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

인간지능의 수수께끼 : James Trefil 지음, 마도경 옮김, 현대미디어 (323-4483), 1999 (원서 : Are We Unique ? : A Scientist Explores the Complexity of the Human Brain, John Wiley & Sons, 1997), Page 41~60

● 같으면서도 다른 두 존재

● 신은 만물을 창조했고, 린네는 만물을 분류했다.

● 인류의 계통도

● 당신은 분자이다

"다윈의 학설(인간과 원숭이의 유사성에 대한 학설)이 틀리기를 기원합시다. 그러나 그가 옳다면 그의 학설이 널리 퍼지지 않기를 기원합시다."  -빅토리아 시대의 한 여성-

● 같으면서도 다른 두 존재

사람들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을 대 큰 실망감을 느낀다. 이것에 대해서는 큰 돈을 걸고 내기를 해도 좋다.

빅토리아 시대에 다윈이, 인간은 현생 원숭이와 친척이라고 말했을 대 그것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험에 의하면 요즘 학생들은 그 이론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아마 친숙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학생들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듯이 진화론에 대해서도 배우기 때문이다. 그 반대 의견에 대한 종교적인 확신이 없는 한, 두 사실을 그들의 지적 풍경 속에 큰 혼란 없이 자리잡은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독특성이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원한다면 우리는 인간과 동물들을 구분짓는 경계선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탐구에는 "물론, 인간은 동물의 왕국에 사는 한 식구 이다." 따위의 모호한 말은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 경계선을 더욱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이 말은, 인간이 거대한 "생명의 거미줄" 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우선, 우리는 19세기 생물학자들이 만개시킨 전통적인 방식을 취해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를 다른 생물들과 비교할 수 있다. 이 방법은 "분류학" -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학문 - 이라는, 생물학의 한 지류를 수단으로 한다. 거꾸로 우리는 생물의 계통도를 보고 혈통상의 유사성, 공동의 조상, 친척관계등을 따져볼 수도 있다. 여기에는 "진화론" 이 사용된다. 끝으로 현대인간을 분자화학적인 관점에서 관찰하여 신체의 화학구조가 다른 생물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규명하는 방법도 있다. 이 작업은 우리를 근대 생물학의 두 선두 분야, 즉 "분자 생물학과 분자 유전학" 의 세계로 인도해줄 것이다.

어떤 방법을 취하든 연구의 결과는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약간의 핵심적인 측면에서는 다르다. 우리가 규명해야 할 인간의 독특성은 바로 이 같은 차이점 속에 들어 있다.

● 신은 만물을 창조했고, 린네는 만물을 분류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생물들을 주의 깊게 관찰해보라. 그러면 그것들을 대략적이나마 분류하고 배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깨닫게 될 것이다. 오크 나무는 새보다 단풍나무에 훨씬 가깝고, 모기는 뱀보다 꿀벌에 가까우며, 다람쥐는 지렁이보다 인간에 좀더 가깝다. 이런 분류는 누구의 눈에도 분명해 보이지만 개중에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것들도 있다.예를 들어, 고래와 물고기를 구분하는 문제가 그렇다.

금세기 전반까지도 생물학자들은 이런 분류작업에 골치를 썩였다. 생물학자들은 생물들의 엄청난 다양성에 직면하자 생물들을 비슷한 기능이나 구조를 가진 유기체끼리 한데 묶는 일을 최우선적인 과제로 삼았다. 예를 들어, 오크 나무와 단풍나무는 모두 줄기 - 가지 - 잎이라는 구조로 돼 있고 뿌리를 갖고 있으며 광합성 과정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한편 새는 두 개골을 갖고 잇고 다른 유기체를 섭취함으로써 에너지를 얻는다. 따라서 어떤 분류방식을 사용하든 나무와 새는 별개의 집단에 속한다는 가정은 이치에 맞는다.

근대의 생물 분류법에 뼈대를 만든 사람은 스웨덴 출신의 위대한 과학자 카를 린네 (Carl Linnaeus : 1707~1778) 이다. 그는 의학을 전공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사명은 광물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지구상에 있는 모든 물질을 부류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사람들이 스무 고개를 할 때 사용하는 "동물, 식물,광물" 이라는 분류체계가 린네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추측한다.)

