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시대의 한글

 

한국어와 인공지능 : 고창수 편저, 태학사, 1999, Page 45~70

한성대 국문과, 고창수

 

1. 서론

2. 정보혁명의 역사

  (1) 정보 저장의 시대

  (2) 정보의 대중화 시대

  (3) 정보의 복잡화 시대

3. 한글 창제와 그 특징

  (1) 한글 창제의 역사적 전개

  (2) 한글의 특징

4. 한글문화의 미래

5. 결   론

<붙임>

 

1. 서론

인류의 역사는 정보 축적의 역사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하여 정보를 생산, 교환, 저장하여 왔으며, 이 과정에서 정보는 질적으로 혹은 양적으로 확대, 심화, 재생산되는 순환을 겪었다. 이러한 순환 속에서 인류는 정보의 생산 및 교환 수단의 변혁을 중심으로 혁명적 진전을 이루어 왔다. 20세기 정보혁명의 중심이 되는 컴퓨터의 개발과 그 급속한 발전은 좋은 예다. 그러나 20세기 정보혁명은 그동안 인류가 이룩한 정보혁명의 한 예일 뿐이다.
이 연구는 인류의 정보혁명을 촉발시킨 정보 매체의 역사 속에서 한글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살펴보고, 한글 문명을 중심으로 21세기 정보혁명이 주도되어야 함을 역설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이제까지 진행된 정보혁명의 양상을 고찰하고, 핵심요인과 주변환경, 나아가서 혁명이 가져온 변혁의 결과를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혁명을 촉발시킨 정보매체의 특성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인류의 정보혁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정보저장의 혁명이다. 이 혁명은 문자의 발명으로 시작되었다. 둘째는 정보 대중화 혁명이다. 이 혁명은 음소문자의 정착에서 시작되어 활자인쇄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진행된 혁명이다. 셋째는 정보 복잡화 혁명이다. 이 복잡화는 정보 대량화와 고속화를 포함한다. 이 혁명은 컴퓨터의 발전으로 가속화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컴퓨터의 등장을 유발시킨 인류의 양적 팽창과 부수된 사회의 복잡화에 기인한 것이다.
한글 창제의 역사적 의의는 한글이 바로 정보 제2혁명의 훌륭한 기폭제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과거의 실패를 아쉬워하거나 세종의 비범한 능력에 대한 찬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숙고해야 할 부분은 한글 창제가 정보 제1혁명의 역사적 연장선 상에서 출현한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과 한글 체계의 우수성이 다가오는 21세기의 정보혁명 (정보의 지능적 처리 시대)을 주도할 만하다는 것이다.
먼저 이제까지 진행된 정보혁명의 성격을 고찰하고, 한글의 역사적 위상과 21세기 정보혁명의 전망을 살피기로 하겠다.

 

2. 정보혁명의 역사

(1) 정보 저장의 시대

언어는 정보를 담는 그릇이기는 하지만, 단순한 그릇은 아니다. 언어와 정보의 상호관계는 소쉬르적 해석으로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의 관계와 같다. 정보의 교환수단이 되는 문자는 사실 정보 자체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는 문자와 언어 자체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는 문자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는 기호에 근접한 개념이며, 후자는 음성 언어의 시각화라는 개념으로서의 문자이다. 문자의 발명은 전자로부터 후자로 이행되는 장구한 세월에 걸친 것이다.
이 시기 정보의 저장 및 확대 재생산은 단순히 기억에 의한 음성언어만으로 이루어진 것보다 정확성과 전파성에서 뛰어난 것이었다. 이 혁명을 통하여 문자를 갖춘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의 분화와, 문자를 활용할 수 있는 계급과 그렇지 못한 계급의 분화가 시작되었다. 또한 단순한 정보 전달의 문자에서 음성전달 문자로의 이행을 통하여 효율적 문자체계의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기호 상호간의 구별과 같은 시각 효과의 문제와 문자를 담는 매체의 우수성과 같은 문제들이 대두되었다.
이 시기 문명의 주도권은 효율적인 문자 체계를 확립한 쪽으로 넘어갔다. 황하의 패권을 두고 우리 동이족과 중국의 한족이 벌인 고대 국가 성립기의 쟁패에서, 중국이 승리한 것은 '한자' 라는 정보 전달매체의 우수성에도 한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한자는 상징성이 뛰어나고 단순음절문자인데다가, 한어의 특성상 문자의 전개에서 형식 요소를 배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한자는 제2의 정보혁명이 시작될 때까지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정보전달 도구로 인정될 수 있었다. 중국은 이후로도 붓과 종이라는 효율적인 전달 매체를 제작함으로써 고대 및 중세의 주도 국가로 존재하였다.
당시 문자 체계의 특징은 이른바 개방형 문자 (grapheme open system) 라는 점이다. 최초의 문자로 알려진 수메르 문자만 해도 1600 ~ 1800 자 정도의 낱 글자를 사용하였다. 이와 같이 개방형 문자는 낱 글자의 갯수가 많을 뿐 아니라, 체계 안에 그 갯수가 정해지지도 않았으며, 그 운용법칙이 복잡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수메르 문자나 이집트 문자와 같은 표어문자에 비해, 한자는 표의문자이기는 하지만 음절단위 표기의 음성문자라는 상대적 근대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즉 낱 글자의 갯수가 통시적으로 증가하기는 하였지만, 운용 원리는 극도로 단순한 것이다.
개방형 문자의 복잡성은 문자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계층을 제한시켰다. 이 시기 문자의 기능은 당시 유행했던 언어 신성관의 시각적 표현과 경제적 지배구조를 위한 온갖 제도의 형식화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 개방형 문자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고착된 구조를 유지시키기 위해 알맞은 정보 매체이다. 바꾸어 말하면 개방형 문자의 탄생은 문명의 급속한 발전을 야기하였지만, 사회구조를 고착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자가 점차 음성기호를 적극적으로 전사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음소단위의 폐쇄형 문자 (grapheme closed system) 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2) 정보의 대중화 시대

