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의 과학 : 인공성의 창조
인공과학 : Herbert Simon 저, 이종범 역, 삼영사, 1987 년 (원서 : The Science of the Artificial, 2nd ed, MIT Press, 1981), Page 165~202
역사적으로 그리고 전통적으로 자연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 즉 어떻게 그것들이 존재하고 어떻게 활동하는가 하는 것은 과학분야의 임무가 되어 왔다. 그리고 인공적인 것에 대해 가르치는 것, 즉 우리가 원하는 속성들을 가진 인공물들을 만들고 설계하는 것은 공학계통의 임무로 되어 왔다.
그러나 공학도만이 유일한 전문적 설계가는 아니다. 현존하는 상황을 더 나은 상황으로 바꾸기 위한 행위의 방식을 계획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설계를 하는 것이다. 물질적 인공품을 생산하는 지적인 활동은 환자에 대해 처방을 해주는 것이나, 회사를 위해 새로운 판매계획을 고안하는 것이나, 국가를 위해 사회복지정책을 고안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그렇게 이해된 설계라는 것은 모든 전문적 훈련의 핵심이 되는 것이고 과학과 직업적 전문성과를 구별하는 원칙적인 표지가 되는 것이다. 건축, 경영, 교육, 법, 의학 뿐만 아니라 공학관계의 전문직 학교들은 모두 설계의 과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전문적 활동으로서 설계의 주요 역할의 관점에서 볼 때 금세기에 자연과학이 전문대학의 교과과목에서 인공과학을 거의 내몰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공대는 물리학과 수학의 학교가 되었고, 의대는 생물학 학교가 되었고, 경영대는 유한수학 (finite mathematics) 의 학교가 되어 버렸다. "응용" 과 같은 형용사들의 사용은 사실을 감추지만 사실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그러한 사실은 전문대학에 있어서 전문직의 수행에 가장 관련깊은 것으로 생각되는 주제들의 강조를 위해 수학과 자연과학에서 선택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것은 분석과 구분되는 것으로서의 설계가 가르쳐진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인공과학과는 멀어지고 자연과학 쪽으로 접근하는 움직임은 내가 언급한 다른 전문직 분야들보다, 공대, 경영대, 의대에서 더 빨리, 그리고 더 깊이 진행되어 왔다. 그렇다고 법학, 신문방송학, 도서관학 분야에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부실한 대학교보다는 튼튼한 대학교가 학부보다는 대학원과정이 더 깊이 물들어 있다. 요즈음 일류 전문대학의 박사학위논문치고 반도체 물리학이나 통계추리과정과 같은 문제와 구별되는 순수설계의 문제를 다룬 것은 없다. 컴퓨터 공학과 관리과학의 학위논문들 가운데에 부분적인 예외가 있고, 다른 분야, 예를 들어 화공학분야에도 예외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와 같은 보편적 현상에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매우 명백한 것이다. 독립적인 공과대학을 포함하여 전문대학들이 대학의 일반적 분위기에 빠져들 게 되면 될수록 그들은 학문적으로 존경받는 것을 더욱더 갈망하게 된다. 널리 통용되는 규범의 입장에서 볼 때 학문적으로 존경받는다는 것은 지적으로 강인하고 분석적이고 공식화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는 주제의 문제들을 필요로 한다. 과거에 우리가 설계와 인공과학에 대해 알고 있던 대부분은 아니라 할지라도 많은 부분이 지적으로 부드럽고 직관적이고 비형식적이며 조리법과 같은 것이었다. 자기 자신은 반도체 물리학에 관심이 있을 때 어느 누가 기계를 설계하고 시장 전략을 계획하는 것에 관해 대학에서 배우고 가르치려고 하겠는가? 대답은 분명하다. 대개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그 문제는 공학과 의학에서는 크게, 경영학에서는 그보다는 적게 인식되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응용학문의 학교들을 옛날의 직업학교보다 좀 더 나은 대안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문제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선택이 그것밖에 없다면,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상 그러한 것은 한 세대 전에 우리의 공과대학에서 한 선택이다. 대학은 직업주의를 청산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나 그 대안으로서의 순수한 설계과학이 초보적인 형태에서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란 보다 기초과학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칼 테일러 콤튼도 이러한 개혁의 뛰어난 지도자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것은 1930 년 M. I. T. 에서 행한 그의 총장 취임 연설의 주제였다.
"내가 바라건데..... 이 대학 내에서 기초과학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주어질 것이며, 그 기초과학은 경험해 보지 못한 연구의 정신과 결과를 성취할 것이며, 모든 강의의 교과들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기초 원리들에 대한 보다 강력한 훈련을 하는 대신에 세부적인 것에 대한 훈련이 부당하게 강조되고 있지 않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세심하게 조사되어질 것이다."
콤튼 총장의 강조가 1930 년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적절한 강조인 "기초" 에 대한 것이었다는 점을 주목하라. 이 논문에서 내가 주장하고 싶은 사실은 기초를 이탈하자는 것이 아니라 교과과목 안에 자연과학에 있어서의 기초와 함께 공학에 있어서의 기초도 포함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1930 년에는 불가능했지만 오늘날에는 가능하다.) 그러나 어느 대안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구식의 전문학교는 대학에 적당한 지적 수준에서 전문적인 설계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를 몰랐고, 요즈음의 학교는 핵심적인 전문적 기술의 훈련에 대한 책임을 거의 포기해 버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두 가지 목적, 즉 높은 지적 수준에서 인공과학과 자연과학을 둘 다 교육하는 목적을 동시에 성취할 수 있는 전문학교를 고안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 또한 설계의 문제, 즉 조직설계의 문제가 된다.
문제의 핵심은 "인공과학" 이라는 문구에 있다. 이제까지 인공현상에 대한 과학이란 언제나 해체되어 사라지는 긴박한 위험 속에 있다는 것을 밝혔다. 인공성 특유의 속성은 그 안에 있는 자연법칙과 밖에 있는 자연법칙과의 좁은 상응성 위에 있다. 그것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경계의 과학 —— 수단과 과업환경을 지배하는 —— 이외에 연구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인공성의 세계는 정확히 내부환경과 외부환경 사이의 이 상응성 위에 집중된다. 인공성의 세계란 내부환경을 외부환경에 적응시킴으로써 목표를 성취하는 데 관심이 있다. 인공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연구란 환경에 적응하는 수단을 어떻게 얻는가 하는 방법이며, —— 그리고 중점적인 것은 설계과정 그 자체이다. 전문적인 대학들은 설계의 과학, 즉 설계과정에 관한 일체의 지적으로 강인하고 분석적이고 어느 정도 공식화할 수 있고, 어느 정도 경험적이며 가르칠 수 있는 원칙을 발견할 수 있는 한에서만 그들의 전문적인 책임성을 다시 담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설계의 과학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현재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이 장의 주제이다. 설계과학은 특별히 컴퓨터 과학과 "체계공학" 의 프로그램들을 통해 이미 공과대학들에 침투하기 시작했고, 관리과학을 통해 경영대학들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아마 다른 전문적 교과과목에서도 역시 발판을 마련했는지도 모르나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은 이 두가지이다. 우리는 이미 미래의 공과대학들이 물리학과는 달라지고 경영대학들이 경제학과, 심리학과와 달라질 몇 가지 중요한 면을 예견하기에 충분한 만큼 설계과학의 새로운 양상들을 볼 수 있다. 이제 대학의 조직문제에서 문제의 실체로 눈을 돌려보겠다.
우리는 논리에 대한 규명을 하기 위하여 몇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출발해야 한다. (나는 이전의 두 논문에서 설계에 대한 논리적 형식주의의 문제를 상세히 다루었다. 즉, "The Logic of Rational Decision,"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16 (1955) pp. 166 ~ 186 ; "The Logic of Heuristic Decision Making," in Nicholas Rescher (ed.) , The Logic of Decision and Action (Pittsburgh : University of Pittsburgh Press, 1967) pp. 1 ~ 35 이다. 이곳에서의 논의는 이 두 논문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두 개 논문은 나의 Models of Discovery (Dordrecht : D. Reidel pub. Co., 1977) 의 3.1 과 3.2 장에 재수록되었다.) 자연과학은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일반적인 논리의 체계 —— 즉, 표준적 명제계산과 술어계산 —— 가 이러한 과학들에는 잘 들어맞는다. 표준논리의 관심은 서술적 언명이기 때문에 그것은 세계에 관한 주장이나 그 주장들에서 나오는 추론들에 대해 적절한 것이 된다.
