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시대의 인간과 문화

 

과학사상8호(1994년-봄) : 좌담, 범양사 출판부, Page 24~51

 

정보처리기계로서의 컴퓨터

컴퓨터의 문화적 충격

컴퓨터의 발전

컴퓨터의 지능

컴퓨터와 미래 사회

 

이태수 (서울대 교수 · 철학) : 이번 호 《과학사상》의 특집주제는 인공지능입니다. 여러 선생님들께서 인공지능에 대한 글들을 써주시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 좌담은 그 특집의 서두에 해당하는데, 다른 특집 논문들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여기서는 인공지능이 갖는 문화적 · 사회적 의미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기로 하지요.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서 기초이론을 연구하시는 김명원 선생님과 서울대 철학과에서 논리학과 심리철학을 연구하시는 김영정 선생님이 함께 이야기해 주시겠습니다.

기술문명의 발전에 대해서는 흔히 오웰의 빅 브러더가 보여줬던 비관적 전망이 내려지곤 하는데, 그러한 비관주의가 컴퓨터 문화에 대해서는 얼마나 정확한 예언인지 짚어봐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이런 논의가 깊이 있게 이뤄지려면 일종의 형이상학적 관점에서도 문제를 비판해줄 수 있어야 할 텐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학계에서는 그런 분을 찾기 어렵습니다. 말하자면 생철학, 현상학 하이데거 철학 등에 기반해서 컴퓨터와 컴퓨터 문화를 진단하는 것 말입니다. 외국에서는 인공지능 비판으로 유명한 Hubert Dreyfus 같은 사람이 그런 역할을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그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통철학과 컴퓨터를 동시에 이해하며 연구하는 그런 분들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컴퓨터에 대하여 왜 진지한 이야기가 필요한가를 생각해 볼까요? 우리가 모든 기계에 대하여 철학적 · 인문학적 의의를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컴퓨터만은 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철학자, 인문학자들의 관심거리가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정보처리기계로서의 컴퓨터

김명원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연구원, 인공지능) : 먼저 컴퓨터가 무엇인지를 정의해두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구조적으로 보아서 컴퓨터란 기억장치, 입력장치, 출력장치, 중앙연산장치의 네 부분으로 이뤄진 기계입니다. 이중 기능적 측면에서는 중앙연산장치가 가장 중요한데, 거기서 데이터를 처리 · 가공합니다. 이것이 한 대의 컴퓨터를 구성하는 최소단위이지만 오늘날에는 반드시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컴퓨터 시스템이라고 해서, 컴퓨터 내부에 여러 개의 프로세서들이 장치되어 각각 부분적 작업을 분담하여 작업하는 것들이 많지요. 그 경우에는 중앙연산장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같이 작업하게 됩니다. 부분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프로세서들이 상호연결되어 정보를 체계적 · 종합적으로 처리하는 복합화된 컴퓨터지요.

그러나 이것은 기술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컴퓨터일 뿐이고 오늘은 컴퓨터의 공학적 측면보다는 컴퓨터가 어떤 기능을 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떤 문화적 의미를 갖는가를 이야기하는 자리니까 컴퓨터의 기능부터 기능 부분을 규정해주는 정의가 필요할 텐데요.

이태수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단 컴퓨터는 현대 기술문명의 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것이 올바른 규정이라면 컴퓨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컴퓨터가 어떤 종류의 기술이며 기계인가, 그리고 그것은 왜 특별한가를 말해야 할 것입니다.

김영정 (서울대 교수 · 심리철학) : 컴퓨터가 우리현대문명의 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론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곧 컴퓨터가 현대문명과 현대기술을 대표한다는 뜻이겠는데, 왜 그렇게 생각되었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그것은 컴퓨터가 우리의 일상에 너무나 깊이 스며든 기술이기 때문일 듯합니다. 즉 기술적인 내용을 떠나서 컴퓨터는, 르켓 같은 것과는 달리 우리의 일상에서 널리 사용됨으로써 그것 없는 생활을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다는 점이 컴퓨터를 특별히 중요한 것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 어린이에게는 오락기계로서, 학생이나 학자들에게는 워드 프로세서로서, 그리고 일반인에게는 신속한 업무처리와 광범위한 정보를 다루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사무 필수용품으로서 컴퓨터가 이토록 우리의 일상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는 점이 컴퓨터를 일개 기술상품이 아닌 문화적 문젯거리로 만드는 첫 번째 요인일 것입니다.

이태수 : 그런 요인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컴퓨터를 기술사의 흐름에서 살펴볼 수도 있을 텐데요. 기술의 역사를 보면 획을 긋는다고 말할 만한 경우들이 있지요. 예컨대, 불과 손도끼 같은 것이 문명의 흐름을 바꾸는 발견 · 발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문자의 발명도 그런 경우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문자도 넓은 의미의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의 발전이 어떻게 문화, 문명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하여 제가 한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원전 8 세기경부터 철기문명이 서구역사에 나타나는데, 그 결과 사회가 급속히 변모하게 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청동기에서 철기로 바뀜으로써 무엇보다도 전쟁의 양상이 달라집니다. 청동기시대에는 청동기가 대단히 비싸고 무거워서 그야말로 영웅적인 몇몇 장군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지요. 청동기시대까지의 전쟁에서 지휘자, 장군이 그토록 큰 역학을 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이 철기의 등장과 함께 변합니다. 철기는 청동기보다 가벼운데다 대량생산되었기 때문에 싸게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전장에서 일반병사, 즉 보병의 비중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이제 보병들이었고, 그래서 청동 갑옷을 입은 영웅적 무사는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영웅적 무사들의 비중이 낮아짐에 따라 귀족계급이 약화되고, 그것은 귀족사회의 붕괴로까지 이어지게되죠.

다들 아시겠지만  인쇄기, 화약, 증기기관의 발명도 역사상 획을 긋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컴퓨터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요, 그것도 과연 획기적인 기술적 발전이겠습니까?

