큰 연구비를 따오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일본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서 유전자 알고리듬에 대한 방대한 정부 지원이 급히 필요함을 경고하는 대중 서적을 출판하지도 않았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학문적인 자기 선전 게임을 하지 않았다. 그 게임은 그가 하고 싶어하지 않는 유일한 게임인 것 같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그가 이기거나 지는 것에 관심이 없는 듯한 점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그는 아직도 지하실에서 몇몇 친구들과 함께 빈둥대며 시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건 마치 야구 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 라고 그는 말한다. "단지 메이저가 아닌 동네 야구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재미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과학은 언제나 나에게는 많은 재미를 갖다 주었다."

"만일 아무도 내게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면, 매우 낙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그는 덧붙인다. "그러나 내겐 언제나 생각을 주고 받을 만한 똑똑하고 흥미를 가진 대학원생들을 가지는 행운이 따랐다."

정말 그것은 지하실에서 친구들과 논다는 자세의 또 다른 면이었다. 홀랜드는 미시간에서 자신의 학생들과 같이 연구하는 데 많은 정열을 쏟았다. 보통 한 번에 예닐곱 명의 대학원생을 지도하였다. 이것은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숫자였다. 사실 1960 년대 중반부터 그는 평균 1 년에 한명 이상 박사를 배출했다.

"그들 중 몇몇은 정말로 똑똑했기 때문에, 그들과 같이 연구하는 것은 매우 재미있었다" 라고 그는 말한다. 홀랜드는 수많은 교수들이 사실전적으로 대학원생에 의하여 쓰여진 연구 논문을 공동으로 발표함으로써 길다란 논문 목록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아 오면서, 일부러 되도록 간섭하지 않고 지도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가 연구할 방향을 자신이 스스로 정했으며 자기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우리는 일 주일에 한 번씩 테이블에 둘러앉았으며 그들 중 한 사람이 자기의 연구 진전 상황을 설명했고 우리 모두는 그것을 비평했다. 그것은 보통 참가자 모두에게 매우 재미있었다."

1970 년대 중반 홀랜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 교수들과 자유스런 월례 세미나를 개최하기 위해 모임을 시작했다. 진화와 적응과 관계된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주제가 될 수 있는 세미나였다. 그 그룹에는 벅스외에 로버트 액설로드 (Robert Axelrod) 도 참가했는데, 그는 정치학자로서 사람들이 뒤에서 서로를 모략하는 대신에 언제부터 또 왜 서로 협력하게 되는지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또 다른 정치학자인 마이클 코헨 (Michael Cohen) 은 인간 조직체들의 사회 동역학을 전공하였고, 윌리엄 헤밀턴 (William Hamilton) 은 공생, 사회적 행동, 또 다른 형태의 생물학적 협동 작용을 이해하기 위해 액설로드와 함께 일하는 진화생물학자였다.

"코헨이 촉매 역할을 하였다" 라고 홀랜드는 회상한다. 그것은 '적응' 이 발표된 직후였다. 홀랜드의 한 강좌에 앉아 있던 코헨이 어느날 강의가 끝난 후 자신을 소개하고는 "당신은 액설로드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라고 말하였다. 홀랜드는 그렇게 했고, 액설로드를 통하여 해밀턴을 만났다. BACH 그룹 - 벅스, 액설로드, 코헨, 해밀톤 그리고 홀랜드 - 이 곧 결성됐다 (그들은 'K' 자를 짜맞추어 넣어야 할 뻔했다. 그 그룹의 초창기에 그들은 코프먼을 끌어들이려고 노력하였으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빼앗기고 말았다). "우리를 함께 묶을 수 있던 이유는 우리가 모두 매우 강한 수학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우리는 또한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슈들이 어느 특정한 하나의 문제보다 훨씬 광범위하다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정규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으며, 한 사람이 어떤 논문을 발견하면 모두 함께 모여 그것에 대해 토의하곤 했다. 그러면서 많은 타구적인 생각들이 나왔다."

실제로 특별히 홀랜드에 관계되는 것이 있었다. 그 책은 이제 완성되었지만, 그는 그가 하지 못하고 남긴 일들을 BACH 그룹 모임에서 강조했다. 유전자 알고리듬과 도해정리는 진화에 대한 근본적이고 올바른 것을 담고 있었으며, 그는 아직 그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유전자 알고리듬이 제시하는 진화에 대한 골자적인 시각이 너무 골자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유기체' 가 프로그래머에 의하여 고안된 DNA 조각 그 자체인 이론에서,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런 이론이 복잡한 환경 속에서 진화하는 복잡한 유기체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아무 것도 없다. 유전자 알고리듬은 매우 훌륭했지만, 간단히 말해서 그 알고리듬 자체는 적응하는 인자가 되지 못했다.

유전자 알고리듬은 인간 정신에 대한 적응 모형도 아니었다. 그 알고리듬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생물학적으로 고안되었기 때문에, 어떻게 복잡한 개념들이 마음 속에서 자라나고 진화하며 재결합하는지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었다. 홀랜드는 그 사실 때문에 점점 더 좌절감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헤브의 생각을 접한 지 거의 25 년이 지났어도 정신에서의 적응과 자연에서의 적응이 동일한 것의 두 가지 다른 측면이라고 여전히 확신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는 만일 그들이 정말로 동일한 것이라면 동일한 이론에 의하여 기술되어야 한다고 여전히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1970 년대 후반, 홀랜드는 그 이론을 찾아내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기본으로 돌아가 보자. 적응하는 인자는 끊임없이 그를 둘러싼 환경과 게임을 한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본질만을 추출해서 물어 본다면, 게임을 하는 인자들이 생존하고 번창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실제로 일어나야 하는가?

두 가지 일, 즉 예측과 되먹임이라고 홀랜드는 결론 지었다. 그가 IBM 시절과 아트 새뮤얼과 나눈 체커 선수에 대한 이야기에서 추적해 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통찰력이었다.

예측이란 말 그대로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새뮤얼이 그것을 반복해서 지적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체커나 장기에서 좋은 게임을 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좀 확실하지는 않지만 사전 공작을 꾀하는 수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런 수는 나중에 유리한 상황으로 이끈다. 예측은 다가온 기회를 움켜잡을 수 있게 도와 주며, 함정에 빠지지 않게 도움을 준다. 앞을 생각할 수 있는 인자는 그렇지 못한 인자보다 유리하다.

그러나 홀랜드는 예측의 개념은 적어도 기초 단위의 개념만큼이나 미묘하다고 말한다. 예컨대 우리는 세계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모형에 의거해서 인간이 의식적으로 행하는 그 무엇을 일반적으로 예측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구체적인 모형들은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기후 변화에 대한 슈퍼컴퓨터의 시늉내기가 한 예이다. 연방 준비위원회의 경제 전망이나 신설 회사의 사업 계획이 또 다른 예이다. 스톤헨지 (Stonehenge (영국 샐리버리 평원에 있는 석기 시대 후기의 거대한 돌기둥들 = 역주)) 조차도 하나의 모형이다. 원형으로 배열된 돌들은 드루이드 교 (Druid (고대 켈트 족의 종교 = 역주)) 사제들에게 춘분점과 추분점을 예측하게 해주는 엉성하지만 효율적인 컴퓨터였다. 더욱이 그 모형들은 문자 그대로 우리 머리 속에 들어앉아, 구매자가 어떤 소파가 응접실에 잘 어울릴 것인가를 상상해 보거나 소심한 회사원이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볼 때 아주 흔히 사용된다. 사실 우리가 이러한 '정신적 모형' 들을 너무나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심리학자들은 그 정신적 모형들을 모든 의식적 사고의 근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홀랜드에게는 예측의 개념과 모형들이 실제로 의식적 사고 이상으로, 또 뇌의 존재 자체보다 훨씬 더 심오하게 여겨졌다. "모든 복잡한 적응계들은 - 경제, 정신, 유기체 - 세계를 예측할 수 있게 하는 모형들을 구축한다" 라고 그는 선언한다. 박테리아조차도 그렇다. 알려진 바와 같이 많은 종류의 박테리아들은 특별한 효소계를 갖고 있으며, 이 때문에 포도당의 농도가 짙은 부분을 향하여 헤엄쳐 가게 된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그러한 효소들이 박테리아 세계의 한 중요한 관점을 모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 즉, 화합물들이 그 근원으로부터 확산되어 나가며, 거리가 멀어지면서 점점 그 농도가 낮아지게 된다. 그리고 그 효소들은 점점 농도가 높은 곳으로 헤엄쳐 가면 무언가 영양가가 있는 것을 발견하리라는 암시적인 예측을 새기게 된다. "그것은 의식적 모형이나 또는 그러한 종류의 어떤 것도 아니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농도의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유기체를 그렇지 못한 유기체보다 유리하게 만들어 준다."

