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의 실용주의 방법론

 

바둑철학 : 박우석 저, 동연출판사, 2002, Page 192 ~ 251

 

1) 서론

2) 실용주의 방법의 태동

  (1) 유명론 비판

  (2) 칸트를 넘어서

  (3) 진화론의 영향

3) 퍼스의 핵심 사상

  (1) 과학의 분류

  (2) 기호학

  (3) 범주론

4) 과학적 방법의 독특성

  (1) 믿음의 고정화

  (2) 실용주의의 격률

  (3) 가추

    가. 연역, 귀납, 그리고 가추

    나. 가추적 형식

    다. 가추는 소위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리인가?

5) 퍼스의 실용주의와 현대 과학철학의 과제

  (1) 형이상학적 실재론과 과학적 실재론

  (2) 실용주의 격률과 가추의 논리

  (3) 과학적 형이상학인가, 형이상학적 과학인가?

 

1) 서론

본 연구의 목적은 미국 실용주의 (pragmatism) 창시자로 흔히 지목되는 찰스 샌더스 퍼스 (Charles Sanders Peirce) 의 중심적 사상의 개요를 파악하고, 그가 주창한 실용주의적 방법의 요체를 이루는 핵심적 개념과 이론들을 검토함으로써 오늘날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실용주의의 근간을 이해하려는 데 있다.

우선 논의의 편의상 다음과 같이 아펠 (Karl-Otto Apel) 이 재구성한 퍼스 사상의 발전 단계들을 개관하고 이후 논의의 골격을 잡도록 하자. 아펠은 우선 퍼스가 실용주의를 발전시킨 시기와 실용주의에서 프래그머티시즘 (pragmaticism) 으로 넘어간 시기로 나눈 다음, 두 시기를 또한 제 1 기 (1855~1871) 와 제 2 기 (1871~1883), 제 3 기 (1883~1893 또는 1902) 와 제 4 기 (1898 또는 1902~1914) 로 양분하고 있다 (주석 : Apel, Charles S. Peirce : From Pragmatism to Pragmaticism, J. M. Krois (trans.) (Amherst :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 1981) Ch. 2, pp. 14-8.).

제 1 기는 퍼스가 철학사의 전통과의 연관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세워 가는 시기로, 특히 칸트적인 배경이 중요하다. 아펠은 이 시기를 퍼스가 지식 비판에서 의미 비판으로 의미 비판으로 넘어간 시기로 특징지운다. 제 2 기는 미국철학과 실용주의가 꽃피운 시기로, 퍼스의 새로운 탐구의 방법들이 진술된 「믿음의 고정화 (The Fixation of Belief)」「관념을 명석하게 하는 방법 (How to Make Our Ideas Clear)」등의 논문을 이때 쓴다. 아펠은 이 시기를 의미 - 비판적 실용주의의 생성으로 특징지운다. 제 3 기는 퍼스가 최종적으로 그의 철학 체계의 구도를 확립한 시기이다. 아펠은 이 시기를 퍼스가 실용주의에서 진화의 형이상학으로 나아간 시기로 특징지우고 있다. 제 4 기는 퍼스가 그의 프래그머티시즘 개념을 완성한 시기로, 아펠은 이 시기를 퍼스가 실용주의에서 프래그머티시즘으로 넘어간 시기로 특징지운다.

한편 벅스 (Burks) 역시 퍼스 사상의 발전 단계를 4 단계로 나누는데, 아펠과 달리 모든 년도를 망라하는 것보다는 확실한 지표가 되는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런 점에서 결국 그의 구별 역시 대동소이한 것으로 보인다. 벅스에 따르면, 제 1 기는 인지가 연속적이고 무한한 사회적 기호학적 (semiotic) 과정이고, 그 안에서 인간이 하나의 기호라는 그의 1868~69 년의 이론이 핵심적인 시기라고 한다. 제 2 기는 1877~78 년에 퍼스가 『월간 대중과학 (Popular Science Monthly)』에 「과학의 논리 예시 (Illustrations of the Logic of Science)」라는 주제 아래 여섯 편의 연작 논문을 발표한 시기이다. 실용주의를 천명한 「관념을 명석하게 하는 방법」이 이 중 가장 중요하고, 그의 확률에서의 상관빈도설이 또한 이 시기의 소산이라고 한다. 제 3 기는 우연주의 (Tychism), 연속주의 (Synechism), 아가페주의 (Agapism) 를 통한 우주적 진화론의 정립 시기이다. 제 4 기는 1900 년대에 퍼스가 제 2 기의 실용주의가 지닌 유명론적 (nominalistic) 색채를 제거하고 강한 실재론적 경향을 보인 시기이며, 또한 신과 영혼의 불멸에 관해 논의를 남긴 시기이다 (주석 : Burks, "Peirce's Evolutionary Pragmatic Idealism", Synthese 106, pp. 323-72 (1996).).

이제 퍼스의 실용주의 방법론을 이해함에 있어 핵심이 되는 것은 소위 제 2 기의 저작들이라는 것은 자못 자명하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가 실용주의와 프래그머티시즘을 구별한 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염두에 두고서 필자는 본 연구에서 '실용주의의 격률' (pragmatic maxim) 과 '가추 (abduction) 의 논리' 라는 두 가지 주제를 논의의 축으로 삼고자 한다. 아래의 각 항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제 2 항에서는 퍼스가 제 1 기에 과거의 전통 및 당대의 현안들에 맞서 여하한 방식으로 반응하였는가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유명론 비판과 칸트의 반복이다. 그러나 더 큰 맥락 속에서 진화론의 영향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살펴볼 것이다.

제 3 항에서는 퍼스의 핵심 사상이라 할 수 있을 그의 학문 분류, 기호론, 범주론 등을 간략하게 조감한다. 이 주제들 하나 하나가 각각 독립된 책 분량의 연구를 필요로 하는 터이므로 이 주제들의 논의는 실용주의의 격률과 가추의 논리에 관한 퍼스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범위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제 4 항은 본 연구의 중심 부분으로 여기서 필자는 우선 '믿음의 고정화' 에 나타난 퍼스의 의심과 믿음의 분석 및 과학의 방법의 우월성에 대한 그의 견해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고 나서 '관념을 명석하게 하는 방법' 에 나타난 그의 실용주의의 격률을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대응설적 진리론' (correspondence theory of truth) 과 과학적 실재론에 포함된 그의 진리 및 실재 개념이 그 다음에 취급될 과학의 방법으로서의 가추의 논리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 명백해질 것이다.

결론에 해당하는 제 5 항에서는 본 연구의 내용을 종합하여 퍼스 사상의 핵심적 요소들 간의 상호 유기적 연관 관계를 다시 한 번 부각시키고, 동시에 퍼스의 사상이 오늘날 우리와 더불어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 현대 과학철학에서의 실재론 대 반실재론 논쟁에서의 퍼스의 독특한 위치, 실용주의 격률과 가추의 논리의 연관성, 그리고 과학과 형이상학의 구획 (demarcation) 문제에 관한 퍼스의 입장의 타당성 등을 논의할 것이다.

2) 실용주의 방법의 태동

(1) 유명론 비판

보편자 (universal) 의 인식이 사고하는 존재들의 커뮤니티안에서 기호 (sign) 에 의해 세계가 표상될 가능성 문제와 얽혀 있다는 점은 퍼스 철학의 중심적 전제 가운데 하나이며, 이 점은 오컴 (William of Ockham) 이래 영국의 유명론의 기호학적 전통으로부터 그가 빚지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듯, 퍼스는 온갖 유명론을 비판하며, 그의 비판의 요점은 유명론이 이 전제를 보편자의 객관적 본성과 조화시킬 수 없다는 데 있다.

퍼스는 소위 개념론 (conceptualism) 을 유명론의 뒤죽박죽된 형태로 보는 까닭에 그가 의미하는 바 유명론은 극단적 형태의 유명론을 위시한 온갖 형태의 유명론을 포함한다. 그는 오컴 이래 유명론 (nominalism) 의 시대를 풍미하면서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이 조류에 굴복한 것으로 보았으며, 여기에는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영국 경험론자들, 칸트, 그리고 헤겔 등이 ㅁ두 포함된다. 유명론의 위세는 그것이 근대과학에 의해 함축된다는 가정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퍼스 자신도 초기에는 이 견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구지 (Goudge) 에 따르면, 애벗 (Francis Elligwood Abbott) 의 『과학적 유신론 (Scientific Theism, 1885)』을 읽고 나서 퍼스는 과학이 항상 그 근본에 있어서 실재론적이고 또 항상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CP 1.20) (주석 : Goudge (1950), The Thought of C. S. Peirce (New York : Dover) p. 96.)

퍼스가 실재론 편에 기우는 면모를 공식적으로 보인 것은 1868 년 『사변철학지 (Journal of Speculative Philosophy)』에 발표한 논문 『네 가지 무능력의 귀결 (Some Consequences of Four Incapacities)」이다. 여기서 그는 그 자신의 진리와 실재 개념을 전개했고, 그 이후 그 입장에서 흔들림이 없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또한 프레이저가 편집한 버클리 전집에 대해 퍼스가 쓴 서평이 1871 년 『노스어메리카 리뷰 (North American Review)』에 실렸는데, 소위 '버클리 리뷰' 로 널리 알려진 이글에서 그는 스콜라적 실재론에 대한 그의 확신을 재천명했다. (주석 : Boler 는 퍼스의 버클리 전집 서평의 내용은 스코투스의 In Metaph. VII, q. 18 (Vives VII, 452b ff.) 의 매우 간략한 요약임이 명백하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퍼스 자신은 이 서평이 여전히 유명론적 색채를 벗어버리지 못했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Goudge (1950), p. 96 참조.)

퍼스는 완전한 철학은 반드시 실재론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왜 근대철학이 유명론의 조류에 휩쓸렸는가를 설명해야만 했다. (CP 1.19, 2.12, 8.208) [이후로는 퍼스 원전은 참고문헌의 약칭으로 표시함] 그에 따르면, 보편자 문제의 중요성 자체가 망각되고 대학의 통솔권 따위의 정치적 이유에서 인문주의자들이 오컴의 추종자들 편을 들면서 순전히 역사적 우연에 의해 유명론이 학계를 풍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실재론의 옹호 역시 매우 부실하였다는 것이 퍼스의 생각이었다. 보편자 문제를 부활시키고 과학의 진보에 부합하는 실재론을 옹호하기 위해 그는 왜곡된 논쟁의 역사를 바로잡고 실재하는 일반성의 중요성을 현대인에게 부각시켜야 했다. 과학적 지식의 정당화에 실재론적 입장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소급될 수 있는 오래된 아이디어이다. 그러나 퍼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과학 자체가 애당초 실재론적이며 철학자들이 물을 흐려왔다고 주장한다. (CP 1.20, 1.6, 1.32-34, 2.166)

퍼스는 실재론 대 유명론의 논쟁, 그리고 영국 사상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쟁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다시 말해서, 퍼스에 의하면 실재론과 유명론 간의 진정한 쟁점은 법칙이나 일반적인 유형이 정신의 가공물인가 그렇지 않으면 실재적인가 하는데 있다. (CP 1.16) 법칙이나 일반적 유형들이 개별 사물들을 표상하는 양태들에 불과하며 모종의 객관적 대응물을 갖지 않는다는 유명론들의 주장에 대해 실재론자들은 강하게 반발한다.

퍼스는 유명론의 최대 논변은 어떤 특수한 인간이 없는 한 인간이란 없다는 것이라 보았고, 그것이 스코투스 (John Duns Scotus) 의 실재론에는 하등의 영향을 미칮 못한다는 데 주목한다. 그는 이 대목에서 다른 규정들과는 무관한 인간과 이 또는 저 특별한 일련의 규정을 지닌 인간 사이에는 진정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CP 5.312) (주석 : J. F. Boler (1963), Charles Peirce and Scholastic Realism, (Seattle : Univ. of Washington Press), p. 25.)

