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납의 귀납논리
고려대 철학과 강사 전영삼
귀납논리와 과학철학 : 이초식 외 지음, 철학과현실사, 2000, Page 79~103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긴 하나, 경험 (experience) 은 과학의 성립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세계를 탐구하여 지식을 얻는데 있어 경험만큼 객관적 요소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과학이 세계를 임의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석을 하든 세계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 무엇인가가 있게 마련이다. 궁극에 있어 그것에 주목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초월적인 형이상학의 상대성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 경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 (learning from experience) 는 점은 귀납적 방법의 근본적인 전제이다. 그러므로 근대 경험과학의 발흥기에 베이컨 (F. Bacon, 1561 ~ 1626) 이 귀납법 (induction) 을 중시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한 보일 (R. Boyle, 1627 ~ 91) 이나 후크 (R. Hooke, 1635 ~ 1702) 와 같은 17 세기의 실험 과학자들이 베이컨의 기본 생각을 적극 옹호하였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현대에 들어와 카르납 (R. Carnap, 1891 ~ 1970) 의 귀납논리 (inductive logic) 는, 그것이 하나의 논리인 한, 어디까지나 주어진 추론에 대한 평가를 포함하고 있다. 이점은 특히 카르납 자신이 강조한 바 있는데, 귀납논리는 자칫 귀납의 방법론 (methodology of induction) 과 혼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이컨이 귀납법을 중시했을 때, 그때의 초점은 귀납의 의의와 그 방법론에 놓여 있었다. 후자의 경우 문제는, 주어진 전제들로부터 어떻게 그 내용을 넘어서는 결론을 올바르게 이끌어낼 수 있느냐에 관한 방법의 문제이다. 이러한 관심의 노선은 베이컨 이후 영국의 훼웰 (W. Whewell, 1794 ~ 1866) 이나 허셸 (J. F. W. Hershel, 1792 ~ 1871), 그리고 밀 (J. S. Mill, 1806 ~ 73) 에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정한 방식에 따라 추리를 행하는 일과 그러한 추리의 정당성을 문제삼는 일은 별개의 문제이다. 후자의 문제는 오히려 밀 이전에 흄 (D. Hume, 1711 ~ 76) 에 의해 제기된바 있으며, 이미 잘 알려진 대로 그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답을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역사적 맥락으로부터 볼 때, 카르납의 귀납논리가 안고 있는 과제는, 한편으로는 귀납의 방법론이 아닌 귀납논리 그 자체를 수립하는 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흄에 의한 부정적 결론을 극복하는 일이다. 오늘날 카르납의 귀납논리는, 엄밀한 형식 체계를 기반으로, 현대의 과학철학에 있어 이러한 문제에 관한 한 빼놓을 수 없는 논의의 초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본고에서는 위의 문제를 중심으로 카르납의 귀납논리를 해명하고 옹호하며, 좀더 최근의 발전 방향에 따라 그것의 확장 가능성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어떤 사상 (event) 의 확률을 결정함에 있어, 우리는 예컨대 일정하게 주어진 단지로부터 무엇인가를 꺼내는 시행 (trial) 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확률 결정에 있어 이와 같이 정형화된 상황을 일컬어 흔히 확률의 '단지 모델' (urn model) 이라 부르고 있다. 카르납의 귀납논리에 대한 해명은 이러한 단지 모델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이제 주어진 어느 단지로부터 공 하나씩을 꺼내되, 꺼낸 공은 다시 단지 속으로 되돌린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단지 속의 공들은 오직 검은색 아니면 흰색 둘 중의 하나로, 그 색깔 이외에는 모든 조건이 완전히 동일하여, 그 어느 하나가 추출될 가능성이 모두 동일한 것으로 가정한다.
이러한 가정하에서 우리가 안게 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예컨대 주어진 단지로부터 첫번째 및 두번째 공 모두가 검은색임을 알았을 때, 세번째 추출될 공 역시 검은색일 확률은 얼마인가?
예로 든 지금의 상황은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함축하고 있다. 먼저, 지금의 상황은 적어도 연역적인 것은 아니다. 첫번째와 두번째공이 검은색이었다는 사실로부터 세번째 공 역시 검은색이라는 사실이 논리적으로 함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상황은 비연역적이라는 관점에서, 넓은 의미로 볼 때, 귀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서언' 에서도 주의했듯, 지금의 상황은 첫번째와 두번째 공이 검은색이었다는 사실로부터 세번째 공 역시 검은 색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그러한 것을 결론으로 이끌어내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렇게 주어진 결론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증거적 사실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주어진 증거가 주어진 결론을 뒷받침하는 이른바 '증거적 지지도' (measure of evidential support) 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카르납은 자신의 귀납논리에서 제시할, 증거와 결론 사이의 관계에 대한 평가치를 '확증도' (degree of confirmation) 라 불렀다.
