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재인
인지 심리학 - 신경회로망적 접근: Colin Martindale 저, 신현정 역, 교육과학사, 1994 (원서 : Cognitive Psychology : A Neural-Network Approach, Cole Publishing Co, 1991), Page 29~66.
개구리의 눈은 개구리의 두뇌에 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
두뇌가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환경 속에 있는 사물들을 再認하는 일이다. 재인의 문제는 신경회로망의 논의를 시작하기에 아주 적합한 주제이다. 왜냐하면 신경과학자들은 지각에 관여하는 신경회로의 작동에 관한 상당히 많은 증거들을 발견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디들 사이의 흥분과 억제를 사용하여 효율적인 계산을 하는 시스템에 관한 구체적인 증거들을 살펴 볼 것이다. 意思決定이나 思考와 같은 주제를 다룰 때는 단지 잠정적인 신경회로망 모형만을 제안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때의 논의에서도 기본 回路圖는 이 章에서 기술하는 것과 유사할 것이다. 여기서는 시각의 패턴재인에만 초점을 맞출 것인데, 그 이유는 우리가 다른 감각에 비해서 시각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각은 적극적 반응이다. 지각은 복사판이나 視覺像을 두뇌에 전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기존에 존재하는 신경세포들의 활성화를 수반한다. 지각은 세상에 대한 모형을 구성하는 것이다. 지각은 세상의 "사진"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신경세포의 집합을 활동케하는 것이다. 지각적 재인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외부자극으로부터의 정보가 어떻게 신경세포와 접촉하게 되는 것인지를 설명하여야만 한다. 예컨대, 어떻게 사람은 문자 "B", 단어 "강아지", 또는 친구의 얼굴을 재인하고 그 의미를 아는 것인가? 어떻게 網膜위의 한 시각패턴은-보다 정확하게는 시각패턴의 전체 집합은-"저것은 우리 개야" 라는 반응을 초래하는 반면, 다른 패턴은 "저분은 우리 할아버지야" 라는 반응을 초래하게 되는가? 일단 우리가 지각은 마디들의 활성화라는 데 동의한다면, "할아버지" 마디 또는 신경집합이 있다고 말하는 데 별로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 마디란 우리가 할아버지를 재인할 때 활성화되는 신경세포 또는 신경세포의 집합을 말한다. 어떻게 할아버지를 재인하는가 하는 문제를 고찰하기에 앞서, 우리에게는 먼저 어떻게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림 1>은 인간의 시지각에서의 유통도를 보여준다. 시각의 물리적 자극은 전자기파이다. 전자기파가 눈의 렌즈에 닿게되면, 렌즈는 초점을 맞추어서 망막 위에 꺼꾸로 선 형태로 자극을 투사한다. 망막은 <그림 1>에서 예시하는 것과 같이 여러개의 단층을 이루는 신경조직으로 구성된 피질구조이다. 척추동물의 망막은 모두 유사하다. 수용기세포는 원추체(cone)와 간상체(rod)라고 부른다. 간상체는 밝기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용기이며, 원추체는 색을 탐지하는 수용기이다. 인간의 망막에는 대략 일억삼천만개의 간상체와 팔백만개의 원추체가 있다. (Sekuler & Blake, 1985). 간상체와 원추체는 빛에 민감한 화학물질, 즉 빛에 반응하는 화학물질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빛을 많이 받아들일수록 화학반응도 커진다. 이러한 화학반응이 수용기의 전압 변화를 초래한다. 다시 말해서 간상체와 원추체는 변환기 (transducer) 이다. 수용기는 빛을 즉각적인 화학반응을 통해서 직류전압으로 변환시킨다.
<그림 1> 인간의 눈. 오른쪽에 망막 부위를 확대시켰다. 간상체와 원추체로부터 양극세포와 신경절세포로의 연계는 흥분성이다. 수평세포와 아마크린세포는 외측억제 효과를 나타낸다. 빛은 간상체와 원추체에 도달하기에 앞서 신경절세포를 통과한다는 점에 주목하다. 이러한 배열이 이상한 것이기는 하지만, 신경세포는 투명하기 때문에 작동한다. D. H. Huble (1989)의 「Eye, Brain, and Vision」에서 인용.
전압의 변화는 양극세포에 의해 감지되고, 양극세포는 다시 신경절세포를 자극한다. 수용기세포와 양극세포는 모두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동한다. 아날로그 방식이란 활성화가 悉無律的 (all-or-nothing) 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변하는 변인이라는 의미이다. 신경절세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분절적인 활동전압 (전기스파이크)이 일어난다. 만일 전압이 특정한 역치를 넘어서게 되면, 신경절세포는 활동한다(활동전압을 일으킨다.) 다른 모든 조건이 일정하다면, 수용기의 활동이 많을수록 신경절세포는 보다 많은 활동전압을 일으킨다. 여기서 주의할 사항은 다른 조건들이 일정할 때 그렇다는 점이다. 만일 수용기세포가 단순히 빛에 민감한 도구이고 신경절세포가 수용기세포의 집합으로부터 흥분적 입력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신경절세포는 빛의 존재 유무 이외에는 아무 것도 탐지해내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림 2> 점-중심 수용장. (A)에서 보면 중앙에 불빛이 있고 주변에는 불빛이 없다. 이러한 입력은 수용장을 모니터하는 신경절세포로 하여금 활동전압을 일으키게 만든다. 전체 수용장에 불빛이 비추거나(B) 불빛이 없으면(C) 신경절세포의 반응이 유발되지 않는다.
<그림 3> Hermann 격자가 (A)에 제시되어 있다. 흰 선분들의 교차지점에서 회색반점이 점멸하는 것에 주목하다. (B)는 이러한 효과가 일어나는 이유를 보여준다.
각 신경절세포는 대략 100개의 수용기로부터 입력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수용기들이 소위 신경절세포의 수용장 (receptive field)을 구성한다. 신경절세포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Robson, 1975) 點-中心세포 (on-center cell)는 <그림 2> (A)에서 보는 것처럼, 수용장의 중심에 불빛이 있고 수용장의 주변영역에는 불빛이 없을 때 최대한으로 활성화된다. 우리는 이러한 점-중심세포를 "점탐지기"라고 부르겠다. 점-중신 신경절세포는 수용장의 중앙에 있는 수용기들로부터는 흥분성 입력을 받아들이고 수용장의 주변영역에 있는 수용기들로부터는 억제성 입력을 받아들인다. 만일 수용장 전역에 동일한 불빛이 비치거나 [<그림 2> (B)] 불빛이 전혀 없다면 [<그림 2> (C)], 신경절세포는 반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앙으로부터의 흥분과 주변으로부터의 억제가 서로를 상쇄시키기 때문이다. <그림 3>에서 흰 수직선과 수평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마치 회색 반점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주목하라. 그 반점들은 물리적 자극에 의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회색 반점을 보게 되는 이유는 교차지점을 모니터하고 있는 점탐지기들이 충분한 억제성 입력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림 3> (B)를 보라]. 따라서 단지 흰색이 아니라 회색 반점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림 3> (B)에서와 같이, 만일 점탐지기가 입력을 교차지점에서 모니터하지 않는다면 충분한 억제성 입력을 받아들이게 된다.
