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논리
생명의 그물 : Fritjof Capra 지음, 김용정.김동광 옮김, 범양사 출판부, 1998 (원서 : The Web of Life), Page 77~103.
베르탈란피가 일반 시스템 이론을 연구하는 동안, 자기안내 self-guiding와 자기조절 기계를 개발하기 위한 시도는 전혀 다른 연구분야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분야는 이후 생명에 대한 시스템적 관점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여러 분야에서 이끌어 낸 이 새로운 과학은 의사소통과 제어라는 문제에 대한 새로운 통합적인 접근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개념들의 전체적인 복합을 포괄하며, 위너에 의해 촉발되어 '사이버네틱스'라는 특별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 말은 그리스어 kybernetes (조타수 : 키잡이라는 뜻) 에서 유래한 것이다. 위너는 사이버네틱스를 '동물과 기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제어와 의사소통 communication'의 과학이라고 정의했다. (주석 : Wiener (1948). 이 말은 이 책의 부제이다.)
사이버네틱스는 등장한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아 강력한 지적 운동이 되었다. 그것은 독자적으로 유기체설 생물학과 일반 시스템 이론을 수립했다. 사이버네티스트들은 생물학자도 생태학자도 아니었다. 그들은 수학자, 신경과학자, 사회과학자 그리고 공학자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수준의 기술에 관여하고 있었고 의사소통의 패턴들, 특히 닫히 고리와 연결망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연구는 그들을 피드백과 자동조절 그리고 그 이후 자기조직화의 개념으로 이끌었다.
유기체설 생물학과 게슈탈트 심리학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던 조직패턴에 대한 주의의 집중은 사이버네틱스에서도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특히 위너는 생명을 충분히 과학적으로 기술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조직의 패턴 즉, 빗물질적 실체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메시지, 제어, 피드백 등과 같은 새로운 개념들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 후 위너는 동물과 기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의사소통과 제어의 패턴에서 생명의 핵심적인 특성인 일반적인 패턴의 개념으로 패턴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그는 1950년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 속의 소용돌이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속되는 물질이 아니라 스스로 영속하는 패턴이다.' (주석 : Wiener (1950). p. 96.)
사이버네틱스 운동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되던 와중에 시작되었다. 당시 수학자, 신경과학자 그리고 공학자들이 ― 그 중에는 위너, 폰 노이만 John von Neumann, 섀넌 claude shanon 그리고 맥컬록 Warren McCulloch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 비공식적인 연결망을 구성해서 그들의 공통된 과학적 관심을 추구해 나갔다. <주석 : Heims (1991)>. 그들의 연구는 항공기의 궤적을 추적하고 격추시키는 과제를 다루는 군사적 연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후 사이버네틱스에서 이루어진 대부분의 연구와 마찬가지로 실제로 군에 의해 연구자금을 지원받았다.
최초의 사이버네틱스들은 (실제로 그들이 스스로를 이런 명칭으로 부르게 된 것은 수년 후의 일이었다) 정신현상의 배후에 깔려 있는 신경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그것을 명확한 수학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유기체설 생물학자들이 데카르트의 이분법에서 물질적 측면을 다루면서 기계론에 반기를 들고 생물학적 형태를 탐구해 나간 반면, 사이버네티스트들은 정신적인 측면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처음부터 엄밀한 마음의 과학 science of mind을 창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주석 : Varela et al. (1991). p. 38.> 이러한 접근방식이 동물과 기계에 공통된 패턴들에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측면에서 매우 기계적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밝혀진 정신현상의 시스템 개념들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수많은 새로운 관점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실제로 뇌와 마음에 대한 통일된 과학적 개념을 제공하는 오늘날의 인지과학의 뿌리는 사이버네틱스의 초기까지 곧장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사이버네틱스의 개념적 틀은 흔히 메이시 회의 Macy Conferences라 불리는 뉴욕시에서 열린 전설적인 일련의 회의에서 수립되었다. <주석 : Heims (1991)>. 이 회의들 ― 특히 1946년에 열린 첫 번째 회의의 경우 ― 은 매우 활력적이었고, 당시 새로운 개념과 사고방식을 탐구하기 위해 학제적인 interdisciplinary 토론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던 고도로 창조적인 인물들을 하나의 독특한 집단으로 묶어 냈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과학자들은 두 개의 핵심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첫 번째 그룹은 최초의 사이버네티스트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거기에는 수학자, 공학자 그리고 신경과학자들이 참여했다. 또다른 그룹은 베이트슨과 미드Margaret Mead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 옮긴이) 주위에 몰려든 인문학 분야의 학자들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회의에서부터 사이버네티스트들은 자신들과 인문학자들 사이에 벌어져 있던 학문적 간격을 잇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위너는 일련의 회의에서 중심적인 인물이었고, 회의장에 과학에 대한 그의 정열을 불어넣었다. 참석자들은 한편으로 그의 탁월한 사상에 감탄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종 나타나는 그의 불손한 태도에 놀랐다. 많은 참석자들의 말에 따르면, 위너는 한창 토론이 진행되는 와중에 잠이 들어 버리는 당혹스러운 태도를 보였고, 심지어는 코를 골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용케 그는 회의에서 진행되는 토론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나는 즉시, 그는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거나 날카로운 비평을 퍼부었다. 그는 철저히 이런 토론을 즐겼고, 특히 회의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즐겼다.