증거와 결론 사이의
이와 같은 관계는 그러나 엄밀히 말해 사실 (fact) 사이의 관계는 아니다. 그것은
주어진 사실에 관한 문장, 언명, 명제들 사이의 관계이다. 카르납은 그의 초기에
이러한 관계를 문장들 사이의 관계로 설정한 바 있다. 그러므로 엄밀한 논리 체계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잘 짜여진 언어 체계가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안되었다.
카르납은 이를 위해 먼저 유한개의 일항 원초 술어 (monadic primitive predicate)
들을 지닌 단순한 언어 체계로부터 시작하였다. 일정한 대상 영역의 개체들을 가리키는
개체 상항 (individual constant) 들은 유한개일 수도 있고 무한개일 수도 있다.
예컨대 1 개의 일항 원초 술어와 3 개의 개체 상항들을 지닌 언어 체계를 카르납은
'
' 와 같이 표현하였다.
이제 위에서 제시한 우리의 문제 상황과 방금의 용어들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카르납 식의 언어 체계를 적용해, 그것을 일정한 문장으로 바꿔보기로 하자.
먼저 앞서의 한 단지 속에 든 검은색 공의 검은색을 원초 속성으로 삼아, 그것에 대한 원초 술어를 'P' 로 나타내기로 해보자. 이와 같은 술어를 '원초 술어' 라 부르는 까닭은, 해당 언어 체계 내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속성들을 그러한 원초 술어들의 적절한 결합만으로 모두 표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문제에 있어서는 검은색을 술어 'P' 로 나타낼 때, 흰색은 결합사 '~' (not) 을 이용해 '~P' 로 나타낼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단지 1 개의 술어 'P' 만으로 충분하다. '일항 술어' 란, 그 술어가 대상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와 같은 대상의 한 속성을 나타내는 술어라는 의미이다.
지금의 문제에 있어
개체 상항은 각각의 공을 나타내므로 이는 모두 3 개로서, 여기서는 이를 각기 a,
b, c 로 나타내 보기로 하자. 그러면
의 언어 체계하에서, 문제의 상황이 보여주는 증거와 결론을 논리적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이 가능하다. 이러한 시도의 기반은 이른바 '상태 기술' (state-description)
에 놓여 있다.
우선 하나의 개체 상항과
하나의 원초 술어가 결합되어 이루어지는 문장을 '원자 문장' (atomic sentence)
이라 해보자. 예컨대 'Pa' 와 같은 형태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원자 문장과, 그것의
부정, 예컨대 '~Pa' 를 논리적 연언 (conjunction) 으로 결합시킬 때, 해당 언어
체계 내에서 표현 가능한 모든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고, 이를 각기 '상태 기술'
이라 부른다. 이로써 주어진 언어 체계 내에서 해당 대상 영역 가운데 가능한 모든
경우에 대한 낱낱의 완전한 기술이 가능케 되는 셈이다. 위와 같은 언어 체계
에서라면 다음과 같은 모두 8 개의 상태 기술이 가능하다.
|
(1) Pa.Pb.Pc (2) ~Pa.Pb.Pc (3) Pa.~Pb.Pc (4) Pa.Pb.~Pc |
(5) ~Pa.~Pb.Pc (6) ~Pa.Pb.~Pc (7) Pa.~Pb.~Pc (8) ~Pa.~Pb.~Pc |
우리의 문제 상황을 위의 여덟 가지 상태 기술과 비교해 볼 때, 첫번째와 두번째 공이 모두 검은색이며, 세번째 공 역시 검은색일 경우는 위의 상태 기술 (1) 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이로써 하나의 사실적 사태를 일정한 언어 체계로써 체계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가능케 된다. 따라서 카르납의 초기 귀납논리에 있어 상태 기술은 그의 귀납 논리를 엄밀한 형식으로 체계화하는 데 있어 초석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 기술에 대해 우리는 얼마의 확률치를 부여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다음에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상태 기술들에 대해 확률치를 부여하는 방법 중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단순한 한 가지는, 각각의 상태 기술에 대해 모두 동일한 확률치를 부여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앞절의 우리 예에서는 그 값들이 각기 8 분의 1 이 될 것이다. 그러면 증거 문장 e 를 기반으로 한 가설 문장 h 의 확증도 c(h, e) 는 하나의 조건부 확률 (conditional probability) 로 이해해, 그 값을 다음과 같이 구할 수 있다 [아래에서 함수 m 은 주어진 상태 기술에 대해 일정한 확률을 부여하는 일종의 측도 함수 (measure function) 로서, 조건 없는 확률 함수로 생각할 수 있다].
