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의 가추와 사고실험

 

바둑철학 : 박우석 (KAIST 인문사회과학부) 저, 동연출판사(3675-2122), 2002 , Page 279~316

 

1) 수 나누기 이론

2) 신포석과 수나누기

3) 환원적 분석으로서의 나누기

4) 환원과 연역

5) 수나누기와 삼단논법에서의 환원

 

(주석 : 이 절의 연구는 일부 한국 학술진흥재단 1996 년도 학술연구비 지원에 힘입었다.)

지긋지긋한 철학 이야기를 참아내며, 여기까지 읽어 오신 독자라면, 우선 큰절을 올려 예를 갖추고 싶다. 하찮은 논의에 불과하지만, 그 쓰레기 더미에서도 뭔가 진주 비슷한 것을 캐낼 훌륭한 분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런 분은 이미 필자가 바둑 이야기를 하는 마당에 왜 그토록 지겹게 가추의 논리와 사고실험의 논리에 관심을 두는지를 필자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계실 것이다. 바둑과 가추, 바둑과 사고실험, 그리고 가추와 사고실험은 어떻게 상호 연관되는가?

이야기의 실마리를 조훈현 국수와 이광구의 감각과 수읽기에 관한 대화에서 찾았던 것을 기억하시리라 믿는다. 이제 조 국수가 "수를 찾는 후각" 이라는 장에서 감각에 대해 피력한 바에서 다시 한 번 전단을 구하도록 하자.

<참고도 23> 의 상황은 중반에 이르기까지 백이 괜찮았는데, 우중앙에 흑집이 크게 나서 만만치 않게 된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흑이 취한 2 ~ 6 의 수순인데, 이에 대해 조 국수는 "일리 있는 반면운영" 이지만 "문제가 없지 않았다" 고 본다. 백5 로 굴복시킨 것만으로도 만족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고정관념의 소치였고, 더 좋은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2 ~ 4 의 이단 젖힘에 앞서 A 에 붙이는 응수타진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 수에 대해 이광구는 "수읽기 이전의 발상, 착목, 감각, 뭐 그런 것들의 문제 같습니다" 라는 중요한 발언을 하고 조 국수는 이를 받아 "그럴 겁니다. 단독적인 수읽기로 A 를 찾아내기는 쉽지는 않겠죠. 뭐랄까요, 여기는 어쩐지 수가 있을 것 같다고 느끼는, 그런 걸 후각이라고 하나요, 그런 게 있어야 할 겁니다" 라고 했다.

왜 A 의 응수타진이 기가 막힌 수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어지는 조 국수의 친절한 설명을 들어야만 하는데, 그것은 다시 말해서 그런 수읽기에 앞서 어떻게 문제의 장면을 흑A 에서부터 풀어 갈 수 있다고 애당초 생각하게 되는지를 알 길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흑A 를 떠올리는 일은 연역에 의한 것도 귀납에 의한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도 될 법하다. 그렇다면 흑A 를 가추의 결과로 이해할 수 없는가?

우리는 앞에서 퍼스의 실용주의 방법론의 개요를 훑어보았는데, 퍼스의 관심의 폭과 학문의 깊이가 원체 방대하고 심오한 탓에 그의 사상의 어느 일면에 대해서 조차도 적절한 취급이 되었다고 하기 힘들다. 필자의 관심의 핵은 결국 퍼스의 '가추의 논리' 와 '실용주의의 격률' 의 상관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었지만, 그마저도 결코 만족스럽다고 할 수 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제 바둑에서 수읽기라고는 할 수 없는, 그리하여 감각, 후각, 발상, 착목 등으로나 이름할 수 있을 신비의 현상에 대해 이해를 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퍼스의 실용주의의 방법과 그 핵심으로서의 가추의 논리를 동원한다고 할 때 무엇보다도 장애가 되는 것은 퍼스의 가추의 논리와 실용주의의 격률에 대한 우리의 이해 자체가 미흡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핏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퍼스의 사상의 개요를 논의한 까닭은 오히려 바둑에서의 감각과 수읽기를 통해 퍼스의 가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가능성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가녀린 소망 내지 구상은 에코 등이 지은 『논리와 추리의 기호학』이라는 책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석 : 움베르토 에코 외, 『논리와 추리의 기호학』, 김주환ㆍ한은경 역, (서울 : 인간사랑, 1994).). 이 책의 원제는 The Sign of Three : Dupin, Holmes, Peirce 이고, 역자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은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퍼스의 기호학과 논리학의 핵심적인 내용을 셜록 홈즈 등의 추리소설 이야기를 통하여 아주 쉽고도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는 책" 이다. 한편 편저자들은 편저자 서문에서 오늘날 지식론에서 가장 치열한 주제가 되고 있는 과학적 발견의 논리 영역에서 이 책의 가추법에 대한 기호학적 접근이 빛을 던져줄 뿐만 아니라 셜록 홈즈의 팬에게도 흥미로운 것이 되고, 또 아리스토텔레스 연구가들에게도 읽을 만한 것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필자가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이 책의 구상은 뒤팡이나 홈즈의 추리 방법과 질병의 원인을 탐색하는 의사의 방법 등이 기본적으로 퍼스가 이야기한 가추에 해당한다는 데서 출발하여 궁극적으로 양자 모두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려는 것이다. 필자가 하고 있는 작업은 이와 아주 유사하다고 하겠다. 바둑에서의 감각과 수읽기에 대한 논의에 통상의 연역과 귀납 이외에 가추를 동원함으로써 바둑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퍼스의 가추의 논리에 대한 이해도 아울러 심화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 2 장 "자네는 내 방법을 알고 있네 : 찰스 퍼스와 셜록 홈즈를 나란히 비교하기" 를 보면, 저자인 토마스 씨벽과 진 우미커가 감각과 수읽기의 차이 및 상관 관계에 관심을 두는 바둑팬의 흥미를 자극할 논의를 다수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에는 합쳐 놓을 생각도 못 했던 것들을 합쳐 놓는다는 관념이 바로 새로운 제안을 퍼뜩 떠올리게 한다" (CP 5.182) 고 그 (퍼스) 는 주장한다. 그는 또한 가정을 형성시키는 것이 "직관적 행위" 즉 우리에게 마치 "섬광처럼" 다가오는 "가추적 제안 (abductive suggestion)" (CP 5.181) 이라고 말한다. 지각적 판단 (perceptual judgment) 과 가추적 추론 (abductive inference) 사이에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지각적 판단에 대해서는 논리적 분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석 : 같은 책, 71 쪽.)

