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도 말을 할 수 있을까?
인간지능의 수수께끼 : James Trefil 지음, 마도경 옮김, 현대미디어 (323-4483), 1999 (원서 : Are We Unique ? : A Scientist Explores the Complexity of the Human Brain, John Wiley & Sons, 1997), Page 85~112
그 친구는 시골의 한 구멍가게에서 주인과 개가 체스 게임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본 모양이었다. 그는 소리쳤다.
"저렇게 영리한 개가 있다니!"
그러자 가게 주인이 말했다.
"체, 그렇게 영리하지도 않고. 4판 하면 3판은 내가 이기거든요." - 구전에서 -
막 20세기로 접어들 무렵, 독일에서는 기이한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빌헬름 폰 오스텐이라는 은퇴교사가 한스라는 말에게 산수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그 일에 크게 성공했고 곧 전국 순회공연 길에 나서 수많은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공연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폰 오스텐이 한스에게 "2더하기 3은 뭐지?" 같은 문제를 낸다. 그러면 한스는 발굽으로 땅바닥을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긁는다. 그러고 나서 동작을 멈추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스는 "이 방안에 우산이 모두 몇 개 있지?" 또는 "다음주 목요일은 며칠이지?"와 같은 복잡한 문제도 척척 풀었다. 한스는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정확한 숫자를 발굽으로 두드렸다.
동물의 지능을 입증하는 증거로 이것 말고 또 무엇이 필요할까? 여기에 산수문제를 풀 만큼 영리할 뿐만 아니라 넋을 잃은 관중 앞에서 의미 있는 방식으로 정답을 전달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당시의 목격자들은 한스의 지능수준을 똑똑한 초등학교 4년생에 비유했다. 그리고 그 말에게 "똑똑한 한스"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너무나 슬프게도 그것이 아니었다. 한스는 너무 유명한 인사가 되었고 1904년 독일 교육 위원회는 특별 위원회를 구성해 녀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곧 이 사건에 외견상의 속임수는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폰 오스텐은 분명히 정직한 사람이었다. (덧붙이자면 그는 한스의 공연에서 관람료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약간의 테스트를 해보니 겉으로 드러난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위원들은 한스에게 카드에 적힌 숫자를 읽어보도록 했다. 한스는 질문자를 볼 수 있는 경우, 90% 가까이 정답을 맞췄다. 그러나 질문자가 옆으로 멀리 비켜서 있거나 한스의 눈을 가리면 답의 정확도는 6%까지 떨어졌다. 실험자들은 한스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한 끝에 드디어 "영리한 한스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 열쇠를 찾아냈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한스에게 문제를 준 다음에 버릇처럼 약간 허리를 숙이고 녀석의 발을 쳐다보았다. 한스가 올바른 숫자를 발로 때리는 순간, 구경꾼들은 예외 없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를 순간적으로 약간 치켜 올린다. 아무도 이런 행동을 의식하지 못했지만 한스는 영리하게도 이런 동작을 포착할 줄 알았던 것이다.
폰 오스텐도 다른 사람들처럼 실험결과에 깜짝 놀랐다. 아무튼 남을 속이려는 의도는 이 사건에 개입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실험 결과는 그후 수십 년 동안 인간 - 동물간의 의사소통에 관한 연구를 무덤 속에 밀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이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들은 "영리한 한스 효과"라는 이름의 우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 매우 몸을 사리는 편이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내가 보기에는 사람들이 영리한 한스 이야기를 할 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한스는, 트레이너(사람)가 무의식 중에 만든 신호들을 읽을 줄 아는 매우 영리한 동물이었다는 점이다. 녀석이 수학마저 잘 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이 간단한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언어의 사용은 흔히 인간이 동물들과 다른 점 중의 하나로 제시된다. 이 때문에 동물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방식 혹은 방법을 규명하는 문제는 인간 - 동물의 경계선을 그리는 작업에서 중요한 과제로 취급되고 있다. 이 연구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세 가지의 질문으로 접근해야 한다. 여기서는 이것들을 각각 별개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헷갈리기 쉽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세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으며 괄호 안은 내가 이 장의 나머지 부분을 통해 뒷받침할 나의 개인적인 견해를 표시한 것이다.
|
1. 동물은 자기들끼리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다.) 2. 동물과 인간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일정한 수준까지는 가능하다.) 3. 동물은 인간의 언어를 배울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불가능할 것 이다.) |
우리에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마지막 질문이며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다.
