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백 제어의 기원
자동제어란 무엇인가 : 쓰지로 시메무라 저서, 김상진 역, 성안당, 1994, Page 27~42
3. 와트 (Watt) 의 발명을 낳게 한 한통의 편지
18 세기 후반의 영국은 여러 가지 근대 기술의 싹이 텃지만, 피드백 제어 기술 역시 이 시기에 영국에서 정확한 형태로 등장한다. 이 획기적인 기술 개발에 관계한 사람은 많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이름도 남아있지 않다. 어떤 사람은 시골의 대장장이였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사람은 풍차간의 기계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 이름이 남아있는 사람 하나가 와트 (James Watt 1736 ~ 1819) 이다. 와트는 말할 필요도 없이 실용적인 증기기관을 발명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증기기관 자체는 와트 이전에 이미 발명되었고 실제로도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와트 이전의 증기기관에서는 고온의 증기를 넣은 실린더에 직접 물을 주입하여 증기를 응축시켜 부압을 만들어내서 피스톤을 움직이게 했기 때문에 효율이 낮았다. 와트는 이러한 점을 개량해서 증기를 다른 용기에 배출하여 응축시키는 방법을 고안함으로써 실린더를 항상 고온으로 유지해서 효율을 높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증기기관 발달의 역사상 이 분리 응축기의 발명은 대단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와트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증기기관의 실용화에 중요한 공헌을 했는데, 그 하나가 증기기관의 회전 속도 제어에 관한 것이었다. 증기기관이 발생하는 힘의 원천은 피스톤을 누르는 증기의 힘이다.
이것을 회전력으로 전환하여 이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회전력, 따라서 회전 속도는 피스톤의 왕복운동의 주기와 같으므로 고르지 못했다. 이것을 흡수하여 회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증기기관에 큰 플라이 휠 (관성바퀴) 을 붙인 것이다.
그림 1 은 와트가 만든 증기기관의 하나인데 실린더 C 내의 피스톤 왕복운동이 로드 (rod) L 에 의해 빔 (Beam) B 에 전해지고 이것이 시소 (Seesaw) 모양의 운동으로 변환된다. Beam 의 시소 모양 운동은 또한 rod R 과 톱니바퀴 P 에 의해 축 S 의 회전운동으로 바뀌어져 다른 기계에 회전력으로서 공급된다. 축 S 에 큰 플라이 휠 F 가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1 와트의 증기기관
이렇게 계속해서 개량되어 보급하고 있던 증기기관에도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부하의 변동에 따라 회전 속도가 변한다는 것이다. 부하라는 것은 증기기관에 접속되어 있는 기계를 가동시키는데 필요한 힘이다.
예를 들면, 증기기관으로 맷돌을 돌려서 보리를 가루로 만드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맷돌에 보리가 들어가 있지 않을 때는 맷돌은 그냥 헛돌고 있기 때문에 증기기관으로서는 큰 부하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맷돌에 보리가 들어가게 되면, 갑자기 부하가 커지고 증기기관의 회전 속도가 늦어지나, 너무 부하가 커지면 결국에는 증기기관이 멈출 수도 있다.
결국 부하의 변동은 회전 속도에 대해서는 외란인 것이다. 거기에서 회전 속도가 늦어졌을 경우에는 실린더에 보낼 증기의 유량을 적당히 조절하는 밸브를 열어서 유량을 늘리고 증기기관이 발생하는 힘을 크게 해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증기 유량을 늘린채로 두면 보리가 곱게 갈아짐에 따라 맷돌을 돌리는 힘이 적게 들며 결국 부하가 작아지고 회전 속도는 빨라진다. 그래서 다시 증기 유량을 줄여 주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일련의 조작은 부하의 변화가 천천히 이루어지고 있으면 어느 정도 사람 손으로 대치할 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사람이 늘 붙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하물며 부하가 빠르게 변화하는 경우에는 사람 손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지 못한다. 와트는 어떻게 해서든지 회전 속도를 자동적으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장치를 만들고 싶었다.
와트에게 드디어 회전 속도의 자동 제어 장치를 고안해내는 중요한 힌트가 주어졌는데, 정보를 준 사람은 당시 와트와 공동으로 증기기관의 제조 판매 사업을 경영하고 있던 볼튼 (Mathew Boulton 1728 ~ 1809) 이었다. 볼튼과 와트는 1788 년에 런던의 템스강 연안의 알비온이라는 곳에 큰 제분 공장을 건설했다.
이 제분 공장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규모와 설비를 갖고 있었고, 1791 년에 화재로 타 버리기 전에는 20 대의 맷돌이 그들의 공장에서 만든 2 대의 복동식 증기기관으로 운전되어 일주일에 약 15 만명분의 소맥분을 생산할 수가 있었다. 그곳은 그들의 증기기관 비즈니스를 위한 Showroom 을 겸한 큰 규모의 근대적인 제분 공장이었다. 그 공장의 맷돌에 붙어 있던 어느 장치를 볼튼이 관찰하고, 그 결과를 와트에게 전한 것이 와트가 고안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볼튼이 와트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기관의 회전이 빠를수록 보다 잘게 분쇄되도록 상하의 맷돌간격을 조절하기 위한 장치가 고안되고 있다 …. 이 맷돌을 조절하는 힘은 회전 속도에 대응하여 상하로 움직이는 2 개의 납의 추에 작용하는 원심력에 의해 만들어져 이것이 지레 (arm) 에 작용하여 …." (Mathew Boulton 1788.5.28).
맷돌에는 독특한 성질이 있어 연마기의 회전수가 빠르게 되면 위쪽의 돌이 뜨게 되고, 따라서 나오는 가루는 거칠게 된다. 따라서 항상 일정한 회전수로 갈아야 한다. 그런데 당시 가장 널리 보급되었던 풍차로 가는 경우에는 회전 속도는 바람의 속도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일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회전 속도에 맞추어 상하의 돌의 간격을 조절하여 가루가 언제나 일정한 크기로 나오도록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사람의 손으로 하였지만 점차 이것을 자동적으로 조절하는 장치가 고안되었다. 이것이 볼튼이 살펴본 자동 제어 장치였다.