위너는 탁월한 수학자였을 뿐 아니라 뛰어난 철학자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그는 생물학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자연적인 살아 있는 시스템들의 풍부함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의사소통과 제어의 메커니즘을 뛰어넘어보다 큰 조직 패턴을 보았고, 자신의 개념을 사회와 문화적인 문제들의 폭넓은 영역과 관련지으려고 시도했다.
폰 노이만은 메이시 회의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두 번째 인물이었다. 양자론에 대한 고전적 논문을 썼던 수학천재인 그는 게임이론의 창안자였고, 디지털 컴퓨터의 발명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폰 노이만은 가공할 만큼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그의 머리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그는 수학문제를 보자마자 그 본질을 이해했고 수학문제든 실제적인 문제든 간에 일단 그가 분석을 내리면 더 이상 토론이 불필요할 정도였다고 한다.
메이시 회의에서 폰 노이만은 사람의 뇌의 처리과정에 매료되었고, 뇌의 기능을 형식논리적 측면으로 기술하는 것을 과학의 궁극적인 도전으로 보았다. 그는 논리의 힘을 절대적으로 확신했고 기술력에 무한한 신뢰를 가졌으며 평생의 연구를 통해 과학지식의 보편적인 논리적 구조를 추구했다.
폰 노이만과 위너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주석 : Heims (1980)>. 두 사람 모두 수학의 천재로 추양받았고, 사회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은 같은 세대의 여타 수학자보다 훨씬 강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그들의 잠재적인 정신력을 믿었다.
시인이나 예술가처럼 그들은 베겟머리에 연필과 종이를 가까이 두고 잠을 청했으며, 연구 과정에서 꿈의 심상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 사이버네티스트의 두 선구자는 과학에 대한 접근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나타냈다. 폰 노이만이 제어와 프로그램을 찾으려고 노력한데 비해, 위너는 자연적인 패턴의 풍부함을 높이 평가하고 포괄적인 개념적 종합을 추구했다.
이러한 특징을 유지하면서 위너는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했다. 반면 폰 노이만은 권력자 집단 속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메이시 회의에서 이들의 권력에 대한, 특히 군부에 대한 상이한 태도는 마찰을 빚게 된 근원이 되었다. 그 결과 두 사람은 완전한 결별로 치닫게 되었다. 폰 노이만이 이후 죽을 때까지 군사 고문직을 계속한 데 비해 ― 특히 컴퓨터를 무기 시스템에 적용시키는 분야에서 ― 위너는 첫 번째 메이시 회의가 끝난 직후 군사적인 연구에서 손을 뗐다. 그는 1946 년 말에 이렇게 썼다. '앞으로 나는 무책임한 군사전문가의 손에 의해 상당한 피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연구결과는 발표하지 않겠다.' (주석 : 같은 책. p. 208.)
위너는 베이트슨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 위너는 메이시 회의가 계속되는 동안 그와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 위너와 마찬가지로 베이트슨의 정신도 여러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었고, 일반적인 패턴과 강력한 보편추상을 찾기 위해 여러 과학분야의 기본가정과 방법들에 서슴없이 도전했다. 베이트슨은 스스로 생물학자라고 생각했으며, 자신이 관여하게 된 여러 분야들, 즉 인류학, 인식론, 정신의학 그리고 그 밖의 분야들을 생물학에 속하는 분과들로 간주했다. 그가 과학에 쏟아부은 엄청난 정열은 생명과 연관된 현상들의 풍부한 다양성을 포용해 들였고, 그의 주된 목적은 그 다양성 속에서 공통적인 조직원리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 수년 후 그는 원리를 '서로를 연결짓는 패턴'이라고 불렀다. <주석 : Capra (1988). pp. 73ff.> 사이버네틱스 회의에서 베이트슨과 위너는 모두 포괄적이고 전일론적인 기술을 찾았지만, 여전히 신중하게 과학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폭넓은 범위의 현상들에 대한 시스템적 접근방식 systems approach을 창안했다.
위너를 비롯한 그 밖의 사이버네티스트들과의 대화는 베이트슨의 이후 연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시스템적 사고를 가족요법에 적용시킨 선구자이며, 알코올 중독의 사이버네틱스 모형을 개발했고, 정신분석학의 이중구속 이론 double-bind theory (아동 등이 두 가지 모순적인 명령을 받아 어느 쪽을 따르더라도 관계를 위협하게 되는 딜레마 ― 옮긴이) 을 개발하기도 했다. 특히 이중구속 이론은 레잉 R.D. Laing을 비롯한 그 밖의 많은 정신병학자들에게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베이트슨이 과학과 철학에 미친 가장 중요한 공적은 사이버네틱스 원리에 기초를 둔 정신의 개념일 것이다. 그는 이 개념을 1960 년대에 수립했다. 이 현명적인 연구는 시스템적 현상으로서의 정신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었다. 이것은 정신과 육체의 데카르트적인 분리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성공적인 시도였다. (주석 : 본문 pp. 227~28.)
10차례에 걸친 메이시 회의의 의장은 일리노이 대학의 정신의학과 생리학 교수인 맥컬록이었다. 그는 뇌연구 분야에서 확고한 명성을 얻고 있었고, 정신과 뇌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려는 도전이 회의의 중심주제임을 확실히 했다.
