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는 창의력이 있는가?

 

컴퓨터와 인간지능 : Donald G. Fink 저, 이기호 역, 이화여대 출판부, 1986, Page 231~251

 

예술에서의 구상과 우연

Illiac 과 그것이 만든 음악

창작력 : 우연 대 의지

두뇌는 일종의 기계인가?

장기 전망

 

 

이제 우리는 연구의 마지막 문제에 이르렀다. 기계가 예술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기계가 문학 작품을 쓸 수 있는가? 컴퓨터가 사상의 상징들을 지적 창조물의 거대한 구상으로 조직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인간 세게는 상상으로만 생각해 볼 때 풍요해질지도 (또는 타락될지도 !) 모른다.

현 상태로 보건대 기계가 창의력을 가졌다고는 좀처럼 말할 수 없다. 사실 창의력에 대한 시작은 되었다. 컴퓨터가 예술적인 형태는 만들어냈지만 그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늘날의 컴퓨터는 고작 창조적인 일을 하는 인간을 도울 수 있는 정도이다. 따라서 우리의 질문들은 미래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생각컨대 기계가 과연 질적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걸작과 같은 독창적이며 주목할 만한 창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창조적 구성을 위해 사용된 상징과 유형과 처리과정을 조사해 보고 이것들을 컴퓨터에서 쓰는 상징과 유형, 그리고 처리과정에 대응시켜 보자. 컴퓨터는 예술을 포함하는 모든 상징의 방식을 처리할 수 있다. 컴퓨터는 끊임없이 다양하게 이들 상이점을 식별해 낼 수 있다. 한 프로그래머가 창조적 노력에 의한 예술적 우수성에 대한 판단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면 그는 컴퓨터를 조정해서 이를 판단 기준에 적합한 모형을 찾아서 비판적 평가를 위한 모형을 출력할 수 있다.

투링의 시험에서 보듯이 비평가가 문제의 작품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기계에 의한 것인지를 결정할 때 (또는 추측할 때) 기계가 예술의 영역에서 인간을 모방할 수 있다는 증거로 판단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지적인 기계를 판정하는 데 작품에 의해서 해야지 방법에 의하면 안 된다.) 필자가 아는 한 어떠한 컴퓨터 체제도 이러한 시험에 굴복하지 않았다. 앞으로 언급하겠지만 Illiac 컴퓨터는 음악을 작곡하도록 프로그램되었다. 그러나 음악학자가 인정하는 최대의 것은 출력이 아물 "가치있다 (interesting)" 고 하더라도 인간의 것에는 도저히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우연 (chance) 의 계획적인 도입이라는 기법에 대해 이 책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 음악 작곡을 위한 Illiac 프로그램에 약간의 시간을 소비하고자 한다. 작곡 기계는 음부를 닥치는대로 빠르게 골라내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음부의 연속은 몇 개의 테스트를 거치는 데, 이 테스트는 작곡의 규칙과 주어진 구성의 유파에 기초하는 것이다.  어떤 연속체가 이들 시험에 적합하다면, 또한 그것이 먼저 것과 나중 것과 대체로 연결된다면, 테스트마다 컴퓨터는 그것을 출력한다. 적합하지 않으면 컴퓨터는 연속체를 거부하고 무작위로 만들어진 다른 양식을 시험한다.

예술적 구성을 위해 프로그램된 컴퓨터는 무엇보다 우선 그 예술의 상징 (= 기호) 들을 다루어야 한다. 음악은 상대적으로 적은 기호수를 갖고 있고 이러한 편리함 때문에 음악은 실험에 적합한 후보가 된다. 두 번째로 컴퓨터는 관계되는 예술의 구성 규칙 내에서 상징들을 배열하도록 제한받는다. 음악의 경우 잘 규정된 규칙의 세트가 사용된다. 세 번째로 컴퓨터는 규칙에 의해 금지되지 않는 방식으로 모형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자유로와야 한다. 이것은 작곡자에게 그의 창조 충동을 만족시킬 형식을 찾아낼 때까지 즉흥 연주나 선택, 다듬기를 필요로 하는 범위를 주는 자유와 같다.

