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논리학의 과제
기호논리학 : 소광희 지음, 경문사, 1985, Page 283~289
논리학은 형식논리학(formal logic)을 의미한다. 형식논리학은 사고의 구조를 표현된 언어에 있어서 형식적·외연적으로 다룬다. 그리하여 형식논리는 명제의 결합에 관한 법칙을 한 자리 술어, 두 자리 술어 또는 두 자리 이상의 술어형태로 탐구하고, 판단, 정의, 추론 등에 관한 이론에 기초를 제공한다. 두 자리 이상의 술어형태의 논리는 관계논리를 형성한다.
현대 논리학의 원론적 부분은 명제논리이다. 이것은 부정· 연언, 선언, 함언, 동치 등 논리적 결합사에 의한 추론의 타당성에 관한 이론이다. 이 명제논리의 기초 위에 술어논리도 관계논리도 성립하는 것이다.
형식논리는 명제의 진위에 관한 검증이기도 하다. 진리치가 진위의 두개일 때 이치논리 (two value logic) 라 하고 세 개 이상의 논리를 다치논리( many-valued logic) 라 한다.
"내년에 나는 프랑스에 유학간다."
는 명제는 현재로서는 진도 아니고 위도 아니다. 그것은 진위 '부정'이다. 그러나 가능한 일이다. 미래에 관한 모든 명제는 가능 또는 불가능 명제이다. '가능'은 '필연', '실연' 등과 함께 양상에 속한다. 여기에 양상논리 (modal logic) 가 성립한다.
Aristoteles는 "내년에 사라미스 해전이
있을 것이다" 라는 명제로써 양상문제를 제기한 바 있고, 그 전후에 Megara 학파에서도
그 후에 Stoa 학파에서도 이 문제를 연구한 바 있으나 Aristoteles의
논리를 이치에 국한시킨 전통의 권위에 가려져서 빛을 보지 못하였다. 현대 논리의
커다란 과제로서 양상의 문제를 제기한 이는 H. McColl (1837~1909) 의 시론을 공리화한
C.I. Lewis (1883~?) 이었다. 그는 Russell 의 단순함언 (material implication)
에
대해 '엄밀함언' (strict implication) 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양상논리에로의 길을 열었을 뿐 아니라 Langford 와의 공저 Symbolic
Logic (1932) 에서 양상체계를 확립하였다. 단순함언은
Df 이고 '엄밀함언'은
Df 이다. 이것을 말로 표현하면 "p 가 진이고 q 가 위라 함은 불가능하다"
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 불가능, 필연, 우연, 실연, 비실연 등의 많은 양상 중에서 공리가 되는 양상체계는 아래와 같다.
N : notwendig : □ M
: möglich : ◇
M' : unnotwendig(zufällig) : ~□ U
: unmöglich : ~◇
Np 또는 □p(p는 필연적으로 타당하다
: p가 위임은 불가능하다 ; ∽~p)
Mp 또는 ◇p(p는 가능적으로 타당하다
; ~∽p)
Up 또는 ~◇p(p는 불가능적으로 타당하다 : p가 가능함은
위다 ; ∽p)
M'p 또는 ~□p(p는 비필연적으로 타당하다 : p가 위임은
가능하다 ; ~∽~p)
이상을 정의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Np(□p)='~M~p' Df(p가 위라 함은 불가능하다)
Mp(◇p)='~N~p'
Df(p가 위라 함은 필연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Up(~□p)='N~p' Df(p가 위임은
필연적으로 타당하다 ; p가 타당하다는 것은 모순율에 의해 불가능하다)
명제의 양상적 형식을 진리치를 기준으로 해서 재정리한 것은 Lukasiewicz (1878~1956) 에 의해 제창된 삼치논리학이다. 그는 진=1, 위=0이라 할떼 가능(부정)은 1/2값을 갖는다고 보아 '부정'의 진리치를 아래의 왼쪽과 같이 규정한다. 이에 따라 '함언'도 아래 오른쪽과 같이 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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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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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q |
1 1/2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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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0 |
|
1 |
1 1/2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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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제로부터 삼치의 제 규정이 도출될 수 있다. 이것은 분명히 Stoa 학파의 Chrysippos 이후 이치에만 국한되었던 전통적 논리학에 대한 커다란 변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양상논리와 다치논리가 현대 논리학의 확고한 정설로서 정착했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미심한 데가 있고 일부의 논리학자들은 거부의 몸짓을 보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연구분야로서 명령의 논리 (logic of imperative) 가 있다. 명령수행자의 입장에서는 명령은 의무를 의미하고, 그리하여 이를 의무논리 (deontic logic) 라고도 한다.