(1)
이 경우 원리상 1/2 이라는 값은 주어진 단지로부터 아무리 많은 검은색 공이 증거로서 추출되었다 할지라도 변함이 없다. 이러한 결과는 경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귀납의 관점에서는 치명적이다. 지금의 방법이 이러한 결점을 안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1/8 이라는 값이 단지 주어진 언어 체계로부터 아프리오리 (a priori) 하게 주어졌을 뿐, 경험적인 요소는 전혀 고려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경험적인 요소를 개입시킬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주어진 표본, 즉 첫번째와 두번째의 공 2 개 중 검은색 공의 개수를 세어, 그 비를 확증도 c(h, e) 에 도입하는 방식이다. 지금의 경우 그것은 2/2 = 1 로서, 앞절의 상태 기술 (1) 에 대해 1 의 확률값을 부여함을 뜻한다. 소위 '직입률' (straight rule) 이라 부르는 지금의 이 방법은, 물론 경험적 요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하는 점에서는 바람직하나, 반면 전적으로 경험적 요소에만 의존함으로써 오히려 확률적으로 반직관적인 결과에 이름을 알 수 있다. 단지 크기 2 의 표본에 의존해, 다음에 추출될 제 3 의 공의 색깔 역시 확실히 검은 색일 것이라 믿는 일은 직관적으로 부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카르납은 주어진 언어 체계로부터 연원하는 논리적 요소와 경험적 표본으로부터 연원하는 경험적 요소 모두를 고려하는 확증도 c(h, e) 를 고려하였으나, 이러한 c-함수는 무한히 존재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는 간략히 다음과 같이 보일 수 있다.
먼저 상태 기술을 구성할
때와 유사하게 어느 한 언어 체계 내의 원초 술어들에 대해서도 그 가능한 결합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때 연언으로 결합된 원초 술어 및 그것의 부정들 각각을
하나의 'Q-술어' (Q-predicate) 라 부른다. 예컨대 앞서의
에 있어 원초 술어는 오직 'P' 하나뿐이므로, 가능한 Q-술어는 오직 21
= 2 가지 뿐이다. 즉 'Q1' (P) 과 'Q2' (~P) 의 두 가지이다.
따라서 만일 이러한 Q-술어를 이용해 앞절의 상태 기술 (1) 바꾸어 표현한다면, 'Q1a.Q2b.Q1c'
와 같은 식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식으로 한다면
임의의 성질에 관해서도 결국 Q-술어들의 선언 (disjunction) 으로 표현하는 일이
가능한데, 이때 포함된 Q-술어들의 개수를 그 성질의 '(논리적) 술어폭' ([logical]
width) 이라 부른다. 만일 주어진 언어 체계 내에서 나타날 수 있는 총 Q-술어들의
개수를
라 하면, 어떤 임의의 성질에 대한 술어폭
와의 비
를 구하는 일이 가능하고, 이것이 바로 카르납이 고려하는 논리적 요소이다.
주어진 언어 체계 내에서 문제의 개체가 지닌 술어의 비중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에 따른다면, 위의 식 (1) 에서 얻어진 1/2 의 값은 결국
만을 고려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이제 크기 s 의 경험적
표본 중에 성질 M 을 지닌 개체들의 수를
이라 하면,
가 문제의 경험적 요소를 형성해, 위의 논리적 요소와 결합하여, 다음과 같은
c-함수의 연속체 (continuum) 를 구성하게 된다.
(2)
이것은 매개 변수 λ 를 이용한 무한의 연속체이므로, 카르납은 이를 'λ-체계' (λ-system) 라 불렀다.
이 경우, λ-값의 변화에 따른 무한한 c-함수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카르납은 단순히 비이론적인, 즉 실천적 결정의 문제로 보았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작업을 위해 그에 맞는 적절한 하나의 도구를 선택하듯, 무한히 많은 c-함수 중 우리는 자신의 목적에 적합한 하나의 c-함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λ-값이
에 영향을 받는 경우 중 가장 단순한 경우가
인 경우인데, 카르납은 이러한 경우의 c-함수를 특별히 'c*-함수'
라 부르고, 이를 선호한 바 있다. 만일 이러한 c*-함수를 앞절의 상태
기술로써 해명코자 한다면, 그러나 새로운 '구조 기술' (structure-description)
의 개념이 필요하다. 즉 구조가 같은 상태 기술들을 논리적 선언으로 결합한 것을
말한다. 예컨대 앞절의 상태 기술 중 (2), (3), (4) 나 (5), (6), (7) 의 상태 기술들은
단지 그 개체 상항들의 순서만이 바뀌었을 뿐, 그 구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태 기술들을 서로 '동형' (isomorphic) 이라 부르며, 구조
기술이란 이러한 동형의 상태 기술들을 선언으로 결합한 것을 말하는 셈이다. 즉
우리의 예에서 구조 기술은 각기 (1) / (2) ∨ (3) ∨ (4) / (5) ∨ (6) ∨ (7) /
(8) 의 네 가지이다. 이처럼 구조 기술이 확정되면, c*-함수는 먼저 이와
같은 구조 기술 각각에 대해 동일한 확률치 1/4 씩을 부여한 뒤, 구조 기술의 각
선언지에 대해 다시 동일한 확률치를 부여해 m-값을 결정하는 함수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때의 c*(h, e) 의 값은 다음과 같이 구할 수 있다.