나아가서 우리는 단지 바둑에서 가추적 추리의 사례들을 해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홈즈와 조훈현의 사유를 비교한다거나, 프로이드와 이창호의 사유를 비교하는 흥미로운 작업을 해 볼 아이디어를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다. 실상 이 점은 벽두에서 필자가 지적한 바 있는 일이기도 하다. 작업에 따라 바둑 두는 이들이 바둑에 대한 상이한 모델을 가지고 바둑을 이해하려 한다는 점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기관 친선 바둑대회에서 단체전 우승한 국세청팀의 주장 오대식 아마 6 단은 '세무조사' 의 수읽기와 '바둑' 의 수읽기의 친화성을 강조한 바 있는데, 이 역시 필자가 거론할 예들에 덧붙일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서, 바둑 두는 일을 주어진 단서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되 문제의 영역에서 구별되는 다양한 사례들 중 어느 경우와 가장 유사하다고 보느냐 하는 점이 우리의 바둑에 대한 이해를 결정적으로 다르게 만들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바둑 두는 이는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을 찾는 역사가와 닮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전염병의 원인을 추적하는 의사나 질병학자, 세균학자와 닮았는가?

최근 필자는 퍼스 자신이 서양 체스의 달인이었다는 흥미로운 연구 보고에 접했다. 나아가서 퍼스는 체스 해서를 출판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철학 저술에서 체스 이야기를 별로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불운이기는 하지만, 그의 가추 개념이 그의 체스 마스터로서의 경력과 무관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추측은 흥미로운 것임에 틀림없다.

1) 수 나누기 이론

바둑을 이해하는 데 연역과 귀납에 더해 가추를 논의에 도입함으로써 얻어질 바가 있으리라는 데는 이제 상당수의 독자들이 공감하셨으리라 기대한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바둑과 사고실험의 관계를 생각해 볼 차례다.

이렇게 이야기해 보자. 바둑은 일종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들 한다. '사고실험' 과 '시뮬레이션' 은 동의어는 아니지만, 지극히 가까운 친척 관계라고는 할 수 있다. 따라서 사고실험과 연관지어 바둑을 논의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바둑과 관련하여 우리가 "이창호 국수가 창하오 9 단과의 지극히 중요한 대국에서 전대미문의 실험적인 신수를 두었다" 고 경탄할 때, 우리가 의미하는 바는 반상에 착점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실전 대국에서의 현실적 실험이라고 할 수 없을까? 이에 반해, "그런 신수를 두기 위해 이 국수는 날밤을 새우며 복기를 통해 무수한 사고실험을 수행했다" 고 말할 수는 없을까?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이해된 바둑에서의 사고실험은 실상, 그것이 대국 중이든, 공동연구 중이든, 복기 중이든, 홀로 정석 연구 중이든 간에 실제 대국에서 착점되지는 않은 모든 바둑수 연구 과정에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쨌거나 필자는 아래에서 '사고실험' 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데 가장 반발이 적으리라 판단되는 사례를 취하여 바둑에서의 사고실험을 논의할 필요를 느낀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바둑에서의 소위 수나누기를 사고실험으로 해석해 보겠다는 생각이다.

문용직은 수나누기를 "착점의 효율을 모양의 비교를 통하여 검증하되, 수순의 전후를 무시하여 비교하는 방법" (주석 : 문용직, 『바둑의 발견』81 쪽.) 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각주에서 이러한 정의가 "모든 착점의 능률을 최대한도로 발휘하기 위해 수순을 전후해서 따져보는 방법" 이라는 야스나가 하지메의 정의에 힘입었다고 하고 있다.

문용직이 수나누기 이론의 중요성에 대해 부여하는 의미는 자못 각별하다. 그는 도사쿠를 도사쿠 되게 만든 도사쿠 혁명의 단초, 즉 이른 바 도사쿠의 새로운 패러다임 발견의 단초를 수나누기 이론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도사쿠의 새로운 패러다임 발견에 수나누기 이론의 단초의 역할을 했다고 보는 까닭을 문용직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이 바로 수나누기 이론" 이라는 데서 찾고 있다. 그런데 야스나가 하지메 등의 견해에 바탕을 두고 문용직은 수나누기 이론의 발견의 공로를 이노우에 1 세 도세키 (1582 ~ 1630) 에 돌리고 있다 (주석 : 같은 책 80 쪽.).

그렇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의 발견은 왜 도세키가 아니라 도사쿠에 의해 이루어졌단 말인가?

문용직의 답은 도사쿠가 수나누기를 전국적으로 확대했다는 것이다 (주석 : 같은 곳.). 문용직은 수나누기를 정의한 다음 즉각 수나누기 이론이 "특정의 형태가 결정되었을 때 그 형태의 유불리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론" 이라고 설명하고, 그러한 설명의 한 가지 중요한 함축으로서 그 이론이 바둑 한 판의 어느 한 단계에서만 적용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모든 단계에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주석 : 같은 책, 81 쪽.).

문용직은 도세키의 기보를 통해 수나누기 이론의 활용 방법을 설명하고 (주석 : 같은 책, 85 쪽.), 또 심지어 현대 바둑의 정석과 포석에서도 평가의 기초가 수나누기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예시 (주석 : 같은 책, 86 쪽.) 한 다음 "어디에서 이 수나누기의 아이디어가 터져 나왔을까?" 를 묻는다 (주석 : 같은 책, 85 쪽.). 그리고 다음과 같은 시사적인 주장들을 편다.