滅-中心세포 (off-center cell)는 점-중심세포와는 반대이다. 이 세포들은 불빛에 둘러싸인 검은 반점을 찾아내는 "반점탐지기"들이다. 이들도 만일 수용장 전역이 불빛이나 어둠으로 덮여버리게 되면 반응하지 않는다. 두 가지 유형의 신경절세포는 모두 중심과 주변 사이의 대비 또는 차이에 민감하다. 이들은 밝기의 절대수준에 민감한 것이 아니다 ; 실제로 이들은 밝기의 절대치를 切減하여 중심과 주변의 밝기 수준 사이의 상대적 차이에 대한 정보를 두뇌에 보고 한다. 망막은 <그림 1>에서 보는 것과 같이 격자형의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수용기로부터 양극세포로, 그리고 신경절세포로의 수직적 연계를 언급하였다. 이러한 연결통로와 직교방향으로 연결되는, 즉 수직적 연계가 아니라 수평적으로 연계되는 세포들이 있다 : 아마크린세포와 수평세포 (<그림 1>을 보라). 수직적 연계는 흥분적인 반면, 수평적 연계는 억제적이다 (Hubel, 1988). 수용기의 활성화는 양극세포를 활성화시키고, 다시 신경절세포를 활성화시킨다. 수용기세포는 수평세포도 활성화시키지만, 수평세포는 이웃하는 수용기들을 억제한다. 이러한 구조적 배열의 결과로 한 수용기의 활성화는 양극세포와 수평세포를 모두 활성화시킨다. 양극세포는 활성화를 신경절세포에 전달한다. 수평세포는 인접한 수용기들을 억제한다. 양극세포는 아마크린세포도 활성화시키는데, 아마크린세포는 인접한 양극세포들을 억제한다. 이러한 모든 활성화의 궁극적인 결과는 억제적인 아마크린세포와 수평세포로 인해서 인접하는 수용기들끼리, 그리고 인접하는 신경절세포들끼리 서로 외측억제 (lateral inhibition) 효과를 나타내게 된다는 사실이다. 두 수용기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억제는 강력하다. 이러한 억제가 앞에서 기술한 점-중심 신경절세포와 멸-중심 신경절세포의 해부학적 기초가 된다. 측면적인 억제성 연계와 수직적인 흥분성 연계야말로 층으로 체제화되어 있는 신경조직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von Bekesy, 1967). 이러한 배열은 망막뿐만이 아니라 피부, 와우각, 소뇌, 그리고 대뇌의 신피질과 구피질 영역에서도 찾아진다. 나중에 우리는 이러한 배선배열을 사용하여 대뇌피질의 모듈이나 분석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술하게 될 것이다.
활동전압은 신경절세포의 축색을 따라 이동한다. 이러한 축색들이 한 묶음이 되어서 視神經을 구성하며, 시신경은 중뇌의 한 부분인 외측슬상체로 올라간다. 여기서 시신경을 구성하는 축색들은 다른 신경세포들과 연접하게 되는데, 이 신경세초들의 축색이 시각시스템의 일차적 투사영역인 두뇌 신피질의 후두엽으로 연결된다. 일차적 시각 투사영역을 둘러싸고 있는 연합영역에서 시각입력의 지각이 최종적으로 이루어진다. 일차적 시각 투사영역의 손상은 장님을 만들며, 시각 연합영역의 손상은 失認症 (agnosia)을 유발한다. 실인증 환자도 볼 수는 있지만 사물을 재인하지는 못한다. 어느 영역이 손상되었느냐에 따라서 얼굴을 재인하는 능력, 활자화된 단어를 재인하는 능력, 또는 특정한 유형의 사물을 재인하는 능력이 손상될 수 있다. (제 3 장을 참조하라).
눈으로 본다는 심적 사건은 수많은 변환의 최종결과임이 명백하다. 전자기파로부터 출발하여 화학반응을 거치고 직류전압의 변화를 거쳐 교류전기 신호(활동 전압)로 변환된다. 이러한 모든 변환 후에 남는 것은 신경절세포의 축색을 따라 전파되는 전기충격 뿐이다. 이러한 전기충격이 중뇌에서 신경절세포의 축색 끝부분에 다다르게 되면, 다음 신경세포의 활동전압을 유발시키게 된다.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의 흥분전달은 직접적인 전기적 접촉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경전도물질의 방출에 의한 매개적 화학반응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망막의 수용기로부터 대뇌피질의 일차 투사영역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세개의 신경세포를 통과하여야 한다. 연합영역에 -눈으로 본 것을 재인하거나 이해하게 되는 장소이다- 도달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신경세포를 통과하여야 한다. 이러한 신경세포 사이를 매개하는 것은 화학반응이다. 따라서 자극을 처음에 받아들일 때와 최종적으로 재인할 때 사이에는 화학적 부호로부터 전기적 부호로의 연속적인 변환과 재변환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모든 변환과 재변환은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목적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진화과정에서 신경절세포의 축색이 더욱 길어져서 재인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연합영역의 신경세포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재인 문제에 대한 한가지 가능한 해결책은 1930년대 형태심리학자들이 처음으로 제안하였던 형판맞추기 (template matching) 를 수반한다. 재인을 하려면 자극이 기억흔적과 접촉하여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일단의 신경절세포들이 결합하여 <그림 4>에서 보는 것과 같은 형판 또는 패턴을 형성하는 것이다. 형판을 구성하는 신경절세포들로부터 나오는 출력이 대뇌의 신경세포 하나와 연계된다. 망막 위의 흥분패턴이 형판과 맞아떨어지게 되면 대뇌의 재인 신경세포도 흥분하게 된다.
<그림 4> 할머니 재인을 위한 망막의 형판.
이러한 접근방법은 즉각적으로 문제를 야기한다. 우리는 다양한 조망각도와 거리에서도 할머니를 재인할 수 있는데 반하여, 형판은 예컨대, 할머니가 꼭 1m 거리에 서 계실 때에만 작동할 수 있다. 할머니가 더 가까이 계시면, 網膜像의 크기는 더 크게 나타난다. 만일 할머니가 누워계시다면, 완전히 속수무책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문제는 할머니 형판의 전체 집합을 - 1m 거리에 계시는 할머니 형판, 2m 거리에 계시는 할머니 형판, 누워계시는 할머니 형판 등등- 가지고 있으면 해결될 수도 있다. 이러한 모든 형판들이 대뇌의 동일한 할머니 신경세포와 연계되는 것이다. 이 해결책이 가지는 또 다른 문제점은 모든 가능한 거리와 모든 가능한 조망각도에서도 할머니를 재인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문자 그대로 무한한 수의 형판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우리가 재인할 수 있는 다른 모든 대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재인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의 형판을 형성하기에는 신경세포의 수가 턱없이 모자란다.
형판맞추기는 우리가 사물을 재인하는 방식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으므로 이제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자. 이 접근은 재인이 세부특징 (distinctive feature) 들을 탐지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근거한다. 하나의 세부특징이란 하나의 속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것이 한 대상을 특징지울 수 있고 또한 여러 다양한 상황에서도 탐지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세부특징은 다양한 거리에서도 동일해야 한다. 모든 사물이 세부특징들의 독특한 집합으로 정의된다. 세부특징들이 주어지면 사물은 존재하는 것으로 재인된다. 먼저 세부특징 분석의 일반이론을 논의한 후에 개구리, 고양이, 그리고 참게 연구에 근거한 증거들을 고찰할 것이다. 이러한 증거들은 유기체가 세부특징에 민감하며, 세부특징탐지기들은 복잡한 패턴을 재인할 수 있도록 배선되어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우리는 또한 어떻게 세부특징들이 탐지될 수 있는 것인지도 고찰하게 될 것이다.
세부특징이란 불변적인 단서 또는 신호를 말한다. 세부특징의 탐지가 재인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는가? 어떤 하등동물들은 바로 그렇게 하고 있다. 가시고기 숫놈은 자기 것이라고 간주하는 영역을 감시한다. 만일 다른 가시고기 숫놈이 자기 영역에 침범하면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침입자를 공격한다. 한편 다른 種의 물고기가 자신의 영역을 지나가는 것은 내버려둔다. 그렇다면 가시고기 숫놈은 다른 가시고기를 알아볼 수 있음에 틀림없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것인가. 재인은 한 가지 세부특징에 근거한다. : 아랫배가 빨간 색인 것. Tinbergen (1951)은 여러 가지 가짜물고기를 만들었는데ㅡ 이중에 하나는 아랫배가 빨간색이 아니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가시고기 숫놈과 동일하였다. 다른 것들은 아랫배가 빨간색이기는 하지만 가시고기는 커녕 물고기로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었다. Tinbergen이 가짜 물고기들을 가시고기 영역에 집어 넣었을 때 아랫배가 빨간색인 것은 무엇이든지 공격을 유발하였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실제 가시고기와 꼭 닮은 것조차도 무시되었다. 가시고기 숫놈들은 단지 한 세부특징의 존재 유무에 -빨간 아랫배- 근거하여 서로를 재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Tinbergen (1951)은 이와같이 단일 세부특징의 출현에 반응하는 수많은 다른 종들의 예를 기술하고 있다.
