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 논리
논리와 사고 : 소흥렬,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79, page 372 ~ 381.
무관심한 부부보다는 싸우는 부부가 낫다고 한다. 그러나 무관심해지기 위해 싸우는 부부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싸움을 위한 싸움은 말싸움이 되기 쉽고, 말로써 공격하는 데는 자기 모순적이거나 자가당착적인 말이 등장하게 된다. 자기 스스로 한 말을 부정해 버리는 자기 모순적인 말을 함으로써 상대방을 분개하게 하는 방법이다. 동일한 사실에 대해서 긍정하는 말과 부정하는 말을 하는 모순은 형식 논리적 모순이기 때문에 그런 말로 공격을 받으면 누구나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형식 논리적 모순, 즉 p ∧ ~p 로 표현되는 모순은 내용에 상관 없이 형식상, 외연상, 또는 진리값의 관계만으로도 부정이 될 수 있는 자가당착이다. 하지만 일상 언어로 표현되는 모순을 이처럼 외연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가 될 수 있다. 일상 언어의 명제를 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 논리에서는 '모순' 의 개념이 '반대' 의 개념과 구별되어 정의됨으로써 그 의미가 좀 복잡하게 된다.
고전 논리의 '대당 관계' 는 전체 긍정인 "모든 S 는 P 이다" 와 부분 부정인 "어떤 S 는 P 가 아니다" 의 관계를 모순 관계로 규정한다. 모순 관계의 이 두 명제는 동시에 진리가 될 수도 없고, 동시에 거짓이 될 수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전체 긍정인 "모든 S 는 P 이다" 와 전체 부정인 "어느 S 도 P 가 아니다" 의 관계는 '반대' 관계라고 한다. 반대 관계의 두 명제는 동시에 진리가 될 수는 없으나, 동시에 거짓이 될 수는 있다는 뜻이다. 체계화된 형식 논리, 즉 기호 논리에서의 '모순 과 고전 논리에서의 '모순' 이 외연상 동일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다. 다만, '모순' 의 내포적 의미를 고려하게 되면 이러한 형식적 · 외연적 의미의 한계성이 드러난다.
한국전쟁 때 있었을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자. 한 마을의 주민들이 인민군을 위한 부역에 참가했었다는 것을 이유로 마을 사람들을 처형하겠다는 주장과 그런 주장에 반대하는 주장을 아래와 같이 명제화해 볼 수 있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부역에 참가했다. (전체
긍정)
동네 사람들 일부는 부역에 참가하지 않았다. (부분 부정)
동네
사람들 일부는 부역에 참가했다. (부분 긍정)
동네 사람들 아무도 부역에
참가하지 않았다. (전체 부정)
여기서 만일 전체 긍정의 명제를 이유로 마을 주민 모두를 처형하겠다는 주장이 문제가 된다면, 나머지 세 명제들에 근거한 주장들은 모두 반대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된다. 동네 사람들 중에서 다만 일부분이라도 부역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여 처형을 면하도록 하자는 입장과, 전체가 아닌 일부분의 참가자들에 대한 희생만을 허용하자는 입장, 그리고 자발적으로 부역에 참가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면서 아무도 처형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 모두 반대의 주장이 된다.
또 다른 방법으로 대립되는 주장을 구별한다면, 전체 처형이든 부분 처형이든 처형 쪽으로 생각하는 입장과 전체 구제든 부분 구제든 구제하는 쪽으로 생각하는 입장을 대립시켜 볼 수 있다. 이처럼 '처형이냐' 아니면 '구제냐' 라는 두 입장이 맞서게 되면, '전체냐' 아니면 '부분이냐' 라는 외연적 구별 문제만이 아닌 처형의 이유에 대한 문제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외연적 모순이 내포적 모순의 문제로 확대되고 심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변증 논리적 모순은 내포적 모순이다. 설로 관심이 있는 어떤 문제 상황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서로 갈등을 갖게 하는 원인이나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마음 속에서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생각의 관계로 나타날 수도 있다. 사랑과 증오의 모순, 믿음과 의심의 모순, 낙관과 비관의 모순, 타협과 저항의 모순 등이 그런 내면적 갈등이며 모순이다.
'변증법적 모순' 으로 알려진 변증 논리적 모순은 본래 사회 현상에서의 그러한 갈등과 대립을 지칭하기 위한 개념이었다.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 간의 정치적 갈등,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간의 이념적 갈등, 원주민과 이주민 간의 지역적 갈등, 이슬람교와 유대교 간의 종교적 갈등 등이 그런 사회적 갈등이다. 변증법적 모순을 내포하는 현상이다.