사이버네틱스의 개척자적인 시기에 시스템적 사고 전반에 걸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것 외에도 매우 인상적인 일련의 구체적인 성과들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대부분의 새로운 개념과 이론들이 최소한 개략적으로라도 첫 번째 회의부터 토론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주석 : Heims (1991). pp. 19ff>
첫 번째 회의는 폰 노이만의 디지털 컴퓨터 (당시까지 디지털 컴퓨터는 아직 제작되지 않았다) 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그런 다음 폰 노이만의 컴퓨터와 사람의 뇌 사이의 유사성에 대한 설득력 있는 발표가 이어졌다. 이후 30년 동안 사이버네티스트들의 인지에 대한 관점을 지배하게 될 이러한 유추의 토대는 뇌의 기능을 이해하는 데 수학적 논리를 ― 사이버네틱스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 중 하나인 ― 사용한 것이었다.
폰 노이만의 설명이 있은 다음, 그 연구의 중심사상에 대한 위너의 상세한 토론이 있었다. 거기에서 위너는 일련의 새로운 개념들을 도입했다. 이 개념들은 그 후 오랜 기간에 걸쳐 정보이론과 의사소통 이론 communication theory에 결합해 들어갔다. 베이트슨과 미드는 사회과학의 개념적 틀을 평가하면서 자신의 발표를 끝맺었다. 두 사람은 그런 틀이 부적절하며, 새로운 사이버네틱스의 개념들에 의해 촉발된 기본적인 이론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이버네틱스의 모든 주요업적들은 유기체와 기계 사이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서, 살아 있는 시스템들의 기계론적 모형들에서 비롯되었다. 결정적인 차이는 위너의 피드백 개념에서 구체화되었고, '사이버네틱스'라는 개념 자체에서 표현되었다. 피드백 루프는 인과적으로 연결된 구성요소들의 순환적인 배열이다. 이 속에서 최초의 원인이 루프의 연결을 통해 전파되며, 각각의 요소는 다음 요소에 영향을 미쳐 마지막 요소가 주기의 첫 번째 요소에 그 영향을 '피드백' 한다. (그림 1)
이러한 배열의 결과는 첫 번째 고리 ('입력') 가 마지막 고리 ('출력') 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최초의 효과가 주기전체를 순환하는 매 단계에서 변경되면서, 시스템 전체의 자기조절로 귀결한다. 위너의 표현을 빌자면, 피드백은 "'예상된' 행동이라기보다는 '실제' 행동을 기반으로 어떤 기계를 제어하는 것이다." <주석 : Wiener (1950). p. 24.> 좀 더 넓은 의미에서 피드백은 어떤 과정이나 행동의 결과에 대한 정보를 그 근원에 대해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위너가 처음 사용했던 조타수의 예는 피드백 루프의 예 중에서 가장 간단한 것이다. (그림 2) 보트가 현재의 경로에서 이탈할 때 ― 가령 오른쪽으로 ― 조타수는 이탈을 평가하고, 보트의 키를 왼쪽으로 움직인다. 이 행동으로 보트의 이탈은 줄어들어 결국 원래의 정확한 위치로 돌아온 다음 이번에는 왼쪽으로 이탈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나는 어느 한 단계에서 조타수는 보트의 이탈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내리고, 그에 따라 키의 방향을 다시 바꾸고, 이런 식의 움직임이 계속된다. 따라서 그는 보트가 올바른 경로를 유지하게 만들기 위해 연속적인 피드백에 의존하는 것이다. 보트를 조종하는 기술은 이러한 요동 oscillation을 가능한 한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자전거를 탈 때에도 이와 유사한 피드백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맨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는 균형의 연속적인 변화를 통해 그에 따라 자전거를 조종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고 느낀다. 따라서 초보자가 탄 자전거의 앞바퀴는 심하게 흔들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점차 숙달되면서 우리의 뇌는 자동적으로 피드백을 조사·평가하고, 그에 따라 반응한다. 그리고 앞바퀴의 요동은 점차 줄어들어 일직선을 따라 달리게 된다.
피드백 루프를 포함하는 자동조절 기계는 사이버네틱스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18세기 말엽에 와트 James Watt에 의해 발명된 증기기관이 원심 조속기는 이런한 자동조절 기계의 고전적인 예에 해당한다. 그리고 최초의 자동온도 조절장치는 그보다 훨씬 먼저 발명되었다. <주석 : Richardson (1991). pp. 17ff> 이러한 초기의 피드백 장치들을 발명한 공학자들은 설계도 속에 그 장치의 작동을 기술하고 그 기계적 구성부분들을 그렸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속에 묻혀 있는 순환적인 인과성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19세기에 유명한 물리학자 맥스웰 James Maxwell은 증기 조속기에 대한 수학적 분석을 쓰면서도 그 밑에 내재해 있는 루프의 개념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피드백과 순환적 인과성 circular casuality사이의 연관성이 올바로 인식되기까지는 다시 한 세기를 기다려야 했다. 사이버네틱스가 수립되던 초기단계에서 피드백 루프를 포함하는 기계들은 공학분야의 관심의 초점이 되었고, 그 이후 그 기계들은 '사이버네틱 기계 cybernetic machines'라 불리게 되었다.
피드백 루프에 대한 최초의 상세한 논의는 위너, 바이겔로프 Julian Bigelow 그리고 로젠블루드 Arturo Rosenblueth 가 발간한 <행동, 목적 그리고 목적론 Behavior, Purpose, and Teleology> 이라는 제목의 논문 속에서 등장했다. (주석 : 같은 책. p. 94.) 이 선구적인 논문에서 저자들은 피드백이라는 공학적 개념 밑에 내재하는 논리적 패턴으로서 순환적 인과성의 개념을 도입했을 뿐 아니라, 그 개념을 최초로 생물에 적용시켰다. 엄밀한 행동주의자의 자세를 취하면서, 그들은 피드백을 통한 자동조절을 포함하는 모든 기계와 유기체들의 행동이 '목적적 purposeful'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그 행동이 어떤 목적을 명령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목적지향적인 행동의 모형을 여러 가지 예들 ― 쥐를 잡는 고양이, 탁자 위에서 유리작은 들어올리는 사람 등등 ― 을 통해 입증했다. 그들은 그러한 예들을 그 밑에 내재하는 순환적인 피드백 패턴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했다.