그는 우프살라 대학의 교수이자 이 학교 식물 연구소의 책임자였다. 세계 각지로 여행을 다녀온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온갖 씨앗과 삽수(꺾꽂이용으로 자른 나무 -옮긴이)를 전해 주었고, 그는 마침내 세계 최초로 "식물에 관한 일반 분류법" 을 창안해냈다. 이 분류법은 그를 추종하는 과학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린네는 좀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과대망상적인 생각을 품었던 것 같다. 이 꼭지의 도입부에 인용한 문장은 그의 작품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적잖은 실수들을 저질렀지만 (그는, 무소는 분명 쥐목에 속하는 동물 이라고 생각했다.) 통찰력 있는 이론도 많이 창안해냈다. 예컨대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라 포유동물이라는 사실도 그가 처음 발견했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도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는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의 최대업적은 모든 생물에 라틴어로 된 두 개의 이름을 붙여준 것이었다. 동물원에 가면 꼭 우리 앞에 붙어 있는 표지판을 자세히 보기 바란다. 동물의 통상적인 이름 뒤에 두 개의 라틴어 단어가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큰 곰에게는 "Ursus horribilis" 라는 라틴명이 붙어 있다. 앞 단어는 "속", 즉 그 동물이 속해 있는 생물체 집단의 이름을 가리키며, 뒷단어는 그 특정생물의 정체를 설명하는 종(생물 분류법의 기본 단위 - 옮긴이) 을 뜻한다. 따라서 Ursus 속에는 모든 곰이 포함되지만 horribilis 종에 속하는 것은 큰곰밖에 없다.

린네가 창안한 분류법은 수세대에 걸쳐 생물학자들에 의해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졌다. 그러나 일반적인 원리는 같다. 즉, 일단 특징이 비슷한 생물체들을 한 집단으로 묶은 다음, 모든 생물체가 교배를 통해 번식을 번식할 수 있는 최후의 단위, 즉 종으로 나뉠 때까지 차례로 더욱 정교하게 분류해 나가는 것이다. 작업이 종착지에 가까워질수록 서로 엇비슷한 생물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머리카락을 쪼개는 듯한 경우가 많아지며, 치아의 융기부처럼 겉보기에는 사소한 차이가 엄청난 중요성을 띨 수 도 있다.

이런 과정을 더듬어가는 것도 우리가 생물 분류도에서 점하고 있는 위치를 아는 한 가지 방법이다. (전문가들은, 내가 이 책에서 생명체의 종류별로 아주 중요한 소수의 특징들만 언급했다는 것을 눈치첼 수 있을 것이다.)

생물을 가장 큰 덩어리들로 나누는 방식은 뭐니뭐니 해도 여러 왕국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생물은 일반적으로 5개의 왕국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에게는 그 중에서 식물(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동물(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에너지를 얻는다.) 의 왕국이 가장 친숙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근대 생물학자들은 균류(주변환경에서 영양물을 흡수한다.) 는 물론, 또 다른 두 종류의 단세포 유기체(각 핵이 있고 없고에 따라 나뉜다.) 도 왕국을 형성할 자격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동물 중에 척수가 있는 것은 척색 동물문에 속한다. 여기에 속하는 동물들은 대체로 등뼈를 갖고 있는데, 그런 동물들은 따로 척추 동물아문으로 분류한다. 인간은 척추동물이다. 척추동물중에는 , 피가 따뜻하고(온혈동물) 털이 있으며 새끼에게 젖을 먹여 키우는 무리가 있다. 이들을 포유 동물강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포유동물이다.

일부 포유동물들은 머리 앞부분에 눈이 붙어 있고 물건을 잡을 수 있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갖고 있다. 이들을 따라 영장류, 또는 영장목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영장류에 속한다. 현생 영장류 동물 중에 직립보행을 하고 커다란 대뇌피질을 갖고 있는 동물은 딱 한 종류밖에 없다. 이 무리가 호모 사피엔스, 즉 인간이다.

