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와 정서

(Needs and emotions)

 

컴퓨터와 마음 : Philip N. Johnson-Laird 지음, 이정모. 조혜자 옮김, 민음사, 1991, Page 446~466 (원서 : The Computer and the Mind: An Introduction to Cognitive Science, Harvard Univ. Press, 1988)

 

감정 (feeling) 의 기능

신체적 욕구와 정서의 내적 신호

정서 (emotion) 의 외적 표현

인간 감정은 인지와는 독립적인가 ?

인간 감정에 대한 한 이론

의식과 복합정서

감정 (feeling) 의 개념

결론

 

우리는 기본적인 인지능력들, 즉 세계를 지각하고, 사고하고, 행동할 능력을 가진 로봇을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로봇이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 로봇이 볼 수 있는 것이 모두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 로봇이 내릴 수 있는 추론들 모두가 추론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 로봇이 수행할 수 있는 행동들이 모두 행해질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에 로봇이 유용하게, 그리고 독립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면, 우리는 로봇의 회로 속에 몇 가지 기본목표들을 내장시켜야만 한다. 아시모프 (Issac Asimov) 는 그의 과학 공상소설에서 로봇 공학의 세 법칙을 제안한다 :

이러한 법칙들은 <이기적인 유전자> 를 지닌 자율적인 유기체들에게서는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 같다. 그것들은 다음의 원리들에 의해 지배되는 듯이 보인다. 이 원리의 공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소련의 사회생물학자 보미사 (I. Vomisa) 에게 돌리고 싶다 :

어찌 되었거나 진화는 생물들이 아주 특수한 목표를 가지도록 만들었다. 물음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그러한 목표들이 행동으로 전환되는가 ?

감정의 기능

곤충과 같은 원시적인 유기체들은 그들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본능적인 반응들에 의존한다 : 특정한 사건의 발생은 특정반응을 촉발시킨다. 인간과 같은 복합적인 유기체는 무엇을 행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강력한 추론기제와 분명한 상징적인 원리들을 사용할 수 있다. 생득적으로 내장되어 있는 반응들은 융통성을 갖고 있지 못하며, 추론을 하는 것은 아닐까 ? 오틀리 (K. Oatley) 와 내가 내린 답변은 <있다>는 것이다. 복합유기체는 통증과 같은 신체감각 (sensation) 에 대한 느낌 (feelings) 과, 불안과 같은 정서 (emotion) 의 느낌들을 둘 다 가진다. 그러한 느낌 (이하에서는 <감정> 으로 번역한다) 들은 행동을 유도하는 독립적인 수단들이다. 감정들은 유기체로 하여금 특정한 본능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적합한 일반적인 행위경로를 준비하도록 한다. 감정은 복잡한 추론과정들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감정은 진화적으로 오래된 통제 방법으로서, 그 효과는 빠르고 효과적일 수 있다.

사회적 동물들에 대한 삶을 고려해 보자. 그들의 생존은 먹이와 물, 공기, 체온유지, 그리고 약탈 동물과 독소 및 질병에서 벗어나는 것에 의존한다. 그런 동물들은 먹이를 사냥하는 일과 약탈자들로부터 방어하는 일에 서로 협동을 한다. 그런 동물들은 생식활동도 사회적인 관계에 의존적이다. 잠재적인 배우자가 있고, 잠재적인 경쟁자가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적인 구조는 경쟁자들간의 힘과 지위의 위계에 달려 있다. 자손을 임신하고 기르기 위해서는 영토가 필요하고, 이 영토는 경쟁자들에 대항해서 방해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자손은 그들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양육해 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목표들 중 어떤 것은 신체적 욕구와 관련되는 반면, 어떤 것들은 외적인 사건들과 관련되고, 특히 그 종의 다른 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신체적인 욕구는 물질적인 원인 때문에 비롯된다. 예를 들어 음식물이 박탈된 동물은 배고프게 된다. 그러한 욕구들은 다른 물질적인 원인들이 주어져 신체적 상태를 다르게 만들어주면 종결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동물이 그 종의 다른 구성원들과 갖는 관계는 심리적인 원인을 갖는다. 그것들은 인지적 평가에 의해 야기되고, 종결된다. 예를 들어 약탈자를 지각하는 것은 공포를 야기한다. 이러한 공포는 경고를 함으로써, 즉 의례적인 행동을 통해 다른 구성원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그때의 의례적인 행동은 그 종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그때의 의례적인 행동은 그 종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정서 경험을 전달하는 것 외의 다른 기능은 없다. 따라서 오틀리와 나는 정서가 그 종의 다른 구성원들과 상호작용하기 위한 통제 기제로서 진화적인 근원을 가진다고 가정한다.