부왕 나비에 대해서도 유사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부왕은 주황색과 검은색이 두드러진 곤충으로서, 분명히 새들에게는 맛있는 먹잇감이다. 그러나 새들은 그들을 잡아먹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새들은 제왕나비의 맛이 아주 고약해서 그것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알고 있는데, 부왕은 그와 아주 닮은 날개 무늬를 가지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새들이 존재하고 제왕이 존재하며 제왕은 고약한 맛이 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그들 세계의 모형을 부왕의 DNA 가 새기게 된다고 홀랜드는 말했다. 그리고 매일 부왕은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니며 은연중에 그 모형이 옳다는 가정에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있다.

매우 다른 종류의 조직체, 즉 회사에 대해서도 동일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홀랜드는 말한다. 한 제조업체가 평상적으로 예컨대 1 만 개의 부품을 주문받는다고 하자. 평상적인 주문이기 때문에 직원들은 아마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그들은 그저 '표준 작업과정' 이라는 것을 발동시켜 생산하려고 할 것이다. 표준 작업 과정이란 "ABC 라는 상황에서는 XYZ 의 조치를 취하라" 라는 형태의 규칙들의 집합이다. 그러면 박테리아나 부왕처럼, 그러한 규칙들은 회사 세계에 대한 모형과 "ABC 라는 상황에서는 XYZ 의 조치를 취하면 좋은 결과를 얻는다" 는 예측을 새기게 된다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 조치에 따르는 직원들은 그 모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결국 표준 작업과정은 종종 많은 의문이나 질문 없이 기계적으로 가르쳐진다. 그리고 시간이 한동안 지나게 되면, 왜 일이 그런 방법으로 이루어지는지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준 작업 과정이 전체적으로 적용됨에 따라, 그 회사 전체는 마치 모형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처럼 행동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인식적인 영역에서 '기술' 이나 '전문 지식' 이라고 부르는 그 어떤 것도 하나의 암시적 모형이며, 더 자세하게 말하면 신경계에 새겨져서 수년간의 경험에 의하여 정련된 표준 작업 과정들의 한 커다란 연계 집합이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교과서 연습 문제를 경험 있는 물리 교사에게 보여 주면, 그는 초보자가 하듯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공식들을 되는 대로 쓰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정신적 과정은 그에게 거의 언제나 즉시 해로 가는 길을 보여 줄 것이다 : "아! 그것은 에너지 보존에 대한 문제이다." 크리스 에버트 (Chris Evert) 에게 그물너머로 테니스 공을 높이 올려 넘겨 보라. 그녀는 어떻게 할까 결정하는 데 시간을 거의 소비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정신적 과정은 수년간의 경험, 연습, 지도에 의해서 그녀로 하여금 본능적으로 공을 호되게 내리치게 만들 것이다.

홀랜드가 암시적인 전문 지식에 대해 자주 드는 한 예는 거대한 고딕 성당을 창건한 중세 건축가의 기술이다. 그들에게는 힘이나 한계 하중을 계산할 능력이 없었으며, 현대 건축가들이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해낼 재주가 없었다. 현대 물리와 구조 분석은 12 세기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장인으로부터 도제로 전수되어 내려온 표준 작업 과정, 즉 어떤 구조가 버틸 수 있고 어떤 구조가 무너지는가에 대한 감각적인 경험 법칙을 사용하여 높고 둥그런 천장과 육중한 버팀벽들을 건설했다. 그들의 물리적 모형은 완전히 암시적이고 직관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중세의 장인들은 거의 1000 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 건재한 구조를 창조할 수 있었다.

예들은 계속 있다고 홀랜드는 말한다. DNA 자신도 암시적인 모형이다. "우리가 정한 생명체는 우리가 그럴 거라고 예측한 상황 속에서 잘 영위할 것이다" 라고 유전자들은 말할 것이다. 인간의 문화도 인간 세계에 대한 그들의 신념들과 올바른 행동에 대한 규칙들을 암시적으로 정의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신화들과 상징들로 이루어진 암시적인 모형이다. 그런 면에서 새뮤얼의 체커 선수들도 상대방의 경기 운영 스타일에서 얻은 경험으로 다양한 선택에 부과하는 가중치를 변화시킴으로써 만들어 낸 암시적인 모형을 갖고 있었다.

사실 모형과 예측은 도처에 있다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렇다면 모형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어떻게, 자연적이건 인위적이건 간에 어떤 계가 자신의 우주에 대하여 충분히 배워서 미래의 사건을 예견할 수 있는 것인가? '의식' 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대부분의 모형들은 매우 명백하게도 의식적이지 않다. 먹이를 찾는 박테리아를 보라. 박테리아는 뇌조차 갖고 있지 않다. 어떤 경우에도 의문이 남는다. 의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누가 프로그래머를 프로그램하는가?

궁극적으로 대답은 "아무도 없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만일 뒤에 프로그래머가 - '기계 속의 유령' 이 - 숨어 있다고 해도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단지 미스터리를 다른 곳으로 밀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대안이 있다고 홀랜드는 말한다. 환경으로부터의 되먹임이다. 이것이 다윈의 위대한 통찰력이었으며, 인자는 어떠한 초정상적인 지침 없이 그 내부 모형들을 개선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모형들을 시도하여 보고 그들의 예측이 얼마나 잘 실제 세계에서 작동하는지 본 후에 - 경험에서 살아 남는다면 - 다음에는 더 잘 작동하도록 모형들을 수정하는 것이다. 물론 생물학에서는 인자들이 개개의 유기체이며, 되먹임은 자연선택에 의해 일어나고, 모형들의 꾸준한 진보는 진화라고 불린다. 그러나 인식에 있어서 그 과정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인자들이 개개의 유기체이며, 되먹임은 자연선택에 의해 일어나고, 모형들의 꾸준한 진보는 진화라고 불린다. 그러나 인식에 있어서 그 과정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인자들이 개개의 정신이고 되먹임은 교사나 직접적인 경험으로부터 오며, 진보는 학습이라 불린다. 이것은 정말 새뮤얼의 체커 선수에게 일어났던 것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적응하는 인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간에 그것이 속한 세계가 말해 주려고 하는 것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홀랜드는 말한다.

물론 다음 질문은 어떻게였다. 홀랜드는 기본적 개념을 BACH 그룹의 동료들과 충분히 의논했다. 그러나 결국 아이디어를 분명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그는 15 년 전에 유전자 알고리듬을 가지고 했던 것처럼 컴퓨터 시늉내기로 적응하는 인자를 만들어야 했다. 불행하게도 그는 인공지능의 주된 분야에서 1962 년에 비해 77 년에도 별로 도움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분야에 당시 커다란 진보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예컨대 스탠퍼드의 인공지능 그룹은 전문가 시스템으로 알려진 일련의 놀랍도록 효율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즉, 수백 가지의 규칙들을 - 예를 들어 "만일 환자가 박테리아 뇌막염에 걸리고 고열에 시달렸다면, 감염을 일으키는 유기체는 슈도모나스 녹청균 (Pseudomonas aeruginosa) 일 것이다" - 적용함으로써 의사의 전문 지식을 모형화하였다. 그러자 모험 자본가들이 일어서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홀랜드는 응용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가 원한 것은 적응하는 인자에 대한 근본적 이론이었다. 그가 판단하기에는 인공지능에서 지난 20 년간 이루어진 진보는 학습과 환경으로부터의 되먹임과 같은 중요한 문제들을 거의 모두 방치하고 나서 얻어진 대가였다. 그에게는 되먹임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새뮤얼과 몇몇 사람들을 제외한 그 분야의 대다수 사람들은 학습을 나중으로 미룰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프로그램이 언어 이해나 문제 풀이, 또 다른 형태의 추상적 추론과 같은 일과 잘 어우러진 후에나 다룰 일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전문가 시스템 고안자들은 그러한 사실에 당당한 자부심 같은 것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그들은 '지식공학' 이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수개월 동안 관계되는 전문가와 같이 앉아 새로운 전문가 시스템에 필요한 수백 가지 규칙들을 - "이러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저러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공평히 말해 지식공학자들조차도 만일 프로그램이 마치 사람처럼 가르침과 경험에 의하여 그들의 전문 지식을 배울 수만 있다면, 일은 더욱 순조로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이 기존의 소프트웨어보다 훨씬 복잡하거나 골치 아프지 않으면서도 학습을 이행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홀랜드에게는 그것이 바로 정확하게 중요한 요점이었다. 소프트웨어에 어떤 그럴듯한 '학습 기구' 를 장착하는 것으로는 어떤 문제도 풀어 내지 못할 것이었다. 진화가 생물학에 근본인 것처럼, 학습은 인식에 근본이었다. 이 말은 학습이란 처음부터 인식 구조 속에 구축되어 있어야 하며, 끝에 아무렇게나 붙여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홀랜드의 이상은 아직도 헤브의 신경그물망이었다. 거기서는 모든 사고의 자극들이 처음에 그런 사고를 가능하게 했던 연결들을 강화하고 증강시킨다. 사고와 학습은 뇌에서 일어나는 동일한 것의 단지 두 가지 다른 측면이라고 홀랜드는 확신했다. 그는 그의 적응하는 인자에서 그 근본적인 통찰력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홀랜드는 이에 관한 신경그물망 시늉내기를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IBM 701 이 나온 후 4 반세기가 지났어도, 컴퓨터는 아직 모든 것을 갖춘 헤브의 시늉내기를 그가 원하는 규모에서 수행할 만큼 강력해지지 않았다. 사실 신경그물망은 1960 년대에 시각적으로 사물을 구별하는 데 국한된 신경그물망인 '지각자 (perceptron)' 라는 표제 아래 한때 돌풍적인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지각자들은 헤브가 실제로 이야기했던 신경그물망을 극도로 단순화한 모형이었으며, 공명하는 세포 집단 같은 것들은 전혀 이끌어 낼 수 없었다 (그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물을 인식하는 데에도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그러한 이유로 점차 수그러졌다). 홀랜드는 1970 년대 후반에 다시 유행했고 그 이후로 계속해서 많은 관심을 모았던 신경그물망의 새로운 세대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그물망은 지각자보다 다소 더 복잡하다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세포 집단을 설명할 수 없었다. 정말로 대부분의 변형된 모형들은 전혀 공명을 만들어 내지 못하며, 신호는 그물망을 통하여 앞에서 뒤로 단지 한 방향으로만 전달된다. "이러한 연결자 그물망은 자극 - 반응의 행동과 패턴 인식에는 매우 적합하다" 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헤브가 세포 집단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 내부 되먹임을 대체로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그들은 내부 모형들과 관계가 없다."