(2) 칸트를 넘어서

퍼스는 대학 시절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매일 2 시간씩 3 년이 넘도록 정독하여 책 전체를 암기할 정도로 모든 항목을 철저히 검토하고 고찰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MS 160,3) (주석 : D. R. Anderson (1995), p 4 에서 재인용.) 아펠에 의하면, 청년 시절 칸트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퍼스는 인식 불가능한 물자체의 존재를 인정하거나 과학의 객관적 타당성을 정초하는 일을 포기해야 하는, 칸트가 제기한 문제 상황에서 독자적 해결을 모색했다. (주석 : Apel (1981), p. 35). 그것이 바로 비판적 상식주의로서의 실용주의의 한 측면인 오류주의 (fallibilism) 이다. 아펠의 해석에 따라 퍼스가 어떻게 칸트철학의 기호학적 변형을 수행했는지를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아펠에 따르면, 흄의 회의론 (skepticism) 과 선험논리학적 조건에 토대하여 과학적 명제들의 필연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칸트의 주장 사이에 제 3 의 대안을 퍼스가 제시한 것이다. 그것은 모든 과학적 명제들의 가설적이고, 따라서 가류적인 (fallible) 성격을 인정하되, 과학의 종합적 명제들이 얻어지는 추리 절차의 필연적 타당성을 선험적 연역에서 증명한다는 방안이다. 퍼스에게 있어서 유일한 전적으로 선험적이고 필연적인 전제는 추리의 종합적 과정의 궁극적 (in the long run) 타당성이다. 밀 (John Stuart Mill) 에 반대하여 귀납적이고 가추적인 추리 절차의 타당성이 결코 경험적으로 근거지워질 수 없다고 본 점에서 퍼스는 선험적 연역을 수정하면서도 칸트를 따르고 있다.

나아가서 아펠은 객관적으로 타당하기 윟 과학의 종합적 판단들이 반드시 필연적 진리일 필요가 없고 그 대신 사용된 논리적 추리 방법의 궁극적 타당성에 의존하면 된다는 퍼스의 이런 생각이 함축하는 바를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과학적 진리에 관해 퍼스가 주장하는 오류주의는 칸트적 현상론에서 형이상학적 실재론으로의 복귀의 체계적 가능성을 함축한다 (주석 : Apel (1981), p. 48.).

과학의 객관적 타당성을 선험적 연역을 통해 입증하는 문제는 이에 따라 과학이 사용하는 추리의 종합적 과정에 관해 제기되게 되며, 따라서 선험적 연역의 문제는 퍼스를 통해 귀납의 정초 문제로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3) 진화론의 영향

19 세기 말 다른 과학들보다 한층 더 심각하게 종교를 위협한 다윈의 진화론은 당대의 사상가들, 특히 미국의 지성인들에게 뚜렷한 흔적을 남겼고, 퍼스도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구지 (Goudge) 의 설명에 따라 특히 퍼스의 후기 사상을 이해하는 필수적 배경으로서 진화론의 영향을 조감해 본다 (주석 : 이 항의 내용은 Goudge (1950) 의 pp. 227 이하의 논의와 pp. 11-3 의 논의에 바탕을 둔다.).

퍼스는 수학과 논리학에 조예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화학을 전공했고, 천문학, 실험심리학, 지학, 광학 등에서 실제 과학자로서의 체험을 지닌 연구가였지만, 그의 사고의 정향은 구지가 지적했듯 대단히 생물학적이었다. 사고가 신경작용의 일반법칙에 종속될 가능성을 탐색하며, 주어진 자극에 반응하는 강한 습관이 유전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CP 3.157, 3.158) 이하에서 더 자세히 논의되겠지만, 습관이란 퍼스의 사상에서 핵심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자연법칙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광의의 습관 (habit) 과 획득된 행동양식이라는 협의의 습관 모두 그에게 중요하였다. 인간의 개성의 핵심이 습관이라는 점은 "인간은 습관들의 다발" (CP 6.228) 이라는 생각에 극명하게 나타난다. 믿음이란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습관에 불과하며 (CP 4.53), 진정한 믿음 또는 의견은 그에 의거하여 인간이 행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습관이라 할 수 있다. (CP 2.148) 탐구란 이런 습관이 의외의 자극에 맞서 의심하게 됨으로써 습관의 결여 상태에서 (CP 5.417) 새로운 믿음을 확정하고자 애쓰는 것으로 이해된다. (CP 2.173, 5.375)

퍼스는 생물학적 진화론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다윈의 저작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는 즉각 진화론이 세밀하고, 체계적이고, 광범하고, 엄격한 연구에 바탕을 둔 철저한 과학적 일반화로 표방된 데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CP 1.33) 훗날 그는 다윈 세대의 지속적인 열정을 젊은이로서 느낀 것은 특권이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주석 : Goudge (1950), p. 227.) 그는 진화론의 증거가 너무도 압도적이라 여겼기 때문에 진화의 일반적 사실에 대해서는 하등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다윈의 진화론을 증거가 진화론을 무비판적으로 전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다.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진화가 일어났느냐는 데 대한 다윈의 설명에 대해 그는 회의적이었다. 그 결과 그는 다윈의 이론과 스펜서의 이론, 그리고 그 자신의 격변적 (cataclysmal) 진화 이론을 심각하게 고려하였다고 한다. 그는 다윈과 라마르크의 이론들이 지나치게 결정론적이어서 사실들에 대한 만족스런 해석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그는 종의 변이가 점진적이라기보다 갑작스럽다는 증거가 현저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변이들이 물리적 환경의 급속한 변화들과 상호 연관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따라서 그는 그런 변화들이 진화에서 인과적 작인으로 기능했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생물학과 고생물학 (paleontology) 의 가장 광범하고도 중요한 사실들에 비추어 합리적이라 보았다. (CP 6.17)

구지는 퍼스의 진화의 개념이 훗날의 베르그송, 알렉산더, 그리고 화이트헤드의 사상들을 선취했다고 여기면서, 그 근거로 그들 모두가 변화나 생성이 실재의 주된 측면이라는 점, 가장 중요한 형태의 변화가 성장이라는 점, 성장은 결정론적으로 이해될 수 없다는 점, 성장은 창조성과 새로운 것의 창발 (emergence) 을 포함하는 한 방향의 과정이라는 점, 진화의 범주를 물리적, 사회적, 역사적 현상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등을 확신했다는 데서 찾았다.

퍼스에게 다윈의 영향이 심원하였다는 증거는 무엇보다도 광의의 습관 즉 자연법칙 자체가 진화한다는 그의 사상에서 찾아진다. 우리가 우연히 실재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그의 우연주의 (tychism) 적 세계관에서 자연법칙은 행동의 습관으로서 시간을 통해 변화되고 수정되는 것으로 이해된 것이다. (CP 1.402-3) (주석 : S. M. 에임즈 (1977, 1999), 『실용주의』조성술, 노양진 역 (광주 : 전남대학교 출판부) 42 쪽 참조 에임즈는 한편 실용주의적 자연주의자들이 모두 자연과 인간 생활에 대한 개념의 전개에서 진화 개념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3) 퍼스의 핵심 사상

(1) 과학의 분류

과거 아리스토텔레스가 성취한 바를 당대에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 퍼스가 평생에 걸쳐 과학의 분류에 몰두한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구지는 퍼스의 과학 분류가 퍼스에게서 발견되는 자연주의 (naturalism) 와 초월주의 (transcendentalism) 의 갈등을 첨예하게 보여 주고 궁극적으로 퍼스가 어떻게 자연주의를 부정하고 초월주의로 넘어가는지를 이해하게 해준다는 근거에서 이 작업을 퍼스 사상을 이해함에 있어 최고의 중요성을 지닌다고까지 주장한 바 있다 (주석 : Goudge (1950), p. 44.).

구지의 보고에 따르면, 퍼스가 과학의 분류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인 것은 1900 년경이지만, 실제로 그의 관심은 그가 『분류에 관한 논고 (Essays on Classification, 1857)』의 저자인 아가시즈 (Louis Agassiz) 에게 배우던 학창 시절로까지 소급될 수 있다 (주석 : Goudge (1950), p. 44.). 그 어떤 분류의 체계도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퍼스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철학적 성숙성과 개별과학들에 대한 친숙성, 그리고 분류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모두 요구되기 때문에 퍼스는 과학을 분류하는 일을 함부로 수행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다. (CP 1,20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든 가능한 과학들을 매거하여 분류할 수 없고 단지 기존의 과학들을 분류할 수밖에 없는 까닭에 모든 경우에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분류체계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CP 2.636)

퍼스는 스승 아가시즈가 동물계를 갈래 (branches) (주석 : 오늘날 생물학에서 갈래 (branch) 는 일반적으로 (phylum) 과 강 (class) 사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강 (classes), 목 (orders), 과 (families), 속 (genera), 종 (species) 으로 분류한 것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다소의 수정보완을 통해 그의 분류 틀로 삼았다. 그 결과 얻어진 그의 과학 분류는 시기에 따라 이름은 바뀌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다.

우선 그는 과학의 양대 분과로 이론과학과 실천과학을 나눈다. "그 목적이 단순히, 그리고 오직 신의 진리의 지식인 이론과학, 그리고 삶에서의 이용을 위한 실천과학" (CP 1.239) 이론과학은 1) 우주 안의 모든 가능한 사실들을 축적하고, 조직하고, 기술하고, 설명하는 '발견의 과학' 과 2) 초록에서 시작해서 과학철학에 이르기까지 발견의 결과들을 배열하는 일로 부심하는 '논평과학 ' (Science of review) 의 두 갈래 (branch) 로 나뉜다. (CP 1.182)

발견의 과학 (Science of Discovery 또는 heuristic sciences) 은 다시 수학, 철학, 그리고 이디오스코피 (Idioscopy) 의 세 가지 강으로 세분된다.

퍼스는 수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수학은 가설들의 귀결들을 끌어내는 일에만 종사한다. 그 자체로 그것은 어떤 것이 실존적으로 참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CP 1.247) 그리고 앤더슨이 지적했듯 그것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1) 범주들을 끌어내는 데 있어서의 수학의 역할, 2) 퍼스의 철학 체계의 초석을 쌓은 일. 퍼스의 수학관의 독특한 점은 그가 어떤 의미에서 수학이 관찰적이라고 보았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추상적인 규칙들의 집합에 의거하여 가상적 구성물들을 만들고 구성규칙들 속에 구체화되어 있지 않은 그것들 간의 관계를 찾아내는 일종의 사고실험 (thought experiment) 으로 수학의 작업을 이해한 점은 실용주의의 격률을 논의할 때 수학과 자연과학의 차이와 관련하여 다시 상세히 논의될 것이다.

철학은 개별 과학들의 서곡으로서 일상적 경험으로부터 추리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연구한다. (CP 1.241) 다시 말해서 퍼스에게 있어서 철학은 하나의 과학으로서 일상적 경험과 그 경험의 환경을 이루는 세계에 관한 진리들을 탐구한다. 동시에 그것은 끝없는 비판 작업을 수행한다. 이 작업은 일상적 사유와 지각에서 무엇이 직접적으로 경험되는가를 분별해 낼 능력만이 요구되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테크닉도 요구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널리 경험되는 바일수록 정확히 분별해 내기가 쉽지 않은 까닭에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벤담 (Jeremy Bentham) 을 좇아 퍼스가 '이디오스코피' 라 부른 세 번째 발견적 과학은 보다 더 모호한 사실들의 축적에 바쳐지는 모든 개별과학들이 포함된다. 감각을 돕기 위해 도구들이 동원되는 특별한 유형의 관찰이 이 과학에서 요구된다. 여기에는 작용인을 탐구하는 물리과학 (physical sciences, physiognosy) 과 목적인을 탐구하는 심리과학 (psychical science, psychognosy) 이란 하부 - 강 (subclass) 들이 있다.

