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타페이 연구소의 이념과 활동
과학사상 40호(2002년-봄) : 김승환 (포항공대 교수 · 물리학), 범양사 출판부, Page 174~190
샌타페이 연구소 (일명 산타페 연구소) 는 1984년 미국 뉴멕시코 주의 외딴 도시 샌타페이 (Santa Fe) 의 수도원을 임대하여 세운 조그마한 연구소이다. 그러나 이 연구서에 쟁쟁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머레이 겔만 (Murray Gell-Mann) 과 필립 앤더슨 (Phillip Anderson) ,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 (Kenneth Arrow) , 수학자, 컴퓨터과학자, 생물학자, 심리학자, 경제학자, 경영학자, 그리고 말총머리 대학생들이 모였다. 이들의 목표는 자연과 아우르는 복잡성 (complexity) 에 대한 보편적이며 통합적인 패러다임을 만들어나가는 것이었다. 이들은 전통 과학의 시각을 거부하고 미지의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들의 여정은 아직 아무도 종착역을 예측하지 못하는 채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복잡성은 최근 과학계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용어 중 하나이지만 아직 그 중요성과 정확한 의미에 대한 의견은 일치되지 않고 있다. 라틴어 (complexus) 는 '엮는다' 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 (pleko) 에서 왔다고 한다. 이와 같이 복잡계는 많은 작은 부분들로 엮어져 있으며 복잡계 과학은 엮어진 패턴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시도한다.
사실 우리 주위의 자연을 좀더 주의깊게 관찰하면, 많은 자연현상이 교과서의 단순화된 예제와는 달리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떠다니는 구름, 계곡 물의 빠른 흐름, 흔들리는 불꽃 등은 매우 불규칙하고, 변화무쌍하며 비예측적인 운동이 관찰된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복잡성과 비예측성의 이면에도 카오스 (chaos) 와 프랙탈 (fractal) 과 같은 보편적인 규칙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또한 복잡계에서는 공통적으로 나비효과, 비평형상태, 비선형성, 긍정피드백, 자체조직화, 공진화 등 새로운 원리가 관찰되며 "단순한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다". 이러한 복잡계의 특성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복잡계의 원리를 공학, 생물학, 생태학, 경제와 경영계, 사회계 등에 응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복잡계의 연구분야는 과학의 거의 모든 영역을 포괄할 뿐만 아니라 전통적 영역을 벗어나기도 한다. 실제 인터넷 또는 도서관 검색을 해보면 복잡계라는 단어는 수학, 물리학, 생물학, 통계학, 생태학, 화학, 전자공학, 기계공학, 컴퓨터공학, 화학공학뿐 아니라 철학, 사회학, 경제학, 지질학, 역사학, 언어학, 음악, 미술 등과도 관련 지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지아 공대의 저명 물리학자인 조세프 포드 (Joseph Ford) 에 의하면 복잡성의 과학은 거시의 세계, 미시의 세계에 이어 복잡성의 세계를 다루는 21 세기 현대과학의 새로운 흐름 중 하나이다. 복잡성의 과학은 기존의 과학적 방법론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지만 근본적인 문제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왜 동유럽과 소련이 갑작스럽게 붕괴되었는가? 왜 1987 년 암흑의 월요일에 주식시장의 대폭락이 일어났는가? 왜 고대의 종들과 생태계는 수백만 년 동안이나 안정하게 생존해왔으며 순간적으로 멸종하였는가? 어떻게 40 억 년 전에 생명이 아미노산과 다른 간단한 분자들로 구성된 유기체용액에서 시작되었는가? 도대체 생명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다세포 유기체들이 탄생하였으며 생태계에서 신뢰와 협동이 존재하는가? 어떻게 다윈의 무작위적인 자연선택설에서 사람의 눈이나 콩팥과 같은 너무나도 정교한 구조가 생겨나는가? 어떻게 열역학 제2법칙에도 불구하고 우주에서 은하계, 별, 행성, 박테리아, 식물, 동물 그리고 뇌의 질서구조가 생겨나는가? 이러한 문제들의 이면에 숨어 있는 보편적 법칙은 무엇인가?