버비트 원숭이는 평생 아프리카 초원지대와 인근의 삼림지역에서 무리를 짓고 산다. 이곳의 환경조건을 보면 작은 동물에게는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평생 자기능력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많은 육식동물들을 상대해야 한다.
사회적인 습성을 가진 다른 동물들처럼 버비트 원숭이도 무리 가운데 한 마리가 위험을 감지하면 나머지 원숭이들에게 경고 신호를 전파하는 경보체계를 터득하고 있다. 즉, 어떤 원숭이라도 뱀, 표범, 또는 독수리 (버비트 원숭이에게는 가장 큰 적이다.) 따위를 발견하면 소리를 질러 동족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것이다.
그 동안, 학자들은 이 고함소리가 놀란 상태에서 나오는 반응, 이를테면 공포영화에서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 10대들이 내지르는 괴성과 같은 것이라고 추정해왔다. 그러나 1960년대 말, 야생 원숭이를 관찰한 버클리 대학의 연구 팀은 그 "공포의 외침소리"에는 실제로 세 가지가 있으며 원숭이들의 종류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땅에 있다가 "뱀에 대한 경고의 소리"를 들은 원숭이들은 몸을 곧추세우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반면, "표범에 대한 경고의 소리"가 들리면 근처에 있는 나무 꼭대기를 향해 달리고 "독수리에 대한 경고의 소리"에는 잽싸게 숲의 덤불이나 울창한 나뭇잎 속으로 숨는다. 이것은, 과학자들이 버비트 원숭이에게는 남에게 상세한 정보 (통상적인 감정상태에 반대되는 개념)를 전달할 능력이 있음을 밝힌 최초의 사례이다. 몸을 곧추세워 주변을 둘러보는 행동은, 독수리가 하늘을 날고 있을 때는 쓸모없는 것이 분명하므로 이같은 결론은 타당하다.
그후 다른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서도 속속 비슷한 결론들이 나왔다. 그것은 모두 특정한 의사전달 행위가 있은 후에 동물들이 취한 행동을 관찰한 결과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중 몇 가지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
● 꿀을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온 꿀벌들은 미세한 춤동작으로 다른 꿀벌들에게 그곳의 위치 를 알린다. 꿀이 있는 곳이 벌집에서 9m 이내에 있으면 꿀벌은 원을 그리며 춤을 춤다. 그 러나 거리가 좀더 멀면 꿀벌은 꼬리를 빠르게 흔들며 8자 모양을 그린다. 꿀벌이 반복적 으로 원을 그리는 속도는 꿀의 밀도에 비례하며 꿀이 있는 곳이 멀 때는 춤으로 그린 모 형의 각도가 방향 (태양의 위치에 따라 계산된 방향)을 나타낸다. ● 명금류 (종다리제비같이 우는 새의 총칭 - 옮긴이)의 수컷은 노래를 통해 짝짓기 대상으 로서의 자기 존재를 알리고 자기 영토에서 수컷 경쟁자들을 쫓아낸다. 명금류들은 대개 몇 가지 가락을 노래 할 수 있다. ● 돌고래는 많은 종류의 고리 - 휘파람 소리, 똑딱똑딱 하는 소리, 꿀꿀거리는 소리 등 -를 낼 수 있다. 심지어 물 속에서 목표물을 찾는 데도 소리를 사용한다. 이것은 동물판 수중 탐지기 (초음파를 발사하고 그 반향을 측정하여 목표의 방향, 거리 등을 알아내는 장치로 서 잠수함 등에 장치한다. - 옮긴이)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단, 휘파람 소 리는 상대의 "신원"을 확인하는데 사용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녀석들은 다른 돌고래들 에게 "내 이름은 아무개" "내 이름은 아무개"라고 말하면서 평생을 보내는 것 같다. 사실, 돌고래들의 대화는 바다라는 회의장에서 나누는 가벼운 인사말 정도로 볼 수 있는 것이 다. 예를 들면 "안녕하게요? 내 이름은 OOO입니다." 하는 식으로 자기 신원을 밝히는 행 동이다. (나는 요즘의 과학자들이 심층연구의 결과에 따라 더 이상 돌고래들이 다른 동물 들에 비해 지능이 높다는 개념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 고래의 노래 중에서도 혹고래 (등에 혹이 있다. -옮긴이)들의 노랫소리는 복잡한 의사소 통 수단으로서 길게는 20분까지 이어진다. 혹고래 속에 속하는 고래들은 모두 노래를 부 를 수 있지만 매번 가락이 조금씩 다르다. 아무도, 이들이 노래를 부르는 진짜 이유는 모 른다. 다만 짝짓기와 관련이 있지 않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 늑대들은 다양한 몸놀림을 통해 복종이나 지배 등 집단 내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복잡한 대화를 나눈다. 이들의 몸놀림은 너무 뚜렷하기 떄문에 인간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