고등동물들의 재인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는가? 아마도 재인은 감각패턴을 완벽하게 분석한 것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을 독특하게 정의하는 세부특징의 탐지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신의 할머니가 Nataniel Hawthorne 의 소설 "주홍글씨"의 여주인공인 Hester Prynne 이라고 가정하자. Hester Prynne 은 주홍색으로 "A" 가 씌여진 옷을 입도록 강요되었다. 비록 당신의 할머니가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이 재인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주홍글씨가 씌여진 옷을 입지는 않았겠지만 (이것은 간통에 대한 처벌이었다), 그러한 주홍글씨가 존재한다면 재인에 엄청난 도움을 줄 것이다. Hester Prynne을 재인하려면 단지 하나의 문자가 존재하는지의 여부만을 탐지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가지고 있는 한가지 문제점은 어떻게 주홍글씨를 재인하게 되는 것인지를 밝히는 데 있다. 어떻게 사람들은 진짜 Hester(A) 와 적십자 표시를 달고 있는 간호원, 그리고 어떤 주홍 글씨든지 (예컨대, R)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Hester 로 위장한 늑대를 변별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것들과 Tinbergen 의 가짜 가시고기 사이의 차이를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알파벳의 한 문자조차도 여러 가지 세부특징들이 동시에 존재함으로써 정의되는 복잡한 패턴이다. 하등동물은 빨간색과 같은 단일 세부특징에 근거하여 사물을 재인하는 반면, 고등동물은 세부특징들의 결합에 근거하여 사물을 재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복마전이란 시인 John Milton 이 지옥의 수도에 붙인 이름이다. 이것은 청교도인의 눈에 비친 Hester Prynne 의 궁극적 운명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를 호송하기 위해서 지상에 내려온 저승사자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 어떻게 그녀를 재인하는가? Selfridge (1959)는 패턴재인의 일반 세부특징 탐색모형을 제안하고 그 모형을 작동시키고 있는 "도깨비"들을 고려하여 伏魔殿 (pandemonium) 이라고 명명하였다. 알파벳의 문자들을 재인하기 위한 복마전 시스템을 생각해보자. 복마전 시스템은 여러개의 위계적 층으로 체제화되어 있다. <그림 5> (A)는 文字再認 복마전 시스템의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시스템의 가장 낮은 수준에는 "視覺像 도깨비"가 있는데, 이것이 하는 일은 들어오는 자극의 像을 유지하여서 다음 수준의 도깨비들에 -"세부특징 도깨비"- 의해서 분석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모든 세부특징 도깨비들은 동시에 자신에 해당하는 세부특징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시각상을 관찰한다. 한놈은 직각에 관심이 있고, 다른 놈은 예각에 관심이 있으며, 또 다른 놈은 곡선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어떤 놈이든지 자신의 세부특징을 보게되면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다음 층에는 "인지 도깨비"들이 있는데, 이놈들 하나하나는 재인할 대상에 해당한다. 따라서 알파벳 각 문자에 해당하는 26개의 인지 도깨비가 필요하다. 이놈들은 세부특징 도깨비들의 고함소리를 듣고 있다. 예컨대. "A" 도깨비는 둔각 도깨비의 흥분된 고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왜냐하면 "A"가 두개의 둔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각 도깨비들이 내뱉는 시끄러운 고함에도 귀를 기울일 터인데, 왜냐하면 "A"는 세개의 예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A" 도깨비가 자신이 원하는 고함소리를 더많이 들을수록 이놈도 더욱더 시끄럽게 고함치기 시작한다. 즉, 자신과 관련된 세부특징 도깨비들로부터 고함소리를 더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인지 도깨비도 더 크게 고함을 친다. <그림 5> (A)에서 "A" 도깨비는 그렇게 많은 고함소리를 듣지 못한다. 반면에 다른 도깨비들이 -특히 "R" 도깨비가- 고함을 지르고 있다. 가장 높은 수준에는 "의사결정 도깨비"가 살고 있다. 복마전의 낮은 수준으로부터 수많은 고함소리가 들끓고 있기 때문에, Selfridge 는 이 도깨비를 여기에 배치시켰다. "R" 이 들어올 때마다 "R" 도깨비가 가장 소리높여 고함을 지르게 되지만, 바로 그놈을 흥분시킨 자극은 "P", "B", 그리고 "F" 도깨비들도 고함지르도록 만든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놈들은 그렇게 큰 소리로 고함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찾고 있는 세부특징의 일부분만을 탐지하였기 때문이다. 의사결정 도깨비는 어느 문자 도깨비가 가장 소리높여 고함치는지를 결정한다.
<그림 5> 복마전 문자재인 시스템. (A) 는 도깨비들로 구성된 것이고, (B) 는 전자장치로 구성된 것이다.
복마전 시스템이 갖는 중요성은 그 효율성에 있다. 첫째, 소위 말하는 병행처리시스템이다. 모든 도깨비들이 동시에 작동한다. 둘째, 경제적이다. 단지 소수의 세부특징 도깨비들만 있으면 된다. 확실히 문자 도깨비보다는 세부특징 도깨비의 수가 적다. 셋째, 크기, 방향, 그리고 입력 문자의 세세한 부분들과 같이 무시해야만하는 미미한 차이들은 모두 무시한다. 또 한 가지 언급할 점은 시스템이 문자 하나를 재인할 때, 인지 도깨비 중에서 한놈이 크게 고함을 지른다는 점이다. 시각상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으로 변환되었다. 내적 표상(인지 도깨비의 고함소리)은 입력자극의 물리적 특성과는 질적으로 유사한 것이 전혀 없다.
복마전을 구성할 때 도깨비 대신에 전기회로를 채택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즉, 전기 신경회로망을 구성할 수 있다. <그림 5> (B)는 시각상 도깨비를 빛에 민감한 탐지기의 배열로 대치하고 있다. 상위 수준에서는 도깨비 대신에 'AND 게이트'가 사용된다. 이러한 논리게이트는 고함소리를 듣는 대신에 하위수준으로부터의 입력을 탐지할 뿐이다. AND게이트란 오직 모든 입력이 동시에 점화되었을 때에만 작동하는 전기장치이다. "A" 탐지기는 하위수준에 있는 둔각탐지기와 예각탐지기에 연결되어있다. 다른 모든 문자탐지기들도 세부특징탐지기들과 연결되어 있다. 물론 알파벳의 모든 문자들은 세부특징들의 독특한 결합에 의해 정의된다는 점에 주의하여야 한다. (뒤에 가서 우리는 이러한 세부특징들이 어떻게 탐지되는 것인지를 고찰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의사결정 도깨비를 배제시킴으로써 시스템을 경제화하였다는데 주목하라. 모든 문자탐지 단위는 다른 단위들과 억제적으로 연계되어 있으며, 많이 활성화된 단위가 덜 활성화된 단위를 억제하기 때문에 의사결정 도깨비는 더이상 필요하지가 않다. 즉, 어떤 의사결정 단위도 필요없다. (만약 의사결정 단위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의사결정 단위가 작동하는지를 설명하여야만 하기 때문에 이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일단의 신경세포들이 복마전 시스템과 같이 작동할 수 있으며, 이것은 <그림 5> (B)와 같이 그릴 수 있다. 유일한 차이점은 시스템이 신경세포(전자장치가 아니라)와 축색(전선이 아니라)으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신경세포는 고함소리나 일정한 전압수준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활동전압을 일으키는 속도를 가지고 의사소통한다. <그림 5> (B)에서 신경 복마전은 R-탐지 신경세포가 가장 빠르게 활동하고, 따라서 다른 문자탐지 신경세포들을 억제하기 때문에 "R"이 제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는 나중에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세부특징 탐색 신경회로망이 존재한다는 상당한 증거들을 보게 될 것이다.