만약에 정서가 사회적 동물의 행동을 주도하기 위해서 발생하였으면, 우리는 사회생활 구조 내에서 정서의 기능을 검토함으로써 정서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시발점을 삼을 수 있다. 어떤 동물 종의 생활에서도, 중요한 상황은 비교적 작은 수의 정서로 나타낼 수 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동물들의 사회생활에서 유의미한 사건의 종류는 다음과 같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

이러한 존재론은 인간의 생활에서도 역시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진화적으로 기본적인 정서들이 있음을 시사한다 :

혐오는 아마도 나쁜 음식이나 독소에 의해 야기되는 불쾌함에 대한 신체적인 느낌에서 기원된 것 같다. 그러나 1940 년대 캐나다 심리학자인 헵 (D. Hebb) 은 침팬지들에게 눈알 같은 물체를 보여주었을 때 침팬지들이 혐오를 나타내는 모든 표현을 하는 것을 보고하였다. 침팬지들에게는 그러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한 다소 의례적인 의사소통 방식이 발달되어 있었다. 이러한 느낌의 원인은 심리적인 것일 수 있기 때문에, 혐오는 정서로서 기능할 수 있다.

테카르트가 17 세기 기본정서에 대한 목록을 제안한 이래로, 많은 이론가들은 정서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생각하여 왔다. 그러나 위에서 본 정서의 다섯 가지 유형은 모두 사회적인 포유동물들에서 발견될 수 있다. 인간의 정서생활에서 이들 정서 유형들이 생득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에크만 (P. Ekman) 과 그 동료들에 의해 확인되어 왔다. 그들은 아주 다양한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도 동일한 얼굴 표정이 이러한 정서들을 전달하는 데 사용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놀라움 (surprise) 역시 보편적인 표현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다른 어떤 정서 발생에서도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놀람 반사 (startle reflex)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 놀람 반사란, 권총 발사 소리와 같은 큰 소리에 대해 포유류에게서 일어나는 고정된 반응 양식으로서, 파충류에게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 즉 동물은 눈을 깜박거리고 빠르게 방어적인 반응을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서는 방어적인 반응이 분명히 불수의적이지만, 동물에게는 반사적이다. 에크만과 그 동료들은 기본정서 (와 놀라움) 는 심장박동, 체온, 발한, 근육긴장에 변화를 가져오는 등, 평소와는 다른 독특한 생리적 활동 패턴을 일으킨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인간의 정서는 보다 복잡하며, 개인적, 역사적, 문화적 경험에 따라 영향받는다. 따라서 인간 정서는 진화적 기원의 특성을 초월한다. 정서의 이러한 측면을 다루기 전에, 먼저 어떻게 신체적인 느낌과 정서가 행동을 조절하는지를 고려해 보기로 하자.

신체적 욕구와 정서의 내적 신호

어떤 포유동물, 예를 들어 작은 쥐가 신체적으로 수분이 결핍되면, 피의 용적과 염도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 동물에게서 수분을 소변으로 배출하는 신장은 효소를 만드는 반응을 하게 되고, 그 효소는 여덟 개의 아미노산 고리인 안지오텐신Ⅱ (angiotensin Ⅱ) 로부터 만들어진 물질을 방출하게 된다. 이 물질이 혈액 내에서 어떤 농도에 도달하게 되면, 시상하부 내의 신경세포들에 의해 탐지된다. 시상하부는 모든 척추동물의 뇌중앙에 위치하는 기관이다. 쥐의 시상하부에 있는 특정세포들을 전기적으로 자극했을 때 주변에 물이 있으면 쥐들은 물을 먹기 시작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포들이 마시기를 조절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세포들은 곤충에게 있는 세포들처럼 고정된 반응 순서를 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동적인 일련의 절차들이 결국 마시기를 이끌도록 고안되어 있다 : 쥐는 물을 발견해야 한다. 물 마시기는 소모된 수분을 채우기 위해서 시작되고, 그 체계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동물은 마시기를 중단한다. 신체적인 욕구는 피드백 고리 (feedback loop) 에 의해 지배되는 행동을 통해 만족된다. 이러한 피드백 고리는 토에츠 (Fred Toates) 와 오틀리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모델화하였다.

피드백의 형태들 중 어떤 것은 신체 내의 특정물질의 양에 의해 직접 조절된다. 반면 다른 형태들은 내적 표상에 의존한다 (제11 장 참조). 그렇다면 신체적 욕구는 어떠한가 ? 예를 들어 쥐는 갈증을 느끼는가 ? 아니면 쥐의 행동은 안지오텐신Ⅱ 나 그와 유사한 다른 물질들에 의해 전적으로 지배되는가 ? 목마른 쥐는 찬 공기가 나오는 곳을 핥을 것이고, 그곳은 쥐의 혀에서 수분을 더 증발시키기 때문에, 쥐는 신체적 감각을 가질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 그러한 감각은 쥐를 현혹시킬 수 있다. 그러한 감정 (느낌) 들은 행동이 적절한 생물적 목표를 달성하도록 조정하게 뇌의 조작체계에 대한 신호로서 작용할 수 있다.

