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기반 시나리오
역동적 기억: Roger Schank 저서, 신현정 역, 시그마프레스, 2002 (원서 : Dynamic Memory Revisited, Cambridge Univ. Press, 1999), Page 267~282
인간 행동의 모든 측면들은 목표의 추구를 수반하고 있다. 그 목표가 충치 예방을 위하여 이를 닦는 것과 같이 비교적 단순한 것일 때도 있다. 어떤 새로운 경험에 직면할 때 마음속에서 그와 유사한 경험을 탐색하는 것과 같이 지극히 무의식적인 경우도 있다. 학교 시스템의 변화를 초래하는 수단으로 고품질의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이 지극히 복잡한 경우도 있다.
목표가 단순할 때는 그것에 대해서 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무의식적인 것일 때는 전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복잡한 것일 때는 그 목표에 대해 생각하지만,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애를 태우게 되고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목표를 추구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인지의 이해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측면이다.컴퓨터가 진정으로 인간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사람들이 추구하는 목표에 관한 완벽한 모형 즉, 계획, 집행, 그리고 야기되는 복잡성에 대한 모형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것이다: 기저에 깔려 있는 목표 그리고 목표들간의 상호작용을 명확하게 평가하지 않고는 이야기 또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목표는 인간행동의 근간이 되는 것이며 인간 학습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목표를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어째서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학습하려고 하겠는가? 이해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째서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겠는가? 자신의 지식기반을 변화시키려는 욕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파악하려는 욕구, 그리고 경험으로부터 학습하려는 욕구는 모두 똑같은 것을 아주 다르게 표현하는 방법일 뿐이다. 이 모든 것들은 목표지향적 행위들이다.
만일 목표가 인간 사고과정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면, 학습은 목표주도적인 영역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것은 어린 아동의 학습과정에서도 참이다. 아동도 지극히 목표지향적이다. 한 돌이 지난 유아가 걷기를 배우려고 하는 이유는 가고 싶은 곳이 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걷기 때문이다.유아의 걷기 학습은 걷기의 목표 (이것은 또 다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에 뒤따른다. 마찬가지로 2 세 아동은 의사소통이 하고 싶어서 말하는 것을 배운다. 4 세 아동은 자기 집에서 어떤 방이든지 찾아갈 수가 있으며 이웃들을 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아동은 자신의 환경을 이해하고 그 환경 속에서 계획을 세울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계획은 아동이 가지고 있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아동은 자연스러운 학습기제, 즉 생득적 능력만이 있고 실질적인 지식이 전혀 없는 유아로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 세계에 대해 상당히 많은 지식을 가진 아동으로 진보해 가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제는 어른들의 이해 기제와 마찬가지로 목표주도적이다.
어린 아동에게는 동기의 문제가 없다. 학습을 함으로써 흥분하고, 새로운 것들을 해보려고 기를 쓰며, 실패에 대한 자의식이 없다 (물론 실패하면 놀라기는 한다). 요컨대, 아동은 목표기반 학습자의 전형이다. 따라서 자신의 말하기 능력이 진보되는 속도에 낙담하거나 걷기 학습이 너무 어려워서 오직 기어다니기만 하겠다고 결정하는 2 세 아동을 결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아동이 채택하는 자연스러운 학습기제는 시행착오적 방법에 비해서 별로 그렇게 정교한 데가 없다. 아동은 실험해보기, 실패하기, 누군가에게서 듣기, 또는 보다 나은 결과를 초래하는 새로운 행동을 흉내내기 등을 통해서 학습한다. 이 모형에 내재되어 있는 생각은 아동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해보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이 맥락에서 실패는 좌절을 초래하지 않는다. 심층적 의미에서 보면 6세까지의 학습은 대부분 실패에 의존한다.
그러나 대략 6 세 경이 되면, 모든 것이 바뀐다. 아동은 학습해야 할 것을 회피하려고 애쓰게된다.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이제 이들의 학습목표는 더 이상 개인적으로 동기화된 목표의 추구가 아니다. 오히려 권위자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학습하거나 아니면 가능한 한 적게 학습하려고 한다. 게다가 이들이 받는 교육상황은 1 대 1 이 아니라 30 대 1 일 가능성이 크며, 또래집단 역동성에 내재하는 엄청난 사회적 차이점들에 직면하게 된다.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난 것인가? 6 세 아동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다.
