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계획 : 진화하는 인공물의 설계
인공과학 : Herbert Simon 저, 이종범 역, 삼영사, 1987 년 (원서 : The Science of the Artificial, 2nd ed, MIT Press, 1981), Page 203~239
제 5 장에서 계획가들과 고안자들에 의해 사용된 몇 가지 현대적 설계의 수단을 살펴보았다. 그들이 이러한 도구들의 대부분을 사용할 수 있기 이전에도 벌써 야심에 찬 계획가들은 종종 전체 사회와 환경을 개조해야 되는 체계로 보았다. 플라톤, 토마스 모어, 마르크스 등은 그들의 이상향을 책에다 기록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계획을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에서 사회혁명에 의해 실현시키려 하였다. 많은 또는 대부분의 거대한 규모의 설계들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장치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다른 것들은 물리적 환경,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에서 테네시 유역과 인더스강, 그리고 다시 오늘날의 나일강에 이르는 하천 개발 계획들에 초점을 두어왔다.
우리가 그러한 설계의 노력들과 그것들의 이행을 돌이켜볼 때, 또한 오늘날 세계에서 문제가 되는 설계의 과제들을 곰곰히 생각해 볼 때, 우리의 감정은 매우 혼합적이다. 우리는 우리의 기술적 지식이 우리에게 부여해 준 막강한 힘에 의해 활력을 받는다. 그것이 만들어내거나 우리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많은 문제들에 의해 우리는 위축되고 있다. 우리는 전체 사회 수준에서 설계노력들이 매우 한정된 성공, 때때로는 비참한 실패를 한 사실에 의해 냉정함을 찾게 되었다. 우리는 "만약 우리가 달에 갈 수 있다면 왜... 은 할 수 없나?" 라는 질문을 하지만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달에 간다는 것은 인간적인 사회나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과 같이 우리 스스로가 설정한 어떤 것들과 비교해 볼 때, 실제로 단순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차이가 어디에 있는가?
달에 가는 것은 단지 한 차원에만 해당된 복잡한 문제이다. 즉, 그것은 우리의 기술적 능력에 도전을 한 것이다. 그것이 결코 평범한 업적은 아니었지만, 유일하고 고도의 운영 목표를 맡은 NASA 라고 하는 하나의 새 기구를 이용하여 극도로 협동적인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것에 투여된 막대한 자원과 잘 개발된 시장구조를 통한 운영으로 그 조직은 우리 전사회의 생산능력과 기술적 정교함에 의존할 수 있었다. 비록 그 활동에 대한 몇 가지 잠재적인 부수적 효과들 (주로 국제 정치적, 군사적 중요성과 기술적 분리, 신설의 가능성) 이 그 사업에 동기를 부여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지만, 달에 인간을 세워 보겠다는 목표가 세워지자, 부수적 효과들은 계획가들의 생각 속에 깊이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러한 부수적 이익과 비용들은 사업이 성공했다고 말할 때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의 성공은 인간이 달 표면 위를 걸었기 때문이다. 이 여행에서 무엇이 보다 더 중요한 결과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인가를 기대한 사람은 없었다. 우리가 우주에서 처음으로 우리 자신의 창백하고 연약한 행성을 보았을 때 우주 안에 있는 우리의 위치에 대해 얻은 새롭고 생생한 시각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이제 매우 상이한 인간 설계의 예를 생각해 보자. 4 년전에 우리는 우리 나라 (미국) 의 탄생 200 주년을 기념했고, 몇 년 있으면 정부가 세워진지 200 주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자유세계에 있는 거의 우리 모두는 그와 같은 기록을 인간 계획의 인상적인 성공의 예로 보고 있다. 우리는 많이 수정되고 여러 가지고 해석되고 있지만, 헌법이 우리의 정치제도의 틀로서 아직도 존속하고 있기 때문에, 또한 그러한 틀속에서 운영되는 사회가 우리들 대다수에게 광범위한 자유와 높은 수준의 물질적 안락을 부여하기 때문에 그것을 성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달나라의 여행과 미국헌법의 존속이라는 두 가지 업적은 제약된 합리성의 개가이다. 그러한 성공에 대한 충분 조건은 아니지만 필요 조건은 그것들이 제한된 목표들에 의해 평가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그 점을 NASA 의 입장에서 논의했다. 초창기 선조들에게 대해서는 The Federalist 와 헌법 회의에 관하여 남아 있는 기록들에 반영된 그들의 목표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다. (The Federalist 의 저자들은 Madison, Hamilton, 그리고 Jay 이지만 주로 Madison 이 쓴 것이다. 내 책은 P.L. Ford (New York : Holt, 1898) 판이다. Madison 의 주석은 회의 의사록에 대한 주요 자료이다.) 이러한 문서들에 두드러진 것은 광범한 인간사에 대한 통찰력에 한계에 대해 보여준 그들의 현실적 감각과 인식에 있다. 대부분의 헌법기초자들은 그들의 인공물에 대해 매우 제한된 목적들, 주로 질서화된 사회에서의 자유의 보장을 그 목적으로 인정하였다. 더군다나 그들은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제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가정하지 않았고, 그들이 아는 남녀의 심리적 특성들, 상식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도 설계에 대한 제약요소들의 하나로 받아들였다. 그들 자신의 신중한 언어에 의하면 (The Federalist, no. 55) "인간에게 있어서 어느 정도의 신중함과 불신의 대상이 되는 부패적 성향이 있는 것처럼, 인간성 가운데 어느 정도의 존경과 자신감을 입증해 주는 다른 특성들도 있다" 는 것이다.
이러한 예문들은 사회적 수준에서 인공물을 설계한다는 것의 몇 가지 특성과 복잡성을 보여준다. 그러한 수준에서의 설계의 성공은 설계목표를 정하는 데 관대함과 자제를 필요로 할 것이고, 설계과정을 위하여 세계를 표상하는 데 실제 세계의 상황에 대한 극적인 단순화를 필요로 할 것이다. 자제와 단순화에도 불구하고 설계목표를 달성하려면 보통 어려운 장애들을 극복해야만 한다. 그 장애들과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 기법들이 이 장의 주제를 제공해 준다.
첫 번째 주제는 문제 표상이 될 것이고, 두 번째는 자료에서 예상될 수 있는 부적절함을 조절시키는 방법들이 되고, 세 번째는 고객의 성격이 어떻게 계획에 영향을 미치는가, 네 번째는 계획가의 시간과 주의력의 한계, 다섯 번째는 사회적 계획에 있어서 목표들의 모호성과 갈등이 될 것이다. 이러한 주제들은 장애물의 뭉치나 또는 계획에 필요한 요건의 뭉치들로 파악될 수 있는데, 앞장에서 개관한 설계의 교과과정에 대해 몇 가지 추가 사항들을 시사해 준다.
앞 장에서 표상은 주로 비교적 잘 구조화된 중간정도 크기의 업무들의 맥락에서 논의되어졌다. 사회적 설계가 포함되는 곳에서 표상 문제들은 새로운 분야를 떠 맡는다.
1948 년에 미국정부는 서구국가들의 전후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대담한 주도권을 행사했다. (나는 이야기를 "The Birth of an Organization," Chapter 16, Administrative Behavior, 3 rd ed. (New York : The Free Press, 1976) 에서 보다 상세히 이야기했다.) "마샬플랜" 이라고 불린 이 계획은 경제협력기구 (ECA) 를 통해 수행되었다. 그 계획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첫 번째 임무는 ECA 조직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조직상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어떻게 프로그램을 개념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것을 조직하고 운영하도록 최초에 소집된 사람들은 이 기관에 적어도 6 개의 서로 다른, 그리고 주로 상충되는 개념들을 제시하였다.
