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rdinand de Saussure        

 

(스위스 언어학자, 1857~1913)

스위스 제네바 출생의 언어학자. 구조주의 언어학파의 창시자.

1901∼13년 제네바대학 교수를 지냄. 라이프치히대학 재학 중인 21세 때 《인도유럽어 원시 모음체계에 관한 논문》(1879)을 저술하여 당시 학계에서 지극히 어려운 것으로 되어 있던 이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쉬르가 제네바대학에서 행한 강의를 학생들이 필기한 노트와 그의 초고를 대조하면서 두 제자인 샤를 바이와 알베르 세시에가 편찬한 것이 《일반언어학 강의》(1916)이다. 그는 여기에서 언어활동을 머릿 속에 개념으로 저장되어 있는 추상적인 말[랑그-langue]과 이것을 개인이 사용하여 발음되는 구체적인 말[빠롤-parole]로 나누고, '랑그'를 언어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문자보다 말을 중시하는 언어관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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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dinand de Saussure    언어학 (Linguistics)   Noam chom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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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pedia : Ferdinand de Saus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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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과 철학혁명 - 소쉬르 : 철학과굴뚝청소부 : 2015/03/10

 

 

. ........ 라이프치히대학의 저명한 게르만어학자인 차른케는 1879~1880년 학기 어느 날 자기 과목의 청강생 가운데 소쉬르라는 성을 가진 학생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그 학생이 인도유럽어의 원시모음체계에 관한 논문으로 당시 역사언어학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던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친척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소쉬르라는 성이 그렇게 흔한 것은 아니므로. 차른케는 자신이 직접 소쉬르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 스위스 사람이 파리 언어학회에서 발표한 몇몇 논문들이 인도유럽어학에서 갖게 될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찬 차른케가 그 학생에게 물었다. 자네 혹시 스위스 사람 아닌가? 예, 맞습니다. 제네바에서 왔습니다. 아, 그래? 그러면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를 아나? 제가 페르디낭 드 소쉬르인데요. 아, 자네 이름도 페르디낭이군. 그런데 내가 말하는 사람은 인도유럽어의 원시모음체계에 관한 논문의 저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일세. 글쎄, 제가 그 책을 쓴 페르디낭 드 소쉬르라니까요. 학생은 수줍게 웃었다. 선생은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언어학사 책에서 소쉬르가 차지하고 있는 만큼의 페이지를 할애받을 수 있는 언어학자는 아직 없다. 어쩌면 뒷날 미국 엠아이티대학의 노움 촘스키 교수 정도가 새로운 언어학사 서술자에게 그 비슷한 분량의 페이지를 요구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아직 확실치는 않다. 소쉬르의 이론은 거의 한 세기의 풍화작용을 이겨냈지만 아니 오히려 이 세기의 지성사를 통해 활짝 피어났지만, 촘스키의 이론은 그 화려한 역정에도 불구하고 아직 형성중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두 사람은 20세기 언어학의, 더 공정하게는 20세기 인문사회과학의 거대한 뿌리다. 한 사람은 언어학을 언젠가는 수립될 기호학의 하위분과라고 생각했고 또한 사람은 그것을 인지 심리학으로 환원했다.....

소쉬르는 대대로 자연과학 분야의 학자들을 배출한 제네바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이나 형제들처럼 그도 조숙한 천재였다. 중학교 시절인 15살에 언어의 일반체계라는 책을 집필해 스승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지만, 라이프치히 유학 시절인 21살 때 쓴 인도유럽어의 원시모음 체계에 관한 논문은 역사비교언어학, 특히 인도유럽어학의 기념비적 저술이라 할 만하다. 그보다 한해 전에 파리 언어학회에서 그가 발표한 인도유럽어의 서로 다른 a의 구별에 대한 시론에서 싹이 트기 시작해 논문에서 체계적 가설로 확립된 뒤, 묄러·퀴니 등의 후배 언어학자들에 의해 보완되고 명명된 `후음 이론(laryngeal theory)'은 엄밀한 논리에 감싸인 상상력을 통해 저 아스라한 선사시대 어느 시점에 유라시아 대륙에서 사용되던 어떤 언어의 모음 체계를 재구성하고 있다.

`모국어'인 프랑스어나 독일어·영어같은 현대어는 물론이고 학생 시절에 이미 라틴어·고대 그리스어·고대 페르시아어·고대 독일어에 능통했고, 라이프치히대학 학위논문 제목이 산스크리트어의 절대 속격 용법이기도 했지만, 젊은 시절의 그의 지적 관심은 역사비교언어학 쪽에 있었다. 당대 언어학의 중심지였던 라이프치히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며 뒷날 세칭 `소장문법학파'(이들은 언어학을 언어사로 환원시켰다)를 이끌 브루크만·오스토프·레스키엔 등과 경쟁했던 탓이기도 했겠고, 소쉬르 이전의 언어학이란 심하게 말하자면 결국 역사언어학에 지나지 않았던 탓이기도 했을 것이다. 인도유럽어에 대한 소쉬르의 논문들을 모아 1922년 하이델베르크의 칼 빈터스 대학 서적센터에서 간행한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과학적 저작 모음은 이런 청년 소쉬르의 관심의 집약판이다.

