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과 프랙탈

 

프랙탈과 카오스의 세계 : 김용운.김용국 저서, 도서출판 우성(308-0163), 1998, Page 123~146

 

요동이란 무엇인가?

요동속에 숨은 비밀

스팩트럼 (spectrum)  

1/f 요동

1/f 요동의 유연성

1/f 요동의 예

1/f 요동은 정보의 필터

생존 방식의 선택과 정보 선택

증권 시장과 프랙탈

지프 (Zipf)  의 법칙

상전이 현상

비평형개방계

유한확산집합체 (DLA)

    ▶▷  프랙탈적인 입자의 성장

    ▶▷  DLA의 예

    ▶▷  산호의 성장

    ▶▷  프랙탈 규칙

 

요동이란 무엇인가?

배가 파도에 휩쓸려 요동을 치거나, 자동차가 흔들린다는 등등, 우리는 흔히 일상생활에서 '요동'(turbulence)이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자동차 엔진이 불규칙하게 소리를 낸다거나, 라디오나 녹음기의 잡음도 전류의 '요동'에서 기인한다. 자연은 기계처럼 규칙적이지 않고 온통 요동과 잡음으로 가득차 있다. 소요되는 에너지가 최소인 운동은 직선운동이다. 하지만 자연은 에너지를 최소화하려는 의도와는 반대로 직선이 없다. 자연이 프랙탈적인 것으로 가득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직선을 좋아해서 고속도로도 되도록 곧게 뚫으려고 한다. 하지만 직선의 길은 곧 운전자를 지루하게 만들어 오히려 큰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것이 오히려 해가 될 때가 있는 것이다. 신토불이(자연과 밀착된 삶)인 것이 그만큼 유익하고 안전하다는 이야기이다.숲 속의 벌레 울음소리나 산들바람도 '요동' 중의 하나이다. 요동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것, 아니 오히려 자연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요동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여러 가지 실용적인 쓰임새를 찾을 수 있다. 요동은 '변화가 불규칙해서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규칙적인 현상은 간단하게 수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요동은 불규칙한 흔들림이기 때문에 좀처럼 수식화하기 어렵다. 즉, 요동에는 카오스의 성질이나 프랙탈적인 측면이 엿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요동' '카오스'등의 개념 사이의 관계를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카오스가 요동의 일종인지, 아니면 요동이 카오스의 한 속성에 지나지 않는지...?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렇다고 요동을 그대로 관찰해 보았자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 무엇보다 요동을 분석하는 수학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그런 방법이 푸리에(Fourier)의 방법을 기초로 하여 만든 스펙트럼(또는 '파워 스펙트럼')이 그것이다.

요동속에 숨은 비밀

불규칙한 자연현상 중에서도 규칙적인 주기를 갖는 것이 있다. 태양 및 달 운동의 주기성과 그에 따른 4계절, 그리고 일정 기간 살다 죽어가는 동식물의 삶 모두가 주기성을 갖는다. 이런 주기적 현상 가운데 특히 단진동은 흔히 볼 수 있다.
진동은 규칙적인 흔들림이고, 요동은 불규칙한 흔들림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규칙적인 진동은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삼각함수, 즉 sin 이니, cos 이니 하는 함수 그래프로 나타낼 수 있다. 이들은 360˚를 단위로 한 바퀴씩 돌아가는 성질이 있다.
이러한 규칙적인 파동에는 주파수와 파장, 진폭 등이 있다. 주파수는 진동수라고도 하며, 1초동안에 위아래로 진동을 반복하는 횟수이다. 즉, 1헤르츠(Hz)는 그림 1처럼 한번의 진동을 하는 것이고, 2헤르츠는 두 번의 진동을 하는 것이다. 라디오 방송국마다 고유의 주파수가 정해져 있다.

그림 52

주파수가 높으면 소리도 높다(진동이 소리일 때). 진폭이 크면 그만큼 소리가 크기 때문이다. 삼각함수는 이처럼 규칙적인 주기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특성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과학 기술 분야에 널리 이용된다. 특히 공학 분야에서 적절한 도구가 된 것이 푸리에 급수이다.
프랑스의 수학자 푸리에(J.B.J. Fourier, 1768~1830)는 1822년에 <열에 관한 해석적 이론>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열역학 이론의 개척자 켈빈(Kelvin, 182~1970)은 이 책에 대해 '위대한 수학적 시'라고 격찬했다. 수학과 시는 얼핏 전혀 관계가 없는듯 보이지만, 이 한 마디는 딱딱한 수학의 논리나 기호일지라도 그 배경에는 풍부한 상상력이 깔려 있음을 충분히 시사하고 있다.
푸리에의 이 업적은 어떠한 함수 f(x)도 삼각함수들의 합으로써 표시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함수식

은 임의의 함수를 위와 같은 모양을 갖는 푸리에 급수로 변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복잡하거나 불연속 점을 많이 갖는 함수를 모두 푸리에 급수로 표시함으로써 이것들을 통합적으로 취급할 수 있게한 것이다.

수학의 발전이란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쉽고 단순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수학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함수가 있다. 복잡한 함수는 한 마디로 복잡한 모양의 그래프를 갖는다. 푸리에 급수는 연속적이기 때문에 주기적인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그림과 같이 불연속적인 그래프가 연속적인 함수(ㄴ)로 표시되면, 그 성질을 파악하는데 매우 편리하다.
불연속적인 도형을 연속적인 푸리에 급수로 간단히 대체시키는 것은 마치 화장술과도 같은 효과가 있다. 얼굴에 여드름이나 점이 있어도 화장을 하면 감춰지며 보기에 좋다. 푸리에 급수는 요철이 심한 불연속 함수를 근사적으로 곱상한 연속 함수에게로 얼마든지 접근시킬 수 있다.