이런 연구는 이제는 더 이상 생명과학의 전면에서 큰 각광을 받고 있지는 않지만 아직도 심심잖게 깜짝 놀랄 일이 발생하곤 한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1995년에 갑각류 생물의 입술부분(순상부)에만 서식하는 전혀 새로운 아문생물을 발견했다.

동물의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에 관하여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이것은 어쨌든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는 오랜 믿음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인간의 계통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존하는 동물 중에 우리와 가까운 친척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달을 수 있다. 앞서 예로 든 큰곰이 다른 곰들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것과는 달리, 인간은 오늘날 지구 위를 걸어다니는 어떤 동물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지 않다. 전문용어를 빌자면 현존하는 생명체 중에는 인간과 똑같은 속 혹은 과에 속하는 것이 없다.

굳이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을 골라보자면 유인원을 들 수 있는데 이들도 현재의 인류와는 상당히 다르다. (이런 상황이 "독보적인 존재로서의 인간" 이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생명체 사이에서 이런 고립은 전혀 드문 현상이 아니다. 자연계에는 우리보다 더 적은 숫자의 친척을 가진 종들도 많이 있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은 아니다. 겨우 3만 5,000년 전까지만 해도 이른 바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와 나란히 살고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의 가까운 친척인지 아종인지는 지금도 논쟁거리로 남아 있지만 (그 동안 축적된 자료를 보면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가까운 친척인 것 같다.) 어쨌든 그들은 이미 사라졌다. 그 전에도 인류의 보다 먼 친척에 해당하는 몇몇 종이 아프리카 평원에 몰려 살았던 듯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인간과 나머지 창조물들 사이에는 커다란 틈이 벌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이 누구하고도 친척관계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하기 위해 영리한 큰곰의 눈에는 이 세상이 어떻게 비칠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주위를 둘러본 큰곰은 세상에는 자신과 비슷하게 생간 생명체 - 북극곰, 불곰, 안경무늬곰, 얼래스커 곰 등 - 가 많다는 걸 알 게 될 것이다. 큰곰이 자기종족은 다른 곰들과 별개의 종이라고 생각하기는 훨씬 힘들 것이다.

그런데 우연이든, 누군가의 음모 때문이든 현재 남아 있는 생명체 중에 인간과 가까운 친척은 생명의 계통도에서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인간과 침팬지 (그나마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 의 차이점을 차분히 적어보면 그 목록이 놀랄 만큼 짧다. 해부학자들이 종을 구별할 때 사용하는 항목 (이빨 모양, 공동 즉 뼈 속의 빈 곳 처럼 액이 괴는 곳 - 옮긴이) 의 모양 따위) 들은 깜짝 놀랄 만큼 하찮은 것들이다. 집립보행과 관련된 해부학상의 차이점들은 지극히 생생한 증거인데도 학자들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해부학자들이 사용하는 기준들을 보면 대단히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사람들에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을 정의 해보라고 하면 그들은 한결같이 소설을 쓰고 교향곡을 작곡하고 과학적 이론을 창안한다는 등과 같은, 이른 바 '고도의 정신능력' 에 대해 얘기 할 것이다. 이런 행위의 원천은 모두 두뇌의,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뇌피질 (또는 회색 물질)' 이라고 알려진 두뇌 속의 바깥 층이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인간의 뚜렷한 특성으로 지목받고 있는 현상들은 대체로 대뇌피질 세포의 활동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해부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 지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한 특징은 고도로 발달된 대뇌피질의 존재에 있다. 이 말은 다른 동물들에게는 대뇌피질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동물들도 가지고 있다. 인간의 다른 점은 대뇌피질의 존재여부가 아니라 그 크기와 구조이다.

인간의 대뇌피질을 평평하게 펴면 대충 크기와 모양이 커다란 식탁보와 비슷할 것이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의 대뇌피질은 그보다 작다. 이 책의 한 페이지보다 약간 큰 정도일 것이다. 그 이외의 동물들은 말할 것도 없이 더 작은 대뇌피질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규명하려면 이 같은 특정기관의 크기가 4배 더 큰 것이 그토록 엄청난 행동의 차이를 일으키는 이유(그리고 방식)를 캐내야 할 것이다. 나는 뒤에서 이 문제의 해답은 해부학이나 신경 생리학이 아니라 오로지 복잡성의 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만이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 할 것이다.