위너와 그의 동료들은 피드백을 생물이 역동적인 균형상태에서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자기조절인 항상성의 필수적인 메커니즘으로 인식했다. 캐넌이 10년 전에 그의 영향력 깊은 저서 《신체의 지혜 The wisdom of the Body》에서 항상성의 개념을 소개했을 때, <주석 : Cannon (1932)> 그는 여러 가지 자기조절하는 신진대사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했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닫힌 인과관계의 루프들을 분명하게 식별해 내지 못했다. 따라서 사이버네티스트들에 의해 도입된 피드백 루프의 개념은 수많은 자기조절하는 과정들을 생명의 특성으로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었다. 오늘날 우리는 피드백 루프가 살아 있는 시스템들 속에 어디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루프들이 살아 있는 시스템들의 특성인 비선형 연결망 패턴의 특수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사이버네티스트들은 자기균형적 self-balancing (또는 '음') 피드백과 자기강화적 self-reinforcing (또는 '양') 피드백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피드백을 구분했다. 후자의 예는 일반적으로 폭주효과, 또는 악순환 주기라 불리는 것으로, 루프를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과정에서 최초의 효과가 지속적으로 증폭된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양'과 '음'의 전문적인 의미가 독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주석 : Richardson (1991) ; pp 5~7.> A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B에서도 같은 방향의 ― 예를 들어 A가 증가하면 B도 증가하고, A가 감소하면 B도 감소하는 식으로 ― 변화를 일으킬 때, A에서 B에 이르는 인과관계의 영향을 '양'이라고 한다. 그리고 B에서 정반대 방향의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 ― 즉 A가 증가하면 B가 감소하고, A가 감소하면 B가 증가하는 식으로 ― 그 인과관계의 연결을 '음'이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어, 그림 3에 다시 그린 배의 조타과정을 나타낸 피드백 루프에서, '이탈의 평가'와 '역방향 조타 countersteering'사이의 연결은 '양'이다. 다시 말해서, 미리 정해진 경로에서 더 멀리 벗어 날수록 역방향 조타의 량도 늘어난다. 그러나 그 다음의 연결은 '음'이다. 즉, 역방향 조타의 량이 증가할수록 이탈도 급격하게 감소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결은 다시 양이 된다. 이탈이 줄어들수록 새롭게 평가된 값은 이전에 평가된 값보다 작아질 것이다. 여기에서 기억해 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와 '-'라는 표시가 값의 증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요소들의 상대적인 변화의 방향, 즉 변화의 방향이 같을 경우에는 '+', 반대 방향일 때에는 '-'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이런 부호가 편리한 이유는 그것들이 피드백 루프의 전체적인 특성을 결정하기 위한 매우 단순한 규칙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루프가 홀 수 개의 음의 연결들을 갖는다면 자기균형적 ('음') 이고, 짝수 개의 음의 루프를 포함한다면 자기강화적 ('양') 일 것이다. (주석 : 좀 더 전문적인 표현으로 '+'와 '-'는 '극성'이라고 부른다. 이 법칙은 피드백 루프의 극성이 그 인과고리의 극성의 산물임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림으로 나타낸 예에는 음의 연결이 하나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루프는 음 또는 자기 균형적이다. 피드백 루프는 양과 음의 인과적 연결을 모두 포함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리고 이 루프의 전체적인 성격은 루프에 포함되어 있는 음의 연결의 숫자를 세는 방법으로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다.
보트의 조타와 자전거 타기와 같은 예들은 피드백이라는 개념에 이상적으로 적합하다. 이런 예들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간의 경험들을 언급하고 있으며, 따라서 즉각적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위너와 그의 동료들은 자기조절을 위해 고안된 기계장치에서 동일한 원리를 싫증하기 위해서 흔히 피드백 공학의 가장 간단한 최초의 예들 중 하나로 증기기관의 원심조속기를 사용했다 (그림 4). 이 장치는 제각기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식으로 부착되어 있는 2개의 추 ('플라이볼 flyball') 가 달린 회전하는 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회전속도가 증가하면 원심력에 의해 작동하도록 되어 있다. 조속기는 증기기관의 실린더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으며, 2개의 추는 피스톤에 연결되어 있다. 추들이 서로 멀어지는 방향으로 이동하면 피스톤이 증기를 막도록 설계되어 있다. 증기의 압력이 기관을 움직이며, 증기기관이 플라이휠을 돌린다. 그리고 다시 플라이휠이 조속기를 움직이면서 원인과 결과의 루프가 완결된다.
이러한 피드백 순서는 그림 4-5의 루프 도표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기관의 속도증가는 조속기의 회전을 빠르게 한다. 이것이 추들 사이의 거리를 감소하면, 기관의 속도 역시 줄어들 게 된다. 그에 따라 조속기의 회전이 느려지고, 추들은 가까워진다. 이렇게 되면 다시 증기의 공급이 늘어나고 기관의 속도가 높아진다. 이런 과정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이 루프 속에서 유일한 음 (-) 의 연결은 '추들 사이의 거리'와 '증기공급'사이의 연결이며, 따라서 전체적인 피드백 루프는 음 (-), 즉 자기균형의 루프인 것이다.