수학에는 1) 논리의 수학 (the Mathematics of Logic), 2) 불연속의 수학 (the Mathematics of Discrete Series), 3) 연속과 의사 - 연속의 수학 (the Mathematics of Continua and Pseudo-continua) 의 세 목이 있다. 철학에도 1) 현상학 (pheneomenology), 2) 규범과학 (Normative Science), 3) 형이상학 (Metaphysics) 의 세 목이 있다. 현상학은 온갖 형태의 경험들과 관여하며, 규범과학들과 형이상학이 경험의 구체적인 차원들을 다루는 것과 대조된다. 그것은 철학을 할 가능성 자체를 탐색하며, 그렇게 함에 있어서 수학에 의해 제공된 도구들, 즉 관찰과 일반화를 이용한다. 규범과학들은 행위와 감정과 사고의 영역에서의 당위 문제를 다루며 현상학과 수학 양자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형이상학은 정신과 물질의 우주에 대한 해명을 주고자 하며 현상학과 규범과학에 토대를 둔다.

물리과학과 심리과학도 각각 아래에 세 가지 목을 지닌다. 물리과학 아래는 1) 법칙적 일반물리학, 2) 분류적 물리학, 3) 기술적 물리학의 셋이 있다. 심리과학 아래는 1) 법칙적 심리과학 (또는 심리학), 2) 분류적 심리학 [또는 민속학 (ethnology)], 3) 기술적 심리과학 (또는 역사학).

규범과학은 그 아래 하부-목 (sub-order) 으로 그 자체로 훌륭한 것을 확립하고자 하는 미학, 행위와 관련하여 훌륭한 것을 확립하고자 하는 윤리학, 그리고 특별한 유형의 행위로서의 사유와 관련하여 훌륭한 것을 찾고자 하는 논리학을 갖는다. 퍼스는 최고선을 결정하기 위해 윤리학은 미학에 호소해야 하고, 자기통제적 사고를 다루는 것으로서 논리학은 그 원리를 윤리학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논리학은 또한 현상학과 수학에도 의존한다고 한다. (CP 1.191)

모든 사유는 기호 작용을 포함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논리학은 퍼스에게 있어서 기호들의 일반적인 법칙들을 탐구하는 과학이었다. 논리학은 세 과로 나뉘며, 1) 사변문법 (Speculative Grammar) 2) 비판학 (Critic), 3) 방법론 (Methodeutic) 이 그것들이다. 사변문법 기호들의 본성과 의미의 일반이론이고, 비판학은 논변들을 분류하고 각각의 유형의 논변들의 타당성을 결정한다. 방법론은 진리의 연구, 해명 그리고 응용에서 추구되어야 할 방법들을 연구한다.

형이상학 아래는 1) 존재론 (Ontology) 또는 일반 형이상학 (General Metaphysics), 2) 종교적 형이상학 (Religious Metaphysics) 또는 심리적 형이상학 (Psychical Metaphysics), 3) 물리적 형이상학 (Physical Metaphysics) 의 세 가지 하부 - 목 (sub-order) 이 있다. 종교적 형이상학은 신, 자유, 영혼불멸을 주로 탐구하고, 물리적 형이상학은 시간, 공간, 물질, 인과 등의 문제를 연구한다.

물리과학과 심리과학 아래의 하부 - 목의 목록은 생략한다. (CP 1.180-202)

(2) 기호학

앞에서 이미 벅스가 분류한 퍼스 사상의 발전 4 단계설의 개요를 훑어보았지만, 그 각 단계들 간의 관계, 방향, 연속성 따위는 그리 분명하지 않았었다. 그러한 불만은 퍼스가 '3' 이라는 숫자를 광적으로 좋아하여, 그의 기호학에서의 도상 - 지표 - 상징, 범주론에서의 제 1 성 - 제 2 성 - 제 3 성, 추리에서의 연역 - 귀납 - 가추, 우주적 진화론의 우연주의 - 연속주의 - 아가페주의 등에서 보듯, 어떤 주제든지 3 부의 체계로 제시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다소 해소될 법하다. 그리고 벅스가 제안하듯 퍼스의 기호학 사상을 축으로 하여, 제 1 기에는 퍼스가 기호 사용자인 인간의 커뮤니티를 이야기했고, 제 2 기에는 특히 과학 탐구자들의 무한한 커뮤니티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관념을 명석하게 하는 방법" 에 나타난 화용론적 의미 이론에 도달했고 제 3 기에는 인간 커뮤니티의 무한 기호학적 추리적 진화론으로부터 우연주의 - 연속주의 - 아가페주의로 구성되는 무한 우주적 진화론에 도달했고, 제 4 기에는 제 2 기의 유명론적 색채를 제거하고 성향 (실재적 잠재성) 의 양상적 실재론과 신 개념에 도달했으며, 이 모두를 종합한 것이 퍼스의 진화론적 프래그머틱 관념론이라고 볼 경우 어렴풋하게나마 퍼스의 사상적 발전의 흐름이 꼴을 갖추어 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주석 : Burks, Ibid., p. 335. 퍼스의 기호학에 관한 논의는 Misak (1991) 에 크게 의존했다.).

제 1 기에 퍼스는 데카르트와 칸트를 비판하면서 인간은 직관의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는 주장을 펴고, 여기서부터 출발하여 모든 사고는 기호이므로 모든 사고는 다른 사고 내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논의를 전개한다. 그것이 기호의 본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CP 5.251-253 참조) 그리고 퍼스는 탐구란 기호 작용의 한 형태이고, 개인은 인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 무한한 탐구 과정에 공헌한다고 주장한 다음 그 주장을 정신은 기호라는 주장으로 변형시킨다. 그리하여 인간이 사용하는 기호가 인간 그 자체이고, 모든 사고가 기호라는 데다 인생이 일련의 사고라는 점을 더한다면 인간이 기호라는 점이 증명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따라서 나의 언어는 나 자신의 총체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고이기 때문이다" 라는 통찰이 나온다. (CP 5.313-317 참조)

퍼스는 기호와 지시체의 관계만으로는 표상에 대한 완전한 해명을 줄 수 없다고 보고 표상이 기호, 대상, 그리고 해석자라는 삼자의 관계에서 성립한다고 생각함으로써 해석을 그의 기호론의 중심부에 위치시켰다. 그리고 이 표상 관계의 각 단계는 퍼스가 기호를 도상 (icon), 지표 (index), 상징 (symbol) 으로 구분한 것과 대응된다. (CE 2, 56, 1867, "On a New List of Categories")

도상은 유사성 덕에 대상들을 드러내 보이는 기호다. (CP 3.362 ; 2.299 ; 4.447) 초상화는 그것이 그린 사람의 도상이고, 지도는 특정 지역의 도상이다. 퍼스는 도상적 기호의 의미는 주로 그것의 내포에 달렸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그림이나 지도를 하나의 도상이게 하는 것은 그것의 성질들이 그것의 대상의 성질들을 닮았다는 점이다.

지표는 그것의 대상을 인과적인 방식으로 가리키는 기호다. 지표는 전적으로 대상과 실제로 연관된 덕에 그 대상을 의미한다. (CP 3.360, 5.73, 4.447) 예를 들어, 증상은 질환의 지표이고, 연기는 화제의 지표다. 퍼스는 지표의 본질적 속성을 그것의 주목을 강요하는 능력에서 찾았다. (CP 1.369, 2,285, 2.287)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손가락, 문두드림, 또는 지시대명사는 해석자에게 대상에 초점을 맞추게 함으로써 주의를 환기한다. 따라서 이렇게 대상지향적임으로써 지표는 외연을 그것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으로 한다. (CP 8.119)

상징은 협약적이거나 습관적인 규칙에 의존하는 단어, 가설, 또는 논변이다. 퍼스는 상징이 기호인 까닭은 그것이 그렇게 사용되고 이해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CP 2.307, 1.369) 상징은 원리 또는 실용적 의를 지니며 지적인 의도를 갖는다. 여기서 퍼스는 실용적 의미를 그가 도상과 내포와 연관짓는 내재적 의미 및 그가 지표와 외연과 연관짓는 외재적 의미와 대조시킨다. (CP 8.119) 만약 한 기호를 해석자가 습관적으로 어떻게 해석할지를 발화자가 안다면 그 발화자는 해석자에게 특정의 효과를 낳도록 하기 위해 그 기호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징은 실용적 의미를 갖는다. 퍼스는 이 효과를 기호의 해석소 (interpretant) 라고 부른다.

퍼스는 세 종류의 해석소를 구별한다. (CP 8.315, 5.475, 4.536, 8.184) '즉각적 (immediate) 해석소는 특정 방식으로 이해될 기호의 적합성이다. '역동적' (dynamical) 해석소는 기호가 해석자에게 갖는 현실적 효과이다. 그리고 '최종적' (final) 해석소는 결국에 가서 올바른 해석이라고 결정될 효과이다. 퍼스는 실용적 의미가 일종의 역동적 해석소인 궁극적인 논리적 해소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CP 5.476, 5.491, 5.494) 하나의 기호는 해석자의 마음에 논리적 해석소를 불러일으키고, 그 논리적 해석소 자체가 하나의 기호이므로 해석과 사고의 무한한 연쇄가 시작된다. 무한퇴행 (infinite regress) 은 그러나 궁극적 논리적 해석소 또는 습관 변화 (habit-change) 에 의해 막아진다.

(3) 범주론

현상학의 주요 과제이자 목적인 범주 (category) 의 논의는 퍼스의 사상 안에서 가장 난해한 면모를 보인다. 이른 시기에 그가 범주들의 목록을 작성했고, 사상이 발전함에 따라 계속적으로 그것을 수정해 나갔다는 사실도 그 난해함을 증폭시킨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하의 논의에 배경이 될 가장 중요한 요소들만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퍼스는 제 1 성 (Firstness) 을 자유, 감정, 그리고 독립성과 연결지으며, 그것을 그는 또 가능적 본질들을 통해 사례화한다 (flavors, fragrances, and qualities). 제 1 성은 그 자체로서 고려된 성질이다. (CP 1.302, 7.528) 때때로 그것은 긍정적인 질적 가능성, (CP 1.25) 순수한 가능성 [pure may-be (CP 1.304)] 으로 묘사된다.

한편 퍼스에게 있어서 저항과 반작용은 제 2 성 (Secondness) 의 중요한 예들이며, 타자에 대한 근거가 된다. (CP 1.325, 4.3) 두 대상들이 현실적으로 개별적인 사건으로서 충돌할 때 제 2 성이 있다. 퍼스는 이것을 거친 [brute (CP 1.427, 2.84)] 맹목적 [blind (CP 1.328)], 유일한 [unique (CP 7.352)], 우연적 [contingent (CP 1.427, 4.29)] 등으로 특징지운다. 비록 경험될 수는 있지만 개념적이지 않은 까닭에 퍼스는 그것을 때때로 '이것임' (a bare thisness, an haecceity) 이라 부르기도 한다. (CP 1.341, 1.405, 1.458, 3.434) 그것은 전적으로 성질이나 법칙적 특성을 결여하고, 현실적이고 실존적이어서 (CP 1.21, 1.325, 1.456, 1.532, 3.612, 4.542, 5.502, 6.343, 6.349, 6.495, 7.534) 변경이 불가능한 까닭에 필연적이며 (CP 1.427 2.84), 그것 없이는 순수한 가능성 이외의 여하한 지식도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우리 경험의 본질적인 요소가 된다.