김명원 :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기술상품인제, 말하자면 우리가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도구라는 뜻입니다. 상식적으로 정의하건대 기술이나 도구란 도구 사용자인 우리 인간의 물리적,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컴퓨터는 무슨 한계를 극복해주는 수단일까요? 컴퓨터는 우리의 지능적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지요. 컴퓨터 이전에도 인간의 지능을 보조하는 도구들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주판이 그렇고, 목동들이 나뭇가지나 돌 등을 사용해 가축의 수를 세는 것도 그런 것이지요. 손가락을 이용해서 셈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기술이자 도구사용으로 보아야 합니다. 거기서 우리가 사용하는 10 진법이 발달했습니다. 또한 컴퓨터가 나타나기 이전에 존재했던 중요한 지능한계 극복이 보조도구로서 종이와 연필을 뺄 수 없습니다. 종이와 연필을 갖고 기록하게 됨으로써 인간지능의 중요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단기기억 (short-term memory) 이 작다는 한계가 보완됐습니다. 종이에 기록을 하게 되면서 문자와 언어가 발생하게 됐지요. 컴퓨터는 이러한 지능보완기술의 현대적 결정체입니다. 가장 발전된 기술이자 도구지요.

김영정 : 컴퓨터가 정보처리를 그 핵심적 기능으로 갖는다고 할 때, 문제는 그것이 주판보다 질적으로 얼마나 나아졌는가 하는 것이지요. 물론 양적으로, 즉 처리량이나 처리속도는 놀랍게 발전했지만, 아무리 나아졌다 해도 그것은 인간의 주체적 판단능력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조하는 도구에 불과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즉 컴퓨터가 인간두뇌의 역할을 모두 대신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물론 이 문제는 컴퓨터의 이후 발전을 지켜봐야 판단할 수 있는 문제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어떤 특별한 철학적 · 문명사적 의미를 갖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이태수 : 종이와 연필 그리고 문자의 발명은 같이 가는 문제죠. 문자와 종이, 연필은 아주 일찍 발명되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는 그런것 들의 연장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물론 컴퓨터가 인간의 단기기억을 연장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것은 종이와 연필이 발명되면서 이미 하나의 흐름이 완성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호메로스시대, 즉 기원전 8세기경 문자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의 지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형성됐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문자가 사용되면서 그 이전가지 중요하게 여겨졌던 직업적으로 외우는 사람들의 기억력이 퇴화되기 시작됐다고 합니다. 그 이전까지는 지적 능력이란 곧 기억력 좋은 것, 그리고 잘 외는 것이었는데, 종이와 문자가 발명되면서 그것이 근본적으로 변하게 된거지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서는 분명히 기억력이 지능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컴퓨터의 특징은 기억 (memory extension) 외의 다른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컴퓨터가 인간두뇌의 기능을 대신한다는 점, 방금 말씀하셨지만 정보처리를 해낸다는 점을 더욱 파고들어야 할 듯합니다.

기술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에 따르면 기술 또는 도구는 인간신체의 연장으로 이해됩니다. 즉 인간신체의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게 해주는 보조수단이라는 것이죠. 예컨대 망치는 손의 연장이며, 망원경은 눈의 연장, 자동차는 발의 연장이라는 식이죠. 그렇게 볼 때 컴퓨터는 지금까지 없었던 두뇌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특유하지 않습니까? 망치나 망원경 같은 도구들은 인간의 두뇌라는 생물학적 중앙처리장치에 의존하지만, 이 중앙처리장치 자체를 인간 밖에서 구할 수 있지 않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그것이 컴퓨터가 하는 역할이지요, 로켓은 엄청난 힘을 갖지만, 중세 성곽을 부수는 대포의 연장일 뿐이지요 그런데 컴퓨터는 다릅니다. 그것이 단순한 계산기라는 점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김영정 : 지능을 보완하는 도구라고 해서 무조건 주판과 마찬가지라고 결론 내리면 곤란하겠지요. 간단하게는 효율성의 측면만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평균 70 년을 살았다면, 오늘날 컴퓨터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그 몇 배, 적어도 200 ~ 300년의 삶을 사는 것과 같은 도움을 줄 수도 있는 도구입니다. 사실 아무리 생명과학이 발단해도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없으리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컴퓨터의 효율성이 갖는 의의는 대단한 것입니다. 컴퓨터의 효율성이라는 양적 변화가 중요한 질적인 변화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태수 : 그 질적인 변화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계산기와 컴퓨터의 근본적 차이는, 컴퓨터는 숫자와 연산을 처리할 뿐 아니라 인간이 정보라고 부르는 것을 모두 다룰 수 있다는 점이죠. 저는 그것이야말로 컴퓨터를 주판시대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요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인간이 지식을 남에게 전달하는 형태를 정보라고 하는데, 컴퓨터가 이와 관련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철학자들은 예전부터 지식이 무엇인지를 연구해왔는데, 그를 위해서는 지식이 표현되고 의사소통될 수 있는 어떤 물리적 매개단위가 필요합니다. 지식이 취하는 물리적 형태를 칸트는 판단이라 했는데, 오늘날 정보라는 개념은 바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컴퓨터가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에 의해 생산되고 전달되는 것 중에 지식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정보라는 형태로 우리 두뇌가 아닌 기계의 힘으로 처리해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때의 정보란 숫자에만 국한되지 않는, 두뇌가 생산해내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이 부분이 혁신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김영정 : 정보는 표상 (representation) 과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보는 우리 마음속의 표상이나 어떤 상징적 (또는 기호적) 표현들을 통하여 보관될 수 있고 전달가능한데, 컴퓨터는 그것을 전체적으로 대행해준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 이전에도 정보처리는 하고 있었는데, 그때에는 처리기계가 정보처리를 완전히 대신한다기보다는 인간의 표상능력을 기본으로 하는 보조적인 것이었습니다.

한편 컴퓨터의 정보처리가 획기적인 것은 정보를 디지털화해서 처리한다는 점입니다. 정보를 디지털화할 수 있음으로써 기계적 처리가 가능해졌고, 따라서 그 점이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 이전의 정보처리는 기본적으로 아날로그적인 방식이었으니까요.

이태수 : '디지털 '이란 개념도 나왔는데, 이제 정보처리기계로서의 컴퓨터를 보다 세밀히 이해해보기로 하죠. 정보는 무엇이고 그 정보를 다루는 기계가 어떻게 엄청난 영향을 갖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다뤄봅시다. 우선 정보라는 개념이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과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겠지요?