폐소형 문자는 단순하면서도 제한적인 음소들로 인간 언어의 음성적 측면을 직접 전사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이다. 또한 고착된 구조 속에서 집약된 노동력을 우선하는 사회가 아니라, 교류와 협동을 중시하는 상업적 환경 (페니키아와 그리스 등) 에서 음소문자가 탄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폐쇄형 문자는 결국 정보의 확대와 원활한 교류를 보장하는 사회 변혁의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정보혁명의 제 2 기는 폐쇄형 문자에 의한 정보체들이 대량적으로 복제 가능한 인쇄방법의 혁신 (예로 구텐베르크의 활자인쇄법) 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근대의 시작은 결국 이러한 구분을 무너뜨리는 정보의 제 2 혁명으로부터 예고되었다. 1450년 구텐베르크의 성경 출판은 서구에서 시작된 근대의 정보혁명이었다. 활자의 발명으로 서구의 음소문자는 중국의 한자에 대해 본격적으로 그 우수성을 발휘하게 되었으며, 정보는 이때부터 다수의 대중에게 급속히 확산되었다. 특히 종교혁명에 의한 성경의 번역은 라틴어를 중심으로 한 중세의 언어 권위관에 대한 본격적인 도전이었으며, 이로 인해 중세적 질서는 그 중추적 기반을 잃게 되었다.
1443년, 동양에서는 조선의 세종대왕에 의해 정보의 대중화를 위한 새로운 문자체계가 창안되었다. 이로써 동양에서도 제 2 의 정보혁명을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에는 일단 성공한 셈이었다. 세종이 창안한 훈민정음은 그 문자조직의 우수성에서 뿐 아니라, 창제 동기에서도 근대 과학정신이 풍부히 살아있는 정보혁명의 기념비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1234년 「고금상정예문」을 금속 활자로 인쇄할 수 있었으므로, 한글의 창제는 곧 정보대중화 시대로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이 완비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글 창제를 반대하였던 당시 수구세력의 견해는 한글 창제로 중국 중심의 중세적 질서가 파괴되어서는 안된다는 중세적 사유를 벗어날 수 없었다.
15세기 중엽, 양의 동서에서 발단된 제 2 의 정보혁명은, 서구에서는 활발히 진행되어 제 3 의 정보혁명으로 이행되었지만, 동양에서는 근대정신에 대한 자각이 싹트지 못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따라서 훈민정음의 유용성은 역사적으로 폄하될 수밖에 없었다. 김민수 외(1997)에 의하면, 19세기 들어 서양에 소개된 한글에 대한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는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놀라움과 더불어, 그것이 대중적으로 전혀 보급되지 않았다는 역사 전개에 대한 놀라움으로 요약된다.
정보의 대중화시대는 금속활자와 같은 대량인쇄 방법의 고안으로 촉진되었다. 그러나 이미 금속활자를 고안한 바 있는 동양의 예를 보면 단순한 하드웨어의 고안이 혁명을 격발시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서양의 경우는 이미 알파벳과 같은 폐쇄형 문자가 사용되고 있었으나, 동양에서는 한자가 여전히 권위를 누리고 있었다. 또한 서양에서는 종교개혁과 같이 중세적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정신적 저항이 성경번역과 같은 구체적인 사업으로 확산되고 있었던 데에 비해, 동양에서는 근본적으로 중세적 질서를 대치할 만한 사상적 비전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결국 서양을 정보대중화 시대로 이끈 주된 배경은 정보대중화를 향한 스스로의 사상적 욕구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이는 서양문명의 양대지주인 그리스적 인간주의와 기독사상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것이다. 특히 기독사상은 그 시작부터 '땅 끝까지 전파'하며, '이방인들에게도 전파'하라는 정보 확산의 의지와, 차별 없는 정보 공유 의지가 두드러진 사상이었으며, 이는 종교개혁을 통한 성경 번역에서 구체적으로 정보 제2혁명을 확산시키는 주된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3) 정보의 복잡화 시대