제 3 성 (Thirdness) 은 매개와 종합의 범주로서 앞의 둘의 관계와 연관을 정교하게 밝힌다. 퍼스는 이것을 경험의 최고 차원으로 보아 중점적으로 관심을 쏟았다. (CP 4.432) 일반성, 무한, 연속성, 확산, 성장, 그리고 지성이 관련되는 이 범주의 원형은 기호의 행위, 즉 하나의 기호가 그것이 산출하거나 수정하는 관념에 대해 어떤 것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CP 1.339) 퍼스는 그것을 애초에 '표상' (representation) 이라 불렀으나 그것이 충분히 광범위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 '매개' (mediation) 를 더 적합한 전문용어라 보았다. (CP 3.422, 4.3) 그것은 매개가 주도적일 때마다 주도적이게 되는 현상의 요소이며, 표상에서 충만성에 도달한다고 퍼스는 쓰고 있다. (CP 5.104) 다른 대상들 간의 연결을 확립하는 능동적인 힘으로서 법칙은 바로 이 제 3 성이 된다.

이러한 간략한 기술을 통해 대조되는 세 범주들 간의 특징은 유명론자가 오직 제 2 성만을 인정하고, 불완전한 실재론자가 오직 제 1 성만을 인정하는 반면에 완벽한 실재론자인 자신은 제 3 성까지 인정한다는 생각에 잘 드러난다. (CP 1.567)

4) 과학적 방법의 독특성

(1) 믿음의 고정화

퍼스의 실용주의 형성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 논문의 내용을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 논문에서 고집 (tenacity) 의 방법, 권위 (authority) 의 방법, 변증법적 논의 (dialectical discussion) 의 방법을 궁극적으로 요구되는 네 번째, 과학적 방법과 비교하여 검토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무한정의 연구자들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끝없는 추리 과정에서 방법론적이자 실험적으로 자연이 제 목소리를 내어 공헌할 여지를 도입하고 있다.

퍼스는 우선 의심과 믿음의 차이점들에 주목한다. 먼저 질문을 제기할 때와 판단을 내릴 때의 차이가 의심과 믿음의 차이를 보여준다. 둘째, 실제적인 차이로,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욕망을 인도하고 우리의 행동을 형성한다. 퍼스에 따르면, 믿는다는 느낌은 다소간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할 어떤 습관을 확립했다는 것을 가리켜 준다. 셋째, 의심은 그로부터 우리가 해방되고 믿음의 상태로 나아가고자 투쟁하는 불편하고 불만스러운 상태이다. 그 반면 믿음은 우리가 회피하기를 소망하는 것이 아닌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상태이다. (CP 5.370-372)

의심과 믿음은 모두 우리에게 적극적인 결과들을 지닌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즉각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태가 발생할 때 어떤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조건지운다. 의심은 그것이 소멸될 때까지 탐구를 계속하도록 우리를 자극한다. (CP 5.673)

이러한 관찰을 통해 퍼스는 의심의 자극이 믿음의 상태를 성취하기 위해 투쟁토록 하는 원인이 된다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이 투쟁을 그는 '탐구' (Inquiry) 라 이름한다. (CP 5.374) 의심과 더불어 믿음의 상태에 도달하려는 투쟁이 시작되고, 의심의 소멸과 더불어 그 투쟁은 끝난다. 퍼스는 나아가서 이로부터 아주 흥미로운 명제를 끌어낸다. "따라서 탐구의 유일한 목적은 의견의 정착이다." 이 명제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그는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참된 의견이라는 예상되는 반론을 검토한다. 그에 의하면 이런 반론은 근거가 없는데, 왜냐하면 확고한 믿음에 도달하자마자 우리는 그것이 참이건 거짓이건 간에 전적으로 만족하고 말기 때문이다.

우리 지식의 영역 밖에 있는 어떤 것도 우리의 목적일 수 없음이 분명한데, 왜냐하면 정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어떤 것도 정신적 노력의 동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장될 수 있는 바는 기껏해야 우리가 참이라고 생각할 한의 믿음을 위리가 추구한다는 것이다. (CP 5.375)

'고집의 방법' 은 자신의 믿음에 집착하여 의심을 품지 않고, 남들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방법이다. 여기서 믿음을 결정하는 기준은 그것이 자기가 바라는 바에 맞느냐 하는 것으로, 이런 자기 중심적인 방법은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보편적 기준이 전적으로 결여됨으로써 참된 의미에서 믿음을 안정된 상태로 정립시키지 못한다.

'권위의 방법' 은 믿음을 결정하는 어떤 제도를 통해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확정된 믿음을 전체에게 주입한다. 종교, 귀족 정치, 특정한 직업집단이 있는 곳이나 구성원의 이해가 특정의 주의, 주장에 기초하는 곳에서 이 방법이 발견된다. 이 방법은 특정 관념을 주입하기 위해 처벌의 고통을 부과하는 등의 잔혹성이 수반될 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에 대해 통제의 역할을 감당하는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불만이 따른다.

'선험적 방법' 은 형이상학의 역사에서 발견되며, 형이상학의 체계는 대부분 관찰된 사실에 근거해 있지 않다는 문제를 지닌다. 결국 체계의 토대적 명제가 이성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척도가 되는데, 퍼스는 여기서 "이성에 부합된다" 는 것이 경험과의 일치가 아니라 "믿고 싶어하는 마음이 된다" 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 방법은 고집이나 권위의 방법보다는 훨씬 지적이고 고찰할 만한 가치가 있으나, 퍼스는 그것이 사변적 보편성을 특징으로 삼음으로써 학문의 발전을 일종의 취향의 발전과 비슷하게 보게 된다는 점을 비판한다.

결국 의심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믿음을 고정시키는 새로운 방법이 요구되며, 그것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사견들로부터 독립해 있는, 외적인 영속성을 지니는, 공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어야 한다. 퍼스는 그런 새로운 방법으로서 과학적 방법을 제시하며, 그것은 의견과 사실의 일치를 보장해 준다는 점에서 위의 세 가지 방법들에 대해 우월성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이 방법은 한 개인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안 되고 모든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독창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그리고, 비록 이 영향들이 필연적으로 개별적 조건들에 따라 다양하다고 할지라도, 그 방법은 반드시 모든 인간의 궁극적 결론이 같은 그러한 것이어야만 한다. 그러한 것이 과학의 방법이다. 보다 친숙한 언어로 다시 진술한다면, 그것의 근본적 가설은 이렇다. 실재하는 사물들이 있고, 그것들의 특징들은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의견들과 전적으로 독립적이다. 그들 실재들은 규칙적 법칙들에 따라 우리의 감각들에 영향을 미치고, 그리고 비록 대상들에 대한 우리의 관계들이 다른 만큼이나 우리 감각들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지각의 법칙들을 이용함으로써 우리는 사유에 의해 사물들이 실제로 그리고 참으로 어떠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구이건 그가 충분한 경험을 지녔고 그것에 관해 충분히 사유한다면 하나의 참인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여기에 결부된 새로운 개념이 실재의 개념이다. (CP 5.384)

(2) 실용주의의 격률

「관념을 명석하게 하는 방법」(How to Make Our Ideas Clear) 에서 퍼스는 논리학자들의 판명성보다 더 높은 등급의 사고의 명석성에 도달하게 해 주는 방법으로 인도하는 원리들을 정립한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 논문에서 퍼스는 '실용주의' 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훗날 '실용주의의 격률' (Pragmatic Maxim) 이라 불리게 되는 규칙을 정립하였다.

체릴 미삭 (Misak) 은 최근 퍼스가 창시한 실용주의의 중심적 통찰은 한 가설의 의미를 아는 것과 만일 그 가설이 참일 경우 무슨 경험적인 귀결들을 예상할 수 있는가를 아는 것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점이라고 설파하였는데, 바로 이 통찰은 실용주의의 격률에 알뜰히 표현되어 있다 (주석 : Cheryl Misak (1991), Truth and the End of Inquiry (Oxford : Clarendo Press) p. 3.). 실용주의의 요체를 파악하는 데 결정적일 이 소위 실용주의의 격률을 퍼스는 여러 차례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정식화하고자 했다. 이 다양한 판본들의 이동을 비교하고 함축들을 섬세하게 가려내는 일이 요구된다.

우선 이 논문에서 퍼스는 다시 한번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그것의 속성들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적시한다. 첫째, 그것은 우리한 인식하는 어떤 것이다. 둘째, 그것은 의심의 자극을 달랜다. 그리고 셋째로, 그것은 우리 본성 안에 하나의 행동 규칙 또는 간단히 말해 하나의 습관을 확립하는 일을 포함한다. (CP 5.397) 퍼스에 의하면, 믿음의 본질을 습관의 확립이며, 상이한 믿음들은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상이한 행동 양태들에 의해 구별된다. 그래서 그는 만일 이 점에서 믿음들이 다르지 않다면, 즉 만일 그것들이 같은 행동 규칙을 산출함으로써 같은 의심을 달랜다면, 그것들에 대한 단순한 의식 방식의 차이들은 다른 장조로 연주된 곡조가 다른 곡조의 연주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을 상이한 믿음으로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한다. (CP 5.397-8)

다시 말해서 실용주의의 격률은 퍼스의 믿음 개념이 주어지고 나면 자연스레 따라 나오는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의미를 귀결들에 대한 예상이나 기대와 연결하거나 동일시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믿음을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는 성향 (disposition) 과 동일시하고 그에 따라 예상되는 귀결들에 의해 지배된다고 하는 생각인 것이다. 하우스만 (Hausman) 은 실용주의의 격률을 제시하면서 퍼스가 지녔던 목표를 이해하는 데 두 가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첫째, 관심사가 되는 기준은 진리의 기준이 아니다. 둘째, 퍼스의 격률은 일반 개념들에 적용하고자 의도된 것이다 (주석 Hausman (1991) "Peirce's Evolutionary Realism", TCSPS 27, pp. 475-500.).

퍼스는 스스로 실용주의의 격률을 몇 가지 사례에 적용함으로써 그 의미를 구체화하고 있다. 우선 그는 우리가 어떤 사물을 단단하다고 부를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묻는다. 그것이 다른 많은 것들에 의해 긁혀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즉 이러한 성질의 개념 자체가 그것에 대해 생각되어지는 결과에 달려 있다.

검사에 회부되기 전 까지는 단단한 것과 부드러운 것 사이에는 절대적으로 아무런 차이도 없다. (CP 5.403)

이러한 대담한 주장에 곧 뒤이어 퍼스는 저 유명한 사고실험을 전개한다. 그는 부드러운 면의 쿠션 안 중앙에 다이아몬드를 결정화해 놓은 것을 가정해 보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불태우기 전까지 그것이 그대로 그 안에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서 그는 그럴 경우 다이아몬드는 부드럽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이냐고 묻는다.

벅스는 이 사례와 연관하여 1878 년의 퍼스의 해석이 유명론적이고 훗날의 프래그머티시즘 시기의 생각과 다르다는 점을 흥미롭게 논의한 바 있다 (주석 : Burks (1996).). 그에 따르면,

    "This diamond is harder than steel."