예술 기계는 창조 충동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작위 과정을 사용해서) 프로그램의 제한이 만족될 때까지 즉흥 연주를 할 수 있고 선택하며 모형들을 (프로그램에 있는 판단 기준에 의해 테스트해서) 보다 높은 단계의 판단 기준에 의해 다듬는다. 게다가 컴퓨터는 속도와 지속성이라는 초인적인 자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컴퓨터는 인간이 일생 동안 해야 할 예술의 양식을 수 시간 내에 찾아내고 테스트하여 받아들이거나 거부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컴퓨터는 예술가가 가지는 것보다 적은 제한으로 프로그램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예술가는 모든 컴퓨터들이 그것의 프로그램 속에 갇힌 죄수인 것처럼 그의 문화 속에 갇힌 죄수이다. 역사상 불과 몇 명의 위대한 예술가들 (주석 : 처음 발표되었을 때 커다란 소동을 일으킨 스트라빈스키의 Le Sacre du Printemps 이 컴퓨터에 의해서 작곡되었다면 더 부드럽지 않았을까 하고 의심한다.) 만이 이러한 제한을 헤치고 나아갔을 뿐이다. 예술의 넓은 영역을 질주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컴퓨터 프로그램은 단기간에 획기적인 진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에서의 구상과 우연

예술의 우연 기능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두 개의 "기계적인" 예술 형태를 살펴보자. 첫 번째는 자연 속의 눈송이이며, 두 번째는 폰 포에스터 (von Foerster) 의 입방체로서 이것은 "선택룰 (selected rules)" 이 무질서한 상황에 적용될 때 어떻게 현대 조각과도 닮은 질서를 가지는 결과를 가져오느냐 하는 것을 보이기 위해 컴퓨터 학자가 고안해낸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어떠한 눈송이도 같은 것이라곤 없다. 그러나 모든 눈송이는 공통적 특징들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눈송이의 구조는 일정치 않으며 무질서한 성장이 지속되는 질서의 줄이 있게 된다. 원자들간의 힘은 얼음 분자의 단 한 가지 배열만을 허용하는데 즉 산소 원자들과 수소 원자들은 사면체 형태 속에 채워진다. 이들 사면체 분자들이 모여 기압처럼 일정치 않은 환경의 변화에 의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들과 분자들간에 선택된 힘은 항상 존재하며 마지막 결과에 영향을 끼친다. 즉, 모든 눈송이는 대칭되는 육면체 모양을 갖는다.

결정의 성장 상태가 특히 순조로울 때, 이 모양은 그대로 유지되며, 큰 육각형의 결정이 형성되기도 한다 (우박도 때로 이 모양을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상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눈송이가 형성될 때, 그 결정이 성장에 영향을 주는 환경 (온도와 기압) 의 뜻하지 않은 변화로 말미암아 원자와 분자 사이에서 선택된 힘은 항상 같은 것이 아니지만, 결국 눈송이는 최종적으로 육면 대칭을 갖게 되는데 영향을 미친다 (그림 1).

여기서 우리는 물리적인 힘에 의해 모든 눈송이에 가해진 질서와 일정치 않은 사건과 성장의 연속에 의해 개개의 눈송이에 가해진 무질서의 결합을 가지게 된다. 눈송이의 아름다움은 대칭과 다양함에 있다. 대칭은 질서에서 유래하며, 다양함은 무질서에서 유래한다.

폰 포에스터의 예술 형태는 수십 개의 속이 빈 쇠 입방체를 상자 안에서 흔들어 섞었을 때 만들어진다. 각 입방체가 이웃하는 것에 대한 인력이나 척력을 가지지 않는 한 흔들어 섞은 다음 상자를 열었을 때 입방체들은 완전시 무질서한 상태로 있게 된다 (그림 2). 우연히 그림의 오른쪽에 보인 것처럼 몇 개가 다른 것에 얹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연은 어떠한 질서를 가진 형태도 입방체의 더미에서 나타나지는 않는다.

다음에, 폰 포에스터 박사가 제안한 것은 입방체의 각 면을 별개 (주석 : 입방체는 속이 비었기 때문에 이것은 가능하다.) 로 자화시켜서 자력선이 어떤 면에선 밖으로 시작되고, 다른 면에선 안으로 시작되도록 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각 입방체를 자화시키는 데에는 꼭 열 가지의 다른 방식이 있다. 먼저 모든 6 개의 면이 바깥쪽으로 자기력선이 시작되는 입방체들을 고찰한다고 가정하자. 그 때에는 모든 입방체는 그것의 이웃하는 것에 대한 방향이 어떻든 다른 모든 것들과 반발한다. 그러한 입방체들이 흔들어 섞여지며 상자 안의 더미는 입방체들이 자화되지 않았을 때보다 더 흩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패턴은 아직 어떠한 식별 가능한 질서도 갖지 않는다. 균일한 자기라는 단순한 사실은 질서를 가진 배열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이제 좀더 선택적으로 면들을 자화시키는 계획을 채택한다고 가정하고 각 입방체의 세 인접한 면이 바깥 방향으로 자화되고 나머지 면은 안쪽으로 자화되도록 한다.