  

스팩트럼 (spectrum)  

오실로스코프 (oscilloscope)  라는 기계를 이용하면, 사람의 음성이나 악기의 소리를 분석하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파형으로 나타낼 수 있다. 흔히 병원에서 볼 수 있는 심전도계와 같은 기계도 모두 비슷한 종류의 기계이며,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신호 (이러한 신호를 시계열신호라고 부른다) 를 분석하는 데 쓰인다. 그림 54 에서 보는 것처럼 오실로스코프로 잡은 소리의 파형은 매우 복잡하다.

 

그림 54

이 복잡한 파형은 너무나 많은 정보를 담고 있으므로 그대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 그래서 이것을 사인(sin) 파나 코사인 (cos) 파 등, 규칙적인 몇 개의 파형으로 분해한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한 수학의 화장법과 관계가 있으며, 그래서 '푸리에 해석' 또는 '푸리에 분해' 라고도 한다. 수학에서 자주 쓰이는 '분석과 종합' 의 좋은 본보기이다.

푸리에 분해는 음악 외에 소음이나 진동의 조사에도 쓰인다. 예를 들면, 헬리콥터의 (수평으로 도는) 프로펠러의 회전으로 기체에 진동이 일어나는데, 이 진동의 파형을 분석하면 기체의 이상이 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가정에서 쓰는 에어컨, 세탁기, 자동차 등도 같은 방법으로 기체의 이상을 점검할 수 있다. 숙련된 기술자는 기계의 소리만 들어도 어디에 이상이 있는가 알아차리는데, 그의 귀가 푸리에 해석을 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헬리콥터 등의 진동은 때때로 변덕스럽게 변하면서, 마침내 카오스의 상태가 되어 사고를 일으킨다. 심장의 고동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의 소리나 진동의 이상을 체크하는 것도 푸리에의 이같은 발상과 상통한다.

푸리에 해석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도표로 나타내 보자 (이것을 스펙트럼도라고 부른다). 이때 가로축은 주파수를, 세로축은 파워 스펙트럼을 나타낸다. 우선 가장 간단한 진동인 단진동을 파워 스펙트럼도로 나타내보면, 단진동은 단 하나의 주파수 fa 만을 갖기 때문에 그림 55 (ㄱ) 과 같이 단 하나의 세로 선분만이 그려진다. 여기에서 선분의 길이는 진폭을 나타낸다 (또는 기본 주파수의 성분수를 뜻한다). 두 개의 주기 fa, fb 를 갖는 한계순환 진동에서는 그림 55 (ㄴ) 처럼 두 개의 선분이 그려진다. 즉, 스펙트럼 분포는 불연속적이다.

그림 55

연속분포 스펙트럼으로 알려진 것으로는 백색잡음, 1/f2 잡음, 1/f 잡음 등이 있다.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잡음이나 요동을 스펙트럼으로 분석하면, 이 세 가지 중의 하나가 된다 (그림 56).  1/f 요동의 f 는 주파수 (frequency) 의 머리 글자로, 파워 스펙트럼은 f 에 반비례, 즉 1/f 에 비례한다. 여기서는 이 중에서 1/f 요동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림 56

1/f 요동

1/f 요동은 진공관의 음극에서 양극으로 흐르는 전자의 흐름에서 잡음을 측정하면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1925 년의 일이다. 진공관의 내부를 흐르는 전자에서 발생하는 잡음을 '숏 노이즈' (shot noise) 라고 한다. 전류가 전자라는 입자의 흐름이기 때문에 생기는 잡음인 것이다. 요컨대, 전자 하나가 음극에서 나갈 때 전류가 조금 증가한다. 전자의 방출은 무작위로 일어나고, 이들 전자 하나 하나가 shot noise를 만든다.

전자의 움직임은 주로 회로에 가해진 전압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열교란, 지구의 자기장, 그밖에 여러 가지 전자기파도 전자의 움직임에 미세한 영향력을 끼친다. 전자계와 상호 작용하는 다른 여러 가지 요소에 관한 정보를 모두 알 수 없기 때문에 전류 잡음은 예측할 수 없는 미세한 요동을 보인다.

1/f 요동에서는 파워 스펙트럼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큰 진동 내에 작은 진동이 들어가 있고, 다시 그 작은 진동 내에 더 작은 진동이 들어 있다. 이것은 전체와 부분 사이의 자기닮음이며, 바로 프랙탈 구조이다. 즉, 1/f 요동의 주파수에 관한 성분 분포에는 질서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1/f 요동의 유연성

1/f 요동이 프랙탈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 자기닮음적인 구조는 풍부한 유연성을 지닌다. 급격하게 변하기 쉬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여유, 곧 '요동' 이라는 안전장치가 필수적이다. 생물체들은 요동 (프랙탈 구조) 을 활용하여 생존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의 핸들은 반드시 유동각도를 유지하는 여유 (유격) 가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유격이 없으면, 핸들 조작은 탄력성을 갖지 못하여 위험한 사고가 일어나기 쉽다. 스포츠카 (sports car)  처럼 예민한 반응이 요구되는 자동차는 핸들의 반경도 작고, 유격도 작으며, 따라서 그만큼 운전자는 고도의 운전기술이 필요하다.