같은 문장은 유명론적으로, 실질적 함축 (material implication) 문장으로 이해되었고, 그것은 당대에 형식화되어 있던 유일한 함축의 유형이었다. 이 해석에 따를 때,

    "If this diamond is rubbed by steel, then it will be scratched" 는

    "EITHER the diamond is NOT rubbed by steel OR it is scatched" 와

논리적으로 동치이다. 따라서 만일 그 다이아몬드가 전혀 검사되지 않았다면, 그 문장은 다이아몬드와 철의 성향적 속성에 무관하게 참이다. 따라서 당시의 퍼스의 해석에 따르게 되면,

    "If this diamond is rubbed by steel, it will be scatched" 는

    "If this diamond WERE rubbed with the point of a steel knife, then it WOULD NOT be scatched"

따위의 가정법적 (subjunctive) 조건문을 함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이런 유명론적 해석은 현실적인 사실들의 요약일 뿐 반사실적 (counterfactual) 가능성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는 바가 없었다.

또한 중요한 것은 퍼스가 그의 격률을 실재 개념에 적용한 것이다. 자신의 규칙들에 따를 때, 실재는 다른 모든 성질들과 마찬가지로 특유한 감각적 결과들로 이루어진다. 실재적 사물들이 갖는 유일한 결과는 믿음을 야기한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들이 불러일으킨 모든 감각들은 믿음들의 형태로 의식 안에 출현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문제는 어떻게 참된 믿음과 거짓된 믿음을 구별할 것인가 하는 것이라 본다. 그리고 여기서 참과 거짓의 문제는 전적으로 의견을 정착시키는 경험적 방법에 속한다. (CP 5.406)

고집의 방법, 권위의 방법, 그리고 선험적 방법에 의존한 이들이 과학사와 철학을 통해 어떻게 오류를 범해 왔는지를 간략히 개관한 후, 퍼스는 과학의 방법 추종자들이 어떤 점에서 특이하고 또 우월한가를 보인다. 그에 의하면 모든 과학의 추종자들은 연구의 과정들은 충분할 만큼 멀리까지 추진될 경우 그것들이 적용된 각각의 문제에 대해 하나의 확실한 해답을 주리라는 유쾌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 아무리 결과들을 얻었더라도, 그들이 각각 그들의 방법과 과정들을 보완해 가면서 결과가 점차 이미 운명지워진 하나의 중심점으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퍼스는 이것을 위대한 소망이라 부르며 그것이 진리오 실재의 개념에 구현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어떻게 과학적 탐구가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 도달한 결론이 진리 내지 실재라 할 수 있는가? 퍼스는 <실용주의와 가추> 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그 자신이 어떻게 해서 그러한 확신을 가졌는지를 엿볼 만한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다. 우선 그는 실용주의의 특유한 성격을 부여하는 세 가지 명제를 제시한다. 첫째, 감각 안에 먼저 주어지지 않은 것으로서 지성 안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둘째, 지각 판단들은 일반적 요소들을 보유한다. 셋째, 가추적 추리와 지각 판단사이에는 아무런 첨예한 경계선이 없으며, 지각 판단들은 가추적 추리의 극단적 경우이다. (CP 5.181)

그리고 퍼스는 우리가 실용주의의 문제를 주의 깊게 고려할 경우, 그것이 가추의 논리의 문제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리라고 쓰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부연 설명을 하고 있다.

위의 논의는 실용주의의 격률이 의미하는 바에 관해 최소한의 소개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과연 퍼스는 어떠한 동기에서 그것을 정식화하게 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수행하도록 의도된 것인가?

미삭은, 퍼스의 출발점이 어떤 표현들이 형이상학적 쓰레기인가를 결정해 줄 척도 노릇을 할 실용적 기준을 의도했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퍼스의 실용주의의 격률은 논리실증주의의 검증 가능성 (verifiability) 의 원리와 흡사한 면모를 지닌다. 그리고 문제는 그러한 동기를 지닐 경우 결국 지나칠 만큼 가혹하지 않으면서 원래 의도된 기능을 다 하는 기준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 기준이 가설들이 감각적 경험과 연관될 것을 요구한다면 오직 명백히 관찰에 관한 가설들만을 허용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 요건을 완화할 경우 모든 가설들이 정당한 것이 되고 만다. 미삭은 퍼스가 바로 이러한 문제들과 씨름하며 평생 동안 실용주의의 격률을 정식화하고자 노력했으나 실용주의에 관해 스스로 상충되는 주장들을 펴면서 결국은 극단적인 경험주의적 기준과, 지나치게 약해서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하는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 잡힌 견해를 얻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주석 : Misak (1991), ch. 1, p. 3-4.).

논리실증주의의 실패를 통해 극단적으로 경험적인 검증 가능성의 기준이 처하는 문제점들에는 친숙하므로 퍼스가 어떤 완화된 기준들을 구상했고 그것들은 어떤 문제점을 지녔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미삭은 1905 년 퍼스가 "여하한 상징의 지적인 내용 전체도 모든 가능한 상이한 상황과 욕망에 조건지워졌을 때 그 상징을 받아들이는 결과로 일어날 합리적 행동의 모든 일반적인 양태들을 총체로 이루어진다" (CP 5.438) 고 주장했을 때 완화된 형태의 실용주의의 격률을 제시한 것이라 본다. 이러한 판본의 격률은 퍼스가 특히 기호학의 연구에 몰두하던 시기에 제시되었고, 퍼스가 단지 검증 원리의 역할을 하는 격률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언어능력에 무엇이 결부되는가 하는 보다 광범한 문제에 일차적으로 관심이 있었다는 점과 관련된다. 앞서 살펴본 그의 해석소 개념과 관련시켜 볼 때, 실용주의적 의미는 한 기호의 현실적인 결과가 아니라 그 기호가 적절하게 이해되었을 경우 산출될 결과와 연관된다. 그리고 실제로 퍼스는 실용주의적 의미를 '의도된 해석소' 또는 해석자에게 의도된 결과와 연관지었다. 그러나 만일 실용적 귀결이 사고의 흐름에의 현실적인 귀결이라 해명될 경우 실용주의의 격률은 모든 흥미를 잃고 만다. 실용주의적으로 유의미한 가설들에게 요구되는 바의 전부가 기껏 그것들이 믿어질 경우 믿는 이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는가에 차이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뿐이라면 아무 것이나 그 기준을 만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삭은 이 판본이 아무런 구실도 하지 못하는 지나치게 약한 기준이라 결론짓는다 (주석 : Misak (1991), p. 20.).

실용주의의 격률을 완화하는 또 다른 방안은 경험의 의미를 느슨하게 이해하는 것이고 실제로 퍼스는 이러한 방안을 추구했다고 한다. 퍼스는 관념적인 경험과 실제적 경험을 구별하는데, 실제적 경험이란 감각적 경험을 말하고, 관념적 경험이란 다이아그램에 대한 조작들이 화학이나 물리연구에서 실제 사물들에 행해지는 실험들을 대신하는 그런 경험을 말한다. 그리고 퍼스는 이러한 사고실험들이 수학과 논리학의 연구의 핵심이라고 본다. 가부는 차치하고, 이러한 독특한 견해가 수학적 논리적 진술들이 경험주의의 기준에 회부되어야 한다는 희귀한 논리, 수리 철학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두 종류의 경험의 유일한 차이는 내적인 세계가 비교적 약한 강제력을 우리에게 행사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이제 문제는 내적 경험들 중 어느 것이 실용주의의 기준을 만족하고, 어느 것이 만족하지 못하는지를 가려내게 해주는 원칙이 분명치 않다는 점이라고 미삭은 지적한다 (주석 : Misak (1991), PP. 21-5.).

마지막으로 미삭은 이러한 불만스러운 시도들을 통해 퍼스가 온건한 판본의 실용주의의 격률에 도달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만일 어떤 가설이 물리적 세게에 관한 것으로 의도되었다면, 그것은 반드시 경험적 내용을 지녀야 한다.

이제 문제는 이런 온건한 실용주의의 격률을 채택할 경우 애당초 의도되었던 쓰레기 같은 형이상학들의 배제가 성취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퍼스는 과거의 형이상학이 대부분 쓰레기 같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이상학이 반드시 그래야 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유의미하고 중요한 형이상학적 가설들이 있고, 실용주의자는 그런 진수들을 가려낸다는 것이다. (CP 5. 423, 2.661, 5.422, 5.453, 5.597) 다시 말해서 모든 형이상학을 학문의 세계에서 축출하고자 한 논리실증주의자들과 달리 퍼스는 좋은 형이상학과 나쁜 형이상학을 구별하고자 했던 것이다. 미삭은 바로 이 좋은 형이상학과 나쁜 형이상학을 가려내는 일이 실용주의의 격률의 과제라고 본다. (CP 8.191) (주석 : Misak (1991), p. 30.) 퍼스는 형이상학의 대상들이 관찰가능하지 않은 까닭에 과학과 달리 형이상학이 불투명하다고 말해진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퍼스는 형이상학의 후진적 상태의 책임을 그것의 비관찰적 성격에 지우지 않고, 형이상학의 지도적인 교수들이 신학자였다는 사실에 돌렸다. (CP 6.5) 그리고 그는 형이상학을 관찰적 과학이라고 주장했다. (CP 6.5)

(3) 가추

가. 연역, 귀납, 그리고 가추

퍼스의 실용주의 방법론의 독특성은 결국 종래의 귀납과 연역 이외에 제 3 자로서 그가 가추 (abduction) 를 논의하였다는데 있다. 실제로 퍼스 철학의 광범한 주제 가운데서 가장 주목받아 온 것이 그의 가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는 그 자신의 논의를 중심으로 그것이 그의 실용주의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규명하고자 한다.

벅스 (Burks) 와 팬 (Fann) 은 1891 년을 기점으로 가추에 관한 한 퍼스의 사상을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기에는 가추를 추리 (inference) 로 다루었고, 귀납, 연역, 가추를 서로 독립적인 추리의 세 유형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 반면 후기에는 추리의 개념이 확대되어 방법론적인 과정까지 포함하는 것이 된다.

퍼스에 따르면, 귀납이 유사한 사례들에서 관찰했던 바와 같은 현상들의 존재를 추리하는 데 반해, 가추는 우리가 직접 관찰한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을 상정한다. (CP 2.640) 표본으로부터 모집단으로 귀납이 직입률에 의해 일반화하는 것과는 달리 가추는 사실들의 관찰로부터 그것들을 설명하기 위한 일반적 원칙을 상정한다는 것이다. 퍼스는 이 점을 "전자는 분류하고, 후자는 설명한다" 고 표현하고 있다. (CP 2.623)

퍼스의 유명한 콩주머니의 예 (CP 2.623) 는 귀납, 연역, 가추의 세 추리 형태가 상호 환원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퍼스는 "각기 모든 형태는 첫번째 것 (연역) 의 원칙과 관련되어 있지만, 두 번째 것 (귀납) 과 세 번째 것 (가추) 은 첫번째 것 이외의 다른 원칙을 포함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CP 2.807) 고 본다. 꼭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우리는 가추를 통해 일반적인 예측을 할 수 있고, 미래를 이성적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희망을 제공해 준다. (CP 2.270)

그러나 아래에서 다시 거론되듯이 연역과 귀납과 연역의 삼분법은 그리 깔끔한 구분도 아니고, 실제로 퍼스 자신이 평생 동안 계속 의견을 수정해 나간 난삽한 주제이다. 우선 레셔 (Nicholas Rescher) 를 좇아 잠정적인 구분을 시도해 보도록 하자. 레셔에 의하면, 퍼스는 그의 귀납 이론에서 '조야한 귀납' '정성적 귀납' 그리고 '정량적 귀납' 을 나눈다. 조야한 귀납은 사례들의 제일적 (uniform ; uniformity of nature) 경험에 토대한 보편적 주장의 투사를 말하며, 그것은 '반대 사례들의 결여' 에 의존한다. 일상 생활에서의 단순한 경험적 일반화의 경우들이 여기에 속한다. 퍼스는 이러한 종류의 귀납은 과학적 탐구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정성적 귀납은 그 반면 탐구에 있어서 대단한 효용성을 가지는 강력한 수단으로 간주된다. 레셔는 정성적 귀납이 그 본질에 있어 소위 가설 - 연역적 방법과 같은 것으로 보며, 가설 - 투사로서의 가추 (abduction) 와, 가설 - 검사로서의 귀추 (retroduction) 가 함께 공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으로 파악한다. 퍼스는 가추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추정, 또는 더 정확히 말해, 가추는 사유하는 이에게 귀납이 검증할 문제의 이론을 제공해 준다. 주어진 상황에서 예상했을 바와 다른 현상과 마주쳤을 때 그는 그것이 지닌 측면들을 살펴보고 어떤 괄목할 만한 특징이나 그것들 간의 관계에 주목하고, 그는 곧 그것을 그의 정신에 이미 저장되어 있는 어떤 개념의 특징으로 인식하여 그 현상에서 놀라운 바를 설명해 줄 (즉, 그것을 필연적으로 만들어줄) 한 이론이 시사된다. 그러므로 그는 그 이론을 받아들여 더 이상의 검토를 요구하는 이론들의 목록에서 그것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도록 한다. 추정은 새로운 관념들을 공급하는 유일한 사유 유형이고, 이런 의미에서 종합적인 유일한 유형이다. (CP 2.776-777).

