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컴퓨터

 

두뇌에 도전하는 미래 컴퓨터 : 지학사 기획, 과학세대 편저, 도서출판 벽호, 2000, Page 117~146

 

생각하는 기계를 향하여

  흉내내기 어려운 ‘상식’

  인공 지능의 창시자들

뛰어난 조수, 전문가 시스템

  전문가에 도전한다

  인간의 추리를 흉내내는 전문가 시스템

언어의 벽을 허문다

  사람들을 놀라게 한 ‘엘리자’

  기계 번역을 위한 노력

 

생각하는 기계를 향하여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오래 전부터 품고 있던 꿈 중의 하나인 '사람과 똑같은 지능을 갖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오랜 옛날 수도사들이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밀랍 인형에서 오늘날 SF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이보그'의 꿈에 이르기까지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한결같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꿈이 현실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1946년 본격적인 전자식 컴퓨터가등장하면서였다.
그러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도의 지적 능력은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 간단하게 실현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적 능력 자체가 아직 분명하게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정신적 능력이 밝혀지려면 생명의 신비 자체가 풀리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사람과 똑같은 지적 능력을 가진 기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보다는 ‘얼마나 인간에 가까운 기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이 옳다고 할 수 있다. ‘기계는 어디까지 인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이때 기계란 가장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진 기계, 즉 컴퓨터를 가리킨다. 따라서 ‘인간에게 가까운 지적 컴퓨터’를 실현하는 것이 오늘날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흉내내기 어려운 ‘상식’

그러면 사람과 컴퓨터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서로 어떻게 다를까? 물론 사람과 컴퓨터를 비교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의 두뇌와 컴퓨터는 근본적으로 그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이해하기 위해서 간단하게 그 특징을 비교해 보기로 하자. 오늘날 모든 분야에서 빠지지 않고 컴퓨터가 사용되는 이유는 컴퓨터가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선 컴퓨터가 갖고 있는 장점을 살펴 보기로 하자.

첫째, 컴퓨터는 아주 빠른 속도로 수치 계산을 할 수 있다. 오늘날 이용되고 있는 슈퍼 컴퓨터는 20줄 정도의 10진수 계산을 1초에 수백억 번 반복할 수 있다.

둘째, 많은 정보 (데이터) 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필요할 때 빠른 속도로 찾아볼 (검색할) 수 있다. 물론 사람도 상당히 많은 양의 정보를 기억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는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내용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사람은 어떤 내용을 기억하려면 여러 번 반복해서 학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컴퓨터는 단 한 차례만 입력시켜주면 영원히 잊지 않는다. 또한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려지고 마침내는 잊고 만다. 하지만 컴퓨터는 일부러 그 자료나 정보를 지우지 않는 한 언제든지 정확하고 빠른 속도로 기억해 낼 수 있다.

셋째, 아주 미세하고 복잡한 처리도 쉽게 한다. 요즈음은 복잡한 정밀 기계를 제어하는 데 컴퓨터가 많이 사용된다. 백 분의 1밀리미터라도 오차가 생기면 안 되는 정밀 부품을 깎는 일이라든가, 아주 복잡한 화학 처리를 해야 하는 일 등에서 컴퓨터는 놀라운 성능을 발휘한다.

넷째, 전원만 끊어지지 않으면 언제까지도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 사람이라면 단순한 반복 작업에 금방 싫증을 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능률이 떨어지고 오랫동안 일을 계속할 수 없다. 하지만 컴퓨터는 프로그램만 제대로 되어있고 전원이 끊어지지 않는 한 언제까지라도 똑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다.

이처럼 컴퓨터는 사람에 비해 뛰어난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지능’을 가졌다고 하기는 어렵다. 컴퓨터는 사람이 내린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일 수 있을 뿐 스스로 알아서 일을 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컴퓨터처럼 많은 자료나 정보를 기억할 수 없고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능력도 없지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뉴로 컴퓨터에서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자세히 비교하겠지만 사람은 얼마 안 되는 정보를 가지고도 종합적으로 사고 (思考) 하고 추리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가령 문틈으로 삐져나온 고양이의 꼬리만 봐도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는 단번에 고양이인 줄 안다. 하지만 컴퓨터는 꼬리만 가지고는 무엇인지 판단하지 못한다. 컴퓨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과 똑 같은 것만을 고양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흔히 컴퓨터를 ‘세 살짜리 어린아이만도 못한 아이큐 0의 기계’라고 말한다. 인공 지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컴퓨터에게 제일 시키기 어려운 일이 ‘극히 상식적인 일’이라고 털어놓는다.