● 인류의 계통도

인간의 독특성이 대뇌피질에서 비롯된다는 개념은 진화의 기록, 즉 인간의 계통도를 훑어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우리에게는 사람의 것으로 판단되는 약간의 이빨조각과 뼈조각밖에 없다.

인류의 먼 조상 중에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 (Australopithecus, 또는 남쪽 원숭이) 라고 불리는 원인인데 이것은 약 400만 년 전에 지구에 처음 나타났다.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들은 우리에게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 가장 유명한 인간화석을 남겼다.

나는 지금 루시 (Lucy), 즉 Australopithecus afarensis (이티오피아 어파르 삼각지대 출신의 남쪽 원숭이) 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초기 '원인' 은 직립보행을 했고, 키는 약 122㎝ 정도이며, 무리를 이루어 살았고, 십중팔구 현생 침팬지 처럼 온몸이 털로 뒤엎였던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들이 약 400㎠에 달하는 두뇌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현생하는 성인 침팬지나 인간 신생아에 해당되는 크기이다. 150만 년 전까지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에 속하는 많은 원인들이 살고 있었다.

약 200만 년전, 사람 속 (Homo genus) 에 속하는 최초의 원인이 등장했다. 호모 하빌리스 (Homo habilis : 인류사상 처음으로 도구를 만들었다고 여겨지는 직립원인 -옮긴이) 는 겨우 50만 년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그러나 호모 에렉투스 (Homo erectus : 직립원인 -옮긴이) 는 훨씬 성공적으로 생존하여 지금으로부터 50만 년 전까지 지구에 머물렀다. 에렉투스 원인들은 불의 사용법을 깨우쳤으며 이것을 전 세계로 전파했다. 우리 귀에 익은 화석들 - 자바 원인, 북경원인 등 - 은 대부분이 이 에렉투스 종이다. 에렉투스 원인들의 뇌크기는 저마다 다르다. 가장 작은 것은 700㎠ (이것은 오스트라로피테쿠스 원인에 비하면 거의 두배에 해당된다.), 가장 큰 것은 1,200㎠ (이 정도면 뇌 크기에 관한 한 현생인류의 범주에 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이다.

참고로, 겨우 15만 년 전에 나타났던 네안데르탈인의 평균 뇌 크기는 1,500㎠이다. 이것은 현생인류의 평균치인 1,400㎠를 약간 넘는 크기이다. 현생인류,즉 화석기록으로 보면 호모 사피엔스는 20만 년 전에 처음 나타났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계통도에서 우리 조상들이 다른 동물들과 결정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한 시점을 어디로 봐야 할까? 나라면 호모 에렉투스를 선택하겠다. 이것은 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현생 침팬지의 차이점(직립자세만 빼놓고)이 썩 많은 것 같지는 않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고생물학자 리처드 리키와 로저 루윈이 공동집필한 『생명의 기원을 재고하며 :Origins Reconsidered』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말도 이런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관찰과 측정에 바탕을 둔 엉뚱한 분류법보다 이같이 화석과 씨름하며 평생을 보낸 사람들의 용기 있는 말을 더 높이 평가한다. 따라서 인간의 독특성에 관한 한 진화론적인 증거들도 해부학과 동일한 결론, 즉 인간이 다른 것은 두뇌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생물 학자와 해부학자 들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 즉 인간의 계통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고생물 학자들은 계통도의 나뭇가지들을 추적하느라 바쁜 반면, 해부학자들은 가지에 달린 잎들을 서로 분류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출발점은 달라도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으므로 이것으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두뇌에 관해 중요한 결론을 내린 나로서 이 자리에서 경고 한마디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인간의 진화과정을 설명하면서 (㎠로 계산된) 두뇌의 크기를, 인간의 정신적인 능력을 가늠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러므로 당신은 두뇌의 총용적이 실제로는 그다지 정밀한 측정수단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두개골 화석만으로는, 뉴런들이 두뇌 속에서 어떻게 서로 연결돼 있는지, 즉 뇌신경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알아 낼 도리가 없다.