G.H. von Wright는 An Essay in Modal Logic (1951) 에서 고전적 양상개념을 확장해서 4가지로 구별하였다 :
이 가운데 C의 의무양상을 A의 b)에 대응시키면, 필연적-의무적, 가능적-허용적, 우연적-무관심적, 불가능적-금지적이 된다. 이제 행위 p에 대해 허용기호 ∇를 사용하면 의무의 형식적 공리는 아래와 같이 표현된다 :
∇p(허용) 행위
p는 허용된다.
~∇p(금지) 행위
p는 허용되지 않는다.
~∇~p(의무) 행위
p는 불이행은 허용되지 않는다.
∇p·▽~p(무관심) 행위
p는 이행도 불이행도 허용된다.
그러나 이와 같이 명령명제를 형식적으로 기호화한다고 해서 그 명령과 행위의 합리성 및 정당성 즉 타당성이 다 구명되는 것이 아님을 간과할 수 없다. 명령언어는 애당초 외연적 해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령 Kant 윤리학의 형식적 정언명법은 일종의 근본적 명령이라 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것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똑같이 논리적으로 제약할 수는 없다. 그 명령은 사회적 요구나 계급에 따라 내포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여기에 명령명제의 기호화의 한계가 있다.
논리학이 추구하는 사고법칙은 객관적이고, 객관적이니만큼 그것은 객관적 실재와 일치한다(만일 논리법칙이 실재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관념론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논리법칙이 객관적 실재와 일치하면 진이라 한다. 논리법칙과 객관적 실지와의 일치에 관한 가장 확실한 증명은 컴퓨터가 보여주고 있다. 자료의 입력에 의해 객관세계를 반영하는 컴퓨터의 원리는 다름아닌 형식논리의 법칙이다. 현대는 자동기계의 시대라 할 수 있고, 그런만큼 그 기초원리의 탐구로서의 현대 논리학은 크게 요청되고 또 거기에 부응해서 현대 논리학은 공헌하고 있다.
형식논리학은 단순히 사고의 Kanon 일 뿐 아니라 학문의 방법과 관련해서 Organon 이기도 하다고 주장된다. Aristoteles, Kant 도 논리학을 학문일반의 Organon 이라 말한 바 있다. 논리학의 Organon 적 성격에 주목하여, 연구대상의 상이에 따라 변증법 (Dialektik) 이 또한 형식논리학을 능가하는 Organon 임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
유물변증법론자들은 형식논리와 변증법은 연역추론과 환원적 (귀납) 추론의 기초로서 양자는 궁극적으로 변증법적 통일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오직 하나의 논리가 있을 뿐 변증법은 그것을 다른 영역에 다른 방식으로 적용하는 것이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를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i) 논리학은 어떤 의미에서 학문 일반의 Organon인가? ii) 과연 인식론이나 변증법은 형식논리적 의미에서 논리학일 수 있는가, 즉 하나의 논리학이 있고 변증법 또는 인식론은 논리학이 탐구하는 형식적 사고법칙이나 추론법칙을 각기 다른 대상에 달리 적용하는 방식의 차이만으로 구별되는 것인가?