야생에 사는 쥐는 암, 수 모두 지배 위계를 갖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 쥐들은 공포와 분노를 표현하면서, 정서적으로 행동한다. 올즈 (James Olds) 와 밀너 (Peter Milner) 는 30 년 전, 쥐의 시상하부에 근접한 뇌의 특정 부분과 그리고 다른 어떤 부분에 전기 자극을 주면, 쾌감을 느낀다는 것을 밝혔다. 쥐는 그러한 자극을 받기 위해 지속적으로 지렛대를 눌러대었다. 최근의 발견 결과는 뇌의 이러한 지점들이 특정한 화학물질인 도파민을 생성한다는 것이다. 도파민은 신경충동이 한 신경세포와 다른 신경세포 사이에 있는 시냅스를 건너 전달되도록 돕는 <신경 전달 물질> 의 하나이다. 코카인이나 인간에게 쾌감을 주는 다른 약물들은 이런 신경 전달물질처럼 작용하는 것 같다. 시상하부의 다른 부위들을 자극하면 분노행동을 일으킨다. 경쟁자를 탐지했을 때는 이러한 세포들이 활성화될 것이며, 경쟁자가를 탐지했을 때는 이러한 세포들이 활성화될 것이며, 경쟁자가 도망가게 되면 그 세포들이 억제될 것이다. 지배라는 사회적인 목표는 정서행동에 의해 달성되고, 정서행동은 지각적인 피드백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다.

내가 이전 장에서 기술했던 심적 구조이론은 의식을 처리기들의 위계중 최상에 있는 운영체계로서 보았다. 운영체계는 위계 내의 여러 처리기들로부터 세상을 표상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또한 그것은 처리기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그 처리기들은 운영체계의 계획들을 서로 주고받는다. 위계의 하위 수준에 있는 처리기들은 분산적인 표상들을 사용할 수 있는 단원들 (modules) 을 형성하지만, 운영체계와의 의사소통은 명제적인 내용을 갖는 분명하게 구조화된 상징들에 의존한다. 오틀리와 내가 제안한, 욕구와 정서의 내적 신호는 이러한 구조 내에서의 구별적인 독특한 신호 양식이다. 그것들은 적은 수의 생득적인 신호에 의해 전달된다. 각각의 신호에 대해 개별적인 화학적 메시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특수한 신경 전달물질들이 그 체계 내의 특정한 지점에서 사용될 수가 있다. 언어의 문장들과는 달리 정서신호들은 분명한 상징구조를 갖기 않는다. 그것의 개별적인 부분들은 아무 의미도 갖지 않는다. 각각의 신호는 비상신호와 비슷하다. 즉 복잡한 패턴을 가지고 있어 다른 것과 혼동을 일으키지 않는, 그런 신호이다.

하나의 처리기가 하나의 신호를 촉발하고, 그것을 다른 처리기들에게 전달한다. 그러면 그 처리기들은 또 다른 처리기들에게 동일 신호를 보내게 된다. 이런 식의 전달은 동일한 양식에 들어간 처리기들의 수가 상당한 비율에 이르게 되고, 관련된 생리적 반응이 일어나고, 행동을 지배하는 일단의 프로그램들이 촉발될 때까지 지속된다. 이와 같이 전체적인 위계는 상징적인 계산 없이, 적절하게 반응하기 위해 다른 활동을 중단시키면서, 한 양식에서 다른 양식으로 빨리 바꾸어질 수 있다. 또한 그 위계는 활성화된 처리기들의 수에 의해 결정되는 어떤 강도를 지닌 채, 여러 양식들 중 한 양식에 오랜 동안 계속하여 머물도록 설정될 수 있다. 그러나 각기 다른 처리기들은 각기 다른 양식에 처해 있을 것이고, 그 갈등이 해결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동물의 생활에서는 모든 생득적인 목표들에 대한 신호가 있다. 그것들은 신체적인 욕구와 정서적인 목표에서 비롯된다. 조작체계는 각각의 신호의 의미에 대한 생득적 (내장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통증에 대한 신호가 통증을 표시하고, 분노에 대한 신호가 분노를 표시한다는 것을 배워야 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형태의 해석은 그 신호가 내적인 구조를 갖지 않기 때문에 의미론적인 것이 아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수분이 결핍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갈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 조작체계는 수분 상실을 탐지하는 처리기들에서 발단된 하나의 신호를 받는 것이다. 그 느낌은 입이 마름과 같은 여러 가지 국소적인 신체 감각들에 수반된다. 처음에, 여러분은 그 신호를 무시하고 어떤 다른 행위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강도가 커지게 되면서, 여러분의 의식적인 사고는 그것에 사로잡히게 되어 그것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조작체계에 의해 형성된 상위 수준의 의도와 하위 수준의 욕구와의 잠재적인 갈등은 결국은 하위 수준의 욕구를 만족시킴으로써 해결되게 된다. 그러나, 의식에 도달한 그 신호는 내적 구조에 따라 해석될 부분들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갈증인 것이다.