변증법적 모순은 해결을 요구하는 갈등 상태 또는 대립 관계를 의미한다. 무관심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변화를 불가피하게 하는 유동적인 상태이므로 대립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해소될 수 있느냐가 관심 문제로 남는다. 변증법적 모순은 그런 대립 관계가 발전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물론 모든 발전적 변화가 변증법적 모순의 관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아니다. 변증법적 모순의 단계를 통한 발전은 특이한 한 가지 변화의 길이라고 해야 할 것이며, 특히 인류 사회의 발전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변증법은 역사의 논리로 이해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변증법적 모순을 필요로 하는 변화 과정이라면 그런 모순을 받아들이고 표현해주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연인들이나 부부 간의 사랑이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도 변증법적 모순의 관계가 통과 의례처럼 불가피할 수 있다. 개인의 내면 세계에 숨어 있는 변증법적 모순이나, 한 사회의 역사와 문화 속에 잠재되어 있는 변증법적 모순도 불가피한 통과 과정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갈등이나 대립을 무조건 회피하려는 생각은 그러한 변증 논리적 필요성을 거부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이 평화로운 방법으로, 조화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해결되어 갈 수 있으리라는 평화주의적 사고나 비폭력주의적 사고는 역사적 현실, 역사적 발전이 불가피하게 하는 변증법적 모순을 간과하는 주장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불필요한 갈등이나 대립, 또는 자발적 변화와는 무관한 소모적 대결 같은 것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변증법적 모순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갈등이나 대립을 어떻게 식별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인간의 사유 능력에 관련된 한계성의 문제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변증 논리적 불완전성이 될 수도 있다.
변증법적 모순의 관계가 갈등과 대결의 관계를 해소하면서 '종합' 되는 것을 '변증법적 지양 (止揚)' 이라고 한다. 변증법적 종합이 갖는 특수한 의미를 표현하기 위한 개념이 '지양' 이다. 영어에서도 synthesis 라는 일반 개념으로는 변증법적 종합의 의미를 표현할 수 없으므로 독일어의 aufheben 을 그대로 쓴다. '지양' 은 '변증법적 지양' 을 뜻하는 특수 용어로 쓰이게 되었지만, 일반 개념으로도 사용될 수 있으므로 구별이 필요할 때는 '변증법적 지양' 으로 표현해 주어야 한다.
'종합' 은 '지양' 보다 더 넓은 의미로 쓰이는 일반 개념이므로 '변증법적 종합' 으로 제한해 줄 필요가 있다. 예컨대, 열띤 토론의 과정 끝에 사회자가 그 날의 토론 내용을 종합해서 정리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발언된 내용을 요약하여 나열해 버리는 종합을 의미할 때가 많다. 그런데 열띤 토론이 어떤 합의점에 이르지 못하고 끝났다면 단순히 그 내용을 요약 정리하는 종합은 종합이 될 수 없다. 요약하는 것조차 사실상 토의 내용이 중요한 부분을 무시해 버리는 무례함이 될 수 있다. 하물며, 토론에서 갈등과 대립의 의견들이 팽팽하게 맞서 있을 경우, 사회자가 그것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회자 자신의 일방적 견해를 말함으로써 그것과 반대 의견을 주장했던 참가자들을 실망하게 하는 것이다. 만일 사회자에 의한 요약 정리가 토론 내용의 종합이 될 수 있다면, 그런 토론은 토론으로서 별 의미가 없는 의견들의 난발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반면, 변증법적 종합이 필요한 내용의 토론이라면, 토론 과정에서 이루어 내지 못한 지양적 종합을 사회자가 종합하고자 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 한 가지 '종합' 의 의미 중에서 변증법적 종합과 구별되어야 할 것은 '절충적 종합' 이다. 절충적 종합은 평면적 종합이다. 대립 관계를 드러내는 요인들을 서로 양보하고 제거함으로써 대립 관계를 해소시키는 방법이다. 가격 흥정이 그런 절충적 종합 또는 절충적 타협을 위한 방법이다. 중매 결혼이나 계약 결혼도 절충적 종합으로 견해의 차이를 없애고 합의점에 이르게 하는 방법이다.