결국 홀랜드는 그의 시늉내기에서, 적응하는 인자를 양쪽 세계의 최장점을 딴 혼성물로 고안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컴퓨터 효율을 위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문가 시스템에서 유명해진 if ~ then (~ 이라면 ~ 이다) 종류의 규칙들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는 신경그물망의 관점에서 그들을 사용하였다.

어떻든 간에 사실 if ~ then 규칙에는 좋은 점들이 무척 많다고 홀랜드는 말한다. 어느 누구도 전문가 시스템에 대하여 들어 보기 오래 전인 1960 년대 말, 규칙에 기반을 둔 시스템이 카네기 멜론의 앨런 뉴얼과 허버트 사이먼에 의하여 인간의 인식에 대한 일반적 목적의 컴퓨터 모형으로서 제창되었다. 뉴어로가 사이먼은 개개의 규칙을 한 단위 지식이나 한 가지 기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다. 예컨대 "만일 트위티가 새라면, 트위티는 날개를 갖는다" 또는 "상대방의 졸이나 여왕 중 하나를 잡을 수 있다면, 여왕을 잡아라" 등이다. 더욱이 그들은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정보가 이런 방식으로 표현되면, 자동적으로 인식에 대한 멋진 유연성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규칙에 대한 '조건 - 행위' 의 구조는 - "이런 경우라면 저렇게 행동하라." - 포트란이나 파스칼로 쓰여진 서브루틴같이 정해진 순서대로 수행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어진 규칙은 그 조건이 만족될 때만 실제로 적용되고, 그래서 상황에 적절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실제로 일단 하나의 규칙이 발동되면, 그것은 많은 규칙들을 연쇄적으로 수행시킬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 "A 이면 B", "B 이면 C", "C 이면 D", 기타 등등. 결과적으로 이렇게 진행되어 창출되고 당면한 문제에 만게 고쳐진 전체적인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오게 된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얻어진 장난감의 계획적으로 정해진 행동이 바로 우리가 인공지능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더욱이 규칙에 기반을 둔 시스템은 뇌의 신경 구조의 관점으로 볼 때, 많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홀랜드는 말한다. 예컨대 하나의 규칙은 헤브의 한 공명 세포 집단에 상응하는 컴퓨터이다. "헤브의 관점에서 하나의 세포 집단은 만일 이렇고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한동안 높은 비율로 발사할 것이라는 하나의 규칙을 만든다" 라고 그는 말한다. 하나의 규칙이 발동하면 연쇄적으로 다른 규칙들을 발동시키게 만드는 규칙들의 상호 작용은 뇌의 밀도 높은 상호 연결의 자연스런 결과와 흡사하다. "헤브의 각 세포 집단은 1000 에서 1 만 개의 신경 세포들을 포함한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러한 신경 세포는 각각 다른 신경 세포들과 연결해 주는 1000 에서 1 만 개의 시냅시스들을 갖는다. 그래서 각 세포 집단은 다른 많은 세포 집단들과 접촉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세포 집단을 발동시키는 것은 "세포 집단 295834108 이 지금 발동한다!" 라는 메시지를 일종의 내부 게시판에 붙이는 것이고, 그 게시판을 뇌 속의 대부분의 세포 집단들이 보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 메시지가 나타나면 맨 처음 세포 집단에 적절하게 연결된 다른 집단들도 발사를 하고 그들 자신의 메시지를 게시하여,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순환을 야기시킬 것이다.

규칙에 기반을 둔 뉴얼 - 사이먼식 시스템의 내부 구조는 실제로 이런 게시판 비유와 거의 엇비슷하다고 홀랜드는 말한다. 일련의 숫자화된 메시지를 포함하며, 그런 게시판에 상응하는 내부 데이터 구조가 존재한다. 그리고 매우 많은 규칙들이 있으며, 수백에서 수천에 이르는 컴퓨터 코드들이 있다. 시스템이 작동하면, 각 규칙들은 끊임없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자신의 'if' 부분과 일치하는 메시지를 찾는다. 한 규칙이 그러한 메시지를 찾게 되면, 그것은 즉시 자신의 'then' 부분에 의하여 지시된 새로운 숫자화된 메시지를 붙인다. "시스템을 일종의 사무실이라고 생각해 보자"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게시판에는 그 날 해야 할 일들의 메모가 게시되고, 각 규칙은 주어진 메모에 책임이 있는 그 사무실의 각 부서에 해당한다. 매일 아침 각 부서는 책임 맡은 메모들을 수집한다. 저녁이 되면 각 부서는 일한 결과를 적은 메모들은 외부 세계에서 진행되는 일에 대해 시스템이 뒤처지지 않도록 도와 주는 '탐지자 (detector)' 들에 의해 게시된다. 그리고 또 다른 메모들은 그 시스템이 외부 세계에 영향을 미치도록 만드는 서브루틴, 즉 '영향자 (effector)' 들을 작동시킬지 모른다. 탐지자와 영향자는 컴퓨터에서 눈과 근육에 해당된다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래서 원리적으로 규칙에 기반을 둔 시스템은 그것을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쉽게 되먹임을 얻는다. 이것이 주요 필수 조건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홀랜드는 이와 동일한 게시판의 비유를 그 자신의 적응하는 인자의 고안에 사용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난 후 세밀한 부분을 다루게 되자, 그는 곧 다시 관습을 타파하는 사람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기존의 뉴얼 - 사이먼식 방법에서는 예컨대 규칙들과 게시판의 메모들은 둘 다 인간 정신 속의 개념들과 유사하게 만들어진, '새 (BIRD)' 나 '노랑' 같은 상징적 기호들로 쓰여지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 상징적 기호를 사용하는 것은 대부분의 인공지능 연구자들에게 전혀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 이것은 그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표준 노선이었으며, 뉴얼과 사이먼은 그 분야에서 가장 돋보이는 챔피언들이었다. 더구나 그것은 실제로 우리 머리 속에서 진행되는 것의 대부분을 잡아내는 듯하였다. 마치 개념들이 서로 연결되어 심리학자들의 정신 모형으로 합쳐지듯이, 컴퓨터에서의 기호들은 정교한 데이터 구조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복잡한 상황을 나타낼 수 있었다. 이러한 데이터 구조는 마치 정신적 모형들이 사고를 통하여 정신에 의해 개조되고 바뀌는 것처럼, 추리나 문제 풀이와 같이 정신 활동을 흉내 내는 프로그램에 의하여 조작될 수 있었다. 실제로 많은 연구자들처럼 뉴얼 - 사이먼의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러한 종류의 기호 처리 과정이 사고였다.