이러한 것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질문이다. 이런 모든 문제들은 한 가지의 수학적 방법론에 의해서 풀어낼 수는 없지만 많은 공통점이 있다. 컴퓨터의 혁명과 비선형 방법론의 발달은 이들 문제들에 대해 새로운 과학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였다.
복잡계과학에서는 실제 계를 많은 독립인자 (세포, 단백질, 신경소자, 사람 등) 가 다양하게 상호작용하는 복잡계로 보고 그 계가 스스로 엮어내는 자체조직화 (self-organization) 와 발현된 질서구조의 패턴을 이해해나간다. 특히 복잡계 연구는 연구자에 따라 여러 갈래의 연구가 진행되어왔으며 복잡계에 의해 발현된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다양하고 독특한 방법론들이 개발되었다. 일부 분야에서는 복잡계 연구는 유용할 뿐 아니라 성공가능한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복잡계 연구에서 컴퓨터의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컴퓨터는 똑똑하지는 않더라도 단순한 반복작업을 매우 빠르게 수행할 수 있어 복잡계의 반복적 구조를 효율적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컴퓨터를 통하여 인공주식시장, 인공생태계, 인공생명 등의 문제를 새로운 관점과 방법론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복잡성의 문제들에 의문을 가진 혁신적 사고의 소유자들과 지원세력들은 미국 뉴멕시코 주 외딴 소도시인 샌타페이에서 작지만 전혀 새로운 개념의 연구소 설립을 구상하게 되었다. 샌타페이 연구소의 설립은 당시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 있던 조지 카우언 (초대 연구소 소장) ,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자 칼텍교수인 머레이 겔만, 데이비드 파인스 등에 의해 추진되었다.
겔만 (Murray Gell-Mann) 은 샌타페이 연구소의 산파 중 한 명이자 과학위원회 공동위원장이다. 그는 1969 년 입자이론에 대한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그가 발견한 쿼크와 양자 (chromodynamics) 이론은 당시 원자의 핵 속에 100 여개의 입자가 발견된 뒤의 혼란했던 상황에 종지부를 찍은 중요한 업적이다. 그는 이론물리학자이지만 자연의 역사, 고고학, 심리학, 생물학적 진화, 학습 등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샌타페이 연구소의 설립과 초기 정착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현재도 샌타페이 연구소에서 핵심 멤버로서 복잡한 적응계와 언어학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세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하여 특권과 명성을 지닌 원로학자들이 현재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만들어낸 조직으로, 판에 박은 연구소의 전형을 거부하였다. 샌타페이 연구소는 1984년에 설립된 이후 새로 발현되는 과학을 추구하며 새로운 유형의 과학 연구 집단을 만드는 데 모든 노력을 경주해왔다. 샌타페이 연구소는 작은 방문 연구소로 활동하면서, 전통적인 분야들간의 장벽을 허물고 새로운 학문간 협동을 촉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아이디어와 방법론을 전파하여 실제적 응용을 장려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샌타페이 연구소의 사명문 (Mission Statement) 은 복잡계 연구로 대변되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의 일반적인 속성을 가지는 과학 연구를 수행 · 장려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학문간 (Transdisciplinary) : 한 개의 학문 분야를 벗어나 전통적인 분야의 관점에서 연구하기 힘든 주제들을 연구한다. 연구원들은 발전하는 도구들로서 가능한 다양한 과학적 접근법을 엮어내고자 하며 연구소는 공통적 언어와 원리를 추구하는 넓은 과학 집단에게 적절한 지원을 제공한다.
우수성 (Excellent) : 추진하는 프로그램에 엄격한 우수성 기준을 적용한다. 즉 새로운 연구결과가 탁월하고 창의적이며 헌신적인 연구자를 끌어들이거나, 과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거나 성공할 경우 큰 파급효과가 있는 새로운 연구를 지향한다.