이해와 학습의 기반이 되는 목표가 학교교육에서도 기반이 되어야 하는 데도 그렇지가 못하다. 학교에서는 자연스러운 학습 목표가 인위적인 것으로 대치된다. 무엇인가를 (어디에 가는 것, 의사소통하는 것, 또는 대상을 사용하는 것 등) 할 수 있게 되고 싶어서 학습하려고 애쓰는 대신에, 아동은 선생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조롱을 피하거나, 좋은 점수를 받거나, 아니면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학습한다. 다시 말해서 이해의 증가나 다양한 시도를 통한 조작능력의 증가 등과 관련된 자연적인 학습목표가 승인, 인정, 사회화 등과 관련된 인위적인 학습목표로 대치된다. 이것은 간단하게 내재적 동기 대 외재적 동기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학교에서의 일차적 문제는 바로 교과과정이 된다. 학교에서의 학습은 실세계에서의 학습과는 전혀 같아 보이지 않는다. 실세계에서의 학습자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학습하려고 애쓰는 데 반해서 학교에서의 학습자는 선생이나 학교당국자가 좋은 성적을 얻어 좋은 상급학교에 진학하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알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들을 학습하느라 애를 먹는다.
간단하게 말해서 학생들은 잘못된 내용을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육을 구성하고 있는 전체 개념이 평가 요구에 의해서 주도되어 왔기 때문이다. 교육시스템은 학생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의 진정한 교육목표에 부응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시스템의 목표에 매달려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목표란 일반적으로 누가 최우수학생인지, 누가 일류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지, 누가 우수한 직장을 갖게 되는지 등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를 위해서 쉽게 검증할 수 있는 시험을 보게 되는데, 그 시험이란 선다형 문제를 통해서 어휘지식을 평가하기가 십상이며 명확한 답이 없는 논제와 개념에 대한 지식을 평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기는 하지만,학생들이 어른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감에 따라서 추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모든 학생이 특정한 지식들을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이 생각은 원리상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이 생각은 모든 학생이 바로 그러한 지식을 학습하였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만듦으로써, 결국 가장 단순한 검사 방법, 즉 시험으로 회귀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모든 학생이 알아야만 하는 지식을 결정함으로써 초래되는 또 다른 결과는 학생들이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다른 주제들을 암묵적으로 배제시킨다는 점이다. 학과 외적인 내용, 보다 정확하게는 학생들의 진정한 목표와 관련되어 있을 내용을 학습할 여유가 없다.
그렇다면 학교를 재체제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으로 합리적 교과과정을 구성할 것이냐에 대한 이론이 필요하다. 그러한 이론은 어떤 특정한 주제와 무관하여야 하며, 대신에 실생활에서 지식이 획득되고 활용되는 원리와 관련되어야 하며, 그러한 원리를 교실과 관련시켜야만 한다. 교육이 목표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가정은 교육이 자기지향적 (self - directed) 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수반하는 것이지 (도대체 학생들보다 학생의 목표와 관심사를 더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모든 학생이 알아야만 하는 지식이라고 규정한 교육당국의 지시에 의해서 제한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과과정이라는 바로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교과과정은 "자물쇠 단계" (lock - step) 라는 아이디어에 근거하여 구축된다. 즉, 모든 아동이 동일한 단계를 거치면서 동일한 과정을 밟아간다는 아이디어다. 자연적인 학습은 나름대로의 속도에 따라 진행하며, 모든 학생이 알아야할 필요가 있는 지식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반드시 정당한 진행방법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굴복하는 경우가 있으며, 교육도 그 중의 하나다. 교육개혁에는 명백한 대안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교과목 구성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교과목은 실제 학교세계와 기업 훈련에서 중요한 성분이다. 만일 교과목을 선정해야 하고, 가까운 시일 내에 그 교과목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우수하고 고품질이며 재미있고 목표지향적인 교과목을 선정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학습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그리고 이해와 학습에서 목표의 우위성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을 사용하여 교과목들을 재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 교과목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든 모든 교과목이 갖추어야만 할 특징들을 논의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우선적으로 인식해야 할 일은 흥미라고 하는 것이 결코 버릴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 특히 아동들에게는 진정한 흥미거리, 즉 추구하고 싶은 본질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는 대상들이 있으며, 각자에게 맡겨놓으면 스스로 그것을 상당한정도로 학습한다. 학생의 관심사 대부분은 학교에서 가르치기를 원하는 주제와 어떤 방법으로든 관련되도록 활용될 수가 있다. 이러한 관심사를 활용함으로써 학생의 주의를 끌고 유지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학생이 자신의 친숙한 관심영역에서의 기존지식을 사용하는 것을 도와 줄 수 있다. 학교당국은 학생에게 가르치려는 것들에 대해서 별로 고심해 보지 않았을 가능성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표준적인 교과목들을 심각하게 재고찰 하여서 그 교과목 설계지가 달성하려고 목표한 것들을 제대로 달성하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정말로 대수 (logarithm) 를 가르칠 필요가 있는가? 찰스 디킨스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상당한 용도가 있으며 학교에서도 가르쳐야 할 일상의 사회적 기술은 없는가?