의회는 첫 해의 운영비로 53 억불의 지출을 승인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임무가 유럽 국가들에 의해 제안된 매입 목록들이 실제로 "필요한" 것을 포함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심사하는 것 (일용품 심사 방법) 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임무가 각 나라의 지불의 균형에 있어서 "달라 격차"를 결정하고 격차를 메우기 위한 기금을 공인하는 것 (무역 균형 방법) 이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 계획의 주된 임무는 수혜 국가들이 기금의 사용에 대해 그들 자신의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과의 제휴를 강화하기 위해 유럽 안에 강력한 계획적인 제도를 세우는 것 (유럽협동 방법) 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결정은 주로 미국과 각 수혜국 사이의 쌍무계약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쌍무계약 방법) 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대여로 배당된 지불금 (10 억불) 가운데 일부는 사업 단위별로 사용되어야 하며, 각 사업은 투자로서의 건실성에 비추어 평가되어야 한다 (투자은행 방법) 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ECA 가 광범위한 결정을 하기 위한 정책기관과 그것들을 수행하기 위한 많은 행정기관들을 가져야만 한다 (정책과 행정방법) 고 생각했다. 이러한 각각의 표현들은 ECA 수립에 대한 의회입법에 약간씩의 기초를 두고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매우 상이한 원조 계획들이 이러한 상이한 방법들을 수행하는 것에서 초래될 수 있다는 것과 유럽 각국과 미국에 대해 아주 상이한 경제적, 정치적 결과가 나타나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특정한 방법으로 문제를 개념화하는 것은 그 개념화와 일치하는 입장에서 기구를 조직하게 된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리고 각각 상이한 모든 정책대안들이 어떤 일반적인 의미에서 의회의 의도와 일치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목표들을 강조하고 다른 목표들을 하위에 둠으로써 상이한 조직들은 필연적으로 매우 상이한 프로그램들을 수행하려고 할 것이다.
비록 6 개의 각각의 접근방법들을 나타내는 퇴화된 기관들을 1 년 동안의 운영을 거치고도 ECA 안에서 아직 볼 수 있었지만, 일들이 진행되어 나감에 따라, 무역의 균형과 유럽의 협동방법들이 일반적으로 주도적이면서 어느 정도 유럽의 경제적 안정을 창조하고, 후에 구주공동시장이 된 것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ECA 조직에 대한 6 개의 접근방법들이 각각 어떤 합리적 기초를 갖고 있지만, 그들 모두를 동시에 수행하려고 하는 것은 그 기관과 고객들 사이에서 완전한 혼란을 일으킬 수 있었고 또한 거의 일어났었다. 필요했던 것은 "올바른" 개념화라기 보다는 모든 참여자들에 의해 이해될 수 있고, 활동을 마비시키기보다는 그것을 용이하게 해주는 개념이었다. ECA 조직은 그것이 발전됨에 따라 그 안에서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통적인 문제 표상을 제공했다.
두 번째 예는 설계문제에 대한 표상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한정된 자원이나 자원들을 정확히 확인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해 준다. 몇 년 전에 국무성은 외국에서 위기가 있을 때마다 안으로 들어오는 통신선에 혼잡이 일어나는 것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 받아들이는 것만큼 빨리 전달문을 찍어낼 수 없는 텔레타이프들은 몇시간씩 늦곤 했다. 워싱턴으로 가는 중요한 전갈은 전달되는 데 심각하게 늦어졌다.
찍어내는 능력이 제한요소로서 밝혀졌기 때문에, 텔레타이프를 라인 프린터로 대치하여 찍어내는 양을 수십, 수백 배로 증대해서 상황을 치유할 수 있도록 제안되었다. 어느 누구도 연쇄의 다음 고리, 즉 라인 프린터에서 나오는 전달문들을 국내 데스크에서 처리하는 관리들의 능력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좀 더 깊이 분석해 보면, 과정 가운데 실제적인 애로는 들어오는 정보를 사용해야만 하는 인간 정책 결정자들의 시간과 주의력인 것을 알 게 될 것이다. 애로를 확인하고 나면 이번에는 보다 세련된 설계문제, 즉 어떻게 위기 중에 들어오는 정보들 가운데서 중요하지 않은 정보들은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 옆으로 제쳐 두고, 중요한 정보가 우선권을 가져 정책결정자의 관심을 들어오도록 여과할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설계 문제는 쉬운 것이 아니지만, 만약 해답이 부분적으로라도 발견된다면, 그것은 적어도 실제 문제를 악화시키는 대신에 경감시키는 경향을 가질 것이다.
이것은 다른 것으로부터 동떨어진 예는 아니다. 거대한 미국기업들에 설치된 제 1 세대 경영 정보체계들은 주로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그 이유는 관리자들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불필요한 정보에서 그들을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데 설계자들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H.A. Simon, The New Science of Management Decision (Englewood Cliffs, N.J. : Prentice - Hall, 1977) , 4 장을 보라.) 부족한 요인이 정보인 세계에 적합한 설계 표상은 부족한 요인이 집중력인 세계를 이해서는 정말로 잘못된 설계표상일 수 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많은 공식적 계획도구들은 계량적인 형태로 설계문제의 표상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베이즈 결정분석은 수적 효용과 "이전" 의 확률이 가능한 결정의 결과에 주어지기를 요구하고, 그리고 나서 "나중" 의 확률은 외적 사건의 추정된 확률분포에 기초를 두고 계산되기를 요구한다. 주어진 효용과 추정된 확률을 가지고, 각 대안들의 기대효용을 계산하고, 최상의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설계문제들은 종종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값의 몇 가지 파라미터의 설정을 포함한다. 그러한 문제들은 경제적인 용어를 써서 한계비용에 대한 한계이익의 균형을 요구하는 것으로서 종종 개념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배기 기준을 규율하는 일을 생각해 보자. (Coordinating Committee on Air Quality Studies,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and National Academy of Engineering, Air Quality and Automabile Emission Control, Vols. 1 ~ 4, No. 93 ~ 23 (Washington ;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74). ) 그 문제는 합리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즉, ① 배기량은 자동차들의 숫자와 자동차들의 주행거리와 그들의 설계 (따라서 비용) 의 함수이다. ② 대기의 질적 상태는 배기수준과 다양한 지리학적, 기상학적 파라미터의 함수이다. ③ 인체의 건강에 미치는 결과는 대기의 질과 그것에 노출된 인구에 달려 있다. 이러한 세 가지 함수들의 적절한 배열은 건강이 종속변수이고 자동차의 비용이 독립변수인 관계를 만들어 낸다. 만약 이제 건강에 미치는 결과에 대한 달라값이 주어지면, 곧 배기기준의 손익분석을 위한 모든 구성요소들이 제시된 것이다.
그러한 계산들을 하는 게 터무니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위와 같이 문제를 설정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국립과학원에 주어졌을 때, ——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에 —— 손익분석에 대한 개념적 도식은 자문을 요청받은 전문가들에 의한 소위원회들을 구성하는 데 뛰어난 표상으로 판명되었다. 주로 공학자들로 이루어진 소위원회는 배기량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를 재설계하는 데 드는 비용을 조사했다. 대기화학 (atmospheric chemistry) 과 기상학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두 번째 위원회는 배기량과 대기의 성질 사이의관계를 분석했다. 의학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들은 주요한 오염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증거를 훑어 보았다. 경제학자들로 짜여진 또 다른 위원회는 건강에 미치는 결과에 부과되어야 하는 값을 추정하는 일을 맡았다.