하위 수준의 위계에 있는 처리기들에 비롯되어 나온 정서적인 느낌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그것들 역시 내적인 표상구조를 가지지 않는다 ; 또한 그것들 역시 특수한 신체감각들에 수반될 수가 있다 ; 그것들 역시 개인으로 하여금 특정한 종류의 행동을 하도록 한다. 그러나, 그것의 근원은 사건들에 대한 인지적인 해석이다. 만약에 인지적인 평가를 받은 상징적인 메시지가 의식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 신호는 특별한 이유를 모르고 경험하게 되는, 육체와는 분리된 정서가 된다. 만약에 어떤 다른 상징적인 메시지가 의식에 부딪쳐 들어오며 신체감각들과 관련된 내용을 갖는다면, 그 신호에 의해 전달되는 느낌은 이 다른 상징 메시지가 표상하는 사건에 잘못 귀인될 수가 있다. 만약에 올바른 인지적 메시지는 의식에 도달하고, 반면에 정서적인 신호는 그렇지 못하다면, 부적절한 감정결핍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한 느낌은 마비감각으로서, 우리가 특정 정서를 느껴야만 한다는 것을 알지만,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느끼지 못할 때 경험하는 것이다. 정서를 야기하는 인지적인 평가들은 조작체계 자체 내에서 발생할 수가 있고, 그러한 경우에 감정은 인지적 평가가 결핍되어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역시 가능하다. 나는 의식에서 비롯된 이러한 복합적인 정서들을 후에 다시 다루겠다.

욕구와 정서의 신호체계는 상황 적응적이다. 그것들은 상징 처리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또는 곤충이나 원시적 유기체의 반응처럼 경직된 반응들에도 의존하지 않으면서, 의도적인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식적인 경험은 후속되는 인지로 옮겨갈 수 있으며, 또 다른 정서로 옮겨가거나, 혹은 가치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감정이 있을 때 그것을 억압하는 시도로 옮겨갈 수도 있다. 이러한 갈등들은 의식적인 행위만으로는 해결되지 못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갈등들은 대부분의 처리기들이 어떻게든 간에 해결되어야 하는 그러한 양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발레리 (Paul Valery) 가 지적했던 것처럼, <의식은 모든 것을 살피지만, 의식은 사사건건 규칙을 세워 간섭하지는 않는다.>

정서의 외적 표현

다윈 (Charles Darwin) 은 정서 표현은 인간을 포함한 많은 종들에게 있어 이점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또한 표현적인 행동들은 보다 단순한 동물들의 행동에서 진화되었다고 논의하였다. 그의 논의는 로렌츠 (K. Lorentz) 와 같은 동물행동학자들의 관찰을 통해서 입증되어 왔다. 많은 동물 종들에게 있어 약탈자들에게 대항하는 방어는 정서적인 경고신호들에 의존한다. 어떤 종들은 각기 다른 약탈자들에 대해 상이한 신호를 갖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제15장에서 보았던 벨벳 원숭이의 울음소리와 같은 것이다.

경고신호들은 많은 개인들이 위험신호에 대해 환경을 감시할 수 있고, 어떤 한 개인이 적을 발견함에 의해 모두가 혜택을 입을 수 있다는 진화적인 이점을 지닌다. 신호는 급속하게 퍼지고, 공동체 내의 모든 개인들을 같은 상태에 있도록 한다. 따라서 경고신호들은 뇌 속에서 퍼지는 신호들과 형식적으로는 유사하다. 그것들은 내적인 상징구조를 갖지는 않지만 다른 것들이 적절하게 반응하도록 유발시킨다. 사실상, 내적인 사건과 외적인 사건은 모두 함께 발생한다. 경고 울음을 방출한 개인은 각성 (arousal) 상태에 있게 되고 놀라게 될 것이며, 이 상태는 다른 것들에게 전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미 (mating) 의 준비로 일어나는 신호들은 복잡하며, 많은 동물 종들에게서는 관습적이다. 성적인 경쟁, 사회적 지배, 영토 보존은 모두 사회적 갈등을 야기시킨다. 그것들은 적대감의 표시, 관습적인 결투, 진지한 싸움을 함으로써 잠잠해진다. 전형적으로 싸움은 한 개인이 도망가거나 복종적인 관례적 행위를 할 때까지 계속된다. 예를 들어 개는 자빠져 오줌을 싸는 행위를 한다. 치명적인 상해가 일어나기 전에 복종의 표현이 강자에 의해 파악될 수 있다면, 복종은 공격자의 공격성을 제어할 수 있다.

양육자와 자식 간에 보이는 애착의 독특한 표현들이 있고, 먹이를 주는 것과는 다른 행동들이 그 관계에서 중요하다. 할로우 (H. Harlow) 가 보여주었듯이, 단순한 신체적인 접촉이라도 그 관계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 어머니에게서 분리됨으로써 충격을 받은 아기 원숭이들 가운데, 매달릴 수 있는 푹신한 천으로 만든 대리엄마를 가진 경우는 훨씬 잘 살아나갈 수 있었지만, 철사로 만든 대리엄마를 가진 경우에는 그 반대였다. 이와 같이 신체적인 상태에 대한 지각은 정서를 야기할 수 있다. 접촉과 따뜻함은 애착을 이끌 수가 있다 ; 통증은 공포를 이끌 수가 있다. 신체적 감각은 물질적인 자극에 의해 야기되고, 정서 없이도 경험될 수 있지만, 정서에 중요할 수 있다. 즉 신체 감각은 정서를 증폭시키도록 작용할 수가 있다.