이것은 인간의 사회생활과도 관계가 있다. 요즘에 흔히 '전문 바보' 라는 말을 듣는데, 한 분야에는 전문가이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대응할 수 없어서 바보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또한, 인간의 언어생활에 있어서 보통 사람은 정확히 문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속담에 '쑥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는 것은 다소 틀리게 말해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그 만큼 폭넓게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유명한 일본 검객의 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검객은) 항상 평소와 다름없는 마음으로 결투에 임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마음을 넓고 굳게 가져야 하며, 마음을 열어 조용히 흔들리게 하라. 흔들림의 어느 순간에도 그것이 끊어지지 않도록 항상 조용히 요동이 이어지도록 하라.」

이 검객이 말하는 '마음의 흔들림' 이란 어떤 적의 공격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탄력성 내지 유연성을 말하는 것이다.

요즘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다양한 정보가 수시로 오간다. 한 분야의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분야에 관한 일도 얼마만큼 소화할 수 있는 여유, 곧 다른 분야에 대한 교양을 널리 갖추어 둘 필요가 있다. 그러한 유연성이 없는 사람은 핸들에 유격이 없는 자동차를 운전할 때처럼 약간의 변화에도 좌충우돌하기 마련이다. 극단적인 경우,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조차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없다.

앞으로의 정보화 사회에서는 전문가이면서 넓은 교양과 탄력있는 감성을 지닌 '제너럴리스트' (generalist, 여러 분야에 걸쳐 폭넓은 소양을 갖춘 사람) 야말로 바람직한 인간형이다. 곧 쑥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반드시 모든 분야에 완벽하게 통달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우수한 의사나 학자 중에는 음악이나 예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많다.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의 명수였고, 프리고진은 피아노를 즐겼다.

딱딱하고 추상적인 수학만을 연구하다가 커피 타임을 갖는 것은 일종의 1/f 요동을 만드는 것으로 마음을 정화하는 작용이 있다. 이 정화 (카타르시스) 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연구활동을 지속할 수 없다. 논밭 두렁의 수로를 직선으로 만드는 것보다 구불구불한 지형에 맞게 만드는 것이 오히려 여러 모로 유익할 때가 많다. 낭비처럼 보이면서도 낭비가 아닌 것이 요동의 묘미이다.

기업에도 여유가 없으면 위험하다. 최근 감량 경영으로 놀고 있는 사원을 해고시키지만, 실은 놀고 있는 사원이 회사가 위기에 처할 때 적응하는 유효 인력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즉, 필요 없다고 당장 해고하는 것은 면 미래를 생각하면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다.

1/f 요동의 예

생명현상에도 여러 가지 1/f 요동이 있다. 생명에 직결되는 심장의 박동도 1/f 요동을 하고 있다. 이처럼 1/f 요동은 생물계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요동이 생명을 다양한 환경 변화에 적응시켜서 생존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갈대, 대나무, 버들가지는 능청거리며 휘어지지만 꺽이지 않는 것도 '여유' 가 있는 조직 탓이다. 산들바람에도 흔들리는 '약한' 구조를 갖는 것은 한 편으로는 불안정성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높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시냇물에서 교향곡까지 1/f 의 여러 양상이 나타난다. 아득한 은하계 멀리에서 날아온 우주선의 흐름에도 1/f 요동이 있다. 아마도 은하계의 자장의 강도가 1/f 요동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은하계의 자장이 1/f 요동을 하고 있는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오늘날의 우주구조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1/f 요동이 발생하는 메카니즘은 과학적으로는 아직 충분하게 해명되지 않고 있으나, 종교적 · 철학적인 해석을 자극하고 있다.

작은 움직임일수록 쉽게 자주 일어나고, 큰 변화일수록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상식이다. 즉, 1/f 요동은 이런 상식을 말하는 것이다. 주가변동은 그 좋은 예이다.

이렇게 다양한 보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1/f 요동을 일으키는 메카니즘에는 어떤 보편성이 있는 것같다.

1/f 요동은 정보의 필터

현대는 정보와의 싸움이 아주 중대한 관건이다.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처리하고 정리하는 일도 예전처럼 간단하지 않다. 더구나 시시한 정보의 과잉은 골치거리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우리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과연 신문의 정보 중에서 얼마 만큼이나 우리에게 필요한가? TV도 쓸데 없는 정보를 우리 머리 속에 부어넣는 기계이다. 또한 우편물이 오면, 정말 읽고 싶은 편지는 얼마 안 되고, 대부분은 상업적인 광고로 우리들을 짓누르는 불필요한 정보이다. 쓸데 없는 우편물을 휴지통에 버릴 때에 이상한 쾌감을 느낄 정도다.

그러나, 정보의 과잉은 현대에 시작된 것은 아니며, 이미 생물의 진화과정에서부터 있었다. 모든 생물은 어떤 의미에서는 생명이 태어난 이래 정보의 범람과 싸워온 셈이다. 생물은 환경에서 쏟아지는 정보로서의 빛이나 소리, 냄새 등의 물리 · 화학적 자극을 무한히 받고 있다. 우리가 놀라워해야 할 것은 생물의 감각기관이 정보를 예민하게 포착하는 능력이 아니라, 쏟아지는 무수한 정보에서 불필요한 것을 걸러내는 능력에 대해서이다.