이들 위원회 가운데 어느 것도 2 요소 중 하나라는 면에서 정확할 수 있었던 자동차의 가격을 추정한 것이 아닌 한, 크기 순위 이상으로 믿을 만한 추정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일반적으로 의학위원회들은 오염물질들이 건강에 미치는 결과를 찾아낼 수 있는 대기성질의 최소의 수준을 찾아내는 데 임무를 한정하여 어떤 한계추정을 전혀 하지 않았고, 또 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종류의 연구결과들과 평가들이 주어진다 하여도 가설적 손익분석도식이 문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도식은 연구결과들이 서로서로 연결되고 수수께끼의 단편들을 조합해야만 하는 통합위원회로 하여금 제안된 기준들의 합리성을 판단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을 제공했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합리적인 사람들은, 비록 증거에 의해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것과 일치하는 배기수준의 상한성과 하한선을 정할 수 있었다. 비록 최적화가 불가능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위원회로 하여금 터무니없거나 변호할 여지 없는 것이 아닌 만족 결정에 도달하게 해 주었다.
어떤 사람은 자동차배기와 같이 중요한 문제의 결정기준으로서 "변호 가능성" 이라는 것은 미약한 것이라고 간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이러한 실제문제들의 복잡성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가장 엄격한 기준이 될 것이다. 이런 종류의 상황에서조차도 (아마 "특히 이러한 종류의 상황에서" 라고 하는 것이 나을지 모르겠다.) 문제의 적절한 표상은 해결에 대한 노력들을 조직화하고 제안된 해결책을 평가하는 방법에 대한 명확성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것이 될 것이다. 이 때 숫자라는 것은 아무리 그것이 질적이라 할지라도, 게임의 명칭이 아니라 기능적 추론을 가능케 해주는 표상구조라고 하는 게 나을 것이다.
좋은 문제 표상이 주어지면 종종 대부분의 관련숫자들이 없을 때에도 합리적 분석이 행해질 수 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일을 그렇게만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설계의 질은 주로 가능한 자료들의 질에 달려 있는 것 같다. 해야 할 임무는 자료들 없이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과정 그 자체에서 자료들의 질이나 낮은 질에 대한 평가를 통합하는 것이다. 자동차 배기기준을 정하는 것은 비행기 날개의 최적 측면도를 계산해 내는 것과는 상이한 자료에 대한 접근방법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가 극도로 빈약한 자료들에 직면해서 계획을 해야만 할 때 우리에게 어떤 통로들이 열려져 있는가?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수백 년 동안 추구해 왔지만 계획가들은 종종 무시해 온 한 가지 최소한도의 전략은 추정된 모든 양에 대해 정확성의 정도를 매기는 것이다. 이렇게 추정치에 꼬리를 붙이는 것이 그것들을 보다 신뢰할 수 있게 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 값들이 얼마나 안정되었는가, 따라서 얼마나 그 값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를 되새길 수 있다.
미래에 대한 자료들, 즉 예측들은 보통 단단한 사실의 벽 중에서 가장 빈약한 부분들이다. 좋은 예측은 좀처럼 얻기 힘든 두 가지 필수요건들을 갖고 있다. 첫째, 예측 모델의 기초로서 예측되는 현상들에 대한 이론적 이해나 쉽게 예측 투사될 수 있는 충분히 규칙적인 현상들을 필요로 한다. 후자의 조건은 인간사 (또는 심지어 날씨) 에 대한 자료들에 의해선 좀처럼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예측은 일반적으로 단지 이론과 같은 것으로 될 것이다.
예측에 대한 두 번째 필수요건은 최초의 조건들, 즉 예측 투사가 이루어지는 출발점에 대한 믿을 만한 자료들을 갖는 것이다. 체계들은 그들의 진로가 최초의 조건들에서의 작은 변화에 민감한 정도로 변화한다. 일기예보는 주로 기상적 사건들의 진행이 초기 조건들의 세세한 면에 대해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힘들다. 사회적 현상들도 마찬가지로 민감하다고 생각할 만한 여러 가지 이유들을 우리는 갖고 있다.
설계의 결과는 미래에 있기 때문에 예상은 모든 설계과정에서 필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바로 설계에 대한 비판론의 이유이다. 왜냐하면 인구처럼 "단순한" 변수에 대한 예상 조차도 그 기록을 보면 비참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예상없이 설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붙잡아야만 한다.
인구과잉과 자원고갈, 그리고 기근에 의한 21 세기의 최후의 날을 예측함으로써 많은 논의가 된 로마 클럽 보고서를 생각해 보자. (Donella Meadows at al., The Limits to Growth (N.Y. : Universe books, 1972). ) 로마 클럽이 예측을 하는 데 사용된 모델의 구체적인 사항들이 이미 비판이 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구체적인 것들을 내가 이곳에서 조사해 볼 필요는 없다. 나의 관점은 보다 넓은 것이다. 로마 클럽의 보고서는 너무 많은 것과 너무 적은 것을 예측했다. 그것의 구체적인 멸망의 날자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이고, 비록 그것을 믿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너무나 많은 것을 예측한 것이다. 어떤 구체적인 예측 없이도, 기하급수적 인구증가와 한정된 자원은 조만간 어떤 나쁜 종말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설계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사건들의 시간규모에 대해 약간의 이해를 하고 싶을 뿐이다. 최소한 우리가 몇 년, 몇 10 년, 몇 세대 또는 몇 백년을 이야기 하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대부분의 설계목적에 있어서 그런 것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예측이다.
로마 클럽의 보고서는 여러 가지 미래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가능한 유일한 시간과정에 강조를 두었기 때문에 너무나 적게 예측했다. 설계의 자료문제에 대한 핵심은 예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각본들을 만들고, 이론과 자료에 나타난 오류들에 대해 그것들의 민감도를 분석하는 데 있다.
사회의 에너지와 환경상의 요구에 대해 가능한 미래를 우리는 어떻게 설계해 나갈 수 있을까? 첫째, 우리는 몇 가지 설계범위를 선정해야 한다. 아마 단기간 계획은 5 년, 중기계획은 한 세대, 장기계획은 1 ~ 2 백년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간적 관점들 각각에 대해서 상세한 예상을 할 필요는 없는 대신에 우리는 단기, 중기, 장기로 체계에 대한 여러 가지 목표상태들을 조사해 보는 데 우리의 분석자원들을 집중시킬 수 있다. 목표상태를 나는 사용된 에너지와 만들어진 오염물질의 양적인 상한선으로 본다. 바람직한 (또는 받아들일 만한) 목표상태가 선택되고, 그것의 실현성이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에 지나치게 민감하지 않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우리는 현재에서 바람직한 미래로 인도하는 과정들을 구성하는 데로 우리의 관심을 돌릴 수 있다.
아직 분명치 않은 사건들이 상세하고 구체화되어져야 한다면 먼 미래에 대한 설계는 전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한 설계를 생각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우리가 오늘 해야만 하는 일들을 인도해 주기에 충분한 정도로만 미래를 알거나 예측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일을 행하는 데 아무 함축이 없는 미래의 조건들은 설계와 무관하다. 곧 이 점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하겠다.
인간에 의해 형성되거나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적응 체계들 가운데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주요수단으로서 예측에 의존하는 것은 거의 없다. 외부환경에서 변화를 다루는 두 개의 보완적인 메카니즘들이 때로는 예측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즉, 환경에 대해 체계를 비교적 무감각하게 만드는 호미오스타틱 메카니즘들과 환경의 변화에 대해 반성적인 피이드백 적응이 그것이다.
따라서 재고 저장은 공장이 생산주문의 단기적 변동에 대한 고려없이 작동할 수 있게 해준다. 맹수의 근육조직 속에 에너지의 저장은 먹이를 잡아먹지 못할 불확실성에 대처하게 해준다. 발전소에서의 발전용량의 적절한 초과는 최대 출하량에 대한 정확한 추정의 필요성을 미연에 배제시킨다. 호미오스타틱 메카니즘들은 환경에서의 단기간 변동들을 다루는 데 특히 유용하므로 단기간 예측을 불필요하게 한다.