Lettvin, Maturana, McCulloch, 그리고 Pitts(1959)는 살아있는 개구리의 눈을 가지고 흥미진진한 실험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매우 단순한 신경회로망의 하나인 개구리의 망막을 연구하고 있었다. "개구리의 눈은 개구리의 두뇌에 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라는 이들에 물음에 우리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짧게 답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짧은 답 속에 내포되어 있는 세부사항들은 지각에 대한 우리의 견해에 일대 혁명을 초래하였다. 개구리 시각체계의 도식적 그림이 <그림 6>에 나와있다. 개구리의 망막은 빛에 민감한 수용기로 구성된다. 신경절세포는 대체로 원형을 이루는 영역에 있는 수많은 수용기들로부터 입력을 받아들인다. 이들이 신경절세포의 수용장이 된다. 신경절세포의 축색들이 모여서 視蓋 (tectum)라고 부르는 개구리의 대뇌영역으로 연결되는 시신경을 이룬다.
<그림 6> 개구리의 시각시스템.
Lettvin 등의 실험에서는 개구리의 눈을 금속으로 만들어진 半球안의 한 지점에다 고정시켰다. 자석을 이용하여 여러가지 사물들을 개구리의 시야에 제시하여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게 하였다. 동시에 실험자는 각 신경절세포의 전기적 활동을 측정하였다. 신경절세포의 축색 속에다 기록용 전극막대를 삽입함으로써 측정이 가능하였다. 실험의 논리는 신경절세포의 활동을 최대 속도로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려는 것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신경절세포가 무엇을 탐지해내기 위한 것인지를 알아내려는 것이었다. 만일 자극이 신경절세포의 수용장에 주어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탐지해낼 것이 없으므로, 신경절세포는 활동하지 않을 것이다.
Lettvin과 그의 동료들이 얻어낸 결과는 거의 경악에 가까운 것이었다.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절세포에는 단지 네 가지의 유형이있을 뿐이다 : (1) 모서리 탐지기 (edge detector)는 밝은 영역과 어두운 영역 사이의 경계에 반응한다 ; (2) 움직임대비 탐지기 (moving contrast detector)는 움직이는 모서리에 반응한다. ; (3) 흐려짐 탐지기 (dimming detector)는 조명의 전반적인 감소에 반응한다 ; 그리고 (4) 돌출모서리 탐지기 (convex edge detector)는 조그맣고 어두운 움직이는 사물에만 반응한다. 네번째 것을 "벌레 탐지기"라고 명명하는 데 대단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는 않겠다. 이러한 네 가지 유형의 신경절세포들은 중복되는 수용장을 가지고 있다. 개구리 망막의 특정한 영역에서 한 신경절세포는 모서리에, 다른 세포는 벌레자극에 반응하는 식이다.
이 실험의 결과에 대해 세 가지 언급할만한 중요사항이 있다. 첫째ㅡ 신경절세포는 특정한 속성이나 미세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세부특징에 반응한다. 예컨대, 모서리탐지기는 동일한 방향을 유지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모든 모서리에 반응한다. 그것이 나뭇잎의 모서리이든, Hester Prynne의 그림자가 만드는 모서리이든, 아니면 빛의 강도를 급작스럽게 변화시켜 나타나는 인위적인 모서리이든 관계없다. 벌레탐지 신경절세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실제 벌레 뿐만이 아니라 움직이는 검은 반점에는 동일한 반응을 나타낸다. 그렇기 때문에 신경절세포는 그것이 탐지하는 대상의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추상적 또는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탐지기는 탐지의 대상이 어떻게 주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바가 없지만, 그 대상이 확실하게 주어졌을 때에만 반응하도록 사전 조정되어있다. 예컨재, 모서리 탐지기는 모서리가 너무 희미하면, 즉 밝음에서 어둠으로의 전이가 지나치게 점진적이면 반응하지 않는다. 벌레 탐지기는 작고 검은 반점이 움직이지 않으면 반응하지 않는다. 개구리에게 방금 잡아서 신선하지만 죽은 벌레들을 먹이로 주면 모두 굶어 죽을 것이다. 이것들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개구리가 볼 수가 없다. 셋째, 네가지 유형의 신경절세포 각각은 전문화되어 있다. 즉, 각각은 다른 유형의 세포가 탐지하는 세부특징을 철저하게 무시한다. 예컨대, 모서리 탐지기는 수용장이 전반적으로 희미해지는 것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네 가지 유형의 신경절세포 각각의 축색은 視蓋의 각기 다른 층으로 연결되어 있다 (Arbib, 1972). 모서리 탐지기의 모든 축색은 동일한 층으로 연결되며, 벌레탐지기의 축색은 다른 층으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모두 같은 장소에 등록된다는 점이다. 즉, 망막의 특정한 수용장에 대한 정보는 시개의 동일한 "축"으로 전달된다. <그림 6>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개는 시야에 대한 지도라기보다는 삼차원의 데이타 행렬이라 할 수 있다. 시야의 어떤 영역이든지간에 개구리는 네 가지 사실을 알고 있다 : 모서리가 있는가? 움직이는가? 영역이 희미한가? 벌레가 있는가? 이러한 물음 각각에 대한 담은 二進 方式으로 (예/아니오 방식으로) 부호화한다 : (1) 움직이는 그림자 (천적일 가능성이 크다)로부터 어두운 지역으로 도망가는 반면, 바위나 나무 (모서리에 의해 탐지되는)에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다. (2) 벌레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좌표상의 위치에다 (끈끈한) 혀를 위치시킨다. Arbib (1972)는 이 회로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매혹적이고도 가능성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개구리는 공간위치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공간이 바로 시개이 체제화원리이다. 그러나 공간위치는 명시적으로 부호화되지 않는다. 두뇌는 "생체공간적" (somato-topic)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두뇌는 위치에 대한 정보를 명시적으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타를 가지고 있는 세포들 사이의 상대적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이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다. 개구리의 시개는 세상에 대한 공간정보를 공간적인 방식으로 체제화하도록 만들어져있다. 개구리는 공간을 그렇게 지각하도록 생득적으로 배선되어 있다. 시개의 특정 축은 공간의 특정 영역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으며, 축은 공간지도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배열되어있다. 만일 신경절세포의 축색이 시개에 무선적으로 연결되어있다면, 개구리는 세상을 공간적 방식으로 지각할 수가 없을 것이다. 동일한 지점에 대한 정보가 동일한 장소에 등록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공간상에 이웃하는 지점에 대한 정보가 무선적으로 산재하게 된다. 개구리의 시각능력 발달에 학습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계없이, 이 능력이 발달하는 한에 있어서는 사물이 공간적 틀에 따라서 지각되도록 발달한다. 개구리가 공간적 방식으로 사물을 보는 것을 학습한다고 말하는 것은 개구리가 두뇌를 학습한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플라톤으로부터 칸트에 이르는 철학자들이 비록 개구리가 아니라 인간의 지식에 대해서 언급하였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우리의 경험을 공간적인 방식으로 배열하는 것을 학습할 수 없다고 주장하여왔다. 사실은 이와 정반대이다 : 마음은 세상에 대해 무엇인가를 학습할 수 있기 전에, 우선 세상에 대한 정보를 공간적인 방식으로 배열할 수 있어야 한다.