20세기 들어서 인류는 컴퓨터의 발명과 더불어 새로운 진보를 맞게 되었다. 곧 정보의 대량화, 고속화, 복잡화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는 정보가 질적, 양적으로 폭발적인 엔트로피 증가에 직면했음을 의미한다. 진보하고 있는 기술은 이러한 정보 엔트로피 증가를 연속적으로 가속화 하였다. 인류가 이제까지 이룩한 기술 가운데에서 이와 같이 가속화된 기술의 진전을 보인 예는 일찍이 없었다.
제3의 정보혁명은 컴퓨터라는 새로운 정보전달 매체의 발명으로 시작되었다. 가우어 (1995) 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전달이 이제까지 진행된 문자를 이용한 정보전달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전달은 문자 전달의 가장 일반적인 매체가 되는 종이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확실히 두 종류의 정보전달은 구별될 필요가 있다.
문자ㆍ매체에 대해 사이버 매체가 가지는 특징은 크게 재현성과 이식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재현성은 이른바 멀티미디어로서의 사이버 매체의 특징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문자 매체만으로는 전달될 수 없었던 형상과 소리뿐 아니라, 관련된 연산에 의한 반복적 재현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이식성은 한마디로 인터넷과 같은 망 안에 특정한 문서를 올려놓고 여러 사람들이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특성을 의미한다. 이 역시 단순한 문자 매체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특성이다. 이러한 사이버 매체의 특성을 통해 앞에 지적한 '정보의 대용량화'와 '정보전달의 고속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사이버 정보전달은 결국 정보의 복잡화를 초래하였으며, 이로 인해 오늘날 의미하는 바 인류의 새 시대라 할 수 있는 '정보 중심 사회'가 열린 것이다. 이 정보화사회에서는 정보의 생산 및 전달이 사회의 중요한 산업이 된다는 점에서, 이전의 정보 전달 도구의 혁신으로 인한 사회 변혁과 또 다른 특징을 보인다. 사이버 정보전달로 인한 제3의 정보혁명은 그 급격한 변혁으로 인해 새로운 위기를 낳게 되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정보 엔트로피의 폭발적 증가이다. 이를 위하여, 유기체가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듯, 정보 엔트로피를 감소시키기 위한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실정이다.
정보 엔트로피의 증가는 실제로 개인이 다루어야 할 정보의 양이 방대해질 뿐 아니라, 그 성격도 다양해지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또한 정보를 획득해야 하는 시간도 예전보다 훨씬 빨라지고 있음도 간과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를 위하여 대용량의 자료를 고속으로 처리하는 하드웨어와 통신기술이 개발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증가하는 정보의 양, 특히 개인이 다루어야 하는 정보의 양에 비하면 기술의 진전은 외견상으로는 눈부신 것일 수는 있어도, 실제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의 진전은 개인이 다루어야 하는 정보의 양을 증가시키는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이를 위하여 양질의 정보를 효과적으로 산출, 열람하는 방법과 정보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 요구된다. 이 기술이 바로 '인공 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이다. 이는 인간의 지능적 활동을 모의하는 기술로 이 기술이 안정적으로 구가되는 시대는 정보의 제 4 혁명의 시기로 예견할 만한 것이다. 현재 이 기술은 효과적인 의사 결정을 위한 전문가 시스템이나 정보전달상의 언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동 번역 시스템에서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이러한 인공지능의 개발로 인해 다시 고전적인 언어와 문자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인간의 지능적 활동의 기반이 되는 논리적 사고는 결국 언어를 통해서만 확인되고 전달된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구현은 인간 언어 능력 (language faculty) 의 실제적인 모의가 주된 관건이 된다. 이제까지 인간 언어는 음성매체와 문자매체를 통해 전달되고 이해되었다. 사이버환경이 이 두 매체를 지능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면, 스스로 생각하는 기계가 고안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사이버 환경에서의 텍스트 처리가 새롭게 문제되는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현재 사이버 정보 전달 시 필요한 자료처리를 위하여도 문자매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로써 발생되는 문제는 주로 표준코드와 표준자판 제정과정에서 제기되었다(오길록 외, 1995).
특히 오늘날처럼 이질적인 언어의 교류가 빈번한 실정에서는, 사이버 환경이 두 언어의 정보전달을 효율적으로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의 컴퓨터는 유감스럽게도 영어의 정보전달을 기준으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한국어 및 한글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표준으로 제정된 완성형 코드가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음절 (예를 들어 '똠') 들을 산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를 지지한다(강승식, 1997). 정보의 제 4 혁명을 앞두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사이버 환경에서의 한글 및 한국어의 표현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재 사이버 환경에서 한글을 표현하는 문제가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한글의 장래는 제4의 정보혁명을 담당하는 효율적인 정보 전달 매체로 각광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다음에서 한글의 이러한 장점을 부가하여, 21세기를 주도할 수 있는 한글문명의 성립 가능성을 타진하고, 인공 지능의 구현에 한글이 다른 문자체계보다 얼마나 우월할 수 있는지를 살필 것이다. 영어를 중심으로 한 세계문명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효율적인 정보 교환수단으로서의 자동번역시스템 개발은, 한국어를 근간으로 하는 독자적 문화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가치 있는 중요한 노력이다. 보다 적극적으로는 현재의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유일하게 개방형문자를 배제한 문자생활이 가능한 한국의 환경은, 정보시대의 성숙과 더불어 우리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며, 이를 기반으로 동아시아 문명을 주도적으로 발전시킬 것이 예상된다.