한편 퍼스는 귀추 (retroduction) 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귀추는 이론과 더불어 출발하며, 그 이론과 사실과의 일치의 정도를 평가한다. 그것은 어떤 관념도 창출해 낼 수 없다. 이 점은 연역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의 모든 관념들은 가추라는 길을 통해 나타난다. 가추는 사실을 연구하고 그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을 고안하는데 있다. 가추가 지닌 정당성은 만일 우리가 사물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와 같은 방법에 근거한다는 사실에 달려 있다. (CP 5.145)

현상들이 관찰되고 나면, 일련의 설명력을 지니는 가설들이 그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투사된다. 그리고 그 가설들은 예측의 토대로 이용됨으로써 사실에 비추어 검사된다. 그런 검사에서 다른 가설들보다 더 성공적인 가설이 잠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향후의 검사에 의해 뒤집힐 때까지 유지된다. 퍼스의 귀추는 다름 아니라 실험적이고 경험적인 검사들에 의해 가설들을 제거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정량적 귀납은 통계학의 방법론, 즉 수학적으로 인도되는 표본 추출과 표본 부석의 과정을 말한다. 레셔가 간결하게 설명하듯 귀납에서의 소위 직입률을 적용하여 관찰된 표본에서의 상관 빈도가 실제 상관 빈도의 표지로 취급된다. 그리고 정량적 귀납이 지니는 결정적인 특징은 그것이 자동적으로 자기통제적 (self-monitoring) 내지 자기교정적 (self-corrective) 이라는데 있다.

우리는 위에서 레셔의 안내를 따라 연역, 귀납, 그리고 가추의 구별에 관한 퍼스의 생각을 간략히 살펴보았고, 이에 따라 대충 어떠한 점들을 염두에 두고서 그가 연역, 귀납과 구별되는 것으로서 가추를 논의하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이미 지적했듯 퍼스 자신의 사상이 발전함에 따라 가추에 관한 그의 사상 자체가 변화했고, 자연스레 그가 가추에 관해 이야기한 바들간에 상당한 상충점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나. 가추적 형식

최근 카피탄 (Tomis Kapitan) 은 가추의 논리적 형식을 포착하고자 하는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획기적인 논문에서 논의의 토대로서 1900 년 이후 퍼스의 사상에서 추려낼 수 있는 가추에 관한 중요한 주장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하였다.

카피탄의 전략은 1900 년 이후 가추에 대한 퍼스의 사상을 지배하는 위와 같은 4 가지 주장을 준거틀로 사용함으로써 그 사상의 내용의 내용과 전기에서 후기로의 시대적 발전 양자 모두를 더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가추적 추리 (abuductive inference) 의 타당성이 가추의 논리적 형식에 달려 있어야만 한다는 지극히 납득할 만한 단서로부터 출발하여 퍼스의 저작들로부터 가추의 기본적 논리적 형식을 다르게 정식화한 단락들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은 논리적 형식들로 정리하였다.

카피탄은 (F1) 이 두 가지 점에서 문제점을 보이며, 퍼스 자신이 그 문제점들을 제거하기 위해 (F1) 을 수정, 보완해 갔다고 생각한다. 첫째 (F1) 은 전제와 결론이 될 자격을 지닌 명제들의 유형을 (정언적 명제로) 부당하게 제한했고, 둘째 타당한 연역적 추론 형식들과 달리 훌륭한 가추적 추리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F1) 을 수정하면서 퍼스가 어떤 놀라운 결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설이 그려진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데 카피탄은 주목한다. 그 결과 나온 것이 퍼스가 1903 년의 강좌에서 잠정적으로 제시한 (F2) 라는 것인데, 카피탄은 (F2) 가 과학적 절차를 정확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강점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연구는 전형적으로 문제, 즉 당혹스럽거나 놀라운 현상과 더불어 시작하며 설명적 가설에 의해 해결책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F2) 역시 문제점들을 지닌다는 것이 카피탄의 생각이다. 첫째, 그는 (F2) 가 타당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F2) 의 전제들로부터 H 가 참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있다는 강한 결론이 따라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지금 이 논문을 읽고 있는 까닭을 설명해 줄 가설들은 무수히 많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으로는 그 가설들이 참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제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로 (F2) 는 결론의 형식에 문제가 있다고 카피탄은 지적한다. 가추는 데이터와 전적으로 무관한 가설로 인도되며, 가추의 결론이 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F2) 의 첫째 문제점을 제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퍼스의 소위 연구의 경제학 (economy of research) 이다. 퍼스는 참일 경우 주어진 사실을 설명해줄 다수의 가설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고, 여기서 나오는 가추가 수행하는 두 번째 과제인 가설 선택 (hypothesis selection) 을 '연구의 경제학' 이라는 주제 아래서 논의하면서 가추적으로 H 가 이유 있다고 추리하는 일은 오직 H 가 경제적일 경우에만 정당화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F2) 에는 H 가 그것과 경쟁하는 가설들보다 더 경제적이라는 또 하나의 전제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카피탄은 결론짓는다. 한편 (F2) 의 둘째 문제점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결론을 약화하여야 하고, 실제로 퍼스는 가설의 '그럴 듯함' (plausibility) 을 그 목적에서 도입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얻어진 것이 (F3) 이다.

이제 카피탄은 (F3) 이 위에서 열거한 가추에 대한 퍼스의 특징적인 주장들을 모두 반영하고 있는가를 심각하게 고려한다. 특히 그는 자율성 주장 (autonomy thesis) 이 성립된다는 점을 (F3) 이 어떻게 보여주는지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F3) 의 결론은 포괄성 주장 (Comprehension Thesis) 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경우 여러 가설 중 검토를 더 요하는 가설을 골라내는 가추의 최종단계를 반영할 뿐이라고 보고, 가추의 독특성이 가추의 어느 이른 단계에서 보여지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F3) 의 전제들 하나 하나의 생성에 대해 신중히 검토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부정적이다. 전제 1) 의 경우, 어떤 현상이 놀랍다고 하는 판단은 친숙한 것과 친숙하지 않은 것을 병치함으로써만 가능하고, 그것은 다시 말해서 C 가 놀랍다고 하는 주장은 배경이 되는 기존의 정보에 상대적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그 판단은 연역적 추리에 의한 것이라고 카피탄은 생각한다. 전제 2) 의 경우, H 가 참이라면 C 는 당연하다는 설명적 조건문을 받아들이는 일 자체가 추리의 산물이라고 카피탄은 생각한다. 물론 H 를 애초에 그 조건문의 전건으로 생각해 내는 일이 추리의 결과냐는 데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카피탄은 퍼스가 가추적 시사 (suggestion) 가 추측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한 동시에 퍼스가 추측이 다른 정보에 기초해서 이루어진다는 점 역시 분명히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가설들은 제멋대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며, 카피탄은 거기서 추측의 추리적 성격을 본다. 그리고 그는 추측의 추리적 성격이 그것이 우리의 통제 아래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고 본다. 끝으로 전제 3) 의 경우 연구의 경제학은 모종의 비교 평가와 선호로 이루어지고, 그 기저의 추리들은 '선호의 논리학' (logic of preference) 이나 '결정의 논리학' (logic of decision) 에 의해 해명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카피탄은 생각한다.

그 결과 그는 가추의 독특성을 가추적 사유의 최종 단계인 가설 선택 단계에서 찾고자 한다. 그리고 어떻게 (F3) 가 가추의 '목적 주장' (Thesis of Purpose) 처럼 모든 가추들이 행위 노선을 추천하는가를 묻는 데서 단초를 얻어 (F4) 와 (F5) 를 정식화한다. 우선 카피탄은 (F3) 이 어떻게 행위 노선을 추천하는 일을 한다고 할 수 있느냐를 묻는다.

    1) H 를 더 검토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가정할 이유가 있다.

는 주장은 추천이라고 하기에 너무 약하다는 것이 카피탄의 생각이다. 여기서 규범성이 내포된,

    2) C 의 설명을 원하는 한 H 를 더 검토해야만 한다.

같은 명제가 필요해진다. 그러나 카피탄은 이런 규범적 명제가 추천문이나 권고문과 같은 실제적 지령을 지지해 주기는 하지만 지령과 동일하지는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3) H 는 더 검토하도록 추천된다.

나 행위자에 대한 지칭을 포함한,

    4) C 의 설명을 원하는 이에게는 H 를 더 검토하는 일이 추천된다.

는 명제를 제시한다. 나아가서 그는 퍼스가 종종 가설은 의문문으로서만 주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 (MS 692:26) 을 지적하면서 가추의 결론이,

    5) 왜 H 를 더 검토하지 않는가? 나,

    6) H?

따위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사유를 통해 얻어진 것이 (F4) 이다.

그러나 (F4) 는 퍼스의 텍스트들과 부합되지 않고, 진리값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지닌다고 카피탄은 지적한다. 퍼스는 가설 자체가 잠정적으로나마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데 근거하여 카피탄은 이 특별한 잠정적 채택 양태를 표현한 (F5) 를 제시한다.

다. 가추는 소위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리인가?

위에서 살펴본 카피탄의 가추 논의는 최근 힌티카 (Hintikka) 에 의해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힌티카는 「가추란 무엇인가? : 현대 인식론의 근본 문제」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퍼스가 가추 개념을 고안해 냄으로써 현대 인식론의 중심 문제 하나를 창조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가추의 개념, 그것의 새로운 점, 그리고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느냐에 관하여 주목할 만한 논의를 펼쳤다. 그는 우선 카피탄의 논의를 모델로 하여 가추에 관한 기존의 연구를 정리한 다음 그러한 통설적 이해가 어떠한 문제점을 지니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 주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게임이론적 의미론 등 자기 자신의 고유한 철학적 주장과 이론들을 가지고 가추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힌티카의 논의는 무엇보다도 가추 개념과 결부된 문제들이 현대 인식론의 최대 과제라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퍼스의 철학사상이 철학사가들의 관심 대상일 뿐인 죽은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당면한 문제라는 점을 생생히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그 탁월한 안목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의 새로운 가추 해석과 문제의 해결 방안은 그 자체로 진지한 연구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의 맥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추에 대한 통설적 해석에 대한 그의 비판이라고 생각되므로 이하의 논의는 이 문제에만 집중하도록 하겠다.