이제 우리는 반대 자기를 가진 두 면이 만날 때마다 이웃의 입방체들이 서로 결합하도록 하는 선택 규칙을 갖게 된다. 게다가 자화된 표면들의 3-3 배열은 입방체들의 그룹이 각 그룹의 노출된 표면의 자기 방향에 의지해서 다른 그룹들과 결합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한 입방체들이 상자 안에서 흔들어 섞여지면 폰 포에스터 박사가 이야기하듯이 "…초현실주의 미술 전시회의 수준을 넘을 정도로 믿을 수 없을만큼 질서 정연한 구조가 출현한다" (그림 3). 비록 전시회의 심사원이 이 첫 번째 견본을 좋아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격렬하게 흔들어 섞는 것이 다른 그리고 또 다른 것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3-3 자화 입방체들의 구조와 눈송이간이 밀접한 유사는 명백하다. 양쪽 다 간단하고 기본적 요소들을 갖고 있다. 사면체와 입방체 양쪽 다 요소들간에 선택적인 힘을 갖고 있다. 양쪽 다 무작위 과정의 지배를 받는다. 양쪽 다 동시에 대칭과 다양함을 보여주는 양식의 구성 요소들이다. 양쪽 모두 예술작품이다.

세계는 그러한 예로 가득 차 있다. 예술가와 작곡가는 신중히 그들의 구성의 기초로서 기하학적 양식을 고르고 "만족스러운" 결과가 달성될 때까지 그것들을 힘들여 다듬는다. 미술에 있어 입체파가 그 한 예이다. 바하 (Johann Sebastian Bach) 의 미러 푸가 (Mirror Fugues) 역시 그렇다. 바하는 음부들의 기하학적인 양식을 골랐고, 그리고나서 모든 소절에 걸쳐서 그들을 거울을 볼 때 나타나는 것처럼 전회시켰고 성부에 대해서 성부를 전회시켰다. 이들 푸가 (둔주곡) 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만약 그렇다면 바하는 그것들을 출판업자에게 주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음부의 연속을 만드는 과정은 미러 메카니즘 (mirror mechanism) 에 따른다. 그러나 공격에 대한 마지막 판단은 천재성에 대한 판단이다.

멀지 않아 푸가를 만들어낸 컴퓨터가 "이것은 나의 최고 작품의 하나이다" 라고 출력해낼 것인가?

그것은 멀지 않았다.

Illiac 과 그것이 만든 음악

1955 년에 힐러 (L.A. Hiller) 와 아이작슨 (Isaacson) 은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컴퓨터가 작곡한 음악에 대한 일련의 실험을 시작했다. 1956 년까지 그들은 「현악 4 중주를 위한 일리악 조곡 (Illiac Suite for String Quarter)」을 구성하는 데 충분한 컴퓨터 출력 (주석 : 이런 작업에 대해 연구하거나 이런 작업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펜실베니아 주 브린 모어 (Bryn Mawr) 소재 데오도르 프레저사 (Theodore Presser Company) 로부터 악보를 얻을 수 있다.) 을 축적했고, 후에 그것은 출판되었다. 이 조곡은 4 개의 실험으로 구성된다. "실험 I" 은 멜로디와 간단한 4 부 화성을 낳았고 "실험 II" 는 팔레스트리나 (Giovanni Palestrina) 같은 16 세기 작곡가들 특유의 14 개의 문체적 규칙을 사용함으로써 다양성을 가미했다. "실험 III" 은 리듬의 다양함과 때때로 있는 불협화음과 결합된 음악의 강약법을 도입했고, 20 세기 스타일과 비슷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실험 IV" 는 음부간의 간격을 마련하고 확률표의 참조를 포함하여 어떠한 역사적 형태도 참고하지 않고 순수하게 수학적 개념만으로 작곡했다. 이러한 시도는 무조 형식의 음악을 만들어냈고, 비록 그것이 완전히 다른 프로그래밍 원리에 기초하긴 했지만, 실험 III 의 "현대" 음악과 비슷하게 들렸다.