 

3. 한글 창제와 그 특징

(1) 한글 창제의 역사적 전개

한글이 1443년 세종에 의해 창제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한글이 문자사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위치는 한글 창제의 원류에 대한 끊이지 않는 의문을 제공하였다(이근수 1983, 김민수 외 1997). 이 글에서는 그 동안의 의문들이나 그 성과에 대해 직접적으로 논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향찰이 한글창제의 직접적인 원류라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한다. 이로써 한글이 전통적이며 보편적인 문자 발달의 한 결과라는 점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한글의 독창성에 비해 향찰은 한자를 이용한 궁색한 문자생활이었으며, 한자문화의 영향을 받은 한자문명의 아류였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세계 문자 발달사에서도 향찰과 같은 문자체계는 소개조차 되어 있지 않다. 한글은 같은 이유로 계보가 없는 문자체계이거나 한자나 가나와 같은 한자문명의 한 산물로 기술되고 있는 실정이다(세계문자연구회, 1997). 한글체계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아무리 호소력 있는 것 일지라도, 한글이 계통적으로 불분명한 문자라는 사실은, 한글 창제를 가능케 했던 당시 언어 과학의 성과에 대한 경외심을 반감시키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향찰은 고대 한국인의 문법적 직관이 심도 있는 언어학적 사색을 통해 구현된 정교한 문자 체계이다(고창수 1992ㄱ). 이는 자형을 한자와 공유하기 때문에 한자 차용 표기로 불리며, 이러한 이유로 향찰의 성립을 단순히 한자문명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만 이해하여 왔다. 그러나 문자체계를 자형과 운용원리로 나누어 살펴보면, 향찰의 자형은 한자와 같은 것이지만, 그 운용원리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한자는 낱 글자가 하나의 음절에 대응되는 전형적인 음절문자이지만, 향찰은 낱 글자가 한 음소에 대응되기도 하고 한 단어나 형태소에 대응되기도 하는 복잡한 구조를 지닌다. 예를 들어, '叱' 과 같은 자소는 음소 /s/ 에 대응되며, '去' 는 용언어간 '가' 에 대응되는 식이다. 향찰의 이러한 운용원리는 수메르의 쐐기문자나 이집트의 신성문자와 같은 표어문자(logogram) 의 운용원리와 일치하며, 한자의 특성을 이용하여 진일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의 한국인들이 수메르 문자와 같은 표어문자의 특성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향찰 표기가 단순히 한자를 이용한 문자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며, 향찰 이전에 다른 자형을 이용한 문자 체계가 존재하였을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권재선(1983)에서는 '尸' 나 ' 龜 ' 와 같은 향찰 자소가 '우물' 이나 '거북이' 의 모양을 상형한 글자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尸' 는 한자 자소의 음형이 '시' 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향찰에서 이 자소가 음소 /l/ 에 대응하는 규칙의 상정이 곤란하였다. 그러나 이 글자가 우물인 '*Əl' 의 상형자로부터 전승된 것이라면, 이러한 문제는 해결 가능하다. 이 설명에서 문제되는 부분은 실제로 '尸' 가 '우물' 을 지시한 용례가 있느냐에 있다. 그러나 향찰 체계에서 '尸' 는 이미 말음첨기를 위한 음소자로 전용되었기 때문에, ' 譯上不譯下' 와 같은 향찰의 운용원리를 따라 이 자소가 '우물' 을 지시하는 어간으로 사용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향찰과 수메르 문자가 공유하는 운용원리는, 앞서 언급한 대로 특정자소가 어간 의미를 지시하는 외에 그 음형을 다른 어간 형태나 기능형태에 전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메르 문자 '∥' 는 /a/ 로 읽히는데, '물' 이라는 뜻의 어간이나 처격접사로 사용되었다. 이는 향찰에서 '下' 가 호격접사로는 /ha/ 로 읽히지만, 서술어미나 명사 어간으로 쓰일 때는 /ari/ 로 읽혀 '아래' 를 의미하는 용법과 상통한다. 이 밖에도 수메르 문자 'zi + ge' 는 어간 'zig' 와 어미 'e' 를 표기한 것으로, 이는 연철표기의 한 예로 향찰에서 '心末' 가 어간 /*m
ɒsɒm/ 과 어미 /*ui/ 의 연철표기인 것과 같다. 또한 수메르 문자는 특정 형태의 말음소를 표기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향찰 표기에서도 종종 관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dam+a+na' 와 같은 자소 배열의 실제 형태 배열은 'dam+ani+ak' 인데, 이 때 'ak' 은 수메르어의 속격접사로 실제 자소 배열에서 /k/ 를 탈락시키고 있다. 이는 향찰에서 '왕' 을 의미하는 표기로 '吉支' 와 '次' 와 공존하는데, '吉支' 에 대하여 '次'가 수의적으로 /r/ 을 탈락시키고 있는 경우에 대응된다고 하겠다.