교과목은 학생이 원하는 한에 있어서 자신의 관심사를 추구할 수 있게 해주며 언제든지 관심사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허용하는 맥락 속에서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교과과정의 개념에는 학습자료가 어떻게 특정한 관심사와 관련되는 것인지 그리고 그 학습자료가 특정한 맥락과 무관한 보편적인 논제를 제공하는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단 학생이 관심사를 선택하면, 달성 가능한 목표를 가시적인 프로젝트에서 추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오늘날 학교에서 명시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많은 유형의 지식을 학생 스스로가 선택한 교과목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도와 주는 맥락 속에서 암묵적으로 가르치게 된다. 학생이 어느 것이든 현재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상위 수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알아야할 필요를 스스로 발견함에 따라서 가르치기가 뒤따르게 된다.
새로운 학습환경의 설계자는 기술, 사례, 사실, 주제, 영역, 진행과정 등을 차별적이면서도 적절하고 설득력 있게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이것들간의 미묘하고도 정교한 차이를 이해하고 최적의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설계자가 효과적인 목표 기반 시나리오 (Goal - Based Scenario; GBS) 를 구성하는 방법을 알아야만 한다는 점이다. 몇 가지 용어들을 정의하도록 하자.
기술 (skill) 은 무엇인가를 해내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만일 "철수는 X 를 할 줄 안다." 라는 문장이 X 에 대해서 의미를 갖는다면 바로 X 는 기술이 된다. 일반적으로 기술은 연습을 통해서 획득된다. 읽기, 더하기, 운전하기, 비용 계산하기, 공식대로 전원을 연결하기 등은 모두 기술이다. 기술에는 그 기술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략들을 포함한 많은 성분들이 들어있다. 특정한 대상에 매우 숙련된 사람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그 기술을사용하는 과정에서 학습한 복잡한 방략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례 (case) 는 전체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하나 이상의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례는 특정한 요점을 예시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며, 자체가 기본 참조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 사례가 예시하는 요점은 일반적으로 다른 상황에도 일반화할 수 있는 중요성을 갖는다. 어떤 사례들은 단지 공통문화에서의 참조점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남북전쟁의 게티스버그 전투는 한 사례다. 하나 이상의 군사적 요점을 예시할 수도 있고, 역사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알려 주는 것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단지 모든 미국인들이 알고 있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
사실 (fact) 은 흔히 사례로부터 유도된 정보이거나 아니면 그 사례를 요약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예컨대,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북군이 승리하였다는 사실은 전체 사례의 요약이 된다) 사실은 단지 어느 사례와도 무관하게 참인 사건의 상태를 기술한 것일 수도 있다 (예컨대, 해리스버그는 펜실바니아주의 수도이다). 흔히 사실은 자신이 요약하고 있는 사례와는 별도로 가르치며, 그 사실 속에는 들어 있지 않는 사례에 대한 지식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검사받게 된다. 예컨대, 학생들에게 게티스버그 연설은 링컨 대통령이 1863 년에 행하였다고 말해주는 것인가? 나는 남북전쟁을 아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는 것이다.보다 중요하게 이해하여야 하는 것은 국가간에서나 아니면 한 국가내에서나 모두 갈등을 해소하는 수단으로서 전쟁이 얼마나 효율적이냐는 점이다. 사실을 직접 가르치는 것은 사례를 가르치는 것은 풍자하는 경향이 있다 (철수가 게티스버그 연설에 대해서 아는 것을 되뇌는 것이 마치 남북전쟁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학습한 사실의 중요성을 기억하거나 확신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주제 (subject) 는 오랫동안 동일한 기치 아래 함께 묶여온 기술과 사례들의 집합이다. 예컨대, 물리학은 하나의 주제이며, 다른 모든 주제와 마찬가지로 기술과 사례들로 구성된다. 물리학을 배울 때는 학습해야 할 것들이 있으며, 학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잘 알려진 물리학 사례들이 있다. 흔히 주제의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은 혼동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기술을 사례와 분리하여 가르치게 된다.