사실 컴퓨터에게 전문적인 일을 훈련시키기는 비교적 쉬운 편이다. 사람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복잡하고 정밀한 작업도 컴퓨터는 척척 해낸다. 이런 작업은 일정한 순서와 법칙에 따라 프로그램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컴퓨터에게 길 건너편 구멍가게에 심부름을 보내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 우선 길을 건너려면 신호등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마주오늘 사람과 부딪히지 않게 피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수많은 가게 중에서 음료수를 파는 식료품 가게를 구분하려면 간판에 써있는 글자를 읽어야 한다. 이렇게 간단한 심부름을 시키는 일이 훨씬 어려운 까닭은 컴퓨터가 지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공 지능의 창시자들

인공 지능(AI)이라는 말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56년이었다. 미국의 다트머스 대학에서 오늘날 인공 지능의 거두로 손꼽히는 네 명의 과학자들이 조그만 회의를 열었다. 네 사람은 엠아이티(MIT) 대학의 마빈 민스키, 다트머스 대학의 존 맥카시, 아이비엠 연구소의 로체스터, 그리고 벨 연구소의 섀넌이었다. 당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던 네 사람의 작은 모임이 오늘날 컴퓨터 분야에서 가장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인공지능 연구의 모태가 된 것이다. 컴퓨터가 처음 탄생한 1950년대 이래 일반인들은 물론 과학자들도 컴퓨터의 미래에 대해 상당히 낙관적인 예측을 했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보통 사람 정도의 지능을 가진 기계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이 기계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농담을 하고 사무실에서 타자를 치고 자동차에 페인트칠을 할 수도 있다. 또 기계는 아주 빠른 속도로 지능이 발달해서 몇 달 후에는 천재의 수준이 되고 몇년 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민스키 교수의 호언 장담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사실 아직까지도 ‘인공 지능이 가능한가’를 둘러싼 토론은 끝이 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마빈 민스키를 비롯한 초창기 인공 지능 연구자들의 선구적인 노력은 인공 지능 분야에 상당한 공헌을 남겼다.

인공 지능이 컴퓨터의 한 분야로 정착한 이후 인공지능 연구는 크게 두 가지방향으로 나뉘게 되었다. 첫번째 방식은 동물의 뇌를 모방하려는 것이다. 사람을 비롯해서 모든 동물의 뇌는 뉴런이라 불리는 신경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뇌와 뉴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뉴로 컴퓨터에 나온다.) 따라서 뉴런이 움직이는 모습을 그대로 본따 컴퓨터의 2진 체계로 만들려는 것이다. 이 분야에서 가장 선구적인 연구를 한 사람은 프랭크 로젠블럿이라는 미국의 과학자였다.

로젠블럿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뇌의 구조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뇌가 움직이는 원리를 그대로 본따 컴퓨터에 응용하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추론, 학습과 같은 고도의 정신 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거기에 ‘퍼셉트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연구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장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2년 후 최초로 선을 보인 퍼셉트론 장치는 빛을 감지할 수 있는 광전지로 이루어진 눈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광전지 눈 앞에 놓인 물체에서 나오는 빛의 세기를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 어떤 물체인지 식별할 수 있었다. 최초의 실험은 모습이 다른 두 개의 사각형을 컴퓨터가 식별하게 하는 것이었다. 실험에 사용된 컴퓨터는 당시 가장 뛰어난 성능을 가진 아이비엠의 704 컴퓨터였다. 커다란 컴퓨터가 30분 정도 돌아간 다음 퍼셉트론은 사각형들을 구별해 냈다. 사람이라면 1초밖에 걸리지 않을 일을 30분 동안 걸려 해 낸 것이다. 그 후 로젠블럿의 장치는 알페벳의 문자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발전했다.