이상에서 수메르 문자와 향찰이, 문자체계의 운용원리에서 유사한 점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언급된 유사성이 곧 향찰이 수메르 문자나 기타 인근 문자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지라도, 향찰이 단순히 한자문명의 영향으로 산출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문자체계 가운데 하나로서 발전되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것이다. 초기의 수메르 문자가 상형적 도안으로부터 출발하여 쐐기형 문자로 발전하였던 것처럼, 한국의 고유 문자도 지금은 잘 알 수 없는 도안들로부터 한자 자형을 자소로 사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수메르 문자가 쐐기형문자로 발전하게 된 까닭은 필기 매체로 점토판을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향찰은 중국의 한자가 상형적 도안으로부터 갑골문자 형태로 다시 오늘날과 같은 자형으로 변화하는 연속선상에서 한자의 자형을 수용하였을 것이다.
향찰이 단순한 한자 차용 표기가 아니라, 인류문명이 산출할 수 있었던 보편적 표기체계의 운용원리를 수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향찰에서 한글로 발전하는 문자 발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해 준다. 왜냐하면 현용 알파벳 문자는 수메르 문자나 이집트 문자로부터 발전해 왔기 때문에, 향찰이 이들과 운용원리를 공유하는 문자체계라면 향찰로부터 한글과 같은 음소 문자로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의 창제자인 세종은 한글이 ' 諺文皆本古字 ' 라고 하여 한글이 옛글자가 한자의 '用音合字' 에 어긋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최만리는 이두는 한자를 이용한 문자이므로 한글과 다르다는 것을 논하였다(『세종실록』26년 2월조).
『실록』의 이 논쟁은 세종이 언급한 '옛 글자'가 '이두' 즉 향찰임을 추론케 한다. 그런데 이 논쟁은 세종과 최만리가 바라보는 문자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 문자를 실용주의와 학구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세종과 이를 단순히 중세의 권위주의나 문화 교류의 수단으로 이해하는 최만리 사이의 사상적 혹은 학파적 대립에 의한 것이다. 둘째, 세종은 문자를 그 운용원리에 주목하여 훈민정음과 이두의 공통성을 지적하고 있는데 반해, 최만리는 자형과 자소의 음/뜻 대응에 주목하여 이두와 한자의 공통성을 지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라면 둘의 논쟁은 평행선을 달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 논쟁은 한글이 옛 글자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과 그 옛 글자가 향찰이라는 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향찰이 한글과 공유하고 있는 운용 원리에 대해 살펴보자. 향찰에서 한글로의 발전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자형의 변화이다. 이는 표어문자 체계에서 음소문자 체계로의 전이라는 혁명적 진전이다. 그러나 모든 발전이 그렇듯이 한글은 향찰의 운용원리를 수용하면서 발전하였다. 그 수용은 먼저 형태주의 표기법에서 발견된다. 형태주의 표기는 이른바 「월인천강지곡」식 표기로 어간과 어미를 분간하여 적는 것으로 현대의 맞춤법도 이를 수용하고 있다(박병채 1994). 향찰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역상불역하' 의 원칙이 이 형태주의 표기의 기반원리이다. 이는 '我    /나는' 이나 '花   / 꽃을' 과 같은 표기에서 어간과 어미를 구별해 주며, '夜音 / 밤' 의 표기에서 어간 형태의 말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특히 후자의 말음첨기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 '종성부용초성' 과 같은 음절말음 표기원칙의 제정에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한자 반절법과 같이 음절을 이분하는 원리에서 초/중/종 삼성의 삼분 원리를 확립하는 기반을 제공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글표기에서 수용한 향찰표기 원칙의 한 예는 이른바 사이시옷의 표기방법이다. 이는 복합어의 내부 경계를 표기법에서 반영하는 문제로 현대국어의 맞춤법에서도 논란이 되는 표기법이다. 그러나 한글창제 이후 줄곧 사용된 'ㅅ' 은 바로 향찰에서 사용된 '' 의 직접적인 계승이다.
향찰은 언어 신성관이 지배하는 시대의 효율적인 문자체계로, 음소단위 분석, 형태소단위 분석, 표기법 등에서 문자가 갖추어야 할 독자적 체계를 함축하고 있다. 향찰은 동시에 알파벳 문자 이전의 문자들이 갖는 보편성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 문자들이 음소문자로 발전하였던 것처럼 한글과 같은 음소문자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한글체계는 특히 그 표기법에서 향찰에서 모색된 방법을 원용하고 있다. 이로써 한글은 개방형 문자에서 폐쇄형 문자로 전이되는 문자 발달의 일반적 변모를 겪은 것으로, 동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제한적 정보전달 매체에서 대중적 정보전달 매체로의 이행이라는 제2의 정보혁명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한글의 특징