그러나 홀랜드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기호 처리 과정은 아주 좋은 출발점이었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의식적인 사고 과정을 이해한다는 면에서 진정한 발전이었다." 그러나 기호 그 자체는 너무 유연하지 못해서 아주 많은 것을 빠뜨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B-I-R-D 라는 글자들로 이루어진 데이터 기록이 실제로 그 개념의 미묘하고 변화하는 뉘앙스를 포착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러한 문자들은 외부 세계에 있는 실제 새들과 상호 작용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데도, 그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문제를 접어 두더라도, 이러한 기호적 개념이 처음에 어디서 오는 것인가? 어떻게 그들이 진화하고 자라는 것인가? 어떻게 그들이 환경으로부터 되먹임에 의해 형성되는 것인가?

홀랜드가 볼 때 이런 문제는 인공지능 분야 주류의 학습에 대한 관심 부족 때문인 것 같았다. "종들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모르는 채 종들을 분류하려면 동일한 어려움에 부닥칠 것이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러한 식으로 하면 비교 해부학 같은 것에 대해서는 많이 배울 수 있지만 종국에는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는 아직도 개념들이 헤브의 용어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외부 환경으로부터의 입력에 의해 끊임없이 조절되고 수정되는 보다 심층의 신경 기층으로부터 자라나는 발현하는 구조들로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수증기의 물리학과 화학으로부터 발현하는 구름같이, 개념들은 흐릿하고 변화하며 동력적인 것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재조합하고 그 형태를 변화시킨다. "복잡한 적응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풀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단계들이 발현하는 가이다" 라고 그는 말한다. "만일 바로 아래 단계에서의 법칙들을 무시하면 결코 현 단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홀랜드는 그의 적응하는 인자의 문제에서 발현이라는 의미를 포착하기 위해 규칙들과 메시지들을 의미 있는 기호로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것들은 2 진법 숫자인 1 과 0 의 임의의 배열들이다. 하나의 메시지는 10010100 같은 수열이며, 이는 그의 유전자 알고리듬의 염색체와 매우 흡사하다. 한 규칙을 글로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 "만일 게시판에 1###0#00 의 형태로 쓰여진 메시지가 있으면 (# 는 0 도 1 도 된다), 01110101 의 메시지를 게시하라."

이런 표현은 아주 색달랐기 때문에, 홀랜드는 이런 규칙들을 '분류자 (classifier)' 라는 새 이름으로 불렀다. 그 이유는 if - 조건들이 비트의 특정한 패턴에 따라 메시지들을 분류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홀랜드는 많은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기호에 바탕을 둔 자신들의 프로그램들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이런 추상적인 표현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분류자 시스템 (classifier system) 에서 어떤 메시지의 '의미' 는 그 메시지가 한 분류자로 하여금 다른 분류자를 촉발시키는 방식으로부터 발현하거나, 그 메시지의 몇몇 비트들이 실제 세계를 바라보는 센서 (sensor) 에 의해 직접 쓰여진다는 사실로부터 발현해야만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념들과 정신적 모형들은 분류자들의 자립 덩어리로서 발현하여야 할 것이며, 아마 자체촉매 집합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재조직화할 것이다.

한편 홀랜드는 규칙에 기반을 둔 시스템에서의 중앙 제어에 대한 기존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방법도 생각하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규칙에 바탕을 둔 시스템은 너무 변화하기 쉽기 때문에, 무질서 상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중앙 제어가 필요했다. 무질서 상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중앙 제어가 필요했다. 수백 또는 수천 개의 규칙들은 수없이 많은 메시지들로 가득 찬 게시판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몇 개의 규칙들이 동시에 나서서 누가 다음 메시지를 게시할 것인지 싸우게 될 가능성이 항상 있었다. 그들의 메시지들은 서로 일관성이 전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여왕을 잡아라', '졸을 잡아라' 등), 그들이 모두 다 게시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또는 그들의 메시지들은 완전히 다른 일련의 규칙들을 촉발할지도 모르며, 따라서 전체적으로 전혀 다른 시스템의 행동을 야기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컴퓨터가 정신 분열증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시스템은 한 번에 한 가지의 규칙만이 작동하도록 정교한 '충돌 해결 (conflict resolution)' 전략을 이행한다.

홀랜드는 이런 상의 하달식의 충돌 해결이 확실히 잘못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계가 언제나 미리 최선의 규칙을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도 간단하고 예측 가능한 곳인가? 그럴 리 없다. 만일 시스템에게 미리 무엇을 할 것인가 말해 준다면, 그 시스템을 인공지능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만이다 : 지능은 프로그램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래머에게 있게 된다. 아니, 홀랜드는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제어를 원했다. 그는 그것이 마치 뇌의 신경 기층에서 발현하듯이 밑으로부터 발현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일관성을 찾는 것을 포기하라. 만일 두 분류자가 서로 합의를 보지 못하면, 소프트웨어를 쓴 사람에 의해 미리 만들어진 선택을 하지 말고 그들이 주어진 임무를 얼마나 잘 수행해 왔는가, 즉 수행 능력을 바탕으로 싸우게 내버려 두라.

"인공지능 분야 주류의 견해와는 달리, 나는 경쟁이 일관성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그는 말한다. 일관성은 키메라 (chimera) (사자 머리에 염소 몸뚱이와 뱀 꼬리를 가진 불을 뿜는 괴물 = 역주) 이다. 왜냐하면 복잡한 세계에서는 경험이 일관되리라는 보장이 없기 대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환경에 대항하여 게임을 하는 인자들에게는 경쟁이 영원하다. "더구나 경제학과 생물학에서 수많은 업적들이 있어 왔지만, 아직 우리는 무엇이 경쟁에서 중요한 것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거기에 우리가 이제 막 깊이를 진단하기 시작한 풍부함이 있다. 경쟁이 매우 강력한 협력의 동기를 부여한다는 마술적인 사실을 생각하라. 어떤 선수는 자발적으로 동맹을 만들어 내고, 상호간의 지지를 위하여 서로 공생하는 관계를 추구한다. 그것은 모든 단계에서, 그리고 생물학, 경제학, 정치학으로부터 모든 종류의 복잡한 적응계에서 일어난다. "경쟁과 협력은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깊은 단계에서는 동일한 동전의 앞뒷면이다" 라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경쟁을 포함하기 위해, 홀랜드는 메시지를 게시하는 일을 일종의 경매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의 기본적인 생각은 분류자들을 컴퓨터 명령어로 생각하지 않고,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게시될 가장 우수한 메시지에 대한 가설과 추측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개개의 가설에 그 가능성과 강도에 따라 숫자를 부여함으로써, 입찰의 근거를 주었다. 메시지 게시에 대한 홀랜드의 관점에서도, 각 순환은 이전과 동일하게 시작된다. 모든 분류자는 자기에 맞는 메시지를 찾으려고 게시판을 훑어본다. 그리고 전과 마찬가지로, 그런 메시지를 발견한 분류자들은 일어서서 자신들의 메시지를 게시할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들을 즉시 게시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강도에 비례하는 입찰가를 각각 외칠 것이다. '태양은 내일 아침 동쪽에서 뜰 것이다' 와 같은 굳건한 경험적 바탕을 가진 분류자는 1000 을 걸 것이고, 반면에 '엘비스는 살아 있으며, 왈라왈라 모텔 6 에서 밤마다 나타난다' 와 같은 데에 바탕을 둔 분류자는 단지 1 을 걸 것이다. 시스템은 모든 입찰을 모아, 가장 높은 입찰자에게 가장 높은 승리 확률을 주도록 고안된 추첨으로 일단의 승리자들을 뽑는다. 선택된 분류자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게시할 것이고, 순환은 반복된다.

복잡하다고? 홀랜드는 그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더욱이 경매는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임의의 충돌 해결 전략들을 임의의 가능성 값들로 대치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시스템이 경험으로부터 이러한 가능성 값들을 어떻게든 배울 수 있다고 잠시 가정하면, 경매는 중앙 중재인을 제거하고 홀랜드가 원하던 바로 그것을 주게 된다. 모든 분류자가 이길 수는 없다. 게시판은 거대하지만 무한하지는 않다. 경주에서 언제나 빠른 사람에게만 승리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만일 행운이 따른다면 엘비스조차도 그의 메시지를 게시할 기회를 가질지 모른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시스템의 행동에 대한 제어는 자동적으로 가장 강력하고 가장 가능성이 있는 가설들에게 주어지며, 엉뚱한 가설들은 시스템에 약간의 자발성을 부여하기에 충분할 만큼만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런 가설들이 서로 일관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위기가 아니고 기회이며, 시스템이 경험으로부터 어느 것이 더 가능성이 있는지를 배우는 기회가 된다.