그림 2 맷돌의 간격을 제어하는 리프트 텐터
그림 2 는 그 원리도이다. 회전하는 쪽 돌 U 의 회전이 축 S 로부터 벨트에 의해 축 J 에 전달되고, 축 J 는 맷돌의 회전 속도에 비례해서 회전한다. 축 J 에는 2 개의 추 W 가 내려져 있는데, 축 J 가 회전하면 추 W 도 같은 속도로 축 J 주변을 회전한다. 추 W 에는 바깥쪽으로 원심력이 작용하며, 그 크기는 회전 속도가 클수록 커진다.
그 결과 맷돌 U 의 회전 속도에 따라서 축 J 의 회전 속도가 클수록 추 W 는 벌어지고 역으로 회전 속도가 작을수록 오므라든다. 이 추의 움직임 (슬리브) R 을 거쳐 지레 Y 의 우측 끝으로 전달한다. 지레 P 를 지점으로 해서 L1, L2 를 끼워서 절구의 축받이 B 에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예를 들어 U 의 회전 속도가 크게 되었다고 하면, W 가 열림에 따라서 R 이 올라가고 P 를 지점으로 해서 T 는 내려가고, O1 을 지점으로 한 L1 도 내려간다. 더욱이 O2 를 지점으로 해서 L2 가 내려가면 축받이 B 도 내려간다. 그 결과 회전하는 절구 U 가 내려가는 2 개의 절구 간격이 좁아져 가루가 고와진다. 역으로 회전 속도가 느려질 때는 이것과 반대로 작용하고, 절구의 간격이 넓게 되어 가루가 필요 이상으로 고와지는 것을 방지한다. 리프트 텐터라고 불리는 이 장치는 언제 누가 발명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그 당시부터 이미 널리 보급되었다.
그리고 이 리프트 텐터를 알비온에 들여온 것은 알비온 제분공장의 설계 및 건설의 책임자로서 와트와 볼턴에게 큰 영향을 준 레니 (John Rennie 1761 ~ 1821) 였다고 보여진다. 그는 에든버러대학 재학시절부터 친구의 공장에 출입하며 그의 일을 도와주는 동안 제분 기술에 능통하게 되었으며, 1784 년에 이 공장에 고용될 즈음에는 대학에서 배운 이론을 가미하였으며 졸업 후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얻은 제분공장의 건설기술과 노하우 (Know-how) 까지도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회전 속도를 원심력으로 변환해서 그 힘을 이용하여 밸브를 조작한다. 이것이 와트에게 섬광처럼 스친 아이디어였다. 즉시 설계에 들어가 그 해 말에는 자동 속도 조절기를 장치란 증기기관이 처음 등장하게 되었다. 그림 3 은 그 원리도이다.