이런 의사소통의 기법 중 일부는 본능적으로 터득하기 때문에 별도로 학습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꿀벌들은 춤동작을 실행하거나 이해하는 데 별도의 학습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이 독특한 의사소통 수단은 유전자를 통해 전승돼왔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동물의 의사소통 수단 중에는 유전적으로 전승된 정보와 환경적인 (후천적인) 학습이 결합돼 이루어진 것들도 있다. 이 견해를 검증하는 한 방법은, 명금류를 자신들의 독특한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환경에서 키워보는 것이다. 딱새는 이렇게 친숙한 음향으로부터 격리된 환경에서 키우더라도 그들만의 독특한 소리를 낼 수 있다. 반면, 굴뚝새과에 속한 종들은 배울 모델이 있어야만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다. 한 예로, 노스캐럴라이너주에서 데려온 쇠새 새끼를 텍서스에서 데려온 어미들과 함께 키웠더니 새끼들이 자라면서 강한 텍서스 액센트가 섞인 노래를 부르더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동물의 언어능력에는 분명히 유전적인 요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언어습관에도 이같은 유전적인 요소가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서는 안 된다.
나는 평생 동안 많은 개에 둘러싸여 살아왔다. 그래서 나는 사적인 경험을 통해 종이 다른 동물들 사이에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온순한 개과동물 (컬리 같은 양치기 개를 대상으로 하면 더욱 좋다.)과 접해본 사람은 누구나 개들이 인간의 명령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이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마찬가지로 도처에 널려 있는 수족관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면 돌고래속 동물과 바다표범 등도 이런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 동물을 상대로 의사를 전달하는 행위는 언급할 가치를 못 느낄 정도로 일상적이 일이다. 마찬가지로 동물들 역시 인간에게 어느 정도 자기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다시 개의 예로 돌아가보자. 사람들은 대체로 개가 접근할 때 녀석의 태도가 우호적인지 (고개를 들고 꼬리를 흔들며 크게 짖는다.), 적대적인지 (고개를 숙이고 털을 빳빳이 세우며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린다.)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생태학자들이 "순종의 표시 (뒷다리를 세우고 꼬리를 흔들며 앞다리의 무릎을 구부려 땅에 붙인다.)"라고 부르는 동작이 무엇인지, 이때 녀석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또한 약간의 경험만 있으면 개과동물 사이에 쓰이는 간단한 예절을 익힐 수 있다. 예를 들어, 개가 반갑게 다가왔을 때 쓰다듬기 전에 손을 내밀어 냄새를 맡게 해주면 이종간의 예법을 훌륭하게 실행한 셈이 된다. 이런 행동은, 개가 인간에 비해 훨씬 더 후각에 의존하여 세계를 인식한다는 사실에 아주 조금 적응한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 나는 인간의 착각에 대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다. 우리는 어떤 동물과 의사소통을 하고 일종의 대인관계를 수립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너무도 쉽게 동물들도 틀림없이 인간처럼 사고하고 세상을 인식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것은 한마디로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얘기이다.!
인간과 오랜 세월 동안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온 개 같은 일부 종들을 제외하면 동물들의 정신세계는 근본적으로 인간과 다르다. 당신은 태어날 때부터 키운 야생동물들이, 적어도 인간의 관점에서는 아무런 자극을 주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주인에게 공격을 가하더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례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침팬지 같은 동물조차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손에서 자라고 거의 언어를 습득하는 단계까지 왔어도 여전히 야생동물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나는 최근 동물학자들과 밤늑게 맥주를 마시면서 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날, 우리의 화제는 침팬지 (특히 캔지 산 침팬지에 관해 많은 애기를 나눴는데 이녀석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다시 언급할 것이다.)로 흘렀다. 학자들은 정상적인 연구활동 중에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침팬지로부터 사악하고 이유 없는 공격을 받아 손가락을 비롯하여 갖가지 신체기관을 절단하지 않을 수 없었던 동료들의 명단을 줄줄이 열거했다. 그 희생자 명단은 내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길었다.