사이버네틱스의 초기부터 위너는 피드백이 생물체뿐 아니라 사회체계를 모형하는데 중요한 개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사이버네틱스》에 이렇게 썼다.
사회 시스템이 개인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유기체이며, 커뮤티케이션의 시스템에 의해 하나로 묶여 있으며, 그 속에서 본질적으로 피드 백인 순환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역학을 갖는다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다. <주석 : Wiener (1948). p. 24.>
베이트슨과 미드가 사이버네틱스에 대해 그토록 비상한 관심을 가졌던 것은 피드백이 생명의 일반적인 패턴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사회과학자로서 그들은 사회현상 속에 함축적으로 내재해 있는 여러 가지 순환적인 인과성의 예들을 발견했고, 메이시 회의를 통해 이러한 현상들의 동역학이 일관된 통합 패턴 속에서 드러난 것이다.
사회과학의 역사를 통해 사회생활 속에 들어 있는 자동조절 과정을 기술하는데 숱한 은유들이 사용되어 왔다.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은유를 몇 가지 들자면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 이론에서 시장을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손', 미국 헌법의 기본정신인 '억제와 균형 checks and balances (통치기구의 각 부분에 서로의 행동을 수정 또는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줌으로써 헌법상의 기능이 원활하게 수행되도록 고안된 원리 ― 옮긴이)' 그리고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에 나타나는 터제와 안티터제의 상호작용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이러한 모형과 은유들에 의해 기술되는 현상들은 모두 피드백 루프에 의해 표현되는 인과의 순환적 패턴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저자들 중 누구도 그런 사실을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 <주석 : Ricahardson (1991). pp. 59ff.>
자기균형 피드백의 순환적인 논리 패턴이 사이버네틱스 이전에 인식되었다면, 자기강화적 피드백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악순환'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언어 속에서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은유는 사건들의 순환적인 성격으로 인해 그 자체로 점차 악화되는 경향을 갖는 나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강화의 순환적 성격, 즉 '폭주적인' 피드백 루프는 훨씬 이전부터 분명하게 인식되어 왔다. 왜냐하면 그로 인한 효과가 생물계에 널리 확산되어 있는 음의 피드백이 주는 자기균형보다 훨씬 더 극적이기 때문이다.
자기강화적인 피드백 현상을 기술하는 또다른 공통적인 은유들이 있다. (주석 : 같은 책. pp. 79ff.) 원래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공포였지만 스스로 예견함으로써 그 공포를 실현시키는 '자기실현적인 예언 self-fulfilling prophecy' 그리고 오직 추종자들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단순한 이유로 지지력을 높여 가는 경향인 '악대차 효과 bandwagon effect'가 가장 잘 알려진 두 가지 예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하는 속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자기강화적인 피드백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그 지식은 사이버네틱스의 초기국면에서 거의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다.
위너를 둘러싼 사이버네티스트들은 폭주적인 피드백 현상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그 현상을 더 이상 연구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생물체 속에서 나타나는 자기조절적, 항상적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실제로 순수한 자기강화적 피드백 현상은 자연 속에서 희귀하다. 일반적으로 그 효과는 폭주적 경향을 억제하는 음의 피드백 루프에 의해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생태계 속에서 모든 생물종은 지수함수적 개체군 증가의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그 생태계 내에서 균형을 유지하게 해주는 여러 가지 상호작용에 의해 규제된다. 지수함수적 폭주는 그 생태계가 심각하게 교란되었을 경우에만 나타날 것이다. 그 때 일부 식물들은 '잡초'가 되고, 일부 동물들은 해를 끼치는 '골칫거리 짐승'이 될 것이며, 다른 종들은 멸종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생태계 전체의 균형이 위협받게 될 것이다.
1960 년대에 인류학자이자 사이버네티스트인 마루야마 Magoroh Maruyama는 폭넓게 읽힌 논문 <제2의 사이버네틱스 The second Cybernetics>에서 자기강화 또는 '일탈 - 증폭' 피드백 과정들에 대한 연구결과를 제기하고 있다. <주석 : Maruyama (1963).> 그는 인과관계의 고리에 '+'와 '-'부호를 붙인 피드백 도표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생물학적 사회적 제반현상 속에서 나타나는 양과 음의 피드백 과정의 상호작용에 대한 상세한 분석에 이 편리한 표기법을 계속 사용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사이버네틱스의 피드백 개념을 당시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수립된 '상호인과성' 이라는 개념과 연결시켜 사이버네틱스 원리들이 사회사상에 영향을 미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주석 : Richardson (1991). p. 204.>
시스템적 사고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사이버네틱스들의 피드백 루프의 구조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의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는 그들의 조직의 패턴을 묘사했던 인식이다. 피드백 루프 속에 들어 있는 순환적 인과성은 그에 상응하은 물리 시스템 속의 요소들이 원형으로 배열되어 있음을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피드백 루프란 물리적인 구조들이나 생물의 행동들 속에 묻혀 있는 관계들의 추상적인 패턴이다. 시스템적 사고의 역사에서 최초로, 사이버네티스트들은 어떤 시스템의 조직 패턴과 물리적인 구조를 명료하게 구분했다. 이것은 오늘날의 생물 시스템에 대한 이론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구분이다. (주석 : 본문 pp. 210~11)
사이버네틱스의 중요한 부분은 위너와 섀넌에 의해 1940 년대 말엽에 수립된 정보이론 theory of information이다. 이 이론은 원래 섀넌이 벨 전화연구소에서 통신효율 평가와 통신요금 부과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전신선과 전화선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의 양을 측정하고 규정하기 위한 시도를 벌이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에서 '정보'라는 말은 정보이론에서 고도로 전문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와는 큰 차이가 있으며, 그 의미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용어의 사용을 둘러싸고 끝없는 혼란이 벌어졌다.