신선도 (Fresh) : 한정된 자원과 상주자 간의 폭넓은 협력연구가 가능하도록 작은 규모로 유지하여야 하므로, 다른 곳에서 수행되고 있는 연구를 중복투자하기 어렵다. 따라서 연구소는 다른 기관의 연구와 경쟁보다는 보완 연구를 수행하며 새로운 연구는 다른 곳에서 곧 수행될 가능성이 있으면 선정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주요 기관에서 상당한 규모로 추진되는 과제는 이전하거나 줄여나간다.
촉매성 (Catalytic) : 다음 세기에 과학이 수행되는 방향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그 아이디어와 방법론을 확신한다. 연구의 관점, 방법론과 성공 사례들을 보여주고 전달하며, 특히 다른 기관의 많은 사람들이 샌타페이 연구소를 방문하여 그 분위기를 경험하는 것을 장려한다.
초기 샌타페이 연구소의 설립이념에 따라 연구방향을 설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던 핵심 연구원은 복잡계 경제학의 브라이언 아서, 이론생물학의 스튜어트 코프만, 인공생명의 크리스 랭턴, 인공주식시장과 인공생태계의 존 홀랜드 등이다.
브라이언 아서는 아일랜드의 혁명가적 기질을 가진 스탠퍼드 대학 경제학과 석좌교수였다. 그는 주류경제학인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여러 가정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을 가졌다. 그는 벨기에 물리학자 일리야 프리고진이 쓴 글에 영향을 받아 경제계에서의 자체조직화와 효용체가 이론을 주창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프리고진의 의문은 "왜 이 세계에는 질서와 구조가 존재하는가? 이들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것이었고 그와 다른 과학자들이 찾아낸 해답은 스스로짜임 (자체조직화 sief-organization) 이었다. 프리고진의 글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경제도 시장구조가 노동과 상품 또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자체조직화하는 시스템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아서는 1987 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애로의 제안에 따라 당시 무명의 신설 연구소인 샌타페이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샌타페이 연구소는 처음에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였고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연구소의 방향을 결정할 워크숍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 초기 워크숍의 주 조직자인 필 앤더슨은 응집물질물리 분야의 업적으로 1977 년에 노벨상을 받은 사람으로 겔만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었다. 앤더슨은 평소 입자믈리학과 달리 응집물질물리학을 중심으로 환원주의의 물줄기를 반대로 돌려놓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다. 1984 년 10 월과 11 월에 '발현하는 합성들' 의 학회를 통하여 참석자들은 연구소의 기본 개념을 형성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발현하는 합성에 대한 연구 노력이 많은 공통점이 있으며 이는 복잡계과학으로 대변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들 참석다들은 복잡계과학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시티 은행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두 번째 경제학자 · 물리학자의 모임은 열흘 동안의 기념비적인 학회로 애로가 추천한 아서를 포함한 10 명의 경제학자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앤더슨이 추천한 10 명의 물리학자들이 함께 모여 상호 장벽을 넘어 시장경제의 복잡성에 대해 공통분모를 찾아 나갔다.
결국 아서는 샌타페이 연구소의 경제학프로그램 공동연구책임자로 부임하여 시티 뱅크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경제계에서 작은 마구잡이성 사건들이 증폭될 수 있다는 양의 되먹임과 수확체증이론을 제창하여 복잡계 연구를 시장금융계로 크게 확장하였다.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경제학은 생산에서 규모에 대한 수확체감과 인간의 합리성에 기초한 최적화와 균형이론에 기초하고 잇다. 그러나 아서는 복잡계경제학을 통하여 반대로 규모에 따른 수확체증과 인간의 제한적 합리성에 기초하여 불안정성과 동역학, 인간의 인지활동을 중시하고 하이테크산업 등 신시장금융계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고 잇다.