종교, 예술, 문학, 철학 등의 문화 영역에서는 창의성이나 독자성을 중요시하므로 변증법적 모순의 문제가 존재할 경우 변증법적 지양에 의한 발전적 · 창조적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그런데 절충적 종합의 방법으로 변증법적 모순의 관계를 처리해 버리고자 할 때 그것은 '절충주의' 라는 비방을 받게 된다. 절충주의적 방법은 문제를 발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대결이나 갈등의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현실적 타협안을 제시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립적인 종교들의 교리 내용을 절충하여 새로운 종교의 교리를 구성한다는 것은 대립 관계에 있는 종교들 어느 쪽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한다.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갈등을 절충주의로 해결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의 종교 개혁은 모두 동일 종교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변증법적 지양이었다. 기독교의 역사 안에서 개신교를 탄생시킨 종교 개혁은 가톨릭교 자체 내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변증법적 지양의 방법이었다. 그러면서 가톨릭교와 개신교의 공존은 또다른 변증법적 지양을 필요로 하는 변증법적 모순의 관계를 드러내는 결과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새로운 변증법적 지양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서 필요한 역사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불교와 기독교의 관계도 대립적이다. 변증법적 모순의 관계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불교와 기독교가 변증법적으로 종합될 수 있을까? 어쩌면 이것은 불교 역사 자체 내에서도 여러 차례의 변증법적 지양의 발전이 일어나고, 또 기독교 역사 자체 내에서도 그와 같은 변증법적 지양의 발전이 일어난 이후에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변증법적 지양이 가능하게 되기 전에 불교와 기독교를 절충주의적 방법으로 종합하고자 하는 시도는 무의미할 것이다.
건축 양식의 절충에 대해서도 비슷한 비판이 가능하다. 포스트모더니즘 (post - modernism) 의 허용주의는 절충주의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술적 창조 의지를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건축 양식의 역사도 발전적인 창조적 양식의 출현을 필요로 하나. 물론 변증법적 모순에 의한 계기가 아닌 다른 창조적 계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변증법적 모순으로 제시된 계기가 명확한데도 그것을 절충주의적 방법으로 처리해 버리는 것은 문제가 된다. 예컨대, 건축 양식에서의 동양의 전통과 서양의 전통이 오늘의 문화, 역사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분명히 변증법적 지양을 위한 역사적 계기로 이해될 수 있다.
절충적 종합은 오늘의 우리 교육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대학생들이 제출하는 학기 논문이 짜집기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정보화 시대가 가져온 자료 구입의 용이함이 문제의 원인이다. 변증법적 문제 제기에서부터 변증법적 문제 해결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과정이 인터넷의 자료를 짜집기해서 처리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해서 문제 제시를 하고, 문제 해결을 해보는 사유 과정이 완전히 배제될 수 있다.
수학적 계산을 스스로 해봄으로써 그 즐거움을, 그 성취감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듯, 변증법적 모순의 관계를 스스로 인식하면서 변증법적 종합으로 문제를 풀어 가는 체험을 어릴 때부터 해보게 하는 교육은 중요하다. 역사적 존재로서의 우리 인간이 역사 창조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사유 교육에서 필수적인 것이다. 자신의 사유 속에서 변증법적 지양을 체험하게 하고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변증법은 역사 발전의 논리이다. 그러나 역사의 논리가 변증법으로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변화를 중층적 차원 관계를 통해서 이해한다면, 우선 거기에는 물리적 변화의 차원이 기저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대폭발 이후의 우주 역사는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역사의 기본이 되고 있다는 뜻이며, 그런 우주의 역사에는 분명히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는 연역 논리적 역사의 부분도 있다. 그뿐이랴, 자연의 역사는 귀납논리, 유비 논리 및 변증 논리가 적용되는 다양한 측면들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도 변증법을 역사의 논리라고 하는 까닭은 인간이 역사에서 특히 변증법적 갈등이나 대결이 역사 이해와 역사 발전에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변증법은 역사 발전의 과정을 '정 - 반 - 합 (正-反-合)' 으로 도식화하여 설명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역사의 논리' 로 인식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도식화에는 몇 가지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 먼저, 변증법적 모순의 관계를 '정 (政)' 과 '반 (反)', 또는 '정론 (正論)' 과 '반론 (反論)' 으로 개념화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정론' 은 이미 '옳은 이론' 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에 대한 '반론' 은 부정적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변증법적 모순 관계는 어느 한쪽이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일 어느 한쪽이 옳다면 변증법적 종합이 필요할 수 없다. 대등한 주장이 가능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갈등과 대립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 변증법적 모순의 두 가지 입장들이다.