반면에 체계의 실제 상태와 바람직한 상태 사이의 차이에 대해 계속적으로 반응함으로써 피이드백 메카니즘들은 예상없이 환경에서의 장기간 변동들에 대해 체계가 적응토록 한다. 환경이 어떤 방향에서 변화하든 간에 피이드백 적응은 물론 약간의 지체는 있지만 그것을 추적한다.
어떤 합당한 수준의 예측이 가능한 영역에서 체계가 자기의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대체로 호미오스타시스, 피이드백 방법들과 예측통제를 결합시킴으로써 개선되어질 수 있다. 그러나 예측들을 사용한 능동적이고 예견적인 통제는 만약 통제반응이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주의깊게 설계되지 않는다면 체계를 진폭이 커지는 진동 속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이 통제이론에서 잘 알려져 있다. 부정확한 예측 자료들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나타나는 가능한 불안정한 결과들 때문에, 예측의 질이 높지 않다면, 전적으로 피이드백에 의존하고 예측을 완전히 빼 버리는 것이 때로는 이롭다. (공장체계들을 통제하기 위해 예측과 피이드백의 혼합을 사용한 역동적 프로그램 도식의 설계는 Holt, Modigliani, Muth, and Simon, Planning, Production, Inventories, and Work Force (Englewood Cliffs, N.J. : Prentice - Hall, 1960 )에서 논의되고 있다. )
거대한 사회체계들의 설계를 이야기할 때, "누가 고객인가?" 라고 묻는 것은 특이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보다 작은 규모의 설계업무의 경우엔 설계자들의 전문적 역할이란 정의속에 해답이 이미 있기 때문에 위의 문제는 제기될 필요가 없다. 설계의 미시 사회적 수준에서는 전문건축가, 변호사, 토목기사, 의사들은 구체적인 고객들을 위해서 일하고, 고객들의 필요나 바라는 것이 전문가의 일의 목표들을 결정한다는 것이 묵시적으로 가정되고 있다. 이런 모형의 전문적 활동에 있어서 건축가는 고객의 생활조건에 맞는 집을 설계하고, 의사는 환자의 병에 따라 치료의 과정을 계획한다. 비록 실제에 있어서 문제들이 이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지만 전문적 역할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고객의 목표를 벗어난 결과들이 설계 계산에 들어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각 전문분야에 대한 기술발전을 크게 용이하게 해준다. 건축가는 고객이 자기 집에 들이고 싶어하는 비용이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저임금 가정의 집에 드는 것보다 더 잘 사용되는지 아닌지를 결정할 필요가 없다. 의사들은 자기의 환자가 죽으면 사회가 더 잘 살 게 되는지 아닌지를 물어볼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전문가의 역할에 대한 전통적 정의는 명확하고 한정된 목표들을 가진 문제들에 매우 잘 맞는 제한된 합리성과 크게 일치한다. 그러나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전문가의 역할은 의문의 여지를 갖게 된다. 기술상의 발전은 전문가들로 하여금 그들이 자신들의 처방에 대한 장기적인 결과들을 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게 하는 동시에 보다 크고 광범위한 결과들을 만들 수 있는 힘을 준다.
전문가의 역할에 있어서의 이러한 복잡성은 부분적으로는 단순히 지식의 성장의 직접적 부산물로써 일어나게 된다. 전문적 규범의 수정을 통해서건 정부의 직접적 개입을 통해서건 설계에 의해 만들어진 외적 결과, 즉 고객의 관심을 벗어난 결과들에 대해서 고려해야 하는 새로운 의무가 전문가들에게 주어졌다.
바로 이러한 발전들이 전문가로 하여금 고객의 개념규정을 다시 하게 한다. 개별적 환자들과 일하는 정신병 의사는 가정 상담자가 된다. 공학자들은 새로운 생산품들의 환경적 효과를 고려하기 시작한다. 끝으로 사회와 중앙정부가 보다 넓은 범위의 책임을 지게 되자 점점 더 많은 전문가들은 그들이 더 이상 개별적 고객들에게 봉사하지 않고 국가 기관들에 의해 직접 고용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오늘날 거의 모든 전문직업들이 그들의 역할에 있어서 이러한 복합성에 의해 일어나는 압력들을 경험함에 따라 자기 반성을 겪고 있다. 건축, 의학, 공학 모두는 이 과정에 의해 일어나는 스트레스를 나타내고 있다.
건축가들은 몇 가지 이유에서 특히 갈등을 겪고 있다. 첫째로 그들은 언제나 그들 자신에게 종종 상치되는 요구를 하게 하는 두 가지 역할, 즉 예술가와 전문가의 이중의 역할을 짊어진다. 예술가로서 그들은 고객들이 표현했거나 이해한 욕구들과는 매우 별개의 것일지도 모르는 심미적 목표들을 실현하고 싶어한다. 만약 고객이 스스로 (이상적인) 르네상스 시대의 후원자처럼 처신한다면, 후원자는 예술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예술가에게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고객의 건물에 대한 관점이 보다 공리적인 경향을 띠고 그래서 그가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건축가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해 희생시킬 의사가 없다면 그들간의 관계는 불신과 속임수로 얼룩질 것이다. 건축가는 잘해야 고객의 목적에 대한 단순한 수행자가 아닌 교사나 설득자가 된다.
나는 한때, 그 당시 일리노이 공과 대학의 나의 동료였던 미스 반 데르 로헤 ( Mies van der Rohe) 에게 어떻게 건축 당시 놀랄 만한 현대적 설계였던 투겐다트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가를 물어 보았다. 집주인이 될 사람이 미스가 일찍이 견습생이었을 때 네덜란드에서 설계를 한 매우 전통적인 집들 몇 채를 보고 나서는 그를 찾아왔다. "당신이 그 사람 앞에 유리와 금속의 설계를 놓았을 때 그 손님이 놀라지 않았습니까?" 라고 내가 물어보았다. "물론 놀랐지요." 미스는 회상하듯 담배 끝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그는 아주 유쾌하지는 못했지요. 그러나 그때 우리는 좋은 담배 몇대를 피우고, ..... , 그리고 몇잔의 좋은 라인 포도주를 마시자, ....., 그는 그것을 매우 좋아하게 됐습니다."
건축가들에게 두 번째의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이 단일 건물 대신에 전체 복합구조나 지역을 설계하는 일을 맡을 때 그들의 전문적 훈련이 명확한 설계기준을 자신들에게 제공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도시계획에 있어서 물리적 구조의 설계와 사회체계의 설계 사이의 경계는 거의 완전히 없어진다. 건축기술의 지적 바탕이나 기술에는 전문가가 그러한 사회적 체계들을 계획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도록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설계에 대한 접근방법은 전문적 합의로서 서술될 만한 것을 거의 반영하지 못하고, 경험에 기초를 둔 분석 기법으로 서술될 만한 것은 더 더욱 반영하지 못하는 매우 개별적인 것이 되기 쉽다.
의학분야에서의 그 갈등은 약간 다른 형태를 취한다. 첫 번째 갈등은 치료비용과 질의 균형을 맞추는 자원배분문제에서 일어난다. 전통적으로 환자들은 자기들의 여유가 허락하는 그런 치료를 받았고 또는 의사가 그들에게 해줄 여유가 있을 때 치료를 받았다 —— 어느 편에서 보아도 좋다. 대부분의 치료행위에 대한 지불의 통로가 간접적인 오늘날, 예산상의 제약요소라는 것을 규정하고 조사하는 것은 어려워졌고 이전에는 묵시적으로 되어 있던 윤리적 선택이라는 것이 명시적으로 되어야 한다.