개구리의 시각세계는 벌레와 그림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동굴속에서만 살아서 단지 그림자만을 볼 수 있는 동물에 비하면 약간은 나은 편이다. Lettvin 등의 연구가 갖는 광의적 함의를 생각해보자. 첫째, 개구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를 알 수는 없지만,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이 세상을 마음 속에 그릴 수는 없다. 예컨대, 개구리는 색탐지기가 없기 때문에 색은 세부특징 탐지시스템의 본질에 의해서 배제될 수 밖에 없다. 이 사실은 우리도 우리의 세부특징 탐지시스템에 의해 제한되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만일 지각이 이미 존재하는 세부특징탐지기의 활성화라면 지각이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둘째, 두뇌는 적은양의 정보만을 받아들이며 그 정보에 근거하여 세계에 대한 모형을 구성한다. 두뇌에 전달되는 정보는 전체 시각상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추상적 세부특징에 대한 정보이기 때문에 두뇌는 모형을 구성하여야 하는 것이다. 셋째, 두뇌가 시각상을 구성한다는 생각에도 잘못이 있다. 시각에서 망막에 주어지는 전자기파의 패턴은 들어오는 불빛의 강도에 상응하는 신경활동의 패턴으로 변환되는 것이 아니라 모서리와 같은 특수한 세부특징의 존재유무를 나타내는 신경세포의 활동패턴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변환은 양적일 뿐만 아니라 질적인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은 우리의 두뇌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경활동의 패턴이다. 우리는 공간 어디엔가 있는 사물들을 보는 것처럼 생각한다. 실제에 있어서 우리는 망막에 주어지는 빛의 패턴이 제공하는 힌트에 근거하여 세상에 대한 생각을 구성하는 것이다. 비록 여러분은 "세상이라는 것은 바로 나의 생각이다"라는 쇼펜하우어의 주장에 동의할 의향이 없다 하더라도, "세상이란 나의 가설이다"라는 주장에는 동의 할 줄로 믿는다.
신경절세포는 어떻게 망막 수용기의 활동으로부터 모서리와 같은 세부특징들을 추출해내는가? 우리는 개구리의 눈에 네 가지 유형의 세부특징 탐지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각각의 탐지기는 세부특징들을 찾아내는 것인가?
개구리 망막의 격자형배열 (수직적 흥분과 외측억제)이 세부특징을 추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모서리를 탐지하는 문제를 고려해보자. 첫째, 외측억제적 연계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상상해보라. 하나의 수용기는 하나의 신경절세포와 연계된다. 이러한 유형의 1:1배열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림 7> (A)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러한 시스템의 출력은 입력과 동일하다. 그림 상단에 숫자로 표현되어 있는 모서리가 수용기세포에 투영되고 있다. 수직적 연계는 흥분성이며 자극의 밝기가 증가함에 따라서 활동전압을 일으키는 신경절세포의 수도 비례적으로 증가한다고 가정하자. 10단위의 밝기가 수용기에 도달하면, 그 수용기와 연계된 신경절세포도 단위시간당 10회의 흥분을 일으킨다. 이 시스템은 모서리를 탐지 할 수 없다. 신경절세포는 단지 자신이 감시하고 있는 망막 영역에 빛이 들어왔는지의 여부만을 부호화할 수 있을 뿐이다.
Lindsay 와 Norman (1977) 그리고 다른 연구자들은 어떻게 시스템에다가 외측억제를 첨가시켜서 세부특징 탐지기를 구성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여왔다. <그림 7> (B) 는 Lindsay 와 Norman 의 모서리탐지기에 관한 설계를 보여준다. 이들은 수용기가 자신과 연계되어 있는 신경절세포는 흥분시키지만 이웃하는 신경절세포들은 입력 강도의 절반에 비례하는 정도로 억제한다고 -외측억제 연계를 통해서- 생각하였다. 만일 각각의 수용기가 10단위의 입력을 받아들이면 각 신경절세포의 출력은 0 이 된다. : 자신과 연계된 수용기로부터 10단위의 입력을 받아들이지만, 한쪽에 이웃하는 수용기로부터 들어오는 억제적 입력으로 인해서 5단위를 빼앗기며, 반대쪽에 이웃하는 수용기에 의한 억제로 나머지 5단위도 빼앗긴다.
<그림 7> (A) 에서 외측억제가 없는 망막에서는 입력과 출력이 동일하다. 이러한 망막은 쓸모가 없다. (B) 는 외측억제가 존재하는 망막이 모서리를 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요컨대, '10-5-5=0' 이다. <그림 7> (B) 는 신경절세포의 전체배열이 이러한 방식으로 상호연계되었을 때 일어날 사태를 보여준다. 입력은 <그림 7> (A)와 동일하다는 점에 주목하라. 그러나 출력은 상당히 다르다.
신경절세포의 출력을 계산해보면, 모서리에 있는 세포를 제외하고는 모두 0 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회로망은 모서리를 탐지한다. 한 신경절세포가 감시하고 있는 영역에 모서리가 있지 않으면 그 세포의 출력은 0 이 된다. 그 영역이 밝거나 어둡거나간에 관계없이 출력이 0 이 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한편 신경절세포의 수용장에 존재하는 수용기 근처에 모서리가 있으면 그 세포의 출력은 0 이 되지 않는다. 만일 수용기가 모서리의 밝은 쪽에 있다면, 출력은 단위시간당 +2½ 활동전압이 된다. 모서리의 어두운 쪽에 있으면, 출력은 단위시간당 -2½활동전압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밝기를 무시하고 모서리에만 반응하는 탐지기들의 배열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한 가지 사소한 문제점은 출력의 하나가 -2½이 된다는 점이다. 신경절세포가 음수의 활동전압을 방출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개구리 눈의 실제 회로가 작동하는 방식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문제점은 쉽게 해결될 수가 있다. 신경절세포는 자발적으로 단위시간당 5회의 활동전압을 일으키는 비율로 쉬지않고 활동한다고 가정하자. 그렇게 되면 모서리는 단위시간당 5 ± 2½ = 7½,또는 2½ 활동전압으로 표현된다. 이렇게 되면 신경세포 활동이 음수가 되는 문제를 배제시킬 수 있다. 진화과정에서도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실제로 신경세포들은 이러한 자발적 활동을 보인다.
우리는 어떻게 모서리탐지기를 구성할 수 있는지를 보았다. 만일 우리가 기계를 만드는 공학자라면 여기서 중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물음은 이것이 실제 유기체 내에서 모서리탐지기가 구성되는 방법인지의 여부에 있다. 참게의 시각시스템을 대상으로 한 Ratliff (1965)의 연구는 이 물음에 서광을 비춰주었다. 참게는 그 눈의 해부학적 구조로 인해서 시각을 연구하기에 아주 이상적인 동물이다. 참게의 눈은 개별적인 수용기, 즉 홑눈으로 구성된 복눈을 가지고 있다. 홑눈들은 외측억제망으로 상호간에 연계되어 있다. 하나의 홑눈만을 자극하면 이웃하는 홑눈들이 억제된다. 눈을 덮고 있는 렌즈와 기타 다른 물질들을 제거하면 정확하게 하나의 홑눈만을 자극할 수 있다. 홑눈에서 오는 정보를 수집하는 신경절세포의 활동전압을 기록함으로써 수용기에 자극을 가한 효과를 관찰할 수 있다. Ratliff 는 신경절세포의 출력에 미치는 모서리자극의 효과를 검증하였다. 그의 실험결과가 <그림 8>에 나와 있다. 실험의 논리는 일단의 신경절세포는 빛에 노출시키고, 다른 신경절세포는 어둠에 노출시켰을 때 여러 신경절세포의 출력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림 8>에서 물리적 자극에는 밝음에서 어둠으로의 급격한 전이가 있다. 즉, 모서리가 있다. 보는 바와 같이 신경절세포는 모서리에 반응한다. 모서리의 밝은 쪽에 있는 신경절세포는 높은 활동비율을 보이며, 어두운 쪽에 있는 세포는 낮은 활동비율을 나타낸다. 그렇기는 하지만 신경절세포는 밝기 그 자체에도 반응한다. 빛에 노출된 세포들이 어둠에 노출된 세포들보다 활동비율이 높다. 따라서 신경절세포는 모서리와 밝기 모두를 탐지한다. 만일 <그림 7> (B)의 억제계수가 0.5에서 0.2로 낮아진다면, 산술적인 계산에 의해서 검증할 수 있는 것처럼, 시스템은 참게 눈의 반응을 상당히 정확하게 모방할 수가 있다 (Lindsay & Norman, 1977).
<그림 8> 참게 눈에 대한 Ratliff 실험의 결과 : 신경절 세포는 밝기와 모서리 모두를 탐지한다.