"효율과 중복의 개념은 바로 관계와 비교라는 개념에서 발생한 것이며, 그 여정에 수나누기라는 나침반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돌과 돌의 관계에서는 이러이러한 돌이 필요하지만 저러저러한 돌은 불필요하다는 것!" (주석 : 같은 책, 88 쪽.)

"도세키는 수나누기 이론을 제시하여 두 개의 중요한 개념 ㅡ 관계와 비교 ㅡ 을 구체화시키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도사쿠는 그 두 번째 걸음을 옮겼다. 관계와 비교라는 개념을 도사쿠는 전국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구조주의를 발견하였다." (주석 : 같은 책, 88 쪽.)

"도사쿠는 도세키로부터 관계와 비교라는 두 개의 중요한 개념을 얻었으며, 그로부터 구조주의를 발견하였고 효율 개념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이 효율의 개념은 구조주의적 사고를 바둑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이었다." (주석 : 같은 책, 90 쪽.)

그리고 문용직은 이러한 주장들을 종합하여 도사쿠의 업적을 이렇게 요약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구조주의와 수나누기 이론을 도사쿠가 접목시키는 데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주석 : 같은 책, 90 쪽.)

문용직은 도세키가 수나누기 이론을 포석, 중반, 종반의 어느 한 단계에만 적용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도세키에게서 오직 관계와 비교의 개념이 보일 뿐, 효율과 중복의 개념은 보이지 않는다는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았다. 수나누기 이론과 구조주의적 관점이 상호 독립적이라는 증명이 제시되지도 않았다. 문용직은 구조주의적 관점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수나누기를 전국적으로 적용할 구상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효율, 중복의 개념도 관계와 비교의 개념에서 나왔고, 구조주의도 관계와 비교의 개념에서 발견한 것이라면, 굳이 수나누기 이론과 구조주의의 접목을 이야기할 이유가 무엇인가? 수나누기 이론이야말로 혁명적인 것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은 도세키와 함께 출연한 것이 아닌가?

2) 신포석과 수나누기

이러한 의문들은 자연스럽게 신포석의 제창자들은 수나누기와 어떤 관계에 있을까 하는 의문들로 이어진다. 도사쿠의 패러다임에서 수나누기가 핵심적이고, 도사쿠의 패러다임에 대한 혁명이 신포석 패러다임이라면, 혹시 신포석법의 이론가들이 수나누기에 대해 취한 입장을 통해 실말를 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신포석법』은 "도세키가 창안한 배수론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착점의 선악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고 있다. 이 책이 목적으로 하는 신포석도 그 근원은 바로 배수의 이론에 두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주석 : 우칭위엔, 기타니, 야스나가 공저, 『신포석법』(현현각, 윤응식 역 1976, 서울) 15 쪽.) 라는 놀라운 견해를 천명하고 있다.

이쯤에서 문용직 박사에게 문제를 거칠게 제기해 보도록 하자. 힘바둑 패러다임에 대한 혁명이었던 도사쿠의 패러다임에서 수나누기는 핵심적 요소였다. 도사쿠 패러다임에 대한 혁명이었던 신포석 패러다임도 수나누기에 근원을 두고 있다. 핵심을 건드리지 않는 개편이나 변화를 혁명이라고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는가?『신포석법』에 따르면, "배수론이란 바둑의 비교해부학이라고 할 수 있다. 흑백간에 서로 주고받은 일련의 응수가 이익이냐 손해냐 하는 것을 다른 형과 비교해서 따져 보는 방법을 말한다." (주석 : 같은 책, 16 쪽.) 또 『신포석법』은 "본성의 제목인 '신포석법' 은 균형의 논리가 근본을 이루고 있지만 바둑에 있어서의 최선의 수단이란 넓은 의미에서 바로 '배수' 론에 귀결하게 되는 것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석 : 같은 책, 15 쪽.).

그런데 문용직은 이렇게 주장한다. "신포석 혁명은 기존 관념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부정을 넘어서서, 좀더 발전시키는 정도도 넘어서서 사고의 지평을 광대하게 확장하였다. 더할 나위 없이." (주석 : 문용직, 앞의 책, 141 쪽.) 중앙의 발견은 구조적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었고, 돌의 효율을 중시함으로써 4 선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문용직은 그리하여 4 선의 발견, 중앙의 발견이 신포석 혁명의 핵심이라 선언하고, 도사쿠의 구조주의적 사고와 수나누기 이론은 더욱 확대되었다고 쓰고 있다.

신포석 혁명의 구성 요소들을 섬세하게 나누고 그 중에서 정말 신포석 혁명을 신포석 혁명 되게 만든 본질적 요소를 가려내려는 이러한 시도는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 상당한 긴장과 갈등이 혼재한다. 수나누기 이론은 도사쿠 패러다임과 신포석 패러다임 양자 모두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데 문용직은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도사쿠 패러다임과 신포석 패러다임이 공약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양자 모두 수나누기를 하지만 패러다임에 따라 전혀 의미가 다르다고 할 것인가? 포석 이론 내에서 고전포석이 신포석으로 바뀌는 것은 혹시 패러다임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용직은 스스로도 상당한 갈등을 느끼는 듯한 대목에서 오히려 자신의 결단을 재확인하듯 "신포석은 포석에만 그 아이디어가 개방된 협소한 창의가 아니라 하나의 패러다임 혁명이었던 것" (주석 : 같은 책, 141 쪽.) 이라고 쓰고 있ㄷ. 여기에 하나의 딜레마가 있다. 신포석이 포석 이론에만 한정된 것이고, 그 핵심이 4 선의 발견과 중앙의 발견에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기는 하였으되 그 가치가 훨씬 줄어든다. 그러나 신포석이 포석 이론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면 수나누기 이론을 본질적 요소로 포함해야 하고, 그럴 경우 패러다임 혁명을 가져온 것이라 평가하기가 곤란해진다.