그래서 다시금 학습으로 되돌아왔다. 어떻게 분류자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자신의 가능성 값을 얻어내게 될까?

홀랜드에게 해답은 자명했다. 헤브식의 강화를 이행하는 것이었다. 인자가 무언가 옳은 일을 하고 환경으로부터 양의 되먹임을 얻을 때마다, 그 일에 책임 있는 분류자들은 더욱 강력해진다. 인자가 잘못된 일을 할 때면, 책임 있는 분류자는 약화된다. 그리고 그 일에 무관한 분류자들은 무시된다.

물론 문제는 어떤 분류자들이 어떤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인자는 그저 보상을 받는 순간에 발동하는 분류자에게만 사례할 수는 없다. 그것은 마치 미식 축구에서 터치다운의 모든 공로를 공을 가지고 골 라인을 넘어선 선수에게 다 주는 것과 같다. 작전을 지시하고 그에게 공을 건네준 쿼터백이나, 그가 뛰어갈 틈을 만들어 주기 위해 상대팀을 블로킹한 라인맨들, 또 그전 플레이에서 공을 쥐고 뛴 선수들의 공로는 아무 것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것은 장기에서 승리의 모든 공로를 상대방의 왕을 가두어 놓은 마지막 수에 모두 주고, 외통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두어진 많은 초기 수들의 공로는 아무 것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떤 다른 대책이 있는가? 만약 인자가 올바른 분류자들에게 사례하기 위해 보상을 미리 기대하고 있어야만 한다면, 사전에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미리 그것들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이런 사전 공작 수들의 가치를 배울 수 있겠는가?

좋은 질문이다. 불행하게도 헤브식 강화에 대한 일반적 아이디어는 너무 개략적이어서 어떤 답도 제공하지 못했다. 홀랜드는 난관에 봉착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MIT 시절에 유명한 경제학 교과서의 저자인 폴 새뮤얼슨 (Paul Samuelson) 에게서 배운 기초 경제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자신이 벌써 그 문제를 거의 해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게시판의 공간을 경매함으로써 시스템 내부에서 일종의 시장을 창출했다. 분류자들에게 그들의 강도에 따른 입찰을 허용함으로써 화폐를 창출했다. 그러니 왜 다음 단계를 택하지 않는가? 왜 모든 면을 갖춘 자유 시장 경제를 창출하지 않는가, 그리고 왜 영리를 목적으로 일어나는 강화를 허용하지 않는가?

실제로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유사성은 명백했다. 만일 게시판에 메시지를 판매할 상품이나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분류자를 그러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회사로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홀랜드는 깨달았다. 그리고 분류자가 자신의 if - 조건을 만족시키는 메시지를 발견하고 입찰을 하면, 그 분류자를 자신의 상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부품들을 사려고 하는 회사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 유사성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그가 해야 했던 일은 각 분류자가 자신이 사용할 부품에 대가를 적절하게 치루도록 조정하는 일뿐이었다. 한 분류자가 자신의 메시지를 게시할 권리를 따 냈을 때, 그것은 부품조달자에게 - 자신을 발동시킨 메시지를 게시한 분류자에게 - 자신의 강도를 일부 전송한다고 그는 결정했다. 그 분류자는 그 과정에서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음 단계의 입찰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시장에 내보낼 때 자신의 강도를 벌충하고 또 이득까지 남길 기회를 잡을 것이다.

그리고 재물은 궁극적으로 어디서 오는 것인가? 물론 마지막 소비자, 즉 시스템에게 주어지는 모든 보상의 근원인 환경으로부터 올 것이다. 보상의 순간에 발동하고 있던 분류자에게 사례하는 것은 완벽하게 옳은 일이었음을 홀랜드는 이제 깨달았다. 각 분류자는 자신의 부품조달자에게 대가를 지불하기 때문에, 시장은 보상이 전체 분류자들 속으로 전파해 나가게 하며 그가 찾고 있던 자동적인 보상과 처벌을 낳도록 해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올바른 중간 상품을 만들어 내면, 당신은 이익을 남길 것이다" 라고 그는 말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아무도 그것을 사지 않을 것이고 당신은 파산할 것이다." 효과적인 행위를 일으키는 모든 분류자들은 강해지겠지만, 사전 공작을 하는 분류자들도 무시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시스템이 경험을 얻고 환경으로부터 되먹임을 받게 됨에 따라, 각 분류자의 강도는 그 인자에 해당되는 참값에 접근할 것이다.

홀랜드는 그의 적응하는 인자의 이런 부분을, 각 분류자가 그 전의 분류자에게 대가를 전달하는 방식 때문에 '물통 여단 (bucket-brigade)' (불을 끄는 데 필요한 물통들을 전달하기 위해 죽 늘어선 줄 = 역주) 알고리듬이라고 칭하였다. 그것은 뇌에 대한 헤브의 이론에서 시냅시스들의 강화와 전적으로 유사했으며, 컴퓨터에서 시늉낸 신경그물망을 훈련시키기 위해 사용된느 강화의 종류와 유사했다. 그러고 그것을 알았을 때, 홀랜드는 문제가 거의 해결되었음을 알았다. 영리 추구를 통한 경제 강화는 엄청나게 강력한 조직력이었으며, 이는 마치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실제 경제에서 엄청나게 강력했던 것과 같았다. 원리적으로는, 전혀 무작위적인 분류자들을 갖고 있는 시스템 속의 인자는 갓 태어난 아기처럼 마구 뒹굴어 다니는 소프트웨어와 같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홀랜드는 깨달았다. 그러고는 환경이 어떤 행위를 강화하고 물통 여단이 작동함에 따라, 분류자들이 스스로 결 맞는 순서로 조직화하고 적어도 필요한 행위와 엇비슷한 것을 만들어 냄을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학습은 처음부터 시스템에 내재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홀랜드는 문제를 거의 다 해결한 듯 싶었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다. 홀랜드는 기본적인 규칙에 바탕을 둔 시스템에 물통 여단 알고리듬을 덧붙임으로써, 그의 적응하는 인자에게 한 가지 학습 방식을 부여했다. 그러나 또 다른 방식은 아직 빠져 있었다. 그것은 개발 (exploitation) 과 탐구 (exploration) 의 차이였다. 물통 여단 알고리듬은 인자가 이미 갖고 있는 분류자들을 증강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이미 거기 있는 기술들을 다질 수 있었다. 그것은 이미 얻어진 이득을 굳힐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시스템을 스스로 매우 최적화된 범용으로 인도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분류자들의 광대한 가능성의 공간을 탐구할 방법이 없었다.

홀랜드는 이것이 유전자 알고리듬의 문제라고 결정했다. 사실 그것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면, 다윈의 비유나 애덤 스미스의 비유는 서로 잘 어울린다. 회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진화하는 데, 분류자라고 해서 다를 수가 있겠는가?

홀랜드는 자신의 마음 뒤편에서 유전자 알고리듬을 계속 생각해 왔기 때문에, 이를 쉽게 간파해 낼 수 있었다. 그는 처음 분류자를 2 진법 숫자로 표현했을 때부터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분류자를 글로 풀어 쓰면, "만일 1###0#00 과 0#00#### 형태로 쓰여진 두 개의 메시지가 있으면, 01110101 의 메시지를 게시하라" 와 같다. 그러나 컴퓨터에서는 그것들의 부분들을 단순히 "1###0#000#00####01110101" 와 같이 한 줄로 붙여 쓰게 된다. 그래서 알고리듬은 정확히 같은 방법으로 수행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분류자들은 주로 기쁘게 이전처럼 디지털 시장에서 사고 팔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은 종종 재생산을 위해서 가장 강한 한 쌍의 분류자들을 선택할 것이다. 이 분류자들은 그들의 디지털 기초 단위들을 성적 교환에 의하여 다시 뒤섞으며 한 쌍의 후손을 낳는다. 그 후손들은 한 쌍의 약한 분류자들을 대체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가지게 되며, 물통 여단 알고리듬에 의해 강하게 성장한다.

얻고 싶은 결과는 규칙들의 수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끊임없이 가능성의 공간의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면서 변화하고 진화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거기에 해답이 있었다. 물통 여단과 기본적인 규칙에 바탕을 둔 시스템에 유전자 알고리듬을 세번째로 추가함으로써, 홀랜드는 적응하는 인자가 경험으로부터 학습을 할 뿐만 아니라 자발적이고 창조적으로 되도록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홀랜드는 1977 년경 첫번째 분류자 시스템의 코드를 쓰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것은 그가 기대한 만큼 수월한 작업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한두 달 내에 쓸모 있는 프로그램을 완성하여 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라고 그는 말한다. "실제로는 내가 완전히 만족할 만한 것을 얻는 데 반년도 더 걸렸다."