한편, 설계는, 즉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인공물의 고안, 즉 사물이 어떻게 되어야만 하는가에 관심이 있다. 자연과학에 적합한 논리의 형태가 설계에도 역시 적합한가 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 "해야만 한다" 라는 동사를 집어 넣는 것이 추론의 부수적 법칙이나 서술적 논리 안에 이미 존재하던 법칙의 수정을 요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명령법의 분명한 논리, 즉 규범적이고 의무론적인 논리의 필요를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역설들" 이 만들어졌다. 일반적인 논리에서 "개는 애완동물이다" 와 "고양이는 애완동물이다" 에서 "개와 고양이는 애완동물이다" 라는 것을 추론해 낼 수 있다. 그러나 "개는 애완동물이다" "고양이는 애완동물이다" 와 "너는 애완동물을 길러야만 한다" 라는 것에서 "너는 고양이와 개를 길러야만 한다" 라는 것을 추론해 낼 수 있는가? 그리고 "실과 바늘은 달라!" 라는 것에서 서술적 논리에 의한 유추로 "실이나 바늘을 달라!" 라고 연역해 낼 수 있는가? 쉽게 좌절하는 사람들은 아마 바늘이나 실들 가운데 하나만 있는 것보다는 둘 다 갖지 않게 될 것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개와 고양이 둘 다를 두는 것보다는 어느것도 기르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러한 명백한 역설의 도전에 대한 대응으로서 다양한 종류의 "shoulds", "shalts" 와 "oughts" 를 다루는 수많은 양상논리 (modal logic) 의 구축이 개발되어 왔다. 내 생각으로는 이러한 체계들 가운데서 어느 것도 그것이 설계 과정의 논리적 요구를 다루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할 만큼 개발되었고 폭넓게 적용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옳다.
다행히 그러한 증명은 실제로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설계의 요구는 일반적인 서술적 논리의 적절한 적응에 의해 충분히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령법에 대한 특별한 논리는 불필요하다. ("불필요하다" 는 말에 강조를 하고 싶다. 이와 같은 것을 다른 곳 (앞 괘에서 언급한 두 번째 논문) 에서 이야기했을 때 양상논리를 전공한 유능한 논리학자는 내가 양상논리는 "불가능하다" 고 주장했다고 나를 비난했다. 이제 다음과 같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 아니다. 양상논리는 기린의 경우와 똑같은 방식으로 —— 즉, 그들 가운데 몇몇을 전시해 보임으로써 —— 존재하는 것을 보일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존재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 그것이 유용한가에 있다. 어떤 양상논리학자도 "불필요" 와 "불가능" 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설계에 있어서 어떤 종류의 논리가 필요한가를 아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설계가들이 주의깊게 논증을 펼치고 있을 때 어떤 종류의 논리를 사용하는가를 조사해 보는 것이다. 만약 설계가가 언제나 막연히, 모호하게, 그리고 직관적으로 추론하는 깊이 없는 친구라면 그렇게 해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이 무슨 논리를 사용했든지 그것은 그들의 사용해야만 하는 논리는 아니었다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추론에 있어서 엄격한 기준이 사람들이 원할 수 있는 만큼 고도로 발달된 상당한 정도의 설계행위 영역이 존재한다. 나는 소위 "최적화 방법" 의 영역을 지칭하고 있다. 이것은 통계적 정책이론과 관리과학에서 크게 발전되었다고 말하지만 공학설계 이론에서도 그 중요성이 증가되고 있다. 확률과 효용이론 및 그것들이 합쳐진 종합 이론들은 실제 설계가들과 정책결정자뿐만 아니라 현세대와 최근 몇세대 동안 상당수의 뛰어난 논리학자와 수학자들의 관심분야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램지 (F.R. Ramsey) , 피넷티 (B. de Finetti), 왈드 (A. Wald) , 폰 노이만 (J. von Neumann) , 나이만 (J. Neyman) , 애로우 (K. Arrow) , 새비지 (L.J. Savage) 등이다.
최적화 방법의 논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설계 문제의 "내부환경" 은 일련의 주어진 행동의 대안들로 표시된다. 그 대안들은 상세하게 (in extenso) 주어지기도 하지만 주로 영역을 규정하는 지휘 변수들 (command variables) 의 관점에서 구체화된다. "외부환경" 은 일련의 파라미터들에 의해 나타나는데 그것은 정확히 알려질 수도 있고 단지 확률적 분포로 알려질 수도 있다. 내부환경을 외부환경에 적응시키는 목적은 여러 가지의 제약요소들 (즉, 지휘변수의 함수와 환경 파라미터의 함수 사이의 불일치) 이 붙은 효용함수 —— 지휘변수와 환경 파라미터들의 함수, 대체로 스칼라 —— 에 의해 정해진다. 최적화 문제는 제약요소들과 모순이 없고 환경 매개변수들의 주어진 값에 대해 효용함수를 극대화하는 일련의 받아들일 만한 지휘변수들의 값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확률적인 경우에 "효용함수를 극대화" 하는 것 대신에 "효용함수의 기대치를 극대화"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
<논리적 술어> <예 : 식이요법 문제>
지휘변수 ("수단") 음식물의 양
고정파라미터
("법칙") 
("목표") 
——————————————
제약요소들은 내부환경을 특징짓는다 ;
파라미터들은 외부환경을 특징짓는다.
<문제> ; 제약요소들과 고정파라미터들이 주어지고, 효용을 극대화시키는 지휘변수의 값을 찾는 것
[도표 6] 명령적 논리의 패러다임
[도표 6] 에 나타난 소위 "식이요법 문제" 가 이 패러다임의 진부한 적용이다. 음식물 목록이 주어지면 식이요법에 포함되어질 수 있는 다양한 음식물의 양이 지휘변수가 된다. 음식의 가격과 영양분 (칼로리, 비타민, 미네랄 등등) 이 환경 파라미터들이 된다. 하루에 2, 000 칼로리 이상을 포함하지 않고, 비타민과 미네랄의 구체적인 최소한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어야 하며, 1 주일에 한번 이상 루타바가 (rutabaga)를 먹여서는 안되는 것과 같은 제약요소의 지배를 받는 식이요법의 (마이너스 부호가 붙여진) 가격이 효용함수가 된다. 이러한 제약요소들은 내부환경을 특징지우는 것으로 파악되어질 수도 있다. 주어진 가격에 따르되 가장 낮은 비용으로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해 주며 부수조건들을 만족시키는 음식들의 양을 선정하는 것이 문제이다.
식이요법 문제는 변수의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선형계획으로 알려진 수학적 공식에 의해 쉽게 다루어질 수 있는 종류의 문제들 가운데 간단한 예이다. 그 기법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설명하겠고 현재 나의 관심은 문제의 논리에 있다.