도사쿠 없이 신포석이 있을 수 없다는 데는 문용직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는 신포석의 창시자들이 도사쿠의 구조를 한 단게 높였다고 주장한다. 근거는? 구조의 발견에 따른 포석 이론은 3 선과 소목에 기초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그 한계는 우칭위엔과 기타니를 긴장으로 몰아넣어 신포석을 낳게 하였다고 문용직은 풀이한다. 『바둑의 발견』140 ~ 142 쪽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를 다룬 대목인데, 문용직은 여기서 다른 부분에서와 달리 상당히 갈팡질팡했다고 여겨진다. 문용직은 삼연성 포석, 중국식 포석, 우주류 포석 등 구체적인 포석 이론들을 살펴봄으로써 신포석 혁명이 포석의 혁명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혁명임을 확인하자고 제의하는데, 그 논의가 어떻게 문제의 논점을 예시해 주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문용직 박사는 혹시 이렇게 답변하지 않을까 한다. 필자의 의혹은 그가 『바둑의 발견』제 1 부 제 2 장 "바둑에서의 이론 : 발전과 수준" 에서 패러다임과 이론을 구별하였는데, 그에 관한 이해가 결여된데서 나오는 혼란이라고 말이다 (주석 : 같은 책, 162 쪽.). 거기서 패러다임은 이론 구성의 지침이 되고 또 이론의 설명을 제한하는 세계관인 반면 이론은 일반화된 가설 명제로 대조되고 있다. 문 박사가 제시한 이론의 정의는 이렇다. "설명 명제의 집합. …하다면, …하다라는 만약 p 라면 q 이다 (p → q) 의 구조를 가진 명제의 집합." 이러한 구별에 근거하여 문박사는 포석의 이론 중 단순한 명제의 수준에 있는 것으로 "귀가 첫째, 변은 다음, 중앙은 마지막" "귀는 두 방향, 변은 세 방향, 중앙은 네 방향" "마주보는 자리가 큰 곳" 등을 들고, 포석의 이론 중 가설의 집합으로 체계를 이룬 것으로 슈사쿠류 수석, 삼연성 포석, 중국식 포석 등을 들고 있다. 문 박사가 이런 견지에서 신포석법은 패러다임이지 일개 포석 이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신포석 혁명이 슈사쿠류 포석 같은 도사쿠 패러다임 아래서의 어느 특정 포석 이론을 대치하는 일개 포석 이론이 아니라 도사쿠 패러다임 자체를 대치하는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신포석법이나 소위 도사쿠 패러다임이나 모두 포석의 영역에서의 패러다임인 것은 아닐까?

도사쿠 패러다임 이전의 패러다임으로 문 박사가 들고 있는 힘 바둑 패러다임은 얼핏 보다 단순히 포석의 영역만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고, 그것에 대한 새 대안으로서의 도사쿠 패러다임 역시 포석에만 국한되는 것일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포석법은 그 이름에서부터 그러하듯 포석의 영역을 목표물로 하여 투척된 것이 아닌가? 신포석법이 도사쿠 패러다임에 대한 새로운 대안적 패러다임이기 위해서는 결코 포석의 영역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될 텐데, 신포석법의 창시자들은 왜 포석의 영역만을 겨냥하였을까?

어쨌거나 신포석법이 설사 일개 포석 이론은 아니라 하더라도 여전히 포석의 영역에 관한 것이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문박사가 비교하는 힘바둑 패러다임에서 도사쿠 패러다임으로의 변화와 도사쿠 패러다임에서 신포석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는 상당한 이질성을 보이는 것 같다는 말이다. 간단히 말해서 소위 힘바둑 패러다임에서 도사쿠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는 쿤 (Kuhn) 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할 만한 면모를 많이 지니고 있다. 문 박사는 힘바둑이 전제하는 전쟁 모형이 중국 바둑의 가장 큰 특징인 계가 방식의 독특함과 일치한다고 본다 (주석 : 같은 책, 65 쪽.). 힘바둑 패러다임과 구조주의 패러다임의 차이는 바둑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모형의 차이이고, 구체적으로는 바둑의 승부를 결정하는 것이 돌의 사활을 기준으로 하느냐 집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하느냐의 차이라고 한다 (주석 : 같은 책, 66 쪽.). 문 박사는 계가 방식의 차이가 패러다임의 변천에 차이를 가져온 연유를 "집을 중심으로 바둑을 이해하면 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부차적 문제가 된다는 것이고, 그때 비로소 효율의 관념이 탄생할 기반이 마련된다는 것" 에서 찾는다 (주석 : 같은 책, 67 쪽.).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돌의 사활을 중심으로 하는 바둑의 모형이 영토를 중요시하는 모형으로 바뀐다는 것이 규칙의 차이를 가져오는 요인이었다고 한다면 (주석 : 같은 책, 239 쪽.),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규칙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므로 아예 다른 게임이라고 생각할 소지도 있다는 것이다. 중국식 계가 규칙에 따른 게임과 일본식 규칙에 따른 게임의 존재론적 지위가 과연 같을까? 이런 의문을 갖게 한다는 것 자체가 패러다임 간의 쿤적인 통약불가능성 개념과 사뭇 잘 어울린다는 점이 요점이다. 그런데 신포석 혁명은 그렇게 규칙의 차이까지 수반하는 변화를 의도하지도 않았고, 또 그런 변화를 초래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 박사의 표현을 빌려 신포석은 바둑의 어떻게 보느냐에 관하여 새로운 모형을 제시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수나누기를 다시 생각해 보자. 문 박사는 힘바둑 패러다임 아래서는 도사쿠 패러다임의 핵심인 수나누기 이론이 발견될 가망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수나누기는 근본적으로 적은 돌로써 많은 집을 얻고자 하는 아이디어인데 그런 이론을 돌의 생존 중심 패러다임 아래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석 : 같은 책, 73 쪽.). 그 반면, 위에서 보았듯이 수나누기는 도사쿠 패러다임과 신포석 패러다임 양자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최소한 힘바둑 패러다임과 도사쿠 패러다임의 차이는 도사쿠 패러다임과 신포석 패러다임의 차이와 상당히 이질적이다.