인간 감정은 인지와는 독립적인가 ?

정서가 인지적 평가의 결과로서 일어난다는 논제는 저명한 사회 심리학자인 자이언스 (R. B. Zajonc) 의 관점과는 반대된다. 그는 선호와 느낌은 추론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고 논의하였다. 선호와 느낌이 항상 의식적인 추론에서 비롯되지는 않지만, 어떤 종류의 인지적인 평가는 정서를 야기시키는 데 중요한 듯이 보인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제안된 주장으로서, 샤흐터 (Stanley Schachter) 와 맨들러 (G. Mandler) 와 같은 현대 정서연구자들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만약에 정서가 행동을 인도하는 비상징적인 방식이라면, 이것은 정서가 행동에 인과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들은 부적절한 부산물이거나 신비적 사고의 한 형태 ─ 이는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 (Jean - Paul Sartre) 에 의해 주장된 견해이다 ─ 가 아니다. (만약에 인간 생명에 아주 중심적인 어떤 것 (감정)이 맹장염같이 부수적인 것이라면, 즉 불필요한 심적 기관의 염증과 같은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것은 참 곤란한 문제인 것이다.) 정서는 실제로 지각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1950 년대에 브루너 (J. Bruner) 와 그 동료들은 사람들 앞에 단어들을 순간적으로 비추어 보여줄 때, 정서적으로 부담스러운 단어들에서 그것을 재인하는 데 필요한 노출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그러한 단어들에는 <창녀>, <분노>, <암>과 같은 것이 속했다. 딕슨 (Norman Dixon) 은 한쪽 눈에 한점의 빛이 비쳐지는지를 탐지하게 하고, 다른 눈에 아주 희미하게 정서적인 단어들을 보여주었을 때, 실험을 받는 피험자들은 그 단어가 무엇인지 자각하지 못하면서도 빛을 탐지하는 데 영향을 받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연구들은 항상 논쟁거리를 야기해 왔다. 그러나 위계의 하위 수준에 있는 처리기들이 의식 내용을 만드는 재료들을 검열하는 작용을 할 수 있다.

정서가 기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비슷한 현상들이 많이 있다. 고전적인 연구는 19세기의 박식한 인물인 골턴 (Francis Galton) 에 의해 수행되었다. 그는 단어 목록들을 편집하였고, 그것들을 책상 서랍 속에 넣고 잊어 버렸다. 후에 그는 목록을 가지고 각각의 단어에 대해 자유 연상을 하였다. 즉 그는 단어를 읽고 그것이 마음에 불러 일으키는 첫 단어로 반응하였다. 때때로 그의 반응은 자신에게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는 연구결과를 보고하면서 그것들은 마음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배관> 을 드러내 주었다고만 말함으로써 간략하게 다루고 말았다. 융 (Carl Jung) 은 정서적으로 부담이 되는 단어들은 자유연상으로 반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 그는 어떤 여자가 범죄의 세부사항과 관련된 단어들에 느린 반응을 하는 것을 보고 도둑이란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최근에 바워 (G. Bower) 와 그 동료들은, 사람들이 어떤 정서적인 상태에 있을 때 일어났었던 사건들에 대해서는 후에 동일한 느낌을 경험하고 있다면 보다 쉽게 회상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러분이 슬플 때, 여러분은 행복했던 사건들보다는 슬펐던 경우들을 기억한다. 빌리 할러데이 (B. Holiday) 가 노래한 것처럼, <그것은 기억하기는 쉽고, 잊기는 너무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이 지니는 의의의 부담스러운 점은 인지와 정서가 인과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동일한 이론 내에서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계산주의 모형이 정서를 다룰 수 없다면, 인지에 대해서도 계산주의 모형은 역시 포기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작은 쥐는 자신에 대한 모델도 갖지 않고, 자기반성적인 장치도 갖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쥐는 0 수준 (제 19 장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에서 작용한다 : 쥐는 자기 행동을 유도하는 환경에 대한 모델을 구성한다. 그것은 세계에 대해 <꾸밈없는 인식 (bare awareness)> 을 가지고, 자신의 운영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느낌들을 갖는다. 그러나 쥐는 세계와 관련하여 자신에 대한 자각은 갖지 않는다.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욕구와 정서에 대한 내적인 신호들이 자기자각을 갖고, 자기반성적인 조작체계를 갖는 유기체 내에서 구체화되는 가이다. 이러한 것들이 통합이 되기 위해서는 융화되기 어려운 갈등들과 다른 병리들을 피해야만 하고, 어떻게 문화적인 요인들이 정서적인 생활에 들어오는지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인간 감정에 대한 한 이론

인간은 사회적인 포유동물이다 ; 인간은 사회적인 포유동물이 갖는 신체적, 사회적 목표를 가진다. 따라서 인간은 다섯 가지의 기본정서, 즉 행복과 슬픔, 분노, 공포, 혐오를 경험한다. 이러한 정서들은 각각의 특정한 역할에 따라, 독특한 양식들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랑은 행복의 한 종류이지만, 성적인 애착에서 오는 행복은 부모에 대한 애착에서 오는 행복과는 다른 내적인 신호에 의존할 수가 있다. 유사하게, 증오는 혐오의 한 종류이다. 그것은 분노를 이끌 수 있지만, 이 둘 사이에 필연적 연결은 없다. 즉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분노를 느끼지 않으면서도 증오할 수 있고, 또 증오하지 않으면서도 분노를 느낄 수도 있다. 인간은 보다 단순한 사회적인 포유동물에게서 일어나는 기본정서와는 다른 기본정서들을 갖는 것 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 유머는 웃음이라는 생득적인 반응을 이끄는 것으로, 인간에게만 독특하게 나타나지만, 그 기저정서는 행복의 한 종류인 것이다.