동물이 인간의 언어를 습득하는 능력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면 다음 두 질문에 답해야 한다.
|
첫째, 인간의 언어란 정확히 무엇인가? 둘째, 동물은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가? |
이 두가지 질문에 대해 차례로 살펴보자.
우선 당신에게는 "인간의 언어가 무엇이냐?"는 질문 자체가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우리는 언어를 너무 즉흥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1960년대부터 언어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 이런 변화는 대체로 일반인들 (언어학 전공자를 제외한 다른 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어학이라는 학문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이 혁명적인 변화가 낳은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인간의 언어능력은 물론 우리 두뇌기능과 관련된 능력이지만 컴퓨터로 치면 일종의 하드웨어적으로 통제되는 능력, 즉 사용자가 마음대로 바꾸기가 쉽지 않은 능력이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것은 인간이라는 종이 선조 때의 환경에 신체적으로 적응한 결과이다.
이런 견해를 접한 사람들은 대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인간이 수천 가지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묻는다. 사람들은 문화적 다양성을 접하면 그것은 태생적이고 유전적으로 통제되는 두뇌속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반드시 사회적 학습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관찰결과를 곰곰히 생각해보라.
|
1. 지역에 관계 없이 아이들은 비슷한 나이에 언어능력을 습득한다. 아이들은 생후 78개월 때부터 옹알이를 시작하는데 그 소리는 주변에거 들리는 언어와 관계없이 비슷하다. 심 지어 부모가 수화를 사용하면 청각 장애아들은 손으로 옹아리를 하기도 한다! 2. 아이들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은 뚜렷하다. 예컨대, 영어권의 아이들은 i나 u 보다는 a 발음을, 또한 t보다는 m발음을 먼저 습득한다. 아이들은 첫돌을 맞을 때쯤 비로소 철자 의 전부를 발음한다. 이 모든 현상은 아이의 환경이나 아이의 귀가 노출돼 있는 언어의 종류에 관계없이 비슷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듯하다. 이것은 아이의 의욕이나 지능 에도 좌우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3. 아이들의 언어습득 과정은 매우 빠르다. 아이들은 대체로 여섯 살쯤 되면 모국어에 관 한 한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을 말한다. 여섯 살까지 언어능력을 습득하지 못한 아이들 은 어른이 되어서도 심각한 언어장애를 겪으며 습득기간이 길어길수록 문제는 더욱 심각 해 진다. 성인이 외국어를 습득할 때 겪는 고통도 이런 사실을 입증하는 한 예가 될 수 있 다. 4.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 약 4만 5,000개의 어휘를 배 운다고 한다. 졸업하는 나이가 대개 18세이고 한 살 때부터 단어를 습득한다고 가정한다 면 매년 2,600개정도의 새로운 어휘를 배운다는 계산이 나온다. 17년 동안 잠자는 시간만 빼고 매일 두 시간에 하나씩 새로운 단어를 배우를 셈이다! 이것은 엄청난 속도이다. 그리 고 일정의 유전적인 바탕 없이 언어습득 과정이 진척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
이런 사실들을 감안하면 인간의 언어습득 과정에 어떤 태생적인 능력이 개재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견해는 좀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언어의 태생적인 성격을 입증하는 진정한 증거는,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언어를 깊이 파고들수록 그 밑바탕에는 동일한 규칙이 공통적으로 깔려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이런 견해는 흔히 MIT 대학의 언어학자 노엄 첨스키의 이름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MIT 대학의 학자인 스티븐 핑거는 자신의 걸작 『 언어의 본능 : The Language Instinct 』에서 "첨스키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를 방문한 화성인 과학자는 아마도 '지구인들이 쓰는 모든 어휘들은 서로 뜻을 판별하기가 어렵다. 이 점만 빼놓으면 그들은 단 하나의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고 결론지을 것" 이라고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의 규칙이란 발음이나 어휘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언어가 결합되는 방식, 즉 특정발음의 순서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언어학에서는 전문 용어로 이런 규칙을 규정해놓고 있다. (우리는 예전에 이것을 배웠을 테지만 다행히 지금은 모두 잊었다.) 아마 "가정법"과 비슷한 형식인 듯싶다. 즉, 한 언어에 A라는 특징이 있으면 아울러 B라는 특징도 갖고 있을 것이라는 규칙을 말한다.