눈송이나 폰 포에스터의 조각품처럼 일리악 음악은 몇 개의 기본적 상징들과 그것들이 무작위로 선택되고 그것들을 "허용할 수 있는" 배열로 연결시키는 선택적 "힘 (작곡 규칙)" 에 기초한다. 첫 번째 실험의 상징들은 C 장조 음계의 두 옥타브를 포함하는 열 다섯 개의 한 건반 음부였고, 어떠한 검은 건반 샾이나 플랫도 허락되지 않았다. 0 부터 14 까지의 정수가 이들 음부에 해당되고 컴퓨터는 무작위로 이들 정수들이 나오도록 준비되었다 음부의 연속체 중 어떤 것은 멜로딕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다. 멜로딕한 것을 고르기 위해 16 세기 작곡 규칙을 참고해서 정수의 연속체를 심사하는 부가적인 프로그램 명령이 가해졌다. 이들 실험에서 한 정수로부터 다음 (음부에서 음부까지) 의 라인이 멜로딕하게 나타나면 그 정수는 기계의 기억장치에 축적된다. 그리고 그들의 연속체는 멜로디 라인이 C 음부로 되돌아감으로써 하나의 멜로디를 완결지을 때까지 축적된다. 그리고나서 완성된 연속체는 프린트되고 표준 음악 표기에 의해 (손으로) 옮겨 씌여진다.

모든 음부의 연속체들이 성공적인 멜로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끝없이 찾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기계는 50 번의 시도가 실패했을 땐 다음의 "멜로딕한" 음부를 찾기를 포기하도록 준비된다. 그 때에는 축적된 멜로디 라인은 지워지고 무작위로 추출된 다른 것으로부터 다시 시작된다. 한 시간 동안 처리하면 Illiac 각 3 개로부터 14 개의 음부로 이루어지는 수백 개의 멜로디를 작곡해낸다.

실험 I 에서의 다음 단계는 간단한 두 부분 화음 규칙을 만족시키는 두 멜로디를 작곡하고 음부의 쌍들을 골라 내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선택은 4 개의 부가적 컴퓨터의 명령에 근거하게 되는데 그것들은 주어진 쌍의 두 음부간의 불협화를 가려내고 협화된 쌍을 추적하도록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은 한 번에 4 개의 부가적 컴퓨터의 명령에 근거하게 되는데 그것들은 주어진 쌍의 두 음부간의 불협화를 가려내고 협화된 쌍을 추적하도록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은 한 번에 4 개의 멜로디 선을 작곡하도록 확장된다. 이 때 4 개의 음부는 화음을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식으로 현악 4 중주단을 위한 적당한 작곡이 시도되었다 화음을 이루는 두 성부에서 4 성부로 나아가는 중에 기계는 보다 자주 그의 시도를 포기하거나 삭제해야 한다. 그러나 힐러가 말했듯이 "기계는 많은 것을 작곡해냈다."