(3)
구조 기술을 이용한 지금의 방법이 식 (1) 에서와는 달리 경험으로부터 배운 바를 적절히 반영할 수 있는 이유는, 일단 서로 다른 구조 기술들에 대해 동일한 확률치를 부여함으로써 검은색을 지닌 개체의 개수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경우 구조 기술은 말하자면 검은색을 지닌 공의 개수에 의해 구별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지금의 방법이 직입률의 난점을 피하고, 단순히 경험적인 요소를 넘어 논리적인 요소까지를 고려할 수 있게 되는 측면은, 구조 기술 자체가 이미 주어진 언어 체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점을 지닌 c*-함수를 식 (2) 에 따라 다시 쓰면 다음과 같고, 여기서 이를 이용해 식 (3) 의 결과를 다시금 얻을 수 있다.
(4)
카르납의 λ - 체계에 속하는 c-함수들은 모두 확률의 기본 공리를 따르므로, 이 점에 있어 그것들의 값은 분명 일종의 확률이다. 그러나 단순히 형식적으로 확률의 기본 공리를 만족시킨다는 것과, 그에 따라 주어지는 확률이 어떤 의미인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앞서 2 절에서 언급한 대로 적어도 그의 초기에 카르납은 자신의 c-함수값이 증거가 가설을 지지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자신의 c-함수를 '확증도' 라 부른 이유이다.
그러나 이때 주어진 가설의 성격에 주목한다면, c-함수의 의미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점은 특히 포퍼 (K. R. Popper) 에 의해 강조된 바 있는데, 과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법칙과 이론으로부터의 보편 가설의 확증도는 0 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카르납의 확증도뿐만 아니라, 과학의 보편 가설을 확률에 의해 평가하려는 모든 시도 역시 마찬가지의 운명에 처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보편 가설과 관련한 이와 같은 반론은 포퍼가 귀납주의에 반대하는 좀더 근본적인 입장과 맞물려 있으므로, 여기서 깊이 파고들 수는 없는 형편이다. 다만 논란의 결과만 지적하자면, 카르납 자신의 '확증도' 라는 용어가 함축하고 있던 애초의 의미 중 보편 가설에 대한 증거적 지지도라는 의미는 포기해 버렸다. 대신 그가 적극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한 바는, 자신의 c-함수는 도박에 있어 공정한 투기율 (fair betting quotient) 과 같은 것에 대한 논리적 해명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태도의 변화야말로 그의 귀납논리를 단순히 시간적인 흐름에서가 아니라 그럴 만한 또 다른 명백한 근거에서 초기와 후기로 구별하게 되는 중요 이유이다.
카르납은 그의 후기
한 저작에서 자신의 귀납논리에 대해 명백히 그것은 "귀납적 사고 (inductive
thinking) 에 규칙을 제공하는 하나의 논리적 확률 이론" 임을 밝힌 바 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귀납적 사고' 란 그의 후기에서는 이른바 '의사 결정 이론'
(decision theory) 하에 나타나는 사고를 말한다. 예컨대 어떤 사람 X 가 도박을
한다고 해 보자. 그는 시간 T 에 가능한 여러 행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시간 T 에 가능한 자연의 상태가
임은 알고 있으나, 그 중 어느 것이 실제의 상태인가는 모른다라고 가정해 보자.
이때 만일 X 가 행위
을 취하고, 상태
이 자연의 실제 상태라면, 그 결과가
이라 해보자. 만일 이러한 결과에 대해 X 가 자신에 대한 효용을 평가할 수 있는
효용 함수 (utility function) 를 갖고 있다면, 주어진 시간에 행위
에 대한 X 의 주관적 가치 (subjective value, desirability)
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상태
에 대한 X 의 이른바 '신임도' (degree of credence) 가 주어져야만 한다. X
가, 비록 가능한 상태가 모두 무엇인가는 알고 있으나, 그 중 어느 것이 실제로 나타날
것인가에 관해서는 모르고 있으므로, 행위를 결정해야 하는 지금의 시점에서라면
단지 각각의 상태에 대한 신념만이 문제되기 때문이다. 카르납이 말하는 '귀납적
사고' 가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도박을 하는 X 로서는 상태
이 나타날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 단순히 임의적으로 신념의 정도를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무모한 일이다. 한 가지 합리적인 방안은, 행위를 결정해야
할 시간 T 이전의 경험적 사실을 증거로, 도박을 걸 사항인 상태
을 가설로 삼아 그에 대한 신념도를 결정하는 방법이다. 여기서도 역시 증거와
가설 사이의 관계는 분명 귀납적인 관계이다.