이제 한글의 특징, 특히 사이버 정보전달 매체로서의 특징에 대해 간략히 살피겠다. 한글은 동아시아의 유일한 음소문자이지만, 음절 경계를 분명히 갖고 있는 한자문명의 특징을 공유한다. 특히 음절 경계는 오토마타로 처리 가능한 것으로 현재의 워드프로세서는 2벌식 자판으로 초/중/종 삼성의 음절을 자동으로 합성할 수 있다. 이 점이 타자기 시대의 불리를 딛고 컴퓨터 보급을 단시간에 늘일 수 있었던 한 원인이다.
한글이 음절 모아쓰기를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점은 자연언어처리 (NLP) 에서 발휘된다. 즉 음절을 기반으로 형태 정보의 처리가 용이하기 때문에, 형태소 분석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쉽게 분석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어 문장에서 과거 완료라는 시제 정보를 분석해 내기 위해서는 'have + PP' 라는 두 어절 정보를 이용해야 하지만, 한국어 문장에서는 시제 형태소가 '었' 과 같이 보통 한 어절 내에서 한음절을 분리함으로써 분석이 가능하다. 물론 특정 형태소들은 'ㄴ, ㄹ, ㅁ, ㅂ, ㅆ' 과 같이 음소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이 또한 분리된 음절이 특정 형태소에 대응이 되지 않을 경우 그 음절의 말음을 분리함으로써 확인이 가능하다. 이 밖의 기능 형태소들은 대개 한 음절 혹은 두세 음절의 결합형으로, 음절 모아쓰기는 해당 형태소들을 간단히 식별해내기 위한 표기법 자체가 내장한 오토마타라고 할 수 있다.
한글 텍스트는 서술문이나 의문문과 문형 정보를 식별해 내는 데에도, 한 어절 내의 음절들로부터 해당 형태소를 식별해내는 방법을 쓴다. 영어의 경우 문형 정보는, 어순과 동사의 형태소 정보를 복합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그 절차가 복잡하다. 또한 한국어의 경우, 문형 정보와 시제나 상 정보의 분리가 동질적 절차를 통해 정보화된다는 점에서, 영어의 경우보다 구문 분석이 단순해질 수 있다. 문장을 명제부와 양상부로 구분한 필모어의 논리를 따른다면, 한글 텍스트는 양상부에 필요한 정보를 동사 어절을 어간과 어미로 분리함으로써 모두 추출할 수 있기 때문에, 분석된 구문구조가 그대로 범어적 심층구조를 갖게 된다. 명제부에 필요한 논항 정보 역시 명사 어절로부터 조사를 분리해 냄으로써 얻어지기 때문에, 한글 텍스트는 범어적 심층구조를 표현하기 위한 모형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다중 언어의 기계 번역을 위한 중간 언어 (pivot language) 의 설계는, 한국어 및 한글 표기를 모형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러한 시도가 성공한다면 한글문화는 앞에서 언급한 제 4 의 정보혁명을 이끌 수 있는 저작 도구로 각광받게 될 것이며, 다음 세대 문화를 선도적으로 이끌 것이 기대된다.