샌타페이 연구소의 맥아더 석좌교수인 존 홀랜드는 1985 년 로스앨러모스에서 개최된 '진화, 게임, 그리고 학습' 이라는 학회를 통하여 샌타페이 연구소와 처음 접하게 되었으며 곧 자문위원으로서 일하게 되었다. 홀랜드는 1986 년의 경제학자 · 물리학자의 기념비적 학회에도 참가하여 두 번째 발표자로서 '적응과정의 세계 경제' 를 발표하였으며 아서의 경제학 이론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샌타페이 연구소의 경제학프로그램 공동책임자로서 경제계도 서로 병렬적으로 행동하는 많은 인자들로 구성된 그물망으로 보고 복잡한 적응계로서 기초단위들의 자체 조직화를 통해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계는 미래를 예견하고 이에 대응하며 자신의 생태적 위치를 스스로 찾아나간다고 보았다. 그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애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앤더슨에 의해 제안된 인공주식시장을 경제학자인 아서, 물리학자 리처드 파마와 함께 연구하였다. 이 인공주식시장에서는 투자자의 맹목적이며 탐욕적인 전략에 따라 시장의 거품생성, 급락 등 시장의 실제적 현상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홀랜드가 만들어낸 에코 (Echo) 라고 불리는 인공생태계에서는 인공세포들이 어떻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도 멸종하기도 하는지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처음 희곡작가를 희망했던 스튜어트 코프먼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철학, 심리학, 생리학을 공부하고 캘리포니아 의대로 진학하였다. 그는 유전자 그물망 연구가 만들어내는 질서구조에 매료되어 이론생물학으로 방향을 바꾸었고 시카고 대학의 이론생물학 교수, 국립보건원 · 펜실베니이아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도인 파머와 함께 자기촉매 컴퓨터 모형에 대해 연구하던 중 샌타페이 연구소에 대해 듣고 이에 매료되어 1986 년 연구소에서 열린 '복잡한 적응계 워크숍' 에 참석한 후 여러 개인적 이유로 아예 샌타페이로 이주해왔다. 그는 맥아더 석좌교수로서 연구서의 이론생물학 프로그램을 주도하였으며, 생명과 분자수준의 자기조직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자체조직화가 가능한 네트워크를 연구하여왔다.
크프먼은 생명현상이 어떻게 시작했는가를 밝혀낼 수 있는 자체촉매 이론을 연구하였다. 자체촉매집합 'autocatalytic set' 은 화학물질군이 서로 반응하여 다른 화학물질을 만들어내고 이들 물질이 초기반응을 촉진하게 되면 생성된다. 이러한 화학물질 집합은 초기에 매우 미량이 존재하더라도 상호 촉진에 의하여 진화하여 전체 환경을 지배하게 되며 생명형성의 근원을 제공한다. 이러한 이론은 화학반응의 동역학에 대한 자세한 분석없이도 생명의 시작에 대한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샌타페이 연구소의 도인 파머, 노먼 패커드와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리타으 배글리는 컴퓨터 인공화학계 모형을 통하여 자체촉매 집합의 발현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복잡계가 질서와 카오스의 경계인 '카오스의 가장자리' 에 놓여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이 카오스의 가장자리 영역은 마치 생체계처럼 혁신성과 안정성, 경쟁과 변혁의 장을 제공하는 절묘한 균형점이다.