힌티카는 위에서 논의된 카피탄의 (F1) 이 가추가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리' (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 이라는 생각의 한 특별한 사례인 모델이라는 점을 지적한 다음 퍼스가 그것의 보편성을 주장할 경우 모든 최선의 설명이 삼단논법적이라는 지지하기 어려운 귀결을 지닌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F2) 등 수정된 모델들인데, 힌티카는 그것들 역시 별로 더 나아 보이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무엇보다도, 왜 가추가 합리적인 조작일 뿐만 아니라 논리적 추리일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가 지극히 곤란하다는 것이다.

가추가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리라는 해석은 오늘날 아주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카피탄이 바로 그러한 한 예라고 할 수 있고, 립튼 (P. Lipton) 의 저서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리』나 같은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 반 프라센 (van Fraassen) 의 『법칙과 대칭성』도 그러한 예들이라 할 수 있다. 힌티카는 특정 철학자를 적시하지는 않고 그러한 해석이 널리 퍼져 있다고 전제한 다음 그 해석을 비판하고 있다. 우선 그는 그 해석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해석이라 비판한다. 우선 설명이 무엇인지부터 분명치 않다. 그리고 어떤 사실의 설명인지가 분명치 않다. 힌티카는 다소 모호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논변을 통해 미래, 즉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피설명항 (explanandum) 이 가추적 추리의 전제 중 하나일 수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피설명항은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리가 그것을 설명하도록 고안된 것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리라는 생각과 유관한 피설명항은 가추적 추리를 하고 있는 과학자가 추리할 때 그에게 알려져 있는 데이터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추법이 추리라는 것이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설명항과 배경적 이론이 과학자에게 알려져 있는 경우에도 그는 그 이론이 피설명항을 함축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수가 있다. 그리하여 힌티카는 가추적 추리자는 심지어 알려진 데이터에 대한 설명조차도 다 가동할 수 없는 까닭에 가추적 추리는 알려진 데이터로부터 그것을 설명해 주는 이론이나 가설로의 단계일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또 힌티카는 가장 중요한 유형의 과학적 사유들 중 다수가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리라 기술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리가 과학에서 새로운 가설을 형성하는 유일한 방식이라거나 전형적인 방식이라는 주장은 힌티카에 의하면 한갓 거짓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가추적 추리가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리라는 해석은 퍼스의 텍스트와 모순된다고도 주장한다. 물론 그는 퍼스가 가추가 낳는 새 가설이 이미 주어져 있는 데이터들을 설명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는 점도 잘 알고 있고, 그런 까닭에 가추를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리로 보는 해석이 대단히 그럴 법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CP 6.525 를 거론하며 힌티카는 퍼스가 가추에서 한 가설은 기존의 지식에 기초한 선호가 아닐 경우 다른 것들보다 선호될 수 있다고 했는데,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리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설명되어야 할 사실들에 의해 선택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므로 그 해석은 퍼스의 사상과 정면으로 상충된다고 주장한다.

5) 퍼스의 실용주의와 현대 과학철학의 과제

이제 우리는 결론에 가름하여 퍼스의 방법이 동시대의 실용주의자들 및 이후의 과학철학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논의할 단계에 이르렀다. 아마도 그러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프래그머티시즘 (Pragmaticism) 을 표방함으로써 퍼스가 왜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이전 입장 및 다른 실용주의자들과 거리를 두었는지를 천착하는 일이다. 또 그의 사상이 1930 ~ 40 년대에 실증주의 (positivism) 나 규약주의 (conventionalism) 와 많은 혼동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원인의 탐색도 중요할 수 있다. 나아가서 라이헨바하 (Reichenbach) 식의 귀납의 정당화 방책과 퍼스 사상과의 연관성 문제, 칼 포퍼의 과학방법론과의 이동 문제, 콰인, 퍼트남 등에 미친 영향들도 논의될 충분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글에서 논의된 바들을 종합하여 퍼스의 사상의 주요 요소들 간의 상호 연관성을 부각시키고 퍼스의 사상이 케케묵은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와 함께 생생히 살아있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 주제를 다시 한 번 논의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1) 현대 과학철학의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인 형이상학적 실재론과 과학적 실재론의 문제에서 퍼스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2) 실용주의의 격률과 가추의 논리는 어떠한 이유에서 표리의 관계에 있는 것일까? 3) 과학과 형이상학의 구획 문제와 연관하여 퍼스가 취한 입장에 대해 우리는 어떤 식으로 반응할 것인가?

(1) 형이상학적 실재론과 과학적 실재론

(주석 : 이 항목의 도입부는 본 연구자의 기존 연구물에 의존한다.)

최근의 과학적 실재론에 관한 논의들은 흔히 보이드와 퍼트남의 정식화에 바탕을 두고 다음과 같은 두 명제들을 과학적 실재론의 핵심적 내용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의 두 명제를 받아들이면서도 지극히 상이한 실재론적 입장을 취할 가능성들이 남아 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결국 이러한 논쟁에서는 개입된 입장들의 정의 내지는 주장들을 엄밀하게 규정할 필요가 감지되는 것이다. 여기서 도대체 형이상학적 실재론은 어떠한 입장인가? 형이상학적 실재론과 과학적 실재론은 상호 배타적인가? 퍼트남의 소위 ㄴ적 실재론은 어떤 의미에서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아닌가? (주석 : 김동식, 「퍼트남의 '내적 실재론' 과 실재론 그리고 상대주의」『실재론과 관념론』한국분석철학회편, (서울 : 철학과 현실사, 1993), 281 쪽 이하의 논의 참조.) 내적 실재론은 일종의 과학적 실재론이 아닌가? 등등의 어쩌면 너무나 쉽게 답할 수 있는 유치한 질문들의 제기가 요구된다. 최소한 이러한 물음들에 답할 수 있는 유치한 질문들의 제기가 요구된다. 최소한 이러한 물음들에 답할 수 있을 때, 현대 과학철학의 현안으로서의 실재론 대 반실재론 논쟁과 그것을 넘어서려 하는 로티의 입장, 그리고 퍼스가 그러한 상황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 등이 의미 있게 논의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퍼트남이 『실재론의 여러 얼굴들』이란 책에서 제시한 유혹자와 순진한 처녀의 이야기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주석 : Putnam, The Many Faces of Realism, pp. 3-4.). 이 이야기에서 실재론자 (악한 유혹자) 는 상식 (순진한 처녀) 에게 그녀에게서 친숙한 의자와 책상을 빼앗으려 하는 그녀의 적들 (관념론자, 신칸트주의자, 실용주의자, 비실재론자 (Irrealist, 닐슨 굿먼) 로부터 구해주겠노라고 약속한다. 처녀는 자연스레 '상식적 실재론자' (common sense realist) 와 동행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이 한 동안 여행했을 때, 과학적 실재론자가 처녀가 얻게 될 것은 그녀의 의자와 책상이 아니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완성된 과학이 존재한다고 이야기 할 어떤 것이라는 뉴스를 터뜨린다. 이제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그녀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엇인가를 받게 되리라는 약속과 설사 의자와 책상이 없을지라도 그녀의 통속 물리학이 그리는 어떤 물자체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언질뿐이다.

여기서 과학적 실재론자는 상식적 실재론을 포기하고 오직 과학의 대상들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의 과학적 실재론자의 실례로서 즉각 제시할 만한 인물들은 아마도 현대철학자들이 아니라 17 세기 철학자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마도 오늘날 과학적 실재론자로 자처하는 인물들은 오직 성숙한 과학의 용어들만이 전형적으로 지시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일상적 용어들도 그러한가 하는 점을 문제삼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오직 과학적 대상들만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일상적 대상들도 그러한가 하는 점이 문제이다. 퍼트남은 전자 편에 서는 실재론자를 형이상학적 실재론자 또는 대문자 R 로 시작하는 실재론이라 부르며, 이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퍼붓는다 (주석 : Ibid, 16-7 쪽.) 동시에 그는 분명하게 책상, 의자 따위가 존재하고 또한 전자 (electron) 들, 소수 (prime number) 들 역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퍼트남은 1982 년 「과학적 실재론의 세 가지 유형들」이라는 논문에서 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그에 의하면, 만일 '과학적 실재론' 이 과학적 제국주의 ㅡ 유물론 또는 물리주의 physicalism) ㅡ 라면 자신은 결코 과학적 실재론자가 아니다. 또 그는 자신이 형이상학적 실재론자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그 반면, 그는 전자들은 의자들 (또는 감각들) 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는 그것이 어떤 의미이든 완벽히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학적 실재론자라면 자신은 과학적 실재론자라고 한다 (주석 : Putnam, "Three Kinds of Scientific Realism" in Words and Life, pp. 492-8.). 이에 덧붙여, 퍼트남은, 그의 유혹자와 순진한 처녀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상식적 실재론을 포기하는 데 대한 경고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계' '감각 인상들' '내재적 속성들' 그리고 '투사들' 에 대한 17 세기의 이야기들을 가정하는 데 대한 경고라고 부연하고 있다 (주석 : Ibid.).

논의의 편의상, 구별된 입장들을 한 번 정리해 보자.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형이상학 실재론과 과학적 실재론이 상호배타적인 것으로 대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퍼트남의 경우, 오히려 형이상학적 과학적 실재론과 자신의 내재적 과학적 실재론이 대조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게 볼 때, 이제 우리는 로티 (R. Rorty) 가 대결의 필요성을 느끼고 주의함직한 입장이 어떤 것인지를 쉽게 가려낼 수 있다. 우선 상식적 실재론은 로티의 주목거리가 못 될 것이므로 논외이다. 도구주의 (instrumentalism) 에 대해서는 로티가 그것이 도전에 답하기보다 그것의 문제 제기 자체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손쉽게 대처할 것이다. 그는 도구주의보다 자신의 입장이 우월하다는 것을 보일 논변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적 과학적 실재론자에 대해서는 그것이 형이상학적 실재론을 비판하는 한에서 별반 거론할 것이 없다는 태도를 취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올바른 궤도에 있다면, 여기서 함께 거론할 만한 입장으로 퍼스적 실용주의를 끌어들이는 일이 왜, 어떻게 시사적이고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어줄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주석 : H. Putnam, Pragmatism (Oxford : Basil and Blackwell, 1995 ; Putnam, Meaning and the Moral Sciences, p. 130 ; Rorty, Philosophy and the Mirror of Nature (Princeton :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9), p. 296 참조. 로티는 퍼스적 실용주의가 가당치 않다는 점을 깨닫는 데 있어 Michael Williams, "Coherence, Justification, and Truth" Review of Metaphysics 34 (1980), pp. 243-72 에 빚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Rorty, "Pragmatism, Davidson and Truth" Objectivity, Relativism, and Truth, p. 130.). 퍼스적 실용주의는 위에서 열거된 어느 입장으로도 포착이 되지 않는 독특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일종의 실재론이고, 그런 까닭에 퍼스적 과학적 실재론을 논의한 철학자들도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히 위에서 특징지워진 바대로 이 형이상학적 과학적 실재론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적 과학적 실재론도 아니다. 퍼스는 형이상학적 실재론자들처럼 소박하게 오직 전자 등 소수의 과학적 대상들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아마도 상당히 오랜 기간 과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도달한 결론으로서의 과학적 이론에서 궁극적으로 채택할 이론적 존재자들이 참으로 존재한다고 이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퍼스는 소위 내적 과학적 실재론자들처럼 금붕어도 존재하고 전자도 존재한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비록 오랜 시간 과학의 탐구를 기다려야 하지만 여전히 퍼스는 참된 실재를 이야기하고, 그런 점에서 내적 과학적 실재론자들의 입장은 안이하고 절충적인 면모를 지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재론적 면모를 지닌 퍼스적 실용주의가 현대 과학철학의 최대 쟁점 중 하나로서의 실재론과 반실재론 논쟁에 마침표를 찍어준다는 주장을 편다거나 하는 일은 명백히 본 연구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될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일은 본 연구의 결과로 퍼스적 실용주의가 이 논쟁의 대표적 입장들과는 분명히 다른 새로운 입장을 대변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퍼스는 1 세기 전에 현대 과학철학의 쟁점을 그토록 선명하게 이해하고 그토록 독창적인 나름대로의 입장을 표방할 수 있었을까?