Kant 는 일반 (형식) 논리학에 Kanon 의 역할을 인정하고 Organon 의 역할은 transzendentale Logik 에 배당한다. 그에게 있어서 후자는 사고의 원리나 규칙에 관한 형식적 연구가 아니라 인식의 타당성·범위·기원에 관한 내용적 연구요, 따라서 인식하는 인간의 심성에 관한 분석이다. 그것은 인식성립의 조건 및 구조에 대한 탐구이다. 그럼에도 그가 일반논리와 관련해서 그것이 방법론이라고 언급한 것은 일반논리가 단순히 예비학이라는 것과 학문적 체계의 정합성 여부를 검토하는데 필요하다는 것을 고려한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학문적 사유는 엄격한 개념적 사유인데 이의 훈련은 일반논리학이 담당한다는 것 및 체계에는 전후가 일관되어 모순이 없어야 하는데 일반논리학은 이에 공헌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논리학에 대한 매우 소박한 견해로서 그것이 이성의 학임을 함언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성의 학이라는 점에서는 transzendentale Logik 도 마찬가지이다. 그러기에 Kant 는 양자를 다같이 Logik 이라 부른 것이다.
그러나 두 논리학은 그 연구대상과 방법에 있어 전혀 다르다.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형식논리학은 사고의 원리, 추론형식 등을 명제에 있어서 형식적·외연적으로 탐구하는 것이고, transzendentale Logik은 인식 성립의 조건, 인식의 구조 등을 우리 심성의 분석을 통해 탐구하여 인식의 한계, 타당성 및 기원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인식론' (Erkenntnistheorie, theory of knowledge) 을 '인식론의 논리' (Logik der Erkenntnistheorie 또는 logic of epistemology) 라 하지 않는다.
변증법 (Dialektik) 은 실제세계의 변화의 측면에 대한 인식행위 내지 인식과정을 연구한다. 여기에서는 실제세계의 변화와 거기에 대응하는 인식주관의 의식의 변화가 교호작용함이 전제되고 있다. 이 교호작용에 있어서의 의식의 변화를 우리는 의식의 고양 즉 자각 이라 한다. 여기에 변증법의 동성과 통일성이 있다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식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변증법도 우리가 말하는 형식논리와는 무관하며, 따라서 그것은 형식논리적 의미의 논리학이 아니요. 하물며 변증법은 형식논리학을 능가하는 고차적 논리가 아니다. 변증법에 대해 변증법 '논리' (Logik der Dialektik) 라고 말하는 것조차 전혀 근거없는 짓이다.
위에서 보인 유물변증법측의 논증 즉 연역추론과 환원적 추론의 구별은 다같이 형식논리학에 있어서의 추론방식의 구별일 뿐 그 어느 것도 변증법과는 무관하다.
이리하여 위의 질문 i) 에 대해, Aristoteles 와 Kant 가 일반논리학을 Organon 즉 학문연구의 방법과 관련지은 것은 그것이 이성의 학이라는 매우 소박한 견해에 입각해서 표명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것은 일반적 견해이지 본질적 견해가 아니다. ii) 인식론과 형식논리학은 그 연구대상과 방법에 있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변증법과 형식논리학과의 관계에 있어, 연구대상은 다르나 사고의 원리를 탐구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나 내용에 있어서는 상이하니, 형식논리에 있어서는 변화하는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자각을 노리지 않기 때문이다.
논리학의 기본원리와 논리적 술어에 대한 메타차원의 연구는 논리철학이 담당한다. 수잔 하크는 논리철학의 문제들로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잇다. "추론의 타당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 명제가 다른 명제로부터 도출된다 함은 무엇을 의미하며 또 한 명제가 논리적으로 참이라 함은 무슨 뜻인가? 타당성이란 각 형식체계에 상대적인 것으로 설명될 수 잇는가? 아니면 각 형식체계의 공통의 목표로서 어떤 형식외적인 이념이 있는가? 어떤 추론이 타당하다 함과 좋은 추론이라 함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그러나 이런 것만이 논리철학의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판단의 형이상학적 원리, 근거율 및 모순율에 대한 철학적 성찰, 존재와 사유의 관계에 관한 문제들도 논리철학 (또는 철학적 논리학) 의 과제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