 

4. 한글문화의 미래

현대는 정보 폭발의 시대이다. 정보 폭발의 원인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컴퓨터의 등장이라는 정보의 제3혁명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컴퓨터 기술은 정보에 기반한 재화 창출이라는 본격적인 정보 소비 시대를 촉진시키기도 했지만, 정보과잉 공급의 문제를 낳기도 하였다. 이는 산업화 시대의 종국에 쓰레기 문제를 비롯한 각종 환경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할 대안으로는 인공지능의 개발이 가장 유력하다.
인공지능은 기계에게 스스로 유용한 정보를 판단하거나 가공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이의 실현은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 혹은 하드웨어적 측면에서 여전히 무망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가장 인간적인 측면인 인간 지능의 논리적 모사가 얼마나 힘겨운 문제인지를 웅변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 주제는 결국 철학적 문제로 확대되어 강한 인공지능 (strong AI) 과 약한 인공지능 (weak AI) 에 대한 논란을 부추겼으며, 이에 따라 인공지능의 개발에 앞서 더욱 시급한 문제는 인간 마음의 비밀을 탐구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날로 가속화되는 제 3 의 정보혁명은 무엇보다 실용적인 의미에서 인공지능의 출현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기계번역은 세계화 (부단한 국제 경쟁) 의 물결을 따라 이 분야에서 가장 광범위한 투자가 이루어지는 부문이다. 이 밖에도 부분적 의미의 전문가 시스템은 이미 많은 부분 상용화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세계의 이러한 추세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의 경우, 인공지능의 개발에 대한 인식이 다른 선직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으며, 특히 기업에서 상용 제품의 개발에 소극적이다. 이는 정보화의 맥락을 잘못 이해하는 사회 현실과 무관치 않다. 우리 나라는 그동안 선진의 기술을 모방, 습득하면서 발전해 왔지만, 인공지능의 경우, 가장 앞서 있는 미국의 경우도, 아직은 표준화된 기술을 선보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마음의 과학 (인지과학) 과 같은 기초과학의 연구가 미진한 것도 한 이유이며, 특히 언어과학과 같은 마음의 표현 기제의 작동원리에 대한 반성이 제대로 성찰되지 못한 것이 그 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선진 제국은 과감한 투자와 상용 제품의 발표로 이 분야를 선도하고, 기술을 피드백하고 있다. 표준화된 기술이 없을 때에는 피드백 기술의 축적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상황인데도, 우리 나라는 이에 대한 보조를 전혀 맞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인공지능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이에 대한 인식부족을 차치하고서라도, 인공지능의 연구가 자국어, 특히 자국 문자체계의 이해로부터 출발한다는 평범한 사실에 기인한다. 문제는 이에 대한 기술만큼은 절대로 수입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기계 번역의 경우, '영한번역기'보다는 '한영번역기'의 경우가 기술 진전에 애로가 많다는 사실이 이를 예증한다. 한글에 대한 문제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한글은 음절문자이면서 음소문자인 특징을 아우르고 있는데, 한글의 음절성은 컴퓨터의 등장 이전에는 알파벳식의 음소문자 체계에 뒤지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현재 우리의 소프트웨어 산업에 적지 않은 장애가 된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한글의 음절 모아쓰기는, 자연언어처리를 중심으로 한 인공지능의 개발에서 오히려 전용 음소 문자 체계에 비해 우월성을 가지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은 정보 고속화, 복잡화 시대에서 정보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우리 나라의 독자적 언어 처리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기초적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한글의 우수성을 바탕으로 정보화 시대를 선도해야겠다는 한글에 대한 과학적 성찰이다. 또한 정보혁명의 제 3 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입장에서, 각 문자체계의 고유성에 입각하여 각 기의 정보혁명의 주도권이 바뀌어 왔다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성찰되는 문자 체계의 중요성도 다시 한번 강조되어야 겠다. 제 3 의 정보혁명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 자국어와 자국 문자를 얼마나 논리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가 에서 제 4 의 정보혁명의 불이 당겨질 것이라는 전망은 우리로 하여금 다각적인 한글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케 하는 것이다.

 