이런 규칙이 적용된 예문을 이해하려면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언어 중에는 명사 뒤에 활용어미 ( worked 의 ed 따위 - 옮긴이)를 붙여 그 단어가 문장 속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언어가 많다. 예를 들어, car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한 대 이상의 차를 표시할 때는 cars라고 말하고 또 차에 붙어 있는 문짝을 표현하고 싶을 때는 car's door이라고 말한다. 이것들은 모두 이른바 "굴절어미 (다른 낱말과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바꾸는 어미 - 옮긴이)"의 예이다. 공교롭게도 영어는 굴절어미의 사용에 관한 한 비교적 인색한 편이어서 고작 복수형과 소유격을 나타내는 굴절어미가 있을 뿐이다.
옛날부터 학생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원인이었겠지만 모든 언어들이 모두 똑같은 문법체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어는 남성, 여성, 중성 명사가 모두 다르며 하나의 명사에 네 가지의 굴절어미를 붙여 그것이 문장 안에서 어떤 뜻으로 사용됐는지를 나타낸다. 체코어도 명사에 성을 부여하며 굴절어미의 종류는 모두 7가지에 달한다.
나는 헝가리어 (비 인도 - 유럽 어족의 계열)에는 23가지의 굴절어미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체코어의 경우, 명사 (예를 들면 "차") 뒤에 붙는 굴절어미에 따라 어떤 때는 주어로 (그 차는 빨간색이다.), 또 목적어로 (나는 차를 밀었다.), 또는 간접 목적어로 (나는 차에 점검 서비스를 받았다.)로 사용된다. 또한 그 명사는 위치를 나타내거나 (모자가 차 안에 있다.), 수단을 나타내거나 (나는 차를 타고 그곳에 갔다.), 또는 연설문 (안녕, 차야!) 따위에 사용될 때는 각각 다른 굴절어미가 사용된다.
영어에서는 이 모든 경우에도 똑같이 'car' 라는 단어를 쓰며 단어의 위치로서 단어의 기능을 나타낸다. 그러나 체코어에서 명사는 상황에 따라 (예컨대 "차는 빨강색이다."는 "The car is red."이지만 "모자가 차 안에 있다."고 할 때는 "The hat is in the careh.") 매번 종결어미가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많은 언어들은 동사를 명사로 바꾸는 일정한 방식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 "jump" 라는 동사를 명사로 바꾸면 "jumper" 가 되며 이때 "er"을 파생어미라고 부른다.
단어들이 결합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간단한 예를 소개하겠다. 만일 어떤 언어가 굴절어미와 파생어미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면 대체로 파생어미가 굴절어미 앞에 온다.
이 규칙의 활용예를 영어에서 들어보면 "뛰는 사람들"을 나타낼 때 "jumpser" 가 아니라 "jumpers" 로 써야 한다. 언어에서 "jumpser" 같은 문법구조를 사용해서는 안 될 논리적인 이유는 없다. 그렇게 쓰면 안되고 "jumpers"라고 써야 할 근거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지구상의 어떤 언어도 그런 문법구조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어학자들은 "jumpser" 같은 단어가 우리에게 구조적으로 틀린 것 같이 인식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뇌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본질적인 문법규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첨스키는 다음과 같은 꾸며낸 문장으로 이 점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무색의 초록빛 생각이 맹렬히 잠자고 있다."
이 문장은 논리적으로 전혀 말이 되지 않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 그것은 단어의 배열상태가 뇌 속의 "심오한 문법"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반면, 똑같은 엉터리 문장이라도 "맹렬하게 잠들다 생각이 초록빛 무색의." 라고 배열하면 심오한 문법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잠꼬대 같은 소리로 들린다.
명사와 동사구의 사용 전치사 (또는 영어에는 없지만 다른 언어에는 있는 후치사)를 사용한 단어와 구절이 문장 속에서 배열되는 방식 따위에는 보다 근본적인 법칙이 있다. 요컨대, 이 견해는 인간의 언어법칙은 두 가지 차원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하드웨어적이고 (유전적으로 결정된) 심오한 규칙이며, 또 하나는 말하고 쓸 때 사용하는 표면적인 차원의 규칙이다.