김명원 : 과학에서는 예컨대 새넌 (C. Shannon) 의 정보이론이 그런 것인데, 그것은 주로 정보란 어떻게 표시되고 측정될 수 있는가에 대한 수학적 이론입니다. 거기서는 정보의 양을 규정하고, 측정 · 표시하는 방법,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물리적 체계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하여 다루기 때문에 정보의 본질, 즉 정보가 이런 것이라고 단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태수 : 중요한 것은 어쨌든 우리가 정보라는 개념을 갖고 지식을 (그 일부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규정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양적 처리가 가능해졌고, 그에 있어서 디지털 처리방식이 중요했다고는 말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상당한 사회적 · 문화적 영향력을 끼쳤다고 생각되는데요?

김명원 : 정보처리에서 디지털 방식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보처리에 있어서 디지털이라는 개념이 반드시 필요한가, 그리고 충분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한 가지 지적해둘 점이 있습니다. 뉴런에서의 정보처리과정을 보면 흥미롭게도 디지털과 아날로그 방식이 반복적으로 일어납니다. 뉴런들 간에 정보를 교환할 때, 보내는 방식은 디지털 형태인데, 그것을 수신하는 뉴런 내에서는 아날로그 형태로 보관됩니다. 그 뉴런이 다른 뉴런에게 정보를 보낼 때는 물론 다시 디지털화해서 보냅니다. 이것은 상당히 발달된 형태의 뉴런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원시적인 형태의 뉴런에서는 아예 아날로그 형태로 정보를 보내기도 합니다.

또한 디지털화한다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디지털화된 여러 개의 정보들이 거대한 규모로 연결될 때 새로운 차원의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지요. 흔히 동시적 진동 (synchronized oscillation) 이라고 말하는데 각각의 분리된 개별적 운동들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 서로 연결되어 일치된 운동을 보이는 현상입니다. 반딧불이 각각 개별적으로 반짝이다가 어느 순간 동시에 반짝거리게 되는 경우가 그런 예입니다. 디지털이 순간적으로 일치하는 것이죠. 또 뇌 내부에서 혼돈현상이 일어난다고도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디지털 개념으로만은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이 혼돈현상과 동시적 진동현상이 의식이라는 정신적 차원과 관련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김영정 : 그러나 우리에게 컴퓨터로 다가온 것은 디지털 방식의 컴퓨터였고, 아직까지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그런 점에서 디지털이란 개념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보아야 할 텐데요.

김명원 : 그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정보와 관련해서 디지털의 개념은 계속 중요합니다. 디지털은 아날로그와 달리 노이즈 없이 많은 양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고, 또 노이즈가 있어도 원래 정보를 재생하기 쉽다는 특별한 장점이 있죠. 제 말은 단지 정보처리는 디지털만으로는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디지털 차원의 이면에 있는 다른 차원들도 더불어 중요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사실 디지털화의 개념에 의하여 컴퓨터는 정보를 물리적으로 표현하고 조작하는 굉장히 효과적인 전자공학적 수단이 되었죠. 특별한 스위칭 엘리먼트를 이용하여 2 진법적 기호체계 0, 1 로 정보를 표현하고, 고속으로 전송할 수 있게 됩니다. 아날로그 방법도 있지만, 아날로그는 전송에 큰 문제가 있죠. 노이즈에 민감해서 멀리, 정확히 보내지 못하기 때문에 정보를 디지털 코딩하는 방법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태수 : 부수적인 것이지만, 정보라는 개념에 대하여 한 가지 더 확인해두어야 할 듯합니다. 이 좌담에서는 정보를 지식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했는데, 그것이 정확한 것은 아니죠? 오늘날의 정보개념은 그것보다 훨씬 넓은 것으로 보아야겠지요?

김명원 : 칸트는 정보를 판단이라 했다지만 판단만이 아니라, 요즘의 개념으로는 이 방의 온도도 정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날씨, 온도, 어떤 사람의 키 등도 다 정보라고 보는데, 그렇게 때문에 정보에 여러 계층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지식이란 그 중 가장 보편성 있는 형태라고 하겠습니다. 초기의 컴퓨터가 다루었던 정보는 하위계층의 정보였습니다. 통계처리나 숫자계산 등 숫자적 정보들이었죠. 사실 컴퓨터의 등장 배경을 보면 초창기에는 빠른 숫자계산이 유일한 목표였습니다. 파스칼에서 라이프니츠, 배비지에 이르는 컴퓨터 이론의 선구자들도 그런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분명 계산기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죠. 그 후 단지 계산만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지적인 정보를 처리해보자는 취지에서 더 윗단계의 정보, 즉 지식처리를 시도하게 된 것입니다. 주어진 자료들을 기억하고 가공하여 어떤 판단을 내리고 또 추론을 통해 논리적 판단도 하려 했지요. 여기에 이르면 컴퓨터는 인간의 지능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김영정 : 정보에 여러 위계가 있다는 말씀이죠? 그러나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눈금도 없는 수은주가 올라가 있을 때에도 정보가 있다고 보아야 하는가요? 있다면 거기에는 어떤 정보가 구현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까?

이태수 : 그 경우도 정보가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수은주가 전혀 올라가 있지도 내려가 있지도 않은 상태 (현실적으로는 있기 어려운 상태지만) 가 무정보의 상태라면, 어떤 사물이 어떤 형태를 갖고 존재하는한 나름의 정보를 갖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 속에 어떤 정보가 들어 있는지는 맥락에 따라 다르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쉽게 생각하면 정보 (전달) 에는 송신자와 수신자가 있을 텐데, 수신자가 누구냐에 따라 정보내용이 달라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명원 : 그런 발상법과 비슷한데, 오늘날 정보라는 개념은 아주 넓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어느 시 · 공간 내에서 주관에 주어지는 모든 상태들이 다 정보에 해당될 수 있지요. 사람의 정보처리에 있어서는 그 중 대부분이 걸러지고 필요하고도 합당한 것만이 취사선택되는 것입니다.

컴퓨터의 문화적 충격

이태수 : 이야기가 약간 어려워졌는데요, 다시 컴퓨터의 정보처리방식이 등잔함으로써 우리의 문화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이야기해보도록 하지요. 그 기술적 내용은 어떻든지간에 엄청난 양의 정보를 기억하고 고속으로 처리해낼 수 있다는 효율성 때문에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생각되는데요.