영역 (domain) 은 한 주제 분야에서 사용되는 과정을 가르쳐 주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기술과 사례들을 획득하는 배경으로 사용될 수 있는 관심분야를 말한다. 관심영역이 주제와 다른점은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피상적인 차이점들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다른 영역들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는 전문분야를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아동에게 있어서는 트럭이나 동물이 관심영역일 수가 있다.이러한 영역은 물리학이나 생물학 또는 역사와 같은 주제을 가르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과정 (process) 은 정의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학교에서 기술과 처리과정을 가르치고자 시도할 때, 일반적으로는 결국 사실을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예컨대, 추리는 과정이다. 추상적 추리를 직접 가르치기는 어렵기 때문에, 마치 추상화나 일반화를 하는 규칙을 아는 것이 추리를 더 잘하게 해주기나 하는 것처럼, 그러한 규칙을 가르치기가 십상이다. 그렇지만 언어이해는 가르치거나 평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한 문단을 읽힌 후에 이해도 검사를 실시하는 것과 같이 위장된 채로 가르치기가 십상이다. 이해는 지극히 개인특수적인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이 방법은 이해과정의 풍자일 뿐이며 기억기반 이해와는 아주 정반대 되는 것이다. 과정은 실제로 그 속에 들어가보게 함으로써 가장 잘 가르칠 수가 있다. 이 말은 심적 과정에 대해서 적극적이 토론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교육에서 핵심요인은 동기이다 (Dweck, 1989; Ames, 1990). 학생은 자신이 학습하려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였다고 느끼는 정도에 따라서, 그 선택을 통하여 힘을 얻게 되었다고 느끼며 학습에 보다 적극적이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학생이 자신의 관심사에 근거하여 교과과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생의 견지에서 볼 때 학생이 주제를 선택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만일 읽기를 가르치려고 한다면, 어느 것을 읽을 것이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읽을거리가 학생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일수록, 더 많이 읽으려고 할 가능성이 커진다. 마찬가지로 기업에서 사원이 비용회계를 학습할 때 어느 산업분야를 선택할 것이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학생이 공부하려고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어떤 맥락에 근거를 두고 있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가능한 한 학생은 실제 사례와 실제 상황을 사용하여야 하며 추상화를 피할 수 있어야 한다 (Bransford et al., 1989; Cognition and Technology Group at Vanderbilt, 1991; Lampert, 1995). 사례기반 교수법의 교훈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실제 이야기, 실제 맥락, 적절한 시점에 실제의 인물이 들려주는 이야기 등이 중요하다. 학습하고 있는 상황이 학생의 관심영역과 관련되어 있을수록, 그 학생이 보다 많은 것을 알려고 할 가능성이 커진다.
대전제는 사람이 어느 맥락에서든 거의 모든 것을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는 보다 비중 있는 물음을 고려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은 무엇을 학습해야 하는가? 이것은 매우 어려운 물음이다. 임의적인 사실들의 끝없는 목록을 만들어 내기가 십상이다. 이 물음은 사실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기술과 과정의 측면에서 조망해 보아야만 한다.
만일 미국의 독립전쟁을 혁명의 한 사례로 선택하였다면 다른 선생 (또는 학생) 은 혁명에 대한 보다 명백한 다른 사례를 찾아 낼 수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만일 미국 독립 전쟁을 공통된 유산과 문화라는 측면에서 가르치고자 한다면, 역사로서가 아니라 사회지배라는 문제의 맥락 속에서 가르쳐야만 하다.
그렇다면 자기 나름대로의 이유에 근거하여 미국역사를 가르치고자 하는 교과목 설계자의 물음은 이 사례를 알게 됨으로써 고양될 수 있는 학생의 기술은 무엇이냐는 것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과목이 학생에게 계속해서 의미심장한 것으로 남아 있는 사례들을 중심으로 설계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과정에 실제로 참여해 보는 것에 대한 대용물로서 원리나 이론을 학생에게 가르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피타고라스 정리와 동명사의 용법과 같은 대부분의 원리들이 알아야 할 가치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원리들이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경우에도, 어떤 의미에서는 스스로 그 원리들을 발견하지 않고는 학습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부모의 경험으로부터 학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한탄할는지도 모르겠지만, 자식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학습함에 따라서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일반화를 하는 것이다 (Seifert, Abelson & McKoon, 1986; McKoon, Ratcliff & Seifert, 1989; Ross & Kennedy, 1990; Ross, Perkins & Tenpenny, 1990; Farrar & Goodman, 1992; Spalding & Ross, 1994). 이러한 일반화가 실제 사례들에 근거할 것일 때만이, 좋거나 나쁜 결과에 대한 기억이 학습하였던 규칙을 강화하게 된다. 상대방이 이야기해주는 것에서 무엇인가를 학습하려고 할 때도 일반화를 하기는 하지만 (예컨대, 상대방 이야기의 교훈), 그 일화를 스스로 경험하여 기억 속에서 일반화가 이루어지도록 구현된 사례로 저장되는 풍부한 맥락을 갖지는 못한다. 어디에 그 교훈을 넣어두는가? 어느 스크립틀릿으로부터의 기대실패로서 어느 장면에 넣어두는 것인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 일반화해 주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스스로 일반화하는 것인가? 그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경험에서 주운 지식조각들을 가지게 되지만, 그 지식조각은 세상에 대한 자기 자신의 개인특수적 이해와는 무관한 것이 된다. 개인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은 한에 있어서 그 지식조각은 나중에 필요한 시점에서 회상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학습은 정서적 경험이다. 스스로 정서적 비틀림을 경험하지 않고는 자신의 견지를 변화시킬 실질적 욕구는 거의 없게 된다 (Read & Cesa, 1991).