영장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포유동물들은 색을 볼 수 없다. 그들이 색을 보지 못하는 것은 진화가 덜 된 탓이 아니라, 색깔은 그들에게 불필요한 정보이기 때문에 색이라는 정보를 무시하도록 감각기관이 진화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도 어떤 영상을 볼 때 가장 먼저 처리하는 것이 이미지의 윤곽선 추출이다. 윤곽선을 추출하여 배경과 실물을 구분하고, 배경은 그다지 중요한 정보를 갖지 않기 때문에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즉, 필요한 정보와 불필요한 정보를 구분하는 일을 가장 먼저 하며, 그 중에서 필요한 정보를 기억시켜 둔다.

인간의 눈은 가시광선만 느끼는데, 그 가시광선을 통해 보이는 모든 정보를 일일이 의식하지는 않는다. 실제 관심을 갖는 것은 자기와 깊이 관련된 일부뿐이다. 예를 들면, 길거리를 걸을 때 관심을 갖게 되는 사람의 얼굴이나 간판의 글자, 자신의 생활과 직접 관련되는 상품 등등이 있다. 길거리의 휴지나 돌멩이따위는 일부러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눈에 띄지 않으며, 시선은 옮기는 순간 곧 잊혀져 버린다. 이처럼 사물의 배경 등은 일반적으로 의식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사람의 얼굴이라도 전체를 자세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웃는 얼굴인가 화난 것인가 정도만 기억에 남는다. 형사라면 자신의 작업상 좀더 자세한 부분에까지 관심을 가질지 모른다. 형사 콜롬보는 보통 사람은 지나치기 쉬운 미묘한 표정의 변화까지도 곧잘 읽어낸다.

지구상에 쏟아지는 전자파는 감마 (  )  선, X선,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에서부터 이보다 훨씬 파장이 긴 TV파, 단파, 중파, 장파등등까지 매우 넓은 범위에 이르고 있다. 그 전자파들이 지니는 정보를 해독하면, 그것들은 각각 여러 가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보들은 우리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긴 우리의 눈이 라디오나 TV파를 못느끼는 것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시끄럽게 계속 떠들어대는 마누라에게 시달려 본 사람은 불필요한 정보를 차단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할 것이다.

생존 방식의 선택과 정보 선택

진화란 곧 정보의 선택을 의미한다. 지구상의 생물은 다양하고, 그들에게는 저마다 여러 가지 생존 방식이 있다. 펭귄은 다른 새들이 전혀 살 수 없는 영하40°의 남극 대륙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남극의 여름만 되어도 더위를 느낀다. 어떤 물고기는 튼튼한 잠수함도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수압이 작용하는 깊은 바다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며 살아간다. 이처럼 생물은 여러 자연 환경에서 정보를 선택하여 각자 특유의 생존 방식으로 살아간다. 원래 그들의 조상은 하나였다. 하지만 그 자손들이 흩어져 살면서 그 환경에서 가장 유용한 정보에 의존하는 별개의 생물들로 진화해 온 것이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들이 같은 가정에서 살다가 헤어져  각자 살다 보니 전혀 엉뚱한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갖는 것과 같다. 이것은 각자가 개성에 맞는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삶의 방식을 찾은 결과인 것이다.

진화란 무조건 단순한 상태에서 정교하고 복잡한 상태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선택에 따른 결과인 것이다. 물론 먹이로서 선택한 동물은 풀에 관한 정보를 얻는 일에 민감해진다. 그러나 곤충을 먹이로 선택하면 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러한 정보의 선택에도 1/f 요동이 관여한다.

인간의 학습 메카니즘에도 이 1/f 요동이 이용된다. 자주 반복되는 것은 쉽게 기억되고 학습도 잘 되지만, 중요한 내용이 아닌 것은 관심이 가지 않고 기억에도 잘 남지 않으며, 따라서 학습되지 않는다. 바람직한 학습 자세는 마음의 문을 1/f 요동 상태로 열어 두는 것이다. 마음을 너무 열어두면 쓸데 없는 정보까지 들어오고, 너무 닫아두면 정작 필요한 정보를 받지 못한다.

선이란 한 마디로 마음을 비우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마음을 비우는 것일까? 무념무상의 상태에 이르는 선이란 매우 어려운 수행을 통해야 이르는 경지이다. 그러나,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어떤 일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이 자연의 흐름에 따라 1/f 요동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자기가 아는 하찮은 지식에 집착하면 그것은 아집이다. 모든 지식은 상대적인 것! 알면서 모르는 듯 항상 어린아이처럼 마음을 비운 상태로 적당히 흔들리면서 자연의 법칙을 따르면 모든 것이 편안하다. 이것이 곧 선의 경지이다.

증권 시장과 프랙탈

'가마솥 안의 개구리' 라는 말이 있다. 가마솥의 물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면, 개구리는 따뜻한 물이 너무 좋아 흐뭇해한다. 점점 온도가 더 올라가도 개구리는 여전히 느긋하게 몸을 물에 담근채 그런 변화에는 개의치 않는다. 그러다가 물이 너무 뜨거워져서 이제 물 밖으로 뛰어나가려고 해도 이미 팔다리가 익어 버린 후이다. 이 어리석은 개구리는 물의 온도 변화를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게 된 것이다.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미래를 관망하면서 수시로 적절하게 선택해야 한다.

인간 생활은 온통 예측으로 가득차 있다. 하찮은 일상 생활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예측을 해야 하며, 때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예측하고 선택해야 할 일도 많다. 잘못된 예측과 선택은 자칫 운명을 크게 어긋나게 만들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측할 때 일반적으로 법칙성이나 규칙성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나 세상 일이 모두 규칙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20세기 과학 시대에도 여전히 점쟁이 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증권시장은 갈피를 잡지 못할 만큼 두서 없이 변화한다. 그 변화는 어떤 규칙성도 찾을 수 없고, 따라서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만약 예측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백반장자가 될 수 있겠지만.