최적화문제는 한번 공식화되어지면 표준수학문제 —— 제약요소에 따르면서 함수를 극대화하는 것 —— 가 되기 때문에, 해답을 끌어내는 데 사용되는 논리는 수학이 의존하는 술어 계산의 표준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어떻게 공식주의가 명령법의 특수한 논리의 사용을 피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일련의 가능한 세계를 다룸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즉, 먼저 외부환경의 제약요소들을 만족시키는 모든 가능한 세계들을 고려해 본 후, 목표에 대한 나머지 제약요소들을 만족시키고 효용함수를 극대화시키는 것들 가운데서 특수한 세계를 발견해 내는 것이다. 그 논리는 마치 우리가 목표의 제약요소들과 극대화의 요구를 새로운 "자연법칙들" 로서 환경의 조건에 나타난 현존하는 자연법칙에 연결시키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명령적 논리를 서술적 논리에 끼워넣기 위해 "가능한 세계" 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은 적어도 JØrgen JØrgensen, "Imperatives and Logic," Erkenntnis, 7 (1937 ~ 1938), pp. 288 ~ 296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의 Administrative Behavior (New York : Macmillan, 1947) , 3 장 참조. 보다 더 최근에는 이러한 똑같은 생각이 소위 의미론적 또는 모형 - 이론적 방법에 의해 술어계산 (predicate calculus) 과 양상논리 사이에 공식적 가교를 놓기 위해 몇몇 논리학자들에 의해 사용되어져 왔다. 예를 들어 Richard Montague "Logical Necessity, Physical Necessity, Ethics, and Quantifiers," Inquiry, 4 (1960), pp. 259 ~ 269 를 보라. 그곳의 참고문헌에는 Stig Kanger 와 Saul Kripke 의 논문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Jaakko Hintikka, "Modality and Quantification," Theoria, 27 (1961), pp. 119 ~ 128 도 참조. 이러한 모형 - 이론적 제안들이 기본적으로는 확고하지만, 그것들 가운데 어느 것도 아직은 이론에서 지휘변수들과 판단기준이 되는 제약요소들이 수행하는 특별한 역할에 적절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단지 이러한 모든 조건들을 만족하는 지휘변수들이 세상에서 어떤 값을 갖게 될 것인가를 물어 보고 지휘변수들이 가져야만 하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다라고 결론짓기만 하면 된다.
이제까지 우리의 논의에서 이미 설계과학의 교과과목에 대한 두 가지 중요한 주제가 나타났다.
1. 효용이론과 통계적 결정이론 —— 주어진 대안들 가운데서 합리적 선택을 하는 논리적 틀
2. 가능한 대안들에서 최적의 대안을 실제로 연역하는 기술들
단지 사소한 경우에만 최적대안을 계산해 내는 것이 쉬운 문제이다. 만약 효용이론이
실제생활의 설계문제에 적용이 되려면 실제의 계산을 위한 도구들이 뒤따라야 한다.
합리적 장기선수의 딜레마는 모두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장기에 있어서 최적의
전략은 쉽게 증명될 수 있다. 즉, 이기면 + 1, 비기면 0, 지면 -1 이라는 값을 단순히
붙여 주고, 시합하는데 모든 가능한 코스들을 생각해 보고, 각각의 선수가 어떤 경우가
주어지든 그에게 열려진 가장 바람직한 움직임을 했다고 가정하고, 각각의 결과에서
뒤로 거슬러 최소, 최대값을 계산해 본다. 이러한 과정은 지금 어떤 것을 움직여야
하는가를 결정해 줄 것이다. 한 가지 문제는 필요한 계산이 천문학적 숫자 (이런
내용에서는
이라는 숫자가 종종 언급되어진다.) 에 이르고 따라서
인간은 물론, 현존하는 컴퓨터 또는 앞으로 나올 컴퓨터에 의해서도 다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장기 게임에 응용된 것같은 설계이론은 유토피아적인 최소, 최대 원칙 뿐 아니라 실제의 인간과 컴퓨터의 계산능력 안에서 실제 판의 위치에 따라 좋은 장기를 두는 몇 가지 현실적인 과정들을 포함할 것이다. 대가들의 기억 속에 저장된 것말고 이런 종류의 경이적으로 훌륭한 절차들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장기 전문가나 준명수 —— 수백명의 선수를 제외한다면 누구보다도 우수한 —— 에 해당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하나 있다.
그리고 설계과학의 교과과정에 있어서 두 번째 주제는 실제의 상황에서 행동의 최적 코스나 실제 상황에 대한 합리적인 근사값을 실제로 발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계산 기술에 있다. 제 2 장에서 언급했듯이 그 주제는 오늘날 많은 중요한 요소들을 갖고 있는데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 적어도 실제로 응용할 수 있는 수준은 —— 지난 25 년 동안에 개발되어진 것이다. 이것들은 선형계획이론, 역동계획 (dynamic programming) , 기하학적 계획 (goemetric programming) , 대기이론 (queuing theory) , 그리고 통제이론 (control theory) 등이다.
계산기법의 주제가 최적화에 한정될 필요는 없다. 전통적인 공학설계방법은 최대값이나 최소값 보다는 부등식 —— 만족스러운 수행의 구체화 —— 을 더 많이 이용한다. 소위 "장점의 값" (figures of merit) 은 "더 좋고" "더 나쁘다" 는 관점에서 설계들 사이의 비교를 하게 하지만 "최상" 의 판단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자동조절기구 (servomechanism) 의 설계에서 사용된 근원궤적방법 (root - locus methods) 을 들 수 있다.
최적의 것 대신에 좋거나 만족스러운 해결을 찾는 결정 방법에 대한 어떤 영어단어가 없는 것 같아서, 몇 년 전 나는 그런 과정에 대해 "만족" (satisficing) 이라는 용어를 소개했다. 이제 누구든지 똑같이 잘 최적화시킬 수 있다면 자기 정신을 가진 사람은 그저 만족스러운 상태에 있지는 않을 것이며, 그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웬만큼 좋거나 보다 나은 상태에 안주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설계상황에서 문제가 그런 식으로 되지는 않는다.
제 2 장에서 논의한 것처럼 실제 세계에서 우리는 대개 만족스러운 해결과 최적의 해결 사이에서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최적상태를 찾는 방법을 가질 때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떠돌아다니는 외판원 문제로 불리워지는 유명한 조합문제를 생각해 보자. 일련의 도시에 대한 지리적 위치가 주어졌을 때 외판원이 최단거리로 모든 도시를 다 돌아다니는 길을 찾아보자. ("떠돌아다니는 외판원 문제" 와 그와 아주 비슷한 수많은 조합문제들 —— "창고 위치설정문제" 와 같은 —— 은 예를 들어 서로 연결된 격자에서 중앙발전소의 위치는 설정하는 것같은 문제에 있어서 상당히 실제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서 간단한 최적화방식 (장기에서 최소, 최대 방식과 비슷한) 이 있다. 즉, 모든 가능한 통로를 해보고 가장 짧은 것을 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당한 숫자의 도시에 대해서는 그 방식이 계산상 불가능하다 (N 도시를 도는 통로의 숫자는 N ! 이 될 것이다.) . 비록 찾는 대안들이 숫자를 줄여주는 몇 가지 방법이 발견되었지만, 예컨대 50 개의 도시에 대해 받아들일 만한 양의 계산으로 떠돌아다니는 외판원문제를 풀어주기에 충분한 방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외판원을 집에 앉혀두기보다는 최적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에게 만족스러운 통로를 찾아 주는 편이 나은 것이다. 대부분의 상황하에서는 아마도 상식이 매우 훌륭한 통로에 이르게 하지만, 어떤 몇 가지 교시적인 방법들에 의해 훨씬 좋은 것이 종종 발견되어지곤 한다.
최적화할 능력의 결여 때문에 만족을 추구하는 상황의 표지는 비록 일련의 가능한 대안들이 어떤 추상적인 의미에서 "주어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과적으로 모든 대안을 만들도록 보장해 주는 창출기구를 규정할 수 있다.) 대안이 현실적으로 적절하다는 의미에서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모든 받아들일 만한 대안들을 만들고 그것들 각각의 장점들을 비교할 수는 없다. 또한 비록 우리가 운 좋게도 일찍 그 대안들을 만들어 냈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을 다 살펴보기 전까지는 최상의 대안을 찾아낼 수는 없다. 우리는 그저 웬만큼 찾아본 후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것을 찾는 그런 방식으로 대안들을 찾아내는 것에 만족한다.
이제 많은 만족상황 속에서 받아들일 만한 특정한 기준에 맞는 대안을 찾는 탐색의 예상기간은 탐색이 요구되는 대안의 모집단의 전체 규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준이 얼마나 높게 설정되었느냐에 달려 있다. 건초가리에서 바느질하기에 충분히 뾰족한 바늘을 찾는 데 드는 시간은 건초가리의 전체 규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뾰족한 바늘들의 밀집분포에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만족의 방법을 사용하게 되면 형식적으로 비현실적인 계산방식에 의해 받아들일 만한 모든 대안들이 "주어졌는가" 아닌가는 종종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 대안들의 규모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조차도 종종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만족의 방법은 외판원 문제의 경우처럼 대안들이 "주어졌다" 는 황당한 의미로도 대안들이 "주어지지" 않은 광범한 영역의 설계문제에 대해 폭넓게 확장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을 음미하는 것이 다음의 과제이다.