기본정서는 처리기들의 위계 중 어디에서나 인지적 평가에 의해 야기될 수 있다. 만약에 그러한 평가가 위계의 하위 수준에서 일어난다면, 그 내용은 의식에 떠오르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정서는 어떤 분명한 이유 없이 경험될 것이다. 그 개인은 행복과, 슬픔, 분노, 놀라움, 메스꺼움을 느끼지만 그 느낌에 대한 어떤 이유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비슷하게 정서는 어떤 대상을 가지지만, 분명한 원인 없이 일어날 수도 있다. 개인은 어떤 사람을 향하여 사랑이나 슬픔, 분노, 공포, 증오를 느끼지만, 그 원인을 귀인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물 행동학자인 헤스 (Eckhart Hess) 는 이 점에 대해 훌륭한 증거를 보여준다 : 사람들에게 동일 인물의 외관상 같아 보이는 두 개의 사진들을 제시하면, 사람들은 그중 하나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들은 왜 그걸 더 좋아하는지 이유를 말할 수는 없었다. 사실상 선호하는 그 사진에서는 그 사람의 눈의 동공이 더 열려 있었다. 동공의 열림은 그 자체가 불수의적이고 무의식적인 것으로서, 그 한 원인은 사람들이 어떤 흥미로운 일에 열중할 때 일어난다는 것이다. 라이트 (P. Wright) 와 카네만 (D. Kahneman) 이 발견했던 것처럼, 그런 현상은 사람들이 문장을 외우려고 노력할 때도 일어난다. 여러분이 만약 어떤 사람을 바라볼 때 그의 동공이 열려 있다면, 그것은 그가 여러분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고, 여러분의 지각체계는 무의식적으로 그 사실을 등록할 수 있지만, 의식에는 그 사람이란 대상 자체에 대해 갖는 정서만을 신호 보낼 수 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 사람이 더 매력적이라는 것은 발견하지만, 자신의 느낌의 원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페인 여인들이 한때 벨라도나를 화장품으로 사용했던 이유이다 : 벨라도나는 동공을 확장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본정서들은 의식적으로 일어나, 정서를 경험하는 개인들이 그 근원을 정확히 설명할 수도 있다. 좋은 예가 다윈의 일화들 중의 하나에서 나타나는데, 그것은 의식적으로 일어난 정서에 문화가 어떠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티에로 델 퓌고 (Tierro del Fuego) 의 한 원주민은 다윈이 먹오 있던 통조림 고기를 만져보고는 그 고기의 부드러움에 혐오를 표현했다 : 다윈은 다른 사람이 자기 음식을 만진 것에 혐오를 느꼈다. 이 사건은 비록 혐오가 그 주요 내용으로 메스꺼움과 같은 신체감각을 포함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문화적으로 결정된 반응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기본정서들 이외에도 다른 많은 정서들을 경험한다. 오틀리와 내가 주장하는 바로는, 그런 정서들의 근원은 의식에서의 인지적 경험들에서 비롯된다 ─ 즉 자신에 대한 모델에 접근하는 조작체계에 대한 인지적 평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의식과 복합정서

감정은 마음과 신체, 행동이 만나는 장소이다. 감정은 의식 경험 (의식 경험은 때때로 그 원인이라고 지각된 것에 대한 사고와 함께 온다) 과 다양한 신체적, 내분비적 변화, 특징적인 표현과 행동들을 함께 수반한다. 여러분이 자신의 감정을 의식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 우리가 앞에서 보아왔듯이 그 답변의 일부는 의식이 여러분의 수의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의 근원이고, 그것은 여러분 자신에 대한 모델에 접근하는 것에 의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감정은 여러분이 그것을 자각할 때에만 여러분의 의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답변의 또 다른 부분은, 어떤 정서는 자신에 대한 모델에 의존적이기 때문에 그 근원을 의식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서들은 정서적인 신호와 조작체계에서부터 나온 인지적 평가를 통합하기 때문에 복합적이다. 이때 정서적인 신호와 인지적 평가는 분리될 수 없고, 따라서 위계의 다른 곳에서 발생하는 정서와는 달리, 후회나 동정, 질투와 같은 복합정서는 관련된 인지적 평가를 자각하지 않고 경험할 수는 없다.