김영정 : 바로 그런 의미에서 컴퓨터가 인간의 생명을 늘려주었다고도 말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상황의 뒷면을 보면 정보의 홍수라는 측면이 나타난답니다. 이것이 문제인데, 즉 정보가 많아서 좋기는 한데 너무 많기 때문에 쓸데없는 정보, 나쁜 정보에 현혹되어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컴퓨터는 생명을 늘려주는 시에 허비하게 하는데 이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정보의 수집과 분류를 넘어서서 정보를 평가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뜻이죠. 잘 평가된 정보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면 어느 시대에도 갖지 못했던 종합적 시각을 갖게되고 필요한 정보를 순식간에 사용할 수 있다는 강점이 살아나겠지요.

이태수 : 그런 우려의 연장선상에서 컴퓨터에 대한 반감들이 상당하지요. 사실 예전에 미국에서는 컴퓨터 안쓰기 운동이 민간단체에 의해 벌어진 적도 있습니다. 서구에는 낭만주의라 이름하는 사상경향이 있어서, 전통사회의 덕목을 침해하는 모든 첨단과학과 기술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가 있지요. 그 점에서는 우리 동양권도 마찬가지겠지요. 컴퓨터에 대한 그러한 낭만주의적 반감이 과연 옳은지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기로 하죠. 컴퓨터가 일으키는 문제 이전에 컴퓨터가 우리 사회에 주는 커다란 문화적 이점은 무엇일까요? 과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명원 : 글쎄요. 저 자신은 컴퓨터를 잘 안 씁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안 사줬습니다. 그것은 컴퓨터가 우리 생활의 질을 침해하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컴퓨터가 생활화되면 거의 모든 문제를 그에 의존하게 됩니다. 미국에 다이스트라라는 네덜란드 출신의 유명한 컴퓨터 과학자가 있습니다. 70년대에는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 '라 불렸던 사람인데, 정작 본인은 전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가 컴퓨터회사 사람들에게 " 제발 선생과 학생에게 컴퓨터를 사주지 말라 " 고 했던 일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냥 컴퓨터 앞에서 무엇인가를 치기 시작합니다. 반면에 유럽 사람들은 아직도 컴퓨터에 가기 전에 생각하곤 한답니다. 사실 저나 컴퓨터 과학자들은 컴퓨터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연구가 재미있어서 하죠. 그렇지만 일반인들이 컴퓨터를 좋아하는 것은 그들이 필요로하는 신뢰할 만한 데이터를 대량, 고속으로 처리해줄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일 테지요.

이태수 : 또 이런 점도 있습니다. 컴퓨터로 인해 인간이 사는 방식이 많이 달라지는데, 우리의 근본적인 행위양식이 변하지요. 모든 문화 속의 인간들에게는 살아가는데 지침으로 사용되는 핵심적인 신념이 있게 마련인데, 그것이 상식적 행위의 토대이며 모든 일상윤리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보가 그리 많지 않고 정보내용의 변화가 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그 핵심적 신념의 부분이 양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대단히 견고했죠. 그리하여 과거의 사람들이 오늘날의 사람들보다 훨씬 일관되고도 소신있는 행동을 하기 쉬웠습니다. 자신의 판단을 의심케 할 요인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면 자신있게 행동하게 되고, 반면 나쁘게는 편견 가득한 고집쟁이의 모습을 보이기 쉬웠죠.

그러나 현대의 정보량이 증대해서 그 핵심 부분이 위축되었고 많은 변화에 노출되게 됩니다. 그 결과로 행동속도가 느려지고 원칙에 의해 행동하기 어려워집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신세대의 특성이 이중성을 보이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면 줏대없고 일관성을 갖지 못하여 약해 보이지만, 다른 일면으로는 편견 없고 행동의 선택이 자유롭다는 것이지요. 컴퓨터 문화, 즉 너무 많은 정보에 익숙해져 있는 세대가 바로 신세대죠. 정보의 대량유통과 함께 국제화시대도 같이 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 문화의 이런 점은 사실 강점이자 약점입니다. 이런 시대는 근원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정보로부터 차단되어 있어서 자신의 지식창고에만 의존하여 행동함으로써 행동이 패턴화되는 시대에는 아무래도 개개인에게 안정감이 있죠. 그러나 정보가 홍수처럼 개개인에게 쏟아지면 우리의 행위가 항상 선택을 동반해야 하기 때문에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겠죠.

김영정 : 단순한 불안감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혼란이고 정보의 왜곡된 전달을 통한 폭력도 가능하지요. 너무 쉽게 정보가 소통될 때 마타도어가 난무하는 상황을 막을 수 없을 테고 절대 필요할 것입니다.

김명원 : 그런 점이 분명 있습니다. 컴퓨터는 기술, 공학적인 면을 떠나서 분명히 사회, 문화적인 역기능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화가 편리하기는 하지만 문제가 전혀 없지는 않죠. 요즘 말이 많은 전화를 이용한 성적 희롱이나 전화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범죄모의가 가능해지는 등 부정적 용도도 많죠.

이태수 : 가치관 혼란이나 통제불가능한 사회에서의 고통이라든가, 이런 것들 말고 다른 문제도 있을 듯 합니다. 제 생각엔 컴퓨터가 인간의 사고를 해방 시켜주는 동시에 제약하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예컨대 컴퓨터는 양화가능한 정보만을 다루기 때문에, 만사적으로 양적 처리가 불가능한 정보는 중요할지라도 도외시되기 쉽죠. 얼마나 정확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콤팩트디스크에서 바이올린 소리를 처리하기가 조금 어렵다고 들었는데요. 그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피아노 소리에의 편향을 부추긴다든가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지요. 아마 컴퓨터에 의한 데이터 처리에 반감을 갖는 사람들은 그런 이유를 가장 심각히 생각할 것입니다.