위에서 우리는 신포석법이 문 박사의 의미에서 이론인가 아닌가를 따졌다. 같은 방식으로 수나누기 이론은 그렇다면 문 박사의 사고의 틀 안에서 이론인지 아닌지를 따져 보자. 신포석법은 어쩌면 가설화된 이론 명제들의 집합으로 이해될 소지가 있지만, 수나누기 이론은 이렇게 이해되기가 더욱 어렵지 않을까 싶다.

3) 환원적 분석으로서의 나누기

『충암대연구 1』(주석 : 『충암대연구 1』, 35 쪽.) 의 연구 4 는 <참고도 24> 의 정석 변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참고도 25> 의 경우 백이 만족스러운 까닭을 묻고 있다. 이어지는 <참고도 26> 에 딸린 해설은 이렇다. "전도 25 의 수순을 분석해 보면 백1, 흑2 때 이하 10 은 밀어붙이기 정석의 일종인데 다음 백이 손을 빼자 흑이 12 에 두어 백13 으로 틀을 갖추게 해 준 골이니 그 교환은 흑의 확실한 손해." (주석 : 『충암대연구』, 38 쪽.)

명백히 수나누기 이론에 의거한 설명이고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 설명이다. 세 칸 높은 협공에 변으로 한 칸 벌려 받고 이에 대해 흑이 마늘모 붙임을 하면서 시작된 <참고도 25> 의 결과를 평가하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수나누기 방법을 활용하여 <참고도 25> 가 <참고도 26> 과 수순만 바뀌었을 뿐 같은 형태라는 것을 발견한다. <참고도 25> 의 결과는 어떻게 평가되는가? <참고도 26> 의 결과에 대해 답이 이미 나와 있다면, <참고도 25> 의 결과를 평가하는 문제는 <참고도 26> 의 결과를 평가하는 문제로 바뀌고 (환원되고), 그 문제에 대한 답에 따라 동시에 답이 결정된다.

『충암대연구 1』의 연구 30 (주석 : 『충암대연구 1』, 315 쪽 이하.) 은 <참고도 27> 의 이른 바 한국형 신수로 불리는 최신 유행 정석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바로 이러한 환원의 사례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도 24>              <참고도 25>  

<참고도 26>               <참고도 27>  

상식적인 수순을 거쳐 <참고도 28> 처럼 흑1 에 백2 로 이단 젖혀 받는 경우 백은 선수를 잡아 백8 로 협공할 수 있어 좋으므로 흑은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견해이다. 그런데 이 형태는 <참고도 29> 처럼 흑1 로 마늘모 행마를 할 경우 다시 나타난다. <참고도 29> 처럼 백2 로 찝는 수는 흑이 굴복하지 않고 흑3 으로 반발할 경우 백의 실리보다 흑의 세력이 더 두터운 결과를 빚게 된다고 한다. <참고도 30> 에 딸린 해설을 그대로 인용해 보자. "따라서 흑3 이면 백4 로 이어야 한다. 흑도 5 로 보강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러면 백10 까지 <참고도 28> 로 환원된다. 이것은 백이 좋다고 했으므로 흑은 이 결과를 원할 경우에만 1 로 두는 것이 좋다."

<참고도 28>              <참고도 29>  

<참고도 30>  

몇몇 사례들을 통해 수나누기에 의한 환원적 분석을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자. 김성룡 7 단은 『바둑 가이드』(1998. 7) 의 「밤탱군의 독자깁 클리닉」에서 <참고도 31> 에 대한 한 독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수나누기에 의존한다 (주석 : 김성룡, 「밤탱군의 독자깁 클리닉」『바둑가이드』(1998 년 7 월) 156 쪽.).

<참고도 31>  

질문은 "백1 마늘모에 다짜고짜 흑2 로 끊은 뒤 4, 6 으로 막아 왔습니다. 백A 로 들여다보는 맛이 있어 좋다고 봤는데 흑B 로 단수치는 수가 있어 생각보다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어떤 수가 정수인가요?" 라는 것이었다. 김성룡 7 단의 실전은 흑이 망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즉, 이에 대한 답은 <참고도 32> 를 제시하며 "흑은 1 의 호구가 정수입니다. 백이 그냥 2 로 양호구치면 흑은 3 으로 막아 좋지요. 실전은 이 모양에서 A 로 먹여쳐 백에게 B 로 잡힌 꼴이므로 결과적으로 보태주고 두텁게 해 준 셈입니다" 라는 것이었다.

<참고도 32>  

<참고도 33> 처럼 백1 에 붙여오는 응수 타진은 대단히 실전에 많이 나타난다 (주석 : 한철균, 「돌의 능률」, 월간『바둑』, (1993 년 7 월), 210-1 쪽.). 이 때 A 로 참아 튼튼히 연결해 놓은 다음 좌우의 백을 노리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마추어들 중 C 로 끊어 잡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 그럴 경우 <참고도 34> 와 같은 결과가 되는데, 한철균 사범은 「돌의 능률」에서 당연스레 이런 수순을 취하는 아마추어는 "바둑 느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현명할 정도의 손해" 라고 준엄하게 꾸짖는다. 꾸중을 듣고 넋이 나간 이 아마추어에게 들이대는 설명이 바로 수나누기에 의한 것이다. <참고도 35> 에 대해 한 사범은 "백1 은 악수로 흑은 5 의 곳을 늘어야 하는데, 오히려 2 로 젖혀 이음으로써 백의 악수가 호착으로 변했으며 흑4 로는 A 의 곳에 이어 백5 로 젖힐 때 흑B, 백C, 흑D 로 중앙으로 진출해야 하는 것이 옳은 수순" 이라고 평가한다.

<참고도 33>              <참고도 34>  

<참고도 35>  

▶ 환원의 한계?

조훈현 국수는 이창호와 마샤오춘의 바둑에서 나타난 모양에 대해 수나누기를 동원한다 (주석 : 조훈현, 이광구, 앞의 책, 220 쪽 이하.).