의료보호와 치료의 설계에 있어서 두 번째 갈등은 과거보다 훨씬 더 크게 삶과 죽음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의사에게 부여한 의학기술의 진보에서 야기된다. 또한 삶을 조건없이 선택하는 전통적 견해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 보다 어려운 문제들은 유전과정을 변화시키고 마음을 조작하는 새로운 기술적 수단과 함께 일어난다. 전통적인 전문가 - 고객 관계에서는 고객의 필요나 요구들이 있게 된다. 목표가 환경에 적응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기능을 포함해서) 환경은 고객의 목표에 적응하게 된다. 그러나 보다 이상적 생각들은 양쪽에서의 변화를 생각해 왔다. 사회는 인간의 거주에 보다 잘 맞도록 만들어져야 하지만, 인간 거주자 또한 사회에 보다 잘 맞도록 변형되어져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인간을 "개선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모르는 사이에 크게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 The Clockwork Orange 는 우리가 악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의지적 행동능력을 분쇄하는 것이 정당한가를 물어봄으로써 극적으로 이런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
공학자의 경우는 증가하는 기술의 힘과 멀리 미치는 결과에 대한 증가하는 인식이 가져오는 또 다른 면에서의 문제들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공학은 기업조직과 정부조직의 내용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환경에서는 전문성에 의해 규정된 결정기준과 조직에 의해 강요된 그것과의 사이에 끊임없는 잠재적 갈등이 존재한다. 제 2 장에서 논의된 완전 경쟁이론의 가정 속에 있는 기업체에서는 조직의 기준이 우세할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보다 복잡한 세계에서는 전무적 공학자가 조직의 목표보다는 전문적 고려를 우위에 두는 중요한 재량권을 소유하고 있다. 만약 그들이 그 자유 재량권을 행사하려고 한다면, 그들은 누가 고객인가를 결정해야만 한다. 특별히 그들은 그들의 설계하는 인공물들이 일으키게 될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외부효과 가운데서 어느 것이 설계기준에 포함되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만 한다.
모든 모호한 점들은 고객을 전체 사회와 동일시함으로써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것은 전문적 판단에 있어서 이해의 갈등이나 불확실성이 없는 세계에서는 명확한 해결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갈등과 불확실성이 존재할 때, 전문가에 대한 조직적 사회통제를 포기하고 사회적 목표와 우선 순위를 규정하는 것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해결책이 된다. 만약 어느 정도 통제조치가 지속되어야 한다면, 사회의 제도는 전문가와 함께 설계의 목표들을 재규정해야 한다.
고객은 전문가들을 설계에 대한 그들의 목표를 규정함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제시하는 계획에 반응함으로써 통제하려고 한다. 환자들이 의사가 그들에게 처방한 만큼의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고객으로서의 사회는 의료환자 이상으로 다루기 어렵다. 일의 수행에 어떤 유형의 인간행동이 포함되는 모든 계획에서 그 행위는 동기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라는 지식은 좀처럼 적절한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다.
자신들을 위해 계획이 만들어지는 조직이나 사회의 구성원들은 소극적 도구들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체계를 자신의 목표에 보다 더 이용하려고 하는 설계가들이다. 조직이론은 구성원들에게 조직상의 역할들을 수행하도록 주어지는 유인과 그것에 의해 구성원들이 조직목표수행에 미치는 공헌간의 균형의 관점에서 조직을 조사해봄으로써 동기 문제를 다룬다. (유인과 공헌의 균형에 의존하는 조직상의 생존과 균형의 개념은 ,Chester I. Barnard, The Functions of the Executive (Cambridge : Harvard University Press, 1938) 에 의한 것이다.)
사회계획과정이라는 다르지 않은 표현은 그 문제를 계획가들과 계획가들의 행태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자들 사이의 게임으로 본다. 계획가들은 그들의 행동 (즉, 그들의 설계를 수행하는 것) 을 하고,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변화된 환경에서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들 자신의 행동을 변경한다. 사회의 계획에 대한 게임의 관점을 화폐와 재정에 대한 기업체와 소비자들의 적응적 반응이 그 정책들을 대체로 중화시켜 버리거나 무효로 만들어 버리는 경제안정정책의 분야에서 명백하다. 정부는 화폐와 재정정책에 대한 표준 케인즈 방식을 사용해서 고용수준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실업을 줄이려는 시도는 인플레이션만을 일으킨다는 화폐 학자들, 특히 "합리적 기대" 이론가들의 주장은 이러한 조치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강하고 재빠르게 적응적일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디.
경제학을 빼놓고는, 계획에 대한 가능한 "게임적" 반응을 어떤 체계적 방법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사회 계획이나 정책 논의에서 아직까지 비교적 드물다. 예를 들어, 아주 최근까지도 새로운 설비에 의해 일어나게 될 도시지역주민들의 가능한 재배치를 상정하지 않고서 새로운 도시 운송 설비의 설계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효과는 반세기 동안 알려져 왔고 관찰되어 왔다. 사회계획기법들은 그것들을 정규적으로 포함하기 위해 확장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 각자는 길고 어두운 홀 안에서 작은 등불에 의해 비추어지는 동그란 빛 안에 앉아 있다. 등불은 홀의 몇피트 전, 후를 내려 비추고는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미래와 과거의 막대한 어두움에 의해 약해지며, 급속히 희미해진다.
우리는 그 어두움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 있다. 우리는 경제나 날씨에 대하여 점쟁이나 예보가들에게 문의해 보지만 또한 우리의 "뿌리" 에 대하여 거꾸로 탐구해 보기도 한다. 몇 년전 나는 나의 부계 선조들이 살았던 마인쯔 (Mainz) 부근의 라인란트 (Rheinland) 마을에서 그러한 탐구를 수행했었다. 나는 조부모의 기록들을 손쉽게 발견했고, 심지어 증조부와 그 이전 분들의 기록들도 발견했다. 그러나 멀리 가기 전에 —— 간신히 18 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갔을 때 —— 나는 동그란 빛 안의 가장자리에 다다르게 되었다. 어두움은 에버스하임 (Ebersheim) , 뵈르슈타트 (Woerstadt) , 그리고 파텐하임 (Partenheim) 의 작은 마을에서도 또 다시 덮쳐왔고, 나는 더 이상 뒤로 갈 수가 없었다.
역사학, 고고학, 지질학과 천문학 등은 우리에게 과거라는 복도를 먼거리까지 비추는 가느다란 불빛을 제공한다. 그러나 불빛이 일정하게 비추어지지는 않는다. 즉, 여기에는 어떤 정치가나 철학자가 있고, 저기에는 전쟁과 가공된 돌조각들과 같이 묻혀진 유인원의 뼈들, 고대의 바위 속에 묻혀있는 화석, 대폭발의 소문 등에 관한 사실 등이 있다. 우리는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과거를 읽는다. 불빛에 의하여 포착된 몇 개의 지점은 잠시 동안 우리의 관심과 마음을 사로잡는 생동감과 직접성을 갖는다. 예를 들면 트로이 앞에 진을 치고 있던 그리스 전사들,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 흔들리는 횃불에 의해 언뜻 보이는 석회동굴 벽에 채색된 사슴의 모습, 그러나 대부분의 영상들은 희미하고 우리의 관심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반대방향, 미래를 향한 불빛은 보다 급속히 약화된다. 비록 우리는 일요일 증보판에 게재된 식어가는 태양의 기사를 읽으며 흥을 돋우게 될지 모르지만 우리들의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지구의 유한성이 아니라 몇 년이면 흘러가 버리는 우리의 유한성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잘 알고 있던 부모나 조부모들과 감정을 통할 수도 있고, 반대의 방향으로 자식이나 손자들과 그것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동그라미를 넘어서면 우리의 관심은 감정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지적이고 호기심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먼 미래의 사건들 가운데 어느 것이 승리이고 패배인지, 또는 누가 영웅이고 악인인지 규정하는 것조차도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게 된다.