<그림 4> 은 작곡 컴퓨터의 블록다이어그램 (block diagram) 이다. 왼쪽에는 음표를 표시하는 연속적인 숫자를 산출해내는 난수 생산기가 있다. 각 숫자는 작곡의 규칙을 구체화하는 일련의 선택회로를 통해서 연속적으로 전달되었다. 숫자는 멜로디의 부분으로서 받아들여지기 전에 4 개의 이러한 선택회로를 통과했어야 했다. 만약 통과를 못하면 선택회로는 "보호 경로를 다시 하라" 는 신호를 하게 되고 새로운 음표가 무작위로 생성되고 선택회로는 그것을 위해서 반복하게 되었다. 만일 한 줄에서 50 번의 실패가 발생하면 삭제 기능이 작동해서 그 과정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림 5> 는 팔레스트리나의 "Adoramus Te Christe" 와 비교해서 "Illiac 조곡" 의 "실험 I" 에서 뽑은 것을 보여준다. 이들 예를 읽거나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컴퓨터 음악이 비교적 단조롭다는 것에 주목할 것이다. 왜냐하면 "실험 I" 의 프로그램은 리듬에 있어 변화를 제공해주지 않는 반면 팔레스티라는 그러한 제한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실험" 은 이 제한을 개선하고 멜로디와 하모니의 선택에 보다 많은 다양함을 도입하는 것으로 형식을 16 세기에서 20 세기 것으로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실험 III" 에서 4/8 박자가 선택되었고 8 번째 음부는 가장 작은 리듬 단위로 취해졌다. 음부들은 2 진법 형식으로 4 개씩의 그룹으로 코드화되었고 따라서 16 개의 서로 다른 리듬 연속체가 만들어졌다. 각각은 0 부터 15 까지의 정수가 배당되었고 이들 정수들은 첫 번째 실험에서와 같은 식으로 무작위로 추출되었다. 불규칙적인 연속체를 막기 위해 부가적인 중복 규칙이 선발된 프로그램에 삽입되었다. 마지막으로 유사한 방법을 써서 포르테 (forte) 나 크레센도 (crescendo) 같은 강약법, 그리고 레가토 (legato) 나 트레몰로 (tremolo), 피차카토 (pizzicato) 같은 명령이 도입되었다. 1962 년까지 힐러와 베이커는 네 개의 다른 신코페이션 (syncopation) 에의 "순서 (order)" 를 포함하면서 반음계의 88 음부를 위한 진보적인 프로그램을 보고했다.

이러한 작업에 있어 매력적인 발전은 수학적인 구조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인간이 만든 음악적 걸작들에 대한 컴퓨터의 분석이다. 컴퓨터가 발견해낸 것들은 심사회의 선택 규칙 속에 구체화되며 그런 형태의 작곡에 도움을 주게 된다. 컴퓨터에 의해 컴퓨터를 음악적으로 훈련시키는 데에는 어떠한 중요성도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개념은 매력적이었고, 컴퓨터 알파가 컴퓨터 베타에게 어떻게 하면 서양 장기를 더 잘 둘 수 있나를 가르치는 것을 상기하게 한다.

창작력 : 우연 대 의지

Illiac 음악에 대한 간단한 고찰은 작곡의 개요에 대한 중요한 특징들을 나타내준다. 프로그램은 본질적으로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모방한 것이다. 사실 만들어진 작곡들은 자세한 면으로 보면 이전에 씌여진 어떤 것들과도 다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일반적 형식은 (먼저의 세 "실험" 에서) 인간이 음악을 모방해서 프로그래머가 만들어낸 선택 규칙에 의해 제한받는다. 오직 "실험 IV" 에서만이 프로그램은 완전히 우연과 확률, 그리고 수학적 형식에 맡겨진다.

어떠한 창작력이 Illiac 음악에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궁극적으로 예술적 의지와는 정반대가 되는 무작위 추출에 의존한다. 인간의 창작품에서는 분명히 수행되어야 할 일에 의존한다. 인간의 창작품에서는 분명히 수행되어야 할 일에 대한 예민한 지각은 컴퓨터에겐 없다. 무작위 추출과 창조적 의지간의 이러한 구분이 근본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기계는 단지 모방이라는 좁은 의미에서만 창조적이라고 결론지어야 한다. 그러나 기계에게 의도 (그들이 지녀야 될 의도가 "무의식적" 이라 하더라도) 를 줄 수 있는 방식이 발명된다면 그 때에는 예술적 충동을 만족시키는 독창적 작품이 창조될 것이다. 의지의 기본적인 형태의 하나인 이기려고 하는 것이 정교하고 불가결한 프로그램에 의해 서양 장기를 두는 컴퓨터에 주어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상기할 것이다 (제 1 장). 그 컴퓨터는 그가 그의 적 앞에 있는가 뒤에 있는가에 따라 두 개의 똑같이 바람직한 이동 중 하나를 고른다.

뉴웰과 사이몬은 최초에 다른 방식으로 컴퓨터 의지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는데 프로그램 속에서 General Program Solver (GPS) 라 불리우는 것이다. 그것은 해의 형태를 취할 때까지 주어진 문제 상황 위에서 변화시키고, 환산하고, 움직임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여 결국에 가서는 컴퓨터가 수단을 찾아내게 하는 것이다. GPS 는 제 11 장에 서술된 같은 저자의 논리 이론 프로그램과 관계를 가지며 그것은 같은 자료 (기호 논리에서 증명된) 위에서 기호 논리학의 증명에 의해 테스트되었다. GPS 테스트에서 이전에 기호 논리학에 전혀 접해 보지 않은 학생들은 "and", "or", "implies", "not" 에 대한 상징들과 이들 관계를 대체하고 변환하는 12 개의 규칙에 대해 듣게 된다. 그리고나서 그는 가 로 유도될 수 있다는 것에 관한 증명을 요구받는다. 문제와 씨름하면서 그는 큰소리로 이야기해야 하고 그가 말하는 것에 대하여 테이프 녹음이 행해진다. 당연하지만 곧 그는 말이 막히게 되고, "잠깐 (I'm just sort of lost for a second)" 이라는 말이 마지막으로 녹음된다.