한편으로는 그도 일을 쉽게 해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첫번째 분류자 시스템을 진짜 홀랜드식으로, 즉 자기 스스로, 집에서, 또 그가 30 년 전 월윈드에서 썼던 것과 같은 16 진법 코드로, 돋도 코모도어 (Commodore) 가정용 컴퓨터로 코딩을 했다.

홀랜드의 BACH 동료들은 아직도 이 이야기를 할 때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린다. 전 캠퍼스가 VAX, 대형 컴퓨터 또 강력한 그래픽 워크스테이션들로 득실대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코모도어냐? 그리고 16 진법! 거의 아무도 더 이상 16 진법으로 쓰지 않았다. 만일 당신이 진정으로 기계의 수행 능력을 최대한도로 사용하고자 하는 철저한 컴퓨터 전문가라면, 당신은 적어도 숫자들을 MOV, JMZ, SUB 와 같은 기억하기 쉬운 용어들로 대치한 어셈블리라고 불리는 언어로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파스칼, C, 포트란, 리스프 같은 고급 언어를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언어들은 적어도 인간이 이해해 보려고 노력할 수 있는 언어들이다. 특히 코헨은 홀랜드와 오랫동안 심하게 논쟁했던 것을 기억한다. 만일 그것이 문자와 숫자들로 알아볼 수 없게 쓰여진다면, 누가 그것이 작동한다고 믿을 것인가? 그리고 누군가가 당신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만일 그것이 가정용 컴퓨터에서만 돌아간다면 누가 분류자 시스템을 사용할 것인가?

홀랜드도 결국 그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1980 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분류자 시스템의 코드를 대학원생인 릭 리올로 (Rick Riolo) 에게 넘겨주기로 하였고, 리올로는 그것을 거의 모든 종류의 컴퓨터에서 돌아갈 수 있는 일반 목적의 패키지로 변환하였다. "이것은 본래 나의 뜻이 아니었다" 라고 홀랜드는 인정한다. "나는 그것이 실제로 이행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부분적인 일들을 해보고 나서는 곧 흥미를 잃어 버리고 이론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어떻든 간에 그는 코모도어가 그 당시에는 꽤 타당했다고 아직도 주장한다. 캠퍼스 컴퓨터들은 공동으로 사용하여야 했으며, 그 점이 고통스러웠다고 그는 설명한다. "나는 온라인으로 프로그램과 싸움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나에게 한 번에 8 시간씩을 내주려 하지 않았다." 홀랜드는 개인용 컴퓨터의 혁명을 신의 선물로 보았다. "나는 내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할 수 있고 그것을 내 집에 갖다 놓을 수 있으며, 또 아무에게도 신세를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외에도 월윈드와 IBM 701 에서 프로그래밍하던 때를 돌아볼 때, 홀랜드는 이러한 조그마한 책상 기계가 결코 원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코모도어를 가졌을 때, 사실 그는 그것을 제법 한 단계 뛴 것으로 생각했다. 그가 실제로 맨 처음 개인용 컴퓨터를 만지게 됐던 것은 1977 년으로, 새로 나온 애플 II 컴퓨터에 필적하는 것으로 보였던 마이크로마인드라 불리는 기계를 샀을 때였다. "그것은 매우 좋은 기계였다" 라고 그는 회상한다. 사실 그것은 입출력을 위해 텔레타이프 기계에 연결할 수 있는, 여러 뭉치의 회로판들이 들어 있는 블랙박스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화면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8 킬로바이트 용량의 8 비트 기억장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3000 달러밖에 하지 않았다.

16 진법에 대해서는, 글쎄 마이크로마인드는 그 당시에 다른 어떤 프로그래밍 언어도 사용할 수 없었으며 홀랜드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나는 어셈블리 언어로 쓰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16 진법을 어셈블리 언어만큼이나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건 어렵지 않았다." 마이크로마인드 회사가 그렇게도 빨리 파산한 것이 정말로 아쉬웠다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는 8 킬로바이트 기억은 이상적인 선택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것은 마이크로마인드와 같은 마이크로프로세서 칩을 사용했고, 이는 그의 16 진법 코드를 거의 바꾸지 않고 돌릴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것의 기억 용량은 훨씬 컸다. 또 화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코모도어에서는 게임을 할 수 있었던 것" 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동료들이 느끼는 분노와는 상관없이, 홀랜드의 첫번째 분류자시스템은 자신이 기대했던 대로 실제로 작동한다고 확신할 만큼 잘 돌아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것은 정말로 모든 것을 갖춘 인식 이론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다. 그가 1978 년 미시간의 심리학과 교수 주디 라이트먼 (Judy Reitman) 과 같이 발표한 그 시스템의 초기 버전을 테스트하던 중, 그들의 인자는 유전자 알고리듬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보다 사용했을 때 시늉낸 미로를 열 배나 빨리 달리는 방법을 배웠다. 같은 테스트를 통해, 심리학자들이 전이(transfer) 라고 부르는 것을 분류자 시스템이 보여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한 미로에서 배운 규칙을 후에 다른 미로를 달리는 데 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초기의 결과들은 너무 인상적이어서, 홀랜드가 밀어붙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분류자 시스템이라는 단어가 퍼지기 시작하였다. 예컨대 1980 년 피츠버그 대학교의 스티븐 스미스 (Stephen Smith) 는 포커를 할 수 있는 분류자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이를 역시 학습이 가능한 기존 포커 경기 프로그램과 경쟁시켰다. 경쟁이라 부르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분류자 시스템이 쉽게 이겼다. 1982 년 폴라로이드 회사의 스튜어트 윌슨 (Stuart Wilson) 은 분류자 시스템을 이용하여 TV 카메라와 기계팔의 운동을 조정했다. 그는 물통 여단과 유전자 알고리듬이 분류자 규칙들의 자발적인 조직화를 야기시켜, 자신들을 제어 서브루틴처럼 작동하는 그룹이나 필요에 따라 특별하게 조정된 행위를 낳는 그룹들로 분리해 나간다는 것을 보였다. 역시 1982 년 홀랜드의 학생인 래숀 부커 (Lashon Booker) 는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했는데, 그 논문에서 그는 분류자 시스템을, 먹이는 발견하고 '독' 은 피해야만 하는 시늉낸 환경 속에 놓았다. 그 시스템은 곧 자신의 규칙들을 조직화하여 그 환경에 대한 내부 모형을 얻어냈다. 실제로 정신 지도를 만들어 낸 셈이다.

그러나 홀랜드를 가장 기쁘게 한 결과는 1983 년 데이비드 골드버그 (David Golberg) 가 한 일이었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으려는 토목공학자로서, 수년 전에 홀랜드의 적응계 과목을 수강한 뒤 진정한 신봉자가 되었다. 골드버그는 홀랜드에게 그의 박사논문 심사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이 되어 달라고 설득한 뒤, 유전자 알고리듬과 분류자 시스템이 시늉낸 가스 파이프라인을 제어하는 데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논문을 썼다. 당시에는 그것이 분류자 시스템을 갖고 구현한 가장 복잡한 문제였다. 어떤 파이프라인 시스템에서도 그 목적은 파이프라인의 한쪽 끝에서 요구되는 수요를 가능한 한 경제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한 파이프라인은 거대한 반지름을 갖는 파이프를 통해 수천 마일 저편에 가스를 보내 주기 위해, 수십 또는 수백 개의 압축 펌프를 가지고 있다. 가스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는 시간적으로 또 계절적으로 변화한다. 압축 펌프와 파이프에서 가스가 새면, 적절한 압력으로 가스를 운송하려는 시스템을 손상시킨다. 안전 규제는 압력과 유속을 적절치 이내로 유지하도록 요구한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아주 간단한 파이프라인의 최적화라도 그것은 수학적 분석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파이프라인 기술자들은 오랜 도제 기간 동안 기술을 익히고 나서, 그들의 시스템을 본능과 느낌에 의존하여 '운전' 한다. 마치 우리 대부분이 자동차를 운전하듯이.