문제의 <참고도 36> 의 시점에서 보통 흑은 <참고도 37> 처럼 흑1 로 따내는 것인데, 마 9 단은 <참고도 38> 의 1 로 이어, 조 국수가 <참고도 39> 를 제시하고, 이광구가 수나누기에 의한 분석이냐고 묻자 조 국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나누기를 이렇게 규정한다. "그렇습니다. 나타난 모양을 재조립해 보는 거죠. 실전의 모양을 재조립해 보자는 겁니다." <참고도 39> 의 진행에서 3 으로 젖히거나 A 로 느는 것이 보통인 흑2 는 "악수까지는 아니고 뭐 그렇게도 둘 수 있는 수" 이고, 백3 은 "어떤 의미에서는 좋은 수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러니까 최소한 악수는 아닌 수" 라고 한다. 그 상황에서 두어진 흑4 는 확실히 우습다. 다음 백5 는 "형태상 급소이고, 늘 두는 수" 인데, 거기에 대해 흑6 이 웅크림은 또한 확실히 우습다고 한다.

<참고도 37>          <참고도 38>  

<참고도 39>  

물론 백에게도 악수는 있었다. 수나누기 분석의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한 쪽의 착수들만이 확연히 악수로 판정된다면, 뭐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보통의 경우는 아마도 양측에 모두 악수로 분석될 만한 수들이 있고, 따라서 수나누기 분석의 어려움은 어느 쪽의 잘못이 더 큰지를 어떻게 가려내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조 국수는 <참고도 40> 백1 로 집어넣어 한 점을 보태준 점은 악수이지만 "백의 악수보다는 흑의 악수가 훨씬 많았다" 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악수의 수효를 비교하기만 하면 안심할 만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단 하나의 악수가 치명적이어서 전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테니까. 조 국수는 이 경우 "백1 은 부분적인 손해이지만 <참고도 39> 의 흑4, 6 은 그 손해가 전국에 영향을 미치는 대악수" 라는 설명을 잊지 않는다.

조 국수의 분석은 우둔한 아마추어도 무릎을 칠 만큼 명쾌하기 짝이 없다. 흑백 양측이 범한 악수의 수효에 있어서나 개개의 악수의 죄질에 비추어 볼 때 명백히 흑 쪽이 백보다 치명적인 잘못을 범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서 지적해 두고 싶은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나누기에 의한 분석 방법이 수학에서의 증명처럼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위력은 갖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광구의 보고에 따르면 문제의 장면 (참고도 38) 이 전개되었을 때 검토실에서는 마 9 단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일리 있는 것 아니냐, 백2 를 당하기는 했지만 대신 백의 외곽에 A, B 등의 단점을 남겨 놓았으니 그렇게도 둘 수 있는 것 아니냐, 마 9 단의 독자적인 연구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 는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조 국수는 이런 의견에 대해 아주 단호하게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일리가 없어요" 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위의 수나누기 분석을 해 보였던 것이다. 검토실의 의견은 이제 조 국수의 반론에 의해 완전히 논파된 것일까? 꼭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수학에서 어떤 증명이 제시되고 수학자들의 세계에서 진짜 증명으로 널리 인정받게 되면, 그 위력은 결정적이다. 그러나 조 국수의 분석처럼 지극히 설득력 있는 수나누기 분석의 결과가 나온 경우에도 모든 기사들이 거기에 구속된다던가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왜 그럴까? 필자는 이러한 사정은 바둑에서의 수나누기 분석이 연역에 무한히 접근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수학에서의 증명처럼 순수 연역은 못 되는 것, 즉 환원의 방법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참고도 40>  

4) 환원과 연역

위에서 살펴 본 수나누기에 의존한 분석과 설명은 논리학, 특히 증명이론의 분야에서의 환원과 연역의 방법을 연상하게 한다. 다소 지루할지 모르지만, 차제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의 핵심인 소위 삼단논법 이론에서 환원과 연역이 어떤 기능을 갖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통상적인 논리학 교과서의 삼단논법을 다룬 부분을 공부하고 나면 다음과 같은 소위 암송구 (구결, 가결) 를 감상할 수 있다.

    Barbara, Celarent, Darii, Ferioque prioris
Cesare, Camestres, Festino, Baroco secundae
Tertia Darapti, Disamis, Datisi, Felapton
Bocardo, Ferison habet. Quarta insuper addit
Bramantip, Camenes, Dimaris Fesapo, Fresion. (주석 : Prior, A. N., Formal Logic, 2nd edition (Oxford : Clarendon Press, 1962), p. 114.)

이것은 르네상스 이후, 그러니까 상당히 후대 학자들에 의해 변형된 암송구이고, 스페인의 피터 (Peter of Spain) 같은 13 세기 중세 논리학자들의 저술에서 더 오랜 형태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인데, 보통 교과서들은 이런 암송구들이 여기서 거론된 삼단논법의 격식을 암송하는 데 사용되었다고만 보고함으로써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그치고 만다. 그러나 프라이어 (A. N. Prior) 와 같은 예외적으로 역사적 정보가 풍부한 책들을 보면, 이 암송구들이 단지 타당한 격식들을 암송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장치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삼단논법 이론의 주요한 성과들을 간결하게 집대성하고 있는 정보의 보고임을 알 수 있다.

그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분석론전서 (Analytica Priora)』제 23 장에서 주장한 바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여기서 환원이란 무엇이고, 완벽화란 무엇인가? 종래에 이 양자는 구별되어 이해되지 못했고, 오직 환원의 방법이 전통적인 삼단논법의 타당성 검사 방법으로 이해되어 왔었는데, 1960 년대 들어 힐버트 (David Hilbert) 이후 증명이론의 배경적 지식을 가지고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이 재조명되면서 환원과는 구별되는 연역의 방법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었다는 점이 주장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러서는 정론으로 굳어졌다.