그런데 이 방식은 곧 상당한 어려움에 부딪히고 말았다. 사람의 뇌에는 무려 100억 개나 되는 뉴런이 있다. 그런데 가장 발달한 퍼셉트론도 고작 수백 개의 뉴런밖에는 갖추지 못했다. 그러니 사람은커녕 20만 개의 뉴런을 가진 개미의 뇌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수준이었다.

퍼셉트론이 하등 동물에서 시작해서 인간의 수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밑에서 위로’의 방식이었다면 마빈 민스키교수로 대표되는 다른 한 방향은 ‘위에서 밑으로’의 방향이었다. 그러니까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도의 지적 능력을 컴퓨터가 모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그들은 “당장 컴퓨터에게 시킬 일도 많은데 개미의 신경이나 연구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입장인 셈이다. 요즈음 ‘인공 지능 세탁기’, 인공 지능∙∙∙’ 하면서우리들 안방에 까지 찾아드는 전자 제품이나 사람의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전문가 시스켐은 모두 이런 방향의 연구에 의한 것들이다. 근본적인 구조 면에서는 전혀 사람과 다르지만 기능적인 면에서는 사람을 흉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이다.

뛰어난 조수, 전문가 시스템

전문가에 도전한다

오늘날 인공 지능 분야에서 가장 성공을 거둔 예가 ‘전문가 시스템’이다.전문가 시스템이란 말 그대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일정한 전문 분야를 컴퓨터에게 대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제일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옛날에는 아버지가 도자기를 굽는 도공이면 아들, 손자 대를 이어 같은 일을 했다. 도자기를 굽는 일은 매우 어려워서 수십 년 동안 기술을 익히지 않으면 제대로 된 도자기를 얻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 기술은 아무에게나 전해주지 않고 자식에게만 비법으로 전해지곤 했다. 요즈음에도 숙련공들이 없으면 공장이 돌아가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더군다나 아무나 익힐 수 없는 비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큰 공장에서도 한두 사람밖에는 없기 마련이다.

수프를 만드는 캠벌 수프 회사에 시미노라는 이름의 기술자가 한 명 있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같은 일에 종사하면서 수프를 깡통에 넣을 때 살균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전문가가 되었다. 시미노는 나이가 들어 정년 퇴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를 대신할 기술자가 없었다. 당황한 회사측은 시미노가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컴퓨터에 담아 컴퓨터 전문가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 날 이후 시미노는 컴퓨터 전문가와 붙어 살다시피 했다. 컴퓨터 전문가는 시미노의 머리속에 들어있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빼내 컴퓨터에 옮겨넣은 작업을 계속했다. 가령 “소독 기구가 고장이 날 때”, “온도가 유지되지 못하는 경우” 등등 있을 수 있는 모든 사고에 대해 해결책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프로그래머는 숙달되지 못한 직공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즉시 컴퓨터를 두들겨 처리 방법을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후일 회사측은 그 프로그램이 최소한 95퍼센트 정도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어떤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작업하면서 전문가의 능력을 컴퓨터로 옮기는 사람을 ‘지식 기사’라고 부른다.