잠시 뒤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이 점은 인간의 능력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하다. 언어, 수학, 음악 같은 정신능력은 뇌 크기 따위의 포괄적인 측정수단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 당신은 분자이다

진화론이 밝혀낸 위대한 진실은, 모든 생물은 궁극적으로 40억 년 전에 지구에 나타난 단세포의 자손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분자 생물학이 밝혀낸 위대한 진실 - 지난 수십 년 동안 명백하게 밝혀진 진실 - 은 우리 몸의 모든 세포 속에, 세포의 최말단 구조 속에 그런 진화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독특성을 규명하는 세 번째 방법은 이런 흔적들을 연구함으로써 우리와 나머지 피조물 사이에 어떤 뚜렸한 차이점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생명은 기본적으로 화학적인 현상이다. 어떤 것이 살아 있다함은 곧 세포 깊숙한 곳에 수천 개의 분자들이 서로 어울리고, 분리되고, 또는 다른 분자들이 그런 작업을 하는 동안 중개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생명체가 기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모든 분자들을 생성하는 유전정보는 DNA 분자들의 이중 나선형 구조 속에 담겨 있다.

DNA를 "사다리"로, 그 "계단" 은 모두 4종류인 염기의 조합물, 즉 염기쌍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것은, 또한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이 계단에 담겨 있는 정보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말이 나온 김에 모든 생명체가 동일한 유전정보를 공유하고 있고 세포단위에서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활동을 할 때 상당히 유사한 분자들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이들이 모두 단세포라는 공동의 조상에서 진화한 후손이라는 가설을 강력히 뒷받침해준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인간의 경우 그 계단, 전문용어로 말하면 염기쌍은 대략 30억개이다. 그 염기쌍 중 약 5%가 세포 속의 분자들을 구성하는 정보를 담고 있다. 이런 일련의 DNA 구조를 유전자라고 부른다. 우리는 DNA 의 구성요소 중 유전자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알고 있지 못하다. 다만 여기에 (무엇보다) 유전자의 활동을 좌우하는 정보가 담겨 있으리라고 추정할 뿐이다.

현대과학이 당면해 있는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상세한 DNA 지도를 작성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날마다 특정질병과 관련된 유전자의 위치가 발견되고 곧바로 실생활에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발견 중 화제성이 높은 것들은 신문지상에 대문짝만하게 등장한다. 야심적인 "인간 게놈(염색체의 한 조 -옮긴이) 프로젝트" 는 30억 개의 염기쌍을 모두 해독하려는 작업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규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DNA 암호를 해독하려 하는 것은 전혀 터무늬없는 생각이라고 할 수 없다.

인간의 한 세포 속에 있는 DNA 에 담긴 정보의 양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3질 속에 담긴 정보의 총합과 비슷하다. 이 정도면 많기는 하지만 처리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두 사람 (또는 인간과 어떤 다른 종의 동물) 의 DNA 분자를 나란히 늘어놓고 염기쌍의 암호에 담긴 정보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 알아봄으로써 그 차이점을 규명하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또는 DNA 분자 속에 서로 같은 염기쌍과 다른 염기쌍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아볼 수도 있다.

이런 상상 속의 연습이 실현되려면 아직 몇 년(또는 수십 년) 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실제로 그 작업에서 나올 비교치를 추측할 수 있을 만큼 DNA 에 관해 충분히 알고 있다. 두 사람의 DNA 를 비교해보면 대략 염기쌍 200개당 하나씩 다르다는 것, 다시 말해 나머지 199개는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두 권의 책을 갖다놓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단어들을 하나씩 대조한 결과, 한 페이지당 서로 다른 단어가 평균 2개 반씩 있음을 발견한 것과 같다. 호모 사피엔스끼리의 유전적 유사성은 대략 이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DNA를 이런 식으로 비교해보면 대략 염기쌍 50개당 하나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인간과 침팬지의 DNA 는 염기쌍 100개당 2개씩, 총 개수 2%가 다르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면 보다 멀리 눈을 돌려보자. 우리는 이때 두 생명체간의 서로 다른 유전자의 수, 서로 다른 DNA 의 양과 관련된 구조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두 생명체의 분자를 정렬 비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특정 유전자의 유전정보에 의해 만들어진 공통적인 분자들을 비교함으로써 종이 다르면 DNA 는 얼마나 다를 것인지에 대해 약간이나마 감을 잡을 수는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과학자들이 이런 작업을 해왔다.