물론 이와 같은 도박에서 적어도 손해를 보지 않고, 나아가 최소한의 이익이나마 얻기 위해서라면 그 신임도라는 것이 방금의 조건 외에 확률의 기본 공리들을 만족시켜야만 한다. 이 점은 형식적 확률을 주관적 신념도로 해석하려는 이른바 '주관적 (또는 개인적) 확률론' (theory of subjective or personal probability) 의 기본 근거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주관적' 이라는 말은 단순히 주관에 따른 '임의적' 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일정한 규범에 따른 한 개인의 '개인적' 이라는 의미이다.
카르납이 말하는 신임도 역시 이상의 의미에서 일종의 주관적 확률이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한 증거와 가설 사이의 관계에 따른 신임도의 결정은 일반적인 주관적 확률론의 범위를 한걸음 넘어선 것이다. 즉 카르납은 신임도에 대해 확률의 기본 공리 외에 다음과 같은 새로운 요건을 추가함으로써 그에 관해 초기의 c-함수 및 m-함수와 동일한 관계를 얻고 있다.
(5)
여기서 'H' 와 같은, C-함수의 각 논항 (argument) 들은 카르납의 후기 귀납논리에 있어서는 초기의 c-함수의 그것과 차이를 보인다. 초기에는 그러한 논항으로 문장이 사용된 반면, 후기에는 그것이 명제 (proposition) 로 대치되었다.
이러한 명제들은 이른바 '모델' (model) 들의 집합에 의해 표현되는데 (여기서의 '모델' 은 앞서 제 2 절에서 '단지 모델' 이라 할 때의 '모델' 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 대략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하나의 개념 체계 (conceptual system) 는 실재하는 대상들, 곧 어떤 개체들과, 그 대상들을 특징짓는 기술적 개념들, 곧 속성들로 이루어진다. 이때 그러한 속성들은 '양상' (modality) 이라 부르는 각기 다른 하나의 '속성족' (family) 으로 분류할 수 있고, 이로써 하나의 모델은 주어진 개념 체계 내의 일정한 속성족에 속한 각각의 속성에 가능한 하나의 개체를 부여함으로써 구성된다. 따라서 가능한 모든 모델들의 집합은 해당 개념 체계 내의 개체와 속성에 관한 가능한 모든 경우를 표현한다.
카르납이 그의 후기에 이와 같은 모델을 도입한 까닭은, 자신의 귀납논리를 좀더 일반화된 수학적 확률 이론이나 이론 통계학과 같은 개념적 장치로써 정식화하기 위함이었다.
위의 (5) 의 요건이
의미하는 바는, 시간
과
사이에 신임도
으로부터
로의 변환은 어떤 희망이나 공포 등과 같은 임의적 감정에 관계없이 오로지 객관적인
증거
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따라 증거가 획득되기 이전의 '최초의
신임 함수'
를 생각할 수 있고, 임의의 가설 H 에 대해 다음을 얻을 수 있다.
(6)
여기서 최종적인
는 결국 X 의 영구적인 성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를 카르납은 '신임 가능 함수'
(credibility function) 라 부르고, 'Cred' 로 표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 경우 '
' 를 'M' 으로, 'Cred' 를 'C' 로 놓으면 다음이 성립하고,
C(H | E) = M(E ∩ H) / M(E) (7)
이는 곧 초기의 c-함수 및 m-함수의 관계와 동일하다.
카르납의 귀납논리가 초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면서 보편 가설에 관한 증거적 지지로서의 확증 개념을 포기한 데 대해 라카토스 (I. Lakatos) 는 이로써 카르납의 귀납논리는 결국 '퇴행적 문제 추이' (degenerating problem-shift) 과정을 밟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후기에 들어 그의 귀납논리는 도박과 같은 상황에서의 합리적 신념에 관한 단순 계산에 그침으로써 과학 철학의 중심 문제와 관련해 기껏해야 지엽적 의의만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보편 가설에 관한 확증 문제만이 과학 철학에서의 중심 문제라면, 이와 같은 라카토스의 비판은 정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오직 그러한 문제만이 과연 중심 문제인가 하는 점은 우리가 다시금 제기해야 할 문제이다. 비록 도박과 같은 상황이 카르납의 후기 귀납논리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상황이긴 하나,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귀납적 사고라는 것은 결코 과학 활동에 있어 지엽적인 것으로 밀려날 수 없다. 1 절 '서언' 에서 언급한 대로 세계에 대한 가설이 궁극에 있어 경험적 사실의 뒷받침을 무시할 수 없는 한, 경험적 증거와 그것을 넘어서는 가설은 내용상 언제나 귀납적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포퍼와 같은 반증주의자들은, 경험적 증거에 의한 보편 가설의 반증 (falsification) 에 의해, 그 양자 사이의 관계는 연역 관계로 충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가설에 대해 이와 같은 관계가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어떤 실재 (entity) - 말하자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천체 - 이 존재를 주장하는 존재 가설에 대해서는 오직 확증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미 주어진 경험적 증거를 넘어 어떤 개별 개체에 대한 가설에 있어 그 양자 사이의 관계에는 결코 연역 논리만으로는 다 포착할 수 없는 측면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 X 가 A 와 B 두 사람에 대해 신체 조건이나 여타 조건 등에 관해 완전히 동일한 정보를 갖고 있는 상태에서, 그들이 10 년 안에 죽으리라는 똑같은 결론을 A, B 각각에 대해 서로 다른 정도로 지지한다고 해 보자. 단순히 연역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와 같은 추론에 하등 잘못이란 있을 수 없다. 전혀 상호 모순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추론이 합리적인가?