5. 결   론

인류는 그 탄생으로부터 정보를 이용하면서 다른 동물과 구별되어 문명을 이루어 왔다. 이후 문자 발명으로부터 제1의 정보혁명이 시작되었으며, 이때부터 문명 발전과 문자체계의 함수관계가 성립되었다. 제2의 정보혁명은 정보의 대중화를 가능케 한 인쇄기술의 발전이 결정적 촉발제가 되었다. 서구에서는 활자의 발명이 정보의 대중화를 통해 중세적 질서의 급격한 해체와 과학혁명으로 인한 근대사회의 진입이 가능해졌으나, 동양에서는 이러한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정보의 확산과 폐쇄를 구성하는 종교적,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 향찰이라는 보편적 문자체계로부터 한글이라는 근대적 표기체계가 완비되었으며, 한글창제는 서구의 제 2 정보혁명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한글창제 이전에 이미 활자인쇄의 단계를 넘어섰으나, 제 2 정보혁명의 요체인 대중화의 개념이 성숙할 수 없었다. '훈민정음'은 이 점에 있어서도 혁명적 성과이다. 세종이 제시한 한글창제의 기본이념은 문자의 대중적 보급이기 때문이다. 또한 세종이 중국의 중세적 한자문화권에 대응하는 개념으로서 한글을 창제하였다는 사실은 한글 창제가 본격적인 근대정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음을 논증케 한다. 세종은 이를 지리풍토설과 문자언어와 음성언어의 괴리를 시정한다는 합리적 이유로 설명하고자 했다.
'훈민정음' 은 시대를 넘어선 언어학적 호사이며 인류의 위대한 지적 성취 가운데 하나이다. 언어의 음소적 분석을 자질 체계로까지 확장하는 언어 과학의 성찰은, 익히 알려진 한글의 우수성을 설명하는 한 증거일 뿐이다. 한글은 초기부터 음절 형성의 오토마타를 채용한 과학적 문자로서의 우수성이 두드러진다. 주지하다시피, 근대 언어학의 산물 가운데 형태소의 발견은 언어학의 과학적 입안에 현저히 공헌한 것이다. 그러나 이 형태소의 개념은 향찰의 표기체계로부터 훈민정음 초기 표기 규범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문자체계 전통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시경 선생이 국문법 연구에서 서구의 전통 문법을 수용하면서, 불룸필드보다 이른 시기에 '늣씨' 라는 형태에 대응하는 개념을 드러낸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한글의 이러한 우수성은 결국 정보의 고속화, 복잡화 시대에서 문자체계로서의 우수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근간기술이 되는 자연언어처리에서 오토마타로 처리되는 음절단위로 기술되는 한글은 분해기 문법 (parsing grammar) 의 구현에서 다른 문자체계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한글의 우수성을 자각하여 21세기의 정보 폭발 시대를 주도하는 한글 처리 기술의 시급한 전개이다. 한글을 무기로 하여 정보혁명의 제3시대를 넘어서 정보의 제 4 혁명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희망 이상의 논리적 귀결이다.

 

<붙임>

수메르 문자와 향찰, 그리고 향찰과 한글을 관련짓는 일은 단지 각 문자체계가 지니는 유사성에 기댄 것으로, 이로부터 각 문자체계의 실제적인 계승 관계가 논증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따라서 향찰 이전 시기에 고유 문자가 존재하였으리라는 가정은 현재로서는 가정 이상의 것이 되기 힘들다). 그러나 수메르 문자와 향찰의 유사성은 향찰이 편협된 의미의 무자체계가 아니라는 점, 즉 향찰이 단순히 한자를 차용한 제한적 문자생활의 결과가 아님을 강조한다. 또한 수메르 문자로부터 알파벳과 같은 음소문자가 발전된 양상과 향찰과 같은 문자체계의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 한글이 창제되었다는 사실은 우연 이상의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향찰의 존재가 세계문자의 계통에서 독립적인 지위를 가지지 못하였다거나 한글의 계통이 불분명하거나 한자 문명의 한 지류로 표시되고 있는 것은 한글의 무자사적 지위를 생각할 때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니다. 한글은 분명히 독창적인 것이기는 하나, 그 독창성은 한글을 가능케 한 언어이론의 독창성이다. 그러나 그 독창성도 중국의 성운학 이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듯, 한글의 운용원리는 향찰체계로부터 전통적으로 계승된 '형태 표기' 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향찰표기는 단순히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 우리말을 표기한 궁벽한 표기라고 보아 왔다. 그러나 향찰을 표기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언어 분석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자의 운용원리는 단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결국 한어의 음절을 표기하는 음성적 원칙과 동음이의의 문자들 가운데 적절한 문자를 선택하는 의미론적 원칙만이 문제될 뿐이며, 향찰과 같이 말음을 표기하기 위한 음운론적 원칙과 기능 형태소들을 표기하는 독립된 자소를 갖는 형태론적 원칙과 같은 본격적으로 심화된 언어 이론을 필요로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자는 음절 단위로 운영되는 음절문자의 성격을 지니며, 문자가 단순히 언어의 시니피앙과 일대일 대응된다는 점은 상형문자나 표어문자와 같은 문자체계에 비해 근대적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언어학은 성운학과 같은 음성이론과 '설문해자' 류의 의미이론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것은 한자의 문자적 특성을 짐작케 한다.
음소문자 체계는 알파벳의 경우 고대 국가에 이미 확립되었다. 따라서 제 2 의 정보혁명은 활자인쇄에 의한 정보의 급속한 확산에서 직접적으로 촉발된 것이지 음소문자의 출현으로 야기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활자의 발명과 같은 격발은 결국 서양이 음소문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음소문자는 정보 확산을 위한 근대적 성격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글창제의 정신은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대한 다원적 세계관의 결과(당시 중국 중심의 단일 역서에 대해 「칠정산내외편」과 같은 독자적 역서를 편찬한 것도 이러한 사고의 결과일 것이다)로 정보 대중화 개념과 함께 근대적 세계 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어학』 7, 1998, 한국어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