이처럼 사람의 지식을 전수 받아 숙달된 전문가 이상의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너럴 모터스 자동차 회사에서도 찰리 앰블이라는 기술자가 정년 퇴직을 하게 되자 그의 지식을 활용해 찰리 시스템이라는 고장 진단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 덕에 제너럼 모터스사는 약간의 훈련만 받은 기능공만으로도 훌륭하게 고장을 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이런 전문가 시스템은 여러 방면에서 놀라운 활약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통신 회사는 거의 매일같이 고장이 일어나는 전화 교환기를 수리하는 데 전문가 시스템을 사용한다. 이 시스템은 교환기에서 나오는 신호를 분석해서 어느 부분에 고장이 있는지 알려줄 뿐 아니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까지 순서를 매겨 친절하게 일러준다. 맥도널 항공회사는 F/A-18 항공기를 정비하는 데 전문가 시스템을 활용한다. 비행기가 임무를 마치고 비행장에 들어오면 컴퓨터는 비행 중 일어나는 고장을 찾아낸다. 이 때 비행사는 비행 중에 느꼈던 비행기의 이상을 컴퓨터에 입력시켜 컴퓨터가 정확하게 고장 원인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비행기의 이착륙을 지시하는 항공 관제탑이나 기차들이 선로를 통과하는 시간을 조절하는 시스템에서도 전문가 시스템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이런 시스템은 약간의 오차만 일어나도 비행기나 열차가 충돌하는 참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 시스템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밖에도 전문가 시스템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해 주는 보조 의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의학은 공학 분야 못지않게 많은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 내과, 외과, 신경외과등을 입력시켜 필요 시 정확한 진단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의사를 도와주는 조수 역할에 그치고 있지만 일부 분야에서는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가령 사고로 팔이나 다리의 뼈가 부서져서 인공 뼈를 만들어야 할 경우가 그렇다. 컴퓨터 그래픽과 결합한 전문가 시스템은 X-레이 촬용으로 손상된 뼈를 확인한 다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인공 뼈를 깎아낸다.

인간의 추리를 흉내내는 전문가 시스템

그러면 전문가 시스템은 어떤 원리로 움직이면서 사람 못지않은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전문가 시스템의 동작 원리를 이해하려면 우선 사람들이 생각을 하고 판단하는 원리를 살펴보아야 한다.

명탐정 셜록 홈즈나 형사 콜롬보는 추리의 명수이다. 다른 사람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사건도 이들이 나서면 금새 의문이 풀리곤 한다. 범인들은 대개 자신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해 증거를 없앤다. 최근에는 첨단 과학 장비까지 동원해 감쪽같이 완전 범죄를 노린다. 그래서 지능적인 범죄는 엉킨 실타래처럼 수많은 사건들이 얽히고 설키게 마련이다. 하지만 명탐정들은 아주 하찮은 단서를 가지고도 범인을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추리의 힘이다. 그런데 추리란 탐정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도 매일같이 추리를 한다. 물론 탐정이나 형사들처럼 복잡한 것은 아니겠지만.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세찬 바람이 불면 누구나 “곧 소나기가 오겠구나!”하고 생각한다. 이 때 우리 머리 속에서는 ‘먹구름이 끼면 비가 온다”는 추리가 이루어진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의 겨울 날씨는 ‘3한 4온’이 정확하게 지켜졌다. 그래서 어른들은 사흘 동안 추위가 계속되면 “내일부터는 날씨가 풀리겠구나” 하고 말하고 했다. 3한 4온을 보고 감탄을 하곤 했다. 이때 할아버지는 “사흘이 추우면 나흘 동안은 따뜻하다”는 추리를 한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하면 ∙∙∙하다”는 식으로 생각을 한다.이것은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if (-하면), than (-하다)” 이라고 한다. 명탐정들이 머리카락 하나를 가지고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식의 추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이 가늘고 파마머리’ 이면’ 여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식으로 범인을 추리해 가는 것이다.

전문가 시스템은 바로 이런 사람의 추리 능력을 본 딴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if∙∙∙then” 이라는 규칙을 사용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처리해 나간다. 컴퓨터는 사람에 비해 기억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수많은 자료를 입력시킬 수 있다. 그러니까 전문가 시스템의 기억 장치는 형사 콜롬보가 와주는 보조 의사 전문가 시스템의 예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어린이 환자가 찾아오면 컴퓨터는 우선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한다. 사람은 술을 마셔서 눈이 빨갛게 될 수 있고 눈병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 시스템은 주어진 정보에서 환자의 나이가 10살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첫 번째 가능성 (술을 마셨을 가능성) 을 제외시킨다. 컴퓨터에는 이미 어린아이가 술을 마실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정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전문가 시스템은 아이가 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추가 정보를 요청한다. 즉 최근 수영장에 가거나 주위에 눈병을 앓은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여기서는 간단한 예를 들었지만 컴퓨터는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입력만 정확하게 된다면 병을 잘못 진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진찰을 받고 오랫동안 기다릴 필요도 없다.