인간의 망막은 참게의 망막과 유사하게 작동한다. 인간의 망막도 밝기와 모서리 모두에 민감하다. 19세기에 Ernst Mach (1865)는 오늘날 마하밴드라고 부르게 된 현상을 최초로 관찰하였다. <그림 9> (A)에서 회색띠들이 약간 더 어두운 줄들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관찰해보라. 밝기의 실제 물리적 변화가 <그림 9> (B)에 예시되어 있다. 여러분의 주관적 인상이 <그림 9> (C)에 도식화되어 있다. 물리적 입력과 그 결과로 얻어지는 감각 사이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인간의 눈이 밝기와 모서리를 모두 탐지한다는 데 있다. 그에 따른 한가지 효과는 우리의 눈이 사물의 모서리를 고양 또는 강화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실제로 보는 자극들은 대부분 우리가 지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모호한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 선으로만 그리는 그림이 얼마나 현실감 있게 보이는지를 고려해보자. 실제로 사물의 선그림은 사진만큼이나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재인될 수 있다 (Biederman, 1985). 사람의 얼굴을 그려보라고 하면, 그 그림은 명암보다는 거의 전적으로 선이나 모서리로 구성되기가 십상이다. 이탈리아의 화가 Botticelli는 실제로 모서리를 강조하기 위하여 그림주변에 얇고 검은 선을 칠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그는 보다 사실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이런 방식으로 윤곽을 그렸으리라. 그는 사물이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또한 "보았기" 때문에 자신의 그림에다가 모서리를 첨가한 것이다. 모서리에 대해 우리가 민감한 이유는 망막의 외측억제망에 의해 초래되는 모서리 고양 (edge enhancement) 에 있다.
<그림 9> 마하밴드의 예시. (A) 에서 보는 회색띠들은 (B)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정한 밝기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C) 에서와 같이 어두운 줄들로 분리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사물의 형태 뿐만이 아니라 운동도 지각한다. 형태지각과 운동지각은 부분적으로 독립된 신경회로망에 의해서 수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Zeki, 1974). 여러분도 친구에게 사물 하나를 보여줌으로써 이 사실을 시범보일 수 있다. 구겨진 종이조각이면 충분하다. 친구가 종이조각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그에게 종이뭉치를 갑자기 던져보라. 물론 아랫쪽으로 던져서 친구의 눈같은 곳에 맞기 않도록 해야 하겠다. 거의 예외없이 당신의 친구는 고개를 숙이거나 움츠릴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가? 종이조각은 맞아도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터인데도 말이다. 운동탐지 신경세포가 활성화되어서 반사반응을 유발한 것이다. 신속하게 움직이는 사물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기 전에 피하려고 하는 생득적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적응적 반응이다. 두뇌는 사물의 속도를 분석하기 전에 그 사물의 형태와 의미를 분석할만큼 신속하지 못하다. 어떤 사물들은 빠르게 운동하면 상당한 충격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형태와 의미에 앞서 속도가 분석되어야만 한다. 만일 분석이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빠르게 움직이는 사물은 그 속도가 분석되기도 전에 머리를 강타할 수도 있다. 운동에 관한 정보는 정지된 형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신경절세포와는 다른 신경절세포에 의해서 처리된다는 생리학적 증거들이 있다 (Tolhurst, 1973). 또한 그러한 세포들이 신피질에 투사되는 영역도 다르다는 증거도 있다 (Zeki, 1978). 이 영역의 손상은 정지된 사물을 지각하는 능력에는 아무런 장애도 초래하지 않지만 운동을 지각하는 능력을 파괴할 수 있다.
운동은 어떻게 분석되는가? Lindsay 와 Norman (1977) 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의 운동에 민감한 탐지기를 구성하기 위하여 <그림 10>에 나와 있는 것과 유사한 신경회로망을 제안하였다. 여기서 억제적 연계는 모두 한 방향으로만 편파되어 있다. 운동탐지기에의 입력은 빛에 민감한 수용기로부터 들어온다. 주어진 수용기가 자극받을 때마다 연계되어 있는 매개 신경세포를 즉각적으로 활성화시킨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시스템이 탐지하려고 하는 운동의 속도에 상응할만한 지연시간이 흐른 후에 수용기는 연계되어 있는 매개세포의 왼쪽에 있는 매개세포를 외측으로 억제한다. 마지막으로 <그림 10>의 하단에 나와 있는 신경절세포는 소위 OR게이트와 같이 기능한다고 가정하자. 즉, 어떤 매개세포로부터이든 입력을 받으면 활동한다.
<그림 10> 특정한 속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운동하는 모서리에 민감한 운동탐지기의 설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운동하는 빛은 신경절세포의 연속적인 활동을 유발한다. 빛이 수용기 A위에 있으면, A는 매개세포 a를 활성화시키며, 다시 a는 신경절세포를 활성화시킨다. 빛이 수용기 B에 있을 시간이 되면, 매개세포 b를 통해서 신경절세포를 활성화 시키기 시작한다. 반면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빛은 신경절세포의 활동을 유발하지 못한다. 움직이는 빛이 C위에 있을 때 C는 매개세포 c를 활성화시키지만, 동시에 D로부터의 지연된 억제신호는 c의 활성화를 무력화시킨다. 따라서 활성화와 억제는 상호간에 상쇄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빛이 B위에 있을 시간에는 C로부터의 지연된 억제가 매개세포 b에 도달하게 되어서 B로부터의 흥분성 입력을 적시에 상쇄시킨다.
위에서 언급한 회로망이 특정한 상황에서는 엉터리로 기능하는 불완전한 것이라는 사실이 여러분을 당황케 할는지도 모르겠다. 자그마한 빛의 반점이 수용기 B에만 일정하게 비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생각해보자. 이 반점은 운동탐지 신경절세포의 활동을 유발할 것이다. 왜냐하면 수용기 C로부터 아무런 억제적 입력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완전한 암실에서 빛의 반점을 응시한다면, 마치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것을 자동운동 효과 (autokinetic effect)라고 부른다. 만일 두개의 고정된 빛이 교대로 신속하게 깜박이면 하나의 빛이 두 점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지각된다. 이것은 파이현상 (phi phenomenon) 이라고 부른다 (Wertheimer, 1912). 우리가 가정하는 운동탐지기는 빛반점이 단일 수용기만을 자극할만큼 작은 것이기만 하다면 이러한 착시도 일으킬 수 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매우 신속하게 움직이는 빛도 시스템에서의 억제를 능가하여 신경절세포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빛은 신경절세포로 하여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의 느린 운동을 엉터리로 탐지하도록 만든다. 신경절세포가 활동한다는 의미는 특정한 속도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의 운동이 존재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착시는 영화에서 마차바퀴가 마차의 운동방향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서서히 회전하고 있는 것처럼 지각되는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Lindsay 와 Norman의 운동탐지기는 사람에게서 실제로 발견되는 운동착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우리의 목표는 완별한 운동탐지기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운동을 지각하는 방식에 대한 모형을 고안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실은 잇점을 갖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신경회로망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의 운동을 탐지하는 데만 적합한 것이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의 운동을 탐지하는 또 다른 회로망이 필요하다. 실험적 증거는 특정한 방향으로의 운동만을 탐지하도록 편향되어 있는 신경세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지지한다 (Nakayama, 1985). 모든 신경세포는 順應效果를 보인다 : 계속적인 자극은 신경세포의 반응을 감소시킨다. 순응효과는 세부특징탐지기가 존재한다는 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 순응이 일어나려면 무엇인가가 순응되어야 하며, 순응되는 것이 바로 세부특징탐지기라는 것이 연구의 논리이다. Sekuler 와 Ganz (1963)는 피험자들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운동하는 흑백의 격자무늬에 노출시켰다. 그런 다음에 움직이는 격자무늬에 대한 피험자의 역치를 검사하였다 (즉, 격자무늬를 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흑백 대비가 필요한지를 측정하였다). 만일 검사격자무늬가 순응시킨 격자무늬와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면, 역치가 상당히 증가한다는 사실이 관찰되었다 : 즉, 순응을 시키기 전보다 격자무늬를 보기가 어려워졌다. 이 결과는 방향에 민감한 운동탐지기가 실험의 첫단계에서 피로해졌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우리는 운동의 방향 뿐만이 아니라 그 속도도 지각한다. 속도를 지각하는 한 가지 확실한 방법은 속도를 신경절세포의 활동비율로 부호화하는 것이다. 사물이 빠르게 운동할수록 그 사물을 탐지하는 신경세포의 활동비율도 높아진다. 비록 이것이 상당히 합리적인 가정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틀린 생각이다. Sekuler (1975)는 각기 다른 속도로 운동하는 격자무늬로 사람들의 운동탐지기를 순응시킨 후에, 여러 가지 속도로 운동하는 격자무늬를 탐지해내는 능력을 검사하였다. 느리게 운동하는 격자무늬로의 순응은 느린 운동을 탐지하는 능력을 손상시킨 반면, 빠른 운동을 탐지하는 능력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반대로 빠른 운동을 하는 격자무늬로의 순응은 빠른 운동의 탐지를 손상시킨 반면, 느린 운동을 탐지하는 능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운동의 방향과 속도에 모두 전문화되어 있는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개구리의 경우는 눈에서 바로 수 많은 세부특징 분석이 진행된다. 하등동물들은 흔히 고등동물들에 비해 복잡한 망막을 가지고 있다. 계통발생학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수록 보다 많은 세부특징 분석이 대뇌로 이전되는 것으로 보인다. Hubel 과 Wiesel (1965)은 고양이의 시각처리과정을 연구하였다. 고양이의 시각시스템은 인간의 것과 유사하다. 신경절세포는 대체로 원형을 이루고 있는 수용기 영역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한다. 신경절세포에는 두가지 기본 유형이 있다 (Robson, 1975) : 한 유형은 점-중심 수용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신경절세포는 수용장의 중심부분에 불빛이 있고 주변영역이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을때 최대한으로 활성화된다. 다른 유형의 신경절세포는 멸-중심 수용장을 가지고 있다. 이 세포는 수용장에 불빛으로 둘러싸여 있는 검은 반점이 주어졌을 때 최대한으로 활성화된다. 따라서 사람의 망막과 마찬가지로 한 유형의 신경절세포(점-중신 세포)는 점을 탐지하며, 다른 유형(멸-중심 세포)은 반점을 탐지한다.