우리가 설계대안들이 어떤 구성적인 의미로 주어지지 않고 종합되어야만 하는 경우에 한번 더 우리는 그 종합과정에 새로운 형태의 추론이 담겨져 있는가 또는 서술적 언명의 표준 논리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인가를 물어 보아야만 한다.
최적화의 경우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모든 가능한 세계 (여러 행동변수의 어떤 받아들일 만한 값에 대해 얻어질 수 있는 것들)에서 어느 것이 최상의 (기준함수의 최상의 값을 낳는) 것인가?"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이것을 답하는 데는 사실들과 일반적인 서술적 추론만이 필요한 순전한 경험적인 질문이다.
만족스러운 대안을 찾는 이러한 경우에 가능한 대안 하나를 발견하게 되면 다음과 같이 물어볼 수 있다. 이 대안이 모든 설계의 기준들을 만족시켜 주는가? 분명히 이것 또한 사실에 관한 질문이며, 새로운 논리적 문제를 불러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안들을 탐색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대안탐색에 어떤 종류의 논리가 필요한가?
어떤 목표 추구 체계의 조건은 그 체계가 두 종류의 통로를 통하여 외부세계와 연결되었다는 점이다. 하나는 환경에 관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구심성, 즉 감각의 통로이며, 다른 하나는 환경에 대해 행동을 하는 원심성, 즉 운동의 통로이다. (두 종류의 통로가 분명히 살아 있는 기관 속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독립적으로 작동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는 점에 주의하라. 우리는 들어 오고 나가는 흐름을 우리가 개념적으로, 어느 정도는 신경학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할 뿐이다.) 체계는 그의 기억 속에 세계의 상태에 관한 정보 —— 구심적 또는 감각적인 정보 —— 와 행동에 관한 정보 —— 원심적 또는 운동적인 정보 ——를 저장하는 어떤 수단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능력은 세계의 상태의 특별한 변화들과 이러한 변화들을 (믿을 만하든 아니든) 일으킨 특별한 행동들 사이의 간단할 수도 있고 매우 복잡할 수도 있는 연관을 짓는 데 달려 있다.
몇 가지 타고난 반사작용을 제외하고는 어린아이는 그의 감각적 정보와 그의 행동과를 연결시켜 주는 어떤 바탕이 없다. 그의 초기 학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은 그가 느끼기에 어떤 특별한 행동이나 연속적인 행동들이 세상의 상태에 특별한 변화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그가 이러한 지식을 형성하기 전까지는 감각의 세계와 운동의 세계란 완전히 두 개의 별개의 것이고, 전적으로 관련이 없는 세계이다. 그가 전자의 요소와 후자의 요소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경험을 얻기 시작할 때에 비로소 그는 세계에 대해 의도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인간의 문제해결에 대한 몇 가지 주요 양상들을 모형화하도록 고안된 GPS 라고 불리워지는 컴퓨터 문제 해결 프로그램은 목표 지향적인 행동이 구심적 세계와 원심적 세계 사이의 연결을 형성하는 데 의존한다는 것을 강력한 형태로 보여준다. 구심적, 즉 감각의 측면에서 GPS 는 현재의 상황뿐 아니라 바람직한 상황이나 바람직한 목표를 표상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것은 바람직한 것과 현재와의 차이들도 표상할 수 있어야 한다. 원심적인 측면에서는 GPS 대상이나 상황을 바꾸는 행동들도 표상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의도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GPS 는 때때로 바람직한 상태와 현재 상태와의 특정한 차이들을 찾아내 제거하기 위한 특별한 행동들을 선택할 수 있어야만 한다. GPS 의 기계장치에서 이러한 선택은 발견되어질 수 있는 각종의 차이와 그 차이를 줄이는 행동과를 관련시키는 연결표 (table of connections) 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연결은 구심적 세계와 원심적 세계를 연결시킨 산출의 형태로 표시된 관련이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일련의 행동들이 필요하고 그러한 몇 가지 시도들은 비효과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GPS 는 그것이 진행되는 과정 (실제와 바람직한 것과의 차이에 있어서의 변화들) 을 찾아내고, 또 다른 통로를 시도해 보는 수단을 또한 갖고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GPS 는 체계를 주어진 상황에서 바람직한 상황으로 이끌어 갈 일련의 행동들을 발견하고 모으기 위해서 (대단히 클지도 모를) 환경을 선택적으로 탐색하는 체계이다. 그러한 탐색을 지배하는 논리의 규칙은 무엇인가? 표준적인 논리 이외의 것이 있는가? 우리는 처리과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양상논리를 필요로 하는가?
표준논리이면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구심적 세계와 원심적 세계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우리는 GPS 가 커다란 미로를 통과하여 움직이는 것으로 파악한다. 미로의 교차점들은 구심적으로 서술된 상황들을 나타내고, 한 교차점을 다른 교차점으로 연결하는 통로들은 하나의 상황을 다른 것으로 변형시킬, 운동의 연속들로 서술된 행동들을 가리킨다. 어떤 주어진 순간에 GPS 는 언제나 한 가지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다음번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GPS 는 행동과 상황의 변화와의 관계에 대해 불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앞 절에서 이미 논의한 종류의 불확실성하에서의 선택의 문제가 된다.
설계를 마무리짓는 완성된 행동인 해결이 일련의 구성요소가 되는 행동들로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대안 탐색의 특징이다. 대안들의 영역이 엄청나게 큰 것은 구성요소인 행동은 많지 않지만 그것들이 조합하여 연속체를 만드는 방법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에 기인하다.
완성된 행동들을 구성하는 연속체 대신에 구성요소가 되는 행동들을 고려함으로써 많은 것이 얻어진다. 그 이유는 구심적으로 볼 때 상황은 원심적인 요인분해 (factorization)에서 유도된 구성요소로서의 행동들과 적어도 대략적으로는 맞아 떨어지는 성분으로 요소분해되기 때문이다. GPS 에 내재하는 추론은 만약 바람직한 상황과 현재의 상황이 D₁, D₂, ... , D?이라는 차이로 다르게 나타나고, A₁이라는 행동이 D₁의 차이를 제거하고, A₂가 D₂의 차이를 제거해 주는 식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상황은 A₁,A₂,..., A?이라는 일련의 행동을 수행함으로써 바람직한 상황으로 변형될 수 있다.
이러한 추론은 모든 가능한 세계에서의 표준논리의 규칙에서 볼 때 결코 타당하지 않다. 그것의 타당성은 몇 가지 행동이 몇 가지 차이에 미치는 효과는 독립적이라는 다소 강한 가정들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합할 수" (additive) 있거나 "나눌 수" (factorable) 있는 곳에서는 이 추론이 타당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앞에서 인용한 개 - 고양이와 실- 바늘 예에서의 역설의 분위기는 이 두 경우에 있어서 행동들을 합칠 수 없다는 바로 그 점에서 생겨난 것이다. 경제학자들의 용어로 첫 번째는 수입체감 (decreasing returns) 의 경우이고 두 번째는 수입체증 (increasing returns) 의 경우이다.) .
그런데 문제해결자나 설계가들이 착수하는 현실세계는 이런 점에 있어서 좀처럼 완전히 합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행동에는 부수적 결과들이 따르며 (새로운 차이를 낳게 할지도 모른다.) , 종종 어떤 부수적 조건들이 충족될 때에만 (그것들이 실제로 적용되기 전에 다른 차이들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행동들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는 일정한 목표들을 성취하는 부분적인 일련의 행동들이 강화되어 문제의 모든 조건들을 만족시켜 주고 모든 목표들 (비록 그것들이 만족 목표들이라 할지라도)을 성취하는 해결방법을 제공해 주지라는 보장은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실세계의 문제해결 체계와 설계과정들은 단순히 구성요소들에서 문제해결 방법들을 조립 (assemble) 하는 것만이 아니라, 적절한 조립을 탐색해야만 한다. 탐색을 하는 데 있어서 달걀들을 수많은 바구니들에다 나누어 넣는 것이 종종 효과적이다. 즉, 완전히 성공하거나 확실히 실패하게 될 때까지 한 가지 줄기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작부터 몇 개의 잠정적 통로를 탐색하면서 각 시점에서 가장 유망하게 보이는 몇가지를 계속 추적해 보는 것이다. 만약 현재 추적되고 있는 통로 가운데 하나가 보다 덜 유망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이전에 보다 낮은 우선순위에 있었던 다른 것과 대치될 수 있다.