메이시 회의의 정기적인 참석자이자 문서로 작성된 회의록의 편집자였던 포에스터 Heinz von Foerster에 따르면, 이 모든 문제는 매우 불행한 언어적 오류, 즉 '정보'와 '신호 signal'사이의 혼동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혼동 때문에 사이버네티스트들이 잣니들의 이론을 신호이론이 아니라 정보이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석 : Heinz von Foerster와의 개인적인 대화, 1994 년 1월.)
그 후 정보이론은 주로 어떻게 잡음으로 가득 찬 통신 채널 속에서 신호로 부호화된 메시지를 추출하는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러나 또한 위너는 이처럼 부호화된 메시지가 본질적으로 조직의 패턴이라는 사실을 강조했고, 통신의 패턴과 생물 속의 조직 패턴사이의 유사성을 끌어들이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살아 있는 시스템들을 패턴이라는 측면에서 사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1950 년대와 1960 년대에 애슈비는 사이버네틱스 운동의 주도적인 이론가가 되었다. 맥컬록과 마찬가지로 에슈비도 정신과정을 거친 신경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맥컬록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신경계를 연구하고 신경적 과정들의 사이버네틱스 모형들을 세웠다. 저서 《뇌의 설계 Design for a Brain》에서 애슈비는 순수하게 역학적이고 결정론적인 관점에서 뇌의 독특한 적응행동, 기억 용량 그리고 뇌 기능의 그외 패턴들을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어떤 기계나 동물이 특정순간에 특정방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그 순간의 물리적, 화학적 성질이 그 밖의 다른 행동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석 : Ashby (1952). p. 9.>
에슈비가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접근방식에서 위너에 비해 훨씬 더 데카르트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애슈비와는 달리 워너는 기계적 모형과 비기계적 동물 시스템을 분명하게 구분지었다. 위너는 이렇게 썼다. '내가 생물과 기계를 비교할 때…… 단 한순간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생물의 특정한 물리적, 화학적 그리고 영적 과정들이 생물을 모방한 기계의 그것들과 동일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주석 : Wiener (1950). p. 32.>
자신의 엄격한 기계적 관점에도 불구하고, 애슈비는 신경 시스템 (신경계) 의 과정들에 대한 정교한 사이버네틱스 모형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통해 갓 태어난 인지과학 분야를 괄목할 정도로 발전시켰다. 특히 그는 살아 있는 시스템들이 ―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 조직적인 측면에서 볼 때 닫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측면에서는 열려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애슈비는 이렇게 썼다. '사이버네틱스는…… 에너지의 측면에서 열려 있지만, 정보와 제어라는 측면에서는 닫혀 있는 ― 즉, 정보가 밀폐된 ― 시스템들에 대한 연구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주석 : Ashby (1956), p. 4.>
사이버네티스트들이 의사소통과 제어의 패턴을 탐구하는 동안, '마음의 논리'를 이해하고 그 논리를 수학적 언어로 표현하려는 노력은 항상 그들의 토론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따라서 수십 년에 걸쳐 사이버네틱스의 핵심 개념들은 생물학, 수학 그리고 공학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매력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전개되었다. 인간의 신경시스템 (신경계) nervous system 에 대한 상세한 연구는 뇌를 뉴런을 기본 구성요소로 삼는 논리회로로 생각하는 모형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관점은 디지텀 컴퓨터의 발명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이렇게 마련된 기술적인 돌파구는 다시 마음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향한 새로운 접근방식이 가능할 수 있는 개념적 토대를 제공했다. 폰노이만의 컴퓨터 발명, 그리고 그가 제기한 컴퓨터와 뇌 기능 사이의 유추는 뗄레야 뗄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하게 뒤얽혀 있는 것이어서 어는 것이 먼저인지를 판단하기는 매우 힘들다.
정신활동의 컴퓨터 모형은 인지과학의 지배적인 관점이 되었고, 이후 30여 년 동안 뇌에 대한 모든 연구를 지배했다. 여기에서 기본적인 개념은 인간의 지능이 컴퓨터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에 인지 즉, 앎의 과정은 정보처리 과정, 다른 말로 하면 일련의 규칙들에 기초를 둔 기호들의 조작으로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석 : Varela et al. (1992). pp. 39ff.>
이러한 관점의 직접적인 귀결로 전개된 것이 인공지능 artifitcial intelligence 분야이다. 인공지능 분야가 출현하자 과학문헌들은 이내 컴퓨터 지능에 대한 엉뚱한 주장들로 넘치기 시작했다. 사이먼 Herbert Simon과 뉴월 Allen Newell은 1958 년에 이렇게 썼다.
이제 세상에는 생각하고 창조할 수 있는 기계들이 등장했다. 게다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그 기계들의 능력은 ― 가까운 미래에 ― 그것들이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인간정신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에 필적할 정도로까지 점차 향상되고 있다. <주석 : Weizenbaum (1976). p. 138.>
이러한 예견은 38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로 터무늬없는 것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학자들과 일반대중들 사이에서 팽배하는 두뇌의 은유로서의 컴퓨터에 대한 열광은 흥미롭게도 데카르트와 그의 동시대인들이 육체에 대한 은유로 시계장치에 대해 가졌던 열광과 유사하다. (주석 : 같은 책. pp. 23ff.) 데카르트의 경우, 시계는 특수한 기계였다. 시계는 태엽을 감아 주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유일한 기계였다. 이러한 시계의 매커니즘이 '생물과 흡사한' 기계를 만드는 데 널리 사용된 것은 프랑스의 바로크 시대였다. 그런 기계장치들은 얼핏 자발적으로 보이는 움직임으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대부분의 동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데카르트 역시 이 자동인형 automaton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동인형의 기능을 살아 있는 생물의 그것과 비교했다.