그러나 전문적 인도유럽어학자들이 이 책의 성취를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과는 상관없이, 아무래도 소쉬르의 상표는 1906년부터 11년까지 제네바대학에서 그가 담당했던 세 차례의 일반언어학 강의를 그가 죽은 뒤 제자들인 알베르 세쉬에와 샤를 발리가 편집해 내놓은 일반언어학 강의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그 이전까지의 언어학을 지배하던 낭만주의·역사주의·실증주의를 극복하고 구조주의의 씨앗을 뿌렸다(물론 그 자신이 이 책에서 구조주의란 말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의 소쉬르를 박해했던 소장문법학파의 실증주의와 역사주의는 분트의 심리학주의, 포슬러의 신관념론적 정신사, 벵커의 방언지리학, 프링스의 문화형태론 등으로부터 줄기찬 공격을 받은 데 이어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에 의해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소쉬르는 소장문법학파가 언어의 외형적인 것 그리고 역사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는 점을 그의 논의의 실마리로 삼아 그들이 언어를 언어로서, 언어를 체계로서 관찰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소쉬르에게 중요한 것은 체계였다. 왜냐하면 언어는 그가 보기에 기호의 체계였고 고유한 질서만을 허용하는 체계였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으로 이러한 체계는 언어외적인 현상을 연구하지 않고도 완전히 이해될 수 있었다.

언어는 그 구체적 단위들의 대립을 기반으로 하는 체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 언어는 여러 가치들의 체계일 뿐이라는 것, 그러한 가치들의 가장 분명한 특징은 그것들이 딴 것들이 아닌 어떤 것이라는 것, 요컨대 언어에는 차이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등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개진된 소쉬르의 생각들로부터 내재적 관계 체계로서의 구조의 개념이 밝혀진다. 소쉬르에게 언어는 순수한 관계들의 그물망일 뿐이다. 이러한 관계 개념, 소쉬르의 후계자들의 해석에 따르면 구조의 개념이야말로 전통 언어학에 대한 혁명이었던 것이다.

랑그(langue)-파롤(parole), 시니피앙-시니피에, 형식-실체, 연합관계-통합관계, 공시적-통시적 등 뒷날 과학적 언어학의 방법론적 기점이 된 대립 쌍들의 개념이 확립된 것도 이 책에서였다. . . ... 페르디낭 드 소쉬르(언어학자)

. ........  소쉬르에 따르면 과학으로서의 언어학 연구는 무한한 발화행위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한정된 수의 랑그, 즉 체계에 대한 연구가 되어야 한다. 즉 하나의 개인적 발화의 의미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그것이 체계에 속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언어학은 의미 부여 행위 가능케 해주는 체계에 대한 연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랑그, 빠롤의 구분은 이후 진행된 모든 구조주의 이론의 핵심 이룬다. .우리가 한편의 시, 소설, 또는 신화, 경제행위 연구할 때 우리는 거기서 모종의 규칙체계, 즉 문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 문법이 바로 의미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기호학에서 언어는 정보의 저장과 전달이라는 목표를 수행하는 기호전달의 메카니즘으로 정의된다. 언어는 기호의 하나이다. 기호의 개념은 모든 언어의 바탕에 깔려 있다. 기호는 그 형식적 측면을 구성하는 물질적 표현과 물질적 표현이 연상시켜주는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쉬르는 전자를 씨니피앙(기호표현), 후자를 씨니피에(기호내용)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들어 골동품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자. 골동품이라는 단어에서 특수한 한국어 음소들과 형태-문법적 구조는 표현을 구성하며 그 어휘적, 역사적, 문화적 의미들은 기호의 내용을 구성한다. 우리가 골동품이라는 낱말을 보거나 들었을 때 철자나 소리는 물질적 표현, 즉 기호표현에 해당되며 그것이 연상시켜주는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 값진 물건 등 사회, 역사, 문화적 개념은 기호내용을 구성한다. 여기서 우리는 골동품이라는 기호표현이 기호내용을 대신한다는 것, 즉 씨니피앙과 씨니피에 사이에는 대신하는 것과 대체되는 것의 관계가 있으며 이 둘 사이의 관계가 기호의 의미를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은 경험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거나 반영하지 못한다. 말은 언어나 다른 기호체계가 없다면 아무런 변별도 없는 생각의 혼돈에 그치고 말 것에 형식을 부여해준다. 사물이 말의 의미를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사물의 의미를 한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청각적 이미지와 그것이 연상시키는 개념이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청각적 이미지는 그 언어체계 내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값이 주어지는 것이다. 예를들어 "가지"라는 소리는 국어 음성체계 내에서 "바지", "주지", "둥지" 등과의 차이 때문에 값을 가지는 것이다. 기호내용 역시 마찬가지다. "나무"라는 기호내용은 그것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되는 여러 식물체의 반영이나 표현이 아니라 문제의 기호에 의해 우리가 덤불 따위의 다른 대상과 구별하는 "나무들"이라는 대상의 부류일 뿐이다. 기호표현은 청각적, 시각적 이미지 체계 내에서 그것들이 갖는 위치에 따라, 기호내용은 사고체계 내에서 그 개념이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값이 주어진다. 각각 다른 체계 내에서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둘의 결합은 자연적인 관계가 아니라 자의적인 관계, 즉 사회적 약속에 의한 것일 뿐이다......