대안들이 주어지지 않을 때 설계에 대한 우리의 논의는 설계과학의 교육에 있어서 적어도 세가지의 부수적인 주제들을 덧붙이게 되었다.
3. 대안의 탐색에 있어서 표준논리의 변용. 설계의 해결책이란 특정한 제약요건들을 만족시켜주는 가능한 세계에 이르는 행위들의 연속체이다. 만족목표의 경우, 추구하는 가능한 세계와 유일한 경우는 거의 없다. 탐색이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필요한 행동들이 아니라 충분한 행동을 추구한다.
4. 차이들의 병렬적인 또는 거의 병렬적인 요인분석화의 개발. 수단 - 목표 분석은 이러한 요인분석을 이용하여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문제해결 기법의 한 가지 예다.
5. 탐색된 대안적인 행동의 연쇄의 탐색을 위한 자원의 배분. 나는 마지막에 언급된 이 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설계과정이 자원배분에 관심을 두는 데는 두 가지 면이 있다. 첫째, 희소한 자원의 보존이 만족스러운 설계자에 대한 하나의 준거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설계과정 그 자체 속에 설계자의 자원관리를 포함시켜 그의 노력이 쓸모없는 탐구의 방향을 좇음으로써 불필요하게 분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원보존 —— 예를 들어 설계의 준거기준으로서 비용절감 —— 에 대해서 이곳에서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있는 것은 없다. 비용절감이란 공학구조의 설계에 있어서 언제나 암묵적인 고려 사항이 되어 있었다. 하나 몇 년전 까지만 해도 그것은 일반적으로 명시적이라기보다는 암묵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었다. 점점 더 비용계산이라는 것이 설계과정에서 명시적으로 나타나게 되고, 경제학자들에게 "손익분석" 으로 알려진 일단의 기술과 이론들이 오늘날 설계공학자들을 훈련시키는 데 중요한 실례들이 되었다.
설계비용 자체가 설계과정을 이끌어 가는 데 고려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주 최근에 소개되어진 것이고 직관적인 형태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지 않다. 이와 관련된 하나의 훌륭한 예로서는 마빈 만하임 (Marvin L. Manhein) 의 M. I. T. 박사학위 논문인 고속도로 위치 설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절차이다. (Marvin L. Manheim, Hierachical Structure : A Model of Design and Planning Process (Cambridge : The M. I. T. Press, 1966). )
만하임의 절차는 두 가지 주요생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매우 일반적인 계획의 수준에서 실제건설을 결정하는데 까지 점차적으로 설계를 구체화시킨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어떤 계획을 보다 구체적으로 추적할까를 결정하는 기초로서 보다 높은 수준에서 계획에다 가치를 부여한다는 생각이다.
고속도로 설계의 경우에 있어서 보다 높은 수준의 탐색은 좋고 구체적인 길이 발견될 전망이 유망한 "관심 있는 맥들" (bands of interest)을 발견하는 데로 향해진다. 각각의 관심의 맥안에서 보다 정밀한 조사를 위한 한 두 위치가 선택된다. 그러면 특정한 위치에 대해 구체적 설계들이 개발된다. 물론, 그 틀은 이렇게 특정한 세 가지 수준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절한 것으로 일반화되어 질 수 있다.
한 수준에서 다른 수준으로 가는 데 어떤 대안들을 좇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만하임의 틀은 각각의 설계활동에 경비를 할당해 보고 보다 높은 수준의 계획 각각에 대한 고속도로 비용을 추산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하나의 계획에 관련된 고속도로 비용은 그 계획이 결과로서 나타나는 설계행동을 통하여 특정화되어질 경우, 실제도로에 대해 얼마의 비용이 들 것인가를 예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그 계획이 얼마나 "유망한가" 하는 척도인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예상된 설계비용들을 각각 계산한 후 가장 유망한 것처럼 보이는 계획들이 끝까지 구체적으로 검토된다.
만하임이 서술한 특수한 방법에 있어서 계획의 "유망성" 은 그것이 끝까지 추구되었을 때 나타나는 결과들의 확률분포에 의해 표시된다. 그 분포는 공학도에 의해 추정되어야만 하는데 —— 이는 방법상 심각한 약점이다 —— 그러나 한번 추정되어지면 베이즈의 결정이론의 틀 안에서 사용되어질 수 있다. 특별한 확률모형이 사용되는 것이 방법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아니다. 베이즈의 상부구조 (Bayesian superstructure) 이외의 다른 평가방법도 마찬가지로 만족스러울 수 있다.
고속도로 위치 설정과정에서 보다 높은 수준의 계획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그것은 "다음번에 어디를 탐색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해답을 준다. 둘째, "언제 탐색을 멈추고 해결방법을 만족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데 답을 해준다. 그러므로 그것은 탐색에 대한 조종 메카니즘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탐구를 끝마치는 데 대한 만족스러운 준거기준이 되기도 한다.
탐색활동을 지도하는 틀의 개념을 만하임의 고속도로 위치 문제에 대한 특수한 적용이나 베이즈 결정이론에 기초를 둔 그의 특수한 지도의 틀을 넘어서서 일반화해 보자. 먼저 문제해결 프로그램의 전형적인 구조를 생각해 보자. 그 프로그램은 발견해 낸 길의 "줄기" 를 기억 속에 저장해 두면서 가능한 길들을 따라 탐구를 시작한다. 각 가지 —— 각각의 부분적 길 —— 의 끝에는 그 길의 "값" 을 나타내는 숫자가 붙는다.
그러나 "값" 이라는 말은 실제로 잘못된 용어이다. 부분적인 길은 그 문제의 해결안이 아니고 만약 그것이 해결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 길의 "진짜" 값은 영이다. 따라서 그 값들을 보다 직접적인 의미에서의 "값" 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길을 따라가며 탐색을 더하게 될 때 그곳에서 기대되어지는 이익의 추정치로서 생각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매우 좋은 해결로 이르게 할지는 모르지만, 확률이 아주 낮은 부분적 탐구에 비교적 높은 값을 매기는 것이 바람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계속적인 탐구에 따라 전망이 흐려지게 되면 탐구에 대한 비용만을 잃게 될 뿐이다. 실망을 시키는 결과는 받아들일 필요가 없고 다른 길이 대신 취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부분적인 길에 값을 매기는 틀은 제시된 완전한 해결안에 대한 평가함수와는 매우 다른 것이 될 것이다. (이 점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은 대부분의 장기두는 프로그램들이 통로의 마지막에 도달된 위치의 탐색을 지도하고 평가하기 위해 비슷하거나 거의 같은 평가과정을 사용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불완전한 길에다가 값을 매기는 목적이 탐색을 위해 다음 지점의 선택을 안내하는 것임을 인식한다면 보다 더 일반화 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탐색의 과정에서 모아진 모든 종류의 정보는 탐색의 다음 단계의 선택에 있어서 값진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부분적인 탐색의 길에 대한 평가에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장기는 두는 프로그램에서 하나의 탐색은 처음에 움직이게 만든 것에 의해 제시된 어떤 것과도 다르게 계속적으로 두게 만들지도 모른다. 실제로 장기를 움직이게 한 맥락 —— 탐색 줄기의 가지 —— 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움직임의 연속은 이제 그 맥락을 배제시킨 다른 운동 연속의 맥락에서 생각되어질 수 있다. 제한된 바탕에서 그러한 틀은 베일러 (Baylor) 에 의해 MATER 라고 하는 장기에 있어서 외통수 조합들을 발견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추가되어졌고, 그것은 프로그램의 능력을 현저하게 강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George W. Baylor and Herbert A. Simon, "A Chess Mating Combinations Program," Proceedings of the Spring Joint Computer Conference, Boston, April 26 ~ 28 (1966) , pp. 431~ 447 (Washington : Spartan Books, 1966) , 이것은 Models of Thought, 4.3 장에 재수록 되었다.)