복합정서들 내에 있는 기본적인 구별은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정서의 대상으로 하는 경우와 다른 사람을 정서의 대상으로 하는 경우이다. 여러분이 대상일 때의 정서는 자신의 상황을 자기 자신에 대한 모델과 관련하여 평가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 자랑스럽게 느낄 수가 있다. 이때 정서적인 신호는 행복이지만, 주관적인 경험은 여러분이 어떤 일을 잘 행했다는 자각이다. 적어도 여러분 자신의 모델의 규준에 의해 그렇게 자각한다. 한편으로 여러분은 후회 (자신에 대한 슬픔) 를 느낄 수도 있고, 자신에 대한 성남, 자신에 대한 놀라움, 자기증오를 느낄 수도 있다. 여러분을 대상으로 하는 감정들에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관련시켜 평가함으로써 비롯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소속감 (행복), 포기 (슬픔), 비통 (분노) , 당황 (자기 스스로를 바보로 만들고 있다는 약한 공포), 부끄러움 (자기혐오) 을 느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복합정서도 자신을 그들과 관련시켜 평가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여러분은 존경, 동정, 분개, 경외, 질투를 느낄 수가 있다.

여러분이 자신에 대해 형성한 모델과, 다른 사람에 대해 형성한 모델, 그리고 크게는 세계에 대해 형성한 모델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특정한 사회의 많은 측면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여러분은 문화적인 배경을 습득한 뒤에 복합정서들을 만들어낸다. 복합정서의 기저에 놓여 있는 정서적 신호들은 기본정서들의 신호와 동일한 것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기저 정서신호도 여러분의 문화적 경험의 세부사항들 (여러분의 인지적 장치를 통해 여과되는 그러한 내용들) 에 의존하는 사건들에 의해 야기될 수 있다. 말하자면, 어떤 문화에서 질투를 야기하는 것이 다른 문화에서는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감정의 개념

감정 (feeling) 은 신체적, 정서적 신호들에 의존한다. 그러나 감정들은 문화적 경험을 통해 인지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인간 언어에서 여러 묘사적 명칭들을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심적 상태들로 더 정교화될 수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감정을 그저 단순하게 경험하지는 않는다. 여러분은 감정에 대한 개념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개념이란 여러분으로 하여금 경험을 범주화할 수 있도록 하는 심성적인 구성물, 즉 상징적 표상이다.

폴란드의 언어학자인 비에츠비카 (Anna Wierzbicka) 는 <슬픔> 과 같은 기본적인 정서 용어들을 규정하려고 하였다 :

그러나, 그녀도 인정했듯이, 감정은 단어들로 표현될 수 있는 구조를 갖지는 않는다. 더욱이 어떤 사람은 아무런 의식적인 이유 없이도 슬픔을 느낄 수 있고, 또는 비에츠비카의 정의에 나와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정확히 그러한 생각을 할 때 슬픔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기본적인 감정은 상징적인 구조를 갖지 않는 신호들이기 때문에, 그것들에 대한 분석적인 개념은 있을 수 없다. 단지 그런 감정들이 전형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시나리오들, 즉 감정이 원인이 되고, 감정에 수반되고, 결과되는 시나리오에 대한 개념들만이 있을 뿐이다. 아동들이 학습하는 것은, 예를 들어 그들이 강하게 애착을 느끼는 사람이 없을 때 특정한 감정을 일으키고, 그 결과로 울고, 세계에서 물러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 감정이 <슬픔> 이라고 불리는 감정임을 학습하는 것이다. 그들은 유사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유사한 표정을 보이는 것을 관찰할 때,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주관적인 경험을 거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정서적인 용어들을 사용할 것인가를 학습하기 위해서 관찰 가능한 표정이나 행동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정서의 의미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에 그것들이 정서의 의미의 한 부분이라면,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는 없다 : <나는 이유없이 슬픔을 느낀다> 라든가 <나는 슬픔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슬픔을 느낀다.> 그러한 언급은 거짓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복합정서들에 대한 개념들은 존재한다. 이들은 그 개념적 분석의 부분으로서 한 편의 시나리오를 가진다. 예를 들어 후회란, 여러분이 자신의 도덕률을 위반했음을 깨달았을 때 경험하는 슬픔의 감정을 말한다.

결론

마지막 두 장을 통해 나는 심적 구조에 대한 하나의 이론을 제안하였다. 의식적인 마음은 분명하게 구조화된 상징들의 계열처리에 의존한다. 무의식적인 마음은 분산적인 상징 표상의 병렬처리에 의존한다. 신체적인 욕구에서 마음으로의 연결은 신체 내의 어떤 물질들을 감시하고, 전혀 상징적이지 않은 신호들은 전파하는 위계 내 처리기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서적인 느낌들은 위계 내의 유사한 통신 경로에 의존한다. 그것들은 신체 반응에 대한 지각이 아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우는 것을 지각하기 때문에 슬프게 느끼지는 않는다 ─ 이러한 가설은 한때 윌리엄 제임스에 의해 지지되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반적 각성상태에 대한 어떤 평가이든 간에 인지적 평가가 이루어지고 그 인지적 평가에 의해 그 상태가 수정될 수 있는 그러한 상태에 정서가 근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 이 주장은 한때 샤흐터와 그 동료들에 의해 지지되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저서는 독특한 내적 신호들을 내보내는 인지적 평가들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다.