김영정 : 그러나 그런 문제는 어쩔수 없는 것 아닙니까? 원래는 없었던 피아노가 발명되어 사람들이 피아노음에 편향되어 버린 것과 상황은 쪽같죠. 그것은 모든 도구, 문화의 속성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도구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인간의 사고패턴을 지배하기 마련이죠. 사실 정보가 컴퓨터를 통해서 전달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소외 또한 나타납니다. 육성을 들려주거나, 편지를 쓰지 않기 때문에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간접화되는 것을 들 수 있지요, 그러나 그런 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인간적 유대를 돈독히 해줄 수 있는 새로운 의사소통양식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김명원 : 그렇게 보먄 정보가 대량으로 유통됨으로써 얻어지는 획기적인 이점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정보소통이 원활히 됨으로써 일종의 사회적 두뇌 (social brain) 가 등장할 수 있습니다. 즉 개개인을 뉴런으로 비유할 때, 사회 전체가 하나의 뇌를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정보가 대량, 고속으로 유통됨으로써 의사소통의 채널이 많아졌습니다. 그 속에서의 개개인은 과거 사람들보다 훨씬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에게 영향을 줍니다. 이는 마치 원시시대 인간의 뇌가 작고 뉴런들 간의 연결도 빈약했던 데 비해, 지금의 뇌가 거대하고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할 때, 개인이 가질 수 없는 창발적 기능 '사회적 뇌' 의 기능으로 나타날 수 있고, 그에 따라 이른바 '사회적 지능 (social intelligence)' 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 등장하게 됩니다. 달로의 여행, 괴델의 수학적 증명이나, 아인슈타인의 물리학 이론 등은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것들을 정보화 시대에는 더 많이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물론 역기능도 조심해야 하겠지만, 보다 발전된 사회적 업적도 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태수 : 정보의 공유가 지금 말씀하신 사회적 뇌의 개념과 정확히 같은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아무튼 정보의 공유 때문에 개개인이 이룰 수 없는 일이 가능해진 것만은 분명하죠. 사실 모든 도구는 인간해방의 단서가 됩니다. 예를 들어 망치는 살인도구로 사용된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합니까? 계산기의 발명으로 계산능력과 기억능력을 잃는 대신 새로운 가치 있는 덕목들이 개발됩니다. 기억 대신 창조력 같은 잠재력이 개발되고 각광받는 식이지요. 컴퓨터의 발명 이후 계산은 지루한 작업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계산과는 다른 두뇌 부분을 써야 머리가 좋다고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컴퓨터로 인해 인간해방과 더불어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낙관주의자입니다. 경계하는 태도를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무서워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운동을 벌인다든가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장점을 살려 긍정적으로 활용해야죠.

컴퓨터의 발전

이태수 : 컴퓨터의 발달사를 보면 수식연산, 텍스트 전달과 처리, 그래픽과 소리의 처리 등으로 기능이 확장되지요. 이렇게 기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를 점점 넓혀갔습니다. 그렇다면 얼핏 인간이 산출하는 모든 정보가 기계적으로 접근이 가능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습니까? 정보처리가 어려운 또는 불가능한 부분이 있습니까?

김명원 : 오감 중에서 미각, 촉각의 부분은 정보처리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분들은 보고 듣는 것에 비하면 양, 질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죠. 그래서 연구가 그리 활발하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오감에 대한 정보처리의 연장선상에서 요즘 가상현실 (virtual reality) 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컴퓨터를 이용하여 사람에게 인공적 감각을 주입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면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현실과 꿈이 어떻게 구별되는지 어리둥절할 정도입니다.

이태수 : 사실 우리는 후각과 촉각에 의해 어떤 것이 정말 실재하는 것인지를 확인하곤 하지요. 세상의 많은 부분이 그런식으로 전달되는데 아직은 어렵다지만 그런 부분까지 기계적 정보처리가 가능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과연 바람직한 세상일지 참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고전적인 컴퓨터, 즉 디지털한 정보처리의 대표적인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 흔히 폰 노이만식 컴퓨터라고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폰 노이만식 컴퓨터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폰 노이만식 컴퓨터의 특징과 한계는 어떻게 인식해야 합니까?

김명원 : 폰 노이만식은 무엇보다도 프로그램을 모두 기억하는 방식의 컴퓨터라는 점이 특지입니다. 그것을 내부저장 프로그램 (stored program) 이라고 말하는데 데이터와 함께 명령부분도 기억한다는 것이죠. 폰 노이만식 이전에는 명령부분은 별도 테이프로 주고, 데이터 메모리에서 찾았지요. 따라서 폰 노이만식은 프로그램의 사용범위가 대단히 넓다는 장점을 갖는 대신 순차적 절차 (sequential procedure) 를 거쳐야 한다는 문제를 갖습니다. 즉 명령어를 가져와서 그에 해당하는 데이터들을 불러 처리하고, 다음 명령어를 가져와서 다음 데이터를 처리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양의 정보를 신속히 처리하기는 어렵죠. 이런 문제와 더불어 폰 노이만식 컴퓨터는 학습능력에서 문제가 나타납니다.

김영정 : 부연하자면 이렇습니다. 폰 노이만식 컴퓨터만으로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첫째, 순차적 절차의 처리방식에 대단히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요구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점이지요. 그래서 처리속도를 빠르게 하는 방식들을 모색했지요. 둘째로는 알고리듬 (algorithm) 을 찾기 어려운 문제들을 처리하는 데 원리적 한계를 갖는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내리는 많은 판단들은 대부분 비알고리듬적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펜로즈 (R. Penrose) 라는 수학자는 "지능적인 것은 비알고리듬적이고 알고리듬적인 것은 지능이 아니다"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컴퓨터의 기본구조를 바꿔보려는 움직임들이 있게 됩니다. 이에 인간의 두뇌구조와 작동방식이 참조되는데, 거기서는 어떤 중앙처리장치가 있어서 작업을 순서대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그것은 알고리듬적이죠-간단한 기능을 수행하는 여려 개의 단위들이 모여 전체적인 기능을 수행합니다. 그런 개념을 기계적으로 실현해보려는 것이 요즘 관심이 많은 신경망 컴퓨터입니다.

김명원 : 그러나 학습과 관련하여 말해둘 것이 있습니다. 학습에서의 문제란 폰 노이만식 컴퓨터에서는 프로그램에 의해 주어진 것만을 해낼 수 있다는 비판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비판들 때문에 많은 컴퓨터 과학자들이 학습능력을 갖춘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은 장기 비슷한 것인데, 체커 (checker) 게임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개발되어, 실제로 실력이 향상됨을 증명한 바 있습니다. 또한 규칙이 아닌 기호적 차원의 학습이 가능한 프로그램도 개발되었습니다. 몇몇 예들과 반례들을 보여주어 개념을 파악하게 하는 것이죠. 윈스턴의 학습 시스템 (Winston's learning system) 이라는 프로그램은, 블록 두 개를 세워놓고 그것을 다리라고 알려주고, 그와 비슷하지만 다리가 아닌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리가 아니라고 알려주는 식으로 훈련하여 다리란 개념을 형성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비 (analogy) 를 이용하는 학습프로그램 또한 개발되어 있는데, 이는 신경망 컴퓨터에서 하는 '학습' 과는 차원이 다르나, 일견에서는 상당한 수준으로 보이는 학습능력들입니다.