이론을 가르치려고 시도할 때도 비슷한 어려움이 발생한다. 학교는 이론을 가르치려고 안달한다. 그렇지만 학교는 왜 그것들을 가르치려고 하는지를 인식하지 못하기가 십상이기 때문에, 이론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를 가르치지 못한다. 따라서 단지 학생들이 행성의 운동과 우주에 대해서 학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나 프톨레미 아니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가르치게 된다. 우주에 대하여 이러한 전문가들이 밝혀낸 것들을 학습하는 것이 그 주제에 관심을 표명한 어른들에게는 아무문제가 없지만, 아동에게는 적절하지 않을 수가 있다. 아동은 궁금해 하는 데 명수다. 아동은 행성에 대해서 듣고는 어떻게 그곳에 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행성은 어떻게 생겼는지를 궁금해 한다. 아동은 자기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 내기를 원하며 자신이 상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하며 (diSessa, 1982; Bransford et al., 1989; Reif & Larkin, 1991; Scardamalia & Bereiter, 1991), 합리적인 것을 어떻게 찾아 내는 것인지를 알고 싶어한다. 그런데도 우주 탐험과 과학발견의 과정에 대해서 가르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론을 가르치고는 그 이름과 연대를 암기하도록 만든다. 연대는 들어갈 MOP 를 가지고 있지 않다. 즉, 기억에 들어갈 만한 장소가 없는 것이다. 정말로 연대를 학습하려면 그것을 실제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사람들에게 암기시킬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암기와는 관련되지 않은 맥락에서 암기한 지식을 가용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진정한 학습은 MOP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암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학생에게 자신이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서 추리하게 함으로써 추리를 가르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모든 학생이 동시에 똑같은 문제에 대해서 추리하려고 하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각 학생에게는 각기 다른 수업이 필요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학교는 그러한 수업을 제공할 수가 없다. 따라서 학생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추리임에도 불구하고, 학생에게는 사실과 원리 그리고 이론들이 제공되는 것이다 (학생들은 나중에 이 모든 것들을 망각한다). 학생에게 자기 자신의 이론을 만들도록 하고는 그 이론이 틀린 것으로 보일 때 다른 "공식적" 이론들을 생각해 보고 그 이론들이 작동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는 것과 그러한 공식적 이론을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에 학생 자신의 생각은 보다 많은 것을 학습할 동기를 부여해 준다. 후자의 경우에는 공식적 이론 자체가 학습의 대상이기 때문에 학생에게는 관심을 끌지 못한다.
어른들은 어떤가? 어른들에게 이론을 가르쳐야 하는가? 여기서도 나의 대답은 "안 된다" 이다. 예컨대, 어떤 것이든 의사소통 이론이나 추리방법은 일반적으로 증명되지도 않았으며 틀린 것일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학생들을 훈련시키고자 한다면, 학생들이 사례를 직접 다루고, 자신의 가설을 구성하고, 추리하는 것을 학습하고,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일반화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두어야만 한다. 어른들에게 있어서도, 이론은 교과과정에서 지극히 제한된 영역일 뿐이다.
실제로 교과과정은 관심영역에 불과하다. 예컨대, 학생이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려는 이유는 그가 생물학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기를 바라는 것일 뿐일 수도 있겠지만), 관심사가 대학에서의 선택을 주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초등학생과 기업의 훈련과정에 참가한 어른들에게도 그래야만 한다. 학생이 학교에 입학할 때는 그 학교가 어떤 것이든지 간에 교과과정의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 그러한 선택은 학교 상황 이전에 학생이 이미 가지고 있는 관심사와 대응되어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어느 수준이든 학생이 선택한 교과목은 목표기반 교과과정 속에 내포된 목표기반 시나리오 (Goal - Based Scenario; GBS) 로 구성되어야만 한다.
목표기반 시나리오는 학생으로 하여금 잘 정의된 목표를 추구하게 해주며 그러한 목표를 달성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기술과 사례 모두의 학습을 복돋아준다. 목표기반 시나리오는 학생들에게 무엇인가를 이해시키는 방법으로써 실생활에서는 결코 하지 않는 행위를 하도록 요구한다는 의미에서 지극히 인위적인 것일 수가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만일 시나리오가 실제로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라면 도움이 된다. 예컨대, 학생에게 특정 시기의 미국 대통령의 역할을 하도록 요청하고는 의사결정해야 할 과제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역사를 가르칠 수 있다. 학생이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특정한 사례를 알아야 하고, 특정한 기술을 학습하여야 하고, 특정한 과정을 이해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 여기에 기저하는 생각은 비록 학생이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집무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추리와 의사결정 그리고 GBS 에서 학습하고 연습한 다른 많은 기술들의 용도를 알 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학생은 교과목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하며, 교과목 설계자는 학생으로 하여금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그 교과목을 구성해야 한다. 목표가 학생에게 내재된 관심사이며, 그 목표를 달성하려고 시도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이 바로 설계자가 학생들이 가지고 있기를 원하는 기술인 한에 있어서, 그 교과목은 작동하는 목표기반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타인과 의사소통하고 어울리며 추리하는 능력을 학습하는 것은 어느 교과과정에서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비록 이러한 주제를 직접적으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주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설계하는 모든 것들은 주제를 포함하고 있어야만 한다. 다양한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서 구성된 모든 목표기반 시나리오는 무엇보다도 의사소통, 인간관계, 그리고 추리를 가르쳐야만 한다.