똑같은 문제가 GPS 를 위해 프로그램된 컴퓨터에 적용되고 단계별로 상세한 프린트가 만들어진다. 그다음 이들은 한 항목씩 인간의 노력을 기록한 것과 비교된다. 몇 개의 중요한 불일치뿐만 아니라 놀라운 유사점도 발견된다. 인간은 종종 동시에 몇 개의 가능한 수단을 고려하지만 컴퓨터는 연속적으로 작업한다. 게다가 인간은 그 자신 그 안에 있는 외부 상황과 비교하여 문제에 대하여 무엇이 본질적인가에 대하여 예민하게 느낀다. 물론 이러한 지각은 컴퓨터에게 유용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GPS 프로그래머는 만약 내용이 지나치게 복잡하지만 않다면 이러한 불일치는 제거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게다가 그들은 GPS 의 기술은 "상당히 지적인 사람의 자유로운 행동은 복잡하나 한정되어 있고 제한되어 있는 법칙들의 집합의 산물로서 이해될 수 있다" 는 것을 밝혀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신념은 이와 복잡한 법칙의 집합을 다룰 수 있는 컴퓨터가 똑같이 자유로운 행동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리하여 뉴웰과 그의 공동 연구자는 원리의 차이에 관점을 두기보다는 인간과 기계의 지적 달성물의 상대적 복잡성에 초점을 맞춘다.

비록 비교적 간단한 음악 기호 상황에서 또 모방 형식이긴 하지만 컴퓨터가 어떠한 것도 작곡할 수 있다는 것에 우리가 감명받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더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컴퓨터는 거대한 규모로 독창적일 수 있는가? 그것은 작곡의 새로운 한 유형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것은 그것 스스로 시종일관 한 견해를 만들어 내서 그것을 그의 작곡들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그런 자질은 또 다른 창조적 영역 문학으로 나아감으로써 개척될 수 있다. 기호의 범위와 그들 기호 결합의 영역은 음악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 예를 들어 (단어의 뜻뿐만 아니라 소리도 고려해야 하고 평범한 표현 형태로부터 분리도 시켜야 하는) 시가를 구성하는 데 사용되는 개념과 관계의 영역은 아마도 영원히 컴퓨터 과학의 한계를 넘어 존재할 것이다.

확실히 현재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컴퓨터도 시가를 구성해내기는커녕 비평도 할 수 없다. 시가를 다루기 위해 필요한 컴퓨터 출력의 특징은 투링의 시험관과 기계간의 가상 "대화" (published by M. V. Wilkes in 1953) 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기계는 마치 시인이 생각하듯이 생각할 것이다. 거대한 기억의 준비와 개념의 연상 그리고 이 대화가 의미하는 상상력으로 그러한 컴퓨터는 거의 확실히 독창적인 문학 작품을 창조해낸다. 윌크스 (M.V. Wikes) 박사가 이 가상 대화를 그러한 컴퓨터가 앞으로 존재할 거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내놓은 것은 아니다. 그의 목적은 주위를 창조적인 인간 두뇌의 작용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두뇌는 일종의 기계인가?" 라고.

두뇌는 일종의 기계인가?