(2) 실용주의 격률과 가추의 논리

그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은 일단 위에서 살펴본 퍼스의 과학적 방법과 그 핵으로서의 가추의 논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퍼스의 진리 개념과 실재 개념에 따르면, 과학자 집단이 상당 기간 과학적 탐구를 실행한 결과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것이 진리요 실재이게 된다. 그러나 어떻게 과학이 도달하라는 종착점이 진리요 참된 실재라는 것을 보장할 수 있는가? 퍼스는 이에 대해 그것을 보장해주는 것이 자기교정적 (self-corrective) 성격을 지닌 과학의 과학적 방법이라 답할 것이고, 그것이 다름아닌 가추의 논리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의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퍼스적 실용주의가 성립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자기교정성을 확보해주는 방법의 토대로서의 가추적 논리의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그 지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가추적 추리의 정당화 문제이다. 카피탄은 추리를 연역, 귀납, 가추로 삼분하는 근거로서 퍼스가 때로는 다른 탐구의 단계 (CP 5.171, 6.475) 를, 때로는 추리의 목적을 (CP 2.713, 6.472), 그리고 또 때로는 논리적 형식을 (CP 2.619, 644) 들었으나 그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고 본다. 그리고서 카피탄은 더 나은 유망한 근거로서 퍼스가 시도한 각각의 추리 형태가 정당화되는 상이한 방식을 근거로 하는 방책을 검토하였다. 그 맥락에서 우리는 가추의 논리가 정당화되는 방식에 대한 퍼스의 생각을 조감할 수 있다 (주석 : Kapitan (1997), pp. 488-90.).

우선 연역은 추론의 전제에서 결론으로의 진리이행성에 의해 정당화된다. (CP 2.778) 귀납적 추리는 정확하게 수행될 경우 정당화되는데, 왜냐하면 그것의 결론이 지속적으로 추구될 때 결국에 가서 참된 지식으로 인도될 것에 틀림없는 방법에 의해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CP 2.725-740) 그 반면 가추적 추리는 이런 방식들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것은 '참' 인 전제들로부터 참된 결론으로의 이행의 필연성도 높은 개연성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카피탄은 퍼스가 여기서 최소한 세 가지 가추의 정당화 방책을 제시했다고 본다. 1) 진화론적 정당화 (The Evolutionary Justification), 2) 성공에 호소하는 정당화 (The Success Justification), 3) 자포자기에 따른 정당화 (The Desperation Justification).

첫째 방책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은 자연법칙들의 영향 아래서 진화함으로써 자연이 있는 바대로 사유하는 자연적 경향 내지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MS 876.5) 인간의 정신은 그가 발견한 바를 발견하기 위해 사물들의 진리에 조율되어 있다는 것이다. (CP 6.476) 둘째 방책에 따르면, 가추의 사례를 다수 표본적으로 살펴보면 가추적 사유의 결과들이 유익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된다고 한다. (MS 637 : 6-9 ; CP 2.270, 786) 왜냐하면 지식 없이는 인간이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식은 가추적 사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CP 5.603, NEM 4.320) 셋째 방책에 따르면, 가추는 합리적인 설명을 획득하고 (CP 2.777, 5.145) 합리적으로 미래의 행동을 규제하고 (CP 2.270) 진리에 도달하려는 우리의 목적을 성취할 (CP 2.786) 유일한 희망이라고 한다 (주석 : Kapitan (1997), p. 489.).

카피탄이 지적했듯, 이 중 첫째와 둘째 정당화 방안은 모두 가추적 사유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가정하는 반면, 셋째 방책은 그러한 가정 없이 단지 지식 획득의 유일한 희망은 가추적 사유를 통해서라는 경험적 주장을 펴고 있다. 그리하여 카피탄은 연역과 귀납은 안전성 (security) 에 의해 정당화되는 반면, 가추는 생산성 (uberity) 에 의해 정당화된다고 논의를 요약 정리하였다 (주석 : Kapitan (1997), p. 490.).

퍼스가 가추적 사유가 성공적이었다는 가정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과학에서 상당한 진리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특히 과학혁명 이후 비교적 단기간 내에 인류가 놀라운 양의 과학적 진리를 획득하였다는 것은 뒤집을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라고 퍼스는 생각하였다. 그리고 만의 하나 그 가정까지 의심받는다 해도 최소한의 보루로서 퍼스는 셋째 방책을 통해 가추를 정당화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구지 (Goudge) 도 이 가추의 정당화 문제와 연관하여 흥미로운 보고를 제공한다 (주석 : Goudge (1950), p. 203 이하.). 그에 따르면 초기의 퍼스의 가추적 사유 정당화 방식은 콩주머니의 예에서 보듯 단순히 연역적 추리로서의 환원을 통해 가추와 귀납적 추리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연역적으로 타당한 추리로 환원이 가능할 때 귀납적 추리와 가추적 추리는 정당화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또 구지에 따르면, 1880 년대에는 퍼스가 타당한 통계적 연역으로의 환원을 통해 정당화를 시도했다고 한다. 유비적 (analogical) 추리의 사례를 퍼스가 확장적 추리와 해명적 추리 양자가 모두 결부된 복잡한 과정으로 분석한 것을 구지는 그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성숙기에 퍼스는 그런 형식적인 접근법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가설의 사용 자체가 과학에서 허용되는가 하는 문제와 가추가 과학사를 통해 왜 성공적일 수 있었는지를 해명하는 문제가 논의의 중심에 위치하게 된다고 한다. 둘째 문제는 방금 다소 살펴보았으므로, 이 중 첫째 문제와 연관항 구지의 보고를 좇아 과학에서의 가설의 사용에 대해 콩트 (Comte), 푸엥카레 (Poincare), 피어슨 (Pearson) 등이 제기한 비판들에 대해 퍼스가 어떻게 응수했는가를 살펴보자. 퍼스는 그들을 존경해 마지않았으나 가설에 대한 그들의 견해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그들의 비판이 근대인의 마음을 그토록 혼란스럽게 만든 유명론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았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퍼스에게 있어서 일반성 또는 제 3 성 (Thirdness) 은 우주의 본질적 일부이고 가추에 의해 획득되는 과학적 법칙들은 자연의 진정한 것들만을 지시하는 가설들만 허용할 경우 우리는 과학을 위해 아주 비현실적인 귀결을 얻게 될 것이다. 퍼스는 그들의 이론이 극단적 현상주의적인 (phenomenalistic) 것이고 궁극적으로 유아론 (solipsism) 에 빠지고 말 것이라 생각했다 (주석 : Goudge (1950), pp.206-7.). (CP 5.597 참조)

더 흥미로운 것은 가추가 아무런 제한 없이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느냐는 문제인데, 구지는 퍼스가 이 점에 관해서는 동요하는 면모를 보인다고 보고한다. 한편으로 퍼스는 분명 어떤 현상이 동요하는 면모를 보인다고 보고한다. 한편으로 퍼스는 분명 어떤 현상이 해명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는 일은 탐구의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성의 제 1 규칙을 위반하는 처사라 생각했다. (CP 1.135)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주의 어떤 측면들은 환원불가능하여 가추가 적용될 수 없다는 것 역시 퍼스의 철학의 본질적인 일부라고 구지는 지적한다. 성질과 사실의 범주, 감정과 반응의 범주 등이 그 예이다. (CP 5.92, 1.405)

결국 과학에서의 가설, 가추의 사용의 정당성 문제는 퍼스에게 있어서 실용주의 격률을 어떤 정도로 강하게 또는 약하게 정식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착되게 된다. 위에서 논의했듯이 쓰레기같은 형이상학을 과학으로부터 배제하려는 동기에만 집착하여 실용주의의 격률을 지나치게 강하게 정식화할 경우 우리는 과학으로부터 모든 창조성의 근원으로서의 가추와 가설의 사용 자체를 포기해야만 하는 귀결을 낳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실용주의의 격률을 다시 과학에 끌어들이게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헤쳐나가는 일이 실용주의의 격률이 수행해야 하는 본연의 과제이다. 위에서 논의하였듯, 결국 퍼스는 좋은 형이상학과 나쁜 형이상학을 구별하고, 그 구별을 감당하는 과제를 실용주의의 격률에 맡긴 셈이다.

(3) 과학적 형이상학인가, 형이상학적 과학인가?

과학과 비과학을 가르는, 소위 구획의 문제는 포퍼를 통해 널리 논의되었지만, 토마스는 쿤 이래의 과학철학의 전개에서 과학사와 과학사회학적 연구의 성과들이 과학의 실제에 활동과 내용에서 과학과 비과학이 떼어낼 수 없을 만큼 밀접히 얽혀 있다는 점을 압도적으로 부각시킨 까닭에 라우단 (L. Laudan) 은 구획 문제의 종언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주석 : 과학사회학이 한 학문 영역으로 자리잡기 오래 전에 퍼스가 과학사회학적 연구를 수행했다고 하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C. Mills 의 박사학위 논문이 퍼스의 과학사회학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퍼스의 과학사가로서의 면모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제 이러한 20 세기 과학철학의 전말을 배경으로 퍼스의 입지를 생각해 봄으로써 결론에 가름하도록 하자.

퍼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두철미한 과학자였다. 그가 젊은 과학자로서 처음 실용주의의 격률을 정식화할 때 그의 주된 동기가 과학으로부터 비과학적 요소들의 축출, 특히 쓰레기 같은 형이상학적 요소들의 축출이었으리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최소한 그가 유명론과 결별하고 자연의 법칙성, 일반성, 제 3 성 (thirdness) 을 확신하게 된 이후 그는 중요하고, 또 좋은 형이상학의 필수성 역시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가추를 가능한 한 보편적으로 적용하려 한 것으로 보이는 퍼스에게서 방만한 형이상학적 가추를 규제하는 과제가 실용주의의 격률에 부과된다.

그렇다면 어떠한 것이 실용주의의 격률에 의해 규제된 과학적 형이상학, 즉 좋은 형이상학인가? 우리는 좋은 형이상학의 이념에 대해 퍼스가 시사한 바들을 검토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잘서 퍼스가 어떤 형이상학적 탐구를 수행했는지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퍼스가 수행한 형이상학적 탐구들은 그 스케일이 웅대하여 다분히 나쁜 형이상학이란 의혹을 받기 쉬운 것으로 여겨진다. 구지는 그의 저서를 퍼스의 자연주의와 퍼스의 초월주의로 나누어 기술하였고, 그런 점에서 퍼스의 사상 안에 내재하는 양립불가능한 두 가지 경향성에 그 누구보다도 민감하였다 (주석 : Goudge (1950), pp.5-7 에 그의 자연주의와 초월주의의 정의가 제시되고 있다.). 왜 퍼스가 과학적 형이상학에 매진하지 않고 초월적 형이상학에 경도했을까 하는 의문은 명백히 본 연구의 범위를 넘어서는 난문이다. 본 연구에서 다뤄진 퍼스의 실용주의의 방법에 대한 논의는 그의 자연주의 내지 과학적 형이상학의 경계 내에서 자리를 찾아야 한다.

과학의 진보에 대해 낙관적인 퍼스가 과학의 놀라운 성공을 해명하고, 비생산적인 형이상학의 쓰레기로부터 과학을 보호함 나아가서 과학적 형이상학의 구호 아래 철학의 과학화를 시도한 퍼스가 도달한 자리는 혹시 형이상학적 과학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