증권시장의 변화를 미시적으로 보면 분명 예측 불가능하며, 어떤 법칙성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프랙탈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법칙성이 있음을 알 게 된다. 미국에서는 프랙탈과 카오스 이론으로 증권시장을 매우 신뢰성 높게 예측하여 큰 돈벌이를 하고 있는 젊은 과학자도 있다.

지금까지 '자기닮음' 의 개념을 일정하게 정지된 상태의 공간적인 구조나 패턴의 관점에서 생각해 봤다. 이같은 생각은 시간적인 과정 속에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그 가장 좋은 보기가 증권의 가격 변동이다. 실지 프랙탈 이론의 창시자로 만델브로가 이 구조를 발견하게 된 계기는 증권시장에서였다.

 

한 시간 전의 주가의 변동만이라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갑부가 될 수 있다. 그만큼 주가는 변동이 심하여 전혀 앞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법칙이 있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주가의 변화는 시간 단위에 구애받지 않으며 통계적으로 자기닮음꼴이다.」

이 말을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주가의 그래프를 하루 단위, 또는 1개월 단위로 그려도 그래프는 같은 정도의 복잡한 모양으로 변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시간을 확대 (일 년)  또는 축소 (한 시간)  해 보아도 변화의 상태가 같다는 것인데, 이것은 주가의 변동이 시간에 관해서 프랙탈적임을 의미한다. 하루 동안의 주가 변동이 1 개월 후의 주가를 예상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임을 뜻한다.

주가 변동의 프랙탈 구조의 보기를 또 한 가지 들어보자. 가격 변동의 크기 자체에는 의미가 없고, 그보다는 변동의 크기에 관한 빈도분포가 프랙탈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경우가 그것이다. 변동의 크기에 관한 빈도분포란, 가령 하루 주가의 변동 폭이 500 원이었던 날이 모두 며칠이고, 1000 원의 변동 폭이 며칠이라는 식으로 통계를 잡고, 변동의 폭과 그 빈도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이 프랙탈적이다라는 것은 변동 폭의 크기 단위를 바꾸어도 빈도분포의 상태에는 변화가 없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대수 (log)   그래프 상에서 분포는 직선이 된다.

구체적인 수치를 써서 생각한다면, 변동 폭을 2 배로 하였을 때, 빈도는 대략 1/3 이 된다는 성질이 변동 폭의 단위의 크기에 상관없이 성립한다.

가령, 어떤 회사의 주가가 하루 100 원 이상 변동하는 날이 10 일에 하루꼴로 있다면, 200 원 이상 변동하는 날은 그 1/3 의 확률, 즉 30 일에 하루 정도 있다. 마찬가지로 400 원 이상 변동하는 날은 90 일에 하루, 800 원 이상 변동하는 날은 270 일에 하루꼴로 있게 된다.

이 논리대로 따진다면 대공황, 이를테면 10000 원의 변동 폭이 생기는 날은 약 60 년에 하루꼴로 있게 된다. 주가 변동의 크기의 분포에 관한 프랙탈성은 가격과 변동의 크기에 관한 자기닮음을 갖는 것이다. 그것은 공간, 또는 시간도 아닌 좌표축에 관한 자기닮음이다. 주가는 살아 움직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그 움직임은 프랙탈적이며, 따라서 항상 안정적인 주가 변동이란 있을 수 없다.

요컨대, 주가 변동은 시간과 금액이 만든 공간에서 프랙탈 구조를 자아낸다. 즉, 1/f 요동을 하는 것이다. 주가 변동에 관한 통계적 법칙을 만델브로의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그는 이것과 해안선의 요철을 연관지어 이들 사이의 공통적인 성격, 즉 프랙탈 차원을 생각해낸 것이다.

 

지프 (Zipf)  의 법칙

한 나라의 개인 소득의 분포, 도시의 인구분포, 책이나 신문 등에서 사용되는 낱말의 빈도분포, 영어의 알파벳 사용 빈도분포, 생물 종수의 분포, 하천의 길이분포, 호수의 넓이분포 등등, 이런 여러 가지 분포를 조사해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고소득을 올리는 사람은 위로 올라갈수록 그 수가 기하급수로 줄어든다. 인구가 많은 도시의 수도 마찬가지로 기하급수로 줄어든다. 호수가 넓을수록 그 수는 기하급수로 줄어든다.

즉, 규모가 큰 것일수록 그 수는 급격히 적어져서 규모가 가장 큰 것은 하나나 둘 뿐이다. 이를 '지프 (G. K. Zipf, 1902~50) 의 법칙' 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파레토 (V. F. D. Pareto, 1848~1923) 가 유럽의 여러 나라의 개인 소득 통계를 분석하여 소득 금액 x 와 x 이상의 소득을 올린 사람 수의 누계치 Nx 의 사이에는

                                                (A, a는 각 나라의 고유 정수)  

의 관계가 있음을 알아냈다. 이 역시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파레토 (Pareto) 법칙' 이라고 한다. 아우어바흐 (Auerbach) 는 도시의 인구 분포에서 파레토와 같은 법칙을 발견하였다. 그후 지프가《 인간의 행동과 최소 노력의 원리》라는 책에서 이들 법칙을 다루면서 '지프의 법칙' 으로 대중화되었다. 이 지프의 법칙은 바로 프랙탈 구조인 1/f 요동의 메카니즘을 다른 측면에서 관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전이 현상

자석을 처음 보는 어린 학생은 자석이 쇠붙이를 끌어당기는 것을 매우 신기하게 여긴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석을 불에 가까이 집어넣었다가 자석의 성질을 잃게 되는 것을 알고 더욱 놀란다. 이처럼 물질이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하는 것을 상전이 (phase transition) 라고 한다. 상전이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것을 자세히 보면, 눈이 금방 비로 변화해 가고 있다. 온도가 높아지면서 얼음은 물이 되어 가고, 더욱 열을 올리면 수증기로 변한다.