그림 3 증기기관의 자동 속도 조절기
증기기관의 회전 속도가 올라가서 추가 점선의 위치에서 실선의 위치로 올라갔다고 하면 지레를 통해 밸브가 닫히는 모양이 될 것이다. 이 회전 속도의 자동 조절기를 거버너라고 한다. 또 추가 열리는 각도에 의해 회전 속도를 측정하는 장치만을 거버너 또는 원심력 거버너라고 부른다.
그림 1 에 거버너의 추 W 가 보인다. 와트가 최초로 거버너를 장치한 증기기관은 현재 런던의 과학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 증기기관을 움직이는 데에는 당연한 말이지만, 증기를 만드는 보일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당시 보일러는 원통형의 탱크를 가로로 눕혀서 여기에 물을 넣어 아래에서 불을 붙이는 식의 간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온도와 함께 압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때로는 보일러가 파열하는 사고가 있었다.
증기기관에 안전하게 증기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우선 증기의 압력이 어느 값을 넘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너무나 압력이 낮아도 안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일정한 값으로 제어해 둘 필요가 있었다. 즉, 증기의 압력이 일정하게 되도록 제어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 증기를 사용하면 증기 증발이 많아져 수위가 내려가기 때문에 물을 보급해 주어야 했다. 결국 보일러 내의 수위도 일정하게 제어해야 한다. 이렇듯 보일러에서는 압력과 수위의 제어가 불가결하며 와트시대에는 이미 아주 간단한 것이었기는 하나, 보일러에는 이러한 자동 제어 장치를 달아 사용했다. 보일러를 제어 대상으로 생각하면, 그 제어량은 증기의 압력과 수위이다.
그래서 그들을 제어하기 위한 조작량은 증기압에 대해서는 보일러에 가한 열량, 수위에 대해서는 보일러에 공급하는 물의 유량이다. 즉, 제어량과 조작량이 각각 2 개씩 있는 다변수 시스템이다. 그런데, 공급하는 물의 유량을 늘리면 보일러 안의 물의 온도가 내려가며, 증발이 적어져 보일러 내의 증기 압력이 떨어진다. 원래 물의 유량은 수위를 위한 조작량이지만, 그것이 수위만이 아닌 압력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또 압력을 높이기 위해 노의 화력을 강하게 하면, 증발이 많아져 수위가 내려간다.
이와 같이 보일러는 간단한 것처럼 보여도 제어 기술의 입장에서 보면 상호 간섭이 있는 다변수 시스템이다. 물론 당시는 이와 같은 것을 알지 못했기에 실로 교묘한 방법으로 이 2 가지 양을 제어하고 있었다.
그림 4 는 플로트를 보일러에 사용한 수위와 입력의 제어 장치 원리도이다.

그림 4 플로트를 사용한 보일러의 수위와 압력의 제어 장치
우선, 수위의 제어는 다음과 같이 행해진다. 수위는 수면에 띄운 플로트 F 의 변위로서 측정한다. 다시 말하면 플로트 F 가 수위 센서이다. 플로트는 저울대 G 의 한쪽 끝에 달려 있다. G 의 또 다른 끝에는 균형을 잡기 위한 추 H 가 매달려 있다.
예를 들어 수위가 내려갔다고 하면 저울대 G 는 지점 O 를 중심으로 그림 4 우측의 확대도에 있는 점선과 같이 기울며, 밸브 B 가 열려 물이 파이프 P 를 통해 보일러에 흘러들어가 수위가 다시 회복되고 따라서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오고 밸브가 닫힐 때까지 이런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
보일러 내의 증기압 제어를 위한 압력 센서에도 플로트를 사용하고 있다. 파이프 P 안에 또 하나의 플로트 C 가 있다. 파이프 P 의 맨끝은 보일러 수면 밑에 들어가 있다. 한편, 파이프 위쪽은 대기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대기압과 물기둥의 높이에 비례하는 압력의 합과 증기압이 균형을 이룰 때까지 파이프 안에 물이 올라간다 (그림 5).