우리는, 단지 인공적인 것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힘을 가진 시계, 인공분수, 제분기 그리고 그와 유사한 기계들을 본다. …… 나는 기술자가 만든 이런 기계들과 오로지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여러 가지 동물의 육체 사이에서 아무런 차이도 발견하지 못한다. <주석 : capra(1982). p. 47.>
17세기에 시계장치는 유일한 자동기계였고, 그 후 300여 년 동안 ― 컴퓨터가 발견되기 전까지 ― 그런 종류로 유일한 기계라는 지위를 유지해 왔다. 컴퓨터 역시 새롭고 독특한 기계이다. 컴퓨터는 일단 프로그램되고 스위치를 켜 주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움직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을 하기도 한다. 그 새로운 일이란 바로 정보처리이다. 그리고 폰 노이만과 초기의 사이버네티스트들이 인간의 정신 역시 정보를 처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들이 컴퓨터를 두뇌, 심지어는 마음 (정신) 에 대한 은유로 사용한 것은 데카르트가 육체에 대한 은유로 시계를 사용했던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육체에 대한 데카르트의 모형으로 시계장치가 그러했듯이, 뇌에 대한 모형으로서의 컴퓨터도 처음에는 매우 유용했다. 컴퓨터 모형은 인지를 과학적으로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롭고 자극적인 틀을 제공해 주었으며, 그 결과 여러 가지 새로운 연구분야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1960 년대 말엽이 되자, 그 자체 한계의 탐구와 대안에 대한 토론을 불러일으켰던 최초의 모형은, 과학에서 흔히 그러하듯, 하나의 도그마로 굳어 버렸다. 이후 10년 동안 신경생물학의 거의 모든 분야는 정보처리라는 관점에 의해 지배되었고, 그 관점의 기원과 그 속에 배어들어 있는 가정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문조차 제기되지 않았다.
컴퓨터 과학자들은 컴퓨터를 기술하는데 '지능', '기억' 그리고 '언어'등의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정보처리라는 도그마를 확고하게 굳히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고, 이 과정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 과학자 자신들을 포함해서 ― 이러한 용어들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인간의 개념들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중대한 오해이다. 이런 잘못된 생각이 인간을 기계로 간주하는 데카르트적인 설명방식을 영속시키고, 심지어는 강화시키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최근 인지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발전은 인간의 지능이 기계 또는 '인공지능' 과는 완전히 다른 무엇임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사람의 신경계는 어떤 정보도 처리하지 않는다 <외부세계에 이미 존재하는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불연속적인 요소들이 인지 시스템 (인지계) cognitive system에 의해 수집된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인지계는 끊임없이 자신의 구조를 바꾸어 가면서 환경과 상호작용을 한다. (주석 : 본문 pp. 360~61.) 게다가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의 지능, 인간의 기억 그리고 인간의 판단이 결코 완벽하게 합리적이지 않으며, 항상 여러 가지 감정에 의해 착색되어 있다는 강력한 증거를 발견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주석 : 본문 pp. 373~74.) 우리의 사고는 항상 육체의 감각이나 그 과정들에 수반된다. 설명 우리가 감각이나 감정을 억누르는 경우가 많다 하더라도, 우리는 항상 우리의 육체와 함께 사고한다. 그리고 컴퓨터는 신체를 갖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인간적 문제들은 컴퓨터의 지능에는 항상 낯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와이젠봄 Joseph Weizenbaum이 그의 고전적인 저서《컴퓨터의 힘과 인간이성 Computer Power and Human Reason》에서 힘주어 역설했듯이, 컴퓨터가 특정과제들을 영원히 해결할 수 없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과제들 중에는 지혜, 연민, 존경, 이해 또는 사랑과 같은 순수한 인간적 특성들을 요구하는 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만약 이러한 특성들을 요구하는 결정과 의사소통이 컴퓨터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삶을 비인간화시키고 인간성을 빼앗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러면 와이젠봄의 말을 인용해 보자.