사실 홀랜드는 파이프라인 문제가 너무 어려워 보여서 골드버그가 분류자 시스템이 해낼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초조해 했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골드버그의 시스템은 그의 시늉낸 파이프라인을 훌륭하게 작동시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은 전혀 무작위적인 분류자들의 집합으로 시작하여 약 1000 일 동안의 시늉내기 경험을 얻으면서 전문가 단계의 능력을 발휘했다. 더욱이 시스템은 그것이 해낸 일에 비해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간단했다. 그것의 메시지들은 단지 16 자리의 2 진법 숫자들이었으며, 게시판은 한 번에 단지 다섯 개의 메시지만을 게시했고, 그것은 단지 총 60 개의 분류자 규칙만을 포함하고 있었다. 사실 골드버그는 파이프라인 시늉내기와 전체 분류자 시스템을 집에 있는 단지 64 킬로바이트의 기억 용량을 가진 애플 II 컴퓨터에서 돌렸다. "그는 내 마음에 딱 드는 친구다" 라며 홀랜드는 웃는다.

파이프라인 시늉내기는 1983 년 골드버그에게 박사학위를 안겨 주었을 뿐 아니라 1985 년 '소장 연구자 대통령 상' 을 안겨 주었다. 홀랜드 자신도 그의 업적이 분류자 시스템에서 하나의 이정표적인 연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주 설득력이 있었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것은 정말로 실제 문제에서 작동했다. 아니 적어도 시늉낸 실제 문제에서." 더욱이 재미있는 아이러니는, 그 때까지 고안된 분류자 시스템 중 가장 '실용적' 인 이 시스템이 근본적인 인식 이론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 판명된 사실이었다.

우리는 골드버그의 시스템이 가스의 누출에 대한 지식을 조직화하는 방법 속에서 그것을 가장 명확하게 볼 수 있다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것은 무작위적인 분류자 집합으로 출발하여 먼저 정상적으로 파이프라인을 작동하는 데 잘 맞는,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일련의 규칙들을 배운다. 한 번 실행시켰을 때 실제로 나타나는 한 예는 "언제나 '누출 없음' 이란 메시지를 내보내라" 와 같이 표현될 수 있는 규칙이었다. 이것은 분명히 파이프라인이 정상일 때만 효과적인 너무 보편화된 규칙이었다. 그러나 골드버그가 여러 압축 펌프에 구멍을 뚫는 시늉내기를 시작하면, 그 시스템은 그 사실을 매우 빨리 발견해 냈다. 그리고 시스템의 수행 능력은 즉시 급속하게 떨어졌다. 그러나 시스템은 유전자 알고리듬과 물통 여단에 의하여 급기야는 실수로부터 회복하여 더욱 구체적인 규칙들, 예컨대 "만일 입력 압력과 출력 압력이 낮으며 또 압력의 변화율이 아주 음수가 되면, '누출' 메시지를 내보내라" 같은 규칙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 규칙은 적용될 때마다 첫번째 규칙보다 훨씬 높은 입찰가를 내고 첫번째 규칙을 게시판에서 쫓아내 버린다. 그래서 결국 첫번째 규칙은 정상 조건하에서 시스템의 기정 (default) 행동을 지배하는 반면에, 두 번째 규칙과 다른 규칙들은 예외적인 조건하에서 올바른 행동을 불러일으킨다.

골드버그가 이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홀랜드는 몹시 흥분했다. 이런 종류의 지식 조직은 심리학에서 기정 계층 체계라 알려져 있으며, 당시 홀랜드의 마음속에 있던 것이 바로 이 문제였던 것이다. 1980 년 이래 그는 미시간의 세 동료 - 심리학자인 키스 홀약 (Keith Holyoak), 리처드 니스벳 (Richard Nisbett) 그리고 철학자인 폴 사가드 (Paul Thagard) - 와 함께 학습, 추론, 지적 발견에 대한 인식 이론을 구축하기 위해서 공동 연구에 깊이 참여하고 있었다. 그들이 후에 그들의 1986 년 책 《귀납 (Induction)》에서 자세하게 설명했듯이, 이러한 이론은 세 가지 기본적인 원리에 바탕을 두어야만 한다는 것을 네 사람 모두 독자적인 방법을 통해 믿게 되었다. 이 세 가지 원리는 홀랜드가 그의 분류자 시스템의 밑바탕에 깔아 놓았던 것과 동일했다. 첫째, 지식은 규칙과 매우 흡사하게 행동하는 정신적 구조로 표현되어야 하며 둘째, 이 규칙들이 서로 경쟁한다는 것, 따라서 경험에 의해 유용한 규칙들은 더욱 강하게 성장하고 불필요한 규칙들은 약화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그럴듯한 새로운 규칙들은 옛 규칙들의 결합으로 생겨난다는 것이다. 광범위한 관찰과 실험으로 입증된 그들의 논리는 이러한 원리들이 뉴턴이 사과로부터 얻은 경험으로부터 유사점의 이해와 같은 평소의 능력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아!" 형태의 통찰력을 설명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그들은 이 세가지 원리들이 모든 인간 지식의 기본적인 조직 구조 같은, 기정 계층 체계의 자발적인 발현을 야기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것같이 보인다. 기정 계층 체계를 형성하는 규칙들의 덩어리는 근본적으로 홀랜드가 내부 모형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한 말이다. 우리는 어떤 것들이 어떤 범주에 속해야 하는지 예측하기 위해, 강력한 예외들을 가진 약한 일반적 규칙들을 적용한다. 즉, "만일 그것이 유선헝이고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으며 물에서 살면, 그것은 물고기이다." 하지만 "만일 그것이 털이 있으며 공기로 숨을 쉬고 덩지가 크면, 그것은 고래이다". 우리는 어떤 것들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예측하기 위해, 동일한 구조를 사용한다. 즉, "'c' 다음이 아니라면, 언제나 'e' 앞에는 'i' 가 온다." 하지만 "그 단어가 neighbor, weigh, weird 와 같은 단어라면, 'i' 앞에 'e' 가 온다". 그리고 우리는 인과율에 대한 예측을 할 때도 동일한 구조를 사용한다. 즉, "개에게 휘파람을 불면, 개는 당신에게로 온다." 하지만 "그 개가 으르렁거리거나 목 둘레의 털을 추켜세우면, 그 개는 아마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그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기정 계층 체계 모형들은 이 원리들이 분류자 시스템으로서 이행되든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이행되든지 간에 발현해야만 한다고 홀랜드는 말한다 (사실 《귀납》에서 인용한 많은 컴퓨터 시늉내기들이 사가드와 홀약에 의해 고안된 좀 더 전통적인 규칙에 바탕을 둔 프로그램인 PI 로 수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계층 체계가 골드버그의 파이프라인 시늉내기에서 실제로 발현하는 것을 보는 것은 스릴이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 분류자 시스템은 무로부터 시작했었다. 초기의 규칙 집합은 완전히 무작위적이었고, 원시적인 혼돈에 해당하는 컴퓨터였다. 그러나 여기 이러한 기적적인 구조가 혼돈으로부터 발현하여 그들을 경악하게 하고 놀라게 만들었다.

"우리는 의기양양했다" 라고 홀랜드는 말한다. "그것은 발현하는 모형이라고 실제로 부를 수 있는 첫번째 경우였다."

고향과 같은 곳

홀랜드와 아서의 대화는 부엌 테이블 대화에 익숙해짐에 따라 수시간 동안 계속 이어졌다. 결국 그들의 토의는 밤 늦게까지 장기에서 경제학으로, 경제학에서 체커로, 그리고는 내부 모형, 유전자 알고리듬, 또다시 장기로 계속되었다. 아서는 자신이 학습과 적응이 내포하고 있는 전체 의미를 드디어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둘은 다소 졸렸지만, 경제학에서 합리적인 예측이라는 문제를 타파할지도 모르는 접근 방식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경제 인자가 완벽하게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 대신에, 그들을 홀랜드 스타일의 분류자 시스템으로 모형화하고 그들로 하여금 '실제' 경제 인자처럼 경험으로부터 배우게 되면 어떨까?