그림 5 (대기압) + (물기둥 h 에 의한 압력) = (압력 p) 에 따라 압력은 물기둥으로 측정한다.
따라서 플로트 C 의 변위에 의해 증기압을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플로트 C 의 변위에 따라 축 D 에 있는 풀리가 회전한다. D 의 다른 한쪽 끝에는 다른 풀리가 달려 있고, 여기서 연도 내에 댐퍼 E 가 내려져 있다. 축 D 의 양끝의 풀리에서 쇠사슬을 거는 쪽이 반대방향으로 되어 있는 것에 주의하기 바란다.
예를 들어 증기압이 내려갔다고 하면 파이프 P 에 끓는 물을 밀어 올리는 힘이 작아지기 때문에 P 의 물기둥이 내려가며 플로트 C 가 내려간다. 이에 따라서 풀리가 회전하고 축 D 를 거쳐 또 하나의 풀리가 회전해서 댐퍼 E 를 끌어 올린다. 그 결과 노의 화력이 강해지고 증기압이 회복되어 물기둥도 올라가게 되어 원래의 상태로 된다.
이상에서 설명한 수위와 압력의 제어 시스템을 블록 선도로 표시하면 그림 6 과 같이 된다.

그림 6 보일러의 수위와 압력 제어 시스템의 블록 선도
보일러를 나타내는 블록 안에 있는 점선은 조작량이 제어량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가를 나타내고 있으며 경사진 선이 상호 간섭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수위 제어 시스템이 작동해서 찬물이 들어가면 끓는 물의 온도가 내려가게 되어 압력이 낮아지게 된다. 또 압력 제어 시스템이 작용해서 화력이 변화하면 끓는 물의 온도가 변화하고 열팽창에 의해 끓는 물의 부피가 변화하기 때문에 수위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수위의 제어에 플로트를 이용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더라도 압력 제어에도 플로트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상당한 아이디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플로트를 사용하여 제어한다고 하는 그 자체는 와트가 맨처음 생각한 것은 아니고 당시에 널리 알려진 기술이었다. 뿐만 아니라 제어기술과 플로트의 관계는 아주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플로트를 사용하는 제어 장치의 원류는 구텐비오즈가 발명한 물시계로 거슬러 오르게 된다. 구텐비오즈는 기원 전 3 세기경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했던 사람으로 공기나 물을 사용한 장치를 여러 가지로 발명하였다. 그 하나가 물시계이다. 물시계는 용기에 물을 흘러들게 하여 그 용기에 괸 물의 수위에 의해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정확히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흘러 들어가는 물의 양을 일정하게 해야만 했다. 구텐비오즈의 물시계는 물의 양을 일정하게 하기 위한 제어 장치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제어 장치는 남아 있지 않고 또 그 자신이 기록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은 후에 로마의 기술자 위트르위우스가 썼던 책에서 상상할 뿐이다. 그 기록을 근거로 금세기에 이르러 독일의 역사학자 딜스가 복원한 것이 그림 7 에 나타낸 것이다.