이러한 점을 강조하기 위해 카르납은 '연역의 직관' (deductive intuition) 과 대비해 '귀납의 직관' (inductive intuition) 을 제시한 바 있다. 예컨대 연역적 추론의 능력, 즉 의식에 있어 연역적 추리를 행하는 능력이 결여된 어떤 사람이 있다라고 해보자. 이러한 경우 연역적으로 타당한 형식인 '전건 긍정식' 의 타당성을 우리는 그에게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 예컨대 다음의 대화를 보기로 하자. "당신은 방금 비가 내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 "그렇다." "당신은 그 이전에 만일 비가 내린다면 땅이 젖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 "그렇다." 가 그것을 믿어야만 하는가?" 지금의 대화에 있어, 주어진 전제가 참으로 받아들여진다면, 문제의 결론은 그 내용에 있어 전제를 넘어서고 있지 않으므로, 일반 논리상으로는 이와 같은 대화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식론상으로는 이와 같은 대화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식론상으로 이와 같은 전건 긍정식의 타당성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불가분 우리의 직관 능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만일 연역 추론에 관해 이와 같은 연역의 직관을 인정한다면, 이제 우리가 행하는 귀납추론 역시 적어도 인식론상으로는 나름의 귀납의 직관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 물론 귀납추론에 관한 이와 같은 직관의 인정은 귀납추론에 관한 아프리오리즘 (apriorism) 에 빠진다는 비판에 직면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연역추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예컨대 "김 교수의 지금가지의 대부분의 시험 문제가 어려웠다" 라는 전제로부터 (따라서) "그의 다음 시험 문제도 어려울 것이다" 라는 결론에 대한 흄의 회의 역시 귀납의 직관에 의해 극복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바대로, 흄은 방금의 추론과 같은 귀납추론은 순환론에 빠지지 않고는 결코 (연역) 논리적으로 타당할 수 없다고 결론짓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러한 결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단지 '습관' (habit) 에 기인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에게 있어 귀납추론은 논리적 문제가 아닌 심리적 문제로 옮겨간 셈이다. 그러나 흄의 주장대로 위의 결론을 비록 심리적으로 단지 우리의 습관에 의해 지지할 뿐이라 할지라도, 귀납의 직관에 따른다면 우리는 그것을 정당하게 높은 정도로 지지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볼 때, 위와 같이 주어진 전제로부터 (따라서) "그의 다음 시험 문제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결론을 습관에 의해 위의 결론보다 더 높게 지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처럼 대립되는 양결론이 어쩌면 단지 '습관' 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왜 어떤 습관에 대해 우리는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는가? 만일 위의 양결론 중 전자를 후자보다 더 높게 가중치를 부여하는가? 만일 위의 양결론 중 전자를 후자보다 더 높게 지지학 된다면, 이것은 단순히 '습관' 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직관에 따른 것이다.
개별 개체에 대한 가설과 관련한 이상의 논의에 따를 때, 카르납의 후기 귀납논리가 완전히 '확증' 의 개념과 무관한 것도 아니다. 만일 도박꾼 X 가 어떤 명제에 대해 상이한 두 가지 C-함수값을 갖고 있다면, 앞서의 식 (5) 에서의 가정대로 그러한 차이는 오직 주어진 증거들의 차이에 기인하고, 따라서 해당 명제는 C-함수값에 의해 비교되는 정도만큼 증거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카르납의 후기 귀납논리에 있어 사라진 것은 단지 과학적인 보편 가설 자체에 대한 증거적 지지도의 개념일 따름이다. 예컨대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사실에 관한 증거를 기반으로, 그러므로 "모든 까마귀는 검다" 라는 보편 가설에 도박을 걸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일지라도, 모든 까마귀는 아니지만, 적어도 앞으로 발견될 어느 한 개체나, 또는 다음에 관찰될 한마리의 검을 것이라는 가설에 대해서는 높은 지지의 정도로 도박을 거는 일이 가능하다. 사실상 이미 초기에 있어 카르납 자신 이러한 경우들, 즉 이른바 '사례 확증' (instance-confirmation) 이나 '한정된 사례 확증' (qualified-instance confirmation) 의 경우에는 확증도 c-값이 매우 높을 수 잇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한편, 진지한 시도의 결과 반증되지 않은 보편 가설의 사례들은 그 자체 확증의 사례들이 될 수 있다. 오늘날 과학상의 법칙이나 이론들이 그 자체 쉽사리 반증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쉽사리 반증되지 않는 그러한 법칙이나 이론들이 단순히 비합리적인 신념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는 없다. 경험적 증거에 의한 최소한의 평가가 필요하고, 반증되지 않은 그와 같은 보편 가설에 대한 경험적 평가는 귀납적 관계를 구성할 수 있다. 만일 여타 모든 조건이 같다면, 반증되지 않은, 경쟁하는 두 보편 가설에 대한 카르납 식의 사례 확증은 여전히 유효하다.