코코란 (John Corcoran) 은 연역과 환원을 이렇게 대조한다. "전제들의 집합으로부터의 한 결론이 연역은 그 결론이 전제 집합에 의해 함축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단순 추리들을 연쇄시킴으로써 구성되는 하나의 문장의 계열이다. 한 환원은 하나의 논변의 계열로서 첫 논변에 뒤따르는 각각의 논변은 앞의 것으로부터 전제 집합을 '약화' 하거나, 결론을 '강화' 하거나, 전위에 의해, 즉 한 전제를 결론의 모순 명제로 대치하고 대치된 전제의 모순 명제를 새로운 결론으로 취함으로써 구성된다." (주석 : Corcoran, J., "Deduction and Reduction : Two Proof-theoretic Processes in Prior Analytics I", Journal of Symbolic Logic 48, (1983), 906.)

이제 위에 인용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의 요지를 이렇게 풀이할 수 있다. 모든 타당한 삼단논법적 논변은 제 1 격의 전칭 삼단논법들과 환위 규칙들에 의해 연역의 방법에 의해 타당성이 증명된다. 또 주어진 임의의 삼단논법의 타당성을 가리는 문제는 제 1 격의 전칭삼단논법들로 환원이 가능한가를 묻는 문제가 된다.

부당한 논변은 오직 부당한 논변으로만 환원되며, 명백히 타당한 논변에서 환원 과정이 종료된 경우 그 출발점인 논변 역시 타당하다는 재미있는 관찰이 여기서 성립하고, 코코란은 바로 그 때문에 전통적 삼단논법 연구에서 연역과 환원을 혼동하고 환원의 기능이 연역인 것처럼 오해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커넬 (R. J. Connell) 의 경우처럼 오늘날에도 환원의 방법을 유일한 삼단논법의 타당성 검사 방법으로 소개하는 교과서들이 존재한다 (주석 : R. J. Connell, Logical Analysis : An Introduction to Systematic Learning, (Edina, Minnesota : Bellwater Press, 1981).). 환원을 케케묵은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하여 거론하지 않는 경우도, 예컨대 코피 (Copi) 가 정언적 삼단논법을 다루는 장, 절에서 그랬듯, 연역에 해당하는 그의 '형식적 증명' 이 논변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지 않다 (주석 : 코피, 앞의 책). 벤 다이아그램이나 매개념 부주연 (fallacy of undistributed middle term) 의 오류 따위를 동원한 검사규칙들이 검사 방법으로 소개되고 있을 따름이다. 연역적 논리학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다루는 대목에서 '연역' 이라는 단어조차 구경하기 힘들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고, 따라서 여기서 코코란이 얼마나 중요한 관찰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연역과 환원의 차이를 구체적인 예를 통해 시각적으로 나타내 보도록 하자.

전통적 약정에 따라 A I, E, O 를 각각 '전칭 긍정명제' 를 '특칭 긍정명제' '전칭 부정명제' '특칭 부정명제' 를 가리키도록 하자. 또 p, s, m 을 각각 '대개념' '소개념' '매개념' 을 가리키도록 하자. 이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추리 규칙은 바바라 (Barbara), 켈라렌트 (Celarent), 다리이 (Darii), 페리오 (Ferio) 의 네 가지 완벽 실로기스모스들과 세 가지 환위 규칙뿐이다.

만약 브라만팁 (Bramantip), 4 격의 AAI 식의 논변이 주어졌다고 하자.

에 전제들의 전위를 가하면,

로 환원된다. 거기에 이제 제한 환위 (conversion by accident) 에 의거한 결론의 강화 (conclusion-strengthening) 를 시도하면,

즉 제 1 격의 전칭 실로기스모스 중 하나인 바바라 (Barbara) 로 환원된다.

위와 같은 실례를 통해 연역은 문장들의 계열로서 오늘날의 기호논리학에서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증명의 방법임을 알 수 있고, 그 반면 환원은 논변들의 계열로서 논변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연구하는 매우 흥미로운 방법이지만 연역과는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위의 예에서 첫째 논변이 타당하냐의 문제는 둘째 논변이 타당하냐의 문제와 마찬가지이고, 둘째 논변은 이미 타당한 것으로 알려진 바바라 (Barbara) 보다도 약한 결론을 동일한 전제로부터 끌어내고 있으므로 당연히 타당하게 된다. 그리하여 환원의 방법에 의해 우리는 첫째 논변이 타당하다는 것을 알 게 된다.

5) 수나누기와 삼단논법에서의 환원

삼단논법 이론에서의 환원의 방법을 길게 논의한 까닭은 물론 수나누기에 의한 분석 방법과 어느 정도까지 유비가 성립하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양자는 우선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우리가 이미 답을 가지고 있는 문제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브라만팁 (Bramantip) 의 타당성을 결정하는 문제를 궁극적으로 바바라 (Barbara) 의 타당성 여부 문제로 환원하고, 바바라는 사유하는 인간인 한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타당한 논변 형식으로 취급함으로써 브라만칩이 타당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전자의 구조였다. 수나누기에서는 어떤가? 『신포석법』에서 예를 취해 보자.

『신포석법』에서 사용된 예는 <참고도 41> 에 대해, "(A) 흑3 에 대해 백4 로 빼는 수단이 있으며 가령 흑11 까지 진행됐다고 친다. (B) 에서 (C) 로 유도되는 것은 보통 있는 일 (변화). (C) 에서 (D) 의 흑1, 백2, 흑3 을 문답했다면 이것은 비록 순서는 다르지만 결과 (모양) 는 (A) 와 똑같다. (D) 의 흑1, 3 은 포석 단계에서는 귀 쪽에만 치우쳤기 때문에 재미없으며 따라서 (A) 는 흑 쪽이 좋지 않다고 보는 것이 '배수' 의 근본인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A) 에 나타난 문제를 (D) 의 문제로 환원하고 (D) 의 경우 우리가 이미 납득할 만한 결론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에 준해 (A) 에 관해 판단하는 것이 수나누기의 구조인 것이다 (주석 : 『신포석법』17 쪽.).

<참고도 41>  

양자의 유비적 관계가 더욱 설득력 있게 부각되기 위해서는 삼단논법에서의 환원의 방법에는 전제의 약화, 결론의 강화 그리고 전위의 세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그 각각에 대응하는 방법이 수나누기에 있는가를 따져 보는 문제 따위를 검토할 만하다. 예컨대 수나누기에서 불필요한 돌들을 제거하는 것은 전제의 약화와 유사한 방법인가?