여기서 기호내용과 표현 사이의 관계는 종이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개념이 음성과 결부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음성을 언어 단위로 인지할 수 없고 개념과 결부된 언표형식을 마음 속에 떠올릴 수 없다면 그 개념 역시 마음 속에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모호한 사고의 미결 수준과 모호한 음성의 차원을 언어는 임의로 분할하여 음성이미지와 개념이 창조되고 그것이 결합되어 우리는 그것을 말로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색채 스펙트럼의 경우 언어화하기 전까지 그것은 생각의 혼돈된 미결수준, 즉 광파의 흐름일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빨강, 보랑, 주황 같은 색채 용어에 의해 임의로 분할하여 명명함으로써 개념과 음성이미지를 결합시켜 하나의 기호를 창조한다. 그 기호가 없다면 세계는 모호한 생각의 흐름일 뿐인 것이다....

언어는 계층적 구조이다. 그것은 다른 차원의 성분들로 쪼개진다. 특히 언어학은 음소, 형태소, 어휘, 단어의 결합, 문장의 차원들과 그 이상의 단위들을 구분한다. 각 차원들은 그것에 고유한 규칙들의 체계에 따라 조직화된다.
언어는 두 개의 구조적 축에 따라 조직화된다. 한편으로 언어의 성분들은 다양한 등가의 집합들에 따라 배분된다. 이러한 등가관계에 있는 것들의 집합을 계열체라 한다. 예를들어 철수, 영이, 바둑이 등은 명사라는 점에서 하나의 계열체를 이룬다. 또 그, 너, 나 등은 대명사라는 점에서 하나의 계열체에 속한다. 계열체 내의 성분들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계열체 내의 다른 단어들과의 관계, 즉 계열체 내에서 그것들이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의미가 이루어진다. 즉 철수는 원래부터 철수가 아니라 체계 내에서 철수가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즉 영이가 아니고 철이가 아니고 영수가 아니고 바둑이가 아니기 때문에 철수이다. 소쉬르가 언어는 실질은 없고 차이만 있다고 말한 것도 단어들이 언어 체계 내에서 다른 것과의 관계에 의해 의미가 이루어지는 거이지 그 자체로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문장을 만들 때 우리는 먼저 계열체 내에서 단어를 선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언어 성분들 사이의 이러한 질서화는 계열적이라 부른다. ...............
소쉬르의 언어이론

. ................ 우리는 대부분의 많은 연구 논문 속에서 현대 언어학의 기원(?)을 소쉬르에게-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쉬르의 강의에- 두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구조 언어학의 큰 두산맥을 형성했던 프라그 학파와 코펜하겐 학파의 이론의 형성과 보급과정속에서 소쉬르는 새로운 언어학의 지평을 열어준 창시자로서 등장한다. 구조주의 물결이 유럽 지성 사회를 휩쓸 무렵 생성문법의 창시자인 춈스키 또한 자신의 언어능력모델을- 비록 유보적이기는 하지만- 소쉬르의 언어개념을 통해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했다.....

우리는 대부분(?)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이론을 그가 내린 일군의 이분법들- 언어와 말, 공시태와 통시태, 연상관계와 통사관계, 기표와 기의 등-과 기호 원리들-기호의 자의성, 기표의 신적특성-로 축약하여 이해하고 배워왔다. 아직까지 소쉬르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가 상세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상황속에서 대부분의 한국 독자들은 소쉬르의 이론을 구조주의 사고틀 내에서 수용하고 있다. 본논문을 통해 필자는 이같은 구조주의적 수용의 한계를 지적하고 소쇠르의 풍요로운 사고에 대한 보다 폭 넓은 이해의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부족하나마 소쉬르와 현대 언어학의 관계를 '소쉬르로의 회기'라는 관점에서 재정립하고자 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던진 근원적인 질문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언어학의 궁극적인 대상은 무엇인가?' '언어학자들이 궁극적으로 이룰 수 있는것은 무엇인가?' '언어학과 기타 다른 과학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우리는 소쉬르와 더불어 언어학이 학으로써 던져야 할 자기반성적인 질문들을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 오늘날 소쉬르를 읽는 참된 가치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현대 언어학이 소쉬르로부터 출발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성급한 태도이다. 더군다나 언어학의 기원을 소쉬르에게서 찾는다는 것은 문법의 수천년의 역사를 도외시한 처사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어학이 학으로서 정립되어 감에 있어 필연적인 계기를 형성하는 자기 반성적 계기를 소쉬르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소쉬르와 현대언어학의 관계를 자기반성적 관계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소쉬르와 프랑스 언어학