정말 그렇게 하면 어떨까? 홀랜드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가 가지고 온 새뮤얼의 체커 선수에 대한 낡은 오버헤드 트랜스페어런시 뭉치를 끄집어 내리라고 마음 먹었다. 아서는 배우며 게임을 하는 프로그램의 아이디어에 매혹되었다. 그는 결코 이런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홀랜드는 다음날 참석자들에게 이 주제에 대해 즉흥적인 강연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강연은 히트를 쳤다. 특히 홀랜드가 청중에게 새뮤얼의 프로그램이 30 년 후의 체커 게임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최첨단 프로그램이라고 지적했을 때 그러했다. 그러나 곧 이어 홀랜드의 접근 방식 전체가 그 모임에서 히트를 쳤다. 이런 즉흥적인 교환은 그 시점에서 이미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참석자들은 정확하게 언제 경제학 모임의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세 번째 날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과 상호 혼돈의 초기 장벽을 허물어 버린 후, 그 모임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를 매우 흥분시켰다" 라고 스튜어트 코프먼은 말한다. 그는 2 주일 동안 아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경제학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면, 그것은 마치 유치원 같았다.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수많은 새로운 것들이 펼쳐져 있었다. 또는 마치 강아지가 된 것처럼 온 세상이 탐구해 볼 멋진 곳이라는 놀라운 탐험심을 가지고, 사물들의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이 분야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이 새로운 분야의 문제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서로 충분히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서로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수학적인 추상화에 대해 물리학자들이 일찍이 회의를 느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언어를 제공한 것은 수학이었다. "돌이켜 보건대, 나는 켄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라고 유지니아 싱어는 말한다. 그녀는 원래 사회학자와 심리학자를 그룹에 포함시키지 않은 애로의 결정에 실망했다. "그는 가능한 한 고도로 기술적으로 훈련된 경제학자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 결과 신뢰감이 구축될 수 있었다. 물리과학자들은 그들의 기술적 바탕에 놀라워했다. 그들은 많은 기술적인 개념들, 또 몇몇 물리적 모형들까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공통 용어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또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언어를 구축하기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 기술적인 바탕이 없는 많은 사회 과학자들이 있었다면, 그 장벽을 넘을 수 있었을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대부분의 공식적인 발표가 끝난 후, 워크숍의 참석자들은 특별한 주제에 초점을 맞춘 비공식적인 토의 그룹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인기 있는 주제 중의 하나가 혼돈이었다. 이 그룹은 작은 컴퍼런스 실에서 데이비드 루엘 (David Ruelle) 을 중심으로 자주 모였다. "우리 모두는 혼돈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며, 논문들을 읽었다" 라고 아서는 말한다. "몇몇 경제학자들은 그 분야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물리학자들의 몇몇 모형들을 보면서 매우 흥분했던 것이 기억 난다."

한편 앤더슨과 아서는 기술적 고착화와 지역 경제의 차이점과 같은 경제적 '패턴' 들을 논의하기 위해 테라스에 만났던 한 그룹에 속했다. "나는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는 없었다" 라고 아서는 말한다. "나는 필 앤더슨에게 다양한 수학적 테크닉들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그 토의 그룹에 참석했다."

아서는 실제로 자신이 앤더슨이나 다른 물리학자들과 호흡이 잘 맞는다고 느꼈다. "나는 그들이 컴퓨터 실험을 강조하는 것을 좋아했다" 라고 그는 말한다. 컴퓨터 모형들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1960 년대와 70 년대에 매우 심한 악취를 풍겼었다. 왜냐하면 초창기의 많은 컴퓨터 모형들이 프로그래머가 선호하는 정책 추천을 지지하는 결과를 내도록 조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컴퓨터 모형이 물리학에서 적절하게 사용되는 것을 보고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 분야의 개방성에 호감이 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지적으로 개방되어 있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며,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독단적이 아니었다."

아서는 또한 효용체가가 그 모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뻤다. 자기 자신의 발표 이외에도 많은 다른 경제학자들이 그것에 대해 독자적으로 생각해 오고 있었다. 예컨대 어느 날 참석자들은 신병 때문에 여행을 할 수 없었던 하버드의 명예 교수 홀리스 체너리의 강연을 전화로 들었다. 체너리는 발전 패턴에 대해 말했다. 왜 국가들이 성장하는 방식이, 특히 제 3 세계에서 차이가 나는가? 그는 강연하는 동안에 효용체가를 언급했다. "그래서 그가 전화를 끊은 후, 애로는 칠판으로 뛰어올라 '체너리가 효용체가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내가 그것에 대해 좀 더 말하겠다' 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발적으로, 무역 이론에 대해 그것이 의미하는 바와 더불어 아무런 노트도 없이 한 시간 반에 걸쳐 효용체가에 대한 사고의 역사에 대해 강연을 했다. 나는 애로가 그 주제에 관하여 그다지도 많이 안다는 것을 결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단지 며칠 후에 이미 효용체가를 국제무역에 적용하는 근본적인 업적을 이룬 호세 샤인크먼이 UCLA 의 미셸 볼드린 (Michele Boldrin) 과 함께 새벽 세 시까지 일하고 나서 효용체가에 의한 경제 발전 이론을 만들어 냈다.

어쩔 수 없이 주식 시장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고 아서는 말한다. 사람들이 단지 다른 투자가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기 때문에 주식 시장의 주식값이 점점 높아지게 되는 양의 되먹임 고리로 들어설 수 있는가? 혹은 거꾸로 사람들이 다른 투자가들이 빠져 나가는 것을 본다면, 정반대되는 효과인 폭락이 있을 수 있는가? "당시에 주식 시장이 다소 과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한지 또는 실제로 일어났었는지 또 그런 일이 곧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여론은 '아마도' 였다. 그러나 파인즈에게는 그 가능성이 너무도 실제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주식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어 주식의 일부를 팔아 버리라고 지시했다. 그 중개인은 그에게 잘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으며, 한 달 후인 1987 년 10 월 19 일 다우 (Dow) 주가 지수는 하루에 508 포인트나 떨어졌다.

"이 때문에 이 컨퍼런스에서 주식 시장의 폭락을 한 달 전에 예측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라고 아서는 말한다. "우리는 예측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폭락은 분명히 우리가 충분하게 논의한 이 양의 되먹임 과정을 갖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흘러갔다. 단지 토요일 오후만을 빼고, 열흘간의 마라톤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지쳤다. 그러나 아주 기분 좋게 지쳐 있었다. "열흘이 다 지나가자, 나는 과학적으로 아주 높은 곳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라고 아서는 말한다. "나는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실제로 있었다. 9 월 18 일 금요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논문을 전해주기로 미리 선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서는 이 모임의 마지막 날에는 빠져야만 했었다. 그 그룹은 그 날 최종 회의와 기자 회견을 계획하고 있었다 (뉴욕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리드는 비디오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다음 월요일 오후 그가 수녀원을 들어서자마자, 파인즈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현관에서 그에게 다가왔다.

"컨퍼런스는 잘 끝났습니까?" 하고 아서가 물었다.

"오, 우리는 아주 만족했어요" 라고 파인즈는 말했다. 특히 유지니아 싱어는 열광적이었으며, 리드에게 보여 줄 빛나는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과학 이사회는 컨퍼런스가 끝난 직후에 모임을 가졌으며, 우선 아서를 과학 이사회에 참여하도록 초대하고 싶어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아서는 경악했다. 과학 이사회는 연구소 내부의 성소였으며, 실제로 모든 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리였다. "물론이죠" 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좀 더 말할 게 있는데요" 라고 파인즈는 말했다.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모든 사람들이 이 컨퍼런스를 보고 너무나 흥분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된 전면적인 규모의 연구 프로그램으로 확대시키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논의한 끝에, 당신과 홀랜드가 내년에 (다음 학년도, 즉 그 당시로부터 12 개월 뒤를 의미함) 이 곳에 와서 프로그램을 설정하고 운용하기를 바랍니다."

아서는 약 2 초 만에 그 내용을 간파했다. 과학 이사회는 그와 홀랜드에게 프로그램을 운용할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는 안식년이 곧 다가온다며, 사실 아주 흥미가 있을 것 같다고 우물우물 말했다. 그러고는, "예, 물론이죠" 하며 기뻐했다.

"나는 엄청나게 우쭐해진 기분이었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매우 겸허하게 느꼈다. 그러나 그 때까지의 생각은 -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 '누구, 나요?' 식의 개념이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사람들은 필 앤더슨 또는 켄 애로이며, 여기 내가 있는데 이들이 나에게 이런저런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진정으로 누군가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다. 내 학문의 일생 동안 그런 일은 이전에 일어나 본 적이 전혀 없었다."

"아시다시피 어떤 과학자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지라도, 그 공동체 안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라고 그는 덧붙인다. "존 홀랜드는 수십 년 동안 그런 환경 속에 있었다. 나도 분명히 그런 것을 느꼈으며, 내가 산타페 연구소에 들어서자 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똑똑한 모든 사람들이 또 내가 책에서만 보았던 사람들이 나에게 '당신, 여기 오는 데 왜 이리 오래 걸렸어요?' 라는 인상을 심어 주고 있었다."

열흘 동안 그는 쉬지 않고 이야기하고 들었다. 그의 머리는 너무 많은 생각들로 가득 차서 힘들었다. 그는 지쳤다. 나는 약 3 주일 동안 부족했던 수면을 보충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마치 천국에 온 기분이었다.

"그 때부터는 다른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가 같이 일하기 위해 관심을 쏟아야 할 사람들은 산타페의 사람들이었다. 산타페는 고향과 같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