다양한 영역에 들어있는 주제를 가르치기 시작할 때 학교는 각 영역에 대해서 교실과 선생을 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내가 "트럭 교과과정" 이라고 부르는 것을 상상해 보자. 어떤 아동은 트럭에만 전문화되어서는 트럭에 대한 글을 읽음으로써 읽기를 학습하고, 트럭 산업을 들여다봄으로써 경제학에 대해서 학습하며, 트럭을 내던져봄으로써 물리학을 학습할 수도 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학교는 트럭 선생과 트럭 교실을 마련하여야만 한다.
동일한 패턴을 기업훈련 맥락 내에서도 볼 수 있다. 다양한 산업분야에서의 전문가들이 있어서 예컨대 공익사업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공익사업 교실이 있고 가용한 공익사업 선생이 있을 수가 있다. 각 전문영역이 전문가인 선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특정 영역과 독립적인 기술 (예컨대, 특정한 수리공구를 사용하는 것이나 비용계산을 하는 것) 도 그것을 전담하는 선생 (또는 선생으로 가능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이 있어서, 필요할 때 자문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각 과정은 그것이 진행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인간관계 자문역 (아마도 심리학자가 되겠다) 도 가용해야 한다. 의사소통과 추리의 문제는 이 영역의 문제들을 다루는 특수 교사들이 맡게 된다.
학생들은 집단으로 작업하거나 혼자 작업할 수 있는데, 어느 것이든 각 시점에서 더 좋은 방식을 채택할 수 있다. 공동 프로젝트에서 집단 토의는 인간관계 선생이 조정을 하며, 인간관계라는 주제에 관한 수업으로 활용된다. 보고서는 의사소통 선생과 함께 작성되며, 이 주제에 관한 수업으로 활용된다. 주제 선생은 교과과정에서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논제에 반응하는 방식으로만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
요점은 이렇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어느 기술, 어느 사례) 그리고 어느 목표가 이러한 기술과 사례들을 가장 잘 묶어주는지를 결정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의사소통과 인간관계 그리고 추리는 어느 것이든 교육경험의 토대가 되며 이것들은 달성하고자 선택한 목표라는 맥락 속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여야만 한다.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는 앞에서 언급한 "트럭 교과과정" 속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은 전형적인 5 세 아동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주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은 "도대체 트럭 교과과정이 무엇이야?" 가 된다. 트럭을 배우기 위해서 아동을 학교에 보내지는 않는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모든 교과과정은 목표기반 시나리오들이 집단화되어 숨어 있는 외형을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트럭 교과과정 속에는 트럭에 관심이 있다는 말하는 학생들에게 흥미를 끌 수 있는 GBS 를 만들어 내는데 트럭이라는 외형이 사용되는 것이다. 트럭 교과과정에서 트럭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읽기, 추리하기, 경제학, 역사, 심지어는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다. 기저에 깔려있는 생각은 트럭에 대한 관심사가 있다고 할 때, 트럭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이유를 학생에게 제공하자는 것이다.
만일 "트럭" 학생이 갑자기 교과과정을 바꾸려고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다양한 교과과정을 현명하게 설계하였다면, 이것은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트럭" 논제는 본질이 아니라 배경이기 때문이다. 트럭 교과과정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실제로 학습하는 것은 읽기 (트럭에 대해서), 물리학 이해하기 (모의 트럭 세계를 통해서), 계산하기 (모의 트럭 세계에서 자신의 트럭회사가 사업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 등이다. 상이한 (그러면서도 연관되지 않은) 주제들을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교과과정 속에서도 동일한 일들이 일어난다. 여기서도 교과과정 자체는 동기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하나의 책략 (매우 중요한 책략이다) 으로 남아있다. 학생이 동기화되면 학습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기본 생각은 어떤 유형의 교과과정이든 그 속에서 학습을 주도할 자연스러운 동기를 갖게 하자는 것이다.