                                        얼음 → 물 → 수증기 → 물 → 얼음

철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그리스의 탈레스는 모든 것의 근원은 물이라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이런 변화의 상태를 눈여겨 본 결과로 생각된다.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의 상전이 현상은 혁명적인 변화를 뜻한다.

상전이 현상은 연속적인 변화가 갑자기 파국적인 변화를 하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과학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상전이 현상 가운데에서 최근 과학계의 화제는 초전도 현상이다. 초전도란, 어느 온도 (= 임계온도, 대개는 -253°C 이하)   이하의 저온에서 금속의 전기 저항이 갑자기 0 이 되어 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저항이 0 이 되는 이 성질을 이용하면 리니어 모터카 (linear motorcar), 또는 전력의 손실이 없는 초전도성 전선의 실용화가 가능해진다. 특히 요즘 물리학의 화제는 지금까지 저온에서만 얻을 수 있는 초전도 현상을 보통의 실내 온도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가 한창 진행 중에 있다.

상전이의 일반적 성질은 프랙탈 이론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림 57 은 반도체의 표면에 금을 진공 부착시키는 상황을 격자 무늬위에 모델화한 것이다. 격자가 반도체 표면이고, 원은 금이 부착된 부분이다.

      그림 57  (ㄱ) 상전이 이전의 상태로, 전류는 흐르지 못한다.
      (ㄴ) 임계점에 이르면 갑자기 상전이가 일어나서 전류가 흐른다.

전류는 반도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한편, 금의 전기 전도율은 매우 높다. 금의 산포 비율이 적을 때가 그림 57 (ㄱ) 이다. 이 경우 금이 드문드문 산포되어 있어서 전류는 흐르지 못한다.

부착되는 금의 비율을 점차 높여가면, 어느 순간 전류가 갑자기 흐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전류가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통하게 되는 상전이 현상이다. 이 경계상태-또는 임계상태-에 있을 때의 상황이 그림 57 (ㄴ) 이다.

그림 57 (ㄴ) 을 자세히 관찰하면, 원이 끝에서 끝까지 완전히 연결되어 있는 것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이 있다. 이와 같이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각각의 원의 덩어리를 클러스터 (cluster) 라고 한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전극에서 전극까지 완전히 연결되어 있는 덩어리이다. 임계점에서 처음으로 금이 완전히 연결될 때, 이 클러스터를 타고 전류가 흐른다. 이 때의 금의 산포비율은 2 차원에서 0.59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보다 더욱더 금의 산포비율이 높아지면 끝에서 끝으로 이어지는 클러스터는 더욱더 커지고, 전기 전도율은 반도체의 표면 전부를  금으로 덮은 경우와 가까워진다.

이런 모델은 평면 또는 격자 위에 일정한 비율로 무작위로 물질을 산포하는 것으로서, 원래 이것은 제주도의 돌하루방을 만드는 용암처럼 구멍이 많이 나있는-즉, 다공질-틈에 물이 스며들어가는 현상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구멍이 많이 있는 돌에 물이 스며들어가는 것은 구멍의 개수와 돌의 크기의 비율에서 결정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약수터는 땅에서 물이 솟아나오는 장소인데, 이것은 물이 침투함으로써 고인 물이 솟아나오는 것이다.

구멍의 수와 돌의 크기의 비율이 높아지면 물은 잘 스며들어가고, 구멍이 충분히 크지 않으면 막힌다. 그러니까, 이것은 빗물이 땅에 스며들어가는 모습을 모델화한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모래땅은 물이 잘 스며들지만, 점토땅은 물이 스며들지 못해서 땅에 고이게 된다.

풍수쟁이는 묘지를 결정할 때, 그 곳의 물이 잘 빠지는지 고이는지에 대해서 특히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직관적으로 이런 침수 모델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이 모델화가 성공하면 산불의 확산, 전염병의 확산, 심지어 암세포의 증식 모델로까지도 이용할 수 있다. 임계상태에 있는 침수 모델의 기하학적인 모양이 프랙탈적이며, 그 차원은 공간이 2 차원일 때에는 대략 1.9 이고, 공간이 3 차원일 때에는 2.5 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평형개방계

자연에 존재하는 것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요즘 공해가 심해지면서 생태계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데, 여러 물질이나 생물의 층이 서로의 생존에 도움을 주고받는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아무리 미물이라도 생명현상은 무엇인가를 먹고, 배설하고, 호흡하며 지낸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 이런 현상을 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평형계의 역학이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즉, 비평형개방계의 물리학이 필요한데, 프랙탈 이론은 그런 현상들을 통일적인 입장에서 관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림 58 과 같이 네모의 공간에 멋대로 움직이는 먼지 같은 입자가 떠다닌다. 이들은 서로 부딪치면 달라붙어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즉,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클러스터 (cluster) 가 되는 것이다.