최근에는 핵발전소의 원자로를 수리하거나 깊은 바닷속에 유전을 찾는 일처럼 위험한 작업에 전문가 시스템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때에는 카메라로 된 눈과 기계 손이 함께 사용된다. 미래에는 슈퍼 컴퓨터와 연결된 전문가 시스템이 범죄 수사에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교묘하고 지능적인 범인이라도 컴퓨터 형사를 속여넘기기는 힘들 것이다.

언어의 벽을 허문다

사람들을 놀라게 한 ‘엘리자’

인공 지능에 대한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가 아직까지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언어의 장벽이다. 컴퓨터는 0과 1로 된 2진수밖에 알아들을 수 없다. 따라서 컴퓨터와 대화를 하려면 특수한 프로그램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컴퓨터와 사람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이런 바람은 컴퓨터가 처음 개발된 직후부터 많은 사람들의 꿈이었다. 1960년 중엽 미국 엠아이티 (MIT) 대학헤서 컴퓨터 과학을 연구하던 조지프 웨이전붐이라는 사람이 아주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엘리자’라는 이름을 가진 이 프로그램은 사람과 능숙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물론 진짜 말을 하는 것은 아니고 키보드를 이용해 질문을 쳐넣으면 화면에 대답이 나오는 식이었다. 그렇지만 컴퓨터와 말을 주고받는다는 호기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그 후 엘리자는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되어 상당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정신과 의사들은 심리 상태가 불안한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병의 원인을 진단하곤 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아주 교묘하게 만들어져서 환자들이 곧잘 진짜 의사와 말을 주고 받고 있는 줄 착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엘리자는 환자의 말에서 정보를 얻어 교묘하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가령 다음과 같은 대화를 살펴보자.

환 자 ; 저는 항상 기분이 침울해요
컴퓨터 ; 당신이 침울하다니 참 안됐군요
환 자 ; 제 남자 친구가 저를 이곳에 오게 만들었어요.
컴퓨터 ; 당신의 남자 친구가 당신을 이곳에 오게 만들었다구요?
환 자 ; 그래요. 전 도움이 필요해요.
컴퓨터 ; 어떤 도움이 필요하지요?
환 자 ; 어머니와 사이 좋게 지내질 못하거든요.
컴퓨터 ; 당신 가족에 대해 이야기 좀 해 주겠어요?

이 대화를 보면 컴퓨터는 완벽한 의사 노릇을 하고 있다. 마치 환자에 대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환자의 말 중에서 정보를 얻어 그것을 다시 질문으로 만드는 간단한 공식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가령 환자가 ‘전 도움이 필요해요’라고 이야기 하면 ‘도움’이라는 말을 받아 재빨리 ‘어떤 도움이 필요하지요?’라고 묻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신과 환자들이 자주 호소하는 ‘외로움’, ‘고통’, ‘도움’ 등등의 말에 대해서는 되받아 질문을 던지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는 것이다. 적당한 단어가 나오지 않는 경우에는 ‘글쎄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는 식으로 말을 끊어지지 않게 하는 재주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어머니 같은 단어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식구’, ‘가족’ 등으로 말을 바꾸어 질문을 던질 수도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결코 똑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감쪽같이 속아 넘어 걸 수 밖에 없었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웨이전붐은 사람들이 엘리자에 지나치게 빠져들자 놀랄 정도였다. 엘리자는 그저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어떤 환자들은 믿지 않고 한없이 대화를 나누려 들기도 했다. 심지어는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여비서까지도 처음 엘리자와 대화를 나눠보고는 푹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웨이전붐에게 “미안하지만 엘리자와 단둘이 있게 방에서 나가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기계 번역을 위한 노력