이 생각은 어른들에게도 잘 작동한다. 물론 어른들을 위한 교과과정은 어린 아동에게 적용하는 방식처럼 놀이지향적일 필요는 없다. 어른에게 무엇인가를 학습하도록 요청하면, 왜 그것을 학습해야 하는 것인지를 알고자 한다 (Brinkerhoff & Gill, 1994). 모든 어른용 교과과정은 그 "이유"를 처음부터 명백하게 주지시켜야 한다. 목표기반 시나리오에서 목표지향성의 일차적 역할은 "왜?" 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목표가 어른에게는 현실적이어야 하는 반면, 아동에게는 흥미진진한 것이어야 한다 (실제로 두 집단 모두에게 있어서 두 가지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기는 하다). 학생이 지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고 있을 때, 그 곳에 도달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술을 학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자신의 목표가 학습의 동기 유발자로 작동하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동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이것이 교육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알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실질적으로 아무 흥미도 유발하지 못하는 것을 학습하기는 매우 어렵다. 내가 두 번째로 중요하다고 말한 것에 주목하기 바란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진정한 가르치기 (authentic teaching) 이다. 내가 어느 주제에 아무리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주제에 대해서 천편일률적으로 웅얼거리고는 선다형 시험을 치르는 선생의 수업을 듣고서는 그 주제에 대해서 아무 것도 학습할 수 없으며 그 주제에 등을 돌리게 될 수가 있다.
진정한 가르치기는 학생이 스스로 MOP 와 TOP 를 생성할 수 있게 해주는 맥락, 즉 직접행동을 취해 보는 상황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두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인간기억의 변화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들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 그리고 학생의 자발적 동기에 주목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의 교육을 살릴 수 있는 핵심이다.
교과과정이라는 개념은 목표기반 시나리오 (GBS) 의 체제자로 간주할 수 있다. 즉, 트럭 교과과정은 많은 GBS 를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GBS 는 아동에게 내재적으로 동기화 되어 있는 목표에 의해서 주도될 수 있다 (예컨대, 트럭을 운전하거나 수리하는 방법의 학습, 트럭을 설계하는 방법의 학습, 트럭 회사를 운영하는 방법의 학습, 또는 트럭 산업을 위하여 로비스트가 되는 방법의 학습 등). 이 GBS 들은 여러 연령층의 아동에게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GBS 설계자의 임무는 이러한 유형의 목표들을 취하여 그 속에 GBS 에서 성공으로 이끌어 가는 단계들을 구성하는 일련의 기술들을 함께 묶는 것이다. 제기된 목표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GBS 에는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자연적인 GBS 는 트럭을 운전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기술을 가르치는 방법은 많이 있지만, 그 방법들이 그렇게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한편 인위적인 GBS 에서는 가상적인 목표를 설정하여서 일련의 기술을 묶는데 사용하게 된다. 앞에서 나열한 GBS 은 자연적인 GBS 이다. 트럭 교과과정에서의 인위적인 GBS 를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모의 트럭 경주대회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트럭의 연비를 증가시키는 것; 필요할 때 비행할 수 있는 트럭을 설계하는 것; 교통수단의 역사에 대한 특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인위적 GBS 에서 기술의 집합은 GBS 의 설계를 주도하며, 이것은 GBS 가 기술 집합의 설계를 주도하는 것과는 정반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학생이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식을 자각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기업의 훈련담당자와 학교당국은 모두 학생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보다 자세하게 분석해 보면 이들이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간단하게 말해서 만일 학생이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자 원한다면, 학습해야 할 필요가 있는 기술들이 있다. 그리고 가르치고자 원하는 특정한 기술이 있다면, GBS 설계자는 그 기술을 담고 있는 목표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
교과과정은 자연적 GBS 나 인위적 GBS 로 구성될 수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자연적으로는 일어나지 않는 목표와 관련된 일련의 기술을 가르치려고 할 때 많기 때문에 (때로는 단지 학습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서 목표가 설정되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 인위적 GBS 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이것은 학교 (화성에 도달할 수 있는 우주선을 설계하고 실제로 그곳까지 날아갈 수 있는지를 시뮬레이션 해보는 것이 물리학을 가르치는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는)와 기업 (제안서 작성하기를 가르치는 교과과정을 설계하는 것이 기술들을 하나로 묶는 훌륭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설계가 그것을 훈련받고 있는 사람의 임무는 아닌) 에서 모두 참이다. 예컨대, 최상위 수준의 트럭 교과과정에서 학생은 트럭 산업을 지원하는 법안을 작성하여 제안하거나 트럭 회사를 운영하거나 아니면 연비가 높은 새로운 트럭용 엔진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할 수도 있다. 학생으로 하여금 이러한 유형의 활동을 하도록 만드는 GBS 는 달성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며, 트럭 교과과정에서 상당한 진척을 보인 학생들을 위한 것이다. 중급 단계에서는 학생이 트럭 (아니면 트럭 시뮬레이션) 을 운전하는 방법, 망가진 엔진을 수리하는 방법, 고속도로 체계의 변경을 제안하는 방법, 트럭 회사의 설명서를 작성하는 방법, 또는 트럭 운전사 모임에서 연설하는 방법 등을 학습하게 된다. 보다 초보적인 단계에서는 트럭 충돌의 물리학, 운송대리점을 개설하는 방법, 또는 효과적으로 트럭에 짐을 싣는 방법 등에 대해서 학습하게 된다. 어린 아동은 연료와 연소에 대해서 학습할 수 있다; 트럭에 대한 읽을거리를 읽고 트럭 문제로 동기화된 산수를 할 수도 있다. 트럭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 학습하고는 다른 교과과정의 학생들에게 그것을 보고할 수도 있다. 엔진을 수리하는 방법을 학습할 때 상급자의 도제가 될 수도 있으며, 시간을 내서 트럭을 운전하거나 트럭 회사를 방문할 수도 있다.