그림 58  (ㄱ) 입자들이 무작위로 돌아다닌다.
(ㄴ) 새로운 입자를 계속 넣어주지 않으면 머지 않아 거대한 클러스터 하나만 남는다.
(ㄷ) 개방계에서 클러스터의 크기와 그 분포는 프랙탈적이다.

그림 58 (ㄴ) 에서 보는 것처럼 외부로부터의 작용이 전혀 없는 물체, 즉 폐쇄계에서는 새로운 입자가 없기 때문에 시간이 충분히 지나가면 낱낱이 입자를 모두 흡수해서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만 남는다. 그러나, 한 군데 구멍을 뚫어 개방계로 만들고 계속 새로운 입자를 넣어 준다면 어떻게 될까?이런 경우에는 다음의 두 가지 경향이 나타난다.

이 서로 반대되는 경향은 경쟁을 하다가 균형을 유지하게 되어 전체적으로 클러스터와 입자의 수는 거의 변함이 없게 된다. 그리고 클러스터의 크기 분포는 정상 분포가 된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클러스터의 분포는 프랙탈이 된다. 이러한 시스템을 우리는 '비평형개방계' 라고 부른다. 왜 비평형이냐 하면, 입자를 계속 공급해 주면 그 입자가 계속 클러스터에 흡수되어 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흐름이 멈추면 평형이 되고, 흐름이 계속되면 비평형이 되는 것이다.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찬 곳으로 흐른다. 그러나, 두 곳의 온도가 같아지면, 더 이상 일정한 방향으로의 열의 흐름은 없게 된다. 이런 상태를 '열적으로 평형' 인 상태라고 부른다.

이 성질을 기초로 해서 생각해 보면, 왜 자연에 프랙탈적인 현상이 수없이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도시의 인구수와 그의 분포도 프랙탈적이다. 즉, 서울과 같이 인구가 많은 도시는 드물고, 인구수가 적은 도시일수록 증가한다. 전주, 대구, 대전, 청주, 강릉, ... 이렇게 그 수가 훨씬 많아진다. 이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지프의 법칙' 바로 그것이다. 지프의 법칙은 비평형개방계의 하나의 큰 특성이다.

지구는 분명히 열려져 있는 개방계이다. 항상 태양으로부터 일정한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다. 그 에너지의 일부는 식물을 비롯하여 생태계에 흡수되고, 또 일부는 대기의 순환에 이용된다.

이 태양 에너지의 공급이 중단되면 모든 생물은 죽고, 대기의 순환도 멈춘다. 말하자면, 지구상의 생명, 대기의 흐름 모두는 태양으로부터의 에너지의 주입으로 지탱되는 개방계인 것이다. 일정한 주입으로 유지되는 개방계의 정상상태가 프랙탈적이므로, 수많은 생명현상이나 대기의 난류상태가 프랙탈적인 것은 당연하다.

유한확산집합체 (DLA)

불규칙하게 운동하는 수많은 미립자들이 엉겨붙어서 프랙탈적인 집합체가 되기도 한다. 이것을 유한확산집합체 (Diffusion-Limited Aggregation 또는 DLA) 라고 부르기도 한다. 먼지가 많이 나는 정미소나 방앗간에 미세한 먼지가 아주 섬세하고 불규칙하게 쌓여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치 바위가 이끼나 눈송이, 또는 새의 가슴털처럼 아름다운 모습도 프랙탈적 집합체이다. 그림 59는 아연을 전기 도금할 때 자라는 결정의 모습인데, 이것도 같은 현상이다.

 

그림 59  1 경 (1016) 개 이상의 아연 원자들이 만들어 내는 모습

그밖에 이같은 현상을 나타내는 예는 많다. '비스커스 핑거링'[viscous-fingering: 점성에 의한 손가락 모양의 형성, 그림 60] 도 그 하나이다. 이것은 두 장의 유리판 사이에 기름을 넣고 한 가운데로 공기를 주입하면, 공기가 손가락 모양으로 기름을 밀어내고 퍼져나가는 현상이다.

 

그림 60  비스커스 핑거링 (viscous-fingering)

▶▷  프랙탈적인 입자의 성장

먼지나 금속의 원자들이 퍼져나가다가 응집할 때, 왜 이처럼 프랙탈적인 모습으로 자라는가를 수학적인 모델인 유한확산집합을 응용하여 설명한 사람이 있다. 위튼 3 세 (T. A. Witten Ⅲ) 와 샌더 (L. M. Sander) 두 사람이다.이들이 제시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많은 확산 입자가 응집하는 어떤 매끄러운 표면이 있을 때, 이들 확산 입자는 완전히 랜덤 (random) 하게 표면의 어딘가에 부착하게 된다. 이때 어는 곳엔가 더많은 입자가 부착되어 조그마한 혹이 되거나, 또는 얕게 파인 흠이 생기기도 한다. 일단, 이렇게 표면에 요철이 생겨서 울퉁불퉁해지면 파인 구멍에는 입자가 더욱 부착하기 어려워지고, 불쑥 나온 혹에는 더욱 많은 입자들이 달라붙는다. 돈이 있어야 돈을 번다는 부익부빈익빈 현상과 같다고나 할까!

▶▷  DLA의 예

어떤 광장에서 엉터리 약장수가 약 선전을 시작하면, 한두 명씩 사람이 모이다가 이윽고 약장수를 완전히 둘러싸서 약장수가 보이지 않을 만큼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 바깥쪽에 있는 사람들은 호기심이 발동하여 자꾸만 더 모이게 된다. 이렇게 사람들이 한 곳에 밀집하면서 다른 곳에 휑하니 빈 공간이 생겨나는 것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같다.