그림 7 구텐비오즈의 물시계
물은 A 로부터 용기 BCED 를 통해서 탱크 KLNM 으로 흘러 들어 간다. BCED 의 천장은 원추형으로 도려내어 여기에 정확히 맞는 원추형의 플로트 G 가 들어 있다. 탱크에 들어가는 물의 양을 일정하게 하기 위해서는 용기 BCED 의 수위를 일정하게 해 두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A 에서 물의 유량이 어떤 원인으로 늘어나 용기 BCED 안의 수위가 높아진다고 하자. 그러면 플로트 G 도 떠오르게 되고 천장의 틈새가 좁아지게 되어 A 에서 들어오는 물의 양이 적어지게 되어 수위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역으로 A 에서의 유량이 감소하게 되면 수위도 떨어져 플로트가 내려가기 때문에 천장의 틈새가 넓게 되어 유량이 증가하여 수위가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이렇게 간단한 것이지만 이것과 완전히 똑같은 원리가 오늘날에도 유량 제어에 이용되고 있다. 위트로위우스는 구텐비오즈의 물시계에 관한 기술 중에서 암수의 원추형을 조립시킨 밸브에 의한 유량조절의 장치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술로는 그 장치가 그와 같은 자동 제어의 형태로 되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딜스가 복원한 그림에 의문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제어 기술의 역사에 있어서 한 사건으로 남겨두자. 물시계는 누각이라고 불리며, 중국에도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이들 물시계에 유량 조절 장치가 붙어 있었는지 어떤지는 흥미로운 사실이나 그 근거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시대의 물시계는 1536 년에 장영실이 만든 것으로 서울 덕수궁에 보존되어 있는 물시계의 모습이다. 이것은 자격루라고 불리며,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자동적으로 타종하도록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기원 1 세기 또는 2 세기경에,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이 플로트를 사용한 제어 장치를 많이 발명했다고 한다. 이것들은 구텐비오즈의 경우와는 달리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림 8 은 그 하나로 술잔 P 에 일정량의 술을 넣는 장치이다. 술잔은 받침대 아래의 용기 D 에 달려있고, D 에도 술잔과 같은 양의 술이 담겨 있다. 그 깊이를 플로트 G 에서 봉 K 의 변위로 변환하고 또한 지점 S 를 통해 봉 M 의 변위가 된다. 이 봉끝에는 술잔에 술을 붓는 관 T 에 뚜껑 C 가 있다. 여기에서 술잔 안에 있는 깊이까지 술이 고이면 관의 뚜껑을 덮어 술의 흐름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플로트를 사용한 이와 같은 유체에 관계한 여러 가지 장치는 헤론만이 아니고 아랍의 문화에도 중국의 문화에도 몇 개의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어찌되었던지 중세기로 오면서 계승이 확실히 되지 않고 18 세기 중반 영국에 보일러의 수위 제어에 관련하여 불현 듯 재현될 때까지 기술 역사의 무대에서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은 브린들리 (Brindley) 가 발명했던 것이지만, 와트 이전의 증기기관 보일러에 넓게 확산되었던 것이다. 와트가 사용한 보일러의 수위 제어 장치는 이렇게 해서 이미 그들 이전에 실용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설명한 화력을 조작하여 압력을 조절하는 방법은 반응력이 늦어 급히 압력이 증가하여 위험할 정도로 높아질 경우에는 즉시 대응하여 압력을 낮출 수가 없었다. 이러한 경우는 예를 들어 증기기관으로 가는 증기를 갑자기 멈출 때에 일어나고 이것으로 인하여 보일러가 파열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보일러에는 압력이 어느 한계를 넘었을 때 증기를 빼주어 압력을 낮추는 안전 밸브를 장치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종류의 안전 밸브도 와트 이전에 이미 일반적인 기술이었고, 그 원형은 17 세기 후반 프랑스의 파핀 (Denis Papin 1647 ~ 1712) 이 발명한 압력솥에서 보여준다.

그림 8 파핀의 압력솥과 안전 밸브
그림 8 은 그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압력솥의 뚜껑을 파이프 H 가 관통하고 있다. H 의 상단에는 밸브 P 가 붙어 있는데 L 을 지지점으로 하는 레바 LM 이 이것을 누르고 있다. 누르는 힘은 추 N 의 무게와 이것을 걸고 있는 위치 M 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면 솥안의 압력이 높아져, 밸브 P 에서 안으로부터의 힘과 레버에 의해 누르고 있는 힘의 균형이 깨지면 밸브 P 가 열려 솥안의 증기가 빠지고 압력이 떨어진다. 그 후에 추와 레버 대신에 용수철을 이용하는 것도 나왔지만 안전 밸브의 원리적 구조는 기본적으로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우리 주변에 가까운 곳에서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압력솥에서도 같은 종류의 안전밸브가 달려 있다. 그림 9 는 파핀의 안전 밸브 원리를 제어 기술의 입장에서 본 블록 선도이다.

그림 9 안전 밸브의 구조
이렇게 보면 와트의 증기기관에 관한 제어 시스템은 증기기관의 속도 제어만이 아니고 이것을 움직이는데 필요한 보일러의 압력과 수위의 제어를 포함하여 매우 큰 규모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보일러의 압력 제어와 수위 제어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실은 속도 제어와 수위 제어 및 압력 제어의 사이에도 서로 관계가 있다. 그것은 증기기관의 기계적인 부하가 증가하면 속도 제어 시스템은 증기의 부하가 늘어나게 되고 증기압이 내려가지 않도록 압력 제어 시스템의 작동으로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증기 유량이 증가한다. 이것은 보일러에 있어서는 증기의 부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림 10 에서는 이점을 고려하여 그렸던 전시스템의 블록 선도이다.

그림 10 보일러와 증기기관의 제어 시스템
와트 시대에는 물론 피드백 제어의 개념은 없었다. 그러므로 회전속도, 수위, 압력 등 각각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교묘한 장치라고 하는 것 이상으로 그들이 이와 같은 복잡한 상호 간섭이 있는 다변수 시스템을 자유자재로 제어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것이었다. 와트 이후, 특히 증기기관의 속도 제어에 관해서 많은 기술자가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증기기관의 진보에 따라 속도 제어의 기술도 개량되고 있었지만 그러한 개량 노력을 자극한 여러 현상 중에는 이와 같은 상호 간섭이 있는 다변수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