어떤 정서는 그 근원을 무의식적인 과정에 둔다. 사실상, 어떤 정서들이 이유가 알려지지 않고도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만약에 정서가 무의식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면, 왜 그것들은 의식적으로 경험되어야만 하는가 ? 이 질문은 어떠한 진화적인 이점도 (의식적인 것에서가 아니라) 정서의 신체적, 행동적인 부산물에서만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답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정서적인 신호가 운영체계에 부딪칠 때, 그것은 독특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따라서 기저의 동기는 의도적인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욱이 어떤 정서들은 자신에 대한 모델에 의존적이기 때문에 조작체계로부터 발생한다.

인간이 일상생활에서 감정에 두드러진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적절하다. 어떤 유물론자들의 논의와는 반대로, 심적 활동의 주관적인 요소는 생리학 연구의 성과에 의해 추방되어야 할 <기계 내의 유령 (ghost in the machine)> 같은 부적절한 요소가 아니라, 행동의 중요한 동인이다. 감정들은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이 감정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은 의미가 있으며, 그것이 어떤 회의주의자들의 가정처럼 <상식> 심리학에서 나온 신화 같은 것들을 앞뒤 맞지 않게 조합해 놓은 것은 아니다. 물론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개념들은 불완전하다. 마음의 많은 측면들이 내성할 수 없는 것이고, 기본감정들은 의미있는 내적 구조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투와 후회 및 다른 복합감정들에 대한 생각에서와 같이 느낌들의 원인에 대해 보통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종종 맞다.

감정은 자연 도태와 마음에 대한 계산주의적 관점을 함께 취하는 틀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그럼으로써 로봇은 아마도 감정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로봇은 자신의 내적 환경을 감시하는, 즉 예를 들어 에너지 공급이 저조한가를 탐지하는 처리기들이다. 위험과 같은 환경 내의 중요한 사건들을 탐지하는 처리기들을 장치하여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처리기들은 위계 내의 다른 처리기들에게 특정신호를 전달할 것이다. 하나의 신호는 그것이 활성화시킨 처리기들의 수에 의거하여, 로봇 자신의 능력에 대한 모델을 참조하여 행위를 결정하는 운영체계에 전달될 것이다. 그 신호는 처리기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지시일 것이지만, 상위수준의 상징구조를 갖지는 않을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은 이와 유사한 장치에 친숙할 것이다. 요구되는 조작을 상위 수준의 언어에서 일으킬 방도가 없는 때에, 컴퓨터를 직접 조절하는 하위 수준 부호에서의 루틴을 상위 수준 언어의 프로그램에서 불러낼 수 있는 것이다. 의식적인 심적 과정들에 대해 비슷한 점은 상위 수준의 의식 과정들이 뇌의 하위 수준 언어로 번역될 수 있지만, 하위 수준 언어 내의 모든 지시들이 상위 수준의 상징들의 지시들에 대응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로봇의 조작체계가 에너지가 낮다는 신호를 등록한다면, 로봇은 에너지에 대해 일종의 배고픔을 느낄 것인가 ? 그 신호는 그 위계 내의 더 많은 처리기들을 활성화시킬 것이고, 따라서 그것들과 상위 수준의 어떤 대안적인 계획 간의 모든 갈등은 에너지의 원천을 발견하는 쪽으로 해결될 것이다. 이에 따라서 운영체계는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계획들을 채택하도록 특별한 경고를 주는 어떤 것을 등록할 것이다. 그러나 그 경고는, 적어도 조작체계에 있어서는, 어떤 해석 가능한 구조도 없는 신호이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감정처럼 기능할 것이다. 로봇이 우리와 같은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식은 로봇이 우리와 동일한 욕구와 동일한 사회적 목표를 가지며, 동일한 내적 부호 (codes) 에 의해 조절된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의 주관적인 경험들은 나의 경험과 같은가 ? 단 하나의 방식은 한 신경체계에서 다른 신경체계로 직접 신호들을 보내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읽을거리

이 장은 오틀리와 존슨 레어드 (1987) 에 부분적으로 기초하여 쓰여졌다. 오틀리 (출판중) 는 감정의 사회적인 측면들을 검토하고 있으며, 파워와 챔피언 (Champion) (1986) 은 자신에 대한 불완전한 모델이 만성적인 우울증을 이끌 수도 있다고 논의한다. 정서와 인지를 통합하려는 다른 시도들이 있다. 그런 연구의 출발점으로 스트롱맨 (Strongman , 1982), 맨들러 (Mandler, 1984), 오토니 (Ortony), 클로어  Clore) 및 포스 (Foss, 1987) 가 포함된다. 사이먼 (Simon, 1967), 슬로만 (Sloman,, 1987), 멜러 (Mellor, 1987) 는 계산과 정서와의 관계에 대해 다른 생각들을 제안한다. 아이블 아이베스펠트 (1971)는 인간 정서의 생태를 묘사한다 ; 샹고 (Changeux, 1985) 는 신경 전달물질과 뇌를 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