김영정 : 폰 노이만식 컴퓨터에 문제가 있어서 인간 뇌의 구조를 흉내내려는 이들의 설계이념을 연결주의 (connectionism) 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본 노이만식 컴퓨터에 대한 진정한 대안인가에 대하여도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먼저 컴퓨터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말하자면, 정보를 담지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구문론 (syntax) 이 있고 우리는 거기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처리하게 되죠. 그러나 어쨌든 정보는 표상에 의해 담지되는 것이고, 이와 관련하여 연결주의가 폰 노이만식 컴퓨터에 대한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미국 철학자 포도 (J. Fodor) 의 비판을 간단히 소개하죠.

규칙지배적인 알고리듬에 의해 작동되는 컴퓨터에서는 아까 말한 구문론이 표상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그 구문론적 표상이 일종의 인과적 힘 (causal efficacy) 을 가짐으로써, 하나의 표상에 의해 다음 표상을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언어의 기본적 특징인 생산성 (productivity) 을 수용해낼 수 있게 됩니다. 생산성이 무엇인지는 잠시 후에 말하기로 하고, 포도에 따르면, 연결주의 방식에서는 표상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언어의 생산성을 설명하기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반면 언어의 생산성을 수용해내려 한다면 전통적인 규칙의존적 체계, 계산주의 (computationalism) 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연결주의에서는 구문론이라는 표상이 문제되는 것은 아니고, 뉴런들 간의 웨이트, 연결강도, 액티베이션, 뉴런 자체가 갖는 값 등이 문제가 되지요.

포도의 논지를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우리 언어에 대한 올바른 정보처리기계라면, 만일 "철수가 영희를 사랑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영희가 철수를 사랑한다"는 말도 이해할 수 있음을-이를 언어의 생산성이라 말합니다-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철수, 영희라는 요소를 구별해내고, 그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의미단위를 구성하며 정보가 되는지를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것을 규정해내면 그것은 전통적인 규칙의존적 체계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 수 없다는 것이죠. 계산주의를 다른 방식으로 부연한 것이지 인지에 대한 새로운 관념은 아니라는 것이고, 혹 그런 부분을 수용해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지를 설명하는 입장으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입장이라는 비판입니다.

컴퓨터의 지능

이태수 : 상당히 전문적인 이야기인데요. 이제 우리 이야기를 인공지능의 문제로 바꿔보지요. 지능 또는 지성이란 원래 철학에서 다뤄온 주제인데, 컴퓨터 과학의 발전은 이에 대한 새로운 논의방식을 가능케 한 것 같습니다. 즉 컴퓨터가 보여주는 지능적 능력을 경험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우리 인간의 지능에 대하여 더 잘 알 수 있게 되겠지요.

김영정 : 지능의 연구에 컴퓨터 과학이 개입됨으로써 지능의 개념이 넓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종래 철학에서 지능을 논할 때는 이성과 감성을 구분해서 이성 부분만 주목했습니다. 오늘날 인지과학에서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예컨대 시지각의 문제를 논하면서도 지능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까? 원래 지각 (perceiving) 의 문제는 인식론의 기본문제였는데, 1950년대부터 그 문제를 심리학에서 과학적 데이터를 갖고 처리함으로써 철학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죠. 그것이 오늘날에는 인공지능의 연구에서도 다뤄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오늘날에는 컴퓨터가 인간을 대행할 수 있는 모든 부문을 지능이라 말하고 있죠.

이태수 : 종래 철학자들이 생각한 지능, 지성은 주로 규칙지배적인 판단영역이죠. 철학자들이 특히 주목했던 지성의 부분은 이름하여 오성인데요. 오성이란 곧 계산하는 능력이거든요. 그렇게 추론, 규칙에 기반한 지성개념에 편향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폰 노이만식 컴퓨터와 친화력이 있죠.

김영정 : 어쨌든 컴퓨터가 인간을 대행하는 모든 부분을 지능이라 부르는 이면에는 기능주의 (fuctionalism) 라는 철학적 전통이 숨어 있습니다. 기능주의에서는 인간 마음의 상태는 철저히 정보처리기계라는 점에서 이해합니다. 그래서 어떤 입력이 주어졌을 때 나름대로의 출력을 낼 수 있는 기계라면, 그것도 마음을 갖는 것이며 지능을 갖는다고 말하지요. 이런 발상법은 감각질 (qualia) 과 관련하여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그러한 전문적인 문제를 떠나서 컴퓨터가 어떠한 지적 작업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인간의 지성과 같은 종류의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특히 인간 이성의 반성적 특성을 컴퓨터가 구현할 수 있는가를 문제삼습니다. 특히 이 문제와 연결하여 연결주의가 어떤 가능성을 열어주는지가 요즘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이태수 : 그 문제 이전에 폰 노이만식 컴퓨터에 대한 논의와 연관해서도 인공지능개념에 대한 비판이 있지요. 즉 컴퓨터가 계산은 하지만 과연 '이해'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말이죠.

김영정 : 설 (J. Searle) 이라는 미국 철학자의 비판이 유명하죠. 그 요점은 이런 것입니다. 폰 노이만식 컴퓨터의 특징을 정보처리라고 할 때, 그것이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은 사실상 숫자계산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단순한 수학법칙과 논리법칙이에 따라 연산하는 것이 의미를 이해하는 것인가 하는 비판입니다. 중국어 방 논변 (chinese room argument) 이라고 해서 어떤 사람이 영어-중국어 번역사전을 갖고, 입력되는 영어를 사전에 따라 기계적으로 중국어로 바꿔놓는다면, 그 사람은 중국어를 이해하는 거냐 아니냐를 묻습니다. 즉 의미론의 부분이 수반되지 않는 규칙놀이, 구문론적 변환이 이해의 상태에 충분치 못하다는 말입니다.

김명원 : 컴퓨터의 지능을 말할 때, 흔히 의미론적 내용에 대해서 많이들 말합니다. 그러나 과연 의미론적 내용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사람들은 반드시 특별한 의미론적 이해의 차원을 갖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사람들이 행하는 프로세스만이 이해인지 등등.