따라서 탐색과정들은 —— 문제해결의 대부분의 논의에서 그랬던 것처럼 —— 문제해결 탐구의 과정들로 생각되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보다 일반적으로 보면 궁극적인 문제해결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문제 구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들로서 파악되어질 수도 있다. 탐색 줄기의 특별한 가지를 따라 얻어진 정보가 실제로 만들어진 그 가지 외의 많은 맥락에서 사용되어질 수 있다고 시사하는 중요한 의미에서 후자의 관점이 전자의 것보다 훨씬 일반적이다. 초기의 보다 제약된 관점에서 조금이라도 더 발전된 문제해결 프로그램은 오늘날 불과 몇 개밖에 없다.
제 1 장에서 왜 복합체계들은 계층제로서, 즉 상자 안에 또 상자가 들어 있는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생각되는가에 대한 몇가지 이유들을 제시했다. 근본적인 생각은 어떤 복합체계 내에 있는 몇 가지 구성요소들은 전체기능에 기여하는 특수한 하위기능들을 수행할 것이라는 점이다. 전체체계의 "내부환경" 이 그 메카니즘의 세세한 설명 없이도 그 기능을 기술함에 의해 규정되어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하위체계들의 "내부환경" 은 그것의 하위메카니즘의 세세한 설명없이 하위체계의 기능을 기술함에 의해 규정되어질 수 있다. (나는 이 논의를 나의 논문, 본서 7 장의 "복합성의 구조"에서 상세히 발전시켰다.)
그러한 복합구조를 설계하기 위한 하나의 강력한 기술은 그 구조를 그것의 많은 기능적 부분에 상응하는 반독립적 구성요소들로 분해 (decompose) 하는 실제적인 방법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면 각 구성요소들의 설계는 각각의 것이 대체로 기능을 수행하는 세부적인 메카니즘과는 별개로, 그것의 기능을 통해 다른 것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의 설계와는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복잡한 구조의 설계에 대한 이러한 접근방법은 Christopher Alexander, Notes on the Synthesis of Form (Cambridge : Harvard University Press, 1967) 에서 탐구되었다. 그는 또한 그의 책에서 구성요소적 기능들의 상호 연결성에 대한 행렬을 한번 구체화시킨 후 그럴 듯한 분해를 발견하기 위한 몇 가지 자동화된 절차들을 제시하고 있다.)
전체설계를 기능적인 구성요소들로 분해할 때, 그것이 단 한 가지로 이루어진다라고 기대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경우에 극도로 다른 종류의 가능한 대안적인 분해방안이 존재할 수도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업무가 하위기능, 하위과정, 하위영역, 그리고 여러 가지 방식에 의해 나뉘어질 수 있는 행정조직의 설계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사실상 많은 고전적 조직이론은 상호 관련된 직무의 집합을 다른 상이한 형태로 분해하는 것이며 바로 이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다.
구성요소들 사이의 상호관련이 전적으로 무시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분해를 고려하는 한 가지 방법은 설계과정에서 먼저 대안들을 만들어내고, 그리고 이러한 대안들을 필요요건과 제약조건들의 전체 배열에 비추어 시험해 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창안 - 시험회로가 유일무이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회로들이 하나하나 전체로 엮어진 계열로 존재할 수도 있다. 창안자는 암묵적으로 설계문제의 분해를 규정하고, 시험은 중요한 간접적 결과들이 발견되어지고 측정될 것임을 보증한다. 각각의 분해안들은 창안과 시험을 연결하는 최종 설계에 대한 상이한 책임분담의 상이한 방법과 일치한다.
극히 단순한 예를 들어 보면 일련의 창안자들이 어떤 건물의 창을 내는 데 대한 한 두 가지의 가능한 개관이나 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반면에 시험은 특정한 방의 필요가 만들어진 개관내에서 충족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결정해 주는 데 적용되어 질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창안자가 방구조의 개선에 이용되어지는 반면에 시험은 그것들이 받아들일 만한 전체 모양과 설계에 일치하는가를 알아보는 데 적용된다. 집은 밖에서 안으로 또는 안에서 밖으로 설계되어질 수 있다. (나는 이 절의 주제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들을 존 그레이슨 (John Grason) 한테서 힘입고 있다. J. Grason, "Fundamental Description of a Floor Plan Design Program," EDRA 1, Proceedings of the First Environmental Design Association Conference, H. Sanoff and S. Cohn (eds.) ,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 1970.)
설계과정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대안들은 전체적인 조정과 관련된 설계가 상세하게 진행되기 전에 가능한 하위체계들의 개발이 얼마나 많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 개방되어 있다. 반대로 다양한 요소들이나 가능한 요소들이 개발되어지기 전에 전체설계가 얼마나 수행되어져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도 개방되어 있다. 설계의 이러한 대안들은 건축가에게 있어서는 친숙한 것이다. 또한 작곡가들에게 있어서도 친숙한 것인데, 그들은 몇몇 기본적인 음악의 주제들과 다른 요소들이 만들어지기 전에 음악구조의 체계가 얼마나 진행될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한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들도 일상적인 진행업무들에서 하향적으로 일해나갈 것인지, 아니면 하위요소들에서 전체적 조정을 하는 업무까지 상향적으로 일해 나갈 것인지 하는 똑같은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설계의 이론은 설계과정에 있어서 그러한 앞뒤 우선순위와 연속의 문제를 결정하기 위한 원칙들 —— 대부분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과정은 일반적으로 최적설계보다는 만족설계를 발견해 내는 데 관련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창안자와 시험간의 연계와 분업이 설계하는 데 사용되어지는 자원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최종적인 설계의 성격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스타일" 이라고 부르는 것도 최종적인 설계를 통해서 실현되는 목표에 대한 여러 가지 강조에서 나오는 것만큼 설계과정에 대한 결정들에서 나오게 된다. 밖에서부터 안으로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는 비록 둘다 만족스러운 건물이 갖게 될 특성에 대해서는 견해를 같이할지 모르나, 안에서 밖으로 설계하는 사람은 매우 다른 건물을 이르게 될 것이다.
도시, 건물, 경제와 같은 복잡한 체계의 설계에 이르게 될 때, 우리는 어떤 가정된 효용함수를 최적화할 체계를 만들려고 하는 목표를 포기해야만 한다. 또한 우리는 대안들을 "더 낫거나" 또는 "더 못한" 것으로 평가 내리기보다는 방금 서술한 종류의 스타일에 있어서의 어떠한 차이들이 설계과정에서 매우 바람직한 변량들을 반영하는가를 더 고려해야만 한다. 만족스러운 제약조건들의 한계 내에서의 다양성은 무엇보다도 다양성이 그것의 결과뿐 아니라 탐색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도록 하기 때문에, 즉 설계과정은 그것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자체가 값진 활동으로 보기 때문에 그 스스로 바람직한 목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도시계획을 그것에 의해 계획자들의 창의적 활동이 대중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체계를 만들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그러한 방법으로 그 과정을 조화할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다면 아마 우리는 도시계획을 지역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기회를 갖는 귀중한 창의적 활동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 주제를 더 논의하겠다.
이상의 설명만으로도 나는 설계의 형태와 설계과정의 형태 및 조직이 설계이론의 필수적인 요소라는 사실을 충분히 설명했으리라고 기대한다. 이러한 주제들은 내가 제시한 설계의 교과과목 가운데 여섯 번째 항목을 이루게 된다.
6. 복합구조의 조직과 설계과정 조직에 대한 그것의 함축적 의미
나는 새로이 등장하는 설계과학의 모든 국면을 다 조사한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설계에 대한 문제표상의 영향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비록 문제의 중요성은 오늘날 인식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한 체계적 지식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나는 "표상" (representation) 이라는 것이 뜻하는 바를 분명히 하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여기 게임의 규칙이 있는데 그것을 나는 숫자 맞추기 (number scrabble) 라고 부르겠다. 이 게임은 두 사람이 9 장의 카드 —— 하트 에이스에서 9 까지라고 하자 —— 를 갖고 하는 것이다. 카드들은 두 사람 사이에 펼쳐진 채로 줄지어 놓여 있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가운데 남아있는 카드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서 한번에 하나씩 번갈아가면서 뽑아낸다. 게임의 목표는 선수가 하나의 숫자묶음, 즉 숫자의 합이 정확히 15 가 되는 3 장의 카드들의 배열을 상대편이 하기 전에 만드는 것이다. 먼저 이것을 만든 경기자가 이기는 것이다. 만약 어느 선수도 숫자묶음을 만들지 못했는데 9 장의 카드가 모두 뽑혔다면 게임은 비기게 된다.