또한 코프먼은 반카오스 (Antichaos) 와 적응에 대한 연구에서 생물 진화가 반드시 자연선택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생물 진화의 수학적 모형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특정한 복잡계가 스스로 짜인 형태로 진화해 나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생물학자에게 진화과정에서의 질서의 근원에 대한 이해를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매우 정교한 질서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정교한 구조는 화학 및 형태 활동의 정확한 상호협동을 통하여 유지 · 복제된다. 다윈 이후로 생물학자들은 자연선택을 질서구조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동인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다윈은 자체조직화의 원리와 최근에 밝혀진 복잡계의 여러 근원적 속성을 아마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진화를 선택과 자체조직화의 과정으로 이해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샌타페이 연구소의 복잡계연구는 크리스토퍼 랭턴에 의하여 생체계에 대한 이해에서 더 나아가 인공생명에 대한 연구로 확장되었다. 랭턴은 전형적인 컴퓨터광으로서 생명게임 (Game of Life) 을 즐기고 몇몇 유전자들로 이루어진 유기체 모형을 컴퓨터로 프로그램하여 실행시키곤하였다. 그는 존 폰 노이만, 스타니스라오스 울람에 의해 제안되었으며 스티븐 울프람에 의해 복잡성의 구조가 밝혀진 셀룰라 오토마타 이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질서와 카오스의 가장자리 상태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셀룰라 오토마타는 세포들의 격자로 이루어진 공간에 세포들이 매우 간단하고 추상적으로 정의된 컴퓨터 상태에 놓여 있으며 시계가 한 번 똑딱거릴 때마다 자신과 주위의 상태에 따라 새로운 상태로 바뀌게 되는 모형이다. 행턴은 이러한 모형을 통해 생명계 특유의 행동을 나타내는 인공적인 시스템으로서의 인공생명에 대한 생물학, 화학실험,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구에 의하여 궁극적으로 생명계의 논리형식을 추출하고자 하였다. 그는1987 년 로스앨러모스의 비선형센터 연구원으로 와서 인공생명 워크숍을 주관하였다. 이 모임에는 홀랜드, 코프먼, 패커드, 파머 등도 참가하였다. 여기에서는 개인의 집단적 행동 시늉내기에서 컴퓨터 코드의 디지털 생태계 진화, 자신들을 조립하여 바이러스로 만들어가는 단백질 분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공생명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는 인공생명이 본질적으로 전통적인 생물학과 정반대라고 보았다. 인공생명은 생명을 살아있는 공동체 군집의 구성단위의 분석에 의해 이해하기보다는 합성으로서 이해하고자 하였다. 즉 단순한 조각들을 조합함으로써도 실제 생명 같은 것이 인공적인 계에서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샌터페이 연구소는 사설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물리, 생물, 컴퓨터, 사회과학 등의 분야에서 방문 또는 상주 연구원으로서 학문간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1 년 동안에 약 100 여 명의 과학자가 체재연구를 수향하며 워크숍에는 약 800 여 명이 참석한다. 예를 들어 작년의 경우 다년 체재 연구원 5 명, 박사후 연구원 8 명 등 동시에 체재하는 사람의 수가 35 명이 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규모이다.
노벨상 수상자, 맥아더 재단 석좌교수, 국립과학원 회원들을 포함하여 약 50 명으로 구성되는 과학자문위원회 (Science Advisory board) 에서 연구서의 일반적 연구 방향 설정, 통합 및 질적 수준유지의 문제를 결정한다. 샌터페이 연구소의 운영은 현재 연구소장인 앨렌 골드버그 (Ellen Goldberg) 박사 (전 뉴멕시코 대학 부총장) 가 맡고 있다. 모토로라사의 로버트 갈빈이 이끄는 이사회는 재계, 학계, 정부를 망라하는 이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구소의 전체 관리와 재정적인 책임을 맡고 있다. 센터는 소수의 상주 연구원을 보완하기 위하여 외부교수진 (External Faculty)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세계 전역의 다양한 대학과 연구기관에 포진한 외부교수진의 네트워크는 연구소 과학활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연구소의 예산규모는 2000 년에 연 80 억 원 규모로 국립과학재단, 국립보건원, DARPA 등 정보 (21 %), 복잡계연구를 위한 재계 네트워크 (부즈넷 Buznet) 를 기반으로 한 재계 (22 %), 맥아더 재단, 케크 재단, 패커드 재단 등 사설재단과 학술기관 (32 %), 개인 (16 %) 등 다양한 재원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센터 연구방향에 대한 폭넓은 지지층 때문에 연구소의 프로그램 추진을 위한 다양한 지원 기반을 지속적으로 확보해나가고 있다.