 도대체 사람들이 의미내용을 어떻게 다루는가 생각해보죠. 예컨대 '2' 라고 쓰여진 숫자에 대해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본질적 내용 같은 것을 어디서 찾아내야 합니까? 어떤 본질이나 의미체를 찾아 지칭함으로써 우리가 '2' 를 이해하게 됩니까? 다시 예를 바꿔서 '2 + 3 = 5' 이라는 조작을 해내는 컴퓨터에 대해 그것이 '+' 나 또 숫자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를 묻는다고 합시다. 이때 이 컴퓨터가 숫자와 관련된 연산에 있어서 틀림없는 답을 낼 수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컴퓨터가 숫자와 연산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해를 위한 인간만이 갖는 심리적 부수물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까?

김영정 : 그 점에 관해서 논리학적 관점에서 지적해둘 부분이 있습니다. 현대 논리학에 따르면 컴퓨터의 작동기제라고 할 수 있는 구문론적 규칙은 결코 의미론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문적 이야기이긴 하지만, 완전성 증명이니 건전성 증명이라고 해서 논리적 진리에 대한 의미론적 접근과 구문론적 접근이 상응한다는 것이 증명되어 있지 않습니까? 논리학자들이 구문론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한도 내에서 구문론이 의미론의 역할을 다한다고 증명되어 있기 때문이죠. 만일 의미론이 없이 구문론만 있는 상태에서라면 사람들이 구문론에 만족할 수 없었겠지요. 인간이 알 수 있는 의미론의 한계가 여기까지이고, 이 부분까지는 구문론적 접근을 해도 똑같은 답을 내준다는 것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구문론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이태수 :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문제를 이렇게 다뤄보지요. 컴퓨터가 어떤 성격의 작업을 하든 간에 그것이 전통적으로 인간 지성의 고유한 특징으로 여겨져온 반성적 측면, 즉 자기가 자기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까?

김영정 : 그 말은 이렇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 프로그램을 짜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가? 앞서 말했듯이 펜로즈가 의식/무의식을 구별하는 역설적 경구로서 말하려는 바의 핵심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알고리듬을 갖고서도 자신의 알고리듬으로부터 증명불가능한 문장이 나온다는 것을 증명 못한다는 거죠. 그러나 인간은 하지 않습니까? 괴텔 (K. Gödel) 이 했죠. 이는 알고리듬에 의해서는 절대 포착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 이성은 언제나 주어진 알고리듬을 넘어서는 작업이 가능한데, 컴퓨터는 알고리듬을 짜주었을 때 반성을 통해 자기를 넘어설 수 없다는 거죠.

김명원 :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통상적인 전문가 시스템 (expert system) 의 단점은 자기 프로그램의 한계와 결점을 모른다는 것이죠. 즉 어떤 문제까지 푸는지를 모른다는 것인데, 그러나 그것까지 알아내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습니다.

김영정 : 혹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해도, 그 프로그램의 결점을 지적할 수 있는 상위 프로그램이 또 있어야 하고, 그런 식의 무한역행이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김명원 : 그렇다면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죠. 과연 인간과 컴퓨터가 본질상 다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컴퓨터만 어떤 프로그램을 주입받는다고 생각하는데, 그 점에서는 인간도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은 유전자라는 기본 프로그램을 갖고 태어납니다. 단백질을 생산하는 프로그램 같은 기본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생득적, 후천적으로 얻는 것도 그 한도 내에서 얻어집니다. 즉 프로그램이 프로그램을 진화시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인간이 자신의 프로그램을 무한소급 없이 알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프로그램 내용을 아는지,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의미를 아는지, 자신이 어디서 왔으며 본질은 무엇인가 등을 아는지 장담할 수 있습니까? 그런 문제는 인간이 영원히 답을 얻을 수 없는 문제이고,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철학적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김영정 : 그러나 이런 식의 반론도 가능하지요. 인간은 대상 세계에 대하여 언제나 주체의 위치에 있고, 따라서 알고리듬으로 파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죠. 대상화되어야 알고리듬을 짤 수 있지요. 유명한 인공지능학자 위노그래드 (T. Winograd) 가 인공지능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했을 때, 그는 하이데거 철학을 끌어들여 인간은 세계 내 존재이고, 따라서 세계에 대한 선이해를 통해서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지 단순히 알고리듬에 의해 정보를 처리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태수 : 그렇다면 종합적으로 말해서 인간과 컴퓨터의 유사성을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김명원 : 여러 철학자들이 그 차이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철학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질문이 항상 규칙 몇 개만으로 구성된 컴퓨터를 놓고 컴퓨터가 인간의 복잡한 사고를 재현할 수 있는거라고 묻는다는 점입니다. 컴퓨터도 절대 몇 개의 규칙만으로 기능하지 못합니다. 제대로 되려면, 예컨대 어떤 패턴이 들어오면-여기서는 컵이라 생각합시다-그것을 어떻게 하라는 단순한 규칙만이 아니라 컵의 기능, 모양, 재질 등 모든 의미론적 요소들을 제공해주고 그로부터 어떤 판단을 산출하도록 구조화해야 하는데, 아직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인공지능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심들이 많으니까 그에 대하여 몇 가지 가능성을 제시해 보이는 정도의 작업만이 진행된 것입니다. 만약 연구를 더욱 정교하게 진행시킨다면 철학자들이 염려하는 이상의 성과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계산방법과 새로운 재료 (material) 가 개발되어야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개선이 이루어지면 현단계 인공지능의 수준을 손쉽게 넘어설 것입니다.

김영정 : 앞으로의 과학적 발전가능성에 대해서야 철학자들이 뭐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어떻습니까? 인간은 사고하고 판단하고 감정을 느끼는 '주체' 이며, 또한 의미론을 부여하는 주체라는 측면을 갖고 있는데 컴퓨터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김명원 : 인간의 의미론이란 것도 어렸을 때부터 나온 게 아니라, 학습을 통해 배우고 체험적으로 얻는 것들입니다. 그를 통해 '사과' 라는 말을 실제 사과와 대응시킬 수 있게 되죠. 그런데 신경망에서는 하나의 기호 (symbol) 를 다른 기호와 연관시키는 연상 (association) 학습이 가능합니다. 그것이 곧 의미론 아닙니까?