망막의 신경절세포로부터 나오는 신호는 고양이 시상의 외측슬상체로 전달된다. 거기서 피질의 후두엽으로 축색을 전달하는 다른 신경세포와 연계된다. 고양이의 시각피질은 다섯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측슬상체에서 나오는 축색은 피질의 제 4수준에서 끝이 난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피질의 층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번호가 매겨져 있다). 고양이의 시각피질은 생체공간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즉, 시각피질은 시야에 대한 지도라고 할 수 있다. 두눈으로부터의 입력은 피질 수준에서 대응되기 때문에, 피질의 한 영역은 공간의 한 영역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Hubel 과 Wiesel (1965)은 고양이에게 시각자극을 제시하고 피질의 각기 다른 층에 있는 개별 신경세포의 활동을 기록하였다. 이 실험의 목적은 각각의 신경세포가 무엇을 탐지하도록 전문화되어 있는 것인지를 찾아내려는 것이었다. Hubel 과 Wiesel 은 고양이의 피질이 위계적 세부특징 탐색 회로망으로 작동한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를 발견하였다. 피질의 하위층에 있는 신경세포는 단순한 세부특징을 탐지하는 반면, 계속해서 상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신경세포들은 보다 복잡한 세부특징을 탐지한다. Selfridge의 복마전 모형에서와 같이 보다 복잡한 세부특징탐지기는 낮은 수준의 탐지기로부터 입력을 받아들인다.
모든 피질 수준에 있는 세부특징 탐지 신경세포들은 수 많은 특성들을 공유한다. 각각의 신경세포는 특정한 시각적 세부특징에 대해 최대한의 반응을 보이지만, 유사한 세부특징에 대해서도 반응을 한다. 주어진 자극이 신경세포가 탐지하는 세부특징과 보다 잘 들어 맞을수록 활동비율도 높아진다. 각 신경세포는 탐지하는 세부특징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피로해진다. 즉, 지속적인 자극은 탐지기의 민감도를 약화시킨다. 피질의 각 틈에 있는 신경세포들은 외측억제 회로망으로 배열되어 있다 (Nelson & Frost, 1978 ; Sillitoe, 1979). 한 신경세포가 세부특징에 의해 활성화되면 주변의 신경세포들을 -시각공간의 인접영역에서 유사한 세부특징들을 부호화하는 세포들을- 억제한다. 외측억제적 배열은 앞에서 설명하였던 것처럼 세부특징들을 추출해내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보인다.
Hubel과 Wiesel 은 피질 후두엽의 제 4층에서 원형적 대칭 세포들을 발견하였다 (<그림 11>을 보라). 이 신경세포들은 망막의 점-중심 신경절세포와 멸-중심 신경절세포로부터 입력을 받아들인다. 이 신경세포로부터의 출력이 Hubel 과 Wiesel 이 단순세포(simple cell) 라고 부르는 신경세포로 전달된다. 두뇌의 원형적 대칭세포와 망막의 신경절세포는 조그만 원형 수용장을 가지고 있다. 단순세포는 보다 크고 긴 타원형의 수용장을 갖는다. <그림 11>에서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특정한 모서리탐지 신경세포의 활성화는 망막의 특정한 직선적 영역을 따라서 어느 곳에든 불빛을 비추면 유발될 수 있다. 그 선분에 바로 이웃하는 선분 영역에 불빛이 비치게 되면 신경세포의 자발적 활동비율이 떨어지게 된다. 망막의 다른 곳에 비친 불빛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이 세포의 최대 활동비율은 수용장에 모서리를 나타내는 빛을 제시함으로써 유발될 수 있다. 여기서 '+' 선분은 불빛을 나타내고 '-' 선분은 어둠을 나타낸다. 한편 '+' 영역과 '-' 영역 모두에 불빛을 비치게 되면 신경세포의 자발적 활동비율에 아무런 변화를 초래하지 않는다. 이 경우에 '-'영역으로부터의 억제와 '+' 영역으로부터의 흥분이 서로서로를 상쇄시킨다.
<그림 11> 피질에서 원형적 대칭세포, 단순세포, 복합세포, 그리고 초복합세포의 연계. 그리고 단순세포와 복합세포의 망막 수용장이 제시되어 있다.
모서리탐지기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 홈탐지기 (slit detector)이다. 이 세포는 중앙에 흥분성 영역이 있고 양쪽면에 억제성 영역으로 둘러싸여 있는 수용장을 가지고 있다 (<그림 11>을 보라). 이 세포는 밝은 선분이 양쪽으로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는 자극이 수용장에 제시될 때에만 최대한으로 반응한다. 그리고 검은 선분이 양쪽으로 밝은 빛으로 둘러싸여 있는 자극이 수용장에 제시될 때 최소한으로 반응한다. 즉 자발적 반응비율이 낮아진다. 선분탐지기 (line detector) 는 이와는 정반대로 작용하여, 검은 선분이 밝은 빛으로 둘러싸여 있을 때 최대한으로 반응한다(<그림 11>을 보라). 홈탐지기와 선분탐지기는 모서리탐지기와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배선방식이 약간 더 복잡하다. 고양이의 시각피질은 생체공간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 즉, 피질의 항 영역은 시각공간의 한 영역에 대응된다. 그 영역내에서는 유사성에 근거하여 체제화되어 있다. 만일 한 신경세포가 수평선분을 부호화하면, 이웃하는 세포는 수평에서부터 10도 돌아간 선분을 부호화하며, 다음 세포는 수평에서 20도 돌아간 선분을 부호화하는 식으로 체제화되어 있다 (Hubel, 1988).
Hubel과 Wiesel 은 단순세포가 망막의 수많은 신경절세포로부터 입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틀림없다고 추론하였다. 만일 고양이 대뇌피질에 있는 선분탐지기를 만들고자 원한다면, <그림 11>에서 보는 것과 같이 일련의 멸-중심 신경절세포들의 출력을 하나의 단순세포에 함께 연계시켜야 이치에 닿는다. 단순세포는 일종의 AND게이트로 간주할 수 있다. AND게이트는 모든 입력이 활성화되어야만 작동한다. 각 신경절세포는 자신의 수용장의 중심부분은 어둡고 주변이 밝을 때에만 활성화된다. 이 모든 신경절세포들이 활성화되는 것은 검은 선분이 정확한 위치에 배열될 때 뿐이다. 단순세포는 모든 신경절세포들이 활성화되었을 때에만 활성화된다. 따라서, 선분이 정확하게 주어졌을 때에만 활성화된다.