카르납의 귀납논리는 물론 그 자체 완결된 것은 아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거나 충분히 개발되지 않은 측면이 있고, 일면 그것이 엄밀한 것이기는 하나, 바로 그 때문에 따라오는 제약도 있다. 이에 따라 카르납의 귀납논리를 확장하는 문제를 이 절에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논해 보기로 한다. 첫째 미해결된 부분이나 불충분한 부분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알아보고, 둘째 그의 귀납논리 구성 과정에서 주어진 어떤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한 시도를 살펴보기로 한다.
미해결 부분에 대한 새로운 시도 중 대표적인 것은 보편 가설에 대해 높은 확증도를 부여하려는 시도이다. 카르납 자신은, 앞서 살펴본 바대로, 이러한 시도를 포기하고 자신의 귀납논리를 새로이 정립하려 하였다. 그러나 카르납 자신의 포기와는 무관하게 우리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 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 카르납의 포기가 곧바로 다른 모든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의 일단은 이미 힌티카 (J. Hintikka) 나 퀴퍼즈 (T. A. F. Kuipers) 등에 의해 이루어진 바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 역시 매우 전문 기술적이므로, 여기서 그것들 모두를 상세히 해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여기서는 그들의 기본적 발상과 중요한 결과들만을 간략히 소개하고 밝히기로 한다.
이들의 가장 공통적인 발상은, 주어진 증거에 있어 단순히 문제가 되고 있는 속성을 지닌 개체들의 개수만이 아니라, 그 증거에 있어 나타난 모든 Q-술어들의 개수까지를 고려하는 데 놓여 있다. 예컨대 힌티카의 경우, π 개의 원초 술어로부터 구해낼 수 있는 k = 2π (2 의 π 제곱) 개의 Q-술어를 다음과 같이 표기할 때,
(8)
우리는 먼저 이 가운데
어떤 Q-술어가 실제 개체를 통해 예시되고 예시되지 않았는가에 주목할 수 있다.
즉 하나하나의 개체들이 실제 위와 같은 Q-술어들을 갖고 있는지의 여부에 주목할
수 있는데, 힌티카는 이와 같은 것을 나타내는 기호식을 '구성 요소' (constituent)
라 부른 바 있다. 그러므로 집합
가 위의 (8) 의 모든 Q-술어들로 이루어진 집합의 한 부분 집합일 때, 각 구성
요소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9)
이것은 w 개의 각기
다른 Q-술어들을 예시하고 있는 s 개의 개체들에 관한 증거를 나타내며 (즉 존재
한량 기호 '(Ex)' 가 쳐진 부분), 동시에 그로부터 구성된 하나의 귀납적 일반화를
가리킨다. 이때 증거를 나타내 주는 부분은 카르납의 앞서의 구조 기술과 형식상
유사하긴 하나, 구조 기술이 각 Q-술어를 예시하는 개체가 몇 개나 되는가에 주목하는
반면, 구성 요소는 어떤 Q-술어들이 예시되고 예시되지 않았는가에 주목하고 있다.
주어진 증거로부터 구성된 귀납적 일반화로서의, (9) 와 같은 한 구성 요소는 그
자체, 무한한 개체의 영역에서는
를 만족하는 개체들이 적어도 한 번 나오는 반면, 그 이외의 것은 전혀 나오지
않으리라는 일종의 보편 (무한) 가설이다. 그러므로 퀴퍼즈는 이를 '구성적 가설'
(constitutional hypothesis) 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처럼 증거나 가설에
있어 문제의 Q-술어들에 주목할 때, 확률의 기본 공리를 만족하면서도 보편 가설에
대해 높은 값을 부여해 주는 확증 함수를 제시할 수 있다. 예컨대 힌티카의 경우,
c 개의 각기 다른 Q-술어
를 예시하는 s 개의 개체로 이루어진 증거를 기반으로 할 때, (9) 와 같은 귀납적
일반화에 대한 확증도는 다음과 같고,
(10)
이것은 w = c 일 때 s → ∞ 일 경우 1 로 접근함을 알 수 있다. 즉 주어진 가설에 대한 확증 사례가 증가함에 따라 식 (10) 의 값이 점점 증가하고, 그 수가 무한히 커질 경우에는 그 값이 아예 1 로 접근하는 것이다.