언어능력을 습득하는 과정은, 아기가 자기 귀에 들리는 갖가지 알 수 없는 단어들을 이미 뇌 속에 장치돼 있는 문법규칙의 뼈대 속에 대입시켜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런 가설은 언어의 일반적인 구조와 인간이 언어능력을 습득하는 과정 두 가지를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아이들은 나라에 관계없이 똑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언어능력을 습득한다. 아이는 옹아리에서 시작하여 한 단어짜리 말, 두 단어짜리 문장 등으로 점차 발전하다가 갑자기 올바른 화법을 퍼붓기 시작한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올바른 화법을 홍수처럼 쓰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뇌 속에 장착된 고성능 문법회로가 온라인 상태에 진입하는 과정으로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심리학자인 로저 브라운은 1970년내에 아이들의 언어습득 능력이 극적으로 변천하는 과정을 연구하여 그 결과를 책으로 펴냈다. 그 책에서 아이의 언어능력이 발달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몇 개의 문장들을 추려 여기에 소개하겠다. 한 번이라도 자녀들에게서 이같은 과정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언어능력의 발달과정을 공감할 것이다.
|
생후 2년 3개월째 : "장기판(장기) 해. 난 뿔(말)을 잡았어." 생후 2년 6개월째 : "저 달걀(을 가지고) 뭐해? 나는 의자(에) 안 앉고 싶어." 생후 3년째 : "14분 안으로 거기 올게(갈게). 저 사람들은 힘센 남자들이 아니야." 생후 3년 2개월 째 : "저 다리가 어떻게 된거야. 우체통에 내 머리를 집어넣어도 돼? 그러 면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내가(우리집이) 어디인 줄 알고 나를(편지를)우체통에 집어넣을 수 있잖아." |
어떻게 보면 언어의 습득은, 사춘기가 전개되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아이들마다 진입하는 시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단 진입하기 시작하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아이들은 복잡한 문장으로 말하고 각자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구절들을 사용하기 시작하며 말하는 것이 어른스러워진다. 이 모든 과정은 아무런 특별한 훈련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유전적으로 전승되는 심오한 문법체계가 있다는 개념은 언어와 언어습득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 모든, 다양하고도 규칙적인 성질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주는 가설임에 분명하다. 뒤에서 우리는 이런 심오한 문법회로가 정확히 두뇌의 어디에 있으며 인간의 경우에 언어능력이 어떻게 진화돼 왔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인간 - 동물의 경계선을 그리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진정으로 알고 싶어하는 것은 옹아리에서 올바른 화법에 이르기까지 언어능력의 발달단계에서 동물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점이다. 특히 동물들은, 문법회로가 꺼질 때 일어나는 "대폭발"을 비껴갈 수 있을까?
동물들도 사물의 이름을 대고, 단어를 인식하고, 간단한 문제에 답하는 정도는 할 수 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가장 놀랍게 증명한 예는 아마 앨릭스라는 아프리카 산 회색 앵무새일 것이다.
앨릭스는 애리조너 대학의 아이린 페퍼버그 교수의 수제자 대접을 받고 있으며 1977년부터 언어훈련을 받아왔다. 지금 이 녀석이 구사할 수 있는 어휘는 무려 90단어가 넘는다. 녀석은 사물 이름을 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게 뭐지?" 하면 "녹색 열쇠" 라고 대답한다.) 6까지 셀 수 있는데 이때의 정확성은 80%를 조금 넘는다. 이런 사례는 앵무새처럼 뇌가 작은 동물들도 부분적이나마 언어를 배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앞에서 깨달은 진실에 힘을 보태주는 예이기도 하다. 즉, 복잡한 행동에 복잡한 신경구조가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여담이지만 숫자를 세는 앨릭스의 능력에 너무 감탄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 옛날부터 사냥꾼들은, 까마귀가 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사냥꾼이 잠복하는 것을 본 까마귀는, 그가 떠날 때까지 절대로 그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는다는 거을 관찰한 결과 드러나게 되었다. 까마귀는 사냥꾼 두 명이 잠복하다가 한 사람이 집에 간다 해도 역시 접근하지 않는다. 까마귀들은 세 명이 잠복하다가 두 명이 떠나야만 비로소 이제 아무도 없다고 믿는다.