연구소의 연구방향은 통합적이며 학과 등 공식적인 프로그램은 없다. 연구소의 주요 특성은 학문간 접근에 대한 의지, 그리고 구성 부분간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는 문제들에 대한 연구의 강조에 있다. 센터에 이끌려온 과학자와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전공을 떠나 적극적으로 다른 분야들도 모색한다. 특히 이 연구소는 담이 없는 연구소를 지향하고 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연구소를 방문하여 워크숍에 참가하고 협동연구를 수행하며 모기관으로 돌아가 전자우편, 팩스, 전화 등을 통하여 공동연구를 계속한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협동연구자, 아이디어, 접근법과 함께 급속하게 성장하는 학문 연구자들의 네트워크는 연구소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연구소는 과학의 미래 방향을 이해하고 과학적 다양성을 통합하는 비전과 능력을 가진 리더십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또한 과학적 깊이와 다양성을 균형 있게 겸비한 수준 높은 과학 집단의 양성과 학문간 시각들의 통합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 샌타페이 연구소는 다양한 분야 가운데서도 몇 가지의 주요 연구 주제-네트워크의 동역학, 견고함, 진화 동역학, 경제와 사회 상호작용, 인간언어진화-를 중심으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사실 샌타페이 연구소의 연구방향은 변화무쌍하므로 정적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별로 의미없고 몇 가지 대표적 예만 받아들이면 되겠다. 이러한 연구주제들은 겹치기도하고 한 사람이 여러 과제에 참여하기도 한다.
네트워크 동역학에서는 우리 주위에서 인터넷, 교통망, 생체반응계 등 그물망이 흔히 관찰된다는 것에 주목한다. 우리는 점차적으로 일상생활속에서 사회적, 경제적 상호작용의 네트워크를 통해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지만 우리의 네트워크에 대한 이해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네트워크는 간단하게 일종의 점들의 집합을 서로 선으로 연결한 그래프로 표시할 수 있다. 점은 사람, 선은 여러 가지 친밀도, 동맹, 협동, 공동연구 등의 정도를 나타낸다. 생체반응계의 경우 점은 반응 화학물질, 연선은 화학반응에 대응된다. 뇌의 경우 점은 신경소자, 선은 신경 시냅스에 의한 연결에 대응된다. 또한 인터넷의 경우에는 점은 각 컴퓨터, 선은 인터넷 연결망을 나타낸다. 월드와이드웹 (WWW) 의 경우에는 점은 웹페이지, 선은 페이지간 링크를 나타낸다. 그 위에서의 동역학은 많은 적응 인자들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현되는 결과이다. 이러한 네트워크가 어떻게 자라나고 그 형태를 형성하는지, 그 기능은 어떻게 구현되는지, 그리고 네트워크 기능의 마비는 어떻게 야기될 수 있는지를 복잡계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복잡계의 견고성 (robustness)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스스로 조립하거나 고쳐나가는 계의 경우 외부의 개입, 요동, 잡음 등이 있을 때 작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생태계나 사회계의 경우 견고성의 문제가 나타난다. 즉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다양성이 있어야 하며, 환경 속에서의 세포내 과정이 요동 속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며, 사회조직이 기근, 전쟁, 사회 정책의 변화에 대해 안정성을 어떻게 유지해나가는가 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견고성의 이해는 궁극적으로 자연계나 공학계에서 산업 발전에 따른 생태계의 유지가능성의 문제에까지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선 견고성에 대한 의미를 먼저 정확하게 새겨야 할 것이다. 따라서 샌타페이 연구소에서는 견고성이 어떻게 안정성, 지속성, 회복성 들과 다른지, 견고성의 근원은 무엇인지, 생체 개체들이 견고성의 진화를 보여주는지, 견고성을 어떻게 기술하는지, 견고성이 환경 속에서의 진화가능성, 적응성 등에 어떠한 결과를 주는지 등에 대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경제사회 상호작용 문제에서는 환경 속의 지속성을 추구하기 위하여 협력하는 그룹들의 능력에 대한 사회경제학적 불평등의 역할을 연구하고 있다. 빈곤의 덫 연구에서는 같은 조건의 개인이 경제적, 문화적, 기술적, 기관적 이유 때문에 핍박받거나 다른 초기 조건의 결과로 다양한 경제적 상태로 흘러가는 것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부모의 부와 자식의 경제적 성공에 의한 수입이 세대간에 전달되는 기작을 이해하고 경제 기회의 평등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방향의 설정에 미치는 영향, 세계화에 따른 자원, 자본, 정보의 자유 이전이 부의 분배 정책에 미치는 영향 등도 연구되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 공공정책 토론의 기틀을 마련하거나 학계 연구 방향을 재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샌타페이 연구소와 지적 흥분과 정책적 연관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사회과학의 주요 그룹과의 관계를 강화해나갈 수 있다.