퀴퍼즈는 이와 같은 새로운 체계하에서라면 카르납의 초기 귀납논리는 오히려 극단적인 한 특수 사례임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한편 카르납의 귀납논리가 지닌 불충분한 점으로서는, 그것이 단지 확률적인 독립 사상만을 다룰 뿐,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종속 사상 (dependent event) 은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예컨대 흰색과 검은색 공이 든 어떤 주머니에서 공 하나식을 꺼낼 때, 처음에 검은색 공이 추출된 후 하나씩 걸러 검은색 공이 추출되어 모두 6 개의 공이 추출된 경우와, 단순히 지금까지 추출된 6 개의 공 중 3 개가 검은색이고 나머지는 모두 흰색일 경우, 다음에 추출될 하나의 공이 검은색일 것이라는 가설에 대한 확증도는 전자의 상황에서 더 높을 듯하다. 그러나 사실상 카르납의 c*-함수를 이용할 경우 어느 때나 그 값은 (3 + 1) / (6 + 2) 로서, 아무런 차이도 낳지 않는다. 애친슈타인 (P. Achinstein) 은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이미 비판과 함께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제안한 바 있고, 스킴즈 (B. Skyrms) 는 좀더 구체적으로 이른바 '마르코프 연쇄' (Markov chain) 에 대해 카르납의 귀납논리를 적용하려는 시도를 보여준 바 있다.
아직 형식적으로 충분히
개발되지는 않았으나, 종속 사상에 대한 이들의 기본적 발상은, 증거로서 주어지는
개체들을 하나하나 독립적으로 취급하는 대신 이미 관련되어 나타나는 개체들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 생각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하나하나의 개체의 수 대신, 변화하는
상태 (state) 의 추이에 주목할 수 있고, 이에 의해 종속성의 계량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상태
로부터 상태
로의 이행의 회수를
라 할 때, 앞서의 카르납의 식 (4) 를 적용하면 다음을 얻을 수 있다.
(11)
단순히 추출된 표본의
크기 s 나 그 중 성질 M 을 지닌 개체의 수
을 고려하는 대신 상태들의 변화 횟수를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카르납의 귀납논리가 안고 있는 구성상의 제약 사항으로 볼 때, 무엇보다 그의 초기의 귀납논리는 언어 체계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초기의 귀납논리는 비관계의 일항 술어 (non-relational monadic predicate) 만을 지닌 언어 체계에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언어 체계만으로는, 물론 과학상의 중요한 또 다른 측면들, 예컨대 질량이나 온도와 같은 정량적 변량 등은 아예 언어적으로 포착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언어 체계의 한계에 따른 귀납논리의 제약 문제는 카르납 자신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그러한 한계를 벗어나려는 시도 역시 카르납에게서 볼 수 있다. 이미 그의 후기에 자신의 귀납논리를, 일정한 언어 체계에서 떠나 특정한 언어에 좌우되지 않는 모델 위에 새롭게 정립하려는 시도를 펼쳤다는 점 역시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모델을 기초로 한 이와 같은 새로운 개념 체계하에 그는 속성들간의 유사성 (similarity) 까지를 고려함으로써, λ-체계마저도 사실상 더 일반적인 체계의 특수한 한 경우임을 보여 주고 있다.
하나의 논리를 적용할 수 있는 더욱 풍부한 언어 체계나 개념 체계를 구성하는 일은 그 논리를 좀더 넓은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 준다. 그러므로 문제의 대상을 표현하는 능력 및 기술과, 그것의 적용 범위는 카르납의 귀납논리에 있어서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사실상 위에서 논한 보편 가설이나 종속 사상에 대한 경우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카르납의 귀납논리는, 단순히 그에 대한 어떤 기대나 프로그램에 그치는 대신, 한걸음 더 나아가 직접 그와 같은 것들을 엄밀하게 구현, 전개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이렇게 됨으로써 그에 대한 지지건 비판이건 분명하고 명확한 논의를 전개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카르납의 귀납논리는 물론 그 자체 아직 적용될 수 없는 영역을 지니고 있고, 나름의 제약 조건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그것이 전면 폐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연역논리가 여러 적용 영역에서 나름의 제약 조건들을 넘어서 확장되듯, 카르납의 귀납논리 역시 그와 같은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때 모든 적용 영역에 단지 하나의 논리만을 고집해서는 안된다. 물론 어떤 적용 영역에서는 특정의 논리 체계가 다른 것들에 비해 훨씬 더 적절할 수 있다. 카르납의 귀납논리가 초기에서 후기로 들어서며 변화해 간 것 역시 이러한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면 관계상 여기서는 다룰 수 없었으나, 카르납의 귀납논리는 귀납 추론이 이루어지는 모든 영역에서 그 추론을 논리적으로 평가하는 데 하나의 초석이 될 수 있다. 또한 좀더 실제적으로 인공지능 시스템상에서 직접 그 논리를 채택해 어떤 가설을 평가하는 데 이용할 수도 있다.
카르납의 귀납논리에 대해서는 물론 여러 각도에서 비판을 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앞으로 발전적으로 개발시켜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