우리에게는 궁극적으로 인간과 유인원, 그 중에서도 인간과 침팬지를 구별짓는 방법이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영장목 동물들의 언어습득에 관한 연구는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일련의 "영리한 한스" 같은 촌극을 겼었으며 이때 입은 상처는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
이야기의 뿌리는 심리학을 연구하는 두 가정에서 각각 아기 침팬지를 입양하여 친자식처럼 키웠던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중 비키라는 침팬지는 드디어 약간의 단어를 말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학부시절, 아주 케케묵은 심리학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었다. 비유를 해보자면 심리학적으로 중기 홍적세쯤에 해당될 것이다. 그때 나는 어떤 영화에서 비키가 "컵"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이런 실험에는 당연히 침팬지로 하여금 인간의 음성을 내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가 따른다. 침팬지의 성대는 인간의 것과 다르기 때문에 이것은 꽤 어려운 작업이다. 따라서 실험은 석연치 않았다. 초창기의 실험에서 침팬지들이 언어능력을 습득하는 데 실패한 주된 이유는 뇌와 관련된 요소 때문일 테지만 침팬지의 입모양 때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인원에게 언어를 가르치려는 두 번째 시도는 196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으며 주로 미국 수화법 (American Sign Language : 미국 및 캐나다의 영어권 지역에서 사용하는 수화법 - 옮긴이)를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ASL 은 일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단순히 손동작으로 어휘를 표시하지 않는다. 이것은 실제로 나름대로의 문장형식과 문법체계를 갖춘 완전한 언어로서 지구상에 있는 다른 언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뇌 속에 깔려 있는 심오한 규칙에 부합된다.
이 비음성 실험 (즉, ASL)이 끝난 다음, 여기에 참가한 워슈 (침팬지), 코코 (고릴라), 님 침스키 (침팬지)의 의사소통 능력에 대한 터무니없는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 꼬리 없는 원숭이들은 모든 신문, 잡지, TV 쇼에 등장했다. 아마 이들은 전성기 때의 "영리한 한스" 보다 대중들에게 더 많이 알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스토리는 과학자들의 철저한 분석에 의해 "영리한 한스"의 무용담과 닮은 꼴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원숭이들의 언어능력을 찬양한 사람들이 워슈와 코코의 능력을 지나치게 관대하게 해석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지금부터 이 점을 입증할 두어 개의 사례를 제시하겠다. 이 실험은, 여러 관찰자로 하여금 워슈가 보여준 수화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단어로 기록하도록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관찰자 중에는 청각 장애인, 이를테면 ASL 을 모국어로 삼는 사람도 끼어있었다. 실험을 지켜본 그 장애인은 나중에 이렇게 논평했다.
|
관찰자들은 한결같이 긴 수화 기록서를 제출했다. 기록한 양이 나의 것보다 적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침팬지들의 수화 중에서 몇 개를 놓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 지만 그것이 이유인 것 같지는 않다. 관찰자들은, 침팬지가 아무리 사소한 동작을 연출해 도 그것들을 모조리 수화로 여기고 기록했다. |
이와 비슷한 예가 또 있다. 저명한 침팬지 생태학자인 제인 구덜은 님 침스키의 실험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님이 보여주는 신호들이 모두 침팬지들이 늘 야생상태에서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자들은, 침팬지들이 선천적으로 터득하고 사용하는 숱한 제스처를 ASL 로 착각한 것이다.
수 세비지-럼보는 영장류 전공학자인 로저 파우츠와 워슈라는 암컷 침팬지를 만났던 경험담을 이렇게 들려준다. 수의 업적에 대해서는 잠시 후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
(로저는) 워슈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섬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그는 연구실 근처에 긴 로프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로저는 워슈를 쳐다보더니 수화로 말했다. "워슈 어서 가서 끈을 주워 와." 그는 손짓으로 끈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워슈는 당황한 표정을 지 었지만 곧 로저가 가리킨 쪽으로 걸어갔다. 워슈는 땅에 널려 있는 온갖 잡동사니들을 볼 때마다 일단 한번 만져본 다음 뒤돌아서서 로저를 쳐다보았다. 마치 로저의 뜻을 파악하느 라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워슈는 끈 옆을 몇 번씩이나 그냥 지나쳤고 그때마다 로저는 수화로 "거기, 거기, 거기, 있는 끈 말이야." 라고 일러주었다. (손가락질을 반복했다.) 결 국 워슈가 끈 옆을 다시 지나갈 때 로저는 수화로 "그래, 그래, 그래." 라고 말했고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워슈가 그 지점에 이르러 끈을 집어들자 로저는 역겨울 만큼 칭찬을 많 이 했다. 그리고 "봐라, 저놈은 끈을 찾는 데 애를 좀 먹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뭔 가 석연치 않았다. |
요즘 과학자들 사이에는 유인원의 언어능력을 찬양하는 이런 초창기의 주장들에는, 신빙성이 없다는 여론이 형성돼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일까? 오늘날까지 유인원의 언어능력을 입증하는 신빙성 있는 사례는 딱 한 차례 제시되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캔지라는 보노보 침팬지이다. (이 이론에 관한 대단히 재미있는 설명은 수 세비지-럼보와 로저 루인 공저의 『 캔지 - 인간 정신세계의 문턱에 와 있는 원숭이 : Kinzi - The Ape at the Brink Human Mind 』에 소개됐다.)