인간의 지능과 기계의 지능을 구분하는 선은 반드시 그어져야 한다. 만약 그런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컴퓨터화된 정신요법 computerized psychotherapy 의 주창자들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시계장치와 다름없는 무엇으로 인식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에 불과할 것이다 ……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컴퓨터에게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판사 (또는 정신병학자) 가 어떻게 알겠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엄청난 불경이 될 것이다. <주석 : Weizenbaum (1976). pp. 8. 226.>
사이버네틱스는, 기계론적 과학과의 연결 그리고 그 연결의 강한 군사적 연관성 때문에 그 출발 직후부터 과학기관들 중에서 높은 위세를 누렸다. 컴퓨터가 산업사회의 모든 계층에 걸쳐 확산되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깊은 영향을 미치면서, 이러한 위세는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 더욱 높아 갔다. 위너는 흔히 제2의 산업혁명에 비교되는 이러한 변화들을 사이버네틱스 초기에 이미 예견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위너는 자신이 그 탄생을 돕고자 했던 새로운 기술의 어두운 측면까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새로운 사이버네틱스의 과학에 기여한 우리들은 …… 도덕적으로, 최소한 그다지 편안치 못한 위치에 처해 있다. 우리는 선과 악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엄청난 잠재력의 기술적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는…… 새로운 과학의 수립을 도운 것이다. <주석 : Wiener (1948). p. 38.>
자동기계가…… 노예노동의 엄밀한 경제적 등가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노예노동과 경재하는 모든 노동은 노예노동이라는 경제적 조건들을 수용해야 한다. 이런 사태가 실업을 불러올 것임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그리고 그로 인한 상황은 30년대의 경제대공황이 하찮은 장난 정도로 느껴질 만큼 끔찍할 것이다. <주석 : Wiener (1950). p. 162.>
위너의 저작에 들어 있는 이와 유사한 그 밖의 글들을 통해 그가 그보다 앞선 학자들에 비해 컴퓨터가 주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평가에서 훨씬 더 뛰어난 지혜와 통찰력을 발휘했음은 분명하다. 그 후 40년이 지난 오늘날, 그 동안 개발된 컴퓨터와 그 밖의 많은 '정보기술'들은 빠른 속도로 자율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방향으로 발전했고, 우리들의 기본 개념들을 재규정하고 대안적 세계관들을 제거시키고 있다. 포스트맨 Neil Postman, 맨더 Jerry Mander 그리고 그 밖의 기술비판가들이 증명했듯이, 이것은 전세계의 산업사회들을 지배하게 된 '거대기술 megatechnology'의 전형이다. <주석 : Postman (1992). Mander (1991).> 점차 모든 문화형태들은 기술에 종속되고, 인류의 복지증진이 아니라 기술혁신이 진보와 동의어가 되었다.
과도한 컴퓨터의 사용으로 인한 정신의 궁핍화와 문화적 다양성의 상실은 특히 교육분야에서 심각하다. 포스트맨이 간결하고 명쾌하게 지적했듯이, '학습'의 의미는 변화했다. <주석 : Postman (1992). p. 19.> 교육분야에서 컴퓨터의 사용은 실질적으로 교육과정의 모든 양상을 변화시키게 될 혁명으로 칭송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막강한 힘을 가진 컴퓨터 산업에 의해 활발하게 장려되고 있으며, 관련기업들은 컴퓨터 사용이 불러올 수 있는 무수한 유해한 영향들을 언급조차 하지 않으면서 교사들에게 모든 수준에서 ― 심지어는 유치원에서조차 ― 컴퓨터를 교육도구로 활용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주석 : Sloan (1985). Kane (1993). Bowers (1993). Roszak (1994).>
학교에서의 컴퓨터 사용은 오늘날에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관점, 즉 인간을 정보처리기로 보는 관점을 그 기반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컴퓨터 사용의 증가는 지속적으로 사고, 지식 그리고 의사소통에 대한 잘못된 기계적 개념을 강화시키고 있다. 흔희 정보는 사고의 기반으로 표현되지만, 실제로 인간정신은 정보 없이 개념을 통해 사고한다. 로즈작이《정보 숭배 The cult of Informaion》라는 저서에서 세밀하게 입증했듯이, 정보가 사상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 정보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상은 정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유래하는 통합된 패턴들이다. <주석 : Roszak (1994). pp. 87ff.>
인지에 대한 컴퓨터 모형에서, 지식은 맥락과 가치에서 자유로우며, 추상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삼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모든 의미 있는 지식은 맥락적 지식이다. 마찬가지로 언어는 그것을 통해서 '객관적인' 정보가 소통되는 도관으로 간주된다. 실제로 비우어즈 C. A. Bowers는 언어가 은유적이며, 한 문화 속에서 공유되는 암묵적인 이해를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고 웅변으로 주장했다. <주석 : Bowers (1993). pp. 17ff.> 이러한 맥락에서 컴퓨터 과학자와 공학자들에 의해 사용되는 언어가 그 근원이 군사문화인 은유들로 ― '명령', '탈출', '이중안전장치 fail-safe (고장이 일어날 경우 안전장치가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 핵무기등에 사용됨 ― 옮긴이)', '조종', '목표 target' 등등 ―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러한 용어들은 문화적 편견을 부추기고, 그 전형을 강화시키며, 대부분의 어린 여학생들을 포함하는 특정집단들이 학습경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주석 : Douglas D. Noble. The Regime of Technology in Education in Kane (1993).> 이와 연관된 문제가 컴퓨터와 폭력 그리고 컴퓨터와 대부분의 컴퓨터 비디오 게임들의 군사적 성격 사이의 연관성이다.
지난 30년 동안 뇌 연구의 인지과학을 지배해 왔고 오늘날까지도 널리 확산되어 있는 기술 패러다임을 창조한 후에야 정보처리라는 도그마에 대해 진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석 : Varela et al. (1992). pp. 85ff.> 실제로 이미 사이버네틱스의 선구적 단계부터 비판적인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실제 뇌에 어떠한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 뇌 속에는 중앙논리 처리장치가 없다는 주장, 그리고 정보는 국부적으로 저장된다는 주장 등이 거기에 속한다. 뇌는 대량 연결성 massive connectivity, 정보와 분산저장, 컴퓨터에서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자기조직하는 능력의 출현 등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적 개념들은 지배적인 계산적 관점에 대한 선호 때문에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70년대에 시스템 사상가들이 '자기조직'이라는 많은 것을 환기시키는 명칭으로 새로운 현상에 매료되기까지 빛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