한편 컴퓨터 과학자들은 엘리자처럼 단순히 말장난을 하는 수준이 아니라 진짜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컴퓨터 번역 프로그램이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일은 아주 어렵다. 우리 나라도 중학교부터 영어를 공부하지만 십여 년 동안 외국어를 공부해도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정은 우리 나라뿐 아니라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외국어 때문에 빼앗기는 시간과 불편을 없애기 위해 세계 공통어를 만들자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나라의 말과 글은 제각기 고유한 전통, 역사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난다 해도 쉽게 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컴퓨터를 이용한 기계 번역은 그런 불편을 없앨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소련이 1957년에 세계 최초의 인공 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자 미국은 크게 놀랐다. 그래서 미국의 학자들은 소련의 과학 정보를 빠르게 받아보기 위해 러시아어를 영어로 번역할 수 있는 기계 번역 시스템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는 컴퓨터가 아직 발달하기 전이어서 대형 컴퓨터도 오늘날 개인용 컴퓨터에 훨씬 뒤지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언어에 대한 연구도 따르지 못해 러시아어의 단어를 영어 단어로 바꾸는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이처럼 외국어의 단어를 그대로 바꾸는 기계 번역을 제1세대 기계 번역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How are you?” 를 번역한다고 생각하자. 그러면 1세대 번역기는 ‘How’ → ‘어떻게’, ‘are’ → ‘이다’, ‘you’ → ‘당신’이라고 번역한 다음 순서만 바꾸어 “당신은 어떻게 입니까”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결국 미국 과학 재단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당시 나왔던 보고서에는 “기계 번역의 장래는 NO”라는 유명한 말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후 컴퓨터의 발달과 문장 구조에 대한 과학적 이해로 기계 번역에 대한 연구는 다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2세대 번역에서는 단순히 단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장의 구조를 해석하는 방법이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우선 외국어를 외국어 문법에 맞게 분석한 다음 문장을 구성하는 성분들을 우리 말에 해당하는 성분으로 바꾸어내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변환’이라고 부른다. 가령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간단한 문장을 영어로 바꿀 때 다음과 같은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그림 p139)

80년대에 이르자 컴퓨터를 이용한 번역은 한 차원 더 높아지게 되었다. 사실 기계 번역이 인공 지능과 연결된 것은 이 때부터였다. 그래서 이 번역을 3세대 기계 번역이라고 한다. 언어는 문법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의미를 띤다.
따라서 제3세대 번역은 문장 구조뿐만 아니라 관습, 상식, 전문 지식 등을 모두 동원해 사람이 쓰는 말에 가장 가까운 번역을 시도한다. 기계 번역에는 언어학, 심리학 등등 여러가지 학문이 참여해서 종합적인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말이란 인간의 두뇌 활동을 통해 나오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의식 활동 전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또한 3세대 번역에서는 한 나라 말을 다른 나라 말로 바꿀 뿐 아니라 여러 나라 말을 한꺼번에 번역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통합을 시도하고 있는 유럽 공동체 (EC) 는 ‘유로트라’라는 번역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등 무려 9개 국어를 번역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최근 ‘일어→한국어’, ‘영어→한국어’로 번역할 수 있는 번역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실험한 결과로는 약 80퍼센트 정도의 정확도를 갖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컴퓨터에게 골치 아픈 번역을 모두 맡길 수 있을까?

하지만 아직까지 번역할 수 있는 글은 컴퓨터 안내서 (매뉴얼) 나 과학 서적 정도이다. 그것도 사람이 다듬지 않고는 그냥 읽을 수 없는 수준이다. 문학 작품이나 시 (詩) 처럼 고도의 은유나 상징이 들어있는 글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외국어를 공부하지 않고 컴퓨터에게 번역을 시키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인간이 컴퓨터를 도와주는 기계 번역’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컴퓨터가 번역을 하다가 잘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사람에게 질문을 해서 도움을 받는 식이다. 이 정도만 되어도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많은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컴퓨터와 인공 지능의 발달은 반드시 전자동 기계 번역을 이루게 될 것이다.

현재 인공 지능은 여러 분야에서 상당한 발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람을 보조하는 조수 역할에 머물고 있는 수준이다. 따라서 ‘지능을 가진 컴퓨터’ 라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셈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공 지능 기술들은 여전히 사람보다는 컴퓨터에 가깝다. 따라서 정확하게는 인간의 지능을 흉내내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지능을 가진 컴퓨터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살펴보게 될 뉴로 컴퓨터와 바이오 컴퓨터 등이 바로 그러한 분야들이다. 현재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인공 지능과 뉴로 컴퓨터, 바이오 컴퓨터의 차이는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