나는 동료인 해럴드 모로위치와 함께 사이토크롬 -C (Cytochrome-C : 동식물의 세포 속에 존재하는 산화 환원효소의 총칭 - 옮긴이) 라는 특정분자를 대상으로 실험하고 그 결과를 우리가 함게 저술한 『생명의 진실 -낙태에 관한 논쟁과 과학 : The Facts of Life - Science and the Abortion Controversy』에 발표한 적이 있다. 이것은 흔하고 활동적인 분자로서 주로 세포들이 에너지를 생성하는 화학반응에 깊이 관여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다음의 표를 통해 다른 생명체에서 볼 수 있는 분자와 인간의 세포 속에 들어 있는 같은 분자 사이에 중복되는 부분을 표시했다.

이런 결과를 일반화하여 이 표의 내용은 한 개의 분자라는 영역을 넘어 모든 DNA 에 적용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가설치고는 아주 야무진 가설이다.) 그렇다면 유전정보상의 현저한 차이를 발견하려면 호모 사피엔스에서 상당히 먼 곳가지 가야 한다. 실제로 동물도 아닌 호박과 인간 사이에 중복되는 부분은 70%가 넘는다. 이 사실은 인간세포의 화학활동 중 상당부분이 영장류의 동물 뿐만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생물들과 비슷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결과는 새삼 놀랄 만한 것이 못 된다. 우리 DNA 속의 유전자는 대개 에너지를 얻고 노폐물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살림살이 활동과 관련돼 이다. 이것이 인간과 호박에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은, 호박과 인간의 세포가 이같은 기본적인 차원에서는 상당히 유사한 분자를 이용하여 상당히 유사한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 둘이 동일한 원시세포에서 진화했다고 가정해보면 이것은 아마 누구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견해일 것이다. 결국, 글루코스(포도당) 분자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 활동은 비슷한 화학작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 분자가 에너지를 (호박처럼) 광합성을 통해 얻든 스파게티를 먹음으로써 얻든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과 개, 혹은 인가과 호박을 구분하는 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종류가 다른 생명체라도 DNA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외견상으로 큰 차이가 있다고 해서 기본적인 구조에도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명확히 입증해주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이 주장을 수 없이 만나게 될 거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만한 사례 -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를 밝히는 작업 따위 - 에서 DNA 같은 기본물질을 정밀하게 연구한다 해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없다. 우리는 해부학, 진화론, 생화학 등 어떤 학문을 도구로 삼아 이 주제에 접근하든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말 것이다.

인간은 실제로 다른 유기체제에서는 볼 수 없는 특성을 갖고 있지만 그런 특성들은 지극히 미묘하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거대한  "생명의 거미줄" 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으며 다른 유기체와는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같다. 하지만 분명히 다르다.

우리가 중시하는 차이점에는 정신적인 능력, 즉 인간두뇌의 기능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DNA 구조를 비교하듯이 두뇌구조만을 비교해보면 인간과 동물들과의 차이는 그리 대단치 않다. 사실, 그 차이는 본질의 차이라기보다는 정도의 차이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결국, 우리의 과제는 비슷비슷한 것들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 작업은, 두뇌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그 방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가능하다.

만일 인간과 침팬지 모두 커다란 뇌하피질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해부학상의 세부적인 차이에 기초를 둔 구별작업은 별 의미가 엇다. 반대로 우리는, 두뇌활동이 낳은 최종결과, 즉 행동을 고찰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이제부터 우리가 관심을 쏟게 될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