우리의 가치체계 안에 들어오는 사건 또는 미래의 사건들은 모두 날짜가 있으며, 우리가 그것들에 부여하는 중요성은 일반적으로 시간이 멀어짐에 따라 급격히 감소한다. 우리가 제한된 합리성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다행한 것이다. 우리의 결정이 사건의 장기적 결과와 당장의 결과에 똑같이 의존한다면, 우리는 결코 행동할 수 없고 단지 생각속에 영원히 묻혀 버릴 것이다.
각 사건들에 맞는 비중의 할인요인에 적용하고 또한 그것들을 시공간의 거리에 따라 약화시킴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제한된 계산능력에 맞는 규모로 선택의 문제를 축소시킬 수 있다. 우리가 미래와 세계에 대한 결과들을 통합할 때 전체가 수렴한다는 것을 보증한다.
사회생물학자 (sociobiologists) 들은 그들의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에 대한 분석에서 어떻게 진화의 원동력이 유기체들로 하여금 그들의 자손이나 집단을 그들과 관계가 없는 것들의 자손보다 더 보호하게 만드는 것인가에 대하여 설명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진화론적 이해는 왜 그들의 관심이 미래에 대하여 그렇게 근시안적인가 하는 것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적어도 설명의 일부분은 우리가 먼 미래에 대해서 특히 우리 행동의 장기적인 결과에 대해서 일관성있게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근시안적인 사고는 적응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적응성의 한계에 대한 징후이다. 이것이 내부환경에 속하는 적응에 대한 제약조건의 하나이다.
경제학자들은 이자율로서 미래를 할인하는 방법을 표현한다. 미래화폐의 현재가치를 찾기 위해서 그들은 현재에서 미래까지 단계적으로 고정비율에 따라 화폐가치를 감소시키는 복합적인 할인율을 적용한다. 적정한 이자율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결정에 있어서 다음 세기의 화폐가치는 무시할 만한 것으로 보도록 한다. 확신을 줄 만한 것은 없지만 무엇이 저축자들의 시간에 의한 할인율을 결정하는가에 관하여 많은 연구들이 있다 (현재는 위험부담과 인플레를 계산한 후에 년 3 % 정도에 계속 머물로 있다.) . 또한 사회적 할인율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많은 논문들이 있다. 즉, 그것은 현 세대의 복지와 다음 세대의 복지 사이의 교환율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자율과 현재의 관점에서 미래의 중요성을 감소시키는 다른 요인들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비록 우리가 먼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좋지 않은 사건을 안다고 할지라도 현재에 우리가 그것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2000 년에 밀농사가 흉작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고 할 때, 우리들은 현재 밀을 비축하자는 잘못된 권고를 받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무관심은 단순히 미래에 대한 감정 이입의 실패뿐만이 아니라, ① 우리가 단기를 넘어선 장기적 미래에 대한 우리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고 계산할 수 없거나, ② 이러한 결과들이 구체적이라기 보다는 혼재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에 있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중요한 결정은 주로 저축과 소비에 관한 것이다. 즉, 우리가 현재 및 미래의 만족에 관하여 어떻게 생산을 배분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저축에 있어서 우리는 투자 대상의 중요한 속성 가운데 융통성을 포함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융통성은 예측할 수 없지만 미래에 일어날 것이 확실한 사건들에 대한 투자의 가치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한 용도에서 다른 용도로 바뀔 수 있는 구조의 방향에 따라 투자가 전환될 수 있도록 하며, 또한 변화하는 환경에 계속적인 적응을 하도록 기초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쉽게 시대에 뒤지지 않는 지식을 갖는 방향으로 유도할 것이다.
주목할 만한 현 세기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현재, 특히 산업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보이는 우리의 시관에 있어서의 변화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에너지 - 환경문제에 포함된 것으로 우리는 세 가지 독립적인 측면을 볼 수 있다. 첫째 것은 정치적 위협에서 우리를 보호해야 하고 또한 국제수지의 균형을 달성하도록 하기 위해서 축소시켜야만 하는 석유에의 당면한 의존문제이다. 둘째 것은 기름과 가스 공급의 고갈에 관한 전망으로서, 이것은 대부분 석탄이나 핵 에너지의 이용에 의해서 한 세대 내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셋째 것은 화석화된 연료의 고갈과 그것들의 사용으로 인한 기후의 영향에 관한 종합적인 문제이다. 마지막 문제의 시간 단위는 한 세기나 그에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 세대에 있어서 현저하며 상대적으로 새로운 것은 우리가 제 3 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정도이다. 우리가 3 가지 문제를 혼동된 상태로 갖고 있고, 또한 우리가 다른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더 긴급한 문제를 고려할 수 있게끔 문제들을 분류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아마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먼 시간과 공간에 있는 사건들을 할인하는 데 적용되는 사회적 할인율은 계속 하향조정되어 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먼 시간과 공간에 있는 문제를 새로이 고려해야만 하는 몇 가지 명백한 이유가 있다. 거의 동시적인 세계적 통신체계와 빠른 항공교통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이러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 결과로서 모든 국가들 사이의 경제적, 군사적 상호의존성이 계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원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지식 특히 과학적 지식의 진보이다. 고고학, 지질학, 인류학, 우주물리학이 어떻게 우리의 시각을 확장시켰는가를 이미 지적하였다. 추가해서 새로운 실험실 기술들은 우리 행동의 간접적이고 미세한 효과를 발견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크게 증진시켰다. 터너 (Turner) 가 런던 시민들에게 그림으로 테임스강을 표현하기 전까지는 테임스강에는 안개가 없었을 것이라고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는 지적하였다. 마찬가지로 착색판이나 기타의 민감한 분석기술들이 대기 중에서 몇 P.P.M. 이란 소량의 유해물질들의 존재를 밝히고 측정을 하지 않았을 때까지는 대기에는 아무런 유해물질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물고기나 매의 알에서 D. D. T.를 검출하기 전까지 그것은 전적으로 훌륭한 살충제였다. 선악과를 먹는 것이 우리에게 선악의 성질을 알려주었다면, 현대의 분석도구들은 우리에게 작은 양 속에 포함된 선, 악과 멀리 떨어진 시간과 공간에 있는 선, 악을 구별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사회적 시관이 내가 주장한 것처럼 그렇게 확대되지 않았다는데 반대를 할지도 모른다. 어떤 시관이 기독교사상의 핵심인 죽은 후의 영생이나 동양 종교의 계속적인 윤회보다 길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러한 믿음들에 나타나는 미래에 대한 태도는 내가 여기서 논의한 내용과는 다른 것이다. 기독교인이 관심을 갖는 미래는 그의 현재의 행동의 관점에서 본 그 자신의 미래이다. 현재의 행동이 일어나는 세계를 위하여 미래의 사태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것은 사후 또는 부활에 대한 믿음 속에는 전혀 없다. 인간의 생명이 의존하고 있는 환경의 취약성과 그 환경을 미래에는 보다 더 편안하게 만들려는 인간의 힘에 대한 현재적 관심과 비슷한 것을 종교적 믿음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지향에 있어서 변화가 있고 또한 의미있는 시관의 확대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인간관계의 연결이 견고할수록 우리는 장기적 효과를 다루어야 하는 계획과 정책결정의 과정에 심한 부담을 부과한다. 보다 먼 미래를 볼 수 있게 하는 과학이나 지식과 우리가 본 것을 다루게 하는 과학이나 지식 사이에는 계속적인 경쟁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기술에 대해서 비관하는 시기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우리가 다룰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우리는 멀리 볼 수 있도록 배워 왔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에 있어서 진보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의식주와 건강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함에 있어서 계속적인 성공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합의하는 정의 가운데 하나이다. 다른 정의로서는 평균적인 인간행복의 증대를 들 수 있다. 생산기술의 발전을 가지고 우리는 첫 번째 기준에 의한 주요 진보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두 번째 기준인 인간의 행복 (측정할 수 있다면) 이라는 기준을 사용한다면 2 장에서 논의했던 변화하는 열망수준의 면에서 볼 때 진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심하게 된다. 현대산업사회가 그 전에 있었던 내핍적이더라도 단순한 사회보다 인간의 행복에 더 공헌한다고 생각할 근거가 없다. 반대로 상상된 (또는 가상적인) 보다 행복하고 인정있는 과거에 대해 종종 표시되는 향수를 뒷받침할 경험적인 근거 또한 없다.