김영정 : 제 물음의 핵심은 느낌, 감정, 판단, 이해의 주체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경우 연상을 주관하는 메커니즘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즉 "내가 이해한다" 고 말할 때의 '나' 에 해당되는 것이 컴퓨터에서는 무엇입니까? 시스템입니까, 폰 노이만식에 의하면 중앙 연산장치인가요?

김명원 : 사람 흉내를 내는 의미론적 네트워크 (semantic network) 를 만들려면 뇌처럼 만들어야 하는데, 지능적으로 특수기능을 하는 부분들이 있고, 그것들이 연결되어 기능하지요. 그 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 중요한 신호를 보내고 통제한다면, 그 부분이 '나 '에 해당하지 않을까요?

이태수 : '나 '를 CPU로 지정하든 어떻든, 나의 물리적 위치에 대해 자의식이 있어야 할 텐데요. 그와 관련하여 인간의 자의식이 역사를 통하여 성장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나 '라는 곳에는 먹이와 먹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것도 내장되어 있을 텐데,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진화해서 프로그램화된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지능은 하나의 주체로서 환경의 도전에 반응해왔던 생물 특유의 진화적 역사와 연관되는데, 인간이 그것을 기계에 넣을 수 있을까요? 생물의 주체적 역사를 반복시키지 않는 한 기계가 인간과 같은 자의식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프로그래머의 지시에 따르는 것으로서의 컴퓨터란 결국 영원히 노예의 역할만을 하는 사람 같은 것 아닙니까? 그런 존재가 자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왜 우리가 지능적인가 하면, 프로그램으로 형성하는 것말고 전통적으로는 지능의 영역에 넣지 않았던 것들 때문이라 하겠죠. 컴퓨터가 그런 지능을 스스로 개발할 수 있겠습니까?

진화개념과 밀접한 것이 종 (species) 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개인적으로만 생각하시는데요, 인간 종으로서의 아이덴티티도 또한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의 정서나 자손 생식성이 모두 그렇죠. 지능을 이야기할 때 개인으로서의 구조만을 생각하곤 하는데, 종으로서 단위도 참작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는 컴퓨터도 독립적인 종이 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지성을 갖춘 종이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즉 자기복제 능력을 가진 종을 창조하는 것인데, 그것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생각이 옳다면 지능에 대한 인지과학적 연구는 수학적 틀이 아니라 생물학적 틀에 더욱 많이 의존해야 할 것입니다.

컴퓨터와 미래 사회

이태수 :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중요한 이야기가 많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정리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컴퓨터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 가져올 충격은 무엇인가를 말해보도록 하죠.

김명원 : 컴퓨터가 폰 노이만식 계산주의의 틀에서부터 연결주의의 신경망 구조로까지 연구되고 있는데, 그것은 처음 기대와는 달리 그리 성과가 좋지 못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갖는 신경망 모델 자체가 너무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좀더 생물학적 연구가 야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앞서 소개한 신경망에서의 새로운 현상, 즉 동시적 진동이 지능의 어떤 기능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전혀 다른 종류의 기능방식인가를 많이들 연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것들은 방법론적 측면의 연구라고 하겠는데요 물질적 측면에서는 컴퓨터의 구성재료를 개선해보려는 노력들이 있습니다. 그 한 가지는 전기가 아니라 빛을 사용해보려는 흐름이지요. 그것은 빛이 전기에 비해 더 빠르고 병렬처리가 잘 되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실리콘칩 대신 생체칩을 사용해보려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아예 생몰학적 구조 자체를 사용해보려 하기도 합니다. 두뇌라는 상위기관이 아니라 인간 몸을 이루는 분자들 차원에서까지 내려가서, 그것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해서 정보전달이 되는지를 연구하여, 단백질을 갖고 정보처리를 해보려는 이른 바 분자 컴퓨터입니다. 그로부터 고차원의 프로세싱은 아니나, 감각과 같은 특정 기능을 하는 센서가 멀지 않은 시간내에 만들어지리라고 여겨집니다.

사람의 지능과 컴퓨터의 지능을 비교할 때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사람의 지능은 종합적이란 사실이죠. 모든 것이 통일적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한 부분이 마비되면 다른 부분도 기능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일부 기능만을 대행하는 컴퓨터는 인간과 직접 비교하는 자체가 불공정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컴퓨터는 부분적인 지능일 뿐입니다. 그러한 국소적 지능의 부분들을 어떻게 종합하는가가 문제지요. 그 문제를 해결하면 사람의 지능에 보다 가까운 것이 나타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것은 분자 컴퓨터가 나타나리라고 예상되는 10 ~ 20년 후의 미래상입니다.

김영정 : 컴퓨터의 발전은 이미 철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신경망 컴퓨터가 발전하면 더 큰 인식론적 충격이 기대됩니다. 종래 규칙지배적인 부분만이 이성, 지성의 기본이라고 여겼던 전통이 무너지겠지요. 문제는 이렇게 컴퓨터 과학의 발전이 제공해주는 철학적 자극을 어떻게 종합, 발전시키느냐는 것입니다.

이태수 : 미래 컴퓨터의 문화적 충격에 대해 덧붙이실 말씀은 없습니까? 정보를 대량으로 신속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처리한다는 것 외에 새로운 차원의 희망과 위험이 있지 않을까요? 새로운 문화혁명도 있을 수 있겠습니까?

김명원 : 지금의 컴퓨터는 어설픈 단계지요. 규칙에 없는 것을 질문하면 대답을 못합니다. 사람은 명시적 (explicit) 지식만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명시적 지식의 밑바탕에 있는 엄청난 양의 상식적 지식들이 명시적 지식을 가능케 해준다고 보아야 합니다. 레나지 같은 사람은 10 여 년간 혼자서 상식적 지식을 프로세싱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상식이 그렇듯이 정보가 명확히 주어지지 않는 경우의 결핍 지식 (default knowledge) 을 운용하는 문제까지를 컴퓨터가 충분히 처리해 줄 수 있다면, 컴퓨터는 정말 유능한 비서와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때는 인간과 컴퓨터가 말로 대화할 수도 있을 텐데, 그 경우 인간이 잘못 말하더라도 컴퓨터가 그의 취향이나 자주 쓰는 데이터 등을 고려해 처리해낼 수도 있게 됩니다.

이태수 :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무모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컴퓨터처럼 급변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컴퓨터가 우리 문화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이후의 변화가 결코 만만한 것일 수 없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에 대하여 장시간 좋은 말씀 나눠주신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