▶『신포석법』의 소위 바둑의 근본 명제

'신포석법' 은 "모든 착점의 능률을 최대한도로 발휘하기 위해 수순을 전후해서 따져보는 방법" 이라는 수나누기의 정의를 제시하고 나서 "착점의 능률을 최대한으로 발휘한다는 것" 의 의미를 "필경 모든 착점이 서로 관련한다는, 다시 말해서 반상의 착점이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가 된다는 것" 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주석 : 『신포석법』15 쪽.). 그러고 나서 위에서 지적했듯 균형의 논리가 근본인 '신포석법' 이 "바둑에서의 최선의 수단이란 넓은 의미에서" 수나누기 이론에 귀결한다고 했던 것이다 (주석 : 같은 곳.). 한편 『신포석법』은 "모든 착점은 서로 균형을 유지하며 연관되어야 한다" 는 것을 바둑의 근본명제라 하고 있다 (주석 : 같은 책, 27 쪽.). 그리고 신포석법의 성립 기초를 설명하면서 다시 굳힘과 3 선 착수로 대표되는 고정적 지역주의는 편재를 통해 바둑의 근본명제에 위배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고정적 지역주의는 바둑의 전면적 상관유기체를 방해하는 셈이 되어 이 주의를 고집한다는 것은 단순히 부분 부분으로 완성한 것의 집합에 지나지 않으며 바둑의 근본명제에 위배된다는 얘기다." (주석 : 같은 책, 36 쪽.) 그리고 바로 거기서 바둑의 근본명제를 추구하기 위한 신포석법은 고정적 지역주의를 대치하는 가능적 지역주의에 입각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도출된다고 한다 (주석 : 같은 곳.).

▶ 여기서 바둑의 근본명제는 어떻게 정립된 것인가?

문용직은 『신포석법』에 나타난 이러한 "바둑의 근본명제" 에 관한 논의를 놓고 이렇게 논의를 편다. 우선 그는 신포석법이 구조주의적인 사고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보다 주목되는 것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4 선과 중앙의 발견에 대한 이론적 기초로까지 발전시키고 있는 점" 이라 본다 (주석 : 문용직, 앞의 책, 132 쪽.).

이 부분에서 문용직의 분석은 아주 탁월하다. 신포석법의 창시자들의 사고의 흐름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다는 자각이 충만한 지적 희열로 넘쳐흐르는 듯하다. 그는 3 선의 효용에 대한 의문 제기가 추상적인 수준에서, 즉 중앙의 가치를 강조한 편재성의 부정과 균형의 아이디어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고 해설한다. 그리고 편재성의 부정은 4 선의 발견과 중시로, 고정적 지역주의에서 가능적 지역주의로의 이행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신포석법』이 편재성을 부정하고 나자마자 곧 평균의 개념 제시로 이어진 데 대해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썼다. "바둑판이 대칭인 이상 평균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그 수가 가장 균형점이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착수의 자리는 천원이다. 사실 중앙은 평균이 균형점이라는 아이디어로부터 발견되고 창조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주석 : 같은 책, 133 쪽.)

<참고도 42>  『신포석법』48 쪽 천원인 O 가 A 와 B 두 점의 평균점이라고 한다.

<참고도 43>  『신포석법』49 쪽 삼각형의 외심 O 가 A, B, C 세 점의 평균점이 된다고 한다.

이쯤에서 문용직이 도사쿠의 업적을 구조주의와 수나누기 이론을 접목시킨 데서 찾았다는 점을 상기하도록 하자. 그리고 『신포석법』의 소위 바둑의 근본명제와 수나누기 이론을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는 것처럼 취급했다는 점을 주목하도록 하자. 문용직의 표현을 빌린다면, 구조주의적 사고 내용을 『신포석법』은 수나누기 이론의 본질적 요소로 간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문용직도 이러한 기미를 느끼고 "돌의 효율이란 다름 아닌 도세키의 수나누기 이론 (배수론) 의 발견과 논리적으로 다를 바 없다" 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한다. 왜 놀라울까? 그것은 효율이라는 개념이 신포석 혁명과 더불어 새롭게 등장한 것으로 보는 사람에게 놀라울 수 있다. 그리고 문용직은 실제로 신포석 혁명으로 인하여 새롭게 등장한 중요한 개념들의 리스트에 '효율' 을 포함시키고 있다. "균형, 평균, 속도, 중앙, 효율" (주석 : 같은 책, 138 쪽.) 아맏 문용직은 이 어려운 논의의 미로 속에서 자신이 "도사쿠는 도세키로부터 관계와 비교라는 두 개의 중요한 개념을 얻었으며, 그로부터 구조주의를 발견하였고 효율 개념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이 효율의 개념은 구조주의적 사고를 바둑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이었다" (주석 : 같은 책, 90 쪽.) 고 쓴 것을 잠깐 망각한 것으로 보인다.

돌의 효율이란 기착된 돌과 돌의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수나누기 이론과 다를 바 없고, 도사쿠의 구조주의와도 그 본질에서 다를 바 없다고 한 다음 문용직은 대단히 방어적인 자세로 "그러나 신포석 패러다임이 중앙의 가치와 4 선의 가치를 발견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칭위엔의 속도 개념으로 정석과 포석의 경계를 더욱 더 모호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신포석 패러다임은 기존의 패러다임과는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주석 : 같은 책, 138 쪽.) 고 썼다.

이것은 명백한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기존의 바둑과 신포석법을 상이한 패러다임으로 이미 결정짓고서 양자의 차이를 지적함으로써 전자로부터 후자로의 변화를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주의와 수나누기 이론 자체가 상호침투하여 있고, 또 그 두 가지 요소가 도사쿠 이래의 바둑과 신포석법 양자 모두에서 핵심적인 구성 요소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공통성을 외면하고 몇 가지 차이를 부각시켜 신포석혁명을 "포석의 혁명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혁명" 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