오늘날 기계가 창조할 수 있느냐 하는 (총괄적인 본래의 규모) 질문에는 어떤 확실함을 가지고 대답할 수가 없다. 단지 추측일 뿐이다. 우리의 추측의 방향은 상당한 정도로 우리의 믿음에 의지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두뇌는 일종이 기계라는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원리적으로는 -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 두뇌와 비슷한 기계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두뇌는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기를 원한다면, 즉 두뇌는 생명적ㆍ비물질적 기초 위에서 작용하고 기계론적 어휘로 정의될 수 없는 것이라 한다면 우리는 그것과 닮은 기계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뉴웰, 쇼 그리고 사이몬은 인간의 자유 행동이 복잡하지만 한정된 법칙의 세트에 기초하고 있다는 신념을 분명하게 갖고 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가 기계적으로 인간의 것과 같은 정도의 창조를 해내려 한다면 우리는 이들 법칙들을 발견해내야 하고 그것들과 그것들의 얽힘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만큼 복잡한 기계와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일찍이 응해졌다고 생각되는 어떠한 요구보다도 더 큰 요구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추측을 제공한다. 만약 두뇌의 창조적인 방법이 컴퓨터 과학에 옮겨진다면 기계들은 거대한 규모로 창조할 수 있다. 컴퓨터는 두뇌를 모방하는 데 창조적인 힘의 구석구석까지 모방할 필요가 없다. 아마도 컴퓨터는 발견적 지도법을 사용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컴퓨터는 혼돈된 주위로부터 창조의 질서를 가져오도록 두뇌에 의해 사용된 지름길과 원리적으로 비슷한 것을 채택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컴퓨터가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제한된 자연 법칙의 세트에 따라 움직인다. 충분한 자연 법칙을 망라할 힘이 주어진다면 컴퓨터는 자연법칙에 함축된 모든 결론을, 심지어 시가를 쓰는 것까지도 해낼 수 있다고 우리는 추측하는 것이다.

도대체 그러한 컴퓨터와 프로그램이 고안될 수 있다는 전망은 어떻게 된 것인가? 간단한 대답은 쉽게 할 수 있다. 인간의 두뇌와 신경 조직은 지극히 복잡하기 때문에 알려져 있거나 추측되는 기술에 의해 만들어지고 프로그램되는 어떤 우리의 생각 가능한 기계로 그것과 같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대담한 대답 역시 할 수 있다. 즉, 인간의 것보다는 훨씬 복잡한 구조와 프로그램을 인간의 창조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두뇌 기능들을 모방함으로써 창조할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제 9 장에서 인간의 신경 세포들간에는 1 조가 넘는 전기적 접속이 있고 전기적 힘뿐만 아니라 미묘한 화학적ㆍ열적인 힘 또한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 있었던 것을 상기한다. 이들 모든 기능들을 기계에서 재생산해낸다는 것은 현재 불가능하고 영원히 그렇게 불가능할지 모른다. 비록 기념적인 작업이 가능해져야 한다 하더라도 아마도 그것은 시도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떠한 유용한 목적에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인간의 신경 능력의 대부분이 사고 과정에서 쓰이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한 계산에 의하면 인간의 기억 축적 용량은 적어도 천 조쯤 된다. 의식적인 사고는 별개로 하고 이 용량의 많은 부분은 신체 기능의 내부 질서에 관계되어 있다. 그 나머지 부분은 우리가 걸을 때 어떻게 균형을 잡느냐 하는 것을 "기억" 하는 것과 같은 무의식적 행동에 적용된다. 지적 컴퓨터는 그러한 것이 필요없다. 컴퓨터는 자체를 움직이게 하는 기능과 행동이 사람에 비해서 간단하므로 모든 기억은 사고하는 프로그램에만 집중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사고를 위한 프로그램에서 인간 구조의 어떤 부분이 사용되는가? 그것은 사소한 정도로 매우 작은 부분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컴퓨터 시스템 속에 유사한 용량을 제공하는 전망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작은 증거가 있다 : 인간에게 있어 인지와 반응의 기본적인 과정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평생에서 깨어 있는 시간 동안 인간은 5 백억도 안 되는 정보량만을 의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이 모든 비트가 인간의 기억 속에 저장된다면 그것들은 인간 기억량 전체의 2 만분의 일도 안되는 부분만을 채택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평생 동안 인지하고 반응하는 입력과 출력의 양은 컴퓨터로 하게 되면 불과 수 시간 내에 처리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컴퓨터의 백만 배나 빠른 속도의 유리한 점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제 9 장에서 밝혔듯이 인간의 복잡성과 컴퓨터의 빠른 속도의 상호 관계는 어떤 한정된 작업에서는 기계를 두뇌와 같은 위치에 놓게 된다. 다재다능한 면에서 인간의 두뇌와 동등한 컴퓨터를 만들어내고 프로그램할 가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중요한 일에 있어서 인간이 너무 느리고 서둘러서 기계와 프로그램으로 하는 것이 비용이 덜 든다고 생각될 때는 그런 것을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10 년 동안에 컴퓨터의 속도와 기억 용량은 10 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안에 기계에 의한 코딩 개념이 생겨났고 컴파일러 언어 (compiler language) 의 힘이 눈에 띄게 나날이 성장한다. 다음 수십 년 동안 이러한 경향은 계속될 것이다. 속도와 용량에 있어서의 발전과 언어의 기능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문호를 개방할 것이다. 다음 세기가 오기 전에 우리의 질문은 "기계가 창의력을 가졌는가" 가 되지 않을 것이다. 실제적인 질문은 "기계가 창조하는 어떤 일들이 가격에 합당한가?" 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장기 전망