이 게임에 있어서 좋은 전략은 무엇일까? 여러분은 하나를 찾아내는 데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독자가 아직 그것을 스스로 찾아내지 못했다면 내가 어떻게 표상의 변화가 게임을 쉽게 하도록 해주는가를 보여주겠다. 제 3 장에서 내가 소개한 이 신기한 네모는 1에서 9 까지의 숫자들로 만들어졌다.
4 9 2
3 5 7
8 1 6
각 행과 열 또는 대각선은 더하면 15 가 된다. 즉, 신기한 네모의 행, 열과 대각선의 세 숫자를 더하면 15 가 된다. 이것으로 숫자맞추기에서 "묶음 만드는 것" 은 틱 택 토 게임에서의 "행에서 3 개" 를 얻어내는 것과 같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틱 택 토를 잘하는 법을 알기 때문에 그들이 잘 쓰는 전략을 숫자 맞추기에 간단히 옮길 수 있게 된다. (숫자 맞추기만이 틱 택 토 게임의 유일한 동형은 아니라. 존 미쳔 (John A. Michon) 은 또 다른 JAM 이라는 것을 기술했는데 그것은 projective geometry 라는 점에서 틱 택 토 게임의 하나이다. 즉, 틱 택 토 게임의 행, 열, 대각선들은 JAM 에서는 점들이 되고 전자의 사각형은 점들이 합쳐진 선의 집합들이 된다. 모든 선들이 한 점 —— 하나의 선을 붙잡거나 몰려들 게 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한번의 움직임 ——을 통하여 "몰려들 게 되면" 게임에서 이기게 된다. 틱 택 토 게임과 동형인 다른 것들도 또한 알려져 있다.)
표상이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익히 알고 있던 점이다. 비록 내 자신 왜 그런지를 설명해 주는 이론적 처방은 알고 있지 못하지만 우리 모두는 아라비아 숫자와 위치 표시가 로마 숫자를 대치한 이래로 산술이 훨씬 쉬워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의 동료 알렌 뉴엘 (Allen Newell) 이 이 문제를 탐구해 왔다. 나는 그의 해답이 무엇인가를 검토하지는 않겠다.)
표상이 차이를 만든다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 분명하다. 내가 앞 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수학적 계산은 결론에 있어서 이미 전제에서 내포하고 있던 것만을 나타내 줄 뿐이다. 따라서 모든 수학적 유도는 이전에 진실이었지만 불분명한 것을 명확하게 해주는 단지 표상에 있어서의 변화로서 파악되어질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모든 문제해결에 확장되어질 수 있다. 즉, 문제를 푸는 것은 단지 해답이 명료히 나타나도록 문제를 표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Saul Amarel, "On the Mechanization of Creative Processes," IEEE Spectrum 3 (April 1966) , pp. 112 ~ 114.) 만약 문제해결이 실제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조직되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표상의 문제는 진실로 중심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 이것이 지나치게 과장된 견해일지 모르지만 —— 어떻게 표상이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어떻게 문제해결에 기여하는가 하는 데 대한 깊은 이해는 미래의 설계이론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많은 설계, 특히 건축과 공학설계가 실제 유클리드의 2 차원이나 3 차원의 공간에서의 물체나 그 배열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공간의 표상이나 공간에 있는 사물의 표상은 필연적으로 설계과학의 중심주제가 될 것이다. 시각적 지각에 대한 이전의 논의에서 볼 때 설계자의 머리나 컴퓨터의 기억 속에 있는 "공간" 은 종이나 3 차원 모형 위에 있는 그림과는 매우 다른 속성을 갖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러한 표상의 문제들은 이미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설계 —— 설계과정에 있어서 인간과 컴퓨터의 협동 —— 에 관계된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 왔다. 한가지 예로서 이반 수더랜드 (Ivan Sutherland) 의 SKETCHPAD 프로그램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은 기하학적 도형이 표상되어지게 하며, 조건이 제약조건의 관점에서 도형 위에 놓이게 한다. 그리고 조건은 제약조건에 맞추어진다. (I.E. Sutherland, "SKETCHPAD, A Man - Machine Graphical Communication System," Proceedings, AFIPS Spring Joint Computer Conference, 1963 (Baltimore : Spartan Books) , pp. 329 ~ 346.)
기하학적 고려는 인쇄나 동판회로, 또는 건물의 설계를 전적으로 자동화하려는 몇 가지 시도에 있어서도 뚜렷하다. 예를 들어 그레이슨 (Grason) 은 집의 마루를 놓는 계획을 설계하는 체계에 있어서 의사소통 등과 같은 설계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선택한, 방과 방 사이를 연결하는 제시방안이 평면에서 실현될 수 있는가를 결정해 주도록 도와주는 설계의 내적인 표상을 구성했다. (C.E. Pfeffekorn, "The Design Problem Solver : A System for Designing Equipment of Furniture Layouts," in C.M. Eastman (ed.) , Spatial Synthesis in Computer Aided Building Design (London : Applied Science Publishers, 1975) 를 보라.)
어떤 일련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초기단계는 어떤 종류의 것들이 그 집합 안에 있는가를 배우는 것 —— 즉, 유형을 개발하는 것이다. 표상에 있어서 이 단계는 아직 취해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문제들이 표상되어질 수 있는 서로 다른 방법들에 대한 개관적이고 불완전한 지식만을 갖고 있을 뿐이며 그 차이의 중요성에 대한 지식은 별로 갖고 있지 못하다.
전적으로 실용적인 맥락에서 문제들을 말로써, 즉 자연적인 언어로써 기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것들은 종종 대수, 기하, 집합이론, 해석학, 위상수학의 표준화된 형식을 사용함으로써 수학적으로 서술될 수도 있다. 만약 문제들이 물리적 대상들과 관련이 있다면 그것들 (또는 그것들의 해답들) 은 마루계획이나, 공학제도 (drawings) , 묘사 (rendering) , 또는 3 차원의 모형에 의해 표상되어질 수 있다. 행동과 관계있는 문제들은 생산공정 일람표와 프로그램에 의해 접근될 수 있다.
다른 항목들은 목록표에 덧붙여질 필요가 있게 될 것 같다. 또한 그 구성분자들을 분류하는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방법들이 설혹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우리의 분류가 불완전하고 설혹 피상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표상의 속성에 관한 이론을 만들기 시작할 수 있다. 점점 증가하는 기계와 프로그램 언어의 이론에 있어서 많은 주제들은 우리에게 표상의 이론이 —— 적어도 보다 공식적인 면에 있어서는 —— 택하게 될 방향에 대해 어떤 생각을 제공해 줄 것이다. (예를 들어 Marvin L. Minsky, Computation : Finite and Infinite Machines (Englewood Cliffs, N.J. : Prentice - Hall, 1967) , and Kenneth E. lverson, A Programming Language (New York : Wiley, 1962) 를 보라.) 또한 이러한 주제들은 설계이론에 대한 우리 프로그램의 최종주제에 대한 논의의 시작에 어떤 실질적 내용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즉,
7. 설계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표상들
이 장에서의 나의 주된 목표는 오늘날 설계이론의 많은 요소들과 이론과 실제 양자에 관련된 실질적인 지식의 체계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우리가 전체공학 교과과정에 있어서 설계 —— 인공과학 —— 의 교과과정을 자연과학의 옆에 놓으려면 그것은 적어도 아래와 같은 주제들을 포함하게 된다.