Hubel 과 Wiesel 은 고양이 피질의 수준 3에서 보다 일반적인 정보를 추출하는 세포를 발견하였는데, 이것을 복합세포(complex cell)라고 불렀다. 여기서도 모서리탐지기, 홈탐지기, 그리고 선분탐지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 탐지기들은 보다 다양한 자극에 의해서 활성화될 수 있었다. 홈, 선분, 또는 모서리의 특정한 위치는 중요한 것이 아닌 반면, 방향은 계속해서 중요하였다. 어떤 선분 복합탐지기는 예컨대, 시야의 상당히 광범위한 영역에서 어느 위치에서든 특정한 너비의 45도로 기울어진 선분을 탐지하도록 전문화되어 있다. 이러한 유형의 세포를 구성하는 한 가지 확실한 방법은 많은 선분탐지 단순세포들의 출력을 하나의 복합세포로 연계시키는 것이다. 이 경우에 복합세포는 OR게이트로 간주할 수 있다. OR게이트는 입력 중에서 어느 것이든 활성화되면 작동한다 (다시 <그림 11>을 보라).
Hubel 과 Wiesel 은 피질의 보다 상위수준으로 이동하여 그들이 초복합세포 (hypercomplex cell)라고 명명한 세포들을 발견하였다. 초복합세포의 한 유형은 단순세포와 복합세포에 비해 보다 전문성을 보이고 있다. 그 세포는 특정한 길이의 선분과 모서리에 민감하다. 선분을 탐지하는 단순세포나 복합세포는 그 선분이 자신의 수용장 이상으로 계속되는 경우에도 수용장의 크기에 딱 맞을 때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 초복합 선분탐지기를 흥분시키려면 선분은 특정한 길이를 유지하여야만한다. 그러나 망막에서의 위치는 중요하지가 않다. Hubel 과 Wiesel 은 이러한 유형의 세포가 복합세포로부터 입력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추론하였다. 초복합 선분탐지기는 일단의 복합 선분탐지기로부터 (선분의 존재를 지적하는) 흥분성 입력을 받아들이고, 다른 복합탐지기로부터는 (선분의 끝을 지적하는) 억제성 입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틀림없다.
또 다른 유형의 초복합세포인 각도탐지기는 복합세포보다 더욱 일반성을 보인다. 이름이 함축하고 있듯이 이 세포는 각도에 민감하다. 비교적 넓은 수용장을 가지고 있지만, 반응할 각도의 유형에 대해 매우 전문화되어 있다 : 어떤 것은 직각에만 반응하고 다른것은 예각에만 반응한다. Hubel 과 Wiesel 은 <그림 11>에 예시되어 있는 것처럼 구성의 논리적 원리는 하위수준의 방향특수적 선분탐지기로부터의 출력이 각도탐지기로 연계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양이 두뇌에서 세부특징 탐지시스템에 수반된 과정은 Selfridge의 복마전 모형에서 일어나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동물의 지각은 병행처리과정을 수반하는 위계적 세부특징 분석 신경회로망인 것으로 보인다. 이 시스템은 내용을 住所化 시킬 수 있다는 (content addressable) 것도 확실하다. 지각행위는 기억을 자동조회하는 것이다 : 고양이가 시야의 어떤 영역에 있는 각도를 본다는 것은 그 영역에 있는 각도탐지 신경세포가 활성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각한다는 것과 신경세포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은 동일한 사건이다. 고양이 두뇌의 세부특징 분석시스템은 Hubel 과 Wiesel 이 처음에 생각하였던 것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덜 위계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는 점을 언급하여야 하겠다. 예컨대, 어떤 복합세포는 자신에게 입력을 전달해준다고 가상적으로 생각하였던 단순세포가 활동하기도 전에 자극에 대해 반응을 시작한다 (Hubel, 1988 ; Marroco, 1986). 따라서 복합세포는 적어도 단순세포가 아닌 다른 정보원으로부터 신속한 힌트를 받아들인다고 보아야 한다. 격자자극 또는 공간빈도 (흑백이 교대되는 패턴)에 민감한 보다 복잡한 세부특징탐지기가 있다는 증거도 있다 (Ginsberg, 1986).
초복합세포의 출력이 보다 복잡한 패턴을 탐지하는 다른 신경세포에 대한 입력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추론하는 데는 그렇게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예컨대, 각도탐지기의 출력이 정사각형, 삼각형, 등의 탐지기를 구성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나중에는 쥐탐지기와 할머니탐지기 등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재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즉, 쥐나 할머니가 시야의 어디에 존재하든지간에 어떻게 재인될 수 있는 것인지를 설명할 수 있다. 원숭이는 고양이에서 찾아진 위계와 거의 동일한 세부특징탐지기의 위계를 시각 피질에 가지고 있다 (Hubel & Wiesel, 1965). Gross (1973)는 원숭이 피질의 다른 영역에서 훨씬 복잡한 패턴의 탐지기로 보이는 신경세포를 발견하였다. 한 가지 유형의 신경세포는 원숭이 앞발탐지기로 보인다. 이 세포는 원숭이의 앞발이 특정한 방향을 하고 있을 때 최대반응을 나타낸다! 이 세포는 사람의 손과 원숭이 앞발을 닮은 사물에도 어느 정도는 반응을 보이지만, 다른 자극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삼각혁, 정사각형, 그리고 심지어는 얼굴탐지기로 보이는 다른 신경세포들도 발견되었다 (Bruce, Desimone, & Gross,1981).
원숭이 앞발탐지기, 원숭이 얼굴탐지기 등등의 출력이 일반적인 원숭이탐지기로 작용하는 신경세포에 수렴할 가능성이 있는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일이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실현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Erickson, 1984). 신경세포의 분산된 전체배열이 궁극적으로 원숭이탐지기, 쥐탐지기, 또는 할머니탐지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즉, 원숭이, 쥐, 또는 할머니를 보는 것은 단일 신경세포의 활성화에 대응되기보다는 그 자극들이 가지고 있는 세부특징들을 부호화하는 신경세포의 전체 집합의 활성화에 대응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두뇌에는 수백억개의 신경세포가 있으므로 신경세포의 정확한 집합을 찾아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겠다. 그렇기는 하지만 심리학자로서 우리의 진정한 관심사는 원숭이, 쥐, 그리고 할머니와 같은 지각체를 부호화하는 마디 또는 인지단위가 존재하는지의 여부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지단위가 신경세포로부터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과제는 신경과학자들의 몫이라 할 수 있다.
하등동물들은 단순한 불변적 세부특징을 탐지함으로써 재인과제를 해결하는 반면에, 고등동물들은 많은 세부특징으로 정의 되는 사물을 재인할 필요가 있다. 재인에 대한 Selfridge 의 복마전 모형에 담겨져 있는 기본 생각은 복합자극을 동시에 존재하는 세부특징들의 독특한 집합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재인은 이러한 세부특징들의 위계적 추출과 결합으로 구성된다. 개구리 눈에 대한 Lettvin 등의 고전적 실험은 개구리가 실제로 세부특징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망막과 두뇌의 격자형 구조가 모서리와 같은 시각적 세부특징을 추출해내는 데 작용할 수 있다. Ratliff 의 참게 눈 연구에서부터 사람의 지각에서 모서리 고양에 관한 Mach 의 시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증거들은 망막과 두뇌가 그러한 세부특징을 추출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고양이와 원숭이에 대한 Huble 과 Wiesel 의 실험은 이러한 동물들이 Selfridge 가 제안한 것과 유사한 위계적 세부특징 분석 신경회로망을 가지고 시각자극을 처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마도 인간의 패턴재인도 고양이와 원숭이의 패턴재인과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