보노보 침팬지 (학명은 Pan paniscus) 는 평범한 침팬지 (학명은 Pan troglodytes) 의 변종인데 둘 사이를 구별하기 위해 흔히 피그미 침팬지라 부르기도 한다. 녀석들은 주로 콩고 (또는 자이르)강 서쪽과 남쪽 디내에 위치해 있는 자이르의 열대 다우림 지역에 서식하고 있다. 녀석들은 보통 침팬지와는 조금 다른 사회구조를 이루며 살고 있는데 성적 접촉이 빈번한 것이 특징이다.
이 원숭이종은 1920년대에 처음 발견된 이래 유인원 중에서 가장 똑똑한 종이라는 이야기가 영장류 동물학자들 사이에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캔지 이야기는 1981년 애틀랜타에 있는 언어연구 센터에서 시작되었다. 수 새비지-럼보는 캔지를 입양한 엄마 원숭이에게 키보드로 의사를 소통하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엄마 원숭이 역시 보노보 침팬지이며 매터터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키보드는 음식점에서 쓰는 큰 접시만했고 각 키마다 여러 기호들이 붙어 있었다. 따라서 침팬지가 "말"을 하고 싶으면 그냥 순서대로 키들을 두들기기만 하면 되었다. 생후 5년 동안 야생상태에서 살았떤 매터터는 키보드를 사용하는 방법을 정말로 배울 수 없었다.
그러나 매터터가 지겹도록 훈련을 받고 있는 동안 캔지는 마치 인간의 어린아이처럼 방 안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닐 수 있었다. 캔지가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릴 차례가 되었을 때 녀석은 그 사용법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녀석은 인간의 어린아이와 대단히 흡사한 방법으로 키보드에 그려져 있는 기호 언어들을 익힌 것이다. 이를테면 일종의 삼투압 현상처럼 조금씩 곁눈질로 지식을 흡수하는 방법을 말한다.
"영리한 한스"의 전설을 익히 알고 있었던 새비지-럼보와 그녀의 동료들은 극도로 신중하게 실험을 준비했다. 예를 들어, 그녀가 한 과학 세미나에 제출한 기록영화를 보면 새비지-럼보가 캔지를 상대로 참신한 영어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을 실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캔지가 자기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용접용 마스크를 쓰고는 아무런 바디 랭귀지 없이 목석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캔지에게 공과 비누가 들어 있는 병을 집으라고 시킨 다음 "비눗물을 공에 묻히렴." 하고 말했다. 이 말은 캔지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문장이었다. 캔지는, 비눗물이 든 병을 집더니 공 위에 비눗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캔지의 언어능력을 입증하는 이런 실험이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도 과거의 실험사를 생각하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과학계에는 이 실험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보기엔 새비지-럼보가 그렇게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녀는, 캔지가 생후 2년 반쯤 되는 유아와 비슷한 언어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실험내용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와닿은 점은 조련사들이 단어가 아닌 철자들을 하나씩 불러줌으로써 캔지가 단어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게 배려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부모들도 한번쯤 써볼 만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캔지에 관한 실험적 주장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인간은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영장류 중 가장 영리한 종인 인간을 빼놓고는 모든 동물 세계에서 진짜 셰익스피어라 할 만한 종을 찾았다. 이녀석은 특별하고 이례적인 조건에서 양육되었지만 인간으로 치면 생후 2년 반짜리 아기에 해당하는 지능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진정한 언어능력은 바로 이때부터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 실험결과가 암시하고 있듯이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생후 세 살 무렵까지 두뇌 속에 장착된 "문법회로"가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리 최적의 학습조건을 마련해줘도 진정한 인간의 언어를 배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런 결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또 있다. 캔지의 언어능력은 이 실험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났어도 길이로 치면 서너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또 캔지에게서는 앞에서 언급한 태생적인 문법영역에서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어떤 형태의 특징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같은 사실을 감안해볼 때 인간의 언어는 인간이라는 종에게만 독특하게 존재하는 적응능력 중의 하나, 즉 어떤 동물들도 가지고 있지 못한 능력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해도 무리가 없을 성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