설계에 대한 평가
1. 평가의 이론 : 효용이론, 통계적 결정이론
2. 계산적 방법들 :
a. 선형계획계산, 통제이론, 동태계획 등과 같은 최적대안을 선택하는 연산들
b. 만족대안을 선택하는 연산들과 교시적 방법들
3. 설계의 형식이론 : 명령법적이고 서술법적인 논리들
대안들의 탐색
4. 교시적 탐색, 요인분해와 수단 - 목표분석
5. 탐색에 대한 자원배분
6. 구조와 설계 조직의 이론 : 계층적 체계
7. 설계문제의 표상
교과과정의 작은 부분들 —— 예를 들어 평가의 이론과 설계의 형식논리 —— 에 있어서 체계적이고 공식적인 이론의 틀 안에서 강의를 구성하는 것은 이미 가능하다. 다른 많은 부분들에 있어서는 처리내용이 보다 실용적이고 경험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의 상태로 돌아가거나 원래 설계를 악평 속에 빠뜨리고 그것을 공학교과과목에서 몰아낸 요리책 식의 방법으로 후퇴할 필요는 없다. 그 이유는 오늘날 충분히 개념 정의가 되어졌고, 금속체로 만들어진, 즉 작동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매우 상이한 종류의 실제 설계과정에 대한 상당한 양의 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최적화 연산, 탐색절차, 모터설계, 일관작업의 균형화, 증권투자의 선정, 창고의 위치설정, 고속도로 설계, 질병의 진단과 치료등에 대한 특별한 목적의 프로그램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컴퓨터 프로그램들은 완전히 그리고 수고스럽게도 자세하게 복잡한 설계과정을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완벽한 검사나 분석 또는 모의실험에 의한 조사를 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것들은 설계학도들이 달려 들어 이해를 추구할 수 있는 경험적 현상을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판단" 이나 "경험" 의 뒤에 숨겨진 설계과정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있어서 어떠한 판단이나 경험이 사용되어졌든 간에 그것은 프로그램 안에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관찰이 가능함에 틀림없다. 프로그램들이란 인간이 그의 복잡한 외부환경을 탐색하고 그 환경 속에서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통로를 찾아내도록 고안되어진 다양한 틀의 눈에 보이는 기록이다.
나는 나의 주제를 "설계이론" 이라 부르고 나의 교과과목을 "설계의 프로그램" 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것의 역할을 전문적인 엔지니어 또는 문제를 풀고, 선택하고, 종합하고, 결정하는 일을 하는 어떤 전문가의 전반적 훈련에 있어서 자연과학의 교과과목에 대한 보완으로 강조했다.
그러나 설계의 이론이 다른 지식과 관련되어서 파악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나의 셋째 및 넷째 장은 심리학 —— 특히 생물학적 내부환경에 대한 인간의 관계 —— 에 대한 장이었다. 이번 장 또는 심리학, 즉 인간의 생존과 목표달성이 추구되는 복잡한 외부환경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게 이해되어질 때 이 세 장은 우리가 흔히 "설계가" 라고 부르는 사람이 하는 전문적인 일 그 이상을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많은 이들은 우리의 사회가 두 개의 문화로 쪼개지는 것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해 왔다. 심지어 우리들 가운데 몇몇은 두 개의 문화가 아니라 더 많은 문화가 있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그와 같이 나뉘어지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한다면 모든 문화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되어질 수 있는 지식의 공통적 핵심 —— 날씨가 스포츠, 자동차, 어린이 양육, 또는 심지어 정치와 같은 것보다 더 의미있는 주제들을 포함하는 핵심 ——을 찾아야만 한다. 우리가 살고 선택하는 공간을 규정해 주는 내부와 외부환경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공통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적어도 의미있는 핵심의 일부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이것은 터무니 없는 주장처럼 들릴지 모른다. 내가 뜻하는 바를 설명하기 위해 음악의 영역을 사용해 보겠다. 음악은 가장 오래된 인공과학의 하나이고 또한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인정되었다. 인공성에 대해 이야기한 어떠한 사실들도 내가 설명하는 동안 주로 사용한 공학의 주제들뿐 아니라 음악, 작곡 또는 감상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
음악은 형식적인 유형을 담고 있다. 그것은 내부환경에 대해 적지만 (중요한) 접점을 갖고 있다. 즉, 그것은 강한 감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고, 그것의 유형들은 청취하는 사람들에 의해 감지되어질 수 있으며, 그 하모니 관계의 일부는 물리적이고 생리적인 해석이 주어질 수 있다 (비록 이것들의 심미적 의미는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 외부환경에 대하여 말한다면 작곡을 설계의 문제로 볼 때 우리는 다른 어떤 설계 문제에서 마주치는 것과 똑같은 평가, 대안의 탐색, 표현의 문제들과 마주치게 된다. 만약 우리가 바라기만 한다면 우리는 설계의 다른 분야에서 사용되었던 컴퓨터에 의한 자동설계의 동일한 기술들을 음악에 대해서도 적용시킬 수 있다. 비록 컴퓨터로 작곡된 음악이 주목할 정도의 미적 탁월성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전문 작곡가나 분석가에게 대단한 관심을 받을 만하고 또 이미 받아 왔다. 그들은 그것이 자신들에게 낯선 언어로 쓰여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20 년 이상된 실험에 대한 보고서, L.A. Hillier and L.M. Isaacon's Experimental Music (New York : McGraw - Hill, 1959) 는 아직도 작곡을 설계로 보는 주제에 대한 훌륭한 소개이다. 또한 Walter R. Reitman, Cognition and Thought (New York : Wiley, 1965) , Chapter 6, "Creative Problem Solving : Notes from the Autobiography of a Fugue" 를 보라.)
의심할 여지없이 수학적으로 무지한 작곡가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치 엔지니어도 있다. 음치이건, 무지이건, 아니건 간에 엔지니어와 작곡가 가운데서 서로의 전문적인 일의 내용에 대해 서로가 보람을 느끼는 대화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제의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설계에 관해선 그러한 대화를 수행할 수 있고, 그들 모두가 종사하는 공통적인 창의적 활동을 인식하기 시작할 수 있으며,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설계과정에 대한 그들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 컴퓨터 개발을 배태기에서 유아기에 이르기까지 함께 지켜 본 우리들은 다양한 전문적 분야로 모이게 되었는데 음악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컴퓨터 주위에서 발생하는 지적 학문 분야들 사이에 점점 늘어나는 의사소통을 주목해왔다. 우리는 그것을 환영해 왔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새로운 지식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게, 즉 우리 자신의 다원화된 문화 속의 고립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학문의 영역의 이와 같은 붕괴는 많은 논평을 받아 왔고 컴퓨터와 정보과학에 대한 연계가 종종 주목되었다.
그러나 분명히 하드웨어로서 심지어 프로그램된 소프트웨어로서의 컴퓨터는 그 문제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 나는 이미 다른 해석을 제시한 바 있다. 학문분야 상호간에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 —— 공통의 터전 —— 은, 복잡한 방식으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은 모두 설계하기 위해서나 설계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결과적으로 우리 설계가들 또는 설계과정에 대한 설계가들은 설계를 만들어 내는 데 참여하는 일이나 그 만들어내는 것이 계속되는 가운데 발생하는 것에 대해 전에 없이 분명한 자세를 취해야만 했다.
많은 문화들 사이에서의 새로운 지식의 자유로운 왕래에 대한 실제의 주제들은 우리 자신의 사고과정, 즉 판단, 결정, 선택, 장조에 대한 과정이다. 우리는 인간 —— 또는 컴퓨터 또는 조직적인 협동을 하는 남자, 여자, 컴퓨터의 복합체 —— 과 같은 연속적으로 조직화된 정보처리 체계가 어떻게 매우 복잡한 외부환경속에서 문제들을 풀고 목표들을 달성하는가 하는 데 대한 아이디어를 하나의 지적 분야에서 다른 하나의 지적분야로 들여오고 또 내보내고 있다.
인간에 대한 적절한 연구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해져 왔다. 그러나 나는 인간 —— 또는 적어도 인간의 지적인 요소 —— 은 비교적 단순하고 인간행태의 복잡성 가운데 대부분은 그의 환경과 좋은 설계에 대한 인간의 탐구에서 나왔을지 모른다는 것을 주장해 왔다. 만약 내 주장이 맞는다면 대체로 인간에 대한 적절한 연구는 기술교육의 전문적 요소로서 뿐만 아니라 자유스럽게 교육받은 모든 사람의 핵심적인 학문 분야로서의 설계과학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