확산 입자들은 왜 튀어나온 혹 쪽에 잘 부착하는가? 그 이유는 확산 입자들이 확산하면서 브라운 운동인 랜덤 워크 (random walk, 술취한 사람의 걸음걸이) 를 하기 때문이다. 그림 61 의 모델은 위의 현상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직행하는 입자보다 랜덤하게 비틀거리며 파행하는 입자는 헤매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튀어나온 혹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 중의 일부가 구멍에 떨어진다고 해도 구멍 바닥에 가기 전에 측면에 부착될 확률이 더 높다. 그래서 구멍은 계속 깊어지고 혹은 자라면서, 또는 혹 주위에 작은 혹들이 계속 생겨나는 것이다.

그림 61  프랙탈의 성장
확산에 지배된 응집 (DLA, diffusion-limited aggregation) 에 의한 프랙탈의 성장을 도식적으로 나타낸 그림이다. 보통은 매끄러운 클러스터 (cluster) 에서 시작해 그 위에 확산 입자가 응집해 간다. 외부로부터 凹凸 (요철) 이 표면에 생긴다 (ㄹ). ① 번 선은 도달해 오는 입자의 랜덤한 경로이고, ② 번 선은 입자의 평균등농도선, ③ 번 선은 입자의 평균적인 흐름의 유선을 각각 나타내고 있다. 일단 표면에 凹凸들이 생기면, 파여진 곳보다는 혹이 솟은 쪽이 빨리 성장한다 (ㄱ, ㄴ, ㄷ). 그 까닭은 입자가 외부로부터 비틀거리며 찾아오기 때문에 혹의 정상 부근에 부착하기 쉽고, 또 파인 곳에 깊이 들어가기보다는 측면에 부착해 버리는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혹의 정점 부근에 입자가 달라붙음으로써 솟아 나온 자리는 더욱 예리해지고, 파인 곳을 완전히 메워 버리기는 한층 더 어려워진다. 이렇게 해서 매끈하던 클러스터는 곧 울퉁불퉁해진다.

DLA 패턴을 컴퓨터 그래픽으로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데, 처음 씨가 되는 어느 입자를 한 장소에 고정시킨 다음, 그 근처에 다른 입자를 무작위 (random) 로 보낸다. 그 입자가 씨와 접촉하게 되면 그 자리에 부착된다. 그 다음 계속 같은 방법으로 새로운 입자를 무작위로 내보내 씨가 성장하도록 한다. 이와 같이 컴퓨터로 모델화하여 수만 개의 입자가 달라붙어서 생긴 결과가 그림 62 이다.

 

그림 62

▶▷  산호의 성장

이것은 (그림 62)   마치 산호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실제로 산호의 성장과정도 이런 식이다. 산호는 번식기에 일제히 알을 바다 표면으로 내보내고, 거기에서 수정을 끝내면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산호는 가라앉으면서 산호초의 여기저기에 달라붙어 거기에서 새로운 생애를 시작한다. 산호가 죽으면 그 뼈조각만 산호 무리에 붙어 있다. 이 과정이 수없이 되풀이되면, 우리가 바다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산호초가 만들어진다.

유한확산집합 (DLA)  의 내부구조는 나무처럼 많은 가지를 치는 복잡한 모양으로 되어 있다. 그 내부는 꽉차 있지 않고 빈틈이 많은 구조로 되어 있다. 일단, 이와 같이 빈틈이 많은 구조가 형성되면, 외부로부터 접근하는 입자는 그 안에까지 접근하기가 어려워진다. 대부분의 경우 입자는 맨 바깥쪽에 있는 가지에 붙게 된다. 다시 말해서, 내부의 빈틈은 메워지지 않은 채 바깥쪽의 가지가 더욱더 바깥쪽으로 뻗어가게 된다. 일단 이렇게 형성된 빈틈이 많은 구조는 보다 빈틈이 많은 구조로 성장되어 간다. 이때 프랙탈 차원은 2 차원 공간 (평면) 에서 1.7, 그리고 3 차원 공간에서 2.5 정도가 된다.

▶▷  프랙탈 규칙

DLA, 즉 유한확산집합체에서 무질서하게 확산하는 입자들이 어떤 일정한 패턴의 모양을 만들어내는 모습에서 「무질서로부터 질서」가 탄생하는 장엄한 과정을 눈여겨 볼 수 있다. 더구나 확산의 속도를 높이면 눈의 결정처럼 대칭적인 모습도 만들어진다. 앞에서 본 것처럼 자연의 모습은 대부분 랜덤한 프랙탈 구조를 갖고 있다. 자연은 단순한 무질서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불규칙한 산의 모습이나, 구름에서도 일정한 프랙탈 차원을 갖는 '프랙탈 규칙' 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이런 뜻에서 프랙탈은 '규칙적' 인 도형과 '불규칙적' 도형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고 할 수 있다. 프랙탈은 질서로부터 무질서로 넘어가는 가교이며, 무질서에서 질서가 탄생하는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마치도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신과 인간 사이에 끼어든 것처럼···.

이렇게 자연을 관찰하면 여러 가지 재미있는 프랙탈 구조를 찾아낼 수 있다. 가령, 3 면이 해양인 우리네 바다에서 어업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파도의 높이에 대한 통계 조사에도 프랙탈 구조가 있다. 파도의 높이를 예측하는 일은 배와 선원을 보호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여기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지만, 앞으로 프랙탈 이론의 발전은 목전의 현실적인 문제에도 그 쓰임새가 크게 증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