진보를 측정하는 세 번째 방법은 결과가 아니라 의도의 면에서 보는 것이다. 소위 도덕적 진보라고 부르는 것이다. 도덕적 진보를 항상 보편적 가치에 반응하는 능력, 즉 현재 또는 미래의 인류의 요구나 주장에 동일한 비중을 두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 내가 서술한 지식의 성장이 이같은 도덕적 진보를 대표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시간 또는 공간에 대한 확장된 관점의 결과를 너무 성급하게 평가해서는 안된다. 현세기에 있어서 인간에 대한 인간의 비인간적인 가공할 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광범한 영역에 적용되는 합리성은 과거의 충동적 이기심이라기보다 계산적으로 더욱 합리적인 이기심에 불과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실용적 관점에서 안전한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 현재의 활동이 요청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에 관심이 가진다. 현재의 행동을 요청하는 이상의 미래에 대한 관심은 호기심이다. 그것은 보다 여가 시간에 속한다. 단기적 에너지 문제에 대한 우리의 현재의 관심은 장기 또는 중기적 문제에 대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가 우리의 단기 문제를 개선하려고 한다면 현재 우리가 해야만 하는 행동은 대개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공급상으로 실질적인 단기적인 증가의 전망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중기문제를 다루기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석탄으로의 전환, 혈암의 개발, 안전한 핵 분열 또는 융합에 대한 기술 발전 및 이용을 위한 대규모 행동들이다. 장기 에너지 문제에 관련된 우리의 주요 행동은 주로 지식을 습득하는 행동이다. 즉, 그것은 핵융합이나, 태양 에너지의 개발 계획과 모든 대안들이 환경에 미치는 결과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기 위한 연구 계획들이다.
에너지 문제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규모 설계문제의 전형적인 것이다. 직접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들에게 추가해서 우리는 새로운 자본중심의 공장을 개발함에 있어서 시간상의 격차가 있다는 것을 예상해야 하며, 또한 보다 먼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의 발전에는 더 많은 시간상의 격차를 예상해야 한다. 정책결정기구의 관심은 이에 맞도록 배분되어야 한다.
발등에 불을 끄는 것과 같은 순간적인 요구에 대한 관심이 새로운 자본투자나 지식의 요구에 대한 관심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조직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전체적인 제의가 많고 또한 긴급사태가 자주 발생하면 할수록, 중기 또는 장기적 결정이 등한시될 가능성은 증가한다. 공식조직에 있어서 이의 치유방법은 조직에 대한 순간적인 압력에서 유리된 계획집단을 창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 단위들은 두 가지의 난점에 봉착한다. 하나는, 특히 유능한 참모들을 갖고 있을 때, 그들은 조직의 직접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많은 자문을 해주어야만 되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운영부서의 일부가 되며, 더 이상 기획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들이 전체 조직에서 충분히 유리되어 있다면, 그들은 반대의 통로가 막히게 될지도 모른다. 즉, 그들은 운영조직의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이러한 모든 난점을 단숨에 또는 전체적으로 해결하는 단순하고 자동적인 방법은 없다. 그들은 계속적으로 조직의 지도층한테서 관심을 받고 있어야만 한다.
목표없는 계획을 말하는 것은 용어상으로 모순되는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른다. (이 절은 이러한 식의 생각을 많이 한 James G. March 에게 많이 의존하였다. 그의 논문인 "Bounded Rationality, Ambiguity, and Engineering of Choice," Bell Journal of Economics, 9 (1978) , pp. 587 ~ 608 을 보라.) 바로 합리성의 개념이 생각이나 행동이 지향하고 있는 목표를 의미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우리가 설계를 평가하기 위한 기준을 갖고 있지 않을 때 어떻게 우리는 설계를 평가할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을 유도해 가는 기준 없이 설계과정 자체가 어떻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인가?
제 4 장 발견의 과정에 대한 논의에서 이에 대한 얼마의 답변은 주어졌다. 우리는 "흥미" (interestingness) 나 새로운 경험이라는 극히 일반적인 교시적 방법들에 의해서 안내된 탐색들이 완전히 실현성이 있는 행동들이라는 것을 보았다. 과학적 발견을 위한 기구로서 이러한 종류의 탐색은 사회적 설계과정에도 가장 적절한 모형을 제공할지도 모른다.
음악에 대한 새로운 취미를 기르기 위해서는 많은 음악을 듣고, 회화의 경우 감상을, 술의 경우 좋은 술을 많이 마시라는 것이 좋은 처방이란 점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새로운 경험을 접하며 선택의 기준을 바꾸는 것은 거의 설계의 목표에 대해 모순적이긴 하지만 현실적인 견해는 그들의 기능은 행동을 동기화시키고, 행동은 다시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약 30 년전 핏츠버그시에서 광범위한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었을 때 사업의 주요목표는 소위 황금의 삼각형 (Golden Triangle) 이라 불리우는 시의 중심부를 재건설하는 것이었다. 건축가들은 수행하는 계획의 미적 성격에 대해 많은 찬성, 반대의 의견을 표명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들은 대부분 초점에서 벗어난 것이다. 재개발사업의 초기단계의 주요 결과는 이 위치에 매력적이고 기능적인 도시 중심부를 만드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 주는 것이었고, 이 가능성의 제시로 시민들의 태도와 시의 진면목을 변화시키는 많은 계속적인 건설활동이 따르게 되었다.
사업추진의 후기단계는 초기 단계의 그것과 일관성이 있었는가 —— 즉, 원래의 설계대로 그것이 수행되었는가 —— 에 대한 질문도 초점에서 벗어난 것이다. 수행의 각 단계는 새로운 상황을 창조하고 새로운 상황은 새로운 설계를 위한 시발점을 제공한다.
장기간에 걸쳐 수행되고 그 수행과정에서 계속적으로 수정되는 복합적인 설계를 하는 것은 마치 유화를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 유화의 화판 위에 발라진 모든 새로운 얼룩들은 화가에게 계속적으로 새로운 생각의 근원을 제공하는 새로운 유형을 창조한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화가와 화판 사이의 순환적 상호작용의 과정이다. 즉, 현재의 목표는 새로운 그림의 응용을 유도하고, 점차적으로 변화하는 유형은 새로운 목표를 암시하는 순환적 상호작용의 과정이다.