'정' 과 '반' 이라는 개념 대신 '좌경' 과 '우경' 으로 표현해 보는 것도 좋다. '좌경' 과 '우경' 은 이제 '진보' 와 '보수' 를 뜻할 수도 있으며, 다른 여러 가지 갈등과 대립의 관계를 표현하는 개념들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좌경 주류에 대한 우경 대안이 가능하며, 우경 주류에 대한 좌경 대안이 가능하다. 그러한 주류와 대안 간의 변증법적 모순 관계가 종합적으로 지양되는 것이 역사의 발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정 - 반 - 합' 의 도식화가 갖는 또 한 가지 문제는 변증법적 종합의 방법이 한 가지로 단순화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균형적인 종합만을 생각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발전은 단 한 번의 변증법적 종합으로 완전한 균형을 이루는 종합을 성취해 내는 것이 아니다. 좌경과 우경의 대립은 여러 가지 상황적 조건들 때문에, 예컨대 좌경 쪽이 더 많은 것을 차지하는 종합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 후에 다시 좌경 주류와 우경 대안의 갈등이 일어나고, 새로운 차원의 지양적 종합이 이루어질 때는 우경 쪽이 더 많은 것을 차지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완전한 균형의 종합은 이러한 변증법적 역사의 최종 단계를 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 최종 단계의 종합이 역사 속에서 실현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역사는 좌경적 종합과 우경적 종합을 번갈아 가면서 점차적으로, 단계적으로 최종적 종합을 지향하고 있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역사의 진보에는 '역사의 기적' 으로 인식되는 변화가 있다. 예상할 수 없었던 변화라는 뜻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를 의심하게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명확한 설명을 허용하지 않는 복합적 요인의 작용 때문이라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자연적 기적' 이 아닌 '역사적 기적' 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거기에는 인간적인 요인이 작용함으로써 일어난 변화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적 실천이 작용했지만 인간의 힘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었으므로 '역사의 기적' 이 되는 것이다.
'역사의 기적' 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적 요인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변증법적 사유에서 기인되는 것이다. 주류적이고 주도적인 경향에 대해 대안적인 사유를 해보는 것이다. 지배적인 힘에 대해서 대안적인 힘을 형성시켜 보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불리한 입장을 유리한 입장으로 바꾸어 보고자 하는 적극적 사유를 해보는 것이다.
'2002 월드컵의 신화' 라고 하는 역사의 기적은 경기장을 갈 수 없는 서민들을 위해 '거리의 응원' 을 생각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붉은 악마' 로 상징화된 경기장 안과 밖의 응원단은 그야말로 기적적인 현상이 되었다. 물론 거리의 응원을 가능하게 한 조건에는 기술적 · 재정적 · 조직적 지원 등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붉은 악마' 의 응원을 상승적으로 지속할 수 있게 하는 데는 경기장 안의 우리 선수들이 보여 준 잠재 능력과 그들의 잠재 능력을 실현시킬 수 있었던 히딩크 감독의 지도 능력과 전술 전략의 힘이 있었다.
제 16 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도 '역사의 기적' 으로 볼 수 있다. 투표를 몇 시간 앞둔 시점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사건이 터져 버렸던 것이다. 아마 이회창 후보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게 하는 작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위기 상황의 불리한 조건을 오히려 유리한 조건으로 역전시키고자 하는 발상이 노무현 후보 지지자들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붉은 악마' 로서의 체험이 기억에 생생했던 젊은이들의 발상이었으므로 '역사의 기적' 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그 해에 일어난 또 한 가지 '역사의 기적' 은 '촛불 시위' 였다. 여자 중학생 두 사람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을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는 사고로 돌려버리려던 반역사적 행위에 대한 항의를 표현한 시위였다. 한 학생이 인터넷으로 제안한 촛불 시위가 군중의 시위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우리 정치와 외교에 새로운 힘의 등장으로 기억될 수 있게 되었다.
전길남 교수는 우리 나라 '인터넷의 대부' 답게 2002 년을 '우리 나라 인터넷의 원년' 이라고 했다. 1982 년에 청음으로 우리 나라에 인터넷이 도입된 이후 만 20 년 만에 이루어진 역사적 변화라고 했다. 드디어 인터넷의 힘이 우리 역사 속에서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전길남 교수가 언급한 인터넷의 역사적 기능 중에는 '2002 월드컵의 신화' 와 '제 16 대 대통령 선거의 기적' 그리고 '촛불 시위' 가 포함되었다.
인터넷은 인간의 대행자 (agent) 기능을 하는 컴퓨터의 힘을 의미한다. 그런데, 인터넷이 역사적 기적의 도구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은 역시 인간의 역사적 사유이다. 변증법적 사유가 중요시되는 역사적 사유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역사의 대행자' 라고 한다. 인간의 역사를 프로그램된 역사로 보느냐, 하느님의 역사로 보느냐는 문제로 남아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인간이 주도적으로, 창조적으로 참여하고 실천하는 역사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역사적 실천에서 중요한 것은 변증법적 사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