이 책을 읽는 젊은 독자 중에는 인간의 능력과 대등한 창의적 능력이 컴퓨터 시스템에서 어떤 분야는 활용 가능할 것이고, 경제성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것을 넘어서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마지막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지능적인 컴퓨터가 인간 두뇌의 한계를 넘어선 지능적 성취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는 강한 부정으로 쉽게 기각된다. 기계를 고안하고 프로그램하는 인간은 그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구조나 기획은 전혀 만들어낼 수 없다. 이것이 올바른 대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오늘날의 지적 능력을 무한히 긴 시간을 통해서 어떻게 달성했는가를 연구해 온 사람들은 진화과정에서 우리 앞에 있는 새로운 전망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한 주장은 현재까지 어떠한 생리학적ㆍ심리학적 증거에 의해서도 부정되지 않고 있는 신념, 인간의 지성에 의해 형식화되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 부류가 두뇌의 구조에 제한된다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구조는 진화의 과정을 통해 낮은 형태로부터 진화해 왔다. 역사에 있어 몇 개의 중요한 시기에 새로운 추상 작용이 인간의 한계 내에 포함되었다. 최근의 (지질학적 규모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언어라는 추상작용일 것이며, 그것은 대강 지난 5 천만년 사이에 나타났던 것이다. 또 하나의 새로운 (그리고 정의에 따른다면 지금은 생각할 수 없는) 추상작용이 인류에게 축적되려면, 만일 자연 그래도 방임한다면 인류는 비슷한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새로운 단계의 추상작용이 지적 기계에 추가될 때 처리 과정은 다른 시간 규모 위에서 진행된다. 우선 처리 과정은 보다 대규모의 논리 요소와 기억 요소의 배열을 만들어내고 연결하고 작용하는 것과 같은 유용한 기술에 의존한다. 두번째로 그리고 아마도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 처리 과정은 문제들을 기계에 맞추는 일을 하는 유용한 프로그래밍이 원리에 의존한다. 현재에는 기술이나 원리 어떤 것도 두뇌의 추상력을 넘는 추상력에 대한 암시를 주지 않는다.

미래의 컴퓨터 기술은 항상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정의에 의해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무한 대의 개념을 생생하게 마음에 그리듯이 (즉 일찍이 말로 옮긴 어떤 수보다도 더 큰 수를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듯이) 우리는 추상 단계가 자연적인 사고의 가장 높은 단계를 넘는 단계를 포함하는 기계나 프로그램을 마음에 그려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 특별한 단계가 (정의에 따라 그 작업에 대한 정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인간에 의해서 "안출" 될 필요를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것은 이전의 여러 고안된 추정 (extrapolation) 에 의해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지적 기계는 미지의 것으로 날조될지도 모른다.

만약 기술적인 방법과 프로그래밍 기법이 그러한 추정을 허락한다면 또한 그러한 시기가 올 때 그 시도가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한다. 정의에 의해, 인간보다 더 높은 추상 작용에 있어서 기계에 의한 어떤 처리과정이 사용될 것인가에 대해 인간이 생각해낼 수 없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어떠한 방식으로도 얻을 수 없는 입증 가능한 진실들을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나타내 주는 것은 충분할 것이다.

많은 컴퓨터 전문가의 견해에 의하면 그러한 고찰은 좋게 보면 게으른 것이고, 나쁘게 보면 무책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의 인공 지능에 대한 탐색에 충만해 있는 흥미를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한다면 우리는 자연이었더라면 수천세기 동안 주는 것을 보류했을 기구나 기술을 고안해 냄으로써 인간이 정말 그 자신의 지적 진화를 이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성급한 생각을 하는 것을 피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