최종목표에 대한 생각은 미래를 예측하고 결정하는 우리의 제한된 능력과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 행동의 실제 결과는 다음의 계속되는 행동의 단계를 위한 초기조건을 확립한다. 우리가 "최종" 목표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은 우리가 우리의 계승자에게 남겨놓은 초기조건을 선택하는 기준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어떠한 세계를 남겨놓기를 원하고 있는가? 무엇이 그들을 위해서 좋은 초기조건인가? 첫째로 절실한 것은 미래의 정책결정자들에게 그들이 회복할 수 없는 활동은 피하여 그들에게 가능한 많은 대안들이 제공될 수 있는 세계일 것이다. 핵에너지의 배치결정을 어렵게 하는 것은 그것에 계속적으로 따라 다니는 비가역성의 전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절실한 것은 다음 세대의 정책결정자들에게 보다 나은 지식과 보다 많은 경험능력을 남겨놓는 것이다. 여기서 목표는 보다 나은 대안을 평가하는 바로 그것과 더불어 특히 보다 많이 그리고 보다 풍부한 방법으로 세계를 경험하도록 해 주는 것이다.
4 장에서 내가 발전시켰던 생각들이 고정된 목표의 관념을 포기하지 않고 그것들과 조화될 수 있다는 베커와 스티글러의 논의를 나는 언급했다. 요구되는 모든 것은 행동에서 얻어질 수 있는 효용이 충분히 추상화된 형태로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의 틀에 의하면 한 시간 동안 음악을 들음으로써 발생하는 효용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증가하며, 이 능력은 이미 음악을 듣는 데 소요된 투자에 의해서 증가될 수 있는 자본과 같은 것이다. 나는 그들의 방법이 문제를 무미건조한 것으로 만드는 것을 알았지만, 아마도 그것은 목표없는 합리적 행동에 대한 생각을 덜 신비스럽게 만들었다. 만약에 우리가 인간이 인생을 즐기는 것과 평가하는 것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면 미래의 즐거움을 위한 능력에 투자하는 것을 확실히 사회적 결정의 타당한 목표이다.
새로운 목표가 설계의 창조와 집행도중에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계획의 한 목표는 설계행위 자체일 수 있다는 생각이 있다. 가능성을 상상하고 그것을 세련화시키는 행동은 그 자체가 가치있고 즐거운 경험이다. 실현된 계획이 새로운 경험의 원천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설계과정의 각 단계마다 새로운 전망이 펼쳐진다. 설계하는 것 자체는 일종의 정신적 눈요기이다. 기쁨을 얻기 위하여 물건을 살 필요는 없다.
현대의 과학과 기술에 대한 비난 가운데 하나는 만약에 우리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면, 우리는 그것을 하지 않고는 못배긴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반대 예를 생각하겠지만 그것 역시 사실적 근거를 가진다. 그러나 과학과 설계의 주요 관심은 그것들이 우리에게 세계에 대해 가르치는 것에 있지, 그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대해서 무엇인가 하도록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닌 미래를 상상해 볼 수도 있다. 과학처럼 설계도 행동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이해를 하기 위한 도구이다.
고정된 목표가 없는 사회계획은 생물의 진화과정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사회적 계획은 진화 못지 않게 근시안적이다. 조금 앞만을 내다보면서 현재보다 약간 나은 (보다 적합한) 미래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은 그 과정이 반복되는 새로운 상황을 창조한다. 진화이론에는 이러한 근시안적인 언덕 오르기와 같은 일에서 장기적인 발전의 방향을 추출하는 아무런 정리 (법칙) 도 없다. 사실상 진화론적 생물학자들은 그러한 방향을 가정하거나 진보에 대한 개념을 소개하는 데 극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정의상으로 적자라는 것은 생존하고 번식하는 것들을 말할 뿐이다.
진화에 있어서 장기적 방향이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방향을 진보로 볼 수 있는 것인지는 두 개의 상이한 질문이다. 우리는 첫 번째 문제에 대하여는 긍정적으로 두 번째는 부정적으로 대답할런지도 모른다. 이것은 다음 장에서 더 발전시킬 것이기는 하지만 사회적 및 생물적 진화의 방향에 대한 추측을 해보자. 내 추측은 진보에 대한 주장은 결코 아니다.
진화의 역사에 관한 문헌들에서 —— 사회학적 또는 생물학적 —— 우리는 진화가 다양성과 복잡성으로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고 추측할지도 모른다. 100 종류 이상의 원자들, 수 1, 000 가지의 무기분자들, 수 10 만의 유기분자들, 수 100 만의 생물체의 종류들이 있다. 인류는 수천 개의 각기 다른 언어를 발전시켰고 현대 산업사회는 수만 개의 전문화된 직업을 갖고 있다.
보다 복잡한 것은 단순한 것의 조합에 의해서 발생하기 때문에 나는 다음 장에서 형태가 이러한 방법으로 증가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겠다. 건축에 사용되는 재료들의 수집이 방대하고 풍부하면 할수록 만들어질 수 있는 구조는 더 세련될 수 있다.
만약에 다양성으로 향하는 그러한 경향이 있다면 진화는 고정된 환경의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토너먼트, 즉 그 장소에 가장 적합한 유기체가 승리를 하는 그러한 토너먼트로 이해되지 않는다. 차라리 진화가 적절한 장소의 확산을 초래한다. 대부분의 생물 유기체들이 적응하는 환경은 다른 유기체에 의해서 형성되며 인간이 적응해야 하는 환경은 주로 다른 인간들에 의해서 형성된다. 새로운 새나 포유류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새로운 종류의 벼룩을 위한 새로운 적절한 장소를 제공한다.
바너바 부쉬 (Vannervar Bush) 는 과학을 "끝없는 미개척 영역" 이라고 표현했다. 세계의 다양성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에 인간사회의 진화와 설계의 과정이 끝없는 것처럼 과학도 끝이 없다. 몇 개의 원초적 요소들의 조합에 의해서 무제학적인 다양성이 창조될 수 있다.
우리의 사회적 계획과정에 대한 음미는 지난 장에서 제안했던 설계의 교과과정을 더 확대시킬 것을 시사한다. 7 번째 주제, 즉 설계문제의 표상은 다음의 기술을 포함하도록 확장되어야 한다. 그 기술들이란 조직을 문제의 표상을 위한 틀로서 형성하는 것, 주변의 제한 요소들에 대한 표상을 만드는 것, 숫적으로 표상되지 않는 문제의 표상들에 관한 것이다. 우리의 논의는 교과과목 속에 적어도 다음의 다섯 가지 새로운 주제를 포함할 것을 제안한다.
1. 제안된 합리성 : 환경의 복잡성이 적응체계의 계산능력을 훨씬 초과하는 상황에 나타나는 합리성의 의미.
2. 계획을 위한 자료 : 예상방법, 통제에 있어서의 예측과 피이드백의 사용.
3. 고객의 인지 : 전문가 - 고객의 관계, 고객으로서의 사회, 게임의 상대자로서의 고객.
4. 시간과 공간의 범위 : 시간의 할인, 진보에 대한 정의, 관심의 관리.
5. 최종 목적이 없는 설계 : 미래의 융통성을 위한 설계, 목표로서의 설계활동, 진화체계의 설계.
주제 2 와 3 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해당하는 통제이론이나 게임이론은 예외이지만 추가된 주제들에 적합한 설계도구들은 일반적으로 앞의 장에서 제시했던 것보다 덜 공식적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공식적 방법을 갖고 있던 없던 간에 이 주제들은 사회설계과정에 있어서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교과과정에서 빼거나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 세대는 비관과 근심을 표현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 그러한 시기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성이 많은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은 진실이다. 계속 그래 왔지만 우리가 오늘날 당면하고 있는 것과 같이 항상 그렇게 예리하게 인식되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러한 문제들 전부를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좀 더 낙관적이 될 수 있다. 우리의 근본 문제 —— 확신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 —— 는 새로운 다양성과 적합한 장소를 창조함으로써 미래를 위한 개방된 선택 가능성을 유지하는 것과 어쩌면 더 나아가서 조금씩 가능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롭고 흥미있는 설계를 함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가 가졌던 것과 같은 모험의 기회를 우리 자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청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