핵심 생각은 가르치려는 것을 학생이 알아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는 시점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학생이 어떤 과제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알고 싶어할 때, 무엇보다도 그 과제를 달성하려는 동기가 충분히 강력한 것이라면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을 학습하려고 굳게 결심하게 된다.
요컨대, 우리는 일반적으로 디자인, 정치학, 물리학, 경제학, 수학, 국어, 역사, 지리학, 또는 생물학과 같은 제목으로 묶여져있는 기술 집합을 가르치려고 한다. 이러한 주제 속에서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려는 것이지, 주제 자체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 모든 주제들은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각 주제기 포괄하고 있는 기술들은 교과목 설계에서 기술 집합의 부분이어야 하며 교과과정 속에서 하나 이상의 GBS 속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교과과정이 여러 연령층의 아동이 가지고 있는 관심사에 대응되어야 한다. 논의의 출발점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잠재적인 교과과정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교과과정은 6 세 아동의 몇몇 관심사에 대한 나 자신의 지각에 근거한 것이다. 이러한 교과과정은 어느 것이든 주제에 포함된 기술들 그리고 의사소통과 인간관계 그리고 추리를 다룰 수 있는 다양한 목표기반 시나리오를 포괄하도록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내가 좋아 하는 것들을 제시하면 이렇다 : 인형, 애완물, 여행, 교통수단, 음식, 공룡, 스포츠, 음악, 집, 그리고 옷가지, 어느 것이든 앞에서 논의한 주제영역을 가르칠 수가 있다. 똑같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많은 다른 교과과정을 고안해낼 수 있다. 문제는 아동들이 정말로 알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 그리고 이러한 자연스러운 관심사를 도약대로 사용하여 기술을 가르치고 과정에 몰입하게 만들며 새로운 관심사를 도약대로 사용하여 기술을 가르치고 과정에 몰입하게 만들며 새로운 관심사를 촉발시키는 것이다.
목표기반 시나리오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기술들을 찾아내서는 그 시나리오가 구성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상황에 그 기술들을 집어넣음으로써 구성할 수가 있다. GBS 의 형식에서 올바른 것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는 하루이든 일년이든 선생이 원하는 만큼 길어질 수 있다. 소프트웨어로 만들 수도 있으며, 부분적으로 선생이 주도할 수도 있으며, 아니면 전적으로 책에 근거할 수도 있다. 사례 목록은 실제로 살아있는 전문가나 비디오 테이프, 전자매체 또는 책의 형식을 취할 수가 있다. 인간 전문가는 과정을 가르칠 때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가용해야 한다. 요점은 기술을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며, 방법의 선택은 가르치려는 특정한 기술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학습은 학생이 알고자 원할 때 일어난다. 교육 설계자와 선생의 임무는 학생들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알고 싶게 만들기 위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목표기반 시나리오의 의도는 동기, 성취감, 지원 시스템, 그리고 사실이 아니라 기술에 초점을 맞추는 능력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사실 (fact) 은 속임수가 될 수 있다; 사실은 알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알고 있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 주지는 못한다. 현재 하고 있는 것을 왜 하는 것인지 이해하는 것, 사실들의 단순한 암송이 아니라 명백한 목표를 갖는 것, 그 이유를 정말로 아는 것,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고 더 많은 "이유" 들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이야말로 교육이 추구하는 모든 것이다. 잘 알려져 있으며 적절하면서도 중요한 사례가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목표기반 시나리오는 교육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교과목들에 대한 합리적인 틀걸이를 제공한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해 보자 : 이야기 말하기가 더해진 기대실패는 생각나기, 설명, 그리고 역동적 기억의 후속되는 재체제화를 가능하게 해준다. 학교는 학생이 학습할 수 있으며 실생활에서 주기적으로 사용할 기술이 되는 기술 집합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은 이 기술들 중에서 몇몇이 자신들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학생들에게 다른 기술들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현재의 교과과정이 거의 전적으로 현실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