샌타페이 연구소는 위의 연구활동과 아울러 다양한 사람과 그룹을 대상으로 하여 연구 접근법을 전파하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위하여 과학 저널의 출판뿐 아니라, 박사후 연구원, 국제 연구협력, 외부 연구원 제도, 중단기 학제간 대학원생 및 학부생 연구기획, 복잡계 여름학교, 일반 대중 강연 등을 추진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수의 대학 교수들이 샌타페이 연구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이들이 미국 대학에서 복잡계과학 프로그램들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의 미네소타 대학교, 위스콘신 대학교, 미시간 대학교, 듀크 대학교, 카네기-멜론 대학교, 뉴멕시코 대학교, 일리노이 대학교, 아리조나 대학교, 스웨덴의 샬머스 대학교 등이 샌타페이 연구소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교수진들에 의해 개발된 복잡계 관련 교과목을 개설하고 있다. 또한 연구소는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유럽 등지에서도 많은 방문자들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복잡계에 관련된 세계 각국 연구소들의 책임자간 모임을 주선하는 등 국제화에 대한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연구소의 부즈넷 (Buznet) 프로그램은 55 개 관련 기업, 비영리 기관, 정부 연구 그룹을 위한 프로그램으로서 회원들에게 주요 정보와 첨단 연구 결과에 대해 우선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센터는 핵심 연구를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할 수 있으므로 상호 도움이 된다. 또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과학의 새 방향 정립과 연구 결과의 유포 및 응용이라는 두 가지 사명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샌타페이 연구소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변화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근본적인 촉매역할을 수행하였다. 경제학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전통적인 신고전주의의 틀을 넘어 샌타페이식의 진화경제학을 만들기 위한 작업의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물론 샌타페이 연구소의 관점에서 볼 때 경제학의 대변환에 대한 촉매 역할은 전 과학분야에서 복잡성 혁명을 일으키는 촉매 역할에 비한다면 극히 작은 일부라 할 수 있다. 아직 샌타페이 연구소 실험의 평가는 이르다고도 할 수 있으나 초기 연구소의 핵심인물들은 연구소가 올바른 주제와 방향을 선택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복잡성의 혁명은 환원론적 과학을 시스템적인 것으로 바꾸어가고 있다. 복잡하고 생명체 같은 행동은 아래에서 위로 전개되는 간단한 규칙들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이다.
샌타페이 연구소는 단순한 하나의 정책사고집단은 아니다. 샌타페이 연구소의 역할은 복잡한 계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도구들을 창출하는데 있으며 과학의 새로운 흐름을 예견하고 선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복잡성의 과학은 근본적으로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생태학, 공학, 경제학, 경영학 등 그 적용범위가 매우 넓고, 학제적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분야로서 다양한 학제간 분야와 계산적 도구들의 합성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1980 년대 초 복잡계과학의 태동기에 자유롭고 새로운 연구를 지향하는 샌타페이 연구소에서 다양한 배경의 학자들이 모여 학제간 협동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이러한 복잡계과학의 도도한 흐름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되고 온몸으로 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이제 샌타페이 연구소의 촉매 역할에 힘입어 많은 젊은 복잡성과학의 전도사들이 양성되고 다양한 복잡성의 방법론들은 거의 모든 과학기술분야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록펠러 대학 교수로서 저명한 과학평론가였던 하인스 페이겔스는 무한한 응용가능성을 가진 복잡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21 세기의 세계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약 20 여 년 전 일단의 복잡계 선구자에 의해 샌타페이의 작은 연구소에서 시작된 실험이 